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양유는 최근 건강과 영양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소젖을 소화하기 어렵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에게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부모가 아기에게 소젖 알레르기가 있어 고민하던 중 산양유를 시도했고 효과를 보았다는 경험담을 공유하기도 한다.다만 산양유를 둘러싼 다양한 정보와 오해가 혼재되어 있어 이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산양유가 무엇인지부터 모유, 소젖과 비교했을 때의 특징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산양유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본다. 나아가 산양유가 아기와 성인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해 보다 현명한 선택을 돕고자 한다.◇모유와 비슷해 아이에게도 최선?산양유는 영어로 ‘goat milk’, 즉 염소젖이다. 이는 양젖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양과 염소는 염색체 수와 생물학적 특징이 달라 영양 성분에서도 차이가 크다. 쉽게 말해 사람과 침팬지가 다른 동물인 것처럼, 양과 염소도 서로 다르다. 산양유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염소를 ‘산양’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염소는 산악 지대에 잘 적응하는 동물로, 이러한 특징이 이름에 반영됐다. 따라서 산양유는 염소젖을 의미하며 양젖과는 명확히 구별된다.일부 광고에서는 산양유가 모유와 가장 유사하다고 주장하지만, 영양 성분을 비교해 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단백질 구성부터 차이가 난다. 모유의 단백질은 유청 단백질 60~70%, 카세인 단백질 30~40%로 구성된다. 반면 산양유와 소젖은 유청 단백질 약 20%, 카세인 단백질 약 80%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높은 단백질 함량은 아기에게 과도한 단백질 섭취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산양유와 소젖은 칼슘과 인 등 전해질 함량이 모유보다 훨씬 높아 영아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올리고당 함량은 매우 적어 프리바이오틱스 역할 역시 제한적이다. 또한 산양유는 모유보다 엽산 함량도 적어,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거대적혈모구성 빈혈을 유발할 수 있다.◇A1 단백질 없어 소화에 용이소젖을 소화하지 못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유당 불내성이다. 산양유, 소젖, 모유 모두 유당을 포함하고 있어 유당 불내성 여부에는 큰 차이가 없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소화가 잘되는 우유’는 유당을 제거한 제품으로, 유당 불내성이 있는 사람도 섭취할 수 있다.다만 산양유와 소젖은 단백질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 산양유는 A2 베타 카세인 단백질로만 구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소화가 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연구에서는 A2 단백질이 A1 단백질보다 소화 과정에서 장내 염증 반응을 줄이고 소화 불편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했다.반면, 대부분의 소젖은 A1과 A2 단백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A1 단백질은 소화 과정에서 β-카소모르핀-7(BCM-7)을 생성해 일부 사람에게 소화 불편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A1 단백질 소화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산양유나 A2 소젖이 대안이 될 수 있다.◇우유보다 알레르기 덜한 것 아냐소젖 알레르기가 있다면 산양유를 대체제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소젖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산양유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산양유는 단백질 구조가 소젖과 유사하며, 산양유에는 알레르기를 줄이기 위한 단백질 분해 공정이 포함되지 않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따라서 소젖 알레르기가 있을 경우 대체 우유로 산양유를 선택하지 않는 게 좋다. 소젖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섭취할 수 있는 대체 우유로는 소젖 단백질을 분해한 저알레르기 분유가 있다. 소젖 단백질을 가수 분해해 크기를 작게 만들면 알레르기 반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산양유는 염소젖이다. A2 단백질로 구성돼 소젖 대비 소화가 쉬울 수 있지만 모유보다 단백질과 전해질 함량은 높은 반면, 올리고당 함량은 적다. 알레르기 측면에서도 산양유가 소젖보다 알레르기를 덜 유발한다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소젖이든 산양유든 입맛에 맞고 소화가 잘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레르기 때문이라면 산양유 대신 저알레르기 우유를 선택하는 게 좋다. 다만 유아용 조제 분유는 소젖 단백질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완벽한 모유 대체품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이 칼럼은 임신영 임신영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의 기고입니다.)
-
가볍게 넘어지며 손을 짚었을 뿐인데 손목이 여러 조각으로 부러지거나, 단순 낙상 이후 고관절 수술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겉으로는 비교적 경미한 외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골다공증이 몸속에 내재하여 있는 경우 작은 충격에도 여러 유형의 골절로 나타날 수 있으며 치료 방향과 회복 경과 역시 일반 골절과 차이를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골다공증은 60세 이상 여성 인구의 약 3명 중 1명이 진료받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된다. 또한 전 단계인 골감소증 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골절 위험군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골다공증성 골절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골다공증 환자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골절 유형으로는 척추 압박골절, 고관절 골절, 손목 골절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레저 및 스포츠 활동이 늘면서 젊은 연령층에서도 유사한 골절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기저에 골밀도 저하가 동반된 경우에는 비교적 가벼운 외상에도 손상 범위가 커질 수 있어 골 건강관리는 더 이상 특정 연령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뼈는 ‘건강의 저수지’… 무너지면 일상이 흔들린다 골다공증은 단순한 골밀도 감소 질환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뼈는 인체를 지지하는 구조물일 뿐 아니라 칼슘과 인을 저장, 조절하는 무기질 저장소이며, 에너지 대사와 호르몬 작용에 관여하는 내분비 기관으로 기능한다. 골세포에서 분비되는 물질은 인슐린 분비와 감수성, 지방 대사, 면역 반응, 노화 과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골밀도 저하와 함께 감소하는 오스테오칼신 수치는 인슐린 저항성과 연관돼 제2형 당뇨병 위험 증가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이처럼 뼈는 전신 대사와 긴밀히 연결된 기관이라는 점에서 ‘전신 건강의 저수지’로 불린다. 이러한 뼈의 기능이 저하되면 그 영향은 단순한 골절 위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골질이 약화된 상태에서는 동일한 외상이라도 분쇄골절이나 복합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치료 과정 또한 복잡해진다. 특히 고관절 골절 이후 장기간 침상생활이 지속될 경우 폐렴, 혈전증 등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고, 이는 생존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척추 압박골절 역시 만성 통증과 체형 변화를 초래해 일상 기능을 크게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또한 골다공증 환자에서는 첫 골절 이후 추가 골절 발생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초기 골절은 이미 골질과 구조적 안정성이 저하된 상태이며 활동 범위 감소와 근감소가 이어지면서 다시 낙상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골다공증이 동반된 경우 골절은 손상 범위와 예후 측면에서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 높아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전신 상태를 함께 고려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골다공증성 골절, 치료 방향과 숙련도가 예후 좌우 골다공증성 골절은 일반 외상성 골절과 치료 방향에서 차이를 보인다. 골 강도가 저하된 상태에서는 금속 고정 장치의 고정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수 있고, 수술 후 변형이나 재골절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고정방법의 선택과 수술 기법에서도 뼈의 구조적 취약성을 전제로 한 세밀한 판단이 중요하다. 치료 계획은 골절 형태뿐 아니라 환자의 골 대사 및 전신 건강 상태를 함께 고려해 수립한다. 필요시 고정 보강술을 병행하고, 수술 이후에도 골다공증 치료를 지속하는 장기적 관리가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정밀한 임상 판단을 요하며, 숙련된 정형외과 전문의의 경험이 예후를 좌우한다. 골다공증 환자에게 발생한 초기 골절은 단순 외상성 손상에 그치지 않고 골 미세구조 및 골질 저하가 이미 상당 부분 저하됐음을 시사하는 임상적 사건이다. 따라서 골절이 확인되면 기저 질환 유무와 골 대사 상태를 포함한 전신 건강 상태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적 평가는 향후 반복 골절발생과 기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추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이 칼럼은 이재훈 한양대학교 교육협력병원 센트럴병원 정형외과 부원장의 기고입니다.)
