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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요즘 이런 말을 듣는다. “선생님, 잠은 잤는데 수면 점수가 낮게 나왔습니다.” 잠은 잤다. 그러나 숫자가 마음을 흔든다. 잠을 잘 자려는 노력이 오히려 잠을 불안하게 만든다.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슬립 맥싱(Sleep Maxxing)’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수면’과 ‘극대화’가 결합된 표현으로, 잠을 더 잘 자기 위해 생활 조건을 조정하려는 흐름이다. 침실 온도와 블루라이트를 조절하고, 수면 앱과 스마트워치로 잠을 측정한다. 안대, 귀마개, 백색소음, 암막 블라인드, 기능성 잠옷도 일상으로 들어왔다.이제 잠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휴식이라기보다, 돈을 들여 관리해야 할 영역처럼 여겨진다. 숙면을 위한 소비가 확산되면서, 잠을 향한 갈망은 이미 하나의 시장이 되었다.물론 이 흐름을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잠을 소홀히 여기던 사회가 잠의 가치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변화다. 잠은 뇌가 자신을 회복하고,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수면의학에서는 성인에게 하루 7시간 안팎의 충분한 수면을 권고한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존을 지탱하는 리듬이다.문제는 방향이다. 잠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통제하려 드는 것은 다르다. 슬립 맥싱의 출발은 건강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잠은 회복이 아니라 성과가 된다. “오늘 수면 점수가 몇 점이지?” “깊은 잠은 왜 이렇게 짧지?” “어제보다 수면 효율이 떨어졌네.” 침대는 안식처가 아니라 평가장이 되고, 잠은 쉬는 일이 아니라 해내야 할 일이 된다.잠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진다. 불면증 환자들이 자주 말한다. “오늘은 꼭 자야 하는데요.” 그 말이 시작되는 순간, 뇌는 잠잘 준비가 아니라 경계 태세로 들어간다. 자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잠을 깨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수면 수행 불안, 곧 불면에 대한 예기 불안으로 설명한다.좋은 수면 루틴은 필요하다. 일정한 기상 시간, 낮 동안의 햇빛 노출, 규칙적인 활동, 오후 이후의 카페인 제한, 조용하고 어두운 침실 환경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그러나 수면 위생은 잠을 돕는 울타리이지, 잠을 감시하는 CCTV가 아니다. 규칙은 필요하지만, 집착은 해롭다. 잠을 위한 준비가 하루 중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은 수면 관리가 아니라 수면 불안이다.잠은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8시간을 자도 피곤한 날이 있고, 6시간을 자도 개운한 날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리듬이다. 완벽한 하루보다 안정된 일주일이 수면 리듬을 회복시킨다.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잠을 돕는 환경이지, 잠 그 자체는 아니다. 좋은 도구는 몸을 편하게 할 수 있지만, 마음의 긴장까지 대신 내려놓아 주지는 못한다. 잠은 생활의 리듬과 마음의 속도 속에서 온다.슬립 맥싱 열풍의 이면에는 현대인의 불안이 있다. 낮에는 성과를 내야 하고, 밤에는 회복까지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현대인은 쉬는 시간마저 최적화하려 한다.그러나 회복은 더 애쓰는 데서 오지 않는다. 쉬어도 된다는 허락에서 시작된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잠은 감정 조절과 깊이 연결된다. 잠이 부족하면 불안과 우울감은 커지고, 충동 조절은 약해진다. 잠이 회복되면 작은 일에 덜 흔들리고, 감정의 파도도 낮아진다. 잠은 마음의 면역이다.그렇다면 슬립 맥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무조건 비판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준은 바꾸어야 한다. ‘완벽하게 자야 한다’보다 ‘편안하게 잠들 조건을 만든다’가 먼저다. ‘수면 점수를 올린다’보다 ‘내 몸의 리듬을 회복한다’가 우선이다.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도구가 아니라 하루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이다. 침대에서는 걱정보다 쉼을 먼저 허락해야 한다. 잠은 밤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의 리듬이다. 아침의 햇빛, 낮의 움직임, 저녁의 여유, 밤의 내려놓음이 모여 잠이 된다. 밤만 보아서는 잠을 회복할 수 없다. 삶의 속도와 마음의 긴장을 함께 보아야 한다.
칼럼사공정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포항채움의원 원장·사공정규 마음치유아카데미 원장) 2026/05/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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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잠을 자고 난 뒤 목이 뻣뻣하고 고개를 돌리기 어려워지면 흔히 “담이 걸렸다”고 표현한다. 대부분은 잘못된 수면 자세나 근육 긴장으로 생기는 급성 경추 염좌인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목디스크의 초기 신호일 수 있어 증상 양상을 잘 구분해야 한다.급성 경추 염좌는 목 주변 근육과 인대가 갑자기 긴장하거나 미세하게 손상되면서 발생한다. 높은 베개를 사용했거나, 한쪽으로 목을 돌린 채 오래 잠을 잔 경우, 전날 장시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한 경우에 잘 생긴다. 이때 통증은 주로 목과 어깨 주변에 머무르며, 고개를 특정 방향으로 돌릴 때 뻣뻣하고 당기는 느낌이 강하다. 목이 뻐근하고 움직임이 제한되지만 팔 저림이나 손 감각 이상은 동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목의 뻣뻣함은 수면 자세나 과사용으로 생기는 일시적 증상인 경우가 많으며, 며칠 내 호전되는 경우도 흔하다.반면 목디스크, 정확히는 경추 추간판 탈출증은 경추 사이의 디스크가 밀려나 신경을 자극하면서 발생한다. 단순히 목만 아픈 것이 아니라 어깨, 팔, 손끝으로 통증이나 저림이 뻗치는 것이 특징이다. 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팔까지 내려가거나, 손이 저리고 힘이 빠지는 증상이 동반된다면 단순 근육통보다 신경 압박을 의심해야 한다. 경추 신경근병증은 목의 신경뿌리가 압박·염증을 받으며 팔로 뻗는 통증, 감각 저하, 근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두 질환을 구분하는 핵심은 통증의 범위와 신경 증상 여부다. 급성 경추 염좌는 목 주변에 통증이 국한되고,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디스크는 목을 뒤로 젖히거나 한쪽으로 돌릴 때 팔까지 찌릿한 통증이 내려가고, 손가락 감각이 둔해지거나 물건을 잡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 목 통증과 함께 팔이나 손의 저림, 근력 저하, 어깨 아래로 뻗치는 통증이 있다면 진료가 필요하다는 점도 일반적인 의학 권고와 일치한다.초기 급성 경추 염좌라면 무리한 마사지나 강한 스트레칭보다는 목을 편안하게 유지하고, 온찜질로 근육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통증이 심한 초기에는 갑자기 목을 꺾거나 강하게 돌리는 동작은 피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대부분 증상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다만 통증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팔 저림과 감각 저하가 함께 나타나거나, 고개를 움직일 때 전기 오는 듯한 통증이 반복된다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엑스레이로 경추 정렬을 확인하고, 신경 압박이 의심되면 MRI 검사를 통해 디스크 탈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목디스크라고 해도 대부분은 약물치료, 물리치료, 주사치료, 자세 교정 등 비수술적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근력 저하가 진행되거나 신경 압박이 심한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자고 일어난 뒤 목이 안 돌아가는 증상은 흔하지만, 모두 같은 원인은 아니다. 단순한 담 결림인지, 목디스크의 초기 신호인지는 통증의 방향과 동반 증상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목 통증이 반복되거나 팔 저림까지 이어진다면 참고 넘기기보다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작은 목 통증도 신경 증상이 동반된다면 몸이 보내는 중요한 경고일 수 있다.(*이 칼럼은 김현우 안양윌스기념병원 척추센터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김현우 안양윌스기념병원 척추센터 원장2026/05/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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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7명이 ‘안구건조 증상을 겪어본 적이 있다’고 답할 만큼, 안구건조증은 이제 현대인의 고질병이 됐다. 안구건조증이 있으면 눈이 뻑뻑하거나 모래가 들어간 듯한 이물감이 느껴지며, 눈물이 눈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유 없이 쏟아지기도 한다.이런 증상이 있을 때 가장 흔히 찾는 해결책이 바로 ‘인공눈물’이다. 다만, 약국에서 판매하는 인공눈물은 종류가 다양하고 저마다 특성과 효과가 달라, 일반 소비자가 제품을 정확히 구분해 선택하기 쉽지 않다. 올바른 인공눈물 선택·구매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첫 번째, 인공눈물은 다회용 병 포장과 1회용 낱개 포장으로 된 제품이 있다. 다회용 병 포장은 인공눈물을 자주 넣어야 하는 경우에 1병당 60~90회 투약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고 저렴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면 안약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유효기간은 개봉 후 1개월이 된다. 안약을 다 소비하지 못했더라도 남은 건 버려야 한다.그에 반해 1회용 포장은 30개가 들어가 있는 제품의 경우 30번만 사용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양이 적다고 볼 수 있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그러나 1회용이기 때문에 보존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다회용 병 포장의 경우에는 뚜껑을 열고 여러 번 써야하기 때문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벤잘코늄이나 클로르헥시딘글루콘산염 같은 보존제가 들어가 있다. 보존제가 없는 제품을 찾는 경우에는 가격이 약간 더 비싸더라도 1회용 안약으로 구입해야 한다.두 번째, 자극이 없는 순한 안약이 있고 시원한 느낌의 청량감을 주는 안약이 있다. 