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믿었는데… 통곡물은 정말 만능 건강식일까?

입력 2026.06.08 05:00

[이용재의 음식시론]

밥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통곡물을 주식으로 삼은 지 20년이 넘었다. 밥은 현미와 칠분도미를 반반씩 섞어 짓는다. 예전에는 백미를 섞었지만 최근에는 칠분도미로 바꿨고 만족스럽다. 빵도 마찬가지다. 제과·제빵을 20년 넘게 취미로 해온 덕분에 통밀빵을 자주 구워 먹었다. 다만 통밀 100% 빵은 만들기도 어렵고 식감도 지나치게 거칠어 백밀가루를 절반 정도 섞어 사용한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직접 굽는 데 흥미가 줄어 온라인에서 각종 통밀빵과 호밀빵을 사 먹고 있다.

겨층의 섬유질과 배아에 풍부한 덕분에 통곡물이 더 건강하다고 굳게 믿어온 지난 20년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고민이 생겼다. 통곡물이 우리가 생각한 만큼 건강에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장점이라 여겨졌던 겨와 배아가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소화 효소로 잘 분해되지 않는 탄수화물 결합 단백질 렉틴이나 철분이나 칼슘 같은 필수 미네랄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는 ‘피티산’때문이다.

통곡식에 풍부한 불용성 식이섬유 역시 모두에게 이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장 운동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민성대장증후군이나 장내 미생물 불균형에 시달리는 이들에겐 오히려 부담이 수 있다. 거친 식이섬유가 점막이 예민해진 장벽을 물리적으로 긁으며 자극을 줄 수 있다. 또한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통곡물의 잔해가 대장으로 내려가면 유해균의 먹이가 되어 복부 팽만감이나 복통, 설사를 유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장이 불편한 이들에게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흰쌀밥이 더 좋다.

최근 부쩍 대중화된 연속혈당측정기도 통곡물 신화가 흔들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통곡물은 혈당지수가 낮아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한 대규모 혈당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다른 결론이 나왔다. 현미밥이나 통밀빵을 먹었지만 백미밥이나 흰빵을 먹었을 때와 흡사하게, 또는 그 이상 혈당이 치솟은 사례가 수두룩하게 나온 것이다.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셈인데, 곡물의 종류나 도정 정도보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나 장내 미생물 환경이 혈당 조절에 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만약 통곡물이 우리가 믿어온 만큼 건강에 유익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랫동안 통곡물을 즐겨온 입장에서 나름 고민해 보았지만, 거창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통곡물을 꾸준히 섭취하는 일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의식적으로 직접 조리하지 않는 이상 식당에서 제공되는 밥은 대부분 백미다. 빵도 마찬가지다. 통곡물의 겨와 배아,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여러 효소를 다루기 위해서는 천연발효종을 사용하는 등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제대로 만든 통곡물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현미 100% 밥이나 통밀 100% 빵은 식감이 거칠고 향도 강해 대중적인 맛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평소에는 백미밥이나 흰빵을 먹고 기회가 될 때마다 빵을 곁들이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식습관을 바꿔야 할 이유도, 통곡물을 지나치게 신봉할 이유도 없다. 적어도 피할 수 없이 백미밥이나 흰빵을 먹게 될 때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결론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