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에 야구공이 막혀있어…
“원장님,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주세요.”
한 중년 부인이 남편을 부축하고 들어섰다. 환자는 트럭운전을 하는 Y씨로, 강원도 동해에서부터 구급차에 실려왔다고 했다. 남자는 통증 때문에 진료실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7년 전부터 뒤가 아파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질도 아니고 의사들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고…. 몇 해 전에는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직장암 같다고 하더군요. 결국 배를 째고 수술을 했는데 기막히게도 암이 아니랍니다.”
장장 7년 동안 남편의 병수발을 해온 부인도 고생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동안 소변은 제가 받아주고 변은 관장해서 뽑으며 살아온 게 벌써 7년째입니다. 게다가 큰 병원에서조차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고 수술을 받아도 차도가 없으니 더 이상 희망이 없어요.”
검진을 해보니 Y씨의 실제 병명은 항문거근증후군이었다. 후에 검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인데, Y씨의 직장암 오진은 대장검사를 받을 때 생리적으로 대장이 잠시 수축된 것이 암 조직처럼 보인 때문이었다.
‘큰 병은 인연이 닿아야 치료한다’는 말이 있다. Y씨가 나를 찾아온 것은 동해의 한 병원 의사 덕분이었다. 그 무렵 나는 국내 최초로 ‘항문거근증에 대한 갈바닉 치료’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치료를 포기한 채 진통제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Y씨는 약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고, 마침 그 논문을 본 의사가 나를 추천한 것이었다. 항문거근증은 이름은 생소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질환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항문 안쪽 깊은 곳이나 꼬리뼈 부근이 당기듯 뻐근해지고, 순식간에 운신을 하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는 것이 증상이다. 환자들은 마치 항문 사이에 야구공 하나가 박혀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곤 한다.
보통 이러한 증상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일과성 직장통’이지만 항문거근증으로 발전되면 통증이 해소되지 않고 한동안 지속된다. 또 앉아있을 때 더 심해지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통증이 줄지 않는다. 항문과 직장을 싸고 있는 항문거근이라는 근육이 다리에 쥐가 나듯 경련을 일으켜 생기는 일종의 근육통증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항문 주위의 질환들이나 허리디스크나 하복부, 항문 수술 후유증, 외상, 과격한 운동 등 무척 다양하며, 여성의 경우 분만 후유증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스트레스와도 관련이 있어 젊은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발생한다.
“제 생각엔 항문거근증후군으로 판단됩니다. 오래 고생하셨으니 진득하게 마음 먹고 제 지시에 잘 따르시면 나을 수 있습니다.”
Y씨는 곧바로 입원을 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매일 온수 좌욕을 다섯 차례 하고 갈바닉 치료를 30분씩 해주면서 안정제를 투약했다. 소변 배출은 부인이 맡았다. 오랜 경험 때문인지 의사나 간호사들보다 솜씨가 더 나았다. 배변은 3일에 1회 관장을 했는데 치료 시작 1주일 만에 환자는 스스로 변을 볼 수 있었다.
열흘째 되던 날 Y씨는 “그저께 혼자 변을 본 후에는 너무 감격해서 화장실에서 아내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제 소변도 저 혼자 가능하고 항문 통증도 거의 없어졌습니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항문거근증은 ‘알고 나면 간단한’ 병이다. 치료기간도 그리 길지 않아 대략 1~2주 사이면 호전이 가능하다. Y씨는 그런 병을 7년씩 앓으며 암으로 오인해 개복수술까지 하는 고생을 한 셈이었다. 다만 항문 속이 무지근하게 아픈 상태가 3일 이상 지속되거나, 열이 나면서 항문통증이 병행된다면, 항문암이나 항문농양은 아닌지 더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아야 한다.
입원 15일 째, Y씨는 퇴원해 고향인 동해시로 돌아갔다. 병원 문을 나서며 눈물로서 고마움을 표했던 그는 며칠 후 맛 좋은 마른 오징어 1상자를 택배로 보내왔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