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연예인의 어떤 말·행동도 ‘OK’, 맹목적 팬덤의 정체 [별별심리]

입력 2022.09.22 17:48

열혈지지자들, 확증편향에 빠져 단점 못봐
지지 행위 통해 사회적 정체성 구축하기도
SNS통해 맹목적 팬덤 심화… 이성 찾아야

사람들이 누군가를 향해 손 흔드는 모습
일러스트=박상철 화백
‘팬덤’은 많은 유명 인사들의 활동 기반이 된다.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은 물론, 유튜버나 브랜드조차 두터운 팬덤을 기반으로 흥하고 망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지원군을 자청하며, 때로는 특정 대상을 맹목적으로 지지해 그릇된 말이나 행동까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옹호하기도 한다. 무엇이 이토록 열렬한 팬덤을 만드는 걸까.

◇열혈 지지자들, 부도덕한 행위에도 여전히 응원
특정 대상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예인을 좋아해 ‘덕질’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는다고 한들, 개인의 사적인 취향과 취미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막아설 수 없다. 문제는 호감에서 시작된 응원이 과도해져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동경할 때다. 이 상태에 이르면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대상의 어떤 말과 행동도 용인한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해외 유명 유튜버 로건 폴의 구독자들이 그의 채널에 남긴 댓글을 통해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성향을 분석했다. 로건 폴은 구독자 약 236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로, 앞서 그는 ‘자살 숲’으로 알려진 일본 아키하가라 숲을 방문한 뒤 실제 주검을 촬영해 자신의 채널에 올려 많은 비난을 받았다. 연구에 따르면, 이전부터 그의 채널에 댓글을 남겨온 사람 중 77%는 해당 영상이 게재된 후에도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댓글을 통해 분노, 혐오감 등을 드러낸 사람은 약 20%에 불과했다. 특히 기존에 그의 영상에 긍정적인 댓글을 남겼거나 팬들만 사용하는 언어를 쓰던 사람일수록 계속 지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특정 대상을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길수록 호의적인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호기심에서 시작… 확증편향 빠져 맹목성 드러내
맹목적 팬덤은 작은 호기심, 관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취향에 맞거나 군중심리 등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호기심·관심을 가진 뒤, 이 같은 마음이 지속되고 호감으로 발전하면서 지지·응원하게 된다. 이때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신념이 더욱 확고해질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신념은 강해지고, 그럴수록 확증편향에 빠질 위험도 높아진다. 이 단계에 이르면 좋아하는 대상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지지와 응원이 맹목성을 띤다는 사실 역시 자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좋아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해당 대상과 직·간접적인 대면 횟수가 늘어날수록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더 빠져들게 된다. 지지 대상과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SNS를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간접적으로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포함된다.

특정 대상을 지지하는 행위를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시선도 있다. 정체성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특정 대상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을 지지 대상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동일시해 정체성을 확립하려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어딘가에 소속돼 안정감을 느끼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며 “여러 가치관이 혼재돼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특정 대상을 지지하거나 비슷한 뜻을 가진 집단에 속해 편승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심해져… 이성적이고 건강한 팬덤 필요
특정 인물의 팬덤이 형성되고 맹목성을 띠는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 열렬히 지지하는 것을 넘어, 좋아하는 대상·집단을 비판하면 무차별적으로 배척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SNS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와 달리 SNS상에서 쉽게 자신과 성향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두터운 팬덤을 형성할 수 있게 됐고, 반대로 맞지 않는 사람·집단과 충돌하는 것 역시 쉬워졌다. SNS를 통해 좋아하는 대상과 직간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친밀감이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전보다 팬덤이 다양화·세분화된 것을 원인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최적화된 팬덤을 선택하게 되면서 지지 심리가 한층 더 맹목성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 사람에게 한 팬덤만 있는 것이 아닌 여러 유형의 팬덤이 있다”며 “자신에게 최적화된 팬덤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들 간 결속력도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팬덤이 건강하게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성적·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때로는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고 지적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맹목성을 띠는 것은 위험하다. 곽금주 교수는 “상대방을 비판해 좋아하는 대상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위를 높이려는 것은 비정상적 행동”이라며 “자신과 팬덤은 물론,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서도 이성적이고 건강한 팬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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