점안 시 시원한 느낌을 주는 안약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멘톨 성분의 양에 따라 0~5단계로 나뉜다. 강한 청량감을 원하는 경우 4~5단계 ‘쿨하이’, ‘아이스’ 제품을 선택하면 되고, 중간 정도의 산뜻한 청량감을 원하는 경우엔 2~3단계 ‘라이트’, ‘쿨’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점안 시 자극적인 게 싫으면 아무 자극이 없는 0단계의 ‘순’ 제품으로 구입하면 된다.세 번째, 인공눈물은 제품에 따라 지속시간이 다르다. 점안 했을 때 부작용이나 이물감 등도 제품마다 다르기 때문에 구성 성분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 보통은 지속시간이 짧은 인공눈물이 ‘점도가 없는 물’에 가깝기 때문에 점안 시 이물감이 없고 편안하다. 안구건조가 심하지 않고 자주 넣지 않는 경우에는 염화칼륨·염화나트륨이 들어간 안약을 선택하면 된다. 안구건조가 심해서 안약을 자주 넣어야 하는 경우에는 작용 지속시간이 더 긴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눈에 눈물이 더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하는 점증제가 추가된 제품을 선택하면 좋다. 점증제도 지속시간에 따라 단계별로 나뉜다.일반의약품 안약 중에서 작용시간이 가장 긴 성분은 ‘트레할로스’고, 그 다음은 ‘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 1%’다. 그 보다 짧게 유지되는 성분은 ‘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 0.6%’고, 그 다음은 ‘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 0.5%’다. 이보다 더 짧게 유지되는 점증제는 ‘히프로멜로오스’다. 그러나 작용 지속시간이 길수록 점도가 진해 점안 시 시야 흐림, 끈적임 같은 부작용을 더 느낄 수 있으므로 본인에게 적합한 안약을 선택하면 된다.네 번째, 인공눈물에 영양제 성분이 추가된 안약이 있고 영양제가 없는 제품이 있다. 흔한 영양제 성분은 ▲포도당 ▲타우린 ▲콘드로이친 ▲아스파르트산 ▲비타민A·B6·E ▲PDRN 등이 있다. 포도당은 각막에 에너지를 공급해 눈의 신진대사를 돕고, 타우린은 항산화 작용과 삼투보호 작용을 통해 각막을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다. 콘드로이친은 눈꺼풀과 각막 사이에 윤활작용을 해 각막 손상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각막이 재생되는데도 도움을 준다. 아스파르트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서 눈의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며, 비타민A는 점막 보호작용으로 마이봄샘에서 눈물이 잘 분비되도록 돕는다. 비타민B6는 세포의 신진대사를 잘 돌려주고, 비타민E는 항산화작용을 통해 각막의 세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끝으로 PDRN 성분은 폴리데옥시리보뉴클레오티드 혼합물로, 미세하게 손상된 각막·결막의 회복·재생에 필요한 원료를 제공한다.이처럼 인공눈물은 각 제품마다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제품 정보를 알아두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순한 안약인지 ▲청량감이 강한 안약인지 ▲지속시간이 짧고 이물감이 없는 안약인지 ▲지속시간이 긴 안약인지 등을 확인하고 선택하면 된다.인공눈물을 넣을 때는 우선 손을 씻고, 안약의 유통기한과 탁도를 확인한다. 일회용 안약의 경우, 뚜껑을 딸 때 발생하는 미세한 플라스틱 파편이 섞일 수 있으므로 첫 한 방울은 버리도록 한다. 이후 고개를 뒤로 젖히고 검지로 아래 눈꺼풀을 살짝 당겨 붉은 살이 보이는 ‘결막낭’ 공간을 만들어 준 뒤, 용기 끝이 눈이나 속눈썹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결막낭 위로 1방울만 떨어뜨린다. 인공눈물은 많이 넣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어차피 눈이 수용할 수 있는 양은 한정돼 있다. 점안 후에는 눈을 깜빡이지 말고 지그시 감고, 그대로 약 1~2분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인공눈물을 넣은 뒤 눈을 세게 감으면 비루관을 통해 눈물이 빠져나갈 수 있다.인공눈물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회용 안약의 사용기한은 ‘개봉 후 1개월’이며, 1회용 제품은 ‘개봉 후 24시간’이다. 점안 시 통증, 충혈, 가려움 등이 증상이 있으면 정확한 진단과 안약의 부작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용을 중단하고 의사·약사와 상담하도록 한다.
칼럼엄준철 약사 (성균관대학교 약대 겸임교수)2026/05/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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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악뮤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이 올해의 노래로 선정됐다. 요즘 청년 세대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 현상을 반영한 것 같은 이 노래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Back in the day,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사랑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고 한다. 낭만적 사랑의 시작을 근대시대로 보는 주장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심지어 성경의 창세기에도 아담과 이브의 사랑이 나오는 것을.실제로 고대 역사에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시대 무렵에는 사랑을 노골적으로 다룬 시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사랑은 빼 놓을 수 없는 셈이다. 단, 그때의 사랑은 결혼과는 큰 연관성이 없었다. 중세 시대에만 해도 사랑은 결혼 밖에서 노래됐다. 결혼이 가문과 권력의 질서였다면, 사랑은 그 질서 바깥에서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을 흔드는 문학적 사건이었다. 근대에 들어서서야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랑이 결합됐다.어쨌건 적어도 우리에겐 서로를 사랑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다음, 출산을 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전형적인 사랑의 모델이었다. 그런데 그 모델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2025년에 진행된 한 연구를 보면 20~49세 미혼 남녀 중 71.7%가 현재 연애를 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20대 응답자 중 29.8%는 연애 경험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2024년 통계청의 자료를 봐도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미혼 남성은 41.6%, 미혼 여성은 26%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도 결혼도 모두 관심이 없는 셈이다. 정말 사랑은 끝나는 것일까?사랑의 종말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질문은 조금 기괴하게 들릴 수도 있다. 마치 한 드라마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라고 대답했었던 것처럼 ‘마음이 끌리고 설레니까 사랑을 하지, 뭔 쓸데없는 질문을’이라고 생각할 만하다.하지만 조금은 더 근본적인 ‘왜’를 생각해보자. 인간의 모든 마음과 행동에는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1차적인 원인을 이야기하자면 당분이 들어오면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당분이 들어오면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하는가? 진화론적 심리학의 관점을 빌리자면, 단맛이 우리의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정돼 있다. 어떤 행동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이득 행동이 되면, 이 행동의 재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긍정적인 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인류의 생존에 매우 필요한 것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현생 인류의 장점은 뛰어난 지능이었다. 장점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화되면서 인류의 뇌는 더 커져갔고, 산도(분만통로)로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이른다. 그리해 인류가 선택한 방식은 ‘작게 낳아 크게 기르자’였다. 다 좋았으나, 너무 작게 낳아서, 그래서 너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지나치게 오랜 양육 기간을 갖게 된다. 이러니 어떠하겠는가? 배우자와의 장기적인 유대와 협력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즉,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인 것이다. 실제로 뇌과학의 연구 결과들은 사랑이 뇌의 보상 회로와 연관이 깊다고 보고하고 있다.또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다시 묻게 된다. 취향이 바뀌고, 미래가 확장되고, 약점이 드러나고, 정체성이 재구성된다. 사랑은 현재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고, 개인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그래서 사랑은 인간이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 중 하나다. 사랑은 타인을 만나는 경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사건이다.그래서 사랑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연애를 하지 않고, 가정을 꾸리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확인하고, 타인과 연결되고,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포기하는 일에 가깝다.청년들이 사랑을 안 한다고 하지만, 사랑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는 뜨겁고, 로맨스 웹툰, 웹소설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I에서도 연애 상담이 인기라고 한다. 지난해 데이팅 앱 및 소셜 디스커버리 앱의 수익이 확대됐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하지 않는 세대의 사랑에 대한 여전한 관심. 결국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랑을 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청년들이 택한 그들의 생존 전략이 아닐까 싶다.사라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랑이 자연스럽게 시작될 수 있었던 삶의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가 돼야 할 것이다.
