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상황들이 뒤엉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중의 하나는 문제의 요인을 가능한 한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내 능력 밖의 어쩔 도리 없는 일인가를 가려내고 나면,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의외의 해결 단초를 찾아낼 수도 있다.
지금 병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짚어볼 때, 경우의 수는 개별적, 시대적, 환경적으로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극히 단순화하여 하나로 압축한다면 ‘수요 대비 공급과잉’이다. 한 마디로,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얼마 없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병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두 갈래, 수요를 늘리거나, 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그중 개별 병원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늘어나는 병원 수는 내 힘으로 줄일 수 없지만 (아직 경쟁자가 없거나 적은) 고객의 수요는 내가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을 하나의 기업, 즉 ‘영리(營利)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로, 그래서 ‘의료용역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서비스 업체’라고 규정한다면, 병원에서 제공(판매) 하는 갖가지 서비스 즉, 대형 종합병원의 각 사업부(각 진료과목, 암센터, 건강검진, 장례식장, 응급실, 중환자실 등)와 일반 병원이 자신의 전문영역과 더불어 운영하는 내시경, 물리치료, 공단 및 종합검진 등은 일반 기업이 생산하는 개별 브랜드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다수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수행하는 중요 마케팅 활동 중의 하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Brand Portfolio) 정립’을 통한 ‘브랜드 관리’이다. 다음 그림은 세계적인 마케팅 전략 컨설팅사, 보스턴컨설팅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이 개발한 모형으로서, 기업의 자원 할당, 개별 브랜드 전략, 브랜드들 간의 자기 잠식(Self-Cannibalism) 방지 등을 위한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개념도이다. 여기에서는 한 기업의 여러 브랜드들을 성장하고 있는 주력 브랜드(Star), 수익을 위한 브랜드(Cash Cow), 철수하거나 전략적 후퇴를 해야 할 브랜드(Dog), 그리고 신규 또는 육성 브랜드(Question Mark)로 구분하여 개별 관리하고 있다.
브랜드 포트폴리오 개념을 병원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대장항문 전문병원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이 분야의 Star(주력 브랜드)는 종합검진이다. 암 검진이 종합검진 항목 중 중요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위∙대장내시경검사로 특화된 병원으로서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대장항문 전문병원의 주된 수입원, 즉 Cash Cow(수익을 위한 브랜드)는 역시 내시경이다. 항문질환 수술을 위주로 운영되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주된 질환인 항문질환 치료는 Dog(철수하거나 전략적 후퇴를 해야 할 브랜드)가 되어 내려앉은 형국이다. 이는 (물론 전체적인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Cash Cow(수익을 위한 브랜드)라 볼 수 있지만) 대장항문질환 치료가 수익과 성장률 면에서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인구가 줄고 있는데다 주 대상자인 노년층의 대다수는 이미 수술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장항문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가 될 수 있는 Question Mark(신규 또는 육성 브랜드)는 그동안 대장의 변방 질환처럼 여겨져 왔던 분야, 예컨대 특화된 탈장수술이나 변비치료를 비롯해 비데, 복용이 보다 용이한 내시경 검사 약제, 대장암 전문 요양기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여타의 전문병원에서도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단지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어떤 Question Mark(신규 또는 육성 브랜드)를 자신의 전문성과 연관 지어 찾아내어 활로를 개척하느냐에 앞으로의 성장 여부가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모 한방병원에서 생산하는 약제 茶라든가 척추 관절 병원에서 개발한 척추교정용 의자 등은 수요 확장을 위한 시도로 보인다.
주변 거주자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동네 의원은, 같은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관절염, 전립선비대증 등의 노인성 질환들을 Question Mark(신규 또는 육성 브랜드)으로 삼아 고객들의 접근성과 만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함으로써 고객 수의 점진적인 누적을 기대해 볼만하다.
예상에 없던 정책의 변화나 규제 강화로 불과 1~2년 만에 Star(주력 브랜드)가 Dog(철수하거나 전략적 후퇴를 해야 할 브랜드)로 바뀌기도 하는 환경 속에서 의료산업이 가야 할 길은 앞으로도 어지간히 험난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도 어떤 돌파구는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결국 개별 병원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과 연관된 새로운 수요, 즉 Question Mark(신규 또는 육성 브랜드)의 발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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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과 후지의 차이] 필름 산업의 쇠퇴와 함께 그 분야의 세계적인 양대 강자 중, 하나는 파산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다른 하나는 거뜬히 살아남았다. 코닥과 후지 얘기다. 아날로그 필름 시장의 소멸에 대비해 디지털 필름 정도의 변신에 그쳤던 코닥과 달리 후지는 의료·검사장비, 복사기, LCD패널 소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결과이다.
후지에게는 지금껏 코닥과 혈투를 벌였던 필름 분야의 매출 비율이 1%도 채 안 된다. 코닥이 당장의 수익에 급급해 필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이, 후지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필름사업을 과감히 털어냄과 동시에 필름 개발과정에서 사용되었던 20만점의 화학물질을 활용, 제약과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던 것이다.
이 회사가 내놓은 ‘아스타리프트’라는 화장품은 필름의 재료인 ‘콜라겐’이라는 단백질을 인간의 피부에 적용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항산화로 사진의 변색을 막아주던 '아스타키산틴' 성분은 피부 노화 억제에도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찾아낸 절묘한 탈출구, 바로 기사회생의 Question Mark이다.
/기고자 : 송재순병원마케팅연구소 송재순 jssong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