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P씨, 항문에 결핵이…
종합병원 외과 간호사인 P씨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직장이 병원인데 무슨 일로 다른 병원까지 왔을까 궁금하던 차에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그 동안 항문이 곪아서 열 번이나 치루 수술을 받았는데 도무지 낫지를 않아요. 마지막으로 수술한 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또 재발된 것 같아서 이번에는 소견서를 챙겨서 이 곳으로 왔어요.”
치루는 배변을 돕는 기름 성분을 분비하는 항문샘이 곪아서 생기는 병이다. 대부분 단순 세균 감염으로 인해 생기지만 결핵, 궤양성 대장염, 치열, 항문 직장염, 혈전성 치핵, 크론병 등의 다른 질환 때문에 발병하기도 한다. P씨처럼 재발이 잦은 경우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엔 원인이 되는 질환을 치료하기 전에는 치루 또한 완치되기 어렵다. 그러나 P씨는 특별히 앓고 있는 질환이 없다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도 정상이었고 결핵균 배양 검사도 음성으로 나와 별다른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정확한 진단을 위해 다른 질환의 유무를 처음부터 검사하기로 했다. 대장내시경 검사, 소장 캡슐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를 통해 크론병이나 항문결핵(결핵성 치루) 등의 질병 여부를 확인했다. 그러나 모든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런데 치루 수술을 하면서 병변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치루 줄기가 직장까지 지저분하게 뻗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결핵성 치루로 의심됐다. 확인을 위해 수술 후 ‘인터페론 측정법(QuantiFERON-TB Gold)’을 시행하자 예상대로 결핵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인터페론 측정법’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널리 이용되진 않지만 매우 효과적인 결핵 검사법이다. 채취한 혈액에 결핵균에만 있는 특이 항원을 떨어뜨려 면역물질의 하나인 ‘인터페론 감마’ 수치를 측정하는 방법으로서 기존의 ‘피부 반응 검사법’에 비해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
결핵성 치루는 항문점막이나 항문피부에 외상을 받은 후 결핵균인 마이코 박테리움이 감염되어 발생한다. 폐결핵을 함께 앓는 경우도 있지만 항문결핵만 존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된 증상은 일반 치루와 유사하다. 통증과 함께 항문 주위가 붓고 고름이 생기며 항문 주위 구멍을 통해 고름이 흘러 나온다. 상처부분이 창백하고 서혜부(사타구니) 임파절이 만져지기도 한다.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호르몬의 영향으로 대부분 남자에게 생기지만 P씨처럼 여자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결핵성 치루는 일반 치루보다 치료기간이 길다. 수술 후 약 6개월 또는 9개월 동안 결핵치료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폐결핵과 마찬가지로 항결핵제를 통한 약물요법이 실시되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완치 가능하다. 그러나 항결핵제는 독성이 많아서 간 기능 저하, 소화 장애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자의적으로 복용을 중단하거나 불규칙하게 복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항결핵제의 내성만 키워 오히려 완치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결핵성 치루를 완치시키려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기간까지 꾸준히 항결핵제를 복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P씨는 간호사답게 정해진 처방을 성실히 수행해 6개월 후 치루가 완치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종종 주위에 치루 환자가 있으면 예쁜 메모를 적어서 필자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