칼럼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2026/05/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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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환자나 기저질환을 동반한 환자에서 담낭 수술은 출혈과 합병증 위험이 높아 더욱 정교한 술기가 요구된다. 최근 이러한 고위험 담낭 수술에서 ‘단일공 로봇수술’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단일공 로봇수술은 기존 복강경 수술의 한계를 보완하면서도 환자 안전성과 회복 속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진보된 수술법이다.담낭은 간 아래 위치해 담즙을 저장·농축하는 장기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이 담석증과 담낭염이다. 담낭질환은 담즙 내 콜레스테롤 농도 증가, 담즙 정체, 비만, 고지방 식습관, 급격한 체중 감소, 임신, 당뇨병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층과 여성에서 비교적 흔하게 나타난다.주요 증상으로는 오른쪽 윗배 통증(우상복부 통증), 명치 통증, 소화불량, 메스꺼움, 구토 등이 있으며, 식사 후 특히 기름진 음식을 섭취한 뒤 통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염증이 진행되면 발열이나 오한이 동반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담관 폐쇄로 황달이 나타나기도 한다.초기에는 단순 소화불량으로 오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이 반복되거나 지속될 경우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실제로 과거 복부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60대 환자는 심한 복강 내 유착으로 인해 일반적인 복강경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유착이 심한 경우 장기 손상이나 출혈 위험이 높아 개복수술로 전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해당 환자는 단일공 로봇수술을 통해 담낭절제술과 유착박리술을 동시에 시행 받았고, 합병증 없이 빠르게 회복해 일상으로 복귀했다.고위험 유착 환자에서도 단일공 로봇수술이 안전하게 시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정밀한 기구 조작과 확대된 시야 확보가 수술 결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담낭은 간 아래 위치해 있으며 혈관과 담관이 밀집돼 있어 수술 시 정밀도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염증이 심하거나 유착이 있는 경우 해부학적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수술 성패를 좌우한다.단일공 로봇수술은 배꼽 부위 하나의 절개창을 통해 로봇 기구를 삽입해 수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로봇 시스템은 의료진의 손 떨림을 보정하고 3차원 고해상도 영상을 제공해 좁고 복잡한 담낭 주변 구조를 더욱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특히 미세한 조직 박리가 가능해 출혈을 줄이고, 주변 장기 손상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고위험 환자군에서 유용성이 크다.고령, 비만, 반복 수술로 유착이 심한 환자일수록 수술 난도가 높아지는데, 로봇수술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단일공 로봇수술은 단순히 흉터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수술의 안전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앞으로도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의 수술법을 선택해 치료 결과를 향상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다.(*이 칼럼은 이철승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부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이철승 부원장2026/05/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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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피자는 전세계적으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하와이안’ 피자라고 불리지만, 캐나다에서 그리스인이 고안했다는 점 또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62년, 온타리오주의 그리스계 캐나다인인 샘 파노폴로스가 자국의 음식 가운데 단맛과 신맛이 공존하는 게 많다는 점에서 착안해 처음 만들었다. 토마토소스와 치즈 위에 햄과 베이컨, 그리고 파인애플을 얹어 구워낸 하와이안 피자는 이후 꾸준히 인기를 얻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2014년 ‘타임’지는 파인애플 피자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피자’ 13위에 선정했다. 한편 2017년, 아이슬란드의 6대 대통령인 그뷔드니 요하네손은 ‘피자에 파인애플 얹는 것을 반대한다’며 21세 이하 유권자의 표를 30퍼센트 이상 얻으면 파인애플 피자를 법으로 금지하겠노라고 농담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이 피자의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와 전혀 상관이 없고 파노폴로스가 쓴 ‘하와이안 파인애플 컴퍼니’의 통조림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나저나 하와이안 피자는 왜 그렇게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까? ‘과일, 단맛의 고명이 피자에 올라가는 게 싫다’는 이유가 가장 큰데, 무생채를 소금 아닌 설탕에 절여 만들 정도로 음식이 달아진 한국에서는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단맛 나는 무생채가 일상의 반찬이라면 파인애플 피자 정도가 그렇게 부담스러울리 없다. 더군다나 하와이안 피자의 파인애플은 함께 먹는 동물성 고명인 햄과 베이컨, 치즈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단맛도 단맛이지만 신맛이 따라오므로 이들 재료의 느끼함을 잘 덜어내준다. 한편 파인애플은 소화를 돕는 단백질 분해 효소인 브로멜린을 함유하고 있으니 피자의 소화 또한 도와줄 수 있다. 브로멜린은 매우 강력한 연육제로 육류의 펩타이드 결합을 끊어 소화기관의 부담을 덜어준다. 브로멜린은 무화과에서 추출한 효소 피신이나 파파야에서 추출한 파파인과 더불어 시중에서 판매하는 연육제의 주요 성분이다. 명칭부터 ‘연육제’라니 질긴 고기를 매우 부드럽게 만들어 줄 것 같은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정 조리에서는 크게 필요가 없다. 위력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고기가 부드러워지는 정도를 넘어 누더기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파인애플을 비롯해 배(인버타제, 옥시다아제), 키위(액티니딘) 등을 갈아 넣는 ‘비법’이 가정에서 전해내려오는데 요즘은 그다지 권하지 않는다. 특히 갈비찜처럼 푹 익히는 요리에 빈번하게 쓰여왔지만 요즘의 소들은 고기를 먹기 위해 애지중지 키워온 것들이라 어머니나 할머니 시대의 소, 특히 육우들처럼 육질이 질기지 않다. 차라리 효율이 좋은 압력솥을 써 짧은 시간에 더 부드럽게 조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열렬하게 싫어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와이안 피자는 오늘도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2019년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가운데 12%가 파인애플을 가장 좋아하는 고명 세 가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같은 설문에서 24%가 파인애플을 가장 싫어하는 고명 가운데 하나로 꼽기는 했지만 안초비나 가지에 이어 고작 3위였다. 음식평론가로서 변호를 하자면 앞서 언급했듯 파인애플은 단맛과 신맛 덕분에 동물성 식재료, 특히 돼지고기와 좋은 짝이다. 멜론과 이탈리아의 염장 햄 프로슈토를 같이 먹는 조합이 고전처럼 통하는데 사실 멜론을 파인애플로 대체하면 한결 더 맛있다. 많은 경우 제대로 숙성시키지 않아 무처럼 아삭거리는 멜론을 먹는데 그보다 잘익은 파인애플을 찾기가 훨씬 더 쉽다. 밑둥을 코에 가져다 댔을때 향이 나는 것을 고르면 된다.
