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을 펼쳐 봅니다. 아마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접수하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산업혁명의 역사를 공부해 봅니다.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전기의 생산을 기반으로 대량생산 시스템이 구축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전자회로와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산업의 자동화가 이루어지는 3차 산업혁명. 벌써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기본적으로는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다만, 산술급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각 분야에서의 발전이 ‘융합’되고 ‘연결’되면서 그 속도와 변화의 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프리 리킨스가 처음 사용한 ‘3차 산업혁명’이 이슈로 등장한 것이 그다지 멀지 않은 2011년이었는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이후 5년만인 작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등장했습니다. 이제 놀라운 발전을 시작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혹은 증강현실 등의 디지털 연결 및 표시기술 등이 대표적인 산업의 예입니다.
안과의사들에게는 사실 이런 단어들은 낯설게 느낍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21세기 대한민국 안과 진료의 많은 부분에서 이미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입니다. 우리나라의 안과학과 임상기술의 발전은 전세계에서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전 조직학적으로만 관찰이 가능했던 눈 안의 여러 구조물들은 ‘눈CT’ 등 영상 장비의 발전으로 이미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손상까지 찾아내고 있습니다. 녹내장 분야에서는 환자의 데이터를 이미 저장되어 있는 정상인의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질병의 진행 속도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미래의 변화까지 예측합니다. 백내장 수술을 할 때에는 환자의 눈의 특성을 계측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전송하면 눈에 꼭 맞는 개별화된 인공수정체를 만들어 2주 내에 보내 주기도 합니다. 수술이 진행되어야 하는 경로는 컴퓨터가 수술하는 의사의 눈에 가상현실을 만들어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시력교정 수술을 할 때는 수술장비에 내장된 레이저가 수술 전 입력된 값에 따라 수술의 일부 과정을 직접 진행하게 된 지는 오래입니다.
병의 발생 원인에 대한 지식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압이 녹내장의 발생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혈압, 자가조절 기능, 눈 주위 조직의 세포학적 특성 등 매우 다양한 원인들이 관여하는 복합질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과서만 읽고 있으면 구닥다리 의사가 되는 세상이 왔습니다.
최근에는 알파고가 커제 9단을 꺾은 이후 다음 도전자로 의료 분야를 삼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세상 어떤 의사보다도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은 잘 내리게 되겠지요. 그러나 괴물 같은 실력을 갖춘 알파고도 지식과 환자를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미국의 유명 IT 전문지 와이어드는 "인간과 AI의 대결은 관심을 끌 대목이 이젠 거의 없다. 솔직히 인간이 AI와 어떻게 잘 협업하는지를 보는 게 흥밋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계가 많은 것을 도와 주니 예전보다 직접 몸을 쓰면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암 진단 및 치료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IBM왓슨을 국내에서도 여러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과의사들은 질환에 압도되어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따뜻한 위로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들에게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첨단의료의 수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안과의사는 여전히 환자들과 대화해야 하고, 환자들의 아픔을 빅데이터 속에 파묻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감성을 가지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5차, 6차 산업 혁명의 시대를 만들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 때도 한 인간으로서 안과의사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알파고, 덤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