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실험 중에 ‘Invisible Gorilla(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이 있다. 6명이 농구공을 패스하는데, 그중 흰색 옷을 입은 사람끼리 패스하는 횟수를 세는 실험이다. 실험 중간에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지만 패스한 횟수를 세는데 집중했던 실험 참가자들 중 절반은 지나가는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
이처럼 병원에서 일상적인 업무들, 각자의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현상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건물, 장비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한 것처럼 조직의 시스템도 만드는 것만큼이나 체계적인 관리와 보완이 중요하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좋은 시스템이 갖추어야 할 기능이 자정(自淨) 기능이다. 이는 오염된 물이나 땅이 시간이 지나 저절로 깨끗해지는 것처럼 시스템 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최적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자정기능은 일종의 알람 기능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오전 6시에 맞춰놓으면, 벨이 울렸을 때 소리를 듣고 일어나야 한다고 인지한다.
시스템의 자정기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첫째, 기준이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오전 6시)
둘째, 설정된 기준에 따른 신호를 보내야 한다. (벨 소리)
셋째, 신호에 해야 하는 행동을 알고 있어야 한다. (기상)
즉, 명확한 기준, 효과적인 신호 전달,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정의되어야 시스템의 자정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첫째, 기준점의 설정은 최적의 상태를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현재 자원 하에서 진료과별 일평균 외래환자 수, 입원환자 수, 수술 건수 등의 주요 지표에 대해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기준 설정은 현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반을 둬야 하며 내·외부 여건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잘못 설정된 기준은 불필요한 시그널을 보내고 시스템의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준을 벗어났을 때 적시에 구성원에게 신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병원 컨설팅 과정에서 ‘이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의외로 ‘문제로 인식하지 못 했다.’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듣는다. 문제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거나 일부 구성원들만 알고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은 의사, 간호사, 의료 기사, 행정 등 각자의 전문영역이 분명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생기기 쉽다.
대표적인 신호전달 방식이 정보의 시각화(visual management)이다. 이는 기준 대비 현재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차장에서 주차 가능 여부를 빨간색등과 녹색등으로 표시하여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보 시각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호의 전달도 선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순위 없이 너무 많은 팝업이 뜨거나, 문자, 메일 등을 무분별하게 발송한다면 정말 중요한 신호를 간과하게 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신호가 전달되었을 때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상황에 따른 행동 매뉴얼이 표준화되어 있다면 담당자 변경 등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안에 따라 원인 분석을 위한 관련 부서 회의 소집 및 상위 책임자 보고 절차를 정의해 놓는 것도 필요하다.
추가적으로 자정기능이 조직의 습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병원 차원의 지속적인 피드백이 중요하다. 피드백이 없으면 구성원들은 중요성이 낮은 사안으로 인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처음에는 지침에 따른 행동을 하지만 지속성을 잃기 쉽다.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하지?’, ‘안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쓰네.’라는 분위기가 생기면 이내 조직의 습관으로 굳어지고 이후에는 몇 배의 노력을 해도 바꾸기 어렵다.
특히 변화 초기에는 피드백 주기를 줄이고 강도를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상 시간을 처음 바꾸고자 할 때, 습관이 되기까지 5분마다 울리는 알람, 심지어 퀴즈를 풀어야 꺼지는 알람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시스템 자정기능의 핵심은 설정된 기준에서 벗어난 상황을 정의하고 공유하여 균형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기고자 : 삼정KPMG 박경수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