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이 출산인데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은 아내가 8월초에 당뇨식용 식품 교환표 라는 것을 받아(배워?) 와서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음식들을 곡류, 어육류군, 채소군, 지방군, 우유군, 과일군으로 나누고, 각 군에 속하는 음식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정한 단위라고 합니다. 닭고기는 40g이 한 단위, 낙지는 100g 이 한 단위, 한끼에 두 단위는 어육류 군에서 먹어야 하고 곡류군에서는 어쩌구 저쩌구…
열심히 공부해서 열심히 먹는데, 혈당은 안 떨어집니다. 조산 진통 때문에 운동을 못하니 상태는 더 안 좋구요….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아내는 아무래도 분량에 대한 감도 없는 것 같고, 한국식 반찬 만들기에 익숙하신 장모님이 차려주는 식사는 밥이 많고 단백질 함량이 너무 낮은 모양입니다.
혈당이 안 떨어져 울상인 아내를 위해 “속는 셈 치고 몇 끼만 내가 만들어 주는 것을 먹어 보자. 그러고도 안 떨어지면 입원해서 인슐린 주사 맞자. OK?”
저는 총각 때부터 20년 정도 음식을 만들어 먹어 왔습니다. 주로 술 안주지만… 고 단백식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술안주가 보통 고 단백식이니까…
저도 사업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후닥닥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진공조리네 저온조리네 뭐네 하면서 스테이크 집들이 너무 예쁘게 음식 만들어 굉장히 비싸게 받으며 팔고 있죠. 먹어보면 정말로 맛있습니다! 날 고기 같지만 날고기보다 훨씬 부드럽고, 익은 고기보다 훨씬 맛있죠.
이런 요리의 핵심은 온도와 압력(진공) 조절인데요. 대부분의 단백질은 섭씨 70도를 넘으면 본래의 구조를 잃으면서 맛과 색을 잃는데, 이정도 온도가 아니면 기생충과 세균이 죽지 않죠. 그래서 진공/저온 조리법에서는 공기를 차단하고 육즙이 빠지지 않게 압력을 가하면서60~80도로 장기 조리해 고기 본래의 빛과 맛을 살리면서 기생충과 세균을 죽입니다. 수비드라고 합니다. Sous Vide. Without Air 라는 뜻의 불어입니다. 이걸 하자면 진공포장기와 온도 조절 조리기가 필요하죠.
집에서도 비슷하게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량으로 할 수 있죠. 손님 불러 스테이크 대접하자면 프라이팬이나 오븐이 한번에 4인분 정도밖에 못 감당해 문제인데, 진공저온조리에선 10인분이라도 단숨에 할 수 있습니다. 미디움이나 레어를 즐기시는 스테이크 팬이라면 어떤 스테이크에 못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고기를 준비합니다. 오늘 동네 정육점에서 산 안심 스테이크 거리 (150g). 거기에 소금과 후추를 가볍게 뿌려둡니다.
고기에 소금기가 배는 사이, 위생비닐과 빨대를 준비합니다.
비닐에 고기 넣고 비닐 입구에 빨대를 넣은 후 (고기에 가깝게) 공기를 빨아내죠.(피 안 먹게 조심... 조금 먹어도 됩니다. 위장약 먹고 있는 상태만 아니면)
그럼 이렇게 됩니다. 비닐이 고기에 착 달라 붙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주의하면서 (조금은 들어 갑니다만…) 비닐 입구를 묶어 줍니다. 이대로 가열되는 것이죠! 이 상태 그대로 밥을 보온중인 밥솥에 투입. (저희 집은 맞벌이라 3일치 밥을 한번에 지어두고 보온해 먹습니다)
아니 이게 뭔 소림? 그래도 되나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네요.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환경 호르몬 용출 온도는 60도부터이지만 80도까지의 용출량은 무시해도 될 정도입니다. 보온 밥솥의 보온 온도는 74도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구요. (정 신경 쓰이면 접시 하나 밥솥 안에 넣고 그 위에 그냥 고기를 얹은 후 뚜껑 덮어두면 됩니다. 대신 10분쯤 더 기다려야겠지만...)
좌우간 그렇게 20~30분 기다립니다. (여러 장이면 장당 5분 정도씩 고기 순서를 위 아래로 바꾸며 더 기다려 줍니다. ) 냉동육을 넣었으면 10분 더 기다리시구요. 대충 아래처럼 시뻘건 핏물이 아니라 적갈색 육수가 흥건할 때 꺼내면 됩니다. 5~10분 간격으로 열어보고 판단합니다.
이게 완성된 진공 저온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잘라보죠.
잘 되었습니다. 겉은 브라운색, 속은 멋진 분홍색이군요. 핏물 색도 나지 않고 따끈하게 속까지 익었습니다. 육즙이 그득합니다.
한 점 찍어 입으로 가져 갑니다.
진공조리? 저온조리? 스테이크 하나에 10만원씩 받는 호텔요리사만큼 예쁘게, 멋지게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맛 만은 기막히게 할 수 있습니다. 동네 정육점에서 국내산 육우 안심 한근 사니까 2만원. 4조각 나왔으니까 1인분 5000원입니다. 스테이크 팬들은 와인과 맞춰가며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아내는 레어를 싫어해서 20분 더 뒀다가 완전히 익혀 먹었습니다. 여기에 밥 반의 반 공기와 시금치 샐러드, 약간의 소스를 뿌려 먹었죠. 식후 2시간 혈당 120! 혈당 측정 시작한지 5일만에 처음으로 기준 혈당 이내로 잡혔습니다.
몇단위? 전 계산 통계학과 박사까지 받아서 계산이 업인데도 그 단위 계산 못 외우고 못 맞추겠던데요… 그냥 탄수화물은 밥 반 공기 이하로 맞춰 먹고, 고기는 끼니마다 100~200g 씩 먹으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먹힌 것 같네요.
이제 내일부터 약 100일, 아침 저녁으로 200끼 정도를 이렇게 해 먹이면 됩니다. 중간까지 적당히 해 먹이면, 아내도 자기가 어떻게 해 먹으면 될지 알게 되겠지요.
아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서…(고기를 싫어하고 대부분의 야채를 먹지 않는데다, 두 끼 연속 같은 반찬을 먹지 않습니다) 창의력에 도전하는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권대석 ㈜클루닉스 대표이사 hyntel@clun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