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골프채만 잡으면 나는야 헐크 [별별심리]

입력 2022.06.25 14:00

평소에 화 한 번 안 내던 친구가 운전대만 잡으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내뱉는다. 늘 매너 좋기로 소문난 김 부장은 골프장만 가면 승부욕에 불타 채를 내려치고 성질을 낸다. 처음 보는 모습들이 낯설기만 하다.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화나게 했을까.


운전하면서 화를 내는 모습
언제든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도로 위에서는 평소보다 쉽게 화를 내게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위험한 도로, 승부욕 발동되는 골프

주변에도 특정 상황만 되면 유독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운전할 때가 대표적이다. 평소 성격이 다혈질인 사람은 둘째 치고, 온순한 사람도 운전만 하면 쉽게 화를 낸다.

‘도로 위’라는 장소적 특성 때문일 수 있다. 도로 위는 늘 긴급한 상황이 발생 가능한 곳이다. 사람은 긴급·절박한 상황, 혹은 그런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긴급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욕설·분노는 놀람과 화가 뒤섞인 즉각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평소 성격이 얌전하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반응까지 참아내긴 어렵다. 때로는 과거 경험이 과격한 운전 습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안전하게 운전했음에도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나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운전할 때는 자신 역시 과격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도로 위에서만 선택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골프를 칠 때 다혈질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도 골프만의 특수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골프는 실력을 겨뤄 성적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운동이다. 이 같은 운동을 할 때면 누구나 승부욕이 발동되기 마련이다. 경기장 안팎에서 180도 다른 성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운동선수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골프의 경우 팀 운동이 아니라는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팀 운동을 할 때는 화가 나도 팀의 경기력이나 같은 팀 동료들을 생각해 참곤 한다. 그래선 안 되지만 패배의 원인을 애써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 운동은 이러한 장치들이 전혀 없다. 저조한 성적을 오로지 혼자 짊어져야 한다. 화를 낼 때 눈치를 봐야 하는 동료도 없다. 같이 경기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도 있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눈치를 이긴다.

◇특정 상황에서만 쉽게 분노? “습관된 것”

문제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분노 또한 더 쉽게 표출된다는 점이다. 길이 막히고 자주 신호에 걸리는 것도, 골프를 칠 때 공이 한두 번 맞지 않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지만 모두 분노의 사유가 된다. 이 상태에 이르면 분노가 더 이상 ‘반응’이 아닌 ‘습관’이 됐다고 봐야 한다.

얌전했던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만 돌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운전을 하거나 골프를 치는 등 상대적으로 화를 내기 쉬운 상황에서 처음 분노를 경험하면, 그 경험이 누적·반복되면서 조건반응 하듯 특정 상황만 되면 화를 참지 못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평소에 화를 내지 않던 사람도 한 번, 두 번 분노를 표출하는 경험을 하면 습관이 될 수 있다”며 “분노가 습관화돼 운전대·골프채만 잡으면 성격이 거칠어지고, 억눌렀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표출된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를 설명할 것 없이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드러내지 않을 뿐 속으로 늘 분노를 삭이고 사는 것이다. 특히 운전을 할 때는 차량 안에 자신만 있기 때문에 마음 속 분노를 더 쉽게 표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분노가 습관이 되면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가족, 지인과 함께 있을 때도 화를 내게 된다.

골프채를 들고 있는 모습
골프를 칠 때는 마음을 비우고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안 돼… 못 고치면 운전대 잡지 말아야

그러나 본래 성격도 상황의 특수성도 습관적인 분노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분노는 항상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화를 낼수록 자신도 더 쉽게 화를 내고,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 부메랑이 돼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미 습관화된 분노는 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우선, 분노가 표출될 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운전할 때 심하게 화를 낸다면 왜 화를 내는지, 화를 낼만한 상황인지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바꿔보도록 한다. 상황을 돌아볼 때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게 좋다. 길이 막혀 화가 난다면 조금 일찍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노력으로도 분노가 통제되지 않을 경우 당분간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한다.

골프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을 비우고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본인은 프로 선수가 아니다. 취미,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력이 늘지 않아 화가 난다면 채를 내려치지 말고 연습량을 늘리도록 한다. 주변 사람은 화를 내는 것을 목격했을 때 어렵더라도 단호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 분노가 용인되는 순간 분노는 더 쉽게 표출되고 습관이 된다. 곽금주 교수는 “결국 스스로 고치고자 노력해야 한다”며 “공간,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고, 건강한 분노 해소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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