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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 없던 시절…

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이재담 교수

한 번의 수술로 3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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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담교수의 이야기 의학사, 마취제
마취도 항생제도 없던 19세기 초에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통보가 요즘의 암에 걸렸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시절이었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수술을 하기 전에 의사와 장례 절차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복부나 흉부를 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고, 아무리 간단한 수술도 수일 후에 패혈증(敗血症)으로 사망하기 일쑤였다. 수술할 것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환자도 드물지 않았다.

수술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사지(四肢) 절단술이었다. 마취를 하지 않은 채 팔이나 다리를 끊어내야 하므로 수술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1812년 프랑스의 군의(軍醫) 라레는 전쟁터에서 24시간 동안 200건의 사지를 절단하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영국에서는 1824년에 쿠퍼라는 의사가 대퇴부의 관절, 즉 고관절 부위 하지 절단술을 20분에 끝냈다고 하는데, 10년 후에 사임이라는 의사는 같은 수술을 1분30초에 끝내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1840년대에는 영국의 로버트 리스턴이 세계에서 제일 수술을 잘하는 의사였다. 그의 수술에는 많은 구경꾼들이 몰렸다. 박사는 항상 “여러분, 시간을 재봅시다”라는 말을 신호로 수술을 시작했다. 환자가 아파할 겨를도 없이, 번개처럼 칼을 휘두르는 그의 수술은, 보는 이들의 눈이 어지러운 정도로 현란한 것이었다. 그는 빠른 수술을 위해 양손을 썼으며, 그 동안에는 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이렇게 분초를 다투며 서두르는 수술은 때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어느 날 리스턴은 약 2분30초 만에 한 환자의 다리를 절단했다. 그런데 수술하는 동안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었던 한 명의 조수가 박사의 칼에 손을 베었다. 환자와 이 조수는 상처부위가 곪아 며칠 후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또 한 명, 견학 중이던 어느 의사는 박사가 휘두르는 칼에 음부를 찔려 그 자리에서 쇼크로 죽었다. 한 번의 수술로 세 명이 죽은, 수술 사망률 300%를 기록한 전설적인 수술이었다.

리스턴은 184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발명된 마취를 처음으로 유럽에 도입한 외과 의사이기도 했다. 첫 마취수술을 끝내고 그는 “이 양키들의 수법은 최면술보다 훨씬 나은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취법은 의사들이 수술 시간에 신경을 덜 써도 되도록 만들어 주었고, 점차 정확하고 정밀한 수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새로운 외과의 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수술의 속도만을 중시하던 리스턴과 같은 구시대의 명의들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 의학사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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