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중국과의 결승전 도중 작전지시를 하는 김호철 감독. 바로 왼쪽이 이경수, 오른쪽이 신진식
이다./채승우기자 rainman@chosun.com
카타르와의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준결승전이 열린 14일 오전(한국시각). 김호철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경기 2시간 전에 알라얀 체육관에 나와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몸을 푸는 동안 그는 관중석에 앉아 바레인과 이란의 5~8위 순위결정전을 보느라 기자가 옆에 앉는 것도 몰랐다.
“이제 한·중·일 시대는 갔어요. 사우디아라비아가 8강에서 일본을 꺾고 준결승에서 중국과 풀세트까지 간 것 보세요. 중동팀도 무시 못할 실력이 됐어요.” 카타르에게 질까봐 미리 엄살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날 한국은 카타르에게 세트스코어 3대1(2527, 2521, 2522, 2516)로 역전승했다. 김감독의 말처럼 카타르는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김감독은 2시간 뒤면 시작될 준결승 이야기보다 한국 배구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았다. 그의 현실 진단은 냉정했다. “우리가 금메달을 따야 하고, 딸 수도 있겠지만 실력이 아시아 최강이라고는 장담 못합니다.” 8강전에서 태국에 지는 바람에 대회 사상 처음으로 메달 획득에 실패한 여자팀(5위)을 포함해 체계적인 장기 플랜을 세우지 않으면 아시아 2류 팀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15일 중국을 꺾고 금메달 꿈을 이룬 뒤 인터뷰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금과 같은 체제로는 아시아 최고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감독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6년 구상’ 마련을 대한배구협회에 제안하겠다고 했다. 2008올림픽, 2010아시안게임, 2012올림픽까지 내다보고 치밀하고 구체적인 마스터 플랜을 세우자는 것이다.
고교 선수까지 포함해 20~24명의 국가대표 풀(pool)을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 국내 대회가 없을 때마다 번갈아 소집훈련을 시켜 국제대회에도 참가시켜야 고교·대학 유망주들의 수비, 서브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카타르전 2세트에 신진식 대신 투입돼 14점을 올리며 역전승의 계기를 마련한 문성민(20·경기대)이 대표적인 사례. 김감독은 대학 최고 스타인 그를 농담을 섞어 ‘반쪽 선수’라고 불렀다. 고교·대학에서 공격만 했기 때문에 서브리시브, 수비 능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대표팀 와서 서브 리시브, 수비 훈련을 따로 받아야 할 정도니 문제가 있어도 한참 문제가 있지요?”
그는 대표팀 전임감독을 두기 어렵다면 전임 코치라도 선임하자고 주장할 생각이다. 누가 감독이 되는 내년 월드리그, 아시아선수권, 월드컵대회는 세대교체 멤버를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프로팀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감독은 “배구는 국제대회 성적이 나쁘면 국내 프로리그도 함께 죽을 수 밖에 없는 종목”이라고 했다. 한국배구연맹과 대한배구협회가 따로 놀아선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도하=홍헌표기자 bowler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