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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의약품 광고는 규제가 엄격하다. 광고에 현혹돼 약을 오·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대중 상업광고는 철저히 금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전문의약품도 상업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 광고에는 약물의 효용을 한눈에 강조하려는 제약사와 광고 제작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기 마련이고, 거기서 질병 관리의 ‘키(Key) 메시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의사·약사들이 보는 의료전문지 등에서만 이들 광고를 접할 수 있다.
▲ 1.마른 사람도 콜레스테롤치가 높을 수 있다고 강조한 고지혈증 치료제 광고.
1. ‘외모에 속고 있다’. 제약사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광고 카피다. 광고는 미모의 날씬한 여성과 비만 남성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총 콜레스테롤치는 250으로 같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날씬한 여성은 콜레스테롤치가 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광고는 이 같은 잘못된 상식을 뒤집고 있다. 체질에 따라 빼빼 마른 사람도 콜레스테롤치가 높을 수 있으며, 총 콜레스테롤치가 250 이상인 경우는 약물 치료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자신의 콜레스테롤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한편 대한순환기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중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2.9%에 불과하다.
2. 제약사 노바티스의 고혈압 약 광고에는 이종격투기를 하는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혈압을 정상으로 떨어뜨리면 과격한 운동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환자들이 적정 혈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 자릿수’ 이상의 혈압치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많은 고혈압 환자들이 아직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몸에 붉은 색 혈관을 새겨 넣어 ‘고혈압 치료=심혈관 보호’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3. 밥 돌 미국 전 상원의원과 축구 황제 펠레.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발기부전 질환 대중 캠페인 광고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치료제 비아그라는 환자의 10분의 1만이 의사와 상담하고 치료법을 찾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유명인사를 등장시켜 ‘발기부전’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를 계기로 나이 들면 으레 오는 현상쯤으로 여겨왔던 발기부전에 대해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시켰고, 많은 환자들에게 용기를 줬다. 또한 발기부전 환자는 고혈압·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면서, ‘발기부전=심혈관질환’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4. 새로이 개발되는 항암제의 특징은 암세포만 공격하는 이른바 ‘타깃’ 치료제다.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폐암 치료제 이레사 광고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도미노를 등장시켰다.
줄줄이 쓰러지는 도미노에서 중간에 한 개만 막아주면 나머지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원리를 이용, 이레사가 폐암이 자라는 과정에 꼭 필요한 특정 효소를 억제해, 전체 폐암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를 설명했다.
5. 비스테로이드성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광고는 매번 보습제를 바르는 아이를 보여주면서 이들이 약물 부작용 우려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보습제에 의존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또 광고는 온 가족이 아토피 환자 아빠를 긁어주는 장면을 통해, 아토피가 성인에게도 흔한 질환임을 표현하고 있다.
6. 과민성 장증후군 치료제 젤막 TV 캠페인 광고에는 ‘변비, 복부 불쾌감/복통, 팽만감, 변비’라는 글자를 배에 써놓은 ‘배꼽 티 여성’이 등장한다.
이는 과민성 장증후군의 3대 증상으로, 특히 젊은 여성에게 이 병이 많다는 것을 표현한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캠페인으로 이 병에 대한 인지도가 32%로 증가, 그 전에 비해 2배 올랐다.
( 의학전문 김철중기자 doctor@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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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는 배, 허벅지, 위팔 등 원하는 부위만 골라서 살을 빼는 국소 비만 치료가 ‘몸짱 열풍’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미용 목적의 체형(體形) 치료에 거부감을 보이던 대학병원까지 앞다퉈 국소 비만 클리닉을 개설하고 있다.
대한비만체형의학회 장지연 회장은 “과거엔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전신(全身) 비만만 치료의 대상이 됐으나 요즘엔 신체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국소 비만도 치료의 대상에 포함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국소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일부 약물이 비만 치료용으로 허가되지 않았으며 ▲치료한 부위의 진피층이 탄력을 잃어 처지거나 체지방이 다시 쌓일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신중한 치료를 당부하고 있다.
■주사요법
지방분해 효과가 있는 천식약 아미노필린 등을 살을 빼고자 하는 부위에 직접 주사하는 방법이다. 1주일에 1~2회 간격으로 보통 10회 정도 주사하며, 필요에 따라 주사 횟수를 더 늘릴 수 있다. 주사 바늘을 4㎜ 이상 찔러 피하조직에 주사하며, 보통 3㎝ 정도의 간격으로 주사한다.
장지연(트리니티클리닉 원장) 회장은 “메스꺼움, 구토, 가슴 두근거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최대한 희석해서 사용하므로 부작용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메조테라피■메조테라피
‘메조 건(gun)’ 등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서 약물을 거의 1~2㎜ 간격, 1~3㎜ 깊이로 주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주사 바늘로 피부를 한 번 할퀴고 지나간다고 할 정도로 얕고 촘촘하게 주사한다는 점에서 주사요법과 차이가 난다.
사용되는 약물은 아미노피린, 복합비타민, 프로카인(마취제), 메조카나(카페인 성분), 칼시토닌(골다공증약) 등이며, 대개 주 1회씩 10회 정도 주사하면 효과가 나타난다.
강남차병원 비만클리닉 박지현 교수는 “별다른 부작용은 없으며 유럽과 남미에서 널리 시술된다”며 “국소 비만뿐 아니라 튼살, 탈모증, 잔주름 등의 개선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 감압치료■엔더몰러지(감압치료)
일정하고 강한 흡인력이 나오는 롤러처럼 생긴 장비를 피부에 대고 문지르면 피부가 당겨졌다 놓여졌다 하면서 혈액과 림프액의 순환이 촉진되고, 지방이 분해된다.
박지현 교수는 “10회 정도 치료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며 “원래 재활 통증치료를 위해 고안된 기계였으나 체형 관리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방분해초음파
초음파 발생기를 살을 빼려는 부위 피부에 대고 문지르면 초음파로 인해 지방 세포의 분해와 변성이 촉진되며, 이렇게 분해된 지방은 임파관을 통해 서서히 배출돼 국소비만이 해소된다. 역시 10회 정도 치료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 밖에 살을 빼려는 부위에 전기자극을 가해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치료도 사용되고 있으며, 주사바늘로 탄산가스를 피하조직에 주입해서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카복시테라피’도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지방흡입수술
피부를 절개한 뒤 초음파나 진동 등을 이용해 지방을 분해하고 음압(陰壓)을 이용해 분해한 지방을 빨아내는 일종의 수술이다. 대부분의 국소 비만 치료는 10회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며, 효과가 아주 서서히 나타나지만 단번에 지방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지방을 많이 제거할 경우엔 전신마취를 해야 하며, 잘게 부서진 지방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막히면 사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사망사고도 여러 번 났다. 또 시술 비용이 비싸다는 점도 단점이다. 신극선 성형외과 신 원장은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지방을 제거하려 할 경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이지혜 기자 wigrac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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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는 배, 허벅지, 위팔 등 원하는 부위만 골라서 살을 빼는 국소 비만 치료가 ‘몸짱 열풍’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미용 목적의 체형(體形) 치료에 거부감을 보이던 대학병원까지 앞다퉈 국소 비만 클리닉을 개설하고 있다.
대한비만체형의학회 장지연 회장은 “과거엔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전신(全身) 비만만 치료의 대상이 됐으나 요즘엔 신체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국소 비만도 치료의 대상에 포함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국소 비만 치료에 사용되는 일부 약물이 비만 치료용으로 허가되지 않았으며 ▲치료한 부위의 진피층이 탄력을 잃어 처지거나 체지방이 다시 쌓일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신중한 치료를 당부하고 있다.
■ 주사요법
지방분해 효과가 있는 천식약 아미노필린 등을 살을 빼고자 하는 부위에 직접 주사하는 방법이다. 1주일에 1~2회 간격으로 보통 10회 정도 주사하며, 필요에 따라 주사 횟수를 더 늘릴 수 있다. 주사 바늘을 4㎜ 이상 찔러 피하조직에 주사하며, 보통 3㎝ 정도의 간격으로 주사한다.
장지연(트리니티클리닉 원장) 회장은 “메스꺼움, 구토, 가슴 두근거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최대한 희석해서 사용하므로 부작용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메조테라피■ 메조테라피
‘메조 건(gun)’ 등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서 약물을 거의 1~2㎜ 간격, 1~3㎜ 깊이로 주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주사 바늘로 피부를 한 번 할퀴고 지나간다고 할 정도로 얕고 촘촘하게 주사한다는 점에서 주사요법과 차이가 난다.
사용되는 약물은 아미노피린, 복합비타민, 프로카인(마취제), 메조카나(카페인 성분), 칼시토닌(골다공증약) 등이며, 대개 주 1회씩 10회 정도 주사하면 효과가 나타난다.
강남차병원 비만클리닉 박지현 교수는 “별다른 부작용은 없으며 유럽과 남미에서 널리 시술된다”며 “국소 비만뿐 아니라 튼살, 탈모증, 잔주름 등의 개선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 감압치료■ 엔더몰러지(감압치료)
일정하고 강한 흡인력이 나오는 롤러처럼 생긴 장비를 피부에 대고 문지르면 피부가 당겨졌다 놓여졌다 하면서 혈액과 림프액의 순환이 촉진되고, 지방이 분해된다.
박지현 교수는 “10회 정도 치료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며 “원래 재활 통증치료를 위해 고안된 기계였으나 체형 관리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 지방분해초음파
초음파 발생기를 살을 빼려는 부위 피부에 대고 문지르면 초음파로 인해 지방 세포의 분해와 변성이 촉진되며, 이렇게 분해된 지방은 임파관을 통해 서서히 배출돼 국소비만이 해소된다. 역시 10회 정도 치료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 밖에 살을 빼려는 부위에 전기자극을 가해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치료도 사용되고 있으며, 주사바늘로 탄산가스를 피하조직에 주입해서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카복시테라피’도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 지방흡입수술
피부를 절개한 뒤 초음파나 진동 등을 이용해 지방을 분해하고 음압(陰壓)을 이용해 분해한 지방을 빨아내는 일종의 수술이다. 대부분의 국소 비만 치료는 10회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며, 효과가 아주 서서히 나타나지만 단번에 지방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지방을 많이 제거할 경우엔 전신마취를 해야 하며, 잘게 부서진 지방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막히면 사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사망사고도 여러 번 났다. 또 시술 비용이 비싸다는 점도 단점이다. 신극선 성형외과 신 원장은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지방을 제거하려 할 경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이지혜 기자 wigra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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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30일간 연재하고 있습니다.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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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은 80.1세, 남성은 72.84세다. 영아사망, 암이나 교통사고 사망이 ‘평균 값’을 깎아 내렸는데도 이 정도니, 웬만한 사람은 평균 수명보다 10년 이상 더 살게 된다.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누구나 100세를 사는 시대도 이제 멀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아직 ‘100세 시대’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 “노년을 위해 건강 조심하라”고 하면 “적당히 살다 죽을테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한다. 실로 엄청난 착각이다. 100세 시대란 아프다고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의학의 발달로 이제 병에 걸려도 죽지 못하고 병든 상태로 살아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이 100세 시대의 특징이다.
따라서 고령화 시대엔 건강도 작전이 필요하다. 60년 또는 70년 살 때와 100년 살 때의 인생계획이 같을 수 없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어쩌면 60년은 그럭저럭 살 수 있을 지 모른다. 장기나 조직이 망가질 때쯤 사망하므로 본인이 치러야 하는 댓가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100년은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계획을 세우고 알들살뜰 아끼고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 몸의 여러 부속품은 절대 100년을 버틸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망가진 몸으로 30~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타이어가 펑크났거나, 문짝이 하나 떨어져 나갔거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마치 자동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듯 세심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몸을 아껴야 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에 따라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관절이다. 관절을 많이 사용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뼈와 뼈를 연결하는 연골이 닳거나 관절을 이루고 있는 조직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이 관절염이다. 60~70년만 산다면 50~60대에 관절염이 와도 10년쯤은 참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다. 어떻게 30~40년을 앉거나 누워서 지낼 수 있을까?
▲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의 무릎관절 엑스레이 사진./ 조선일보DB
다행스럽게도 최근 인공관절 수술이 도입돼 망가진 관절을 갈아 끼울 수 있다지만, 노년에 뼈를 갈아 끼우는 큰 수술을 받는다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관절을 아끼고 잘 관리해서 제 관절로 제 수명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몸은 200개가 넘는 뼈로 구성돼 있는데, 뼈의 크기와 상관없이 뼈와 뼈가 이어지는 곳엔 어디나 관절이 존재한다. 엉덩이, 무릎, 발, 어깨, 팔꿈치, 손, 목, 척추 등에 관절이 있으며, 심지어 두개골이나 갈비뼈에도 관절이 있다. 관절의 도움으로 사람은 아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일 수 있다. 만약 관절이 손상되거나 제 역할을 못한다면 사람의 동작은 영화 속 로봇처럼 각이 지고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관절은 또 뼈와 뼈 사이 완충역할을 함으로써 뼈가 마모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도와 준다.
먼저 관절의 구조를 살펴보자. 뼈와 뼈가 맞닿는 곳, 즉 뼈의 제일 끝 부분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끄러운 연골, 즉 물렁뼈로 덮혀 있다. 70~80%가 물인 연골은 충격을 흡수할 뿐 아니라, 뼈와 뼈가 서로 맞닿아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뼈에는 질기고 단단한 인대가 붙어 있어 서로 떨어진 뼈와 뼈를 연결시켜 준다. 만약 인대가 손상을 입으면 뼈와 뼈의 고정력이 약해져 뼈가 흔들리게 된다. 관절낭은 뼈와 인대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질긴 주머니다. 관절낭 안에는 마치 자동차의 윤활유처럼 아주 미끈거리는 관절액(활액)이 가득차 있는데, 관절액은 관절낭 속 활막이란 조직에서 생산된다.
한편 관절낭 밖은 근육이 감싸고 있는데 근육은 관절 주변의 충격을 흡수하고, 관절을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한다. 근육 끝에는 힘줄이 붙어 있어 근육과 관절을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관절낭과 근육 사이에는 점액낭이란 작은 주머니가 있는데, 여기서도 일종의 윤활유가 분비돼 관절과 근육의 마찰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것 같지만 관절 하나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많은 조직이 서로 힘을 합하고 있다.
관절염에는 퇴행성 관절염과 류마티스 관절염, 통풍성 관절염, 화농성 관절염 등이 있다. 염증이란 생체조직이 외상, 화상, 세균침입 등으로 인한 손상을 입었을 때 체내에서 일어나는 방어적 반응으로, 충혈, 부종, 발열,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관절염의 경우 관절이 뻣뻣해 지는 증상이 추가된다. 흔히 염증이라면 고름을 먼저 떠 올리지만, 고름이 있는 관절염은 화농성 관절염 뿐이며, 나머지 관절염은 고름 없이 염증현상만 나타난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퇴행성 관절염은 글자 그대로 노화 때문에 생기는 관절염이다. 차를 오래 타면 타이어가 마모되는 것처럼 관절을 많이 사용하면 연골이 마모돼 관절염이 유발된다. 물론 젊었을 때도 마라톤과 같은 과격한 운동을 하면 연골이 마모되지만, 이때는 웬만큼 닳아도 금방 재생되므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닳기만 하고 재생은 안돼, 연골이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지 못하고 얇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40세 이후 관절연골의 마모가 시작되며, 70세쯤 되면 대부분 퇴행성 관절염 증상이 나타난다. 이들의 무릎 등을 엑스선 촬영하면 연골이 심하게 마모돼 있고, 뼈 끝이 매끈하지 않고 우툴두툴하게 ‘군 뼈’가 생겨 있는 게 특징이다.
