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헬스조선 편집장 김공필2016/05/01 09:00
전문칼럼글 이성렬(담소유병원 원장)2016/04/26 10:56
전문칼럼글 문국진 박사2016/04/24 09:00
전문칼럼글 김용찬(강북연세사랑병원 원장)2016/04/20 09:30
전문칼럼글 신현종(제네신의학연구소 소장) 2016/04/17 09:00
전문칼럼한양대구리병원 소화기내과 한동수 교수(대한장연구학회 회장)2016/04/08 09:27
전문칼럼글 안지현(KMI 한국의학연구소 의학박사)2016/04/03 09:30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슈퍼푸드’를 검색하면 ‘<타임>지가 2002년 선정한 세계 10대 슈퍼푸드…’ 유의 문장이 넘쳐 납니다. 이런저런 블로그나 카페부터 유명한 신문까지 이문장을 경전 구절인 양 한 치의 의심 없이 되풀이합니다.
소비자 또한 한 치의 의심 없이 이를 단어 그대로 받아들 입니다. 세계적인 시사잡지 <타임>이 선정했다니 굳이 의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타임>은 2002년에 ‘슈퍼푸드(Super Food)’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타임> 2002년 1월 21일자의 해당 기사를 살펴볼까요? 기사의 제목은 ‘10 Foods ThatPack a Wallop’입니다. ‘강력한 효과 내는 10가지 식품’쯤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6쪽 분량(표지에도 내세우지 않은)인 이 기사는 토마토, 시금치, 레드와인, 견과류, 브로콜리, 귀리, 연어, 마늘, 녹차, 블루베리의 뛰어난 효능을 차분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슈퍼푸드’라는 단어는 2004년 미국의 유명한 영양학자 스티븐 프랫이 책 《난 슈퍼푸드를 먹는다》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강력한 효과 내는 식품’이 ‘슈퍼푸드’로 번역되어 14년간 사용된 이면에는 식품회사의마케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블루베리 관련 업체는 ‘<타임> 선정 슈퍼푸드인 블루베리…’를 내세우고, 브로콜리 관련 업체는 ‘<타임> 선정 슈퍼푸드인 브로콜리…’를 집요하게 홍보한 것이지요. 여기에다 보통 식품을 ‘초월’하는 성분의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소비자의 욕망이 합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미가 비슷하다면 단어를 바꿔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슈퍼푸드가 우리 식탁에 미친 영향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타임>이 ‘슈퍼(Super)’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10가지 슈퍼푸드가 추앙받으면서 다른 수많은 좋은 식품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아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식탁의 왜곡은 곧 건강의 왜곡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슈퍼푸드가 어디 10가지뿐이겠습니까. 이 봄엔 봄나물이 슈퍼푸드입니다. <헬스조선>은 다음호(5월호)에 ‘보통 음식이 슈퍼푸드다’라는 주제로 특집기사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꽃이 가득한 4월, 꽃처럼 아름다운 한 달 되시길 기원합니다.
/헬스조선 편집장 김공필
전문칼럼헬스조선 편집장 김공필2016/04/01 13:16
전문칼럼글 서민희(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금속공예작가)2016/03/27 09:30
전문칼럼글 정재훈(약사)2016/03/25 16:02
고도비만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다. 가수 신해철을 비롯해 최근에는 외국인까지 비만수술 후 사망하고, 보건복지부가 이들을 수술했던 의사에게 수술 중단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비만수술은 '사람을 죽이는 수술'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이미지 때문에 수술 밖에 해결책이 없는 고도비만 환자들까지 수술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고도비만 환자는 '먹는 것 하나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사람' '저 정도가 될 때까지 뭘 했나' 같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외모에 자신감이 없으니 외출을 꺼리고 학교나 직장 같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단순히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고도비만은 고혈압,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지방간, 관절염 같은 합병증의 위험이 커지는 '질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비만이 단순히 '비만이 심한 상태'라는 사회학적인 의미로만 통용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비만수술은 단순히 살을 빼는 수술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살이 빠져 보이는 것일 뿐 비만수술의 근본적인 목적은 합병증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체질량지수(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40 이상이거나 35~40이면서 비만 관련 심장질환,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같은 동반 질환 중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시행해야 한다. 이에 해당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외모만을 위한 비만수술은 과잉수술이다.또 비만수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정적인 수술이 절대 아니다. 이미 개발된지 60년이 지났고,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밝혀졌다. 또 2000년대 들어 복강경이 비만수술에 적용되면서 더욱 안전해졌고 위의 일부만 남겨두고 절제하거나, 위의 입구를 밴드로 묶어 크기를 줄이는 등 다양한 수술법이 개발되면서 환자의 특성에 따라 최적의 수술법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다. 외국에서는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가장 기여한 치료법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약 50만명이 비만수술을 받고 있다. 정부도 2018년부터는 고도비만 환자에 대한 비만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의료사고를 침소봉대해서도 안되지만 성급한 일반화로 효과적인 치료법이 사장돼서도 안 될 것이다.
