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맹장이 오른쪽에 있나요?
얼마 전 막 퇴근하려는 찰나에 35세 주부 W씨가 휠체어에 실려 진찰실로 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으니 “체해서 이틀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며 “검사는 하지 말고 영양제 한번만 놓아달라”고 했다.
검사는 물론 진찰도 필요 없다고 우기며 영양제 타령만 하는 W씨를 겨우 설득해 문진을 했다. 전날 아침부터 명치가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면서 입맛이 없었다고 했다. 체한 것 같아서 소화제를 먹어봐도 소용 없고 죽이나 물도 거의 못 먹을 정도로 속이 좋지 않으면서 구역질도 난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침부터는 배가 전체적으로 아프고 걸을 때마다 배도 당긴다고 했다.
오른쪽 아랫배를 눌러보니 손을 뗄 때 느끼는 반발압통이 심했다. 아무래도 맹장염이 의심돼 검사를 권했더니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영양제 한방에 말끔히 나았다며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버텼다. 할 수 없이 검사를 안 하면 영양제를 처방해 주지 않겠다고 반쯤 협박해서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맹장염이었다. 정상 범위가 4천~1만/㎣ 정도인 백혈구 수치가 2만/㎣까지 증가된데다 맹장이 곧 터질 것처럼 부어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수술을 권했다. 그런데 W씨의 대답이 의외였다.
“남자는 맹장이 오른쪽에 있지만 여자는 왼쪽에 있잖아요. 저는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데 어떻게 맹장염일 수가 있어요? 수술하지 않을 겁니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오른쪽에 맹장(충수돌기)이 있다고 설명하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W씨는 수술에 동의하지 않았다. 영양제만 맞으면 증상이 나아질 것이라며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필자도 ‘5분 대기조’처럼 상황을 지켜보며 수술 동의만을 기다렸다. 밤 8시가 되자 더 이상 통증을 버티지 못한 W씨가 먼저 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복부 절개로 인한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복강경을 이용해 1시간 정도 수술했다. 다행히 맹장이 터지기 전이라 무리 없이 수술을 마쳤으며 수술경과도 좋았다. 수술 다음날 퇴원하는 길에 W씨가 진료실에 들렀다. 그리고 병을 고쳐 줘서 감사하다며 필자에게 커다란 화분 하나를 주고 갔다.
전문용어로 ‘충수돌기염’이라고 하는 맹장염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입원 다빈도 질환 1위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하다. 대부분 급성으로서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하며 수술 시기를 놓치면 복막염이나 복강내 농양 같은 무서운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맹장염을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증상은 압통과 반발압통이다. 손으로 오른쪽 아랫배를 눌렀을 때 아프고 뗄 때 심한 통증이 느껴지면 맹장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더 정확한 것은 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높은 편인지, 초음파 검사에서 맹장의 크기가 많이 부풀어 있는지, 소변 검사에서 혈뇨나 염증이 나타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한 후 진단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맹장수술은 아주 간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환자마다 증상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경험이 적은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다가는 자칫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수술은 대개 충수돌기를 절제해내면 끝난다. 그러나 간혹 뱃속에 관을 넣어 고여 있는 농양이나 찌꺼기를 밖으로 뽑아내는 경우도 있다.
기존의 개복수술에서는 오른쪽 아랫배를 5~10cm 정도 절개한 다음 맹장을 떼어낸다. 이렇게 하면 복부 근육과 근막이 절제돼 어느 정도 통증이 생긴다. 이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최소 4주 정도 걸린다. 이와 달리 복강경수술은 배꼽 아래 세 군데를 0.5cm 정도만 절개한다. 그 덕분에 개복수술에 비해 통증이 적다. 회복 또한 빨라 2~3일 후면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흉터가 작아서 미용적으로도 좋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