퇴행성 관절염의 두 번 째 원인은 관절의 과도한 사용이다. 아무리 새 타이어라 해도 매일 서울 부산을 왕복한다면 빨리 닳을 수 밖에 없다. 또 아스팔트가 아닌 비포장 도로를 매일 주행하는 자동차처럼 관절에 무리한 충격을 주는 경우에도 연골이 마모돼 퇴행성 관절염이 유발된다.
셋째는 부상이다. 관절은 다른 인체조직과 달리 ‘형상기억장치’가 없는 부위다. 대부분의 인체 조직이 손상을 당하면 원래대로 재생되지만, 관절을 다치면 원 상태로 매끈하게 회복되지 않고 관절면이 우둘투둘해지기 때문에 관절염이 유발된다.
넷째는 비만이다. 운전자 한 사람만 탄 차와 사람과 짐을 가득 실은 차의 타이어 마모 상태가 같을 수가 없다. 당연히 사람과 짐을 많이 실은 차가 타이어도 많이 마모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살이 많이 찐 사람은 관절이 받는 충격도 그만큼 크므로 관절이 빨리 망가지게 된다.
다섯째는 성별이다. 똑 같이 나이를 먹는데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퇴행성 관절염이 3~4배 많이 발병한다. 정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자들은 관절이 남자보다 작은데다 관절에 부담이 되게 쪼그려 앉아 가사 노동을 많이 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여섯째는 유전적 성향이다. 나이, 체중, 부상 경험 등 다른 조건이 똑 같은 데도 어떤 사람은 퇴행성 관절염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걸리지 않는 이유는 유전적 성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행성 관절염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관절에 무리를 주는 과격한 운동을 삼가하고, 관절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스키, 스노우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농구, 등산, 마라톤 등은 관절을 다치기 쉬운 운동이므로 이 운동을 할 때는 준비운동을 철저히 해서 관절을 풀어주고, 관절 보호대를 착용하는 등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현미경으로 사람의 관절을 들여다보면 50대 이상은 누구나 무릎 연골에 조금씩 금이 가 있다. 따라서 이 연령대의 사람들은 관절에 과도한 충격을 주는 운동을 삼가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신력을 앞세워 ‘악으로 깡으로’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동남아나 중국 등지로 골프 투어를 가서 2~3일간 하루에 36홀, 심지어 54홀씩 라운딩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을 무박(無泊) 산행한다고 깜깜한 밤중에 산 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이런 행동들은 관절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40대 이상의 중년인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 젊었을 때 생각만 하고 “내가 이래뵈도...”하며 힘자랑을 하려 드는 사람이 많은데, 현명한 사람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과 사고를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관절을 적절하게 움직여서 관절을 구성하는 인대와 근육과 힘줄 등을 단련시키는 것도 관절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키 포인트 중 하나다. 연골이 닳아 퇴행성 관절염이 생긴다고 설명하면 “그렇다면 걷지도 뛰지도 말고 앉아만 있을까요”하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자동차를 아낀 다고 너무 오랫동안 세워 두면 부품에 녹이 슬어 망가지는 것처럼 관절도 사용하지 않으면 뻣뻣하게 굳어 문제를 일으킨다. 오십견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 적당히 움직여서 자극을 줘야 관절의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연골이 튼튼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관절은 항상 제 운동범위만큼 충분히 움직여 굳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맨손체조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의 관절이 굳어 있으므로 맨손체조로 온 몸의 관절을 충분히 풀어준 뒤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설문조사를 해 보면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게 맨손체조다. 매일 아침 걷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맨손 체조를 건너 뛰는 경우가 많다. 맨손체조는 운동하는 기분도 나지 않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 몸의 관절과 근육을 풀어주는 맨손체조야 말로 그 어느 운동보다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운동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퇴행성 관절염을 예방하려면 그 외에도 항상 표준 체중을 유지해서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을 줄여야 하며, 쪼그려 앉거나 엎드려 걸레질 하는 것처럼 관절에 부담을 주는 나쁜 자세를 고쳐야 한다. 차렷자세처럼 고정된 자세를 오랫동안 취하고 있는 것은 관절에 부담이 되므로 자주자주 자세를 바꿔 주는 게 좋다. 또 관절은 추울 때 손상을 더 쉽게 받으므로 몸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도 관절을 아끼는 방법 중 하나다.
퇴행성 관절염은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증상을 방치하거나 잘못 치료하면 관절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게 된다. 무릎 관절이 뒤틀려 다리가 O자형으로 굽은 할머니들을 흔히 보게 되는데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지면 이렇게 된다. 이때는 보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므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결론’은 아니다. 적절한 운동, 물리치료,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 조절이 가능하며, 인공관절수술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
우선 관절염이 시작되면 환자는 움직여야 한다. 아프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관절이 더 굳어지므로 가벼운 통증은 참고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 맨손체조나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이 좋다. 그러나 운동 뒤 관절이 아프거나 붓는다면 운동이 지나친 경우므로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 또 관절염 증상이 급성으로 나타날 때 운동하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이 때는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관절을 쉬게 해야 한다. 급성기 관절염에는 냉찜질로, 만성기엔 온찜질로 관절을 보호하는 게 좋으며, 파스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치료가 시작되면 의사를 믿고 약물치료를 받고 필요하다면 관절주사도 맞아야 한다. 관절염에 사용되는 약물은 아스피린, 스테로이드,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 콕스2억제제 등 다양하다. 또 가장 많이 쓰이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의 경우도 인도메타신, 펠덴, 썰감, 낙센, 볼타렌 등 종류가 무수히 많다. 이 약들은 환자에 따라 효과가 달리 나타나므로 환자는 의사와 상의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선택해야 한다. “관절염 약은 속을 버린다”는 얘기를 자꾸 퍼트려선 안된다. 최근 개발된 콕스2억제제의 경우 위장장애가 거의 없으므로 의사가 처방한 기간동안 처방한 용량을 정확하게 복용해야 한다.
“뼈 주사는 부작용이 심하니 가급적 안 맞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뼈 주사’란 스테로이드 성분을 뼈가 아닌 관절 내부에 주입하는 치료로, 최악의 경우 뼈가 죽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 관절의 통증과 부종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없다. 따라서 신중할 필요는 있지만 의사의 처방을 불신하고 거부해선 안된다. 효과와 부작용의 함수관계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의사다.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틴 등 관절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천연 아미노당인 글루코사민은 연골, 손톱, 피부, 머리카락의 구성 성분이다. 연골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세계보건기구도 ‘관절염에 도움이 되는 성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글루코사민은 비타민C나 망간과 함께 복용하면 더 흡수가 잘 되므로 이 성분이 첨가된 것을 복용하는 게 좋다. 상어, 가오리, 고래, 오징어, 해삼 등에 많은 콘드로이틴 성분은 연골에 영양을 공급해서 연골이 탄력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연골을 파괴시키는 효소를 억제하고, 염증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틴은 출혈, 인슐린작용 억제 등의 부작용이 있으므로 복용시에는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관절액의 일종인 하이알루닌산을 관절 내부에 주사하는 것도 어느 정도 관절을 재생하는 효과가 있으며, 관절의 부종과 통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아보카도, 스쿠알렌 등이 퇴행성 관절염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 임상적으로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지네나 고양이, 박쥐 등을 삶아먹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물리-약물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라도 관절경을 이용해 관절면이나 활액막에 웃자란 군더더기를 제거해 주거나(골극제거술), 관절 속 노폐물이나 찌꺼기를 제거하면(관절세척술) 효과적으로 관절염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퇴행성 관절염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물-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관절경 수술도 받아야 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공격해야 할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엉뚱하게 아군(我軍)인 우리 몸을 공격해 생기는 병이다. 즉 혈액 속 백혈구 세포가 관절과 관절 주위 근육, 인대, 뼈 등을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의 초기 증세는 주로 손마디가 뻣뻣해지는 게 특징인데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심하며, 관절을 많이 움직이면 뻣뻣한 증세가 풀리게 된다. 처음엔 손마디만 뻣뻣하고 붓지만 조금 지나면 팔꿈치, 어깨, 무릎, 발목까지 염증이 침범하며,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관절 연골이나 주위 조직이 손상돼 관절마디가 휘어지거나 굳어지게 된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마귀할멈의 굳고 휘어진 손가락이 바로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손이다.
퇴행성 관절염이 40대나 50대 이후에 주로 나타나는데 비해 류마티스 관절염은 30세 전후 비교적 젊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며, 퇴행성 관절염이 몸의 한쪽 관절에서 시작되는데 비해 류마티스 관절염은 대칭되는 몸의 양쪽 관절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발가락 어깨 등 온 몸 관절에 대부분 영향을 미치며, 붉은 반점이나 열, 체중감소, 피로감 등의 신체증상이 동반되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 곳곳의 관절이 뻣뻣해지면서 1시간 이상 아프고, 손이나 발가락 마디가 붓고 아픈 증세가 6주 이상 지속되며, 피로감, 미열, 체중 감소 등의 증세가 있으면 빨리 류마티스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류마티스 관절염 역시 치료가 쉽지 않다. 퇴행성 관절염에서처럼 아스피린,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 스테로이드, 콕스2억제제 등의 약을 쓰는데 이를 ‘제1열 치료제’라 한다. 1열 치료제가 듣지 않는 경우엔 ‘제2열 치료제’라 불리는 항암제, 말라리아약, 금(gold) 등을 쓴다. 2열 치료제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매우 심하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도하에 복용해야 한다. 물론 퇴행성 관절염에서처럼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도 병행해야 한다.
한편 류마티스 관절염의 경우에도 약물치료가 듣지 않는다면 관절경 수술을 시행하며, 그래도 안되는 경우엔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인공관절수술의 효과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보다 약간 낮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통풍성 관절염이란 음식물 속에 포함된 ‘퓨린’이란 물질의 대사 장애로 혈중 요산치가 높아지고, 이 요산이 결정을 형성해 관절과 그 주위조직에 달라붙어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주로 발가락에 가장 많이 생기지만 손가락, 손목, 팔꿈치, 발목, 무릎 등에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요산수치가 높은 사람은 육류와 육류 내장(간, 뇌 등), 멸치, 청어, 고등어,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알콜 등을 삼가하는 식이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체중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화농성 관절염이란 수술이나 부상 등 피부의 상처를 통해 세균이 관절 안으로 침투하고 증식해서 관절조직을 파괴하는 병이다. 이때는 염증이 심해 고름이 생기게 된다. 주로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하며, 부상 등 사고 후유증으로 생기는 경우도 많다, 무릎 관절에 가장 많이 나타나며, 엉덩이 관절, 어깨 관절에 나타나는 경우도 비교적 흔하다. 화농성 관절염을 적절하게 치료하지 못하면 관절은 물론 뼈까지 완전히 망가지므로, 이 병으로 진단되면 응급수술로 고름을 빼 내고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한다.
결핵성 관절염이란 결핵균이 관절에 침범해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다른 관절염과 달리 증상이 매우 서서히 진행되므로 퇴행성 관절염으로 오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결핵약으로 치료한다.
관절염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병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 관절염은 완치가 매우 어렵다. 의사들의 처방도 일시적인 진통 효과 뿐이라 환자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 진다. 그 틈을 타서 근거도 없는 각종 민간요법들이 특효약으로 둔갑해 환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은 다소 줄었지만 십수년전만 해도 관절염 환자는 십중팔구 고양이나 지네, 박쥐를 고아 먹었다. 관절이 좋을 것같은 동물을 먹으면 관절염이 낫는다는 ‘동종요법’적 믿음 때문이다. 또 한때 자기 오줌을 먹는 것과 포도를 줄기차게 먹는 방법이 유행했으며, 그 뒤에도 홍화씨, 오가피, 식물뿌리, 구리팔찌, 좌석요, 벌침, 뜸 등이 관절염 특효약으로 변신해 가난한 환자의 돈을 긁어갔거나 가고 있다.
민간요법이 횡행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의사보다 주변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귀울이기 때문이다. “낫기 힘들다”는 의사보다 “누구누구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낳았다더라”는 주변 사람을 더 믿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와 미장원 미용사의 처방이 의사 처방보다 더 권위를 인정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미용사나 때밀이 아줌마를 주치의 삼았던 사람들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관절이 완전히 망가져 어떻게 손 써 볼 여지도 없는 상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정체 불명의 특효약이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관절염 증상을 일시에 없애주는 마법과 같은 약이다. 이 약만 먹으면 욱신욱신 지끈지끈 거리는 관절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낫는다. 스테로이드 특효약을 파는 사람은 환자의 입에 입을 통해 ‘용하다’고 소문이 나고, 그래서 그 사람 앞엔 관절염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이 성분을 부적절하게 섭취하면 백내장,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 비만, 피부 얇아짐, 출혈 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된다. 약효가 뛰어난데도 의사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스테로이드를 처방하는 이유는 이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환자들 중 상당수는 관절염 약은 독해 속을 버리고, 한번 먹으면 인이 박혀 평생 먹어야 하며, 따라서 가급적 오래 버티다 늦게 약 복용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죄다 환자를 골병들게 하는 잘못된 상식들이다. 물론 과거 관절염 약은 부작용 때문에 소화장애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작용 없고 효과적인 약들이 무수히 개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전 입소문이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며 관절염 환자를 호도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지만 관절염 치료는 미장원이나 목욕탕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관절염 치료의 첫 걸음은 ‘~카더라’는 소리에 귀를 막고 의사를 바라보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하는지도 모른다.
■김성윤 박사는
지난 2001년 서울 신사동에 류마티스 클리닉을 개원한 김성윤 박사는 우리시대 명의(名醫)의 대명사다.
▲ 김성윤 김성윤류머티스병원 원장한양대병원 재직시절, 그에게 진찰을 받으려면 3~5년씩 걸렸다. 아주 오래전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종합병원 유명교수 특진상황’에 따르면 간 박사로 유명한 김정룡 전 서울대병원 교수를 제치고 그가 ‘최고 명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똑 같은 검사를 하고 똑 같은 약을 주는 요즘 시대에 명의가 어디있냐”고 얘기한다. 경험과 감(感)에 의존하는 ‘명의의 시대’는 갔고, 이젠 과학과 의학의 시대라는 것이다.
김박사는 생글생글 웃는 인상이 참 반듯하게 잘 생겼다. 말도 너무 쉽게 한다. 그의 말은 비유와 사례가 아주 적절하게 뒤섞여 있어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다. 또 요점정리가 잘 돼 있어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알아듣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로 무뚝뚝하게 설명하는 다른 의사들과의 차이점이다. 관절염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줌마’들은 그런 김박사의 ‘열성 팬’을 자처했고, 그 바람에 ‘뻔질나게’ TV 아침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 탤런트가 됐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 명의의 자리를 지키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 박사 자신의 지적대로, 류마티스 관절염에 명의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류마티스 환자들은 그와 대면하기 위해 수년씩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김 박사는 그토록 오래 기다린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줌으로써 마음까지 사로잡아 버린다. “김 박사 얼굴만 봐도 병이 낫는다”는 루머가 나돌 정도며, 다른 의사들은 이 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류마티스 관절염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완치가 불가능하며 평생 관리-조절해 해 나가야 하는 병. 어떻게 보면 뚜렷한 완치법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따뜻함과 카리스마가 있는 그의 목소리야 말로 최선의 치료제인지도 모른다.
