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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들의 명강의] 관절염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30일간 연재하고 있습니다.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2003년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은 80.1세, 남성은 72.84세다. 영아사망, 암이나 교통사고 사망이 ‘평균 값’을 깎아 내렸는데도 이 정도니, 웬만한 사람은 평균 수명보다 10년 이상 더 살게 된다.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누구나 100세를 사는 시대도 이제 멀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아직 ‘100세 시대’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 “노년을 위해 건강 조심하라”고 하면 “적당히 살다 죽을테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한다. 실로 엄청난 착각이다. 100세 시대란 아프다고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의학의 발달로 이제 병에 걸려도 죽지 못하고 병든 상태로 살아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이 100세 시대의 특징이다. 따라서 고령화 시대엔 건강도 작전이 필요하다. 60년 또는 70년 살 때와 100년 살 때의 인생계획이 같을 수 없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어쩌면 60년은 그럭저럭 살 수 있을 지 모른다. 장기나 조직이 망가질 때쯤 사망하므로 본인이 치러야 하는 댓가도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100년은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계획을 세우고 알들살뜰 아끼고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 몸의 여러 부속품은 절대 100년을 버틸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망가진 몸으로 30~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타이어가 펑크났거나, 문짝이 하나 떨어져 나갔거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마치 자동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듯 세심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몸을 아껴야 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에 따라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관절이다. 관절을 많이 사용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뼈와 뼈를 연결하는 연골이 닳거나 관절을 이루고 있는 조직에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이 관절염이다. 60~70년만 산다면 50~60대에 관절염이 와도 10년쯤은 참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다. 어떻게 30~40년을 앉거나 누워서 지낼 수 있을까? ▲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의 무릎관절 엑스레이 사진./ 조선일보DB 다행스럽게도 최근 인공관절 수술이 도입돼 망가진 관절을 갈아 끼울 수 있다지만, 노년에 뼈를 갈아 끼우는 큰 수술을 받는다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관절을 아끼고 잘 관리해서 제 관절로 제 수명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몸은 200개가 넘는 뼈로 구성돼 있는데, 뼈의 크기와 상관없이 뼈와 뼈가 이어지는 곳엔 어디나 관절이 존재한다. 엉덩이, 무릎, 발, 어깨, 팔꿈치, 손, 목, 척추 등에 관절이 있으며, 심지어 두개골이나 갈비뼈에도 관절이 있다. 관절의 도움으로 사람은 아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일 수 있다. 만약 관절이 손상되거나 제 역할을 못한다면 사람의 동작은 영화 속 로봇처럼 각이 지고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관절은 또 뼈와 뼈 사이 완충역할을 함으로써 뼈가 마모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도와 준다. 먼저 관절의 구조를 살펴보자. 뼈와 뼈가 맞닿는 곳, 즉 뼈의 제일 끝 부분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끄러운 연골, 즉 물렁뼈로 덮혀 있다. 70~80%가 물인 연골은 충격을 흡수할 뿐 아니라, 뼈와 뼈가 서로 맞닿아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뼈에는 질기고 단단한 인대가 붙어 있어 서로 떨어진 뼈와 뼈를 연결시켜 준다. 만약 인대가 손상을 입으면 뼈와 뼈의 고정력이 약해져 뼈가 흔들리게 된다. 관절낭은 뼈와 인대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질긴 주머니다. 관절낭 안에는 마치 자동차의 윤활유처럼 아주 미끈거리는 관절액(활액)이 가득차 있는데, 관절액은 관절낭 속 활막이란 조직에서 생산된다. 한편 관절낭 밖은 근육이 감싸고 있는데 근육은 관절 주변의 충격을 흡수하고, 관절을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한다. 근육 끝에는 힘줄이 붙어 있어 근육과 관절을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관절낭과 근육 사이에는 점액낭이란 작은 주머니가 있는데, 여기서도 일종의 윤활유가 분비돼 관절과 근육의 마찰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것 같지만 관절 하나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많은 조직이 서로 힘을 합하고 있다. 