-
“약으로 나오는 오메가3의 효과가 더 확실하지 않나요? 저도 건강 차원에서 약으로 처방받고 싶은데, 안 된다면 직구로라도 고함량을 사서 먹을까 해요.”진료실에서 종종 들려오는 질문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병원에서 쓰는 의약품이고 고함량이니, 혈관 청소 효과도 훨씬 강력하고 건강에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먹어야 하는 약으로서의 고함량과 매일 먹는 영양제로서의 오메가3는 그 쓰임새가 엄연히 다릅니다. 오늘은 고함량 오메가3의 득과 실, 그리고 내 몸 상태에 딱 맞는 선택은 무엇인지 의학적 근거로 명확히 정리해 드립니다.오늘의 퀴즈: 오메가3를 고함량으로 먹어야 심장 건강에 좋다?정답은 △입니다.[정답 풀이] 위 질문에 대한 의학적 정답은 누구에게는 “O”이지만, 누구에게는 “X” 입니다.1. YES (환자의 경우)병원 검사 결과에서 중성지방 수치가 500mg/dL 이상인 고위험군 환자라면, 의사의 관리하에 하루 2000~4000mg의 고함량 오메가3 처방약(전문의약품)을 복용하는 것이 심혈관 질환과 급성 췌장염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2. NO (일반인의 경우)반대로, 질환이 없는 사람이 건강 증진 목적으로 하루 2000mg 이상을 임의로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심장 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들거나, 각종 부작용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영양제 목적이라면 500~1000mg 내외로 섭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핵심 근거1."영양제니까 많이 먹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고용량을 섭취할 경우, 오히려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OMEMI 연구에 따르면, 급성심근경색 후 고령자가 하루 1800mg의 오메가3를 섭취했을 때, 섭취하지 않은 그룹보다 심방세동(부정맥) 발생 위험이 약 1.84배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2021년 순환기내과 저널의 메타 분석에서는 오메가3 1000mg을 기준으로 섭취량이 늘어날수록 심방세동 위험이 증가했습니다.즉, 2000mg 이상은 치료가 시급한 환자가 부작용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모니터링을 하며 먹어야 하는 약의 용량입니다. 건강 증진 목적으로 먹는 영양제의 용량은 아닙니다.
-
쥐를 수조에 빠뜨리고, 빠져나올 방법을 끝내 마련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다가도, 실패가 반복되면 쥐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에서 기반한 개념이 ‘학습된 무력감’이다. 이것을 제안한 임상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우울증 환자에게도 같은 틀을 적용했다. 사람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고난을 겪으면, “내가 노력해봐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믿음이 굳어진다. 그 믿음은 행동을 갉아먹는다. 움직임이 줄고, 시도가 줄고, 결국 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앞으로 달라질 수 있는 상황 앞에서도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미 마음에서는 “결과는 정해져 있다”라고 학습했기 때문이다.스트레스는 우울증을 부른다. 스트레스는 우리 뇌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을 활성화시키고,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 반응은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에너지와 집중력을 올려주고, 위험이 닥쳐도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신체를 준비시킨다.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스트레스에 의한 심신의 반응이 지속적이면 문제가 발생한다.우리 뇌의 전전두엽은 계획을 세우고, 충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이 지휘자가 제대로 활약을 못하게 만든다. 우울증에서 집중이 안 되고, 쉬운 결정도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마 기능이 떨어져 기억력까지 흐려진다. 환자들은 “머리가 뿌옇다,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 책을 읽어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라고 호소하는데, 이것 또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지친 상태에서 나타나는 기능 저하 현상이다.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뇌가 회복하는 속도 자체가 느려진다. 뇌 신경세포의 성장과 회복에 관여하는 신경성장인자(대표적으로 BDNF로 알려진 요소)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처가 더 빨리 생기는데, 회복은 더디다. 신경전달계의 균형도 흔들린다. 세로토닌 기능이 저하되면 작은 자극에도 과민해지고, 사소한 말에도 깊이 상처받고, 정서 조절이 어려워진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요. 회의 시간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난처했어요.”라고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감정을 조절하던 제동 장치가 닳아버린 것이다.몸도 함께 변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는데도 “감기 걸린 것처럼 온몸이 나른하다” “미열이 계속 나는 것 같다” “전신이 쑤신다”고 호소한다. 이런 증상들은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교란시켜서 사이토카인, 인터루킨-6, CRP 같은 염증 반응 물질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우울증이 심할수록 염증 반응도 커지는 경향이 있고, 치료로 우울이 호전되면 염증 지표가 함께 내려가기도 한다. 반대로 염증 반응이 높게 유지되는 경우에는 항우울제 치료 반응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뇌가 회복의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 중 핵심이 수면이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코르티솔 리듬을 재정렬하고, 면역 반응을 가라앉히고, 전전두엽의 제동 장치를 복구하는 과정이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햇빛 노출은 생체 리듬을 세우고, 염증 반응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스트레스가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말은 너무 익숙하지만, 진료실에서는 정반대의 장면도 자주 만난다. “한참 스트레스 받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 다 편해졌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환자를 종종 본다.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서,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위기일 때는 우울한지도 모르고 일하다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서 허무함과 무력감이 떨쳐지지 않아 병원을 찾는 사업가도 적지 않다.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단지 해로운 자극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구조의 일부이기도 하다. 활기차게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결혼 전까지 사회생활을 하던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만 하며 지내다가 우울해지는 경우가 그렇다. 밖에서 일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성취와 자극을 얻던 사람일수록 더 쉽게 흔들린다. 여기에 남편의 무관심, 가정 내 갈등이 겹치면 우울은 깊어진다. 이런 상태를 ‘새장 속 새 증후군’이라고 부른다.비슷한 맥락으로 ‘빈 둥지 증후군’이 있다. 아이가 성장해 독립하는 시기에 찾아오는 우울이다. 전업주부로 아이 중심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특히 취약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스트레스도 크다. 그러나 동시에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추진력이 사라지면 허무가 밀려온다.남성에게는 은퇴가 가장 위험한 고비가 된다. “은퇴하면 얼마나 편할까”를 꿈꾸던 직장인이 정말 은퇴를 하고 나면 예상과 달리 무력감에 빠진다. ‘은퇴 후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로 자기를 증명하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취약하다. ‘해야 할 일’이 사라지자 ‘내 존재 가치’까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스트레스가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라면, ‘더 쉬기’가 아니라 ‘적당한 긴장 만들기’가 필요하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하루를 구조화하고,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봉사든 취미든, 주 2~3회의 규칙적인 약속이든, 짧은 일거리든 상관없다. 핵심은 뇌에게 ‘나는 다시 삶과 접촉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
