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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학에 처음으로 0(제로)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새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던 이 왕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아서 번번이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의문이 생길 때마다 실험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애썼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다음과 같은 일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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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원초적인 언어를 찾기 위한 논쟁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언어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던 왕과 신하들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을 원초적 언어 후보에 올리고 내기를 하기로 했다. 이 때에도 왕은 단순하고 기묘한 실험을 생각해냈다.
갓난아기들을 징집하여 각각 독방에서 인간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는 상태로 키워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이긴 사람은 없었다. 살아남은 아기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 백 년 전의 이 무참한 실험은 현대의 정신의학자들이 ‘모성결핍증후군’이라는 병을 설명할 때에 가끔 인용된다.
그러나 이렇게 의학실험을 즐기던 프레데릭 2세는 의학적 업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초의 의료법을 제정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살레르노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의사가 약사를 겸하는 것을 금지하고 다양한 치료법과 처방약의 가격을 정해놓은 일종의 의약분업제도였다.
당시의 돌팔이 의사들이 멀쩡한 사람에게 애매한 병명을 붙인 다음, 아무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몸에 해롭기까지 한 약물들을 비싼 값에 마구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 법은 이후 유럽사회의 약제 업무를 규정하는 모범으로 받아들여져 그 전통이 오늘에까지 계승되고 있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