관절염에는 퇴행성 관절염과 류마티스 관절염, 통풍성 관절염, 화농성 관절염 등이 있다. 염증이란 생체조직이 외상, 화상, 세균침입 등으로 인한 손상을 입었을 때 체내에서 일어나는 방어적 반응으로, 충혈, 부종, 발열,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관절염의 경우 관절이 뻣뻣해 지는 증상이 추가된다. 흔히 염증이라면 고름을 먼저 떠 올리지만, 고름이 있는 관절염은 화농성 관절염 뿐이며, 나머지 관절염은 고름 없이 염증현상만 나타난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퇴행성 관절염은 글자 그대로 노화 때문에 생기는 관절염이다. 차를 오래 타면 타이어가 마모되는 것처럼 관절을 많이 사용하면 연골이 마모돼 관절염이 유발된다. 물론 젊었을 때도 마라톤과 같은 과격한 운동을 하면 연골이 마모되지만, 이때는 웬만큼 닳아도 금방 재생되므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닳기만 하고 재생은 안돼, 연골이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지 못하고 얇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40세 이후 관절연골의 마모가 시작되며, 70세쯤 되면 대부분 퇴행성 관절염 증상이 나타난다. 이들의 무릎 등을 엑스선 촬영하면 연골이 심하게 마모돼 있고, 뼈 끝이 매끈하지 않고 우툴두툴하게 ‘군 뼈’가 생겨 있는 게 특징이다. 퇴행성 관절염의 두 번 째 원인은 관절의 과도한 사용이다. 아무리 새 타이어라 해도 매일 서울 부산을 왕복한다면 빨리 닳을 수 밖에 없다. 또 아스팔트가 아닌 비포장 도로를 매일 주행하는 자동차처럼 관절에 무리한 충격을 주는 경우에도 연골이 마모돼 퇴행성 관절염이 유발된다. 셋째는 부상이다. 관절은 다른 인체조직과 달리 ‘형상기억장치’가 없는 부위다. 대부분의 인체 조직이 손상을 당하면 원래대로 재생되지만, 관절을 다치면 원 상태로 매끈하게 회복되지 않고 관절면이 우둘투둘해지기 때문에 관절염이 유발된다. 넷째는 비만이다. 운전자 한 사람만 탄 차와 사람과 짐을 가득 실은 차의 타이어 마모 상태가 같을 수가 없다. 당연히 사람과 짐을 많이 실은 차가 타이어도 많이 마모된다. 마찬가지 원리로 살이 많이 찐 사람은 관절이 받는 충격도 그만큼 크므로 관절이 빨리 망가지게 된다. 다섯째는 성별이다. 똑 같이 나이를 먹는데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퇴행성 관절염이 3~4배 많이 발병한다. 정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자들은 관절이 남자보다 작은데다 관절에 부담이 되게 쪼그려 앉아 가사 노동을 많이 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여섯째는 유전적 성향이다. 나이, 체중, 부상 경험 등 다른 조건이 똑 같은 데도 어떤 사람은 퇴행성 관절염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걸리지 않는 이유는 유전적 성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행성 관절염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관절에 무리를 주는 과격한 운동을 삼가하고, 관절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스키, 스노우보드, 인라인 스케이트, 농구, 등산, 마라톤 등은 관절을 다치기 쉬운 운동이므로 이 운동을 할 때는 준비운동을 철저히 해서 관절을 풀어주고, 관절 보호대를 착용하는 등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현미경으로 사람의 관절을 들여다보면 50대 이상은 누구나 무릎 연골에 조금씩 금이 가 있다. 따라서 이 연령대의 사람들은 관절에 과도한 충격을 주는 운동을 삼가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신력을 앞세워 ‘악으로 깡으로’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동남아나 중국 등지로 골프 투어를 가서 2~3일간 하루에 36홀, 심지어 54홀씩 라운딩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을 무박(無泊) 산행한다고 깜깜한 밤중에 산 길을 걷는 사람도 많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이런 행동들은 관절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40대 이상의 중년인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 젊었을 때 생각만 하고 “내가 이래뵈도...”하며 힘자랑을 하려 드는 사람이 많은데, 현명한 사람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과 사고를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관절을 적절하게 움직여서 관절을 구성하는 인대와 근육과 힘줄 등을 단련시키는 것도 관절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키 포인트 중 하나다. 연골이 닳아 퇴행성 관절염이 생긴다고 설명하면 “그렇다면 걷지도 뛰지도 말고 앉아만 있을까요”하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자동차를 아낀 다고 너무 오랫동안 세워 두면 부품에 녹이 슬어 망가지는 것처럼 관절도 사용하지 않으면 뻣뻣하게 굳어 문제를 일으킨다. 오십견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 적당히 움직여서 자극을 줘야 관절의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연골이 튼튼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관절은 항상 제 운동범위만큼 충분히 움직여 굳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맨손체조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의 관절이 굳어 있으므로 맨손체조로 온 몸의 관절을 충분히 풀어준 뒤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설문조사를 해 보면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게 맨손체조다. 