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 후]
암 치료를 하는 의료진은 매일 두려움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환자들을 마주합니다. 헬스조선 아미랑은 강릉아산병원 유방외과 윤광현 교수 칼럼을 연재해 '암 치료와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를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이 치료를 견디게 했는지, 무엇이 환자를 다시 삶으로 돌아가도록 했는지 등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유방외과 의사다. 우리 외과에는 여러 분과가 있지만, 내가 진료하는 유방암은 비교적 생존율이 높은 암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치료 이후에도 오랜 기간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외래를 방문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진료실에는 남편, 자녀, 사위, 혹은 자매나 딸 등 가족과 함께 온다. 7년 동안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환자 가족들과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았다.
그중 부부가 함께 외래에 오는 경우를 보면 추적 관찰 기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몇 년 동안 늘 같은 모습으로 진료실에 함께 들어오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먼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 경우 대부분 본인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일이 더 큰 상실감으로 남아 있다고들 한다.“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며 한참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늘 사위와 함께 오던 환자도 있었다. “사위는 오늘 왜 안 오셨냐”고 물으니, 지난여름 사천 바다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뉴스에도 나왔다고 했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뉴스 속 사고가 바로 눈앞 환자의 가족 이야기였다는 사실에 나 역시 마음이 먹먹해졌다.
항암 치료를 받던 환자 중에는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던 사례도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던 그는 예정된 마지막 항암치료를 마쳤지만, 며칠 뒤 남편은 급성 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항암치료로 지친 몸을 이끌고 상복 차림으로 외래에 온 환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태백에 거주하던 내 또래의 유방암 환자도 기억난다. 유방암으로 진단됐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던 이였다. 그런데 수술 당일 저녁, 환자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늘 밝던 환자가 너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어떤 환자는 예정된 외래 날짜에 오지 못하고 다음 주에 불쑥 방문했다. 원래 오기로 했던 날 아들이 심정지로 쓰러졌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었고 이미 암 말기라고 한다. 환자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외래에서 한참 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귀가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선천적인 장애가 있던 환자도 만났다. “소아마비로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왔지만, 남에게 절대 피해를 준 적은 없다”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살아오던 이였다. 유방에 멍울이 만져졌지만 애써 부정하며 병원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2년이 지나 염증성 유방암으로 진행했다.
상처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 안에서만 지내며 사회와 단절된 채 지냈다고 한다. 같은 장애가 있던 남편이 “진료를 보자”고 설득했고,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다행히 선행항암치료에 잘 반응하는 암이라 치료 결과가 매우 좋았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유방 종양은 점차 작아졌고, 짓물과 핏물도 줄어들었다. 환자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요즘에는 병실이나 외래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모습도 보인다. 그 변화가 참 인상적이었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모습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떤 보호자는 부인의 임종을 앞두고 자신이 평생 모아왔던 수석 몇 개를 내게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이거 보면서 저희 부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말기 암 환자는 “안 아프게 떠나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말했다. 항상 환자의 곁을 지키던 가족들과 병실 한쪽에서 색칠 공부를 하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가족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가끔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좋다. 환자들이 암이라는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치료를 받기 전의 나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회의 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수술이나 치료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외래에서 환자들과 마주하며 나누는 수많은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작은 변화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일이 참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외래를 방문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진료실에는 남편, 자녀, 사위, 혹은 자매나 딸 등 가족과 함께 온다. 7년 동안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환자 가족들과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았다.
그중 부부가 함께 외래에 오는 경우를 보면 추적 관찰 기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몇 년 동안 늘 같은 모습으로 진료실에 함께 들어오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먼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 경우 대부분 본인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일이 더 큰 상실감으로 남아 있다고들 한다.“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며 한참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늘 사위와 함께 오던 환자도 있었다. “사위는 오늘 왜 안 오셨냐”고 물으니, 지난여름 사천 바다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뉴스에도 나왔다고 했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뉴스 속 사고가 바로 눈앞 환자의 가족 이야기였다는 사실에 나 역시 마음이 먹먹해졌다.
항암 치료를 받던 환자 중에는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던 사례도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던 그는 예정된 마지막 항암치료를 마쳤지만, 며칠 뒤 남편은 급성 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항암치료로 지친 몸을 이끌고 상복 차림으로 외래에 온 환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태백에 거주하던 내 또래의 유방암 환자도 기억난다. 유방암으로 진단됐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던 이였다. 그런데 수술 당일 저녁, 환자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늘 밝던 환자가 너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어떤 환자는 예정된 외래 날짜에 오지 못하고 다음 주에 불쑥 방문했다. 원래 오기로 했던 날 아들이 심정지로 쓰러졌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었고 이미 암 말기라고 한다. 환자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외래에서 한참 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귀가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선천적인 장애가 있던 환자도 만났다. “소아마비로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왔지만, 남에게 절대 피해를 준 적은 없다”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살아오던 이였다. 유방에 멍울이 만져졌지만 애써 부정하며 병원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2년이 지나 염증성 유방암으로 진행했다.
상처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 안에서만 지내며 사회와 단절된 채 지냈다고 한다. 같은 장애가 있던 남편이 “진료를 보자”고 설득했고,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다행히 선행항암치료에 잘 반응하는 암이라 치료 결과가 매우 좋았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유방 종양은 점차 작아졌고, 짓물과 핏물도 줄어들었다. 환자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요즘에는 병실이나 외래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모습도 보인다. 그 변화가 참 인상적이었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모습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떤 보호자는 부인의 임종을 앞두고 자신이 평생 모아왔던 수석 몇 개를 내게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이거 보면서 저희 부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말기 암 환자는 “안 아프게 떠나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말했다. 항상 환자의 곁을 지키던 가족들과 병실 한쪽에서 색칠 공부를 하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가족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가끔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좋다. 환자들이 암이라는 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치료를 받기 전의 나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사회의 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수술이나 치료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외래에서 환자들과 마주하며 나누는 수많은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작은 변화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일이 참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 암 극복을 위한 필수 지침, 아미랑
암으로 지친 마음 달래는 힐링 레터부터 극복한 이들의 노하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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