칼럼이용재 음식평론가 2026/05/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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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자=이강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장)2026/05/1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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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해지며 대기 중의 꽃가루와 먼지가 늘어나는 이 시기는 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에게 유독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진료실에서 탈모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알레르기 비염이나 아토피를 동반한 사례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몸의 면역 시스템이 공유하는 일종의 공통된 경로 때문이다. 모발을 생성하는 모낭은 단순히 독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전신 면역 체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기관이기에, 비염으로 인한 전신적 면역 불균형은 모발의 성장주기까지 흔드는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된다.최근 연구들은 비염이 초래하는 전신적인 면역 불균형이 모발 건강, 특히 안드로겐성 탈모의 진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역학 조사는 비염과 탈모라는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질환 사이의 긴밀한 병태생리학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보여주었다.이러한 연결고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물질이 바로 프로스타글란딘D2(PGD2)이다. 알레르기 반응 시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D2는 비염의 전형적인 증상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모낭에 도달했을 때 모발 성장을 억제하고 모발이 탈락하는 시기인 휴지기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결정적인 인자로 작용한다. 실제로 탈모가 진행 중인 두피에서는 이 물질의 수치가 정상 두피보다 현저히 높게 측정된다. 비염으로 인해 증가한 전신적 염증 물질들이 혈관을 타고 두피까지 도달하여 모낭 주위에 미세 염증을 유발하고, 결국 안드로겐성 탈모의 발생 위험을 1.81배나 높이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비염 치료가 탈모 예방에 실질적인 임상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최근 연구는 매우 고무적인 답을 제시한다. 흔히 처방되는 2세대 항히스타민제를 꾸준히 복용한 그룹에서 탈모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항히스타민제는 비염 증상 완화를 넘어, 탈모를 촉진하는 프로스타글란딘D2의 방출은 억제하고 모발 성장에 이로운 프로스타글란딘E2(PGE2)의 농도는 높여주는 일종의 모낭 보호막 역할을 수행한다.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항히스타민제 복용 군은 비복용 군에 비해 탈모 위험이 약 77%나 낮게 나타났다. 특히 이러한 예방 효과는 약물의 누적 복용량이 많을수록 더욱 강력해지는 ‘용량 의존적’ 양상을 보였다. 누적 복용량이 많은 그룹에서는 탈모 위험 지수가 평소의 약 10분의 1 수준인 0.12까지 급격히 감소했다. 증상이 발현될 때만 간헐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 꾸준히 비염을 관리하는 것이 모발 건강을 지키는 데 훨씬 효과적임을 보여준다.임상적으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연령대에 따른 반응의 차이다. 30세 미만의 젊은 비염 환자군에서 항히스타민제의 탈모 예방 효과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젊은 시절의 모낭 구조가 약물에 의한 면역 조절에 더욱 기민하게 반응하고 회복 탄력성이 높기 때문이다.아직 젊으니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비염을 방치하는 행위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탈모를 가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비염으로 인한 전신적 염증 부하는 모낭의 안드로겐 수용체 민감도를 높여 탈모의 진행 속도를 가속한다. 만성 비염을 앓고 있으면서 모발이 가늘어지는 초기 징후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신체가 보내는 긴급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비염이라는 전신 면역 질환을 체계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호흡기 건강은 물론 소중한 모발의 임상적 궤적을 지키는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김진오 뉴헤어 성형외과 원장(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수석탈모분과위원장) 2026/05/1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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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혹은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우셨던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행복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비어 있는 듯한 느낌. 어떤 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까닭 모를 한숨이 새어 나왔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휴가 직전보다 오히려 더 피로하고 무기력해졌다고 한다. 이 마음, 그저 휴가가 끝나서 아쉬운 정도의 일이 아니다.휴가 후 증후군,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정신의학에서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여두었다. ‘휴가 후 증후군(post-vacation syndrome)’ 또는 ‘재진입 우울(re-entry depression)’이라고 부른다. 휴가가 끝난 직후 며칠에서 길게는 2주 정도, 의욕 저하와 집중력 감소, 수면 리듬의 교란, 잔잔한 우울감이 함께 찾아오는 일군의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료실에서도 이 호소를 자주 듣는다. 길었던 황금연휴가 끝난 직후, 8월 중순 여름휴가가 마무리된 후에 외래 예약이 평소보다 늘어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중요한 점은 이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이 환경의 큰 변화에 반응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신호일 뿐이다.여행이 진짜로 주는 선물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풍경도, 음식도, 사진도 아니다. 그것은 ‘잠깐 다른 자기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의무, 역할, 평가, 누군가의 기대, 이 모든 것에서 잠시 풀려난 자기. 평소에는 ‘○○○ 부장’이고 ‘누군가의 부모’였던 사람이, 낯선 도시의 카페에서는 그저 한 명의 여행자가 된다.그러한 자기가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휴가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자기는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자기로 돌아가야 한다. 마치 잠시 벗어두었던 무거운 갑옷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입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갑옷의 무게는 휴가 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잠시 벗어본 가벼움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 그 무게가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우리가 여행에 늘 데려가는 한 사람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리브해의 한 휴양지로 떠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야자수 앞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새파란 바다와 흰 모래뿐이 아니었다. 평소 그를 짓누르던 짜증과 걱정과 작은 두통도 함께였다. 풍경은 분명 바뀌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은 한 발자국도 옮겨지지 않은 채 거기 있었던 것이다.그가 짚어낸 핵심은 이것이다. 어디로 떠나든 우리는 한 사람을 늘 함께 데려간다.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 자기를 어떻게 다룰지 모르는 한, 풍경만 바꾼다고 마음이 따라 바뀌지는 않는다.이 통찰은 휴가 후 우울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많은 분들이 휴가 후의 무거움을 ‘여행이 너무 좋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오래 관찰해온 결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여행 후 우울은 여행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이 충분히 회복적이지 않다는 신호다. 평소의 일상 속에 작은 회복의 시간들, 예컨대 편안한 저녁, 가까운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 잠깐의 산책이 자리 잡고 있다면, 휴가 후의 무게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휴가가 일상의 부족함을 잠시 덮어주었던 것뿐이고, 그 덮개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일상의 빈틈이 더 또렷이 드러나는 것이다.더 자주 떠나는 것이 답일까그래서 환자분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그러면 휴가를 더 자주 가면 되지 않을까요?” 마음의 메커니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행복 연구에서 잘 알려진 개념 중에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뇌는 어떤 새로운 자극에도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같은 종류의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그 강도는 점점 줄어든다. 휴가의 횟수를 늘려간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이 비례해 쌓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답은 휴가의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일상이 회복의 기능을 되찾도록 만드는 데 있다. 거창한 변화일 필요는 없다. 평일 저녁 10분의 산책, 주말 한 끼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자기 전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이런 작은 회복 의식들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휴가는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좋은 삶에 더해지는 보너스가 된다.지난 글에서 ‘집은 회복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직후의 무거움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면, 그 무게를 그저 견뎌내려 하지 말고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란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보내고 있는 가장 정직한 신호일지 모른다.
칼럼한승민 선릉숲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2026/05/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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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 시기부터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음악이나 수학, 언어 등 특정 분야에서 또래보다 빠른 성취를 보이는 아동이 늘어나면서 부모들 사이에서는 “우리 아이도 영재가 아닐까”라는 기대와 함께 조기 교육이나 조기 진급에 대한 고민도 증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이의 발달을 바라볼 때는 단순히 성취의 속도만이 아니라, 발달의 본질과 균형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일반적으로 영재(prodigy)는 특정 영역에서 또래보다 현저히 뛰어난 수행 능력을 보이며 어린 나이에 성과를 나타내는 경우를 의미한다. 반면 천재(genius)는 단순한 조기 성취를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거나 기존 틀을 뛰어넘는 창의적 사고를 보이는 경우를 뜻한다. 또 수재는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과 성실성을 통해 높은 성취를 이루는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임상과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명확히 구분되기보다 서로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최근에는 매우 어린 시기부터 또래를 앞서는 학습 능력과 예술적 재능을 보이는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초고도 영재 아동은 유아기부터 수학적 사고나 언어 능력, 음악적 표현 등 특정 영역에서 빠른 발달을 보이기도 한다. 이 가운데는 표준화된 지능검사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거나 학교 교육 과정에서 조기 진급이 논의되는 경우도 있다.하지만 중요한 점은 아동의 발달이 하나의 축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발달은 인지와 언어뿐 아니라 정서, 사회성, 운동 기능 등 다양한 영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특정 영역의 발달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모든 영역이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특히 영재 아동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특징 중 하나가 ‘비동시적 발달(asynchronous development)’이다. 이는 인지 능력은 또래보다 앞서 있지만 정서 발달이나 사회성은 반드시 같은 수준으로 따라가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학습 능력에서는 높은 성취를 보이더라도 또래 관계 형성이나 학교 적응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예를 들어 사고 수준은 높지만 감정 조절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좌절 상황에서 과도한 반응을 보이거나, 또래와 관심사가 달라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조기 진급 이후 학업 성취 자체보다 정서적 부담이나 또래 관계 문제, 자기 조절의 어려움으로 상담을 받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따라서 학습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육 과정을 앞당기는 결정은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아동의 전반적인 발달 상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장기적인 성취는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성장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예술이나 전문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루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초기 재능 자체보다 장기적인 발달 과정과 환경의 영향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훈련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적절한 교육 환경, 자기 조절 능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특히 자기 조절 능력은 장기적인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는 단순한 집중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힘, 실패를 경험했을 때 이를 견디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빠른 학습 환경에 노출될 경우 단기적인 성취는 가능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장기적인 성장에는 부담이 될 가능성도 있다.