1975년 한양대의대를 졸업하고 1980년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김박사는 1983~1986년까지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의대 등에서 류마티스 관절염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당시만 해도 관절염은 당연히 정형외과의사가 치료해야 하는 정형외과 질환. 선배들은 “내과의사가 왜 관절염을 공부했냐”고 면박을 줬고,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를 그가 아닌 정형외과 의사에게 의뢰함으로써 그를 따돌렸다. 지금은 표준 치료제로 정착됐지만 초기엔 말라리아 치료제나 항암제(메스트렉세이트)를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투여하다 “오진했다”며 멱살 잡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어렵게 개발-정착시켜온 표준 치료-투약법들은 이제 류마티스 관절염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의 실력은 그를 기다리는 환자가 증거다.
김성윤 박사는 이제 쉬고 싶다고 했다. 너무 정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끝이 추해진다는 것이다. 막 전문의를 딴,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젊은 친구보다 여러면에서 뒤쳐지는데도 정상을 지키고 앉아 있으려면 후배들을 권위로 누를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언제 들어도 논리가 명쾌하다.
■인공관절 수술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연세가 많은데 큰 수술은 받아도 될까”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인공관절 수술은 기본적으로 노인을 위한 수술이다. 당뇨나 고혈압 등이 심한 경우라면 비교적 안심하고 수술받아도 된다.
인공관절 수술은 관절과 뼈의 일부를 잘라낸 뒤 인공관절을 남아있는 뼈 속에 삽입해 단단하게 고정하는 수술이다. 연골을 대신하는 소재로는 강화 폴리에틸렌이나 세라믹이 사용되며, 나머지 부분은 코발트합금, 티타늄 등의 금속을 사용한다. 과거엔 10~15년 사용하면 인공관절이 마모돼 재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최근엔 성능이 향상돼 관리만 잘하면 20~3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65세 이상 노인이 수술받으면 사실상 평생 재수술 없이 지낼 수 있다.
수술 2~3일 뒤 환자는 목발이나 보행기를 짚고 일어설 수 있으며, 엉덩이 관절 수술환자는 두 달 쯤 뒤, 무릎관절 수술 환자는 한 달 쯤 뒤부터 목발-보행기 없이 보행이 가능하다. 무릎 인공관절의 경우 인공관절이 움직이는 각도가 110~120도 정도이므로 쪼그려 앉거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수 없다. 골프, 수영, 자전거타기, 등산 등의 운동은 해도 문제 없지만 심하게 뛰거나 다른 사람과 신체접촉이 있는 운동을 해선 안된다.
수술 뒤 처음 1년간은 3개월에 한번, 그 이후엔 6개월이나 1년에 한번 병원을 방문해 인공관절의 상태를 점검받는 게 좋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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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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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1/3~1/4은 잠이다. 80세까지 산다면 20~25년을 잠자리에서 보낸다. 그 세월 만큼 인생을 허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해(苦海) 속에 표류하는 나약한 인생에게 주어진 달콤한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피곤하고 지쳐버린 육체와 영혼에 새 기운, 새 희망을 불어 넣는 게 잠이다.
천근만근의 무게로 심신을 짓눌렀던 어제도 잠을 자고 나면 과거가 되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휴일 아침,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평안함을 “게으르다”고 말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슬프고 무미건조해 질까?
19세기 초반까지 사람들은 잠을 각성과 죽음의 중간상태로 생각했다. 밤에 뇌가 휴식상태에 들어가면서 잠이 들고, 아침에 뇌가 깨어나면서 잠이 깬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잠을 자며 꾸는 꿈은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돼지꿈을 꾸거나 똥을 보면 횡재를 한다고 생각했고, 땅 속으로 꺼지거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면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 했다. 꿈이 애매모호할 때는 그 의미를 밝히는 ‘해몽사(解夢士)’를 불렀다. 이같은 ‘비과학’은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의 한 대학원생이 잠을 자는 어린아이의 눈이 어느 순간 마치 무엇을 보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꿈과 관계되는 수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 명명했다. 안구가 급속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또 다른 대학원생은 잠이 마치 건축 구조물과 같이 단계와 구조가 있는 복합적이고 질서있는 현상임을 발견하고, 잠을 깊이에 따라 1~4단계로 구분했다.
현대 수면의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잠을 설명해 보자. 사람의 잠은 1~4단계로 분류되며, 꿈을 꾸는 렘 수면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잠이 들땐 얕은 잠인 1단계를 거쳐 2-3-4단계로 진행되며, 4단계가 끝나면 렘 수면 단계로 올라와 첫번째 꿈을 꾸게 된다. 렘 수면이 끝나면 다시 1~4단계 중 어느 한단계로 돌아갔다 다시 렘 수면으로 돌아오길 하룻밤에 4~6회 반복한다. 수면시간의 첫 1/3에 깊은 잠 즉 3,4단계 수면이 집중돼 있고, 끝 1/3에 렘 수면이 집중돼 있다. 깊은 잠 단계에선 외부 자극 없이 잠을 깨는 일이 거의 없는데, 깊은 잠은 보통 새벽 2시 정도에 끝난다. 그 이후엔 얕은 잠과 렘 수면이 반복되는 게 보통이다.
꿈을 안 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성인의 잠은 20~25%가 꿈이고, 아기의 잠은 절반 정도가 꿈이다. 꿈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 심리적이고 애매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논리적인 사람보다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또 꿈꾸는 도중이나 꿈 꾼 직후 잠을 깨면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렘 수면, 즉 꿈을 꾸는 도중에 깨워 방금 꾼 꿈을 물어보면 약 85%가 꿈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만, 렘 수면이 아닌 단계에서 깨워 물어보면 약 5%만이 꿈을 기억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잠을 자야 할까. 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피로회복이다. 수면 중엔 신체의 모든 기관이 휴식상태에 돌입하고 낮 시간에 축적된 각종 피로물질이 분해된다. 잠을 못자면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아는 상식이다. 강제로 잠을 못자게 하자 각종 호르몬 체계가 교란되고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사망했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잠이 부족하면 피로, 집중력 저하, 짜증, 환각, 망상, 공격성 증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또 수면 중엔 성장호르몬이 집중적으로 분비되므로, 어린이가 잠을 적게 자면 키가 덜 자란다.
잠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정보처리와 갈등해소 기능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게 꿈이다. 사람의 꿈은 과거의 기억을 정리, 분류, 삭제, 저장하는 일을 담당한다. 쓰레기와 같은 과거의 기록을 모두 떠 안고 살아간다면 그러잖아도 복잡한 인생이 얼마나 고달퍼질까.
꿈을 통해 사람의 뇌는 필요하고 유용한 기억을 저장하고, ‘쓰레기 기억’을 삭제하게 된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려면 잠도 충분히 자야 한다. 졸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밤 늦게까지 공부해 봤자 입력된 정보가 저장될 시간이 부족해져 학습능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꿈을 많이 꾸면 “잠을 설쳤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심지어 악몽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과 같은 충격 이후 겪는 악몽은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나쁜 경험을 통합해 다소의 치료적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악몽이 지나쳐 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는 예외다.
사람은 몇 시간 정도 잠을 자야 할까. 어떤 사람은 4시간만 자면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7~8시간은 자야 된다고 한다. 모두 정답이 아니다. 적정 수면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긍정적·적극적인 사람은 수면시간이 짧고, 수동적·소극적인 사람은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수면시간은 최대 30분 정도며, 그 이상 억지로 줄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수험생이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폴레옹이 토막잠을 여러번 나누어서 잔 것으로 유명한데, 잠은 한번에 이어 자야 1~4단계와 렘 수면이 적절히 조화돼 피로회복, 신진대사, 성장, 기억력 저장 등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잠이 모자란 현대인은 엉덩이만 붙이면 어디서든 쉽게 잠에 빠져들지만 불면인들은 잠을 자기 위해 매일 밤 사투(死鬪)를 벌인다.
사실 불면의 고통은 사람이 겪는 가장 혹독한 경험 중 하나다.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어제도 잠을 못 잤다”는 사람에게 “잠 안 오면 책도 읽고, 비디오도 보고, 정 심심하면 일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나도 한번 불면증에 걸려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에겐 주먹이라도 한방 날리고 싶은 게 불면인의 심정이다. 필자도 한 때 그같은 불면을 경험했다.
침대속의 불면인에겐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것 같다. 잠을 청해보려 갖은 애를 쓰다 버럭 화를 내며 침대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처절함이 매일 밤 계속 된다. 견디다 못해 때로는 무작정 집을 나와 ‘몽유인(夢遊人)’처럼 길 거리를 배회하기도 하고, 포장마차를 찾아 소주를 마셔보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정신을 더욱 또렷해 진다. 이렇게 잠과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4시가 지나가 5시도 지나, 창문이 훤하게 밝아온다. 그 고통을 도대체 누가 알아줄까. 이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제로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불면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병이라기 보단 열이나 두통 등과 같은 증상이다. 수 없이 많은 원인들 때문에 불면이란 증상이 나타난다. 걱정이나 근심 등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때로는 사지운동증, 두통, 그 밖의 통증 등과 같은 신체적 질병이 불면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불면증이 심한 경우엔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 불면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란 8시간 정도 잠을 자게 하며 뇌파와 안구운동, 심전도, 근전도, 호흡, 코골이, 이갈이, 혈중 산소 포화도 등 수면에 영향을 주는 모든 현상을 관찰-측정-판독하는 검사다. 만성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사지운동증, 기면병, 악몽 등 초수면 장애, 이갈이 등의 병을 진단하는데 유용하다. 대형병원 수면장애센터(곳에 따라 정신과, 호흡기내과 등)에서 받을 수 있으며 비용은 50~80만원 선이다.
불면증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잠을 자다 중간에 자주 깨는 것, 세째는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중 잠이 들지 못하는 유형이 가장 많고, 증상도 가장 심각한데, 이 경우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 이유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간에 자주 깨거나 새벽에 깨는 불면증은 신체적인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코를 심하게 골면서 일시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 수면무호흡증이나, 무릎 아래 다리를 주기적으로 떠는 사지운동증 등은 숙면을 방해해 잠에서 자주 깨는 원인이 된다.
잠이 들지 못하는 유형의 만성 불면증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늪과 같아서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더욱 더 정신이 또렷해지는 게 특징이다. “오늘은 기어코 잠에 들겠다”고 다짐하며 최적의 수면조건을 갖추고 잠자리에 들지만 갑자기 “이러다 또 잠이 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초조감이 음습하면서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제와 같은 고통의 밤이 오늘도 이어지게 된다.
잠을 자겠다는 의지는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최대의 위험 인자다. 따라서 “잠이 안오면 억지로 자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침대에 눕지 않는게 불면증 치료의 첫 걸음이다. 사람은 하루 이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전날 잠을 못잤더라도 잠을 보충하려 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잠이 안 오면 침대에 누워있기 보다는 책을 보거나 일을 하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새벽이 가까와 지고 다시 초조해 지는데, 이 때 물러서면 안된다. “그래 이왕 못 잤는데, 오늘도 자지 말자”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갖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견딜 수 없이 잠이 쏟아지고, 그때 침대에 몸을 누이면 잠들기에 성공할 수 있다.
신체질환 때문에 생긴 불면증이 아니라면 불면증 환자는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퇴직자에게 불면증이 잘 나타나는 것은 취침시간, 기상시간, 식사시간 등 생활리듬이 불규칙하고, 이 때문에 뇌 속의 생체시계가 교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규칙적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하고, 전날 잠을 설쳤다고 낮잠을 오래 자는 것은 좋지 않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운동은 육체적 피로를 유발해 수면에 빠져드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밤 늦은 시간 운동을 심하게 하면 인체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교감신경계가 자극돼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잠을 청하기 어렵게 된다.
밤에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나 목욕을 해도 교감신경계가 자극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하면 인체를 편안한 휴식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부교감신경계의 세력이 우세해져 잠을 쉽게 청할 수 있다.
술이나 담배, 카페인 음료 역시 교감신경계를 자극하므로 불면증 환자는 조심해야 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제는 습관성과 내성이 있으므로 전문의 처방을 받아 한달 이내만 복용해야 하며, 매일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편 불면증 환자는 벽 시계를 치워 버려야 한다. 침대에 누워 시계를 자꾸 쳐다보면 뇌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아직도 못 잤다”는 패배감과 불안감에 젖게 돼, 헤어날 수 없는 불면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불면증과 더불어 가장 흔한 수면장애는 수면무호흡증이다. 얼마전까진 코를 심하게 고는 것을 병으로 치지 않았다. 그러나 코를 심하게 골면 수면무호흡증이 유발돼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 등이 더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의 질이 떨어져 피로회복이 더디고 집중력·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코를 심하게 곤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 볼 필요가 있다.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되면 코에 산소 마스크 같은 것을 끼고 자는 상기도 양압기를 사용하거나, 마우스피스 처럼 생긴 것을 입 속에 넣고 자는 구강내 보조장치를 사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엔 입이나 코에 무엇을 물고 끼고 자는게 무척 거추장 스럽지만, 익숙해 지면 큰 불편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비강이나 인후두부를 수술해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기도 한다.
사지운동증, 기면병, 몽유병 등도 비교적 흔한 수면장애다. 잠을 못자는 불면증과 달리 기면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잠이 쏟아져 심지어 말을 하거나 식사를 하다 잠에 빠지는 병이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웃거나 흥분하면 갑자기 온 몸 근육의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이 나타나 간질 치료를 받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잠들 무렵 환각현상이나 가위눌림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10대에 시작돼 학업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만 조기 발견해 약물치료를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사지운동증은 무릎 아래 근육을 주기적으로 수축시키는 병으로 그 바람에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며 당뇨나 신장질환, 빈혈이 있는 경우에도 비교적 흔하게 나타난다. 술을 오랬동안 좋아했던 경우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병은 약물로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다. 사지운동증과 유사한 병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종아리가 저리거나 가려워서 잠이 들 수 없는 병도 있다. 이 병 역시 약물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렘수면 운동장애는 흔하진 않지만 매우 위험한 수면장애다. 렘수면 단계에 들어가 꿈을 꿀 땐 온 몸의 근육이 풀어지기 때문에 정상인들은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나 렘수면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은 근육의 힘이 남아 있어 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따라서 강도를 때려 잡는다고 옆에서 자는 아내를 주먹으로 내려치거나, 악당을 피해 도망간다고 뛰어가다 벽에 얼굴을 부딪혀 부상을 당하는 등의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이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과거엔 렘 수면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이 잠들기 전 두꺼운 가죽 혁대나 쇠사슬로 몸을 침대에 묶었으나, 요즘엔 근육을 이완시키는 약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수면장애는 개인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집중력·판단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교통사고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7000만명 이상이 한 종류 이상의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선 이 때문에 수면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1993년 국립수면장애연구소를 세워 수면장애를 연구하고 있다. 또 10년쯤 전부터 수면의학 전문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90년대 중반부터 수면의학 전공자를 양성하고 있지만 아직 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차원의 수면의학 연구도 전무한 실정이다. 산업안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국가가 수면의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시점이다. 수면은 인생의 1/3~1/4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도언 교수는
정도언 교수를 취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기자의 ‘입 맛’에 맞게 의학지식을 ‘가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지 틀리지 않다면 대충대충 넘어가줘야 기사 쓰기가 수월하지만, 그는 항상 의학적이고, 원칙적이고, 정확하게 말하기 때문에 약간만 내용이 어긋나거나 비약돼도 “노(NO)”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 바람에 애초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전화를 끊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레지던트나 병원 직원들에게도 ‘깐깐’하긴 마찬가지다. 조금도 과오나 편법을 인정치 않는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가장 정확하고 꼼꼼한 진료를 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참 의사’의 길을 배운다”고 말했다.
