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OO씨는 31세 여자 환자로 현재 임신 28주입니다. 남들 힘들다는 입덧도 비교적 약하게 넘어갔고 지금은 태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전진찰을 위해 산부인과 병원을 갔는데 이전 병력을 듣더니 큰 병원을 가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건강 상의 큰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좀 의아했지만 김OO씨는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찾아갔습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알레르기 내과’ 진료를 보라고 예약을 잡아주셨습니다. 예약된 알레르기 내과 진료실에 가서 김OO씨는 이야기했습니다.
“10년 전에 감기약을 먹고 두드러기가 심하게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알레르기 내과 진료를 보라고 하셨어요. 당시 진료를 봐주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약이름을 적어주고 절대로 이 약은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종이에는 ‘세파클러(항생제), 이부프로펜(소염진통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제가 가끔씩 외래에서 접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가끔씩 접한다고는 했지만 판단이 쉬운 상황은 아닙니다. 왜일까요?
위의 김OO씨의 경우와 같이 약물을 사용하고 두드러기가 나거나 천식이 심해지거나 혹은 아나필락시스 같은 반응이 오는 경우를 약물 알레르기라고 합니다. 유명한 약물 알레르기로 ‘페니실린 쇼크’, ‘피린 알레르기’가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모든 약물은 과민반응(=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옆에 약통이 있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설명서를 읽어보세요. 분명히 ‘금기증’에 ‘이 약물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자’라는 말이 써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이 없다면 아마 그 약물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허가 받지 않은 약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모든 약물이 과민반응을 잘 일으키기는 하지만 진짜로 과민반응이 잘 일어나는 약물들은 따로 있습니다. 양대 산맥을 꼽자면 ‘페니실린’과 ‘아스피린’입니다. 여기서 ‘페니실린’이라 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곰팡이에서 뽑아낸 그 옛날 페니실린부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반합성 페니실린(아목사실린, 암피실린 등), 세팔로스포린과 같은 약물을 모두 포함합니다. (전문용어로 베타락탐 계열 항생제라고 합니다.) 또, ‘아스피린’이라 함은 아스피린 및 그와 유사한 약리작용을 나타내는 수 십 개의 해열진통제를 포함합니다. (전문용어로 NSAIDs [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새서 간단한 의학상식을 하나 알려드린다면 우리가 흔히 들어본 ‘피린 알레르기’의 피린(pyrine)은 아스피린(aspirin)과는 다른 약입니다. 피린계 약물은 1960~1970년대 드링크형 감기약의 주성분으로 해열, 진통효과가 좋아서 시중에 많이 유통이 되었던 약물입니다. 하지만 피린계 약물은 부작용이 자주 발생하고 비록 외국의 예이지만 피린계 약물에 의한 무과립구증(골수 기능이 저해되어 백혈구가 줄어드는 병)으로 사망하는 증례도 보고가 되어 국내에서는 사용 빈도가 줄어들고 있는 약제입니다.
다시 증례로 돌아가겠습니다. 증례에 등장한 ‘세파클러’는 감기 중에 급성 세균성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에 비교적 흔히 처방되는 베타락탐 계열 항생제입니다. ‘이부프로펜’은 대표적인 NSAIDs 계열 해열진통제입니다. 알레르기 치료의 기본원칙은 ‘회피’이기 때문에 사실은 저 약들을 안 쓰면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환자가 임산부이기 때문입니다. 임산부가 약물을 사용할 때에는 당연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최근에 나온 항생제 중에는 태아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약들도 꽤 있습니다.
베타락탐 계열 약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발되어 사용해 온 약이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가장 안전하게 쓸 수 있는 항생제 중 하나입니다. 또 제왕절개 수술을 하던 자연분만을 하던 출산 과정에는 어느 정도 진통제가 필요한데 NSAIDs계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물론 효과가 좋고 안전한 약물이지만 구역, 구토, 어지러움과 같은 다른 부작용이 비교적 흔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왜 저 약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의사 입장에서 골치가 아파지는지 감이 좀 오시죠?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세파클러, 이부프로펜’이라는 그 선생님의 판단이 어디까지나 ‘추정’에 근거한 판단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베타락탐 및 NSAIDs가 알레르기 반응을 잘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환자가 저 두 가지가 포함된 처방약을 먹고 두드러기가 나면 대부분 그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원인이라고 쉽게 추정합니다. (위장 보호제, 알레르기 비염약, 가래 묽히는 약 등 서너 가지 약이 더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요.) 정확한 통계가 있지는 않지만 제 생각에도 이 상황에서 저 두 가지 중 하나가 두드러기의 원인일 확률은 95%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약물 중 저 두 가지에 속하는 약물의 종류가 과장을 약간 섞으면 절반 정도됩니다. 두 가지 약물이 동시에 두드러기를 만들었을 확률은 매우 낮고 대부분은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약 환자가 두드러기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불필요하게 다른 약물까지 피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특히 지금 상황과 같이 대체약물에 위험성이 있다면 더욱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럼 원인 약을 찾는 검사를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것이 또 쉽지 않습니다. 베타락탐 계열 항생제에 대해서는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피검사 및 피부반응검사(피부에 극소량의 항생제를 주사해서 두드러기 반응이 일어나는지 보는 검사)를 해 볼 수 있습니다. 페니실린 피부반응검사의 경우 다른 항생제 피부반응검사에 비해서는 훨씬 연구된 바가 많아서 임상적인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검사이기는 하지만 100%는 아닙니다. NSAIDs의 경우는 대부분 피검사나 피부반응검사로 알레르기 유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확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구유발시험’ 즉, 말 그대로 원인으로 의심되는 약물을 다시 먹고 같은 증상이 유발되는지 보는 검사입니다. 경구유발시험은 다른 약물을 함께 복용하지 않고 한 가지 약물만 복용한 후 반응을 보는 검사이기 때문에 원인 약물 감별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환자가 다시 이전의 불쾌했던 경험을 반복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나필락시스와 같이 굉장히 심각한 반응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있었던 반응은 단순 두드러기였는데 경구유발시험을 했을 때 아나필락시스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구유발시험은 반드시 경험이 많은 알레르기 내과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만 시행되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입원을 해서 검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임산부에게 이 검사는 추천되지 않는 경우가 많겠지요. (경우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 반응이 있었을 때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원인약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 증례와 같은 경우 저는 페니실린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검사를 해보고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를 쓰시게 추천합니다. 그리고 만약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약물이 있는데 그 약물에 과민반응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탈감작’이라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추후에 기회가 있으면 설명하겠습니다.) 하지만 임신 이전에 정확한 검사를 통해서 약물 알레르기를 파악하고 있으면 훨씬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임산부에서 약물 알레르기에 대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약물 알레르기의 문제는 임산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보통 환자분들의 경우에도 이전에 문제가 있었던 약물을 잘 모르거나 정확히 알지 못하여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또 쓸데없이 효과는 덜한데 값은 더 비싼 대체약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 미리미리 향후를 대비하는 자세가 약물 알레르기 환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겠습니다.
/기고자 : 보라매병원 호흡기내과 양민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