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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병원에 계신 교수님을 ‘명의’라고 하는데, 때로는 명의가 동네의사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치질수술은 일반외과 대장항문 전문의가 담당합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 전문 교수가 최고의 치질 의사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매일 대하는 환자는 대장암 환자이지 치질환자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역임하신 서울대병원 박재갑 교수 같은 분은 치질환자가 오면 제자들이 개원한 병원으로 환자를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박재갑 교수 같은 분이 1년에 치질수술을 몇 건이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 건도 안 하는지도 모르죠. 대장암을 수술하기에도 스케쥴이 밀려 있는데, 한가하게 치질 환자나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면 서울대병원에 찾아오는 치질환자는 박 교수 밑에 있는 펠로우(전임의)나 레지던트가 수술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수술이란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일종의 손 기술입니다. 예를 든 박 교수의 손은 대장암 수술에 익숙해 져 있고, 동네 치질전문병원 의사의 손은 치질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박교수보단 그 밑에 있는 펠로우나 레지던트가, 그들보단 동네 치질전문 의사가 더 치질 수술을 잘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서울대병원 명의에게서 꼭 치질수술을 받고 싶다"며 ‘빽’을 쓰는 사람을 여러 번 봤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맹장염-탈장-축농증-·중이염 수술이나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위염-간염-결핵 같은 내과계 질환의 치료도 마찬가지 이유로 굳이 명의나 큰 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가깝고 친절한 동네병원 제쳐 두고 굳이 없는 시간 내서 먼 길 찾아가서 몇 시간씩 기다렸다 3분 만에 쫓겨나는 고생을 사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치료비도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고 가정합시다.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선 단순 복통에서부터 맹장염, 소화기계 암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 복통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도, 혈액검사에서부터 X선 검사, 복부초음파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 몸을 샅샅이 훑지 않고는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게 그들의 생리입니다. 1%의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동네병원에서 몇 천원에 끝날 일이 대학병원에선 몇 십 만원이 되는 예가 흔하게 있습니다.
병원 또는 의사를 선택할 때는 그 병원(또는 의사)이 그 병을 얼마나 전문적으로 치료하는지, 환자 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것은 아닌지, 장비는 얼마나 최신 기종인지, 환자에게 친절한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요즘은 병원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환자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적절한 병원과 의사를 고를 수 있습니다. 특정 신문이나 잡지 등에 개인병원(특히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의사가 등장하는 일이 잦은데, ‘기사형식의 광고’인 경우가 많다는 점도 알아두시는 게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의료건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