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식지 않는 한, 방화는 계속된다[별별심리]

입력 2022.07.13 10:32

보복 심리 맞물려 한해 1000여 건… 사회적 '분노 처방' 시급

배에 불이 난 모습
지난 4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에 정박 중인 연승어선 3척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사진=연합뉴스DB
보복성 방화로 인한 화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화범죄는 가해 대상이 분명한 보복성 폭행, 살인 범죄 등과 달리, 사건과 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가 범행 대상이 된다. 범죄심리전문가들은 범인이 개인에 대한 보복 심리를 넘어, 특정 단체, 사회에 대한 강한 피해의식과 불만, 반감 등을 갖고 있으며, 분노를 더 많은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해 방화범죄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방화 범죄 한 해 1000건 이상… 사유는 ‘복수·억울함·불만’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방화범죄 발생 건수는 총 1210건이다. 2018년(1478건), 2019년(1345건)에 비해 사고 건수는 줄었으나, 여전히 한 해 1000건 이상의 방화 범죄가 발생했다.

올해만 해도 ‘강릉·동해 산불 방화사건’,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사건’, ‘부산 병원 응급실 방화사건’ 등 많은 재산·인명 피해가 발생한 방화사건이 있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방화범의 범행 사유는 ‘복수심’, ‘억울함’, ‘분노’ 등과 같은 감정이었다. 강릉·동해 산불 범인은 평소 이웃 주민들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인해 화가 나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으며, 대구 방화사건과 부산 병원 방화사건 범인 또한 각각 소송결과와 의료진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들이 여러 정신과적 문제가 있다고 해도, 죄의 크기나 질이 달라질 수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한 폭력성·공격성 보이고 분노의 ‘폭’ 넓어
과거에도 그랬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범인은 “혼자 죽기 억울하다”는 이유로 지하철에 불을 냈고, 숭례문 방화사건 범인 역시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국보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범죄심리전문가들은 이들의 행동과 심리에서 강한 폭력성·공격성·피해의식과 함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엿보인다고 설명한다. 한국범죄심리학회 송병호 회장은 “방화 범죄의 경우 막연히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불우한 환경이나 상황에 대한 그릇된 피해의식과 망상이 범행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방화범이 한 두 사람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나 단체에 불만, 억울함 등을 품은 방화범은 다른 범죄자에 비해 분노의 ‘폭’이 넓다. 실제로는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이웃이나 특정 사회 계층, 사회 시스템 등의 탓으로 돌린다. 여기에 극도의 보복 심리와 현실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면서, 모든 사람, 심지어 자신까지 잘못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쉽고 빠르게 분노 표출… 그들이 ‘불’을 선택한 이유
방화범은 특정 개인의 재산이나 생명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사회에 반감과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범행 목적이다. 그들이 범행 수단으로 ‘불’을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방화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쉽고 빠르게 많은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 방화 범죄는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크고 사건에 대한 관심 또한 높다.

전문가들은 방화범죄가 폭행, 살인 등 다른 범죄에 비해 범행이 어렵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해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방화범죄의 경우 범행 과정에서 가해 대상으로 인해 범행이 실패할 가능성이 없고, 방화도구만 있다면 언제든 범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백석대 경찰학부 김상균 교수는 “방화범죄는 폭행, 살인보다 범행이 용이하기 때문에 보복성 범행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나라는 개인의 총기 소지가 어려워, 대량으로 피해를 줄 수 있는 방화를 범행 수단으로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합리적 갈등 해결법 찾아야… ‘정신과적 문제’로 한정해선 안 돼
전문가들은 보복성 방화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간 분노·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방화사건은 대부분 개인 또는 사회·집단 간 갈등에서 비롯되며, 갈등을 정상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상균 교수는 “현재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심화되고 있지만, 해결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며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갈등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갈등과 분노를 관리·해소하는 방법에 대해 사회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화사건의 범인을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한정지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신과적 문제가 없어도 합리적으로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고 드러내는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방화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송병호 회장은 “과거와 달리 정신과적 문제가 없는 사람에 의해서도 새로운 유형의 방화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보복성 방화범죄의 원인·실태·심각성과 함께, 이 같은 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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