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과 부르고뉴 와인

입력 2016.03.27 09:30

명화 속 와인 이야기

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그림 속의 곡선 어깨의 병은 부르고뉴 와인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카드놀이는 종종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습니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카드놀이를 즐기는 위의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이하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 1895)>입니다.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2011년 카타르 왕실이 이전 경매의 낙찰금액보다 2배 이상의 금액인 2억5000만달러에 구매하면서 당시 가장 비싼 그림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미술계를 술렁이게 만듭니다. 영국 <미술신문(The Art Newspaper)>에서는 카타르 왕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수집가라고 발표했습니다. 최근 미술계에서는 카타르 왕실을, 15~16세기 금융업으로 재력을 쌓아 예술에 후원하여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메디치 가문에 비유합니다.

카타르는 ‘국가개발계획 2030’의 일부로 예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현재 골동품과 서양 미술뿐만 아니라 중동과 북아프리카 예술품까지 다양하게 수집하고 있습니다. 카타르 왕실이 상식 이상의 고가를 지불하면서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구입한 배경에는, 2030년 완공 예정인 예술관이 세계 최고의 미술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의지가 깔려 있어 보입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총 5점의 시리즈가 존재하는데, 카타르 왕실이 구매한 그림 외의 나머지 4점은 오르세미술관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 그리고 미국의 반스재단이 각각 소유하고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카드놀이하는 두 남자 옆에 유리병이 놓여 있습니다. 목에서 바디까지 곡선을 이루는 병의 모양으로 이 와인이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의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에서 주로 재배되는 레드 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는 변이가 쉬워 재배되는 지역의 테루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 품종의 고향인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와인은 매우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는 맑은 색과 함께 붉은색 계통의 과실 풍미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며, 동물성과 식물성 그리고 감칠맛의 풍미를 가집니다. 피노 누아로 장기 숙성의 이득을 보는 와인이 만들어진다면 부르고뉴 남쪽의 보졸레(Beaujolais) 지역에서 역시 같은 모양의 병에 가메(Gamay) 품종으로 산딸기와 체리 등의 과실 향이 풍부해 어릴 때 마시기 좋은 와인이 생산됩니다. 이번 호에는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보졸레 가메 와인을 한 병씩 소개하겠습니다.

 

도멘 피에르 라베, 부르고뉴 피노 누아 비에이 빈느
도멘 피에르 라베, 부르고뉴 피노 누아 비에이 빈느

도멘 피에르 라베, 부르고뉴 피노 누아 비에이 빈느
15세기부터 와인 양조를 해오던 라베(Labet)와 데슐렛트(Dechelette) 가문은 ‘황금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코트 도르(Cote d’Or) 안의 북쪽 지역인 코트 드 뉘(Cote de Nuits)의 최상급 포도밭에서 함께 와인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1890년 이들은 클로 드 부죠(Closde Vougeot) 그랑 크뤼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의 라벨에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의 이름을 딴 샤토 드 라 투르(Chateau de La Tour)를 붙여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외에 이들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와인들은 도멘 피에르 라베(Domaine Pierre Labet) 라벨로, 매입한 포도로 만든 와인들은 도멘 프랑수와 라베(DomaineFrançois Labet)의 라벨로 생산합니다.

도멘 피에르 라베, 부르고뉴 피노 누아 비에이 빈느(Domaine Pierre Labet, Bourgogne Pinot Noir Vieilles Vignes)는 50년 이상 된 오래된 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입니다. 글라스 안에서 여릿여릿한 루비색으로 피노 누아 품종임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후각으로 야생 산딸기과 흙내음, 가죽으로 시작하여 설탕에 졸인 듯한 붉은색 과실의 풍미로 이어집니다. 입안에서 다소 가벼운 바디감으로 부드러운 탄닌과 산도가 좋은 밸런스를 가지며, 필터링을 거치지 않아 붉은색 과실이 풍부하게 입안 가득 머무릅니다.

 

샤토 데 자크, 물랭 아방
샤토 데 자크, 물랭 아방

루이 자도, 샤토 데 자크, 물랭 아방 2011
보졸레 지역은, 햇포도로 만들어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출시되는 누보(Nouveau)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보졸레에는 크뤼 포도밭10개가 존재하며 이곳에서 고품질의 와인이 생산됩니다. 크뤼 포도밭 중 특히 ‘보졸레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물레아방(Moulin a Vent) 포도밭에서는 강렬하고 바디가 무거운 것이 특징인 와인이 생산됩니다.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네고시앙인 루이 자도는 1996년 보졸레 지역의 ‘샤토 데 자크’를 매입합니다. 보졸레 르네상스의 선구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샤토 데 자크’는 토양과 포도나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며 포도밭을 관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루이 자도, 샤토 데 자크, 물랭 아방 (Louis Jadot, Chateau des Jacques, Moulin a Vent) 2011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 비해 다소 짙은 색을 지녔습니다. 후각으로 붉은색 베리류의 섬세한 풍미로 시작되어 가죽과 흙내음이 가볍게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입안에서 산도와 탄닌이 훌륭한 밸런스를 보여주며, 딸기와 체리의 과실 풍미와 함께 흙내음이 조화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바나나와 바닐라의 풍미가 더해지며 풍요로워집니다. 보졸레 지역의 와인이지만 장기 숙성이 기대됩니다.

 

서민희 작가
서민희 작가

서민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문화정보디자인학과 강사 겸 금속공예작가로 개인전을 5회 개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금속공예와 주얼리를 전공했고, 템플대학교에서 CAD-CAM 학위를 받았다. 영국 와인전문교육기관 WSET를 수료한 와인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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