요즘 들어 부쩍 늙었다는 기분이 든다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화는 시간이 흐르며 나이듦에 따라 점진적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늙는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있음이 보고되었다.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스탠포드 신경과에서 발표한 연구를 살펴보면 인생에서 세 번, 34세, 60세, 78세에 급격히 늙는 시기를 특정했다. 이 연구에서는 혈액 속 단백질의 나이에 따른 수치 변화를 살폈는데, 4263명의 젊은 성인부터 90대 노인에 이르는 사람들의 혈장 단백질 2925개를 측정하고 생물정보학적 접근법으로 연령에 따른 혈장 단백질체의 변화를 살펴보고, 각 연령대에서 차등 발현되는 단백질 수를 합산한 결과 34세, 60세, 그리고 78세의 나이에서 1379가지 단백질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는 걸 발견했다.또 다른 연구로 2024년 스탠포드 유전학과에서 발표된 보고에서는 25세에서 75세 사이의 참가자 108명을 대상으로 멀티오믹스 프로파일링을 분석한 결과, 약 44세와 60세에 상당한 기능 이상이 발생했음을 보고했다. 예를 들어 60세 전환기에는 면역 조절 및 탄수화물 대사가 변화했고, 산소 운반체 활동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40세 전환기에는 심혈관 질환, 지질 및 알코올 대사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연구 대상 집단의 연령 범위가 25~75세였기 때문에 이전 보고에서 처럼 78세 피크를 관찰할 수는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연구자는 표본 크기가 작아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음을 보고했고 또한 혈액 샘플에서 얻은 결과이므로 피부나 근육과 같은 특정 조직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혈액 유전자발현의 변이는 전반적인 생리적 변화를 시사할 수 있어 잠재적으로 피부와 근육을 포함한 조직의 세포외 기질(ECM)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두 연구를 통해 노화는 시간이 흐르며 점진적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있음을 살필 수 있는데 실제 피부과진료를 볼 때 예순이 되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라는 이야길 많이 듣게 되므로 60세가 되면서는 이전과는 달라지는 피부노화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60세, 급격히 변화하는 피부노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첫째, 촉촉한 피부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피부가 가려워지는데의 거의 대부분은 건조함이 원인이다. 피부가 촉촉해지려면 매일 비누나 다양한 세정제로 거품을 내어 비누질한 후 샤워하는 방식은 중단해야 한다. 민감성, 저자극 세안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피부보습에 이상이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매일 매일의 세정제의 사용은 가려움을 유발 할 수 있으므로 60세가 되면서는 지저분 한 곳은 비누샤워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팔 다리는 물로만 헹궈내도 충분하다. 샤워 후에는 반드시 보습제를 발라주어야 한다.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괜찮지만, 요즘처럼 건조한 겨울에는 보습제를 바르는 것이 필요하다. 가려움이 느껴진다면 보습제의 선택도 중요하다. 보습제는 로션-크림-오인트크림의 세가지 제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가려움이 없다면 로션타입의 보습제를 선택하면 된다. 때때로 가려움이 느껴진다면 크림타입의 제형을, 가려워서 긁는 정도이면 오인트크림 타입의 보습제를 바르는 것이 좋다. 또 보습제는 샤워 후 3분 이내에 발라주는 것이 좋다.때를 미는 것은 금물이다. 때를 밀어내는 것은 피부 보호막을 벗겨내는 것으로 피부건조에 심각하게 악영향을 미친다. 20여년전 한달에 한번 목욕하던 시절에는 때밀이가 필요할 수 있었겠지만 요즘처럼 매일 샤워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면 때밀이는 추억속의 일로 묻어두는 것이 좋다. 더불어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적절하게 따뜻한 물 온도는 피부장벽을 보호하여 건조하지 않게 유지시켜주는데 도움이 된다.둘째,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껏 안 발랐는데 지금부터 바르는 게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하고 자외선차단제를 바르지 않는 분들도 꽤 계시다. 하지만 60세 부터 급격히 검버섯 및 피부노화가 진행이 되기 때문에 자외선차단제의 사용은 필수이다. 또한 이전보다 피부암으로 내원하는 분들도 늘었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60세 이상 피부에 맞는 자외선차단제는 바르자마자 당기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여 자외선 차단 역할 뿐만 아니라 보습효과까지 볼 수 있는 제품이 좋다. 무기자차나 유기자차를 꼭 나눠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민감하면 무기자차를 써야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피부는 유기자차를 써야 할 만큼 민감하지 않으므로 자외선 A, B를 전반적으로 차단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자외선의 파장대를 고르게 막아주는 자외선차단제는 무기자차와 유기자차가 섞여있는 혼합형 자외선차단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용하면서 따거움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면 유기와 무기를 나누기 보다는 발라서 편한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자외선차단제는 SPF50이상, PA는 3+의 제품을 사용한다. 운동하면서 땀이 나기도 하고 자주 바르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급적 높은 수치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얼굴 뿐 아니라 목, 귓바퀴, 손등, 앞가슴 부위까지 꼼꼼이 발라주는 것이 좋다. 셋째, 얼굴 뿐 아니라 점막 부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식기 및 항문 소양증으로 내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점막 부위도 건조해지기 때문에 가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생식기 및 항문 부위는 피부질환이 있는지의 유무를 확인하는 게 먼저이므로 가렵다면 피부과전문의 진료를 보고 질환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이다. 이상이 없음에도 가렵다면 이 부위도 세정제 사용 횟수를 1일 1회 미만으로 줄이고 샤워 후 보습제를 발라주는 것이 좋다. 점막부위의 보습제는 무향, 저자극 제품을 선택해야 하며 문지르지 말고 두드리듯이 바르는 것이 필요하다.60세가 되면서 피부는 이전과 달리 가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여러 반점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1차적으로 단순 건조 및 노화로 인한 현상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연노화의 상태라면 세가지 요인, 보습, 자외선차단 및 점막부위의 건조함까지 신경써서 건강한 피부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
명절이 지나고 나면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며칠 전까지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거실은 금세 적막해지고, 식탁 위 음식은 정리된다. 그 조용함 속에서, 어떤 어르신의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진료실에서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다. “명절 때는 애들이 와서 정신이 없었는데, 다 가고 나니 너무 조용해요.” 그 말은 단순한 허탈함이 아니었다. 잠시 연결되었다가 다시 혼자가 된 느낌. 그 단절의 체감이 노년 우울을 자극한다.노년 우울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신체 질환도, 경제적 어려움도 중요하다. 그러나 연구와 임상을 종합해 보면 가장 강력한 요인은 ‘사회적 고립’이다. 고립은 혼자 사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나는 더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명절은 그 고립을 잠시 가려준다. 가족이 모이고, 손주가 뛰어다니고, 음식 냄새가 퍼진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여전히 가족 안에 있다”는 감각이 살아난다. 그러나 모두 돌아가고 나면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고립은 원래 조용하다. 명절은 그 조용함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연결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 적막이 남는다. 이 적막은 단순한 쓸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노년 우울은 젊은 세대의 우울과 다르다. 슬픔보다 무기력이 앞선다. “기운이 없다” “다 귀찮다” “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로 대변된다. 이 우울은 종종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새벽에 일찍 깨고, 입맛이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진다. 때로는 기억력 저하로 치매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울은 뒤늦게 발견되거나 다른 질환으로 오해되기 쉽다.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년층은 충동적 선택보다 계획적이고 치명적인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다. 우울을 방치하면, 고립은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위험의 밑바닥에는 존재가 흔들리는 감각이 자리하고 있다.노년 우울의 핵심은 존재감의 약화다. “내가 자식들에게 짐이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같은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존재가 흐릿해졌다는 신호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빠르게 무너진다. 그러나 이 무너짐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연결이 느슨해진 사회가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지역 공동체의 약화 속에서 노년의 고립은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 개인의 존재감이 흔들리는 배경에는, 사회적 연결망의 균열이 자리하고 있다.이제 연결은 가족에만 맡길 수 없다. 지역 사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가 될 때, 고립은 힘을 잃는다. 일상적인 ‘안부 인프라’가 있어야 연결은 유지된다. 이를 위해 공공의 책임과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
-