1951년생인 정 교수는 1976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정신분석학, 스트레스의학 및 수면의학이 전문분야. 국내 프로이드 학파의 ‘거두’인 조두영 서울의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받아 지난 5월까지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 1991년 한국인 의사로는 최초로 미국수면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1992년 서울대병원에 국제 수준의 수면다원검사실을 최초로 개설하는 등 국내 수면의학을 이끌어 오고 있다. 대한수면의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디지털 수면다원기록기의 개발, 만성 난치성 불면증의 단기 입원치료 프로그램 개발 등이 그의 업적이다. 그러나 수면의학이 너무 생물학적 의학만 강조해선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수면장애 환자의 마음속까지 이해하며 진단·치료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대병원 홍보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정 교수는 의학 이외 분야에 대한 시사 및 문화비평적 감각도 뛰어나 영러 일간지와 시사 주간지에 고정 컬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숙면을 위한 침실 꾸미기
침실 안 가구나 침구의 종류, 벽지의 색깔 같은 수면 환경은 숙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못 느끼는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도 잠을 못 이룰 수 있으므로, 잠을 잘 자지 못한다면 침실의 환경부터 점검해야 한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선 우선 방안의 소음부터 줄여야 한다. 시계가 째깍째깍 거리는 소리, 냉장고가 윙윙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바람이 창문을 스치는 소리, 차가 쌩쌩거리며 지나가는 소리, 아파트 복도-계단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 등이 잠을 방해한다. 창에 두꺼운 커튼을 쳐서 소음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아날로그 시계는 소리가 나지 않는 디지털 시계로 바꾸는 게 좋다. 소음 제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잠들기 전 아주 느린 박자의 배경음악을 타이머로 맞춰 놓고 자면 소음에 정신을 뺏기지 않아 쉽게 잠에 들 수 있다. 이를 ‘마스킹(masking) 효과’라고 한다.
새 집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 향수 등 화장품 냄새, 모기향 등 화학물질 냄새 등도 대뇌피질을 자극해 수면을 방해한다. 자주 환기를 시켜 나쁜 냄새를 제거해야 한다. 침실에 국화, 라벤더, 안개꽃, 아이리스 같은 식물을 갖다 놓으면 나쁜 냄새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화에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성분이 있어, 예로부터 ‘국화베개’를 애용해 왔다.
이불은 가급적 자주 햇볕에 말리고, 침대 밑의 먼지도 틈나는 대로 제거해야 한다. 침대 밑에 먼지가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 있는 집이 많은데, 먼지 속의 곰팡이 포자나 집먼지 진드기 등도 숙면을 방해한다. 사람은 하룻밤에 한 컵 정도의 땀을 흘리므로 주말에는 꼭 이불을 햇볕에 말려 보송보송한 상태로 유지해야 숙면할 수 있다.
베개는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아야 한다. 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 얼굴이 아랫쪽으로 5도 정도 기울어지는 높이가 적당하다. 무의식적으로 베게와 머리 사이에 손을 대는 것은 베개가 낮기 때문이며, 똑바로 눕기 힘들고 자꾸 옆으로 누우려 한다면 베개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자고 일어나서 목이나 어깨 주변이 결리거나, 자는 동안 베개가 자꾸 밀려나거나, 자는 동안 베개를 자꾸 손으로 바로 놓거나, 코골이가 심한 경우에도 베개가 맞지 않기 때문이므로 이 때는 베개를 바꾸어야 한다.
요나 매트리스는 오래 사용하면 허리가 닿는 부분이 꺼지므로 교체하거나 꺼진 부분에 큰 타월을 깔아 높이를 맞춰야 한다. 운동복이나 평상복을 입고 자는 사람이 많은데 재질이 두껍고 뻣뻣해서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숙면을 위해선 부부가 함께 자는 더블 침대보다 혼자 자는 싱글 침대가 좋다. 잠을 자는 동안 사람은 대개 20~30번 몸을 뒤척이므로 상대방의 숙면에 방해를 줄 수 있다. 벽지나 침대 커버 등은 너무 강렬한 색을 피해야 하며, 안정감이 드는 밝은 색이 좋다. 파스톨 색조는 대체로 무난하다. 커튼과 침대 커버의 색을 통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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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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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맹장염 때문에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곳에선 심장이 멎고 뇌혈관이 터져야 ‘대우’ 받는 것일까? 열 시간이 넘도록 응급실 한 귀퉁이에서 이를 악다물고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예리한 칼로 내장을 북북 찢어 발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지 않으니 호들갑 그만 떨라”고 야단쳤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쁜 의사다. 자기 가족이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면 최소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증이란 신체에 가해지는 외부적 자극이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 섬유가 분포돼 있다. 물리적, 화학적, 열(熱) 자극이 전달돼 이 섬유가 흥분하게 되면, 그것이 말초신경-척수-뇌 시상부-뇌 피질로 전달돼 비로소 아프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누구나 통증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통증은 의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 몸의 이상을 알려주는 신호 기능이다. 맹장염 통증이 그토록 극심한 것은 복막염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으니 서둘러 수술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또 맨발로 유리조각을 밟자마자 발을 떼서 물러나는 것도 통증의 경고 때문이다. 만약 당뇨병 때문에 발의 통증을 못 느낀다면 유리조각을 더 깊이 더 많이 밟아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결국 급성 통증은 앞으로 닥칠 더 큰 조직의 손상을 예방하게 해주는 고마운 경고인 셈이다. 더군다나 통증의 원인이 사라지면 고통도 신속하게 사라지므로 임상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통증이다. 두통, 요통, 각종 신경통, 관절통, 어깨통증(오십견) 등이 대표적 만성 통증이며 그 밖에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통증도 있다. 만약 그 옛날, 맹장염에 걸렸을 때와 같은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아마도 지옥이 그럴 것 같다.
두통, 요통, 신경통 같은 만성 통증은 너무 흔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편두통 등이 심하면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흔히 나타나며, 사람의 성격과 인생관까지 변하게 된다. 또 대상포진 후 나타나는 신경통은 산통(産痛) 못지 않게 극심하다. 두통이나 신경통 때문에 개두(開頭) 수술을 받는 환자도 드물지 않고, 통증이 너무 심해 차라리 다리 등 통증 부위를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제3자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생소한 병의 고통은 두통 등과 비할 바가 아니다. 두통이나 신경통 등은 그래도 원인과 치료법이 비교적 뚜렷하다. 아프면 어떻게라도 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증후군’이란 이름이 붙은 이 ‘요상한’ 병들은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는다. 급성통증에 잘 듣는 진통제나 치료법도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어도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게 되고, 심한 경우 사회 생활을 못하거나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두통 요통 등에 관한 정보는 비교적 손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이 장에선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세가지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근근막통증증후군은 특별한 이유없이 목과 어깨 등 근육이 뻐근하게 아픈 병으로, 통증클리닉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가 된다. 우리 몸은 350여개 근육의 유기적인 동작으로 움직인다. 체중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이 근육은 잘못된 자세, 외부의 충격,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쉽게 수축되며, 이렇게 수축된 상태가 풀리지 않고 굳어지면 근섬유라 부르는 ‘근육결’ 일부가 띠처럼 단단하게 변한다. 단단한 근육결 속에 있는 근육에는 자연히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고, 이곳에 통증 신경을 자극하는 세르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처음 생긴 곳을 ‘방아쇠 포인트’ 또는 ‘통증 유발점’이라고 하는데, 그곳을 누르면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심한 압통(壓痛)이 느껴지며, 손으로 만져보면 근육 속에 볼펜 심 같은 게 들어있는 느낌이 든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초기에 적절히 치료하면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된다. 통증유발점을 찾아 그곳의 근육을 풀어주는 스테로이드제 등을 주사하는 게 기본 치료법이다. 이 주사는 몹시 아프지만 효과 만큼은 확실하다. 뭉쳐진 근섬유를 풀어주기 위해 전기나 초음파로 자극하거나, 뜨거운 물수건을 대거나, 마사지를 하는 등 물리치료도 효과가 있다. 반복되는 손상이나 사고, 짧은 팔다리 등 신체의 구조적 문제, 목 또는 허리 디스크, 치아의 부정교합, 나쁜 자세, 만성 피로, 불충분한 수면, 우울증, 급-만성 감염 등도 병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중 하나 이상이 통증의 원인이라고 판단되면 찾아서 교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병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통증 때문에 자세가 더 나빠지고, 그로 인해 비정상적 근육수축의 범위가 늘어나서, 통증유발점이 자꾸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발병 초기엔 통증만 문제가 되지만 병이 악화되면 근육이 약화돼 운동능력이 떨어지며, 관절이 굳어져 운동범위가 축소되고, 우울증과 수면장애도 초래된다. 감각장애, 눈물, 땀, 현기증, 이명 등과 같은 자율신경 이상 증상도 나타난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의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세를 곧게 하고,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오래 있으면 근육이 수축되므로 수시로 자세를 바꿔 줘야 하며, 컴퓨터 작업 등을 할 때는 적절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 스트레칭을 할 때는 근육결이 놓인 방향대로 근육이 완전히 펴질 수 있게 하면 효과가 더 좋다. 어깨 근육 등을 눌렀을 때 몹시 아프고 알갱이처럼 딱딱하게 뭉쳐져 있는 곳이 있다면 손바닥이나 엄지손가락 강하게 눌러주는 것도 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다.
근육이 아프다는 점에서 근근막통증증후군과 유사하지만 훨씬 ‘고약’한 게 섬유근육통이다. 이 병은 병리학(病理學)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온 몸 구석구석이 돌아가면서 아픈 것이 특징이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목, 어깨, 허리 등이 주로 아프지만, 섬유근육통은 목, 어깨, 가슴, 팔, 다리, 엉덩이 등 몸 전체가 아픈 게 차이점이다. 또 불면증, 두통, 어지럼증, 약간의 마비 또는 감각 이상, 불안감, 우울증, 소화장애, 기억-집중력 장애, 피부 가려움증까지 동반된다. 어떤 검사를 해도 정상으로 나타나므로 과거 의사들은 이 병이 실존하는 병인지 상상 속의 병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1990년에야 병의 실체를 인정하고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이라 이름 붙였지만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이런 병이 있는지 조차 몰라 수 많은 환자가 ‘꾀 병’을 부린다고 오해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인 인구의 약 2%(남성 0.5%, 여성 3.5%)가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으며, 환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대부분 백인이다. 특히 직장여성이나 고소득 여성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발병률은 미국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생활 양식이 서구화되면서 최근 환자가 늘고 있다.
발병 원인은 완벽하게 오리무중이다. 외상, 이혼, 사별 등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의사는 바이러스 감염설을 주장한다.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나 혈중 아미노산의 이상, 갑상선 질환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고, 호흡한 산소의 독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진단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류머티스 학회는 다른 질병이 없을 것, 우리 몸의 18개 압통점(누르면 통증이 느껴지는 곳) 중 11곳 이상에서 통증이 유발될 것,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것, 수면장애 증상이 나타날 것 등을 섬유근육통 진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온 몸이 아파도 11곳 미만의 압통점에만 통증이 있다거나, 11곳 이상의 압통점에서 통증이 생겨도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 질병이 있다면 섬유근육통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병은 정말 치료하기 어렵다. 치료법은 기본적으로 근근막통증증후군과 비슷하다. 즉 아픈 부위에 소량의 마취제 또는 스테로이드제를 주사하거나, 근육에 전기침을 꽂아 자극을 주거나, 근육 이완제나 우울증약 등 약물을 복용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근근막통증증후군의 경우 주사요법이나 전기자극요법으로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되지만, 섬유근육통은 어느 한 곳을 치료하면 다른 곳의 통증이 심해지는 등 치료 효과가 크지 않다. 마치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통증이 얄밉게 옮겨 다닌다.
때문에 의사들은 조바심을 내며 병원을 전전하기 보다는 차라리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권유한다. 때로는 이같은 심리요법이 주사요법 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때문에 이 병을 치료할 땐 심리상담이 필수적이며, 경우에 따라 정신과 치료도 곁들이게 된다.
이같은 병의 속성 때문에 제기된 게 이른바 ‘선택이론(Choice Theory)’이다. 이는 환자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무의식적으로 아프기를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임상 심리 전문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미국의 윌리엄 글라써 박사가 정립한 이 이론은 인간관계에서의 문제점이 통증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생존, 힘, 사랑과 소속감, 즐거움, 자유 등 5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 중 사랑과 소속감 욕구와 힘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스스로 병을 선택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글라써 박사는 이 병의 치료를 위해 인간관계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 회복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부부간의 관계를 가로막는 7가지 잘못된 습관으로 비판하기, 탓하기, 불평하기, 잔소리하기, 협박하기, 벌주기, 매수하기(또는 상주기)를 꼽고 있으며, 병을 고치려면 이같은 나쁜 습관을 먼저 고치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자. 이는 수술 뒤 또는 외상을 당한 뒤 신체의 한 부위에 발작적인 통증이 계속되며, 점차 몸의 여러 부분으로 통증이 확산되는 병이다. 외국의 경우를 미루어 볼 때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병을 정확히 진단해 내기가 무척 어려워 대부분의 환자가 병명도 모르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병으로 인한 통증은 불에 타는 것 같은 작열통, 피부에 깃털이 스치거나 바람만 닿아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는 이질통이 특징이다. 또 환자는 통증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여 모든 행동이 위축되게 된다. 대개의 경우 피부접촉이 통증을 유발하므로 환자들은 통증이 생기는 피부에 부목(副木)을 대고 다니거나, 장갑을 끼고 다니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그 밖에 피부 감각의 변화, 부종(몸이 붓는 것), 근력약화로 인한 운동장애, 피부의 온도와 색의 변화 등의 증상도 환자의 70% 정도에게 나타난다. 대부분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발생하는데, 복부 수술, 축농증 수술, 코 높히는 수술, 치과 수술 후에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손목 부상 등과 같은 가벼운 외상이 왜 온 몸의 이질통-작열통 등으로 발전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역시 치료가 쉽지 않으며, 완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진통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을 처방해서 치료를 한다. 진통제보다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들이 통증과 통증으로 인한 우울감을 더 효과적으로 덜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증의 강도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신경차단요법도 발병 초기 환자에게 비교적 많이 시행하는데, 이는 마취제로 통증을 일으키는 교감신경을 마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약물-신경차단요법으로 효과가 없는 환자가 많은데, 이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환자의 척수에 전기자극을 주는 기계(척수자극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비교적 효과가 좋지만 척수에 설치하는 게 매우 까다롭고, 장비 가격이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근근막증후군이나 섬유근육통 같은 난치성 통증은 물론이고 두통, 요통, 신경통, 안면통, 골반통 등 대부분의 통증은 통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통증의 고통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크기의 외부적 자극이 주어지더라도 통증을 느끼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죽을 것 처럼 괴로워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는 선에서 그럭저럭 참아낸다. 통증을 참아낼 수 있는 한계가 다르기 때문인데, 이를 ‘통증의 문턱(threshold)’이라고 한다. 문턱이 높을 수록 통증을 참아내는 힘이 강하며, 낮을 수록 작은 자극에도 많이 고통스러워 한다.