매일 아침 걷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맨손 체조를 건너 뛰는 경우가 많다. 맨손체조는 운동하는 기분도 나지 않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 몸의 관절과 근육을 풀어주는 맨손체조야 말로 그 어느 운동보다 효과적이고 필수적인 운동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퇴행성 관절염을 예방하려면 그 외에도 항상 표준 체중을 유지해서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을 줄여야 하며, 쪼그려 앉거나 엎드려 걸레질 하는 것처럼 관절에 부담을 주는 나쁜 자세를 고쳐야 한다. 차렷자세처럼 고정된 자세를 오랫동안 취하고 있는 것은 관절에 부담이 되므로 자주자주 자세를 바꿔 주는 게 좋다. 또 관절은 추울 때 손상을 더 쉽게 받으므로 몸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도 관절을 아끼는 방법 중 하나다. 퇴행성 관절염은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증상을 방치하거나 잘못 치료하면 관절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게 된다. 무릎 관절이 뒤틀려 다리가 O자형으로 굽은 할머니들을 흔히 보게 되는데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지면 이렇게 된다. 이때는 보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므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결론’은 아니다. 적절한 운동, 물리치료,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 조절이 가능하며, 인공관절수술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 우선 관절염이 시작되면 환자는 움직여야 한다. 아프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관절이 더 굳어지므로 가벼운 통증은 참고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 맨손체조나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이 좋다. 그러나 운동 뒤 관절이 아프거나 붓는다면 운동이 지나친 경우므로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 또 관절염 증상이 급성으로 나타날 때 운동하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이 때는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관절을 쉬게 해야 한다. 급성기 관절염에는 냉찜질로, 만성기엔 온찜질로 관절을 보호하는 게 좋으며, 파스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치료가 시작되면 의사를 믿고 약물치료를 받고 필요하다면 관절주사도 맞아야 한다. 관절염에 사용되는 약물은 아스피린, 스테로이드,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 콕스2억제제 등 다양하다. 또 가장 많이 쓰이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의 경우도 인도메타신, 펠덴, 썰감, 낙센, 볼타렌 등 종류가 무수히 많다. 이 약들은 환자에 따라 효과가 달리 나타나므로 환자는 의사와 상의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약을 선택해야 한다. “관절염 약은 속을 버린다”는 얘기를 자꾸 퍼트려선 안된다. 최근 개발된 콕스2억제제의 경우 위장장애가 거의 없으므로 의사가 처방한 기간동안 처방한 용량을 정확하게 복용해야 한다. “뼈 주사는 부작용이 심하니 가급적 안 맞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뼈 주사’란 스테로이드 성분을 뼈가 아닌 관절 내부에 주입하는 치료로, 최악의 경우 뼈가 죽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 관절의 통증과 부종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없다. 따라서 신중할 필요는 있지만 의사의 처방을 불신하고 거부해선 안된다. 효과와 부작용의 함수관계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의사다.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틴 등 관절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천연 아미노당인 글루코사민은 연골, 손톱, 피부, 머리카락의 구성 성분이다. 연골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세계보건기구도 ‘관절염에 도움이 되는 성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글루코사민은 비타민C나 망간과 함께 복용하면 더 흡수가 잘 되므로 이 성분이 첨가된 것을 복용하는 게 좋다. 