탈모는 오랫동안 머리에서만 벌어지는 문제처럼 취급되어 왔다. 탈모가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탈모약을 떠올리고, 시술을 고민하고, 마지막에는 모발이식을 상상한다. 보통 이 수순을 밟는 것이 사실이다.그런데 진료를 오래 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탈모가 심하게 진행된 남성일수록 두피만의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함께 나타난다.체중이 높거나,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 보내거나, 햇빛을 거의 보지 않는 생활이 이어진 경우가 많다. 혈액검사를 펼쳐 보면 상당수에서 비타민 D가 낮다. 이 요소들이 우연처럼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패턴으로 묶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래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탈모가 심해진 사람의 몸은, 머리카락이 빠지기 훨씬 전부터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비타민 D는 오랫동안 뼈 건강을 위한 영양소로만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역할이 훨씬 넓다. 면역을 조절하고, 염증을 완충하며, 세포의 분화와 재생에 관여하는 호르몬에 가깝다. 모낭에도 비타민 D 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물질은 단순한 보조 영양제가 아니라 모발 생리의 조절 인자로 다시 해석되고 있다.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비타민 D가 낮다고 해서 곧바로 머리가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핍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모낭의 회복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줄기세포의 반응이 둔해지고, 두피의 미세 염증이 누적되며, 안드로겐에 취약한 모낭이 더 빨리 가늘어질 수 있다.결국 비타민 D는 탈모의 직접 원인이라기보다는, 탈모가 진행되는 환경을 결정짓는 요인에 가깝다. 토양이 척박하면 어떤 씨앗도 제대로 자라기 어렵듯, 비타민 D 결핍은 모낭이 버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 중등도 이상 남성형 탈모군의 비타민 D 수치가 경증군보다 더 낮았다는 결과가 나왔다.비타민 D 보충은 발모 치료가 아니다. 피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 미녹시딜을 대신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치료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을 정비하는 역할을 한다.그래서 심한 남성 탈모를 볼 때, 두피 사진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혈중 25-OH 비타민 D가 20 ng/mL 미만이라면, 이는 단순 수치 이상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호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때 보충은 발모약이 아니라 몸의 토양을 복구하는 과정이다.대개 하루 1000~2000 IU로 시작하고, 심한 결핍에서는 일정 기간 더 높은 용량을 사용한다. 목표는 대략 30~40 ng/mL 선이다. 그러나 무작정 채워서는 안 된다. 신장질환, 고칼슘혈증 위험, 특정 염증성 질환이 있다면 반드시 사전 평가가 필요하다.남성형 탈모는 유전, 호르몬, 생활 방식, 그리고 몸의 대사 상태가 한데 얽힌 질환이다. 그래서 탈모가 깊어질수록 두피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혈액검사지에 낮게 찍힌 비타민 D 수치가, 단순한 부족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오래된 신호일 수 있다.약을 바르고, 복용하고, 때로는 이식을 고민하는 모든 선택 뒤에는 결국 몸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세우는 일이 놓여 있다.(*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
-
197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시카고 외곽 마을 경찰서에 한 남성이 체포됐다. 마리화나 소지 혐의였다. 그는 30대 후반의 백인 남성이었고, 나름 인근 지역까지 잘 알려진 사업가였다. 건설 및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정치 활동에도 참여했고, 민주당 지역 조직에서 활동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아동 병원을 찾아 광대 분장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얻은 사람이었다. 체포 당시 그는 억울하다는 듯 경찰에 항의했고, 자신이 지역 유력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이 그랬던 것처럼.같은 시각 그의 집에서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었다. 별다른 범죄의 흔적이 없이 끝나는가 싶던 와중, 집 바닥 아래 공간을 뜯어보니 부패한 시체들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수사관들은 곧 이 남성이 미국 범죄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중 한 명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이름은 ‘존 웨인 게이시’.수사는 1년 전 실종된 15세 소년 사건에서 시작됐다. 소년은 약국에서 일하던 중 게이시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자리를 제안받고 그를 만나러 간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가출로 판단했지만, 게이시의 집에서 발견된 여러 물품이 의심을 키웠다. 수갑, 족쇄, 경찰 배지, 성 관련 도구, 그리고 실종 소년의 소지품으로 확인되는 물건들이 발견됐다. 이후 경찰은 게이시를 미행하며 감시를 이어갔다.결정적인 단서는 집 내부에서 나는 악취였다. 한 수사관이 화장실을 사용하던 중 환풍구에서 시체 부패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뭔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를 근거로 추가 수색영장을 청구했고, 게이시가 도망칠 걸 우려해 우선 마리화나 소지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그렇게 그의 집 지하의 좁은 공간에서는 총 26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추가로 집 부지와 인근 강에서도 여러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 남성이었다.게이시는 주로 가출했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접근했다. 일자리를 제안하며 유인하거나,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은 뒤 집으로 데려왔다. 이후 수갑을 이용한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피해자의 손을 묶고,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젊은 남성들을 고용하며 권력관계를 형성했고, 자신을 보호자이자 권위자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그의 삶은 극단적인 이중성을 보였다. 어린 시절 그는 폭력적이고 통제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때로는 애정을 보였지만,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고 아들을 무능하고 나약하다고 비난했다. 게이시는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반복적으로 거부당하는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 권력과 통제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사회적으로 그는 성공한 인물처럼 보였다. 사업에 성공했고 정치 활동에도 참여했다. 지역사회에서는 모범적인 시민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젊은 남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했고, 이전에도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는 사회적 인정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분리된 삶을 유지했다.재판 과정 중 시행된 정신과적 평가에서 그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진단됐다. 이는 타인의 권리를 반복적으로 침해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성격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타인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인식했다. 피해자들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통제하고 지배하는 대상이었다.재판에서 그는 정신질환을 이유로 형사 책임을 면하려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그가 자신의 범행이 사회적으로 범죄라고 인식할 능력이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고, 1994년 형이 집행됐다.게이시는 생전에 광대 분장을 하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광대라는 존재가 무엇이든 숨길 수 있는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그를 신뢰했고, 그는 그 신뢰를 이용했다. 그의 범죄는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오랜 기간 형성된 성격 구조와 권력에 대한 집착,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됐다.물론 정신질환이 모든 범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성격 구조와 환경, 그리고 권력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결합될 때,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범죄는 개인의 병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사회적 신뢰와 권력 구조가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게이시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범죄를 후회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여전히 사회를 기만할 수 있다며 비웃었다. 사형 집행 전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나는 그간 33명을 죽였지만, 당신들은 나밖에 못 죽여, 결국 내가 이긴 거야.”그의 삶은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왜 가면을 쓰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가면을 쉽게 믿는가.