마음가짐은 문턱의 높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통증을 두려워 하고 회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통증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올테면 오라”고 당당히 맞서면 통증의 강도가 훨씬 약해진다. 마치 매를 맞을 때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라고 잔뜩 겁을 내서 맞는 것보다 “때릴테면 때려 봐라”는 마음가짐으로 맞으면 훨씬 덜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섬유근육통 등 난치성 통증의 치료에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섬유근육통 같은 난치성 통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늘상 경험하는 두통 요통 신경통 등에도 꼭 같이 적용된다.
통증클리닉 이용하기
최근 통증 클리닉이 늘어나고 있지만, 보통사람에겐 아직도 생소한 곳이 통증클리닉이다. 두통 요통 신경통 근육통 같은 통증이 생겨도 통증클리닉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환자들은 기계적으로 신경과 신경외과 정형외과로 달려가며, “통증에는 침이 최고”라며 한의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통증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통증클리닉을 적절히 이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병을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클리닉은 두통, 요통, 오십견, 안면 신경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 당뇨병성 신경병증, 좌골신경통, 관절통, 근근막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암 통증 등 인체에 나타나는 모든 통증성 질환을 치료한다. 뿐만 아니라 안면신경마비, 안면경련, 다한증, 돌발성 난청 등도 이곳에서 치료한다.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마취제로 마비시키거나, 경우에 따라 신경을 아예 파괴시키거나, 척수강 안에 진통용 아편제제를 투여하는 것 등이 통증클리닉의 기본 치료법이다.
통증클리닉은 일시적으로 통증만 제거할 뿐 병의 원인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신경의 흥분성을 감소시키거나, 들뜬 신경막을 안정시키거나, 뭉쳐진 근육을 이완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통증을 제거하면 병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 디스크 요통처럼 병의 원인 질환이 분명한 경우라도 경우에 따라선 통증클리닉 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통증만 없다면 디스크에 손을 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술을 위주로 하는 외과계열 병원을 찾아 섣불리 수술하는 것보단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따라서 병의 원인 질환이 분명히 존재하는 경우라도, 통증이 주 증상이라면 통증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보는 게 유리하다.
한편 통증이 있으면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데, 침이 유용한 통증 치료 수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상태서 침 치료를 받는 것은 경우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대의학적으로 완치 가능한 시기를 놓치고 만성 통증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학적 치료를 더 선호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통증이 생겼을 땐 통증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과 삼차 신경통
삼차 신경통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비교적 흔하게 발병하며 통증도 극심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런 병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게 공통점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
삼차신경통은 칼로 찌르거나 전기자극을 하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돌발적으로 안면에 생기는 것이다. 얼굴과 목에는 척수가 아닌 뇌에서 직접 빠져나온 열두쌍의 신경이 지나며, 그 중 제5신경은 다시 세갈래로 나눠져 첫째 이마와 눈 주위(안신경), 둘째 뺨-윗턱-윗입술 부위(상악신경), 셋째 아랫턱-아랫입술 부위(하악신경)를 지난다. 신경이 세갈래로 갈라졌다고 해서 삼차(三叉)신경이라 하는데, 통증은 신경이 지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주로 말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이를 닦는 등 안면 근육을 움직일 때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밥을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는 환자도 있다.
삼차신경통은 나이가 들면서 혈관이 탄력을 잃고 늘어져 근처에 있는 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환자도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신경차단치료 등 여타의 통증과 동일한 방법으로 치료하지만 극심한 통증이 낫지 않고 계속되는 경우엔 신경과 혈관을 서로 분리해 주는 뇌 수술을 시행한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수두포진이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대상포진을 앓고 난 뒤에도 통증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병이다. 대상포진은 주로 허리 부분에 붉고 동그란 발진이나 수포가 띠 모양으로 생기는 피부질환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신경까지 침범하므로 극심한 통증이 생기게 된다. 칼로 베이는 듯한, 또는 불에 데인 듯한 극심한 통증이 특징인데, 흔히 산통(産痛)만큼 고통스럽다고 표현한다. 환자는 대부분 50대 중후반 이상이다. 면역력이 좋은 젊은 시절엔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해도 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수 십년 동안 숨죽이고 있던 바이러스가 발호해서 피부와 신경을 손상시키게 된다.
대상포진은 보통 피부과에서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하지만 통증이 심하므로 통증 전문의의 신경차단요법 같은 치료를 함께 받는 게 좋다. 이 병은 가능한 빨리 치료해야 하며, 치료가 늦어지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능한 수단을 총 동원해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치료의 첫째 원칙이다.
■ 이상철 교수는
이상철 교수는 서울대병원서 가장 바쁜 의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연 평균 6000여명의 통증 환자에게 외래 진료실에서 투약 및 신경차단술을 시행하며, 통증치료 전용의 수술방에선 중증 환자 1500여명에게 다양한 통증 시술을 한다.
▲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조선일보DB진료과의 특성에 따라 3분만에 진료가 가능한 곳도 있지만 통증클리닉은 이 곳 저 곳 아픈 얘기를 다 들어줘야 하고, 무엇보다 아픈 이유를 환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줘야 한다. 또 직접 환자를 만져보고 주사도 놓아야 하므로 환자 당 진료시간이 아무래도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그 바람에 그는 진료가 있는 날이면 꼭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꼬박 병원에서 지낸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이 교수를 찾는 환자는 대부분 난치성 통증 환자로 수 많은 병원을 거쳐 왔기 때문에 한(恨)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들”이라며 “환자들의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어주는 것을 보면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인내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말했다.
1953년생인 이 교수는 1978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서울대병원서 인턴과 마취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1986년부터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마취과는 수술장에서 외과의사와 팀을 이뤄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와 직접 대면(對面)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마취과 의사의 공통된 불만 중 하나다. 1988~1990년 미국 UCLA 의대에서 최신 통증 의학을 배우고 돌아온 이 교수는 그러나 1991년 서울대병원에 ‘통증치료실’을 개설하고 그 때부터 통증 환자를 진료-시술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당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통증의학이 여러 단계 뛰어오르고, 독자적인 진료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여러가지 신 기술을 통증치료에 도입했다.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근이나 신경절에 바늘을 찔러 넣고 특수 파장의 주파수를 쏘아 파괴하는 ‘방사주파 열응고술’을 통증 치료에 도입했으며, 등골을 싸고 있는 바깥막(경막)의 신경을 내시경으로 성형하는 ‘경막외강 내시경 신경성형술’도 도입했다. 난치성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를 위해 피부를 통해 척수에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도 도입했다. 방사선 영상을 보면서 신경 등을 치료하는 중재적 통증 치료 경험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아 매년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통증학회에 초빙돼 강연을 맡고 있다. 중재적 척추통증 치료를 위해 대한척추통증연구회를 창설했으며, 대한통증학회 차기 회장에 내정돼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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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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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부인과 의사도 환자에게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자궁 경부암의 원인에 관한 것이다. 환자가 “왜 자궁경부암에 걸렸나요”하고 물으면 의사는 십중팔구 “글쎄요.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이라며 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해서 ‘쓸데없는’ 분란만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당신 남편의 잘못된 성 생활로 못된 바이러스가 옮았기 때문”이라고 말해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자궁경부암은 일종의 성병이다. 성 행위를 통해 전염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휴먼파필로마바이러스)가 원인인 경우가 95% 이상이다. 이 바이러스 감염자의 20~25% 정도가 전암(前癌)단계인 ‘자궁상피 이형증(異形症)’이 되며, 그 중 20~30% 정도가 암으로 발전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악성(또는 고위험)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여성의 4~5% 정도가 자궁 경부암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암으로 발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아서 5~20년 정도다.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경로는 대부분 ‘뻔’하다. 이 바이러스는 성 행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목욕탕이나 수영장에서 옮는 일도 없으며, 위생이 문제가 돼 전염되는 일도 거의 없다. 본인 또는 성행위 상대방의 난잡하고 문란한 성 관계를 통해서만 옮겨진다. 때문에 18세 이전에 성 행위를 시작한 여성, 성 행위 상대가 여러 명인 여성, 남편이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등을 자궁경부암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국립보건원 등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흥접객업소 여성의 50% 정도가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우리나라는 매춘이 세계서 가장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나라 중 하나다. 당연히 직업여성과 관계한 수 많은 남성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으며,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서 ‘순결한’ 자신의 애인이나 아내에게 이 바이러스를 옮기게 된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 전체 성인 여성의 20% 정도가 이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가 수년 또는 수십년 지나 자궁경부암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건전한 성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내가 아무리 ‘일부종사(一夫從事)’해도 남편이 밖에서 바이러스를 ‘묻혀’ 들어오면 속수무책이므로, 남편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남편들은 자신의 부정 때문에 애꿎은 아내가 자궁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예방을 남편의 도덕심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도덕심은 매우 불완전한 안전장치다. 보다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는 것이다. 검진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 행위를 시작하고 1~2년 뒤부터 2년 정도마다 한번씩 받는 게 좋다. 면봉 등으로 자궁 입구 세포를 긁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세포진 검사’가 기본이며, 이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40세 이상이면 이 두 검사를 동시에 받는 게 좋으며, 만약 두 검사에서 모두 정상으로 나타나면 2~5년간은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만약 검사 결과 고위험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자궁경부이형증 등이 생기는지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1년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세포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형증 단계서 발견하면 100%, 이형증이 발전해 0기암인 상태서 발견해도 100%, 심지어 1기 초에 발견해도 99% 완치된다. 이렇게 되기까진 최하 5년에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걸리므로 세포진 검사만 제대로 받으면 암 전단계서 거의 100% 차단할 수 있다. 한편 이 바이러스는 사람의 힘으로 없앨 수 없으며,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도 하므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서 너무 겁먹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철저한 검진만 받는다면 거의 문제가 없다.
사실 세포진 검사 등 검진법의 개발-보급-확산으로 자궁경부암의 진단은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서울 등 대도시 지역에선 말기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는 환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형증 단계 또는 0기암 단계 등 암 전단계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1981년 여성암의 28%를 차지했던 자궁경부암은 2003년엔 9.1%로 뚝 떨어졌다. 부동(不動)의 1위 여성암에서 이제는 유방암, 위암, 대장암, 갑상선암에까지 추월당해 5위로 주저 앉았다. 성개방 풍조 등에 따라 불건전한 성관계가 과거보다 더 많아졌고, 그 만큼 바이러스 감염과 발암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검진의 보급-확산으로 전암 단계서 모두 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미성년자나 20대 초반의 성 행위가 늘면서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대체로 40대 50대에 생겼으나 최근엔 20대나 30대 초반 자궁경부암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미성년 시기 또는 20대 초반 때의 문란하고 비정상적인 성관계 때문이다. 특히 10대 때는 자궁경부의 세포가 매우 예민해 쉽게 상처를 받으며, 바이러스감염-이형증-상피내암(0기)-자궁경부암의 진행 속도도 매우 빠르다. 그러나 미성년자나 처녀가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는 일은 거의 없어, 말기(末期) 상태로 발견되는 비율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따라서 성 행위를 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암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구미 각국에서 성 행위를 한 10대까지 암 검진 권고대상에 포함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자궁경부암의 치료는 1기와 2기 초 까지는 수술이 기본이며, 필요에 따라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시행한다. 그러나 암 세포가 자궁을 벗어난 2기 말 이후엔 수술없이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형증이나 0기암은 물론 1기 초기인 경우에도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자궁 입구만 잘라내는 방법(원추절제술)이 많이 시행되며, 최근엔 복강경 수술도 확산되고 있다. 또 수술 이후의 성기능 장애, 요실금, 다리 부종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수술법들도 속속 개발돼 있다. 살고 죽고가 문제가 됐던 과거엔 수술 부작용 등을 고려치 않고 광범위하게 자궁과 주위 림프절 등을 잘라내는 ‘용감한 의사’가 많았으나, 요즘은 수술 뒤의 삶까지 고려하는 ‘현명한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자궁경부암이 그만큼 만만해 졌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많은 자궁내막암(또는 자궁체부암)은 그러나 인유두종 바이러스와 전혀 무관하게 발병한다. 이는 자궁 입구가 아닌 자궁 본체에 생기는 암으로 육류를 많이 섭취하거나, 키가 크고 뚱뚱하거나, 출산 경험이 없거나, 폐경이 늦거나, 폐경 후 호르몬대체요법을 받는 여성에게 많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자궁암=자궁경부암’으로 생각할 정도로 자궁경부암이 압도적으로 많고 자궁내막암은 여성 생식기 암 중 가장 적지만, 미국에선 난소암이나 자궁경부암보다 훨씬 많다.
자궁내막암은 대개 폐경이 끝난 뒤 발병하며, 40세 이하 환자는 5% 이하다. 자궁출혈이 가장 특징적 증상이며, 특히 폐경 여성이 자궁출혈을 일으킬 경우엔 1/3 정도가 자궁내막암이다. 또 폐경했는데도 질 분비물이 증가할 때도 내막암을 의심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처럼 세포진 검사 등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자궁확대경 검사나 자궁내막 초음파 검사로도 완전히 확진하기 어렵다. 확진하려면 자궁내막 조직을 채취해 세포 검사를 해 봐야 한다. 암으로 진단되면 우선 자궁과 난소, 나팔관 등을 잘라낸 뒤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치료 결과가 좋지만 환자의 나이가 많을 수록 치료 결과가 나쁘다. 일반적으로 1기인 경우 5년 생존율이 80~95%, 3기 이상은 10~60% 정도다.
최근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난소암 역시 성 행위와는 무관하다. 자궁내막암처럼 주로 폐경 이후 발병하며, 배란 횟수가 많을 수록 발병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거나, 출산경험이 없거나, 첫아이 출산이 늦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난소암에 걸리기 쉽다. 그 밖에 지방 섭취가 많거나, 가족 중 난소암이나 유방암 환자가 있는 여성도 난소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전체 난소암의 5% 정도는 유전성으로 밝혀져 있다. 그러나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배란이 억제되므로 난소암 발병률도 낮아지는 것으로 일부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난소암은 전체 여성암의 4% 정도로 매년 1400명 정도가 새로 발병한다.
난소암은 조기에만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불행히도 환자의 4분의 3 정도가 3기 이상 진행된 상태로 발견될 정도로 조기진단이 쉽지 않다. 자궁경부암을 위한 세포진 검사처럼 간편하고 효과적인 진단법이 없기 때문이다. 골반 진찰, 질 초음파, 혈액검사 등이 난소암 검진에 사용되나 그리 정확하지 못하다. 때문에 매년 산부인과 진단을 받는 여성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폐경 이후 아랫배가 묵직하게 불편하다거나, 소화가 안된다거나, 가스가 차면서 포만감이 든다거나, 아랫배에서 딱딱한 물체가 만져지는 등 애매한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난소암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수 밖에 없다.