상어, 가오리, 고래, 오징어, 해삼 등에 많은 콘드로이틴 성분은 연골에 영양을 공급해서 연골이 탄력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연골을 파괴시키는 효소를 억제하고, 염증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틴은 출혈, 인슐린작용 억제 등의 부작용이 있으므로 복용시에는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관절액의 일종인 하이알루닌산을 관절 내부에 주사하는 것도 어느 정도 관절을 재생하는 효과가 있으며, 관절의 부종과 통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아보카도, 스쿠알렌 등이 퇴행성 관절염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 임상적으로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지네나 고양이, 박쥐 등을 삶아먹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물리-약물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라도 관절경을 이용해 관절면이나 활액막에 웃자란 군더더기를 제거해 주거나(골극제거술), 관절 속 노폐물이나 찌꺼기를 제거하면(관절세척술) 효과적으로 관절염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따라서 퇴행성 관절염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물-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관절경 수술도 받아야 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공격해야 할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엉뚱하게 아군(我軍)인 우리 몸을 공격해 생기는 병이다. 즉 혈액 속 백혈구 세포가 관절과 관절 주위 근육, 인대, 뼈 등을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의 초기 증세는 주로 손마디가 뻣뻣해지는 게 특징인데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심하며, 관절을 많이 움직이면 뻣뻣한 증세가 풀리게 된다. 처음엔 손마디만 뻣뻣하고 붓지만 조금 지나면 팔꿈치, 어깨, 무릎, 발목까지 염증이 침범하며,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관절 연골이나 주위 조직이 손상돼 관절마디가 휘어지거나 굳어지게 된다.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마귀할멈의 굳고 휘어진 손가락이 바로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손이다. 퇴행성 관절염이 40대나 50대 이후에 주로 나타나는데 비해 류마티스 관절염은 30세 전후 비교적 젊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며, 퇴행성 관절염이 몸의 한쪽 관절에서 시작되는데 비해 류마티스 관절염은 대칭되는 몸의 양쪽 관절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또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가락 발가락 어깨 등 온 몸 관절에 대부분 영향을 미치며, 붉은 반점이나 열, 체중감소, 피로감 등의 신체증상이 동반되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 곳곳의 관절이 뻣뻣해지면서 1시간 이상 아프고, 손이나 발가락 마디가 붓고 아픈 증세가 6주 이상 지속되며, 피로감, 미열, 체중 감소 등의 증세가 있으면 빨리 류마티스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류마티스 관절염 역시 치료가 쉽지 않다. 퇴행성 관절염에서처럼 아스피린,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소염제, 스테로이드, 콕스2억제제 등의 약을 쓰는데 이를 ‘제1열 치료제’라 한다. 1열 치료제가 듣지 않는 경우엔 ‘제2열 치료제’라 불리는 항암제, 말라리아약, 금(gold) 등을 쓴다. 2열 치료제는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매우 심하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도하에 복용해야 한다. 물론 퇴행성 관절염에서처럼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도 병행해야 한다. 한편 류마티스 관절염의 경우에도 약물치료가 듣지 않는다면 관절경 수술을 시행하며, 그래도 안되는 경우엔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인공관절수술의 효과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보다 약간 낮은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통풍성 관절염이란 음식물 속에 포함된 ‘퓨린’이란 물질의 대사 장애로 혈중 요산치가 높아지고, 이 요산이 결정을 형성해 관절과 그 주위조직에 달라붙어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주로 발가락에 가장 많이 생기지만 손가락, 손목, 팔꿈치, 발목, 무릎 등에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요산수치가 높은 사람은 육류와 육류 내장(간, 뇌 등), 멸치, 청어, 고등어,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알콜 등을 삼가하는 식이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체중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화농성 관절염이란 수술이나 부상 등 피부의 상처를 통해 세균이 관절 안으로 침투하고 증식해서 관절조직을 파괴하는 병이다. 이때는 염증이 심해 고름이 생기게 된다. 주로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하며, 부상 등 사고 후유증으로 생기는 경우도 많다, 무릎 관절에 가장 많이 나타나며, 엉덩이 관절, 어깨 관절에 나타나는 경우도 비교적 흔하다. 화농성 관절염을 적절하게 치료하지 못하면 관절은 물론 뼈까지 완전히 망가지므로, 이 병으로 진단되면 응급수술로 고름을 빼 내고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한다. 결핵성 관절염이란 결핵균이 관절에 침범해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다른 관절염과 달리 증상이 매우 서서히 진행되므로 퇴행성 관절염으로 오진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결핵약으로 치료한다. 