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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고 어느덧 그녀의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어버리자, 사정이 달라졌다. 반년 만에 취재 차 다시 나를 찾아온 그녀의 얼굴은 많이 지쳐있었다. 첫눈에 보아도 각질이 심하고 잡티가 많았다. 그녀는 여전히 곱창밴드에 뿔테 안경을 쓴 씩씩한 모습이었지만, 싱싱했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입술보호제 하나 열심히 바르지 않아 세로로 쩍쩍 갈라져버린 그녀의 입술이 나는 너무나 안스러웠다.
“은희 씨, 입술이 많이 텄어요. 립글로스 하나 줄 테니 부지런히 바르세요.”
나는 서랍 안에 있던 립글로스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받으면서 씨익 웃었다.
“어이구, 발라야 한다는 걸 아는데 자꾸 잊어버려서요….”
말이 나온 김에 나는 그녀가 피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은희 씨, 집에서 마사지나 팩 같은 거 하세요?”
“글쎄요. 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 집에 가면 잠자기 바빠서 도통 못 해요.”
“그럼, 씻고 바르는 건 열심히 하는 거죠?”
“씻기야…잘 씻죠. 하지만 바르는 건 베이비 로션 하나 바르면 끝이에요.”
“그래도 자외선 차단제는 바르는 거죠?”
“뭐, 바를 때도 있고…안 바를 때도 있고….”
“으윽! 그럼, 각질제거는 어떻게 해주세요?”
“각질제거요? 글쎄요, 그런 걸 따로 해준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세상에, 은희 씨 여성지 기자 맞아요?”
그날 나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성지는 여성들에게 미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제1 창구이다. 그런데 그 창구의 맨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정보를 열심히 읽어주는 기자조차도 그 내용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은희 씨는 아주 회의적인 말을 했다. 피부는 어차피 타고 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좋은 사람은 뭘 해도 좋은 피부를 유지하고, 이미 나쁜 사람은 별 짓을 다해도 나쁜 피부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왜 이렇게 회의적인 생각을 품게 된 걸까? 그녀는 스물여덟, 아홉 무렵부터 부쩍 달라진 피부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좋다는 화장품, 마사지, 팩 등은 다 써 보았고, 한번은 친구의 꾐에 빠져 마사지 쿠폰을 70만원어치나 끊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부는 아무런 차도가 없었으니, 괜히 월급봉투만 축이 났다는 것. 그때 이후로 그냥 신경 끄고 편이 사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제대로 골랐나요? 자신의 피부타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나요? 식사는 제 때 제대로 먹었나요? 충분히 몸을 쉬어주었나요?”
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모두 “아니요.” 였다.
그러니까 은희 씨는 자신의 피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엉뚱한 제품으로 피부를 혹사시키고는 “피부에 쏟는 모든 정성은 의미가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또한 피부를 위해 자신의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은희 씨에게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말을 열두 번도 더 반복해야 했다.
“노력하세요. 물론 은희 씨는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아요. 그러나 작은 관심만 있어도 변화가 시작된답니다. 얼마나 좋아질지, 언제쯤 그 결과가 눈으로 보일지 기약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노력하세요.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좋아져요. 우리의 몸은 우리가 사랑과 관심을 쏟으면 쏟을수록 예뻐져요. 내 말을 믿고 노력해보세요.”
그날, 은희 씨는 나에게 설득 당했다. 피부미용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그녀가 그날부터 진심으로 피부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희 씨는 그동안 자신이 썼던 피부 관련 기사며, 피부상식을 알려주는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우선 지식부터 갖추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씩 자신의 피부를 파악해나갔고, 제대로 된 세안제, 화장품 등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활을 바꾸었다. 물론 직장 때문에 밤을 새우며 마감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피부를 위해 해줘야 할 일들을 잊지 않았다. 물을 많이 마시고, 가끔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쐬고, 심호흡을 하고, 잠들기 전에는 정성들여 클렌징을 한 후에 수분팩으로 잠시 피부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해냈고,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피부를 바꾸는 데에 성공했다.
간간히 보게 되는 그녀는 훨씬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머지않아 그녀는 조심스레 색조화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푸대자루 같던 넉넉한 옷들을 하나둘 벗어던지더니 점차 여성스럽고 패셔너블한 옷을 즐겨 입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한다며 내게 청첩장을 보내온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피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 적어도 그녀가 피부를 돌보고 아끼면서 자신 역시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여자가 되었기에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피부를 위해 노력하라. 피부를 사랑하라. 그리하면 스스로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맑게 빛나는 피부를 갖고 싶다면, 지식이나 정보보다도,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그 마음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 정혜신 퓨어피부과 원장 gooddoc55@hanmail.net
입력 : 2005.12.16 14:3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