한편 난소암으로 진단되면 수술로 난소와 나팔관, 자궁 등을 모두 떼어내고 보조적으로 항암제 치료를 한다. 1기는 5년 생존율이 70~95%, 2기는 50~70%지만, 3기 이상인 경우엔 5~20%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발견 당시 3기 이상인 경우가 전체의 3/4 정도여서, 전체 난소암 환자의 5년 생존율도 20~40%에 불과하다. 2002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환자는 3980명 발생해 1009명이 사망해 25%의 사망률을 보였지만, 난소암은 1572명이 발생해 626명이 사망함으로써 자궁경부암보다 훨씬 높은 40%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암은 아니지만 전체 성인 여성의 20% 정도가 갖고 있는 자궁근종(물혹)에 대해 알아보자. 자궁근종이란 자궁안 근육층에서 발생한 양성종양으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기는 밤톨만한 것에서 부터 어른 주먹보다 큰 것 까지 다양한데, 백인은 약 25~30%, 흑인은 약 50% 정도가 자궁근종을 갖고 있다.
사실 자궁근종은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자궁 초음파 검사 등을 받아 자궁 속에 물혹이 있다는 얘길 들으면 이 때부터 여성들의 고민과 갈등은 시작된다. 의사가 아무리 암이 아니고 물혹이라고 설명해도 “혹시 거짓말 하는 게 아닐까?”라고 속으로 끙끙 거리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이는 물혹이 결국 암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또 어떤 이는 출산도 끝났으니 차라리 깨끗하게 자궁을 드러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만큼은 아니라해도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궁근종은 특별한 증상이 없거나, 2차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내버려 두는 것이 원칙이다. 자궁근종이 있더라도 대개 아무런 증상도 없다. 그러나 때때로 월경과다, 월경이 아닌 출혈, 성교시 통증, 빈뇨-급박뇨, 변비, 습관성 유산, 불임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이 때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자궁의 부분 또는 절제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또 물혹의 크기가 6~7Cm 이상일 경우에도 신중하게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밖의 경우에는 ‘찜찜해서’ 또는 ‘예방적으로’ 자궁을 절제할 필요가 없다. 물혹이 암으로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또 자궁을 절제할 경우 여성은 우울증 등 정신과적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이 자라는 등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가능한 자궁을 보존하는 게 낫다.
한편 자궁을 절제하면 생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폐경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 폐경이란 생리가 없는 게 아니라 여성 호르몬 분비가 중단된 상태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는 곳은 자궁이 아니라 난소므로 자궁을 잘라 냈다고 해서 호르몬 분비가 중단되지 않는다. 또 자궁이 없다고 성적인 반응이나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성 생활이 가능하다. 예전보다 느낌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지만, 물혹으로 인한 성교 통증이 없어지므로 성 생활이 더 활발해지는 경우도 있다.
▲ 남궁성은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남궁성은 교수는
남궁성은 교수는 ‘감투’가 많다. 현재 대한암학회 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가톨릭의과학연구원 원장, 대한부인종양·콜포스코피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은 강남성모병원 원장도 맡았다. 말 그대로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빠 세 자녀의 입학식·졸업식 한번 참석치 못했다. 너무 바빠 아직 골프도 못 배웠다.
남궁 교수가 유일하게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일은 환자에 관한 것이다. 병원장쯤 되면 외래 진료를 주 1회 정도로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경우가 많지만, 남궁 교수는 병원장 재임시에도 주3회 외래와 수술을 평소대로 소화해 냈다. “아무리 행정일이 바빠도 그 때문에 환자 곁을 떠나선 안된다”는 신조다. 그는 주말과 휴일에도 매번 병원에 나와 병동을 ‘어슬렁’거리며 환자에게 말을 건넨다.
남궁 교수는 자궁경부암 조기진단법의 개발과 보급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현재 분당차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승조 교수와 함께 ‘자궁경부암 판독 시스템’을 셋업시킴으로써 자궁경부암의 조기발견율을 크게 높혔다. 이는 김승조 교수가 개발한 한국형 자궁경부촬영기를 이용, 각 개원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의 자궁경부를 찍어 강남성모병원 부인암 연구재단에 보내면, 이곳의 전문 판독 교수들이 암 여부를 진단해 주는 시스템으로 국내 산부인과 개원의의 30% 정도가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또 최근엔 보건복지부 G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포진 검사 자동화 시스템’를 개발해 40~80% 수준이던 자궁경부암 진단율을 90%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남궁 교수가 이끄는 부인암 진료팀은 한해 400~500건의 수술을 실시해 수술건수로 국내 최고며, 지난해에만 27편의 논문을 해외에 발표할 정도로 연구에도 열심이다. 남궁 교수는 “좋은 후배들과 함께 일을 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친은 지난 85년 작고한 부산 남궁산부인과 남궁균 원장이며, 부인 박영주씨도 서초동에서 박영주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있다.
생식기 염증성 질환
대하 또는 냉이라 부르는 증상은 피를 제외한 질 분비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찾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로 자궁경부, 질, 난관 등 생식기의 염증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 점막은 분비물로 적셔져 있지만 정상인 사람은 분비물이 질 밖으로 흘러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팬티에 이상한 분비물이 묻는다면 생식기 어느 부위에선가 염증이 있다는 증거이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질은 ‘락토바실라이’란 세균의 작용에 따라 정상인 사람도 산성을 유지하며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지만 염증이 생기면 악취가 나거나 고름 같은 분비물이 나오며 몹시 가렵게 된다. 질염의 원인은 트리코모나스나 칸디다(진균류)가 대부분.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악취가 나며, 노란색의 분비물이 나오며, 성교통과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남성은 감염돼도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일종의 성병이므로 여성이 트리코모나스 질염이 있으면 반드시 배우자와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칸디다성 질염은 하얀 비지와 같은 형태의 분비물이 특징으로 여성의 약 75%가 일생동안 한번 이상 경험하며, 여성의 45%는 1년에 2회 이상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임산부, 당뇨 환자, 항생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여성 등이 잘 걸린다. 성병은 아니며, 대변이나 구강내에 있는 칸디다균이 질 감염을 주로 일으킨다. 항생제로 적절히 치료하면 대부분 쉽게 완치되지만 때로는 재발성 칸디다성 질염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예방을 위해선 외음부를 습하지 않게 유지해야 하며, 너무 몸에 꽉 조이는 속옷이나 바지는 피하는 게 좋다. 또 배변 뒤엔 질 쪽에서 항문 쪽으로 변을 닦아야 하며, 항생제 남용을 피해야 한다.
자궁경부염은 임질에 의한 급성 자궁경부염과 비임균성 만성 자궁경부염으로 나뉜다. 임질성 자궁경부염은 악취가 나며 찐득찐득하고 고름같은 분비물이 많이 나온다.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하며, 매독 검사도 아울러 시행해야 한다. 전염성이 높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성 자궁경부염 역시 두텁고 끈적거리는 대하가 특징이며 하복부 통증이나 성교통을 동반할 수 있다. 냉동치료법, 레이저 및 전기소작법, 원추 절제술 등을 시행하며, 비교적 효과가 좋은 편이다.
질염과 자궁경부염이 외부 생식기 감염이라면 골반염은 내부 생식기 감염이다. 질이나 자궁경부에 침입한 임질 등 성병균이 위쪽으로 올라와 자궁, 난관, 난소, 복막 등에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골반과 하복부의 심한 통증, 근육경직, 고열 등이 급성 골반염의 증상이다. 골반염은 난관을 막아 불임의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급성 골반염은 항생제 치료로 비교적 잘 낫지만, 만성 골반염인 경우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클라미디아균에 감염된 경우엔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20% 정도는 대하, 배뇨통, 빈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성병 중 빈도가 가장 높지만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난관을 막아 불임을 유발하거나 자궁외 임신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의심이 될 때는 즉시 검사를 받고,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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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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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2003년 초, 노화 연구 취재를 위해 약 2주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하바드대학인지 위스콘신대학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평생 동물의 노화 과정을 연구했다는 한 초로(初老)의 교수가 “하나님은 피조물(被造物)의 종족 보존이 1차적 관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생식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만 책임을 지시는 것 같다”고 농담삼아 말한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침팬지 등의 노화과정을 관찰한 결과, 생식 능력이 없어지는 순간을 즈음해 세포의 신진대사가 급격히 둔화되며 온 몸의 이곳 저곳이 고장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생식능력이 사라지는 순간과 사망하는 시점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따라서 조물주가 그때까지만 책임을 져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인간의 수명이 급격하게 연장됨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고도 그는 말했던 것 같다. 다소 황당하지만 꽤나 재미있는 ‘포인트’인 것 같아 지금껏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여자는 7의 배수, 남자는 8의 배수로 생식 능력이 시작되고 끝난다고 설명한다. 즉 여자는 2X7=14세에 초경을 시작하고, 7X7=49세에 폐경이 되지만 남자는 2X8=16세에 생식능력을 갖게 돼서 8X8=64세에 생식능력이 끊어진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남자가 여자보다 무려 15년이나 더 생식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200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 남자의 평균 수명은 72.8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0.1세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히려 7.3년 더 오래 산다. 미국서 들은 그 황당한 얘기를 여기에 대입시키면 남자는 64세까지 하나님의 애프터 서비스(AS)를 받고 8.8년만 무보증으로 살면 되지만, 여자는 49세에 보증수리 기간이 만료돼 무려 31.1년이나 골골 그리며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같은 ‘생식기간 AS 가설(假說)’이 남자에게도 적용되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자에게만은 분명한 것 같다. 폐경으로 생식능력이 사라지면 여성에겐 각종 갱년기 증상, 심장병, 뇌졸중, 골다공증, 관절염, 정신질환 등이 그 이전보다 서너배씩 증가한다. 중년의 여성들이 허구한 날 잔병치레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왜 여자만 이토록 힘든 폐경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그것을 조물주에게 물어보고 싶다.
폐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호르몬을 알아야 한다. 여성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두가지가 있다. 에스트로겐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난포자극호르몬(FSH)의 지시를 받아 생성되며, 프로게스테론은 황체호르몬(LH)의 지시를 받아 생성된다.
이 중 10대 중반쯤 부터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제2차 성징(性徵) 발현과 직접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통상 에스트로겐만을 여성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호르몬의 작용으로 여성은 곱상한 외모를 갖게 되고, 피부가 매끄럽고 탱탱하게 되며, 가슴이 볼록하게 튀어 나오며, 골반이 커지게 된다. 성욕(동물은 발정)을 느끼는 이유도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에스트로겐(estrogen)은 그리스어의 ‘성욕(oestros)’과 ‘생기다(gennao)’의 합성어다. 에스트로겐은 또 난소내의 난자를 성숙시켜 임신에 대비하는 역할도 한다.
이에 비해 프로게스테론은 에스트로겐이 성숙시킨 난자를 몸 밖으로 배란시키는 역할을 하며, 난자가 정자를 만나 수정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고 임신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자궁 내막을 두텁게 만드는 작용도 한다. 에스트로겐이 성욕을 느끼게 한다면 프로게스테론은 성욕이나 발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폐경이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이 두가지 호르몬의 분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월경이 6개월 이상 없는 상태를 폐경이라 하는데 대부분 50~55세 무렵에 폐경된다. 이 때 여성의 아랫배를 초음파로 관찰하면 자궁과 두개의 난소가 작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태어날 때 부터 갖고 있던 난포를 거의 다 써버림에 따라 난소는 제 기능을 잃고 조그맣게 쪼그라들고, 할 일이 없어진 자궁도 덩달아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폐경에 앞서 5~10년간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면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균형이 깨어지게 되는데 이 때를 갱년기라 한다.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는 이유는 뇌하수체에서 난포자극호르몬이나 황체호르몬을 내려 보내도 난소가 예전처럼 즉각즉각 반응해서 호르몬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40대 중반쯤 갱년기가 시작된다.
갱년기, 즉 폐경이 되기 5년쯤 전부터 폐경 후 1년 정도는 여성에게 가장 괴로운 시기다. 우선 얼굴과 가슴, 팔 등이 빨개지면서 화끈 달아 오르고 가슴도 두근두근 뛰어 고통을 받게 된다. 체중이 불어나면서 ‘진짜 아줌마’ 체형으로 변하며, 피부가 건조해져 주름살이 지며, 질이 건조해 지고 질 점막이 약화돼 성교시 통증이 생기게 된다. 요로감염도 쉽게 생기고, 유방에 멍울이 만져지며 아프고, 잠자리에서 식은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꾸 불안하고 두려운 느낌이 들어 남편이나 자녀에게 신경질을 많이 부리며, 변덕이 죽 끓듯 해지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자기 감정을 제어하려 해도 도대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우울감이 심화돼 우울증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인생의 사추기(思秋期)에 나타나는 이같은 증상을 ‘갱년기 증후군’이라 한다. 막상 폐경이 되고 나면 이같은 극심한 감정의 변화는 다시 정상을 찾게 되고 안면홍조 같은 신체 증상도 훨씬 완화되지만,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낮아져 골다공증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의 위험도 폐경 전보다 2~3배 높아지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갱년기 증후군과 폐경에 관한 가장 손쉬운 대처법은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시켜 주는 것이다. 갱년기와 폐경 이후 나타나는 모든 증상은 호르몬의 고갈이 직접적인 원인이므로 부족한 호르몬을 외부에서 공급해 주자는 것이다. 이를 호르몬 대체 요법이라 하는데, 보통의 경우엔 인공 에스트로겐과 인공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며, 자궁적출술을 받은 여성에겐 에스트로겐 한가지만 투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호르몬 대체 요법은 갱년기나 폐경 여성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만병 통치약처럼 여겨졌다. 안면 홍조, 심계항진(가슴 두근거림), 피부 건조, 질 건조 등의 갱년기 증상에 효과가 뛰어나며, 폐경 이후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심장병, 뇌졸중, 대장암, 자궁암 등을 예방한다고 여겨졌다. 한가지 흠이라면 유방암 발병률이 다소 높아진다는 것인데 유방암 발병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그 정도 위험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거의 모든 의사들이 호르몬 대체 요법을 권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02년 7월 발표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이 심장병과 뇌졸중 발병률까지 높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NIH는 1997년부터 약 2만7500여명의 폐경여성을 대상으로 호르몬 대체 요법의 효과를 평가하는 ‘여성건강계획(WHI:Womens Health Initiative)’ 연구를 진행해 왔었는데, 2002년 발표된 WHI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은 여성은 받지 않는 여성에 비해 유방암 26%, 관상동맥질환(심장병) 29%, 뇌졸중 41%, 정맥혈전증 111% 높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반대로 직장-대장암은 37%, 자궁내막암은 17%, 대퇴부 골절은 34% 낮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예방하는 줄 알았던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병률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세상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2002년 당시 미국에선 갱년기-폐경 여성의 약 20~30%가, 우리나라에선 약 10%가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고 있었다.