관절염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병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 관절염은 완치가 매우 어렵다. 의사들의 처방도 일시적인 진통 효과 뿐이라 환자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 진다. 그 틈을 타서 근거도 없는 각종 민간요법들이 특효약으로 둔갑해 환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은 다소 줄었지만 십수년전만 해도 관절염 환자는 십중팔구 고양이나 지네, 박쥐를 고아 먹었다. 관절이 좋을 것같은 동물을 먹으면 관절염이 낫는다는 ‘동종요법’적 믿음 때문이다. 또 한때 자기 오줌을 먹는 것과 포도를 줄기차게 먹는 방법이 유행했으며, 그 뒤에도 홍화씨, 오가피, 식물뿌리, 구리팔찌, 좌석요, 벌침, 뜸 등이 관절염 특효약으로 변신해 가난한 환자의 돈을 긁어갔거나 가고 있다. 민간요법이 횡행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의사보다 주변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귀울이기 때문이다. “낫기 힘들다”는 의사보다 “누구누구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낳았다더라”는 주변 사람을 더 믿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와 미장원 미용사의 처방이 의사 처방보다 더 권위를 인정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미용사나 때밀이 아줌마를 주치의 삼았던 사람들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관절이 완전히 망가져 어떻게 손 써 볼 여지도 없는 상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정체 불명의 특효약이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관절염 증상을 일시에 없애주는 마법과 같은 약이다. 이 약만 먹으면 욱신욱신 지끈지끈 거리는 관절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낫는다. 스테로이드 특효약을 파는 사람은 환자의 입에 입을 통해 ‘용하다’고 소문이 나고, 그래서 그 사람 앞엔 관절염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이 성분을 부적절하게 섭취하면 백내장,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 비만, 피부 얇아짐, 출혈 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된다. 약효가 뛰어난데도 의사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스테로이드를 처방하는 이유는 이같은 부작용 때문이다. 환자들 중 상당수는 관절염 약은 독해 속을 버리고, 한번 먹으면 인이 박혀 평생 먹어야 하며, 따라서 가급적 오래 버티다 늦게 약 복용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죄다 환자를 골병들게 하는 잘못된 상식들이다. 물론 과거 관절염 약은 부작용 때문에 소화장애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작용 없고 효과적인 약들이 무수히 개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전 입소문이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며 관절염 환자를 호도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지만 관절염 치료는 미장원이나 목욕탕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관절염 치료의 첫 걸음은 ‘~카더라’는 소리에 귀를 막고 의사를 바라보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하는지도 모른다. ■김성윤 박사는 지난 2001년 서울 신사동에 류마티스 클리닉을 개원한 김성윤 박사는 우리시대 명의(名醫)의 대명사다. ▲ 김성윤 김성윤류머티스병원 원장한양대병원 재직시절, 그에게 진찰을 받으려면 3~5년씩 걸렸다. 아주 오래전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종합병원 유명교수 특진상황’에 따르면 간 박사로 유명한 김정룡 전 서울대병원 교수를 제치고 그가 ‘최고 명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똑 같은 검사를 하고 똑 같은 약을 주는 요즘 시대에 명의가 어디있냐”고 얘기한다. 경험과 감(感)에 의존하는 ‘명의의 시대’는 갔고, 이젠 과학과 의학의 시대라는 것이다. 김박사는 생글생글 웃는 인상이 참 반듯하게 잘 생겼다. 말도 너무 쉽게 한다. 그의 말은 비유와 사례가 아주 적절하게 뒤섞여 있어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다. 또 요점정리가 잘 돼 있어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알아듣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로 무뚝뚝하게 설명하는 다른 의사들과의 차이점이다. 관절염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줌마’들은 그런 김박사의 ‘열성 팬’을 자처했고, 그 바람에 ‘뻔질나게’ TV 아침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 탤런트가 됐다. 그가 대한민국 최고 명의의 자리를 지키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 박사 자신의 지적대로, 류마티스 관절염에 명의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류마티스 환자들은 그와 대면하기 위해 수년씩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김 박사는 그토록 오래 기다린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줌으로써 마음까지 사로잡아 버린다. “김 박사 얼굴만 봐도 병이 낫는다”는 루머가 나돌 정도며, 다른 의사들은 이 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류마티스 관절염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완치가 불가능하며 평생 관리-조절해 해 나가야 하는 병. 