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지난 2월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악뮤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이 올해의 노래로 선정됐다. 요즘 청년 세대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 현상을 반영한 것 같은 이 노래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Back in the day,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사랑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고 한다. 낭만적 사랑의 시작을 근대시대로 보는 주장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심지어 성경의 창세기에도 아담과 이브의 사랑이 나오는 것을.
실제로 고대 역사에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시대 무렵에는 사랑을 노골적으로 다룬 시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사랑은 빼 놓을 수 없는 셈이다. 단, 그때의 사랑은 결혼과는 큰 연관성이 없었다. 중세 시대에만 해도 사랑은 결혼 밖에서 노래됐다. 결혼이 가문과 권력의 질서였다면, 사랑은 그 질서 바깥에서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을 흔드는 문학적 사건이었다. 근대에 들어서서야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랑이 결합됐다.
어쨌건 적어도 우리에겐 서로를 사랑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다음, 출산을 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전형적인 사랑의 모델이었다. 그런데 그 모델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2025년에 진행된 한 연구를 보면 20~49세 미혼 남녀 중 71.7%가 현재 연애를 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20대 응답자 중 29.8%는 연애 경험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2024년 통계청의 자료를 봐도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미혼 남성은 41.6%, 미혼 여성은 26%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도 결혼도 모두 관심이 없는 셈이다. 정말 사랑은 끝나는 것일까?
사랑의 종말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질문은 조금 기괴하게 들릴 수도 있다. 마치 한 드라마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라고 대답했었던 것처럼 ‘마음이 끌리고 설레니까 사랑을 하지, 뭔 쓸데없는 질문을’이라고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조금은 더 근본적인 ‘왜’를 생각해보자. 인간의 모든 마음과 행동에는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1차적인 원인을 이야기하자면 당분이 들어오면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당분이 들어오면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하는가? 진화론적 심리학의 관점을 빌리자면, 단맛이 우리의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정돼 있다. 어떤 행동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이득 행동이 되면, 이 행동의 재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긍정적인 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인류의 생존에 매우 필요한 것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현생 인류의 장점은 뛰어난 지능이었다. 장점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화되면서 인류의 뇌는 더 커져갔고, 산도(분만통로)로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이른다. 그리해 인류가 선택한 방식은 ‘작게 낳아 크게 기르자’였다. 다 좋았으나, 너무 작게 낳아서, 그래서 너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지나치게 오랜 양육 기간을 갖게 된다. 이러니 어떠하겠는가? 배우자와의 장기적인 유대와 협력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즉,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인 것이다. 실제로 뇌과학의 연구 결과들은 사랑이 뇌의 보상 회로와 연관이 깊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다시 묻게 된다. 취향이 바뀌고, 미래가 확장되고, 약점이 드러나고, 정체성이 재구성된다. 사랑은 현재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고, 개인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그래서 사랑은 인간이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 중 하나다. 사랑은 타인을 만나는 경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구성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사랑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연애를 하지 않고, 가정을 꾸리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확인하고, 타인과 연결되고,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포기하는 일에 가깝다.
청년들이 사랑을 안 한다고 하지만, 사랑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는 뜨겁고, 로맨스 웹툰, 웹소설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I에서도 연애 상담이 인기라고 한다. 지난해 데이팅 앱 및 소셜 디스커버리 앱의 수익이 확대됐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하지 않는 세대의 사랑에 대한 여전한 관심. 결국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랑을 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청년들이 택한 그들의 생존 전략이 아닐까 싶다.
사라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랑이 자연스럽게 시작될 수 있었던 삶의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