혈액의 두 가지 방어능력
혈액 속에는 수많은 미생물과 음식물 조각이 존재한다. 106개 중 1개 꼴로 효모는 소화관을 통과해 혈액 안으로 들어가고, 그 가운데 일부는 모양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소변으로 배설된다. 효모는 진핵의 단세포생물에서는 크기가 크지만, 미생물군의 세균이라면 크기가 효모의 100분의 1 또는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아 혈액 안으로 쉽게 침입할 수 있다.
실제 무(無)염색 혈액을 슬라이드 글라스(slide glass)에 깔고 커버 글라스(cover glass)로 덮은 뒤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적혈구와 적혈구 사이에는 수많은 미립자가 움직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미립자는 세균류와 음식물 조각이다. 일반적으로 동맥혈이나 정맥혈에서는 세균류와 음식물 조각의 양이 적지만 문맥혈에는 아주 많다. 문맥(門脈)은 소장에서 흡수한 영양분이 간장으로 흘러가는 최초의 혈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미생물이나 음식물 조각이 혈액 안에 있어도 병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 몸에 갖추어진 양대 방어 능력 덕분이다.
두 가지 방어 능력 가운데, 먼저 백혈구 방어를 우선으로 꼽을 수 있다. 백혈구는 혈액 1㎕(마이크로리터) 중 5천 개 정도 존재하고, 과잉 세균류나 음식물 조각을 탐식 능력(phagocytosis)으로 처리하고 있다. 백혈구의 기본인 매크로파지(혈액 속에서는 ‘단구’라고 부른다)와 여기에서 파생한 과립구(그중 90%는 호중구)가 이 탐식 능력에 관여한다.
또 한 가지 방어는 강력한 세균 증식 저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혈청 자체가 담당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보체(補體)와 면역글로불린(immunoglobulin)이다. 보체는 항원과 항체의 복합체나 병원 미생물에 결합하면 활성화되는데, 항체 활동을 돕고 용혈·용균 작용을 담당한다. 보체의 경우 열(56℃, 30분)에 의해 활성을 잃게 되지만, 면역글로불린은 가열 처리에도 꿋꿋하게 견뎌낼 수 있다.
내가 연구실에서 세균 배양 실험을 한창 하고 있을 때, 세균 배양액 속에 혈청을 단 1%만 주입해도 수많은 세균들의 증식이 억제되었다. 이는 혈액 속에 침입한 세균이 더 이상의 증식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순환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