어떻게 보면 뚜렷한 완치법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따뜻함과 카리스마가 있는 그의 목소리야 말로 최선의 치료제인지도 모른다. 1975년 한양대의대를 졸업하고 1980년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김박사는 1983~1986년까지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의대 등에서 류마티스 관절염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당시만 해도 관절염은 당연히 정형외과의사가 치료해야 하는 정형외과 질환. 선배들은 “내과의사가 왜 관절염을 공부했냐”고 면박을 줬고,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를 그가 아닌 정형외과 의사에게 의뢰함으로써 그를 따돌렸다. 지금은 표준 치료제로 정착됐지만 초기엔 말라리아 치료제나 항암제(메스트렉세이트)를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투여하다 “오진했다”며 멱살 잡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어렵게 개발-정착시켜온 표준 치료-투약법들은 이제 류마티스 관절염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의 실력은 그를 기다리는 환자가 증거다. 김성윤 박사는 이제 쉬고 싶다고 했다. 너무 정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끝이 추해진다는 것이다. 막 전문의를 딴,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젊은 친구보다 여러면에서 뒤쳐지는데도 정상을 지키고 앉아 있으려면 후배들을 권위로 누를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언제 들어도 논리가 명쾌하다. ■인공관절 수술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연세가 많은데 큰 수술은 받아도 될까”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인공관절 수술은 기본적으로 노인을 위한 수술이다. 당뇨나 고혈압 등이 심한 경우라면 비교적 안심하고 수술받아도 된다. 인공관절 수술은 관절과 뼈의 일부를 잘라낸 뒤 인공관절을 남아있는 뼈 속에 삽입해 단단하게 고정하는 수술이다. 연골을 대신하는 소재로는 강화 폴리에틸렌이나 세라믹이 사용되며, 나머지 부분은 코발트합금, 티타늄 등의 금속을 사용한다. 과거엔 10~15년 사용하면 인공관절이 마모돼 재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최근엔 성능이 향상돼 관리만 잘하면 20~3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65세 이상 노인이 수술받으면 사실상 평생 재수술 없이 지낼 수 있다. 수술 2~3일 뒤 환자는 목발이나 보행기를 짚고 일어설 수 있으며, 엉덩이 관절 수술환자는 두 달 쯤 뒤, 무릎관절 수술 환자는 한 달 쯤 뒤부터 목발-보행기 없이 보행이 가능하다. 무릎 인공관절의 경우 인공관절이 움직이는 각도가 110~120도 정도이므로 쪼그려 앉거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수 없다. 골프, 수영, 자전거타기, 등산 등의 운동은 해도 문제 없지만 심하게 뛰거나 다른 사람과 신체접촉이 있는 운동을 해선 안된다. 수술 뒤 처음 1년간은 3개월에 한번, 그 이후엔 6개월이나 1년에 한번 병원을 방문해 인공관절의 상태를 점검받는 게 좋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13 13:00
  • [명의들의 명강의] 수면장애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인생의 1/3~1/4은 잠이다. 80세까지 산다면 20~25년을 잠자리에서 보낸다. 그 세월 만큼 인생을 허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해(苦海) 속에 표류하는 나약한 인생에게 주어진 달콤한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피곤하고 지쳐버린 육체와 영혼에 새 기운, 새 희망을 불어 넣는 게 잠이다. 천근만근의 무게로 심신을 짓눌렀던 어제도 잠을 자고 나면 과거가 되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휴일 아침,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평안함을 “게으르다”고 말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슬프고 무미건조해 질까? 19세기 초반까지 사람들은 잠을 각성과 죽음의 중간상태로 생각했다. 밤에 뇌가 휴식상태에 들어가면서 잠이 들고, 아침에 뇌가 깨어나면서 잠이 깬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잠을 자며 꾸는 꿈은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돼지꿈을 꾸거나 똥을 보면 횡재를 한다고 생각했고, 땅 속으로 꺼지거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면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 했다. 꿈이 애매모호할 때는 그 의미를 밝히는 ‘해몽사(解夢士)’를 불렀다. 이같은 ‘비과학’은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의 한 대학원생이 잠을 자는 어린아이의 눈이 어느 순간 마치 무엇을 보는 듯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꿈과 관계되는 수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이라 명명했다. 