영재 아동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결국 ‘속도’보다 ‘균형’이다. 인지 발달이 빠르다는 점은 분명 중요한 강점이지만, 정서와 사회성 발달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장기적인 적응과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부모는 자녀의 뛰어난 능력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아이가 현재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지, 또래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조절할 수 있는지, 실패와 좌절 상황에서도 회복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영유아기와 학령 초기에는 이러한 전반적인 발달 상태가 이후 성장 경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영재 아동의 조기 성취는 분명 의미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빠른 발달이 곧바로 건강한 성장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발달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영역이 조화를 이루며 진행되는 과정이다. 아이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빠른가”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부모와 교육자의 역할 역시 아이의 능력을 무조건 앞당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지속 가능하도록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있다. 결국 그것이 아이의 잠재력을 가장 건강하게 실현하는 길이다.(*이 칼럼은 임신영 임신영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임신영 임신영재활의학과의원 원장2026/05/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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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통을 소화불량으로 여겨 방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통증이 24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점점 심해진다면 ‘충수염(맹장염)’을 의심해야 한다.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염증이 복강 전체로 퍼지는 복막염으로 진행될 수 있어서다.충수염은 대장 시작 부위에 붙어 있는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주로 충수 입구가 막히면서 발생한다. 분변석이나 림프조직 비대, 이물질 등에 의해 막히면 내부에 세균이 증식하고 염증이 악화된다. 시간이 지나면 내부 압력이 증가해 혈류가 차단되고, 심할 경우 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충수염 통증은 시간 경과에 따라 특징적으로 변화한다. 초기에는 명확한 위치를 짚기 어려운 배꼽 주변 또는 상복부 통증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내장 신경이 자극을 받으며 나타나는 통증으로, 단순 체기나 소화불량으로 오인하기 쉽다.하지만 염증이 진행되면서 통증은 점차 오른쪽 아랫배로 이동하게 된다. 이 시점부터는 통증 부위가 비교적 명확해지고, 움직이거나 기침할 때 통증이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손으로 눌렀다가 뗄 때 통증이 더 심해지는 ‘반발통’이 나타난다면 복막 자극이 시작됐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 경우 이미 염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볼 수 있어 빠른 진료가 필요하다.시간이 더 지연되면 통증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증상이 호전된 것이 아니라 충수가 터지면서 압력이 감소한 경우일 수 있다. 이후 복강 내로 염증이 퍼지면서 복부 전체에 심한 통증과 발열이 나타나는 복막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충수염은 통증 양상이 ‘이동하고, 점점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복통은 반드시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실제 30대 직장인 A씨는 복통을 단순 소화불량으로 생각하고 하루 이상 진통제로 버티다가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충수염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천공 직전까지 악화돼 있었다. 결국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초기 치료에 비해 입원 기간도 길어졌다. 충수염은 보통 24~48시간 사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질환이다. 초기에 치료하면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지연될 경우 복막염 등 합병증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치료는 대부분 수술로 진행되며, 최근에는 최소 침습 수술이 보편화되고 있다. 배꼽 부위에 약 1~2cm 정도의 절개를 한 뒤, 하나의 통로로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삽입해 충수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기존 복강경 수술보다 절개 부위가 적어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고, 수술 후 통증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회복이 빠르고 일상 복귀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미용적 만족도가 높아 젊은 환자층에서 선호도가 높다.다빈치 SP 로봇수술은 단일 포트(Single Port)를 이용하는 로봇수술로, 하나의 절개창을 통해 여러 개의 로봇 팔이 동시에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고해상도 3D 시야와 정교한 관절 움직임이 가능해 좁은 공간에서도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다. 또 주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출혈과 합병증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염증이 진행된 경우나 해부학적 구조가 까다로운 환자에서 보다 안정적인 수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충수염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단일공 복강경이나 로봇수술 등 최소 침습 수술 적용이 용이하다. 통증을 참거나 방치하기보다, 증상이 의심되면 빠르게 진단받는 것이 중요하다.(*이 칼럼은 이관철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진료부장의 기고입니다.)
칼럼이관철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진료부장2026/05/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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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라고 하면 선뜻 생각나는 것이 아마도 녹용과 감초가 아닐까 싶다. 녹용은 가장 익숙한 보약 재료로서의 한약재이고, 감초는 ‘약방의 감초’라는 속담에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속담에 쓰일 정도로 유명한 감초는 정말로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어울릴까?실제로 그러하다. 실제 조사 결과 한약 처방의 60%에 감초가 포함된다고 하니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한의학적으로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감초는 어떠한 역할을 하기에 이렇게 어지간한 한약 처방에 빠지지 않는 걸까?감초의 재미있는 점은 생(生)감초와 자(炙)감초의 효능이 다르다는 점이며, 약방의 감초처럼 일반적인 처방에서는 대부분 자감초를 사용한다. 자감초는 한약 처방 속 약재 각각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약효를 조화롭게 만든다. 즉 처방의 주요 성분 약재로 작용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약재들의 효능을 더욱 균형을 잡게 만들어준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감초가 다른 한약의 성분 추출을 증가시키거나 새로운 화합물을 형성한다는 근거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일례로 계지와 감초를 함께 끓이면 계지의 일차성분이 증가하며, 시호소간산이라는 한약의 경우 감초가 핵심 약재인 시호의 성분 추출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존재한다.스포츠로 치면 스타플레이어나 최전방 공격수라기보다는 그 밑에서 온갖 궂은 일을 맡아 팀을 유기적으로 조율하며 스타 플레이어들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으니, 어지간한 처방에는 감초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생감초는 효능이 약간 다르다. 생감초는 조금 더 대량으로 쓰여 강한 해독 및 항염증 효과를 낸다. 얼마 전 언급한 적이 있는 부자의 아코니틴 성분은 상당히 강력한 심장독성을 가지는데, 예전부터 한의학에서는 부자의 독성을 제어하기 위하여 감초와 배합하여 사용해 왔다. 실제 감초와 부자를 함께 끓이면 부자의 아코니틴 함량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감초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너무나도 익숙한 약재이지만 국산 한약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감초는 건조한 곳에서 주로 재배되어 다습한 우리나라 기후와는 잘 맞지 않는 것.세종대왕 시절부터 감초를 국내에서 재배하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21세기가 된 아직까지도 완벽한 국산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최근에는 조금씩 국산 감초도 모습을 보이고 있어 언젠가 약방의 감초가 전부 국산으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이런 감초가 최근 누명을 쓴 일도 있다. 요새는 덜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약 먹는다고 하면 한약에 스테로이드가 들어있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는 감초에 천연스테로이드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발생한 오해, 또는 음해였는데, 감초의 천연 스테로이드 성분인 무기질 코르티코이드와 양약에서 사용하는 합성스테로이드(당질코르티코이드)는 전혀 다르다.가장 직접적인 비교로 양약에서 사용하는 합성 스테로이드는 도핑 금지 성분이지만 감초는 도핑 금지 한약재가 아니다. 또한 감초만 아니라 마, 콩에도 감초와 같은 천연 스테로이드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니 충분히 안심하고 복용해도 된다.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잘 먹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감초 사탕이 상당히 많이 섭취되고 있으며, 특히 네델란드의 경우 1인당 연평균 2kg의 감초를 섭취한다고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초를 너무 많이 복용하면 가성 알도스테론혈증이 나타나 고혈압, 저칼륨혈증, 부종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병태가 발생하려면 감초를 하루 100g 이내로 수십 일간만 복용하여 과다 복용, 장기간 복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감초의 경우 감초 자체만을 집에서 연하게 끓여 차처럼 마셔도 좋지만, 목이 아픈 경우에 도라지 30g, 감초 10g를 물 2리터에 넣고 끓여 차처럼 마시면 좋은 식으로 다른 한약재와 함께 배합하여 차처럼 마시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칼럼최윤용 한의사(으뜸생약 대표)2026/05/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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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퉁 부은 아침 얼굴을 보고 호박즙 한 포를 마시거나 부기 전용으로 칼륨 영양제를 사놓고 드시는 분이 많습니다. 홈쇼핑, 각종 SNS에서는 ‘아침 부기= 칼륨 부족’이라는 인식이 있고, 부기를 제거하기 위해 각종 붓기차, 호박즙, 팥물을 판매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칼륨이 나트륨을 배출해 준다’는 단편적인 생리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보면, 이 의학적 기전의 '효과 크기'와 '용량의 한계'를 교묘하게 지운 채, "나트륨을 배출하니 호박즙, 팥물, 칼륨 영양제면 얼굴 부기도 싹 빠지겠지"라는 과장된 기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오늘은 ‘칼륨 영양제가 아침 붓기를 뺀다’는 상식을 근거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오늘의 퀴즈: 부기차, 호박즙, 팥물, 칼륨 영양제를 먹으면 아침 얼굴 부기가 확 빠질까?정답은 X입니다.“원인이 무엇이든, 호박즙이나 팥물에 풍부한 칼륨이 나트륨과 수분을 빼주는 것은 맞으니 먹으면 좋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일부는 맞습니다. 칼륨이 신장에서 나트륨 배출하는 기전은 명확히 입증돼 있습니다. 하지만 얼굴 부기를 눈에 띄게 뺄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고려사항아침 얼굴 부기의 주된 원인은 '칼륨 결핍'이 아니라, 체액의 재분포 입니다.우선, 칼륨의 효과를 논하기 전에, 먼저 아침에 얼굴이 왜 붓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밤에 평평하게 누워 수면을 취하게 되면, 낮 동안 중력에 의해 다리 쪽으로 내려가 있던 체액이 수평 상태를 유지하며 얼굴, 특히 눈꺼풀과 뺨의 느슨한 조직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즉, 아침의 얼굴 부기는 체내 칼륨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수면 자세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습니다.여기에 전날 밤 섭취한 과도한 나트륨(야식)과 알코올이 삼투압 작용으로 체액을 더 강하게 붙잡아두면서 부기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저칼륨 식단이 부종을 악화시킬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아침 부기의 주된 원인은 칼륨 결핍이 아닙니다.핵심 근거1.일반인에게는 전신 수준의 체액 변화 효과가 매우 미미합니다.칼륨이 신장을 통해 나트륨을 배출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일반인의 안면 부종을 없애준다는 직접적인 임상 연구는 없습니다. 이를 간접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체액량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혈압 데이터를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2013년 WHO가 위촉한 BMJ 메타분석, 그리고 2020년과 2025년의 대규모 메타분석 결과들을 종합하면, 고혈압 환자와 달리 건강한 정상 혈압인이 칼륨 섭취를 늘렸을 때 얻는 혈압 강하 효과는 임상적으로 의미가 없을 만큼 매우 작거나 사실상 0에 수렴했습니다.