한편 산부인과 전문의가 중심인 국제폐경학회는 NIH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공식성명을 통해 “호르몬 대체 요법이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병률을 높힌다는 NIH의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우며, 호르몬 대체 요법은 여전히 실(失)보다 득(得)이 많으므로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호르몬 대체 요법을 과연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마구 헷갈리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호르몬 대체 요법에 대한 학자들간의 공방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호르몬 대체 요법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의사와 자신의 건강상태에 관해 상담한 뒤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시 한번 호르몬 대체 요법의 장단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유방암의 위험은 확실히 높아지며, 심장병이나 뇌졸중 위험도 높아지는 것 같지만 여기엔 이견이 있다. 반대로 각종 갱년기 증상과 골다공증의 예방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고, 대장-직장암과 자궁내막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의사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어떤 병에 더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조심스레 호르몬 대체 요법의 시행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골다공증이나 대장직장암 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있는 유방암, 뇌졸중, 심장병이 훨씬 무서운 병이므로,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 병의 발병률과 자신의 병력(病歷)과 가족력(家族歷)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유방암이나 심혈관 질환 발병률은 서구의 1/4~1/6에 불과하며, 1000명이 5년간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을 경우, 이 때문에 추가로 유방암에 걸리는 환자는 1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안면 홍조 등 갱년기 증상이나 골밀도의 감소는 거의 모든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따라서 호르몬 대체 요법의 효과도 훨씬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간단한 ‘산수’가 아니라 이처럼 복잡한 ‘고등수학’인 것이다.
한편 갱년기나 폐경을 더욱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맞을 필요가 있다. 정신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여성이 폐경을 두려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갱년기 증후군 같은 직접적인 고통 때문이 아니다. 사춘기 이후부터 지속되던 월경이 끊어지고 이제 더 이상 여자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고 한다. 그토록 아프고 귀찮던 월경이 사라졌건만 해방의 기쁨보다는 이제는 아기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더 깊이 절망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이같은 심리 내면에는 스스로를 독립된 인격으로 간주하기 보다 남성과 남성 중심의 사회의 종속 변수로 여기는 무의식이 잠재돼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갱년기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음 가짐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폐경을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노화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자세다. 또 지금까지 남편과 자녀만 생각해 왔다면, 이제부턴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쏟고 투자를 하는 ‘터닝 포인트’로 폐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 폐경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고통스런 통과의례가 아니다. 수 십 년간 여성을 옥 죄고 있던 자녀 양육, 남편 뒷바라지,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격체로 탄생했다는, 일종의 ‘독립선언’이 되는 셈이다.
폐경을 당당하게 맞이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당장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폐경 이후 가장 문제가 되는 질환이 골다공증인데 걷기, 달리기, 에어로빅, 테니스, 골프 같이 하중을 받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골다공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귀찮고 우울하다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뼈에서 칼슘 등 미네랄이 급격히 빠져나가 골다공증이 심해진다. 또 운동을 하면 피 속의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사라지고 대신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므로 갱년기 우울증 예방에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폐경 이후 심장병-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과 근육운동을 6대4의 비율 정도로 하는 게 좋다. 유산소 운동이 각종 생활습관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짐에 따라 근력운동은 하지 않고 유산소 운동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갱년기에 접어들면 근육이 급속도로 퇴화되므로 반드시 근육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근육은 인체에서 뇌 다음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따라서 근육이 줄어들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한다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영양 섭취도 필요하다. 갱년기에 가장 부족한 영양소는 칼슘이다. 따라서 칼슘과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돕는 비타민D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 칼슘이 많은 음식으로는 우유와 같은 유제품, 멸치 같이 뼈 째 먹는 생선, 시금치나 당근 같은 녹황색 채소 등이 있다. 비타민D는 동물의 간이나 고등어, 꽁치, 삼치 등 등푸른 생선에 많다. 칼슘이나 비타민D가 강화된 영양제를 별도로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칼슘은 하루 1000mg(골다공증 진단을 받은 경우엔 1500mg) 정도 복용하면 적당하다. 짜게 먹으면 콩팥에서 칼슘 배설량이 늘어나므로 가급적 싱겁게 먹는 게 좋다. 한편 암과 노화, 심혈관 질환 등의 예방을 위해 가급적 신선한 과일, 야채, 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육류 섭취는 줄여나가는 게 좋다. 식용유나 버터 사용도 줄이는 게 좋다. 비타민C, 비타민 B, 비타민 E, 비타민 A 등의 영양제도 적절하게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박기현 교수는
박기현 교수는 국내에서 호르몬 대체 요법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다. 갱년기-폐경 여성도 ‘호르몬의 마법’으로 20~30대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입버릇 처럼 말해 왔다.
▲ 박기현 교수지난 2002년, ‘호르몬 대체 요법이 위험하다’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대한 폐경학회 소속 교수들과 함께 팀을 구성해 NIH의 자료를 검토한 뒤, 한국인 실정에 맞는 호르몬 대체 요법 지침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했다.
NIH 발표 이후 비록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호르몬 대체 요법은 아주 매력적인 치료법으로 좀 더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호르몬 치료가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NIH의 발표처럼 위험한 약도 아니며, 따라서 의사의 상담을 거쳐 신중하게 이용하면 폐경기 증상과 골다공증 등의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946년생인 박 교수는 1971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서 인턴과 산부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1986년부터 세브란스병원서 근무하고 있으며, 1983~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대학에서 생식 내분비학에 관해 연수했다. 생식 내분비학이란 여성 호르몬의 변화로 생기는 생리불순, 무월경, 폐경, 골다공증 등의 질환을 다루는 분야. 1987년 국내 최초로 ‘젊은 여성의 골다공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생식 내분비 분야에 관한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
박 교수는 또 부인과 질환에 대한 내시경 치료의 도입과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했다. 1989년 국내 최초로 자궁 내시경을 이용한 자궁근종 절제수술에 성공했으며, 1990년엔 역시 국내 최초로 복강경을 이용한 난관 성형술에 성공했다. 1998년엔 자궁 동맥을 막아 자궁근종을 치료하는 자궁동맥색전술과 자궁동맥결찰술에 대한 논문을 국내 학회에 보고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한골다공증학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현재 4년째 대한산부인과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대한폐경학회 차기 회장(2004년 10월 취임)에 내정돼 있다.
■ 월경전 증후군(PMS)이란
‘여성은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린다’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깨끗하고 순결한 이미지의 모델을 등장시킴으로써 마법의 내용까지 미화하는 듯한 광고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험하는 ‘마법’은 대부분 힘들고 짜증나고 때로는 저주스럽다. 공연히 신경이 곤두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가 하면 때로는 남편이나 자녀를 구타하고, 성적으로 문란해 지기도 한다. 멀쩡한 여성이 월경 때만 되면 도벽이 발동해 쇠고랑을 차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월경 전 증후군(PMS)’이란 배란기부터 월경전까지 나타나는 육체적, 정신적 이상증세로 심한 경우 가정 파탄과 자살, 살인 등의 비극을 초래한다. 통계에 의하면 가임여성의 20~45% 정도가 PMS를 호소하며, 5~10%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
PMS의 증세는 매우 다양해서, 현재까지 밝혀진 증상만도 150여가지에 달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자극에 과민하며,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 것이다. 환자의 약 80%가 긴장, 불안, 초조, 우울증 등의 정서장애가 있으며, 약 45%는 식욕과 식성 변화가 나타난다. 또 약 40%는 유방통, 부종, 체중증가를 호소하며, 약 20%는 두통과 우울증 등이 동반한다.
문제는 PMS의 원인이 잘 밝혀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월경 전 여성 호르몬의 감소, 프로락틴 또는 프로스타글란딘 호르몬의 증가, 수분과 전해질 분비 호르몬의 이상 등이 원인이란 주장이 제기됐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한 법인데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치료할 수도 없어 더더욱 답답한 게 PMS다.
따라서 PMS 환자에 대해선 가족들의 이해와 격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남편은 아내의 PMS가 오는 주기와 PMS 유형을 미리 파악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PMS 기간 중엔 논쟁토론 같은 것을 삼가고, 평소 이상의 관심과 사랑, 지지를 아내에게 표시하는 것이 좋다. “당신은 지금 PMS 중이다”는 식으로 아내를 몰아붙이면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게 좋다.
PMS 기간에는 하루 평소보다 150㎉의 열량을 더 많이 소모하므로, 보통보다 조금 많은 식사를 5∼6회에 걸쳐 나눠서 하는 게 좋다. 귀리나 쌀과 같은 곡류, 콩류, 씨앗류, 과일, 야채 등을 비교적 많이 먹는 게 좋으며, 비타민C 1000mg, 비타민B6 100mg, 비타민E 400IU(국제단위:international unit), 칼슘 1000mg, 마그네슘 300mg를 복용해도 도움이 된다. 소금, 설탕, 카페인, 알콜, 흡연, 육류, 유제품 등은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삼가는 게 좋다. 또 수영, 자전거, 조깅, 에어로빅, 요가처럼 전신 긴장을 풀 수 있는 운동을 하루 30분 정도씩 주 3회 이상 꾸준히 하는 것도 PMS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 밝은 빛을 쬐는 게 좋으므로 야외활동을 늘리고, 실내에 있을 땐 커튼을 열어 가급적 실내를 환하게 하는 게 좋다.
한편 PMS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PMS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은 치료가 가능하다. 따라서 증상이 심하다면 병원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종이 심한 경우엔 이뇨제를, 유방의 통증이 심한 경우엔 유선의 팽창을 억제하는 약물을 쓴다. 항우울제나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같은 호르몬을 투여하기도 한다. 과거엔 월경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수술로 난소를 절제하기도 했는데, 최근엔 수술한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약물도 있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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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력에 집착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제 아무리 아닌 척 하는 딸깍발이 선비도 정력에 좋다면 돌아서서 양잿물을 마시는 게 우리네 정서다. 개고기, 녹용, 뱀, 자라에서부터 사슴피, 웅담, 해구신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바람에 국제 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아무리 세계 모든 남정네의 공통 관심사라지만 좀 지나친 감이 없지않다.
그러나 정력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정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음경의 구조와 발기가 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을까. 의학적으로 어떤 경우에 정력이 떨어지며, 어떻게 해야 정력이 세지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아는 것이 힘이다’고 했는데 알아야 정력도 세진다. 모르면 수백만원을 들여 정력제를 사 먹어도 ‘그 놈’이 미동도 않는 황당한 경우를 겪게 된다.
먼저 음경의 구조와 발기가 되는 원리 등 ‘기본’부터 공부해 보자.
정력은 한마디로 ‘피’다. 남성의 음경에는 스펀지나 수세미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말랑말랑한 해면체가 3개 있다. 성적인 자극을 받아 중추신경이 ‘발기명령’을 내리면 이 해면체가 부풀어 오르면서, 그곳에 평소의 7배나 되는 피가 쏠리게 된다. 이때 음경 정맥은 확장된 해면체에 눌리므로 해면체로 들어온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흔히 정력이라 말하는, 딱딱하게 팽창한 것의 실체가 바로 피인 것이다.
따라서 피가 얼마나 많이 몰렸는가에 따라 발기의 강직도, 즉 딱딱한 정도가 결정된다. 성 행위가 끝나면 해면체를 가득 채웠던 피가 정맥을 통해 빠져 나가는데, 음경 정맥은 매우 가늘어 혈액이 천천히 빠져 나간다. 사정을 하고도 한참동안 딱딱한 발기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정력은 곧 혈액의 순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평소의 7배나 되는 피가 순식간에 해면체로 몰려올 수 있을 만큼 혈관이 충분히 건강하고 탄력성이 있어야 돌처럼 딱딱한 발기상태가 유지된다.
▲ 음경보형물 삽입수술./ 조선일보DB그렇다면 정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해답은 분명해 진다. 성분 미상의 한약재나 해구신, 웅담, 독사가 더 이상 정력이 아니다.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운동, 그 중에서도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이야 말로 최고의 정력제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장이 강하게 펌프질하면서 혈액 순환이 빨라지고 혈관의 탄력성이 증가하게 된다. 또 온 몸에 ‘엔돌핀’이 돌면서 성욕도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달리기를 하면 ‘천연 비아그라’로 불리는 산화질소(NO·나이트릭 옥사이드)의 분비가 촉진된다. 필수 아미노산의 일종인 알기닌과 산소의 결합으로 생기는 산화질소는 해면체 주위의 근육을 이완시켜 해면체로 피를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정력을 위해 현재 인공 산화질소의 개발에 매달려 있는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달리기만 하면 몸 속에서 산화질소가 저절로 생성돼 가만 있어도 ‘비아그라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다만 마라톤처럼 너무 지나친 달리기는 사람에 따라 오히려 성욕과 성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달리기도 제 체력과 능력에 맞게 하는 게 좋다.
그 밖에 수영, 골프, 체조, 등산 등도 정력 강화에 좋은 운동이다. 특히 발기의 강직도가 세지려면 회음부(음경과 항문사이) 근육을 단련시켜야 하는데, 수영이나 체조 등은 발기가 딱딱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만약 음경 혈관이 탄력성을 잃고 딱딱해 진다면 어떻게 될까? 말할 것도 없이 피가 충분히 해면체 안으로 몰려들지 못해 발기의 강직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발기가 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음경 혈관이 말랑말랑하고 신축성있게 유지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음경 혈관의 탄력을 잃게하는 주범(主犯)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등 4가지다. 특히 당뇨환자의 65%가 10년 이내에 발기부전이 된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당뇨는 발기와 직접적 관계가 있다. 전체 발기부전 환자의 40% 정도가 당뇨환자라는 보고도 있다. 당뇨가 있으면 우선 음경의 혈액공급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며, 성 신경과 음경 해면체 조직도 손상돼 발기부전이 초래된다. 피 속의 당 성분이 가는 모세혈관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흡연은 혈관에 직접 상처를 입힌다. 담배 속의 유해물질은 혈관의 안쪽 면, 즉 혈관 내피(內皮) 세포에 상처를 입히게 되며, 높은 혈압도 혈관벽에 손상을 주게 된다. 이같은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혈관이 딱딱해 지고, 이것이 동맥경화로 진행된다.
콜레스테롤은 이같은 동맥경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녹슨 파이프 내부에 찌꺼기가 끼듯, 상처가 생긴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달라붙어 혈관이 자꾸 좁아지고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정력이 떨어졌다면 자신의 생활습관을 한번 되짚어보고, 건강을 원점에서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40대 이후 정력이 떨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정력의 감퇴는 자연적인 노화과정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 몸을 이토록 무관심하고 애정없이 가꿔왔다는 ‘부끄러운 고백’이다. 매일 밤 술 마시고 과식하며, 줄담배를 피워대며, 게으름 부리며 운동 안한 결과가 바로 정력의 감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력의 감퇴는 장래에 닥칠 심각한 질환의 신호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음경의 혈관은 다른 혈관에 비해 무척 가늘고 예민해서 ‘작은 충격’에도 더 빨리 망가진다. 정력과 발기력이 떨어졌다면 몸 속의 더 크고 더 중요한 혈관, 예를 들어 뇌혈관이나 심장혈관도 병이 들기 시작했다는 경고다. 음경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발기력 감퇴에 그치지만, 심장혈관이나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그 끝은 심장마비나 뇌졸중이다. 발기력 감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남성의학자들이 발기력을 전신건강의 척도라고 부르는 이유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강한 ‘남성’이 되고 싶다면 술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에 대해선 참으로 너그러운 편이다. 그 때문인지 “적당히 술을 마시면 수치심이 사라지고, 성적 상상력이 일어나므로 오히려 성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정설(定說)처럼 떠돌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다. 문제는 ‘적당한 술’의 기준인데, 술이 해롭다는데도 굳이 해롭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이라면, 99% 적당히 마시지 않고 폭음하는 사람이다. 맥주나 와인 한 두 잔이라면 문제 없지만 상습적으로 과음하면 고환의 크기가 줄어들고, 남성호르몬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이 때문에 성기능이 약해질 뿐 아니라 성적 욕구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밖에 술을 많이 마시면 말초신경 염증으로 성 신경이 손상돼 발기력이 감퇴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성욕이 생기지 않아 부부관계를 거의 끊고 산다는 사람이 많은데, 성욕이 생기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상습적인 과음이다. 성욕과 성기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욕이 없어 성 행위를 않으면 성기능이 떨어지고, 성기능이 떨어지면 그것 때문에 성욕이 더 없어진다. 따라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중 성욕이 예전만 하지 않다면 당장 술부터 줄여야 한다.