-
초등학교 5학년인 유달리(가명) 학생. 이 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았다. 수업 중 자리를 자주 이탈했고, 분노가 반복적으로 폭발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친구와의 갈등도 잦았다. 병원은 약을 권했다. 학교는 ‘위기 학생 관리 절차’에 따라 기록을 남겼다. 상담을 위해 외부 전문 기관으로 연계됐고, 보고 체계는 작동했다. 모든 것은 ‘학생 보호’라는 선의에 따라 정상적 절차대로 진행되었다.그러나 담임교사는 다른 장면을 보았다.유달리 학생은 문제 행동 직전, 늘 교실을 한 번 훑어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렸고, 여러 눈이 자신을 향할수록 더 불안해했다. 그 아이는 산만한 학생이기 전에, 불안한 아이였다. 담임교사는 유달리 학생에게 절차에 따른 개입이 더 반복될 경우, 오히려 주변과의 실낱같은 관계마저 붕괴되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학생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 설득하고, 통제하는 방식의 기존 개입을 멈췄다. 대신 학생과의 유대를 이어가며 아이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 결과, 학생의 폭력적인 행동이, 직접적으로 신체를 맞대지 않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만 전환됐다. 이따금 파괴적인 행동을 한 후라도 자신이 스스로 정리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화되다가도 과거처럼 폭발하지 않고, 폭발 이전에 그 장소와 순간을 벗어나는 모습도 관찰됐다.이 아이는 ‘위기 학생’으로 분류하고 통제하기만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학생에게 먼저 말을 걸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망설였을 것이다.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위기 학생 관리를 위한 기록을 남기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지금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절차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위기학생 대응 및 자살 예방 대책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고위험군 선별, 정서·행동 검사, 전문기관 연계, 보고 체계 강화. 문서만 보면 빈틈이 없다.그러나 유달리의 교실은 묻는다. 이 정책은 학생의 삶을 읽기 위해 설계된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분류하고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설계된 것인가.현재 체계의 중심에는 하나의 전제가 놓여 있다. 학교는 위험을 감지해 기록하고 외부의 전문가에게 넘기는 통로라는 전제다. 이 전제가 강화될수록 교실의 역할은 달라진다. 학생의 어려움은 ‘관계 속 해석’이 아니라 ‘위험 분류’의 대상이 되고, 담임교사는 삶을 읽는 존재라기보다 위기를 보고하는 존재로, 상담교사는 의미를 풀어내는 전문가라기보다 연계의 중개자로 자리 잡는다.정책은 교사에게 사실상 이렇게 말한다. “먼저 기록하라” “먼저 보고하라” “전문기관에 맡겨라” 문제가 생겼을 때 절차를 따랐다는 기록은 행정적으로는 안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전이 곧 아이의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사의 판단은 위축되고, 학생과의 대화는 미뤄진다. 유달리와 같은 아이는 충분히 이해받기 전에 ‘위험군’이 된다.전문기관의 개입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순서다. 교실에서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갈등과 발달의 혼란까지 곧바로 의학적 위험의 언어로 번역하는 구조는 보호의 이름으로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관리가 강화될수록 아이는 더 빨리 교실 밖으로 이동한다. 위기를 관리하는 동안 고립이 심화되는 역설이 생긴다.유달리에게 먼저 필요했던 것은 약이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이었다. “너는 문제가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존재”라는 경험이었다. 변화는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다.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학생들의 자살은 매뉴얼로 예방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고립의 축적을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매일 아이를 만나는 교사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교사가 아이 곁에 머무는 시간을 넓히기보다, 보고와 연계를 우선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아이의 무릎을 움직일 때 ‘뚝’ 하는 소리가 나면, 과거에는 연골이 닳아 서로 마찰되거나 뼈가 부딪히는 소리로 아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관절 손상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이 소리의 정체는 대부분 연골 손상이나 뼈의 마찰이 아니라, 관절 안에서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기포’다. 부기가 있거나 아이가 해당 부위를 덜 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기포가 생성되면서 나는 소리1970년대에 생체역학 및 유체역학 연구를 바탕으로, 관절음은 ‘기포 붕괴’로 설명됐다. 관절에서 나는 ‘뚝’ 소리가 관절강 내에 이미 형성된 기포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근거는 유체역학에서 알려진 공동현상(cavitation)으로, 액체 속 기포가 압력 변화에 의해 붕괴될 때 강한 충격파와 소리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관절을 견인하면 관절강 내 압력이 낮아지고 기포가 형성된 뒤, 이어서 압력이 다시 회복되면서 기포가 붕괴되고 이때 발생하는 충격파가 소리의 원인이라는 가설이었다.그러나 이후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 이론에 대한 몇 가지 한계점이 지적됐다. 실제로 관절음은 관절을 벌리는 바로 그 순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포 붕괴 이론이라면 기포가 형성된 뒤 압력이 다시 회복되는 시점에 소리가 나야 한다는 시간적 불일치가 있었다. 또한 관절음이 발생한 직후에도 관절강 내에 기포가 일정 시간 유지되는 현상이 관찰돼, ‘기포가 이미 붕괴됐다’는 가설과 맞지 않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이러한 한계가 이후 관절음의 발생 기전을 재검토하게 된 배경이 됐다.2015년 실시간 MRI 연구를 통해, 관절음은 기포가 터질 때가 아니라 ‘생성되는 순간’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관절을 늘리거나 당기는 순간 관절강 내부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활액에 녹아 있던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가 한꺼번에 기포로 변하며 특유의 ‘뚝’ 소리가 난다는 이론이다. 밀착돼 있던 두 관절면이 갑자기 분리되면 순간적인 음압이 생기고, 이로 인해 액체 속 기체가 기포 형태로 빠져나온다. 물에 적신 유리판 두 장을 붙였다가 갑자기 떼면 ‘뽁’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관절낭·인대 유연한 소아에게서 흔해뚝 소리가 아이에게서 더 흔한 이유가 있다. 영아와 소아의 관절은 성인보다 관절낭과 인대가 유연하고, 관절 안의 활액량도 상대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기저귀를 갈거나 옷을 입히며 다리를 움직일 때, 무릎이나 엉덩이 관절에서 생리적인 관절음이 더 자주 들릴 수 있다. 통증이나 움직임 제한이 없다면 대부분 정상 범주에 속한다.관절음이 들리면 흔히 연골이 닳아 뼈끼리 마찰되거나, 관절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아에서 관찰되는 대부분의 관절음은 연골 마찰, 퇴행성 관절염, 골관절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소아 관절은 연골이 매우 두껍고 수분 함량이 높으며, 퇴행성 변화가 발생하는 구조적 조건 자체가 성인과 다르다. 따라서 통증·부종·기능 제한이 동반되지 않는 단순 관절음을 연골 손상이나 관절염의 초기 신호로 해석할 근거는 현재까지 없다.관절음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 관절음을 낼 때 통증을 보이거나, 같은 관절에서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소리가 나는 경우, 관절이 붓거나 열감이 동반되는 경우, 한쪽 팔다리를 덜 쓰는 모습이 관찰될 때다. 이 경우에는 초음파나 영상 검사를 통해 구조적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이 칼럼은 임신영 임신영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의 기고입니다.)