전문칼럼허윤석 인하대병원 비만센터 교수· 대한비만대사외과학회 회장2016/03/23 09:00
음양사상과 도교의 논리에 기반한 축첩문화젊은 여성들이 돈 때문에 첩이 되는 ‘얼나이(두 번째 가슴이라는 뜻으로 첩을 말함)’ 문화의 확산으로 중국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륜을 막아주는 ‘내연녀 퇴치 전문가’까지 등장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기혼자와 ‘특수관계’를 맺어 가정을 파탄 내는 학생들을 제적시키는 등 엄벌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얼나이들은 당당하게 자신을 ‘커밍아웃’ 하고 있으며, 얼나이들끼리의 모임까지 생겨났다.‘첩 문화’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과거에는 축첩이 빈번해 ‘붉은 건 대추, 대추는 달다. 달면 엿이요, 엿은 붙는다. 붙으면 첩이다’라는 민요까지 불려졌다. 율곡 이이를 가르치기도 한 조선초기의 석학 어숙번조차 《패관잡기》에서 우리나라의 운수가 남자 셋에 여자 여덟의 비율인 ‘천삼지팔(天三地八)’이기 때문에 한 남자가 두세 명의 여자를 거느리고 살아야만 조화가 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어숙번의 논리는 음양사상에서 기인한다. 양(陽)인 남자는 홀수이기에 한 명, 음(陰)인 여자는 짝수이기에 둘이 만나 함께 살아야 기(氣)를 얻어 평안하고, 법치국가가 된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중국의 천자는 왕후 1명, 부인 3명, 빈 9명, 세부 27명, 어첩 71명 등 111명을 두었고, 제후는 아홉, 경대부는 셋, 선비는 둘을 취하는 것이 법도(?)였다. 또한 성(性)을 통한 건강법을 지향한 도교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도교는 ‘한 남자가 하룻밤에 열 명의 여자와 동침하며 기를 취하면 불로장생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별실’이나 ‘측실’로 불린 첩은 운명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되는데, 남편의 권세를 업은 경우 권첩(權妾)이라 했다. 영의정 김재근의 첩은 나주의 기생 출신으로 베갯머리 송사로 남편을 쥐고 흔들었기에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래서 나주와 대신의 존칭인 합하를 합쳐 ‘나합(羅閤)’이란 별명으로 통했다. 이와 반대로 남편의 벼슬을 위해 몸을 파는 경우에는 ‘절첩(節妾)’이라고 불렀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금의환향하는 길에 얻는 ‘객첩(客妾)’도 있었다. 등과의 영예를 나누어 갖고 싶은 집주인이 급제자에게 자신의 딸을 수청 들게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첩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바로 ‘습첩(拾妾)’이다. 소박맞은 여성들이 친정에서도 눈치가 보이면 새벽녘에 머리 풀고 봇짐을 들고 성황당 밖에 서 있다가 처음 만나는 남자를 따라가는 풍속에서 비롯되었다. 습첩만큼 비참한 것은 ‘헌첩(獻妾)’이다. 송사가 걸렸거나 죄를 지어 형을 받았을 때, 형을 면해 달라고 관원에게 딸을 첩으로 바친 것이다. 첩 문화가 뿌리 깊었던 중국에서는 시집갈 때 여동생이나 조카를 잉첩(媵妾, 시녀)으로 데려가는 풍습도 있었다. 심하면 10여 명의 잉첩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에 남편보다 골품이 낮은 부인을 잉첩이라 했으며, 조선시대 때는 세자비의 간택 때 함께 뽑은 세자의 후궁을 잉첩이라 했다. 또한 고대에는 아내가 죽었을 때 부득이하게 얻는 후처를 잉첩이라고 했다. 사랑 쟁탈전으로 발달한 화장술과 패션누구나 첩을 두면서 정부인과 여러 명의 첩이 벌인 사랑 쟁탈전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서양에서는 화장술과 패션의 발달을 가져왔고, 동양에서는 무술(巫術)의 번성으로 나타났다. 위로는 만백성의 어머니인 왕비에서 비천한 여종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궁중에서는 최음제를 주로 사용했다. 후각을 미혹(迷惑)시키는 사향주머니는 상시 패용하는 최음용 방향제였다. 갖가지 비방으로 만든 최음제를 몸에 좋은 정력제라고 속여 임금이 처소를 찾으면 마시게 했다. 최음제를 마신 임금은 유별난 성행위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임금이 자주 찾아 배태할 가능성이 높기에 사용했다. 