칼럼김연휘 의사·유튜브 ‘근알의’ (근거를 알려주는 의사) 운영2026/05/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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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자=이강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장) 2026/04/2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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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년이 되기 전, 아이에게 생우유를 먹여도 되는지 묻는 보호자들이 적지 않다. 단순히 ‘먹여도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영아의 소화기와 신장 기능, 그리고 성장 단계에 맞는 영양 요구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생우유는 생후 12개월 이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전 시기에는 모유나 조제분유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보다 적합한 영양 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돌 이전에 생우유를 권장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생우유는 단백질과 전해질 함량이 높아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영아의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또한 일부 아이에서는 생우유 섭취 후 장 점막에 미세한 출혈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철 결핍성 빈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생우유 자체의 철분 함량이 낮고 흡수율도 제한적이어서, 섭취량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철분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산양유의 경우 엽산 함량이 부족해 드물게 거대적혈모구성 빈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그렇다면 돌 이전 시기에는 무엇을 먹이는 것이 적절할까.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 모유 또는 조제분유를 중심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적절하다. 알레르기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가수분해 분유와 같은 저알레르기 분유를 고려할 수 있으며, 유당불내증이 의심될 때는 유당 제거 분유가 대안이 된다. 두유 제품 역시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철분과 칼슘이 충분히 강화된 제품인지 확인하고 전문가 상담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생후 12개월 이후 생우유를 도입할 때에도 몇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섭취량은 약 500~700mL, 즉 2~3컵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적절하며, 과도한 섭취는 철분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 생우유는 어디까지나 보조 식품이므로 다양한 고형식과 함께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도입 초기에는 피부 발진이나 구토, 설사 등의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새로운 음식은 한 번에 한 가지씩 시도하는 것이 안전하다.정리하면, 돌 이전에는 생우유 대신 모유나 조제분유를 기본으로 하고, 이유식은 철분이 풍부한 식단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돌 이후에도 생우유는 적정량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활용해야 한다.생우유는 아이에게 유익한 식품이 될 수 있지만, 그 가치는 ‘언제, 어떻게’ 먹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작은 식이 선택 하나가 아이의 성장과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연령에 맞는 영양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이 칼럼은 임신영 임신영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임신영 임신영재활의학과의원원장2026/04/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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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정수리 탈모로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돌아오는 대답은 “정수리는 심어도 티가 안 난다” 또는 “모발 이식 효과가 떨어지니 약이나 먹으라”는 말일 때가 많다. 심지어 모발 이식을 전문으로 한다는 곳에서도 정수리 수술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정수리라는 부위가 가진 독특한 구조와 원리를 오해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정수리 모발 이식이 난도가 높은 것은 맞지만, 원리만 제대로 알고 접근한다면 그 어떤 부위보다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다.우선 정수리 수술을 고민할 때 반드시 이해해야 할 개념이 바로 ‘가마의 회오리 결’이다. 우리 머리 꼭대기에는 머리카락이 한 점을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며 퍼져 나가는 고유한 흐름이 있다. 이것을 의학적으로는 복잡하게 부르기도 하지만, 쉽게 말해 ‘머리카락 소용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소용돌이는 머리카락들이 서로 비스듬하게 누우면서 차곡차곡 겹쳐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지붕 위에 기와를 얹을 때 서로 겹치게 놓아 빈틈을 막는 것과 같은 원리다.수술할 때 이 회오리 결을 무시하고 빈 곳을 메우는 데만 급급해서 머리카락을 일렬로, 똑바로 심으면 어떻게 될까?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빛이 그대로 통과하면서 하얀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수천 가닥을 심었음에도 여전히 비어 보이는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원래 가진 가마의 흐름을 정교하게 분석해서 머리카락이 서로의 지붕이 되어주도록 층층이 겹치게 심으면, 똑같은 양을 심어도 훨씬 빽빽하고 풍성해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정수리 수술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비밀이다.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정수리가 가진 ‘블랙홀’ 같은 면적의 문제다. 정수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부위이며, 탈모가 진행될수록 그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앞머리는 얼굴이라는 테두리가 있어 조금만 심어도 금방 표가 나지만, 정수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과 같다. 그래서 한정된 뒷머리 자원을 전략 없이 쏟아붓다가는 소중한 머리카락만 낭비하고 결과는 미흡할 수 있다. 따라서 정수리 수술은 무조건 많이 심는 ‘양의 승부’가 아니라, 가장 효과적으로 두피를 가릴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설계의 승부’가 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풍성함은 개별 머리카락이 서로 겹치며 층을 이루는 데서 나온다. 이런 효과를 노려야 단순히 모발 개수만 늘릴 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정수리의 머리숱을 복원할 수 있다.여기서 많은 환자가 불안해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수술 후 기다림의 시간이다. 정수리 수술을 받은 분들은 보통 수술 후 6개월이나 1년이 되었을 때 “아직도 비어 보여요”라며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정수리의 풍성함은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라난 머리카락이 충분히 길어져서 옆 머리카락 위로 누워야 비로소 두피를 가리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갓 자라난 짧고 빳빳한 머리카락은 두피를 가려주는 힘이 약하다. 통계적으로 정수리 이식의 진가는 머리카락이 10센티미터 이상 길어지며 서로 엉키고 층을 이루는 수술 후 1년 반, 즉 18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조급해하면 실패한 수술이라 오해하기 십상이다.또한, 정수리는 주변 머리카락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정수리 탈모는 어느 한 부위만 뻥 뚫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 부위와 연결되어 서서히 넓어지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식한 부위만 덩그러니 섬처럼 남지 않도록 주변 머리카락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수술 후에도 꾸준한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기존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식한 머리는 빠지지 않지만, 그 사이사이의 원래 머리카락이 빠지면 결국 전체적인 풍성함은 줄어들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정수리 모발이식은 ‘안 되는 수술’이 아니라, ‘아주 세밀하고 영리하게 접근해야 하는 수술’이다. 가마의 회오리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전략, 그리고 머리카락이 길어질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삼박자를 이룰 때 비로소 다시 빽빽해질 수 있다.정수리는 심어도 소용없다는 주변의 말에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정수리가 가진 고유한 결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설계도만 있다면 잃어버린 풍성함은 반드시 돌아온다. 정수리 탈모는 극복할 수 없는 저주가 아니라, 과학적인 접근과 정교한 설계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도전일 뿐이다. 이제는 거울 속 비어 있는 정수리를 보며 한숨짓기보다, 나만을 위한 완벽한 회오리 결을 어떻게 되살릴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정수리 복원의 여정은 나의 가마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 본인의 정수리 상태가 고민이라면, 막연한 두려움을 버리고 본인의 가마 결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길 권한다. 풍성함은 머리카락의 개수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자라나는 모발의 흐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김진오 뉴헤어 성형외과 원장(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수석탈모분과위원장)2026/04/2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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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머리가 조이는 느낌으로 계속 아파요.”신경과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표현이다. 많은 환자가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지만, 통증의 양상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머리를 띠로 두른 것처럼 조이는 느낌, 뒷목이 뻣뻣하면서 함께 아픈 증상은 대표적인 ‘긴장성 두통’에 해당한다.긴장성 두통은 가장 흔한 두통 유형 중 하나로, 특별한 구조적 이상 없이 근육과 신경의 긴장 상태에서 발생한다. 특히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업무나 인간관계, 수면 부족 등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긴장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목과 어깨, 두피 주변 근육이 지속적으로 수축하면서 통증이 유발된다.근육 긴장은 단순히 뻐근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근육이 오랜 시간 수축된 상태로 유지되면 혈류가 감소하고,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축적된다. 동시에 근육과 연결된 신경이 자극되면서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머리를 조이는 듯한 둔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특히 현대인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서 긴장성 두통이 더 쉽게 발생한다. 고개를 앞으로 내민 자세나 어깨를 움츠린 자세는 목 주변 근육을 지속적으로 긴장시키고, 두통 발생을 촉진한다. 여기에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 근육과 신경의 긴장이 더욱 심해져 통증이 악화된다.긴장성 두통의 특징은 통증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한쪽만 심하게 아픈 편두통과 달리, 양쪽 머리 전체가 무겁고 조이는 느낌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경우는 드물지만, 오래 지속되면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치료의 핵심은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다. 단순히 진통제에 의존하기보다는 근육과 신경의 긴장을 완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온찜질이나 가벼운 스트레칭은 목과 어깨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규칙적인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 역시 중요한 치료 요소다.평소 자세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시간 앉아 있을 경우에는 모니터 높이를 눈높이에 맞추고, 30~40분마다 목과 어깨를 풀어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가벼운 걷기 운동이나 호흡 운동은 자율신경 균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두통이 반복된다고 해서 모두 긴장성 두통은 아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거나, 구토, 시야 이상,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된다면 다른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긴장성 두통은 생활습관 조절만으로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스트레스는 피하기 어렵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신체 반응은 관리할 수 있다. 머리를 조이는 통증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참고 넘기기보다, 몸이 보내는 긴장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적절히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습관 변화가 두통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이 칼럼은 구경모 안양윌스기념병원 뇌신경센터 원장의 기고입니다.)
