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이면 되는데, 왜 ‘노쇼’할까 [별별심리]

입력 2022.07.22 09:45

어려운 상황 회피 심리… 자기중심적 성향 많아
약속에 대한 책임감, 상대 배려 가져야​

면접장 그림
일러스트=박상철 화백
“어제만 해도 올 것처럼….” A기업 인사팀 김 부장은 요즘 ‘노쇼’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면접자가 전화 한 통 없이 당일에 ‘잠수’를 타는가 하면, 입사 예정자가 입사 날짜에 돌연 잠적해 연락이 닿지 않기도 한다. 빈 면접장에 한참 앉아있다 뒤늦게 노쇼 사실을 알고 면접을 취소하기 일쑤다. 김 부장이 그들에게 묻는다. “전화로 ‘못 갈 것 같습니다.’ 이 말 한 번이 어렵나요?”

◇이기심·회피·무책임, ‘노쇼’로 이어져
그동안 노쇼는 음식점, 호텔, 항공사 등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로 여겨졌다. 예약 고객이 취소 연락 없이 갑자기 방문하지 않아, 업체가 준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피해를 보는 식이었다. 최근에는 음식점, 공연장, 캠핑장은 물론, 병원과 기업 면접장에서도 노쇼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약금마저 없는 면접장은 사실상 노쇼에 ‘무방비’ 상태다. 이쯤 되면 예약과 약속이 존재하는 우리사회 모든 곳에 노쇼가 만연하다고 볼 수 있다.

노쇼에는 여러 가지 심리가 담겨있다. 약속을 파기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기심’, 상대방이 어떻게 되든 자신이 불편한 상황에 처하는 것만은 피하겠다는 ‘자기중심적’이고 ‘회피적’인 심리 등이다. 약속에 대한 무책임함, 갑작스럽게 계획을 바꾸는 즉흥적·충동적 성향도 엿보인다. 특히 비대면 시대에는 이 같은 심리들이 더욱 발동하기 쉽다. 그래선 안 되지만, 대다수 사람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성사된 약속일수록 책임감을 적게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책임감이 없다기보다, 스스로 중요성을 따져 이기적이고 변별적으로 책임감을 갖는 것”이라며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성격일수록 쉽게 우위를 따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화가 두려운 그들, 전화 대신 ‘회피’ 선택
노쇼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콜 포비아’ 현상과도 연관돼 있다. 콜 포비아란 전화통화에 어려움, 두려움, 부담 등을 느끼는 것으로, 어려서부터 문자, SNS에 익숙한 젊은 층일수록 이 같은 문제를 겪기 쉽다. 심한 경우 진동 소리만 들어도 놀라면서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 신체 증상을 겪기도 한다. 내성적이거나 완벽주의적인 성격, 과거 전화통화와 관련된 트라우마, 우리사회의 경직된 전화통화 문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활동 증가 역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콜 포비아가 있는 사람은 전화를 걸어 약속을 깨는 일을 불가능한 ‘미션’처럼 여긴다. 전화통화 자체가 곤욕인데, 전화를 걸어 어려운 이야기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황에 대처하는 것 대신, 피하고 숨어버리는 방법, ‘노쇼’를 선택한다.

◇어떤 이유도 용납 안 돼… 개개인 노력 필요
노쇼는 당사자가 연락이 어려울 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외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되지 않는다. 자신의 성격도 콜 포비아도 노쇼의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 노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경제적 손실뿐만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노쇼 환자로 인해 위급한 환자가 진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을 수 있고, 기업은 노쇼 면접자 때문에 다른 인재를 놓치고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전문가는 사회 제도만으론 노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조언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기심, 권위의식 등을 버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약속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콜 포비아가 있는 사람에게는 평소 편한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두려움, 부담을 조금씩 내려놓는 것을 권한다. 회피만으론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 곽금주 교수는 “자신이 여러 차례 노쇼 경험이 있다면 습관적으로 어려운 일을 피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노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