-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기형적인 일반의약품 복용법이 10대들의 뇌·심장을 공격하고 있다.청소년 약물 오남용 첫 번째 일반의약품은 ‘디펜히드라민’ 성분의 수면유도제다. 청소년들이 이 약물을 과량 복용하면 뇌의 ‘무스카린성 아세틸콜린 수용체’가 차단돼 착란(錯亂)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심장 독성이다. 고용량의 디펜히드라민은 심장 세포의 나트륨·칼륨 채널을 방해한다. 이는 심전도상 QT 간격을 연장시켜 치명적인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다. 심하면 예고 없이 심정지로 이어진다. 실제 미국에서는 다수의 10대 사망자가 발생했다.최근 가장 우려하는 또 다른 약물은 지사제(설사약)인 ‘로페라미드’다. 이 약은 장운동을 억제해 설사를 멈추게 한다. 그러나 과량 복용은 심장을 마비시킬 수 있다. 심장의 전기 신호 전도를 극도로 지연시켜 QRS 간격과 QT 간격을 동시에 늘리며, 이는 일반적인 제세동기나 약물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부정맥을 유발하고 사망률 또한 매우 높다. 설사약을 먹고 심장이 멈춘다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그 외에 주의해야 할 약물은 ‘덱스트로메토르판’이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정상 용량에서는 훌륭한 기침 억제제지만, 고용량에서는 뇌의 NMDA 수용체를 차단해,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는 듯한 ‘해리성 마취’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약을 오남용했을 때 가장 큰 위험은 ‘세로토닌 증후군’이다. 특히 청소년이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 중인 상태에서 이 약을 과량 섭취할 경우, 뇌 내 세로토닌 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고열, 근육 강직, 발작,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며, 적절한 응급처치가 없으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또한 시판되는 기침약은 단일제보다는 아세트아미노펜(진통제)이나 클로르페니라민(항히스타민제)이 포함된 복합제인 경우가 많다. 함께 섭취하는 과용량 아세트아미노펜이 돌이킬 수 없는 전격성 간 부전을 일으켜 간 이식이 필요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덱스트로메토르판은 오남용 우려로 일반의약품에서 퇴출된 상태다.청소년의 뇌는 ‘공사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충동을 조절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령탑인 전두엽은 20대 중반이 돼서야 완전히 성숙한다. 반면, 보상과 쾌락을 추구하는 변연계는 10대 때 이미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브레이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엔진만 고급 스포츠카급으로 장착된 자동차와 같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게 SNS다.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의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하며, 또래 집단에서의 소속감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를 용기나 유행으로 포장한다. ‘친구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뒤처진다’는 심리, 입시 지옥에서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손쉬운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첫째, 약국에서 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선별적인 판매제한을 하면 된다. 청소년이 디펜히드라민, 로페라미드 등 특정 성분을 대량 구매하거나 반복 구매할 경우 반드시 사용 목적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공부 때문에 잠을 못 자서요”, “여행 가서 먹으려고요”라는 핑계 뒤에 숨겨진 오남용의 신호를 감지해내는 전문적인 촉이 필요하다.둘째, 가정 내 의약품 관리다. 학부모들은 냉장고 속 식재료 유통기한은 꼼꼼히 챙기면서, 정작 약통 속에 어떤 약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녀가 약을 자주 찾거나, 방에서 빈 약 껍질이 다수 발견된다면 즉시 대화를 시도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종합감기약이나 수면유도제가 비상식적으로 빨리 소진된다면 이는 명백한 적신호다.셋째, 학교 약물 예방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기존의 “마약은 나빠요” 식의 추상적인 교육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실제로 접하고 있는 일반의약품 약물들의 구체적인 위험성, 즉 뇌가 어떻게 망가지고 심장이 어떻게 멈추는지에 대한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약물이 아닌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 상담 인프라 확충도 시급하다.‘약과 독의 차이는 오직 용량에 있다’는 파라셀수스의 명언은 독성학의 기본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혀끝의 달콤함과 순간의 도피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한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복 입은 학생의 손에 들린 감기약 한 통이, 단순한 치료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과 관심. 그것이 바로 비극을 막는 첫걸음이다.
-
최근 흥미롭게 본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 통역사인 남자 주인공은 표현하지 못해 속으로만 담아두던 짝사랑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명 배우인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배신하고 양다리를 걸친 남자 친구를 찾아내기 위해 일본 가마쿠라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에 맞게 우여곡절을 겪은 두 사람은 이후 연모의 감정을 스멀스멀 갖게 된다.이 장면, 뭔가 낯설지 않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연인이 되는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안정적인 관계가 확보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만난 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걸까?심리학에서 설명하는 ‘흔들다리 효과’가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 흔들다리 효과는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는 흔들다리를 건널 때 만난 사람을 튼튼하고 안전한 다리를 건널 때 만난 사람에 비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오, 저 사람 매력적이야’라고 먼저 정서를 느낀 후 심장이 빨라지고 땀이 나는 것과 같은 신체 반응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일단 대상을 보면 신체 반응이 먼저 발생하고, 주변 맥락들을 토대로 그 신체 반응의 원인을 고려하고 파악해 정서를 느낀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심장이 뛰고, 이후에 머릿속에서 ‘왜 심장이 뛰는지’를 파악해서 ‘아, 이 사람 좋아’ 또는 ‘아, 이 사람 무서워’와 같은 정서로 확정된다는 것이다.이렇듯 신체 반응 변화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귀인(attribution)’이라 하는데, 흔들다리 효과는 이 귀인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서 발생하는 것이다. 흔들다리는 위험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심장이 뛰기 마련이다. 이때 이 심장 박동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귀인, 즉 흔들다리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이성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오(誤)귀인’이 발생한 결과, 그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지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경험하는 것 차제가 도파민을 분출시켜, 심장 박동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갑자기 마주친 이성은 이 심장 박동의 귀인을 오염시켜서, 그 사람의 매력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익명성 효과'와 '낯선 사람 효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익명성 효과란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는다고 인식되는 상황이 되면, 사회적 책임과 평가에 대한 압박이 감소하면서 자기 통제와 규범적 억제가 약화되는 경향을 말한다. 여행을 가면 평상시에는 절대 입을 것 같지 않던 옷을 입고, 의외의 행동을 하는 것이 익명성 효과의 예라 할 수 있다.낯선 사람 효과는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리라 판단되는 상대에게 자신에 대해 더 솔직하게 털어놓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의외로 택시 기사에게 삶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낮고, 또 본인에 대한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인 낮다고 판단되면 자신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었을 때의 위험성 역시 낮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만날 확률이 낮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낯선 사람 효과가 작동할 수밖에.여기에 '희소성 효과'가 마지막 조미료를 뿌린다. 희소성 효과란 어떤 대상·기회가 제한돼 있거나 곧 사라질 것이라고 인식할 때, 그 대상의 주관적 가치와 매력,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려는 동기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평상시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도 갑자기 홈쇼핑에서 ‘서두르세요,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더 사고 싶고, ‘올 겨울 마지막 세일’이라는 광고 문구를 봤을 때 뭔가 안 사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도 희소성의 효과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니 희소성이 높은 대상일 수밖에 없고, 그 가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이 세 가지 효과가 만나면, 여행지에서 마주한 사람은 운명처럼 만난 나의 이상형이 된다. 익명성으로 자기 통제력이 낮아지니, 평상시 같으면 '조건이네, 상황이네' 고려하며 다가오는 이성에 대해서 철벽을 치던 사람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낯선 사람 효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니 뭔가 더 진실 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다. 여기에 여행이 끝나면 다시 보지 못할 희소성은 상대에 대한 매력을 솟구치게 한다.여기에 유사성의 효과가 은근슬쩍 작동할 수 있는데, 유사성의 효과란 서로 유사할수록 매력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의외로 유사성이 높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으로 갈 것이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로 가지 않겠는가? 여행지를 선택하고 그 일정을 짜는 과정에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은 나와 유사성이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속지말자!’로 가야 할 것 같지만, 최근 '연애도 사치'라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연애할 여유조차도 없는 싱글들에게, 그래도 여행지에서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끌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나쁘다고 말하는 인정머리 없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서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며 끝나는 드라마와 달리, 그 이후에도 사랑의 마음이 삶 속에서 어떻게 유지하는 지가 실전 사랑이라고 했던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던, 서로 끌렸던 솔직했던 마음은 잘 간직하길 바란다.