민간에서 널리 쓰인 것은 무술로 《혼인술비법(婚人術秘法)》이란 책에 여러 방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남편의 엄지손톱을 태워 재를 내어 술에 타 마시고, 맨발을 남편의 배꼽에 놓고 쓸어주면 남편의 사랑을 얻게 된다’고 쓰여 있다. 이밖에 부부간 금슬을 높여준다는 ‘화합주(和合酒)’, 짝사랑하는 여성을 위한 ‘엽가신부적(獵哥神附符籍)’과 같은 부적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처첩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첩이 낳은 서얼들의 불행으로 ‘세상살이 첩살이처럼 곤고한 것이 없다’는 속담을 만들어냈다. 젊고 싱싱한 몸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을 때는 정실부인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지만 이내 나이가 들어 늙거나 사내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면 내쳐지는 신세가 되었으며, 시시때때로 본처의 학대를 감내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장대굿’이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첩을 시기한 본처가 남몰래 집에 불을 지르고 도깨비불이 첩의 몸에 들어갔다며 무당을 불러 굿을 벌인다. 이때 무당은 첩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장대로 사타구니와 하복부를 매질했다. 한편 ‘공자님도 첩을 두었다’며 축첩을 당연시하던 조선사회에도 애처가들이 적지 않았는데, 정조 때 학자 심노숭이 대표적이다. 그가 아내를 잃은 ‘고분지통(鼓盆之痛)’의 슬픔 속에 남긴 작품 중 ‘오늘 우연히 제수씨가 차려준 상위에 / 부드러운 쑥이 놓여 있기에 문득 목이 메이네. / 그때 나를 위해 쑥 캐주던 이 / 그 얼굴 위로 흙이 도톰히 덮이고 거기 쑥이 돋아났다네’라는 시가 있다.줄곧 포의(布衣)로 지내다가 50대 중반에야 천안군수 등을 역임한 그는 아내를 애도하는 작품을 쏟아냈다. 그가 성취한 산문 중에서 뛰어난 것이 바로 이때 남긴 ‘도망문(悼亡文)’들이다. 그는 무려 26제의 시와 23편의 글을 남겨 아내를 애도했는데, 우리 문학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축첩이 부와 권력의 상징 되기도서양 역시 축첩 문화가 보편적이었는데, 몽테뉴가 쓴 《수상록》에는 ‘남자들은 한 명 이상의 부인을 거느리는데, 부인의 수는 남자들의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부인들은 남편이 다른 여자의 애정과 우정을 받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는데, 정말 특이한 일이다. 이는 남편의 매력이 명성을 대변해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근세까지 남성의 축첩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아내와 후처들이 남편의 외도를 적극 권장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여성에게 유혹을 받는 정도가 남편의 능력과 명성이기 때문이었다. 축첩은 종교계로도 번졌는데, 13세기 탁발수도회는 ‘수녀가 순결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몸이 타오르면 속인에게 몸을 맡기는 것보다 성직자에게 정조를 허락하는 것이 훨씬 죄가 가볍다’며 음란을 부추겼다. 이런 연유로 15세기의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성직자에게 축첩세를 거둘 정도였다. 축첩이 가장 발달한 곳은 이슬람문화권이다. 마호메트가 《코란》에서 계시한 내용에는 일부다처제에 대한 가르침이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데, 그 원칙은 종족 번영이었다. 그래서 본처를 4명까지 두는 것이 허용되었고 ‘오른 손의 소유가 되는 것(여자 노예나 이교도의 미망인)’은 몇 명이라도 무관했다. 그러나 본처 4명에게는 반드시 균등하게 재산을 나누어주어야 했으며, ‘아내들에게는 공평하게 접하며 그중 한 사람이라도 공중에 매달아놓듯이 버려두면 안 된다’는 가르침에 충실했다. 축첩의 역사를 교훈 삼아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주는 행복과 편안함을 다시금 일깨워야 할 것이다.
전문칼럼/글 김재영(강남퍼스트비뇨기과 원장)2016/03/19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