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실험 제한하는 '뉘른베르크 강령'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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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겔레는 성공한 사업가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톨릭 신자로 성장한 인물이었다. 지능이 평균 이상이기는 했지만 노력형의 모범생이었던 요제프는 젊어서부터 의과대학 교수로 출세하려는 야망을 품었다.
오직 성공을 위해 나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그는 학문적으로도 당시의 정치적 흐름에 맞는 연구방향을 택했다. 그의 박사논문은 ‘인종에 따른 턱의 구조 차이’였다. 그는 교수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 역시 교수가 되기 위한 포석이었다.
군의관이 된 멩겔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약 40만 명의 죽음에 관여해 ‘죽음의 천사’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수용소에서 자행된 그의 의학실험은 엽기적이었다. 도망치다 붙잡힌 유태인 소년 300명을 큰 구덩이 속에 넣고 불태워 죽였을 정도로 비정했던 그는 일란성 쌍생아를 사용한 연구에 특히 열중했다. 유전적 성질이 동일한 인간끼리 비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도 푸른 눈동자를 만든다며 파란색 물감을 눈에 주사하거나, 사람들의 피를 서로 바꿔 넣기도 했으며, 심지어 샴 쌍둥이를 만들기 위해 외과적으로 등을 접합시키기까지 했다. 물론 실험의 대상이 됐던 유태인들은 실험 뒤 모두 죽임을 당했다.
멩겔레는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던 유태인들을 의학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러시아군이 아우슈비츠에 진입하기 직전에 피신하여 34년 동안이나 추적자들을 교묘하게 따돌린 멩겔레는 1979년 브라질의 바다에서 수영 도중 뇌졸중 발작으로 익사했다. 그의 신원은 1992년에 미국, 독일, 남미 각국이 공동으로 시행한 DNA 검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전후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에 회부된 독일 의사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이들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포로를 사용한 인체실험의 윤리적 원칙들을 제시했다.
후일 ‘뉘른베르크 강령’이라고 불리게 된 이 원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떠한 실험도 ‘피실험자들이 각자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참여 여부에 동의할 때에만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이재담·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