-
-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아침에 집을 나서려는 A씨.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결국 문손잡이를 열 번도 넘게 잡아당기고 나서야 집을 나선다.B씨는 시장에서 생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고등어, 갈치, 오징어를 만진다. 일을 마칠 때 즈음이면 손과 옷에 비린내가 배는 게 당연하다. 집에 오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갑자기 생각이 스친다.“아직도 생선 냄새가 나면 어쩌지? 나만 냄새를 못 맡을 수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나를 역겨워할지도 몰라.”계속되는 불안감에 코에 자기 팔을 가져다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한 시간도 넘게 다시 한다.위와 같은 강박증은 드물지 않다. 인구의 2~3%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하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문제는 이 증상이 사람을 극도로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확인하느라 준비시간이 몇 배로 늘어나고 반복 행동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이걸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아 불안에 시달린다. 학업과 직장, 대인관계에도 지장을 준다. 강박증은 본인만 괴로운 병이 아니다. 주변 사람도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한 어머니는 성인 아들의 강박증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질문에 대답해주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짜증이 나서 대답을 피했더니 아들의 불안은 더 커졌고 확인은 오히려 잦아졌다. 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시간 넘게 샤워를 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욕실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강박증은 이렇게 환자와 가족 모두를 소진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강박증인 사람은 실수가 적고 세밀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꼼꼼하다. 외과의사, 회계사, 연구자, 개발자 중에는 강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강박증은 왜 생길까? 생물학적으로는 세로토닌 신경전달 이상과 기저핵–전전두엽 과활성과 같은 뇌회로 이상을 들 수 있다. 심리학적 원인으로 과도한 책임감과 통제 욕구를 들 수 있다. 불확실성과 불안을 과도하게 위협으로 해석하는 인지적 편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쓸데없는 거라는 걸 잘 아는데도 안 하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강박증의 핵심은 원치 않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고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해 의식을 치르듯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주요 증상으로 씻기, 확인하기, 정렬하기, 저장하기 등이 있다. 강박 환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예를 들어 “내 손에 세균이 묻어서 가족을 병들게 할지도 몰라.”, “가스를 안 잠근 것 같아. 집이 폭발할지도 몰라”, “내가 이 뾰족한 걸로 갑자기 누군가를 해칠까 봐 두려워.”,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인 생각이 떠올라서 죄를 지은 것 같아”라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뇌는 즉시 이렇게 반응한다.“불안을 없애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해야 해!”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강박행동이다. 세균이 무서워서 손 씻기를 반복하고 가스가 새지 않을까 불안해서 밸브를 열 번도 넘게 확인한다. 누군가를 해칠까봐 주변의 칼을 다 치우고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다. 또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반복한다. 강박행동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안 하면 불안하고 견딜 수 없어서’하게 되는 것이다. 강박증 환자들이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나쁜 짓을 저지를까봐 두렵다고 호소하지만 실제로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도덕적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지 강박증 환자의 뇌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걸 이용해서 공포를 만드는 것뿐이다.왜 확인하고 씻기를 반복하면 잠시 편해질까? 강박 행동을 하면 불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잠시뿐이다. 그 다음엔 뇌가 더 강한 생각과 행동을 요구하면서 점점 증상이 심해지게 된다. 강박증의 치료를 위해서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노출하여 강박 행동을 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것이 도움 된다. 불안을 느껴도 의식하지 않고 10분이고 20분이고 참다 보면 뇌가 “강박 행동을 안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구나”를 학습하게 된다. 약물 치료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열 약물이 뇌의 불안 신호를 낮춰준다고 알려져 있다.강박증은 정신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책임감 있고 신중하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잘 나타난다. 강박은 삶을 가두는 족쇄가 될 수도 있지만 치료와 훈련을 통해 조절하면 집중력과 완성도를 높이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강박증으로 고통 받지만 그 에너지를 삶과 일에 몰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
-
탈모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당연히 제일 먼저 두피부터 떠올립니다. 샴푸를 바꾸고, 앰플을 바르고, 두피 관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유가 보일 때가 꽤 많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시기 좀 전에 어떤 약을 먹기 시작했거나, 몸 상태가 크게 안좋아졌거나, 수면과 체중, 호르몬 균형이 무너진 일이 먼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탈모를 두피 문제로만 보고 치료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머리카락은 생각보다 예민합니다. 우리 몸의 변화에 꽤 빠르게 반응하는 조직입니다. 고열을 앓고 나서, 수술을 받고 나서, 급격하게 살이 빠진 뒤에 머리숱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몸이 큰 스트레스를 겪으면 에너지 사용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생존과 회복이 먼저이고, 모발 성장은 뒤로 밀립니다. 그 결과 몇 달의 시차를 두고 탈모가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본인은 ‘갑자기’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몸 안에서 이미 한 차례 홍역이 지나간 뒤입니다.약물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많은 분이 탈모 약의 부작용은 걱정하면서, 정작 다른 약이 모발에 미치는 영향은 잘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항응고제, 호르몬 관련 약, 갑상선 약, 여드름 치료제 계열, 신경계 약물 등은 모발 주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약을 먹자마자 빠지는 게 아니라, 두세 달 뒤부터 빠집니다. 그래서 연결이 잘 안 됩니다. 약은 그대로인데 머리가 빠진다고 느끼게 됩니다. 시간표를 맞춰 보면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호르몬과 대사 상태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남성형, 여성형 탈모는 유전과 안드로겐의 영향이 기본이지만, 여기에 대사 불균형이 겹치면 진행 속도가 급속히 빨라집니다. 혈당 조절이 좋지 않거나, 복부 비만이 심해지거나, 수면이 무너진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분들은 같은 단계의 탈모라도 체감 진행이 더 빠르다고 표현합니다. 두피 치료 반응도 들쭉날쭉합니다. 정수리만 볼 것이 아니라 생활과 몸 상태를 같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면역도 하나의 축입니다. 원형탈모 환자들을 보면 스트레스 사건 이후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자가면역 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 균형이 흔들리면, 원래는 보호받아야 할 모낭이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동전 크기로 시작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충격이 큽니다. 이때 두피 주사만 반복하는 접근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몸 상태에 대한 점검이 같이 가야 합니다.스트레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흔한 말처럼 들리지만,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닙니다. 급성 스트레스는 신경계와 호르몬 축을 통해 실제로 모낭 환경을 거칠게 만듭니다. 잠이 무너지고, 교감신경이 과하게 올라가고, 염증 신호가 증가합니다. 머리카락 입장에서는 자라기 좋은 환경이 무너진 셈입니다. 탈모 상담에서 수면과 회복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치료 관점이 조금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더 나게 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왜 약해졌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미녹시딜, 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 모낭 주사 치료, 모발이식 등 여러 시술이 분명 도움이 되지만, 두피의 바닥 환경이 나쁘면 효과가 제한됩니다. 모낭이 버티지 못하는 토양을 그대로 둔 채 물만 주는 셈이 됩니다. 몸 상태를 함께 정리하고, 약물과 질환을 점검하고, 생활 리듬을 회복시키는 과정이 같이 가야 결과가 안정됩니다.탈모를 진단할 때 제가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몸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입니다. 약이 바뀌었는지, 크게 아픈 적이 있었는지, 체중이 변했는지, 수면 패턴이 깨졌는지부터 묻습니다. 이 질문 하나로 치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두피 확대경보다 이 문진이 더 중요한 순간도 있습니다.탈모를 두피에서만 보면 치료가 자꾸 늦습니다. 시선을 몸 안으로 넓히면 더 잘 설명이 되고, 설명이 되면 전략이 생깁니다. 머리카락은 몸의 일부입니다. 따로 떨어져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답도 종종, 두피 밖에 있습니다.(*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
-