칼럼구경모 안양윌스기념병원 뇌신경센터 원장2026/04/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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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어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답장이 없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상사가 제 말에 별 반응이 없었어요. 저를 안 좋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짜증을 냈는데, 그날 밤 내내 ‘나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모두 그럴듯하다. 상대가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은 것이 불쾌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대가 단지 바빴을 수도 있고, 상사의 시큰둥한 반응도 피곤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짜증 한 번 냈다고 곧바로 형편없는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울해지면 사람은 여러 가능성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해석을 먼저 떠올리고, 그것을 사실처럼 믿는다. 우울증에 걸리면 기분만 가라앉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까지 바뀐다.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왜곡된 생각의 습관을 일컬어 ‘인지 오류’라고 한다. 이름은 다소 딱딱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생각의 버릇이다. 가장 흔한 인지 오류는 흑백논리다. 완벽하면 성공이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실패라고 여긴다. 작은 실수에도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 ‘모든 게 망가졌다’고 믿는 것 역시 흑백논리에 뿌리를 둔 생각이다.재앙화 사고도 흔하다. 작은 문제를 곧바로 최악의 결말로 연결하는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가 조금 좋지 않으면 큰 병일 것 같고, 누군가의 표정이 어두우면 관계가 곧 끝날 것처럼 느낀다. 한두 번의 실패를 근거로 ‘나는 원래 늘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믿는 것은 독심술이다. 주변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일을 지나치게 자기 탓으로 끌어오는 것은 개인화다. ‘반드시 ~ 해야 한다’고 자신과 타인을 몰아붙이는 ‘해야만 해’ 사고도 흔히 나타난다.인지 오류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우울증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인지 오류를 갖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반복되고 굳어져 일상 전체를 지배할 때 생긴다. 자신이 자주 빠지는 생각의 함정을 익혀 둘 필요가 있다. 흑백논리, 재앙화, 과잉 일반화, 개인화, 독심술, ‘해야만 해’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름들을 기억해 두면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미끄러질 때 붙잡아 줄 안전장치가 된다.“지금 내가 또 흑백논리로 보고 있구나” “증거 없이 짐작하고 있구나” “최악의 가능성만 키우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아, 이것이 인지 오류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작은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 덕분에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교정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이런 인지 오류는 대개 혼자 생겨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굳어진 믿음이 깔린 경우가 많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인지 오류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둔 것이 있다. 오래 굳어진 신념 체계다.‘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작은 반대나 무관심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것을 삶의 조건처럼 붙들고 있으니, 늘 불안하다. 인정에 대한 집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성공해야 하며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도 마찬가지다.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고 믿으니, 피할 수 없는 실수조차 자기 존재 전체의 무가치함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고, 새로운 시도 자체를 피하게 된다. ‘모든 일은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좌절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불안을 키우는 신념도 있다. ‘내가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문제가 생긴다. 나는 늘 걱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걱정이 준비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걱정 자체가 삶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신념 체계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에 의해 형성된다.“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해.”“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어야 해.”“모든 것이 완벽해야 해.”“세상은 언제나 공평해야 해.”물론 그 바탕에 있는 욕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고, 공평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에서는 늘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백 퍼센트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믿으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게 된다. 결국, 살아갈 힘마저 잃게 된다. 우리가 인지 오류에 자주 빠지는 이유도, 실은 이런 오래된 신념 체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신념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온 삶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규칙이 지금의 나를 더 건강하게 살게 하는지, 아니면 더 괴롭게 하는지는 다시 점검해볼 수 있다. 내가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것이 실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우울증 치료는 결국 잘못된 생각의 습관을 알아차리고, 오래된 신념을 점검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믿음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 대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대신 ‘실수해도 괜찮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라고 해보자. ‘올바르게 되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 없다’ 대신 ‘괴로워도 나는 견딜 수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우울증은 일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어두워진 상태다. 치료란 그 렌즈를 조금씩 벗겨 내는 과정이다. 내가 오래 믿어온 생각이 정말 맞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아프게 만들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칼럼김병수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원장2026/04/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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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말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2026 미국피부과학회(AAD Annual Meeting)가 열렸다. 미국 피부과학회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피부과학회로 전 세계에서 2만 명 이상의 피부과 전문의 및 의료 관계자가 참여하는 행사다. 학회장 내에는 하루에 다 살펴볼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부스가 설치되는데 제약뿐 아니라 AI 피부 측정기, 레이저 등 기업의 최신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금년에는 특히 한국 기업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제이시스, SNJ, 레이저옵텍, 원텍 등 한국 레이저 기업이 부스를 설치했으며 한국 화장품 회사들의 부스도 눈에 띄었다.미국피부과학회에서는 다수의 화장품 관련 강의도 진행이 되는데 금년에는 유독 한국 스킨케어에 대한 소개가 많았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피부과 전문의들의 강의에서 한국의 K-뷰티 관련 내용이 언급돼 눈길을 끌었다. 한 강의에서는 한국 스킨케어의 강점으로 피부 노화에 대한 예방, 피부 장벽에 대한 강화, 시너지 효과를 보이는 제품의 복합 사용, 자극을 줄이는 마일드한 포뮬레이션 사용 등 네 가지로 압축해 강점을 설명함으로써 한국 스킨케어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이유를 소개하였다.피부에 적절한 보습을 유지하는 것은 피부노화에 대한 예방과 피부장벽 보호에 필요하다. 이러한 효과를 보기 위해 사용하는 제품 중 하나가 마스크 팩이다. 마스크팩의 기원은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여러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해 왔다.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우유, 꿀, 알로에 등을 사용한 피부 관리를 하고 락틱산을 이용해 자연적인 각질 제거를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고대 점토(clay), 진흙 등을 이용한 팩을 사용하여 피부 정화 및 피지 조절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마스크 팩은 야외 운동을 마친 후 자외선에 지친 피부를 위해 샤워할 때 바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1일 1팩하는 문화로 만들어졌고, 팩과 더불어 사용되는 에센스 성분을 다양화시켜 미백, 주름, 진정, 리프팅 등의 제품으로 세분화 되어지기도 했다. 마스크 팩 하나로 K 뷰티의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진 제품이기도 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야외 활동이 늘면 마스크 팩의 사용량도 늘어난다. 급격하게 늘어난 자외선 속에서 사람들은 간편한 홈케어 방법으로 마스크 팩을 선택한다. 짧은 시간 안에 수분을 공급하고 피부를 진정시키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철에는 마스크 팩도 조금 더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그렇다면 마스크 팩은 어느정도의 효과가 있을까? 스킨케어 루틴에 추가해야 할까? 