성욕과 성기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우리 몸은 교감신경계에서 에피네프린 등 여러가지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해 스트레스에 대항한다. 이때 말초 혈관과 근육 등이 수축하므로 온 몸이 뻣뻣해지고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남성의 음경 혈관과 근육도 예외가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일시적이라면 발기력 감퇴도 일시적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음경 혈관과 근육도 영구적으로 탄력성을 잃게 돼 진짜 발기부전이 된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일. 운동이나 취미, 긍정적 생각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도 성 기능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머있는 말이나 호탕한 웃음은 몸을 이완시켜 스트레스 때문에 ‘쪼그라진’ 음경에 다시 피를 돌게 해 당신의 ‘남성’을 일으켜 세운다. 충분한 수면도 스트레스의 해소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편 우리가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감기약이나 위장약 등 모든 종류의 약들이 성 기능을 감퇴시킬 수 있다. 지난 1997년 세계 임포텐츠학회지는 성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된 316가지 약품의 목록을 발표한 바 있다. 감기약, 소염진통제, 고혈압치료제, 위궤양치료제, 혈관확장제, 이뇨제, 스테로이드 제제, 항암제, 향정신성 약품, 신경안정제 등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거의 모든 약품이 포함돼 있었다. 성기능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의 25% 정도가 이같은 약물 남용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따라서 갑자기 성기능이 떨어진 경우엔 복용하고 있는 약부터 점검해 보는 게 좋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꼭 필요한 경우엔 물론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약에 의존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미리미리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 생활습관 교정으로 만성병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당연히 불필요한 약의 복용도 삼가야 한다.
드물지만 격렬한 성 행위로 음경 해면체가 손상된 경우에도 발기력이 감퇴되거나 발기부전이 생긴다. 격렬하게 성 행위를 하다보면 해면체를 둘러 싸고 있는 흰색 막 주위 미세한 혈관들이 터지고, 이 때 흘러나온 피의 특정 성분이 굳으면서 해면체 막을 딱딱하게 만들어 발기력을 떨어뜨린다. 이를 ‘페니로니씨병’이라 하는데, 초기 증상은 음경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지며, 심하면 음경이 뒤틀리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걱정을 해 봤겠지만 실제로 격렬한 성행위 때문에 음경이 부러질 수도 있다. 음경에는 뼈가 없으므로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해면체를 둘러싸고 있는 막이 파열되는 것인데, 이를 ‘음경 골절’이라 부른다. 막이 파열된다고 음경 밖으로 피가 나오지는 않지만 음경 안쪽에 피가 차 시커멓게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 때는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발기부전이 생겼다면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곧바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지금의 남성의학은 70대 80대 ‘남성’도 일으켜 세울 정도로 발달했다. 일차적으로 운동과 금연·절주 등의 생활습관 교정을 시도해야 겠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등의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엔 파파베린, 펜톨라민 등의 주사제를 성행위 직전 본인이 음경에 직접 주사해야 했는데, 비아그라 등의 등장으로 훨씬 간편하게 고개숙인 남성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안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음경 해면체 속에 기구(보형물)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보형물은 굴곡형, 팽창형, 자가팽창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팽창형의 경우 펌프와 저장고, 실린더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실린더는 음경 해면체 속에, 펌프는 음낭속에, 저장고는 복부에 각각 수술로 삽입한다. 저장고에 담긴 액체(생리식염수)를 펌프로 실린더로 끌어들이면 실린더에 액체가 들어차 발기가 된다. 고환속에 있는 펌프를 통해 발기와 이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기계적 고장을 일으키면 재수술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수술비는 1000만원 이상이 든다. 60대 70대 ‘할아버지’들이 주로 이런 수술을 받고 ‘활발한’ 성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사정장애는 또 다른 차원의 성기능 장애다. 일반적으로 너무 빨리 사정하는 조루증, 너무 늦게 사정하는 지루증, 사정시 통증을 느끼는 등의 사정통 등이 사정장애에 포함되는데, 조루증이 가장 흔한 형태다.
조루증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몇 분 만에 사정하는 게 조루증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긴 힘들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 관계를 할 때 파트너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유지하는 경우가 절반 이하일 때 조루증이라 규정한다. 이를 굳이 수치화한다면 음경이 질에 삽입된 뒤 2~5분만에 사정하거나, 음경을 질 내로 삽입한 뒤 왕복운동 15회 이내에 사정하는 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조루증은 정신적인 문제, 귀두부위의 과민성, 신경계통의 문제, 내분비 장애 등이 원인이다. 또 발기부전 전단계에서도 조루증이 나타날 수 있다. 성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나 불안감 같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조루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는 상담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통상 고도로 훈련받은 의사나 심리치료사가 시행하는데, 부부가 함께 받아야 효과가 크다. 귀두 부분가 너무 예민해 조루가 되는 경우엔 귀두 부분을 살짝 마취하는 국소 마취제를 이용할 수 있다. 흔히 ‘칙칙이’라 부르는 분무제가 국소 마취제며, 한때 유행했던 ‘SS크림’도 국소마취의 원리다. 이 약을 사용하면 사정시간을 10~30분 정도 연장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 음경의 신경 중 몇가닥을 잘라서 귀두 부분이 덜 예민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 밖에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조루가 발생한 경우엔 약물 치료를 한다.
혈기 팔팔한 10대와 20대엔 섹시한 여배우 사진이나 에로틱한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딱딱한 돌처럼 불큰불큰 치솟는다. 그러나 나이 사십이 돼서도 그런 ‘수퍼 파워’를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정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직접적이지 않은 웬만한 성적 자극에는 반응이 무뎌지며, 중요한 순간에 발기가 잘 안돼 성 관계가 ‘미수’에 그치거나, 사정이 잘 안돼 힘만 쓰고 머쓱해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서너번 반복되다보면 “나도 이제 늙었구나”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고개숙인 남성’을 고착화시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다 보면 한두번 ‘전투’에서 질 수 있다. 또 젊었을 때의 힘만 떠올리고 무모하게 ‘공격’을 하는 경우에도 실패할 수 있다. 이때 “나는 안돼”하고 패배를 인정해선 안된다.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번에 이길 수 있도록 준비와 작전을 짜야 한다.
과음이 문제였다면 당장 술을 끊어야 하고, 당뇨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이 문제였다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당장 몸 만들기에 착수해야 한다. 한두번 졌다고 전투의지까지 상실한다면 영원히 패배하게 된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투지’가 여기서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50대 혹은 60대가 되면 성 생활도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성 생활에서 은퇴란 없다. 적당한 운동과 절제된 생활, 자기 관리를 하면 노후에도 얼마든지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성 문제를 너무 희극적으로 묘사하거나 터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솔직하고 본질적인 욕구며, 성 기능을 상실한 사람은 다른 병에 걸린 사람 못지 않게 고통받고 있다. 성 기능 상실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남들 앞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가슴을 태운다 해서 성기능 장애 환자를 ‘소리없는 신음자(silent sufferer)’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지 말고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사실 우리 정서는 50대 60대 점잖은 신사의 비뇨기과 방문을 사시(斜視)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뇨나 고혈압이나 성기능 상실은 모두 그 뿌리가 같다. 노화와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생긴 같은 뿌리의 질병들이다. 따라서 당뇨나 고혈압 환자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백내장 환자가 인공수정체 삽입수술을 받는 것처럼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남성의학은 ‘쾌락의학’이 아니라, 마음과 육체의 은밀한 병을 고쳐내는 의술이다.
<최형기 교수는>
최형기(영동세브란스·비뇨기과) 교수에게선 점잖은 대학교수가 입에 담기 민망한 단어만 쏟아진다. 섹스, 음경, 발기, 임포텐스, 조루, 오르가즘…. 1980년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연수 당시부터 입에 밴 단어들이라 본인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지만, 같이 있는 사람으로선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 영동세브란스 비뇨기과 최형기 교수(왼쪽) 등이 음경해면체 X-ray 필름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일보DB그는 말을 하다보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편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뱀이고 자라고 마구 잡아 먹지 말고 정말 정력이 세지고 건강한 성 생활을 하고 싶으면 성 공부부터 하라고 강조한다.
1944년 출생인 최 교수는 1970년 연세의대를 졸업했고, 1980~1981년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성기능 장애를 연수했다.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등은 병 취급도 못받았고,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던 사회 분위기에서의 ‘과감한 도전’이었다.
귀국한 최 교수는 ‘섹스학’에만 매달렸고, 1983년 발기부전 환자의 음경에 기구(보형물)를 넣는 수술을 시작했다. 1주일 빨리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가 음경보형물 삽입수술을 시작함에 따라 ‘국내 최초’를 빼앗겼지만, 특유의 ‘승부욕’으로 밀어부쳐 이 분야 아시아 최다 수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700여건이 넘는다.
1985년 ‘신촌세브란스병원 성기능장애 클리닉’ 개설, 1995년 국내 최초 남성의학연구소 개소, 1998년 조루증 치료제 ‘SS크림’ 개발 등으로 국내 남성과학 발달에 기여해 왔다.
요즘엔 동료 비뇨기과 의사 들과 함께 인터넷에 ‘성공(性功)과 건강’(www.ssclinic.com)이란 사이트를 개설하고, 온라인을 통한 성 정보의 제공과 상담에 주력하고 있다.
20여년간 성의학에만 매달려온 최 교수가 내리는 ‘정력 처방’은 아주 간단하다. 뛰라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 혈관의 탄력성이 증가하면서 ‘천연 비아그라’인 산화질소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수영, 골프, 체조, 등산 등도 최 교수가 권하는 ‘정력 운동’들이다. 그 밖에 금연과 절주, 적당한 체중유지, 유머있는 생활, 신중한 약물복용도 최 교수는 권장하고 있다.
그 자신은 주3회 테니스와 조깅으로 ‘정력 관리’를 하고 있다.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으로 수년전엔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서 우승하기도 했다. 주량은 맥주 한두잔, 때에 따라 두세잔이며, 바둑을 즐긴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바둑은 정력에 좋지 않으므로, 바둑을 즐기는 사람은 특히 달리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권고다.
비아그라 vs 시알리스 vs 레비트라
화이자사의 비아그라가 독주하던 경구용(알약)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2003년 시알리스와 레비트라의 출시로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알리스는 일라이릴리사가 개발-판매하고 있으며, 레비트라는 바이엘사가 개발해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와 공동판매하고 있다.
세 치료제는 모두 PDE-5 억제제다. 음경 해면체에 피가 몰려 발기가 되려면, 해면체를 구성하는 근육(음경 평활근)이 느슨해 져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물질이 cGMP다. 그러나 cGMP는 적당한 시점, 예를 들어 성 행위가 끝난 뒤, 분해돼 없어져야 발기된 음경이 원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 때 cGMP를 분해하는 물질이 바로 PDE-5 효소다. 만약 PDE-5 효소가 cGMP를 분해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해면체에서 피가 빠져나가지 못해 계속 발기상태가 유지된다. 세 치료제는 이같은 원리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PDE-5를 억제하는 성분은 실데나필(비아그라), 타다나필(시알리스), 발데나필(레비트라)로 모두 다르다.
세 치료제는 효과와 부작용도 대체로 비슷하다. 각 사가 자사에 유리한 임상실험 결과를 보고하고 있지만 대체로 전체 발기부전 환자의 70~80%에게 효과가 있으며, 두통, 메스꺼움, 안면 화끈거림 등 부작용도 비슷하거나 차이가 있더라도 아주 근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심장병약(니트로 글리세린 등)과 함께 복용할 경우 사망을 포함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러나 약효의 발현시간(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약효 지속시간은 조금씩 다르다. 약효 발현시간은 레비트라 20분~30분(빠르면 15분)으로 1시간 정도인 비아그라와 시알리스보다 빠르다. 약효 지속시간은 레비트라와 비아그라가 4시간 정도로 비슷하지만 시알리스는 24~36시간으로 두 약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길다. 이 때문에 시알리스는 발매 직후 ‘수퍼 비아그라’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릴리측은 약효가 오래가므로 시간에 ?기지 않고 느긋하게 성 관계를 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화이자나 바이엘측은 약효가 오래 간다는 것은 그만큼 체내에 약 성분이 오래 머물러 있다는 증거로, 그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공격하고 있다.
세 치료제의 우열을 가리긴 무척 힘들며, 시장의 반응도 현재로선 무승부다. 시알리스와 레비트라가 발매되고 처음으로 열린 국제성학회에서 세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분석한 연구 결과가 3건 발표됐다. 공교롭게도 3건의 연구 결과는 모두 달랐다. 한편은 비아그라가, 한편은 레비트라가, 한편은 시알리스가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발표했다.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대중은 묻고 있지만 결론은 “글세요”였던 것이다.
비아그라와 레비트라와 시알리스의 시장 쟁탈전이 어떻게 진행될 지 두고볼 일이다.
여성들의 성기능 장애
여성들의 성기능 장애는 남성의 그것만큼 흔하지만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 행위시 여성의 성적 역할이 수동적이란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불감증 등을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병원 치료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최근엔 여성 성기능 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와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 성기능 장애에는 흔히 불감증이라 부르는 성적각성장애와 오르가즘장애가 대표적이지만 병원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성교통이나 질경련 때문이다.
성교통은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같은 정신적 원인, 처녀막이나 음순의 열상(裂傷)과 같은 외상, 질 표면의 염증이나 궤양이나 피부병, 불충분한 애무, 생식기의 구조적 이상, 자궁내막증, 골반염, 폐경으로 인한 질 건조증 등이 원인이다. 성교통 완화를 위해 윤활제나 마취연고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으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숨어있는 병이 성교통의 원인일 수 있으므로 통증이 심한 경우엔 일단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다.
질경련은 남성 성기의 삽입을 막으려는 무의식 때문에 대부분 비롯되는데 성교통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성교통에 대한 고통스런 기억이 질경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밖에 임신에 대한 두려움, 남자에게 조정당한다는 생각, 성 행위가 폭력이라는 생각 등이 질경련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질 근육을 이완시키는 훈련을 받으면 대부분 증상이 호전된다.
한편 흔히 불감증이라 부르는 성적각성장애는 적절한 성적 자극이 주어져도 흥분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다. 부부 싸움, 정신적 스트레스, 성에 대한 죄의식, 자신의 신체에 대한 나쁜 이미지 등 정신적 원인인 경우가 많으며, 갑상선질환, 말초 또는 중추신경계 질환, 자궁질환, 근육질환, 약물복용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전체 여성의 약 10%에게 나타나는 오르가즘장애는 불충분한 애무, 부적절한 성관계, 성에 대한 죄의식 등이 원인이 된다. 성적각성장애나 오르가즘장애가 정신적인 문제서 비롯되며 지속된다면 정신과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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