우리 모두는 대개 꽤 열심히 살아왔다. 학생 때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사회에 나와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를 썼다. 그리고 오늘도 크고 작은 불안, 괴로움과 싸우면서 하루를 잘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독자들도 혹시나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면 한번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애써 살고 있음에도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당신은 정말 행복해지려 애를 쓰고 있는가?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모으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많은 경우 행복을 직접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 ‘내가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될 텐데’ ‘남들보다 못 살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이걸 선택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즉, 삶의 방향이 행복을 추구하고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 결핍, 후회, 두려움을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불행을 피한 뒤에 ‘혹시나 남아 있으면 좋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게 된다. 불행을 피하는 데 성공했는지, 뒤처지지 않았는지, 문제없이 버티고 있는지만을 점검하며 하루를 보낸다. 행복은 그렇게 삶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 늘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질문이 된다.인간은 원래, 불행을 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손실회피(Loss Aversion)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무엇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같은 크기의 것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을 약 2배가량 더 크게 경험한다. 즉 내가 공짜로 10만 원을 벌었을 때 얻는 기쁨보다 실수로 10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고통이 2배나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에서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생명체에게 있어 하루 치 식량 손실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지만, 하루 치 식량을 추가로 얻는 것은 수명을 하루 연장시키지 않는다. 즉,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생물들에게 있어 위협을 기회보다 더 시급하게 여기는 유기체는 생존하고 번식할 가능성이 결국 더 높기에 이러한 특징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을 얻는 것보다 불행을 피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데 익숙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향해 가는 선택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기 위한 선택에 집중하는 우리 자신을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도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지는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해서 너무나 엄격하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주눅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패 비용이 너무나 큰 우리의 사회 구조상 도전보다는 회피가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아도 됩니다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오랫동안 애써왔다. 다만 그 노력의 방향이 행복을 향해 있기보다는 불행을 피하는데 맞춰져 있었을 뿐이다. 불행하지 않다는 상태와 행복하다는 상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큰 불행이 없다고 해서 삶이 저절로 만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행을 피하는 데에는 매우 성실했고, 행복을 묻는 데에는 놀랄 만큼 인색했다. 행복은 늘 나중 문제였고, 시간이 남으면 나중에 생각해볼 사치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롭게 연재할 이 칼럼은 어떻게 더 잘 버틸 것인가를 말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버텨온 모든 이들에게 이제는 한 번쯤 다른 질문, ‘행복하기 위해서 내 삶에서 더 챙기고 생각해야 할 부분’을 멈춰서 되짚어보는데 의미가 있다. 행복은 특별한 결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기준에 더 가깝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계속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기준과 선택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려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연재되는 이 칼럼이 독자의 삶에서 가진 질문을 함께 꺼내놓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아침 출근길, 손에 쥔 음료를 떠올려 보자. 달콤한 커피, 설탕이 들어간 주스, 혹은 청량한 탄산음료.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코 고르는 이 한 잔이, 수십 년 뒤 우리의 기억력과 연결돼 있다면 어떨까.최근 필자가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를 소개하고 싶다. 필자는 10만 명이 넘는 성인을 13년 이상 추적 관찰하며, 평소 어떤 음료를 마시는지가 미래의 뇌 건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폈다.사소한 선택의 차이였을 뿐이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다. 설탕이 들어간 가당 음료를 하루 한 잔 넘게 마시는 사람은 치매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반면, 차나 커피를 선택한 사람은 오히려 치매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당 음료를 매일 마시는 습관은 치매 위험을 60% 이상 높였고,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경우에는 위험이 30% 이상 낮아졌다.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대체 효과’다. 평소 마시던 달콤한 음료 한 잔을 차나 커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치매 위험이 의미 있게 줄어들었다. 거창한 식단 관리나 극적인 생활 변화가 아니라, 음료 선택 하나의 차이였다.이 효과는 고혈압이나 비만,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혈압약을 챙겨 먹고, 체중 때문에 늘 고민하는 중년층이라면 이 결과를 남의 이야기처럼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들에서는 단 음료를 차나 커피로 대체할 때의 치매 위험 감소 폭이 훨씬 컸다.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설탕이 많은 음료는 혈당을 급격히 올리고, 인슐린 저항성과 염증 반응을 통해 뇌 기능 저하를 부추길 수 있다. 반면 차와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과 폴리페놀은 항산화·항염 작용으로 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이 뇌에 부담을 줄지 보호막을 씌울지를 가르는 셈이다.
-
-
명절을 앞두고 공진단에 대해 물어보는 환자가 많다. 공진단은 워낙 드라마나 예능 등에서 소개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서 공진단 자체에 대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간혹 공진단은 왜 그렇게 비싸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공진단은 사향, 녹용, 산수유, 당귀에 꿀을 넣어 반죽하여 조제한다. 녹용도 정말 비싼 약재지만 공진단이 그만큼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사향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비싼 어떤 것을 가르킬 때 ‘금’을 붙이거나 금보다 비싸다, 금만큼 비싸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사향이야말로 그 말 그대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가격이 오른 그 금만큼이나 비싸다.사향은 사향노루의 생식선과 연결된 향낭을 건조해 얻은 한약재다. 예전부터 강력한 방향성과 약효로 사랑받은 약재였는데 공진단 뿐 아니라 우황청심원에도 사향이 들어있는 것으로 천연적인 각성과 진정 작용으로 그 효과를 유추할 수 있다. 즉 사향은 강력한 방향성으로 갑자기 기운이 막혀 졸도한 환자 등의 막힌 기운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최고로 치는 약재라고 할 수 있다. 공진단의 경우에서는 정신을 맑게하며 기혈의 순환을 빠르게 소통시키면서 녹용, 당귀, 산수유 등 다른 약재의 효과를 몸 속에 빠르게 충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공진단의 가장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멸종위기동물인 사향노루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해당되는 약재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엄격히 통제되는 수량만 유통되다보니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최근에는 공진단에 사향 대신 침향이나 목향과 같은 다른 방향성 약재를 넣어 조제하는 경우도 있다.특히 최근에는 침향이 그 자체로 각광받고 있다. 침향은 동남아에서 주로 자라는 침향나무가 몸통에 상처가 났을 때 나무에서 이를 치료하고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수지가 수년에서 길게는 수백년동안 축척된 부분을 말한다. 즉 침향나무의 몸통 전체가 침향이라는 약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며 침향나무에서도 극히 일부분만 침향이라는 약재로 취급된다.침향은 예로부터 약재뿐만 아니라 향으로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안정효과가 굉장히 강하여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약재가 아닌 향으로서도 으뜸으로 대우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향을 대체하는, 사향보다 저렴하지만 ‘향’으로서 공진단에서 사향을 대체하는 용도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실제 질 좋은 침향은 사향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는 정말 좋은 약재다.단 우리나라에는 침향이 인기를 얻으면서 저품질의 침향부터 고품질의 침향이 굉장히 폭넓게 수입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침향을 복용 또는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문가인 한의사의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이 외에 목향도 있다. 목향은 국화과 식물인 목향의 뿌리부분으로 사향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사향보다 그 효과가 조금 떨어지나 훨씬 쉽게 구할 수 있어 예로부터 사향의 대체품으로 많이 사용되어온 약재다. 특히 목향은 그 자체로 소화기 장애가 있는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어, 단순히 사향의 대체품이 아니라 소화기가 약한 환자라면 사향이 함유된 공진단 대신 목향이 함유된 공진단을 복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볼 수도 있다.즉 아무리 사향을 넣은 공진단이 귀하다고 할지라도 귀한 것이 항상 최고의 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사향 대신 침향 혹은 목향을 함유한 처방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환자가 현재 상태에서 공진단을 복용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처방을 복용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좋은지 역시 한의사에 의해 확인을 받은 후에 처방을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복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