마스크팩은 일부 피부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피부 보습과 장벽 강화에 도움을 주고, 피부 노화 징후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추가로 마스크 팩을 사용할 때 피부에 필요한 유효성분을 바른 후 피부에 덮고 바로 씻어내지 않기 때문에 피부에 흡수될 시간이 충분하여 피부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마스크 팩의 사용이 습진이나 여드름 같은 질환 치료를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건조함이 심해져 따겁거나 화끈거리는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마스크 팩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피부 보습을 높이기 위한 정기적인 스킨케어 루틴 및 갖고 있는 피부질환의 치료 계획과 함께 올바르게 사용하면 피부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마스크 팩을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많은 마스크팩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될 수 있다. 건성 또는 민감성 피부라면 히알루론산, 세라마이드, 글리세린이 포함된 제품을 선택하면 도움이 된다. 히알루론산은 수분을 유지하여 피부를 촉촉하게 가꿔주고 세라마이드는 피부 장벽을 강화해주며 글리세린은 피부를 매끄럽고 부드럽게 가꿔주는 역할을 한다. 이와 더불어 오트밀 성분은 피부를 진정시켜주고 녹차 추출물은 염증을 줄여준다. 지성 또는 여드름성 피부라면 알파 하이드록시산(AHA), 베타 하이드록시산(BHA) 등의 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AHA성분 중 하나인 글리콜산이나 BHA의 대표성분인 살리실산 등은 각질 제거 효과가 있어 모공을 깨끗하게 하고 피부결을 매끈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성분을 바른 후 마스크팩으로 덮은 후 너무 오랜 시간 덮어두면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용 시 따겁거나 화끈거림이 있다면 바로 떼어내고 물로 씻어내는 것이 좋다. 또한 사용 후 알로에나 히알루론산과 같은 가벼운 보습 성분을 추가하면 과도한 건조를 방지하면서도 유분기를 줄여주는 효과를 보인다. 피해야 할 성분은 무엇일까? 일부 마스크 팩 성분은 피부 고민에 따라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화장품으로 인한 피부 알러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향료나 에센셜 오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향료 및 에션셜 오일은 피부를 자극하거나 알레르기성 발진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예민한 피부라면 사전에 조심하는 것 도움이 될 수 있다. 민감성 피부의 경우, AHA 또는 BHA와 같은 각질 제거 성분이나 비타민 C 성분도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마스크 팩에 중복되는 성분이나 이미 다른 스킨케어 제품에 사용하고 있는 성분이 함유된 제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이미 스킨케어 루틴에 각질 제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 비슷한 성분의 마스크팩을 추가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마스크 팩이 피부에 해로울 수 있을까? 자극적인 성분이 함유된 마스크팩을 사용하거나 너무 자주 사용하면 오히려 피부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성분의 마스크 팩을 사용하면 피부 장벽이 손상되어 자극, 건조함, 심지어 트러블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각질 제거 마스크 팩의 경 너무 자주 사용하거나 매우 민감한 피부라면 자극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마스크 팩을 사용할 때는 손가락 끝으로 피부에 부드럽게 발라주는 것이 좋고 새로운 마스크 팩을 사용하기 전에 피부의 작은 부위에 먼저 테스트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예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부 스킨케어 매장에서는 정품을 구매하기 전에 샘플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샘플을 먼저 사용해 본 후 정품사용을 하는 것도 피부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팁이다. 또한 마스크 팩 사용 전 라벨에 적힌 사용 설명서를 꼭 읽어보길 권한다. 팩은 피부를 덮고 20~30분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라벨에 설명된 마스크 팩을 피부에 얼마나 오래 붙여두어야 하는지, 주의사항이 무엇인지 체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해지고 섬세해진 마스크 팩의 세분화된 발전으로 인하여 K-뷰티는 믿고 사용하는 제품이 되었다. 더 좋은 제품을 잘 사용함으로써 세계인이 사용하는 마스크 팩이 되길 바란다.
칼럼서동혜 아름다운나라피부과 원장(피부과 전문의)2026/04/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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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20일, 도쿄의 월요일 아침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은 붐볐고, 사람들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도쿄 도심의 주요 지하철 노선 다섯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상한 일이 벌어졌다. 열차 안으로 들어온 남성이 검은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우산 끝으로 찌른 뒤 황급히 내렸고, 문이 닫힌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았고 숨이 막혔으며 경련을 일으켰다. 공포는 급격히 확산됐고,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승강장까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같은 일이 여러 노선에서 동시에 반복되면서 도쿄 한복판은 순식간에 마비됐다. 비닐봉지 안에 있던 물질은 사린 가스였다.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화학물질로,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흡수되면 근육 경련과 호흡부전을 일으킨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특히 치명적이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했고 6300명가량이 부상을 입었다.이 사건은 우발적 범행이 아니었다. 동일한 방식으로 다섯 개 노선에서 동시에 실행된 조직적 테러였다. 범인들은 두 명씩 짝을 이뤄 한 명이 열차 안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하고, 다른 한 명이 역 앞에서 도주를 도왔다. 이들이 속한 집단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이미 논란의 중심에 있던 종교 단체, 옴 진리교였다.수사가 진행되면서 일본 사회는 더 큰 충격에 빠졌다. 주요 실행범 가운데는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등 일본 최상위권 대학 출신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추종자가 아니라 화학 물질을 제조하고 운용하는 핵심 인력이었다. 실제로 옴 진리교는 자체 화학 연구소를 운영하며 사린 가스를 생산했고, 이전에도 생물학 무기를 실험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사회 혼란을 극대화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고, 궁극적으로 국가 전복까지 노리는 것이었다.이 비극의 중심에는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있었다. 그의 삶은 거절된 자아의 서사에 가까웠다. 시각 장애와 경제적 결핍 속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의 한계와 좌절을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적 핍박으로 인식해 갔다. 의과대학 진학을 통해 인정받고 싶었으나 신체적 한계에 가로막혔고,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도 반복된 실패로 좌절됐다. 현실에서 거절당한 자아는 결국 현실 바깥의 과대망상으로 밀려갔다.그는 종교와 오컬트, 명상과 종말론을 뒤섞어 자신을 선택된 메시아로 격상시켰다. 자신을 따르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는 종교의 언어를 빌렸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향한 복수의 논리에 가까웠다. 개인의 뒤틀린 자기애적 망상이 주변의 동조와 복종을 얻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한 개인의 기이한 믿음에 머물지 않는다. 집단적 신념이 되고, 현실을 파괴하는 폭력으로 변한다.정신의학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개인의 병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 인간의 피해 의식과 과대망상이 집단에 의해 강화되고, 그 집단이 다시 구성원의 판단 능력을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기의 비현실적 신념은 추종자의 반복적 확인을 통해 사실처럼 굳어지고, 그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세계는 적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비판은 배신이 되고, 의심은 제거의 대상이 된다. 윤리적 판단은 이념에 종속되고, 폭력은 도덕적 행위로 둔갑한다.특히 이 사건의 비극은 이런 과정의 핵심에 엘리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식은 비합리성을 교정하는 도구로 여겨지지만, 겸손과 함께 작동하지 않을 때 오히려 오만으로 변한다. 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와 고베 대지진 이후의 충격 속에 놓여 있었다. 과학도, 제도도, 기존의 성공 공식도 삶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설명해주지 못하던 시기였다. 바로 그 틈을 교주의 절대적 맹신이 파고들었다.이들은 공중부양이나 초능력 같은 사기극에 속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질문에 즉답을 주는 닫힌 체계에 매혹됐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죽음과 미래, 실패 같은 문제 앞에서 “모른다”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할수록 절대적 해답은 더 강한 유혹이 된다. 복잡한 현실보다 완결된 서사가 심리적으로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이 사건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언제나 단순한 답을 파는 이들이 등장한다. 복잡한 현실을 선과 악, 우리와 그들로 정리해주는 목소리는 불안한 사람들에게 쉽게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타인에 대한 증오를 정의로 포장하는 순간, 위험은 이미 시작된다.정신 건강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는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다.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허함, 세상이 흑과 백이 아니라 수많은 회색 지대로 이루어져 있음을 견디는 인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제거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남겨두는 감각이다. 이런 능력이 무너질 때 인간은 확신에 취약해지고, 확신은 폭력의 언어를 띠기 쉽다.도쿄 지하철역의 비닐봉지는 오래전에 치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을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내면의 사린 가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이름으로 기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잔향이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키기 전에, 우리는 다시 인간의 얼굴을 마주 보아야 한다. 도쿄의 그날 아침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기에, 그래서 더 위험했다.
칼럼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과 원장2026/04/20 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