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쉼’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일지도

[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
운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보다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쬐고 몸을 간단하게 움직여보는 것부터 시작하자/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울해서 몸이 망가지는 걸까요? 아니면 몸이 나빠져서 우울해지는 걸까요?” 단순해 보이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없다. 정답은 둘 다 맞고 서로를 무너뜨린다.

우울하고 불안하면 자연스럽게 세상으로부터 멀어진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을 피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몸을 움직이기도 싫어진다. 햇빛을 피하고 근육을 쓰지 않고 하루 종일 정적인 상태로 지내게 된다. 햇빛을 보지 않으니 뇌의 리듬이 무너진다. 생체시계가 흐트러지고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균형이 깨지고 기분은 더 가라앉는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뇌도 같이 멈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주로 마음을 중심에 두고 살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몸을 움직여야만 정신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운동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일이 아니다. 운동을 하는 순간, 뇌의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뇌유래신경영양인자가 증가해 신경회로가 회복된다. 2000년 전, 히포크라테스도 이미 같은 말을 했다.   “Walking is man's best medicine(걷는 것은 인간에게 최고의 약이다).” 결국 운동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치료법이다. 뇌를 치료하는 행위다.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몸이 힘들어서 몇 달째 쉬고 있는데도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느낌이에요.”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 길게 쉬면 오히려 더 무너진다. 우울해서 움직이지 않고 꼼짝도 안하고 있으면 마음은 더 우울해지고 몸은 더 약해진다. 이 악순환은 생각보다 빠르고 깊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잔인하게 목격했다. 많은 노인 환자분들이 집 안에 갇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제대로 걷지 못한 채 점점 쇠약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분들은 단지 병으로만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못해서 삶이 멈춰버린 것이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진료실에서 늘 말한다.   “운동을 멈추는 순간, 삶도 멈춥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파서 운동을 못 합니다.”
조심스럽게 다시 묻는다. “운동을 안 해서 혹시 더 아픈 건 아닐까요?” 

신기하게도,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면 통증은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지고 잠이 깊어진다. 움직이면 회복되고 멈추면 무너진다. 이 단순한 원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정신은 신체 안에 담겨 있기에 신체라는 구조물이 흔들리면 그 안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몸을 움직이면 우울은 줄어들고 불안은 가라앉고 생각은 맑아지고 기억은 또렷해진다. 흔히 말하는 ‘브레인 포그’,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한 느낌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피로 때문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는 뇌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가장 좋은 치료는 단순하다. 햇빛을 보고 몸을 움직이는 것!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부담을 느낀다. 운동을 하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저질러보자. 특별한 목표가 없어도 좋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밖으로 나가 햇빛을 보고 몸을 움직여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단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게 중요하다. 처음에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 햇빛이 내 몸에 닿는 느낌을 가만히 느껴보자.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감각에도 잠시 집중해 보자. 길을 걷다가 나무가 보이면 그저 한 번 바라보고 지나가도 좋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뇌는 자극을 받기 시작한다. 걸음을 조금 더 옮겨보자.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어느 순간 숨이 조금 가빠지면서 몸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게 몸이 깨어나면 마음도 함께 깨어나게 된다.

가능하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말고 움직이면 좋겠다.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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