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 때문에 공부가 잘 안 되는 K군, 크론병이라고?
고등학교 2학년인 K군이 수척한 얼굴로 병원을 찾았다. 한창 건강해야 할 나이였지만 창백한 얼굴과 지나치게 마른 몸매 때문에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안쓰러웠다.
“1년 전부터 복통과 설사가 심해서 종종 장염 약을 먹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고 65kg이던 몸무게가 55kg까지 줄어서 결국 집 근처 병원에 갔었죠.”
K군은 대장내시경 검사와 소장 캡슐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맹장, 상행결장, 횡행결장 등 대장 전체에 가성용종, 궤양, 염증이 발병한 상태였고 소장에서도 다발성 염증과 궤양이 발견됐다.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 ‘장결핵과 크론병이 의심되긴 하는데 확진이 안 된다’며 ‘장결핵이 한국인에게 더 흔하니까 그것부터 치료해보자’고 권하셨어요.”
K군은 2개월 정도 장결핵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복통과 설사가 멈추는 등 치료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2개월 후 체중은 더 빠졌고 빈혈과 단백질 감소증까지 나타났다. 게다가 얼마 전엔 항문에 치루까지 생겨 필자를 찾아오게 됐다고 했다. 다시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염증이나 궤양이 여전히 많은 상태였고 장출혈까지 있었다. 크론병이 의심됐지만 확진하기 어려웠다.
이런 경우엔 우선 임상진단을 하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 증상이 나아지는지 살펴보면서 병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따라 K군에게 염증성 장 질환 치료제인 메살라진을 투약하자 빠른 속도로 염증이 개선됐다. 이후 고무관을 넣어서 묶는 방법의 세톤수술로 치루를 제거해 주었다.
K군은 평생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이후 장기 치료 계획에 맞춰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 덕분에 상태가 많이 호전됐으며 몸무게도 5kg 정도 늘었다. 얼마 전 진료 때는 “그 동안 공부를 방해하던 어지럼증이 사라져서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며 “건강을 되찾아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크론병은 희귀성 난치병으로 염증성 장 질환의 하나다. 발견한 의사의 이름을 따서 크론병이라고 하며 현재까지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다. 대개 10대~30대의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데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서양인, 특히 유대인에게 많아서 유전과 식습관이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된 증상은 설사와 복통이다. 그 밖에 체중감소, 나른함, 하혈, 발열, 항문통증, 빈혈, 구토, 복부 팽만감 등이 나타난다. 간혹 오른쪽 아랫배에 생기는 복통 때문에 맹장염으로 오진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대장염은 궤양이 대장의 특정 부분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크론병은 궤양이 산발적, 불규칙적으로 퍼져 있다. 또 궤양이 대장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소장을 비롯한 식도, 구강 등 소화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 때문에 영양소 흡수가 원활하지 못해 빈혈이나 영양 결핍이 생기기도 한다.
크론병에 걸리면 완치가 어렵다. 평생 약물 치료가 필요하며 궤양과 용종으로 인해 천공이나 장폐색이 생겨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합병증의 위험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난치병이라는 생각에 미리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의 활동을 차단함으로써 염증을 감소시키는 레미케이드 주사로 치료 효과를 보기도 하고 꾸준히 관리하면 큰 불편 없이 사회생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장항문 질환과 마찬가지로 병을 이기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