안구가 급속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또 다른 대학원생은 잠이 마치 건축 구조물과 같이 단계와 구조가 있는 복합적이고 질서있는 현상임을 발견하고, 잠을 깊이에 따라 1~4단계로 구분했다. 현대 수면의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잠을 설명해 보자. 사람의 잠은 1~4단계로 분류되며, 꿈을 꾸는 렘 수면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잠이 들땐 얕은 잠인 1단계를 거쳐 2-3-4단계로 진행되며, 4단계가 끝나면 렘 수면 단계로 올라와 첫번째 꿈을 꾸게 된다. 렘 수면이 끝나면 다시 1~4단계 중 어느 한단계로 돌아갔다 다시 렘 수면으로 돌아오길 하룻밤에 4~6회 반복한다. 수면시간의 첫 1/3에 깊은 잠 즉 3,4단계 수면이 집중돼 있고, 끝 1/3에 렘 수면이 집중돼 있다. 깊은 잠 단계에선 외부 자극 없이 잠을 깨는 일이 거의 없는데, 깊은 잠은 보통 새벽 2시 정도에 끝난다. 그 이후엔 얕은 잠과 렘 수면이 반복되는 게 보통이다. 꿈을 안 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성인의 잠은 20~25%가 꿈이고, 아기의 잠은 절반 정도가 꿈이다. 꿈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 심리적이고 애매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논리적인 사람보다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또 꿈꾸는 도중이나 꿈 꾼 직후 잠을 깨면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렘 수면, 즉 꿈을 꾸는 도중에 깨워 방금 꾼 꿈을 물어보면 약 85%가 꿈을 자세하게 기억하지만, 렘 수면이 아닌 단계에서 깨워 물어보면 약 5%만이 꿈을 기억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잠을 자야 할까. 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피로회복이다. 수면 중엔 신체의 모든 기관이 휴식상태에 돌입하고 낮 시간에 축적된 각종 피로물질이 분해된다. 잠을 못자면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아는 상식이다. 강제로 잠을 못자게 하자 각종 호르몬 체계가 교란되고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사망했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잠이 부족하면 피로, 집중력 저하, 짜증, 환각, 망상, 공격성 증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또 수면 중엔 성장호르몬이 집중적으로 분비되므로, 어린이가 잠을 적게 자면 키가 덜 자란다. 잠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정보처리와 갈등해소 기능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게 꿈이다. 사람의 꿈은 과거의 기억을 정리, 분류, 삭제, 저장하는 일을 담당한다. 쓰레기와 같은 과거의 기록을 모두 떠 안고 살아간다면 그러잖아도 복잡한 인생이 얼마나 고달퍼질까. 꿈을 통해 사람의 뇌는 필요하고 유용한 기억을 저장하고, ‘쓰레기 기억’을 삭제하게 된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려면 잠도 충분히 자야 한다. 졸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밤 늦게까지 공부해 봤자 입력된 정보가 저장될 시간이 부족해져 학습능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꿈을 많이 꾸면 “잠을 설쳤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심지어 악몽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과 같은 충격 이후 겪는 악몽은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나쁜 경험을 통합해 다소의 치료적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악몽이 지나쳐 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는 예외다. 사람은 몇 시간 정도 잠을 자야 할까. 어떤 사람은 4시간만 자면 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7~8시간은 자야 된다고 한다. 모두 정답이 아니다. 적정 수면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긍정적·적극적인 사람은 수면시간이 짧고, 수동적·소극적인 사람은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수면시간은 최대 30분 정도며, 그 이상 억지로 줄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수험생이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폴레옹이 토막잠을 여러번 나누어서 잔 것으로 유명한데, 잠은 한번에 이어 자야 1~4단계와 렘 수면이 적절히 조화돼 피로회복, 신진대사, 성장, 기억력 저장 등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잠이 모자란 현대인은 엉덩이만 붙이면 어디서든 쉽게 잠에 빠져들지만 불면인들은 잠을 자기 위해 매일 밤 사투(死鬪)를 벌인다. 사실 불면의 고통은 사람이 겪는 가장 혹독한 경험 중 하나다.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어제도 잠을 못 잤다”는 사람에게 “잠 안 오면 책도 읽고, 비디오도 보고, 정 심심하면 일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나도 한번 불면증에 걸려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에겐 주먹이라도 한방 날리고 싶은 게 불면인의 심정이다. 필자도 한 때 그같은 불면을 경험했다. 침대속의 불면인에겐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마치 천둥치는 것 같다. 잠을 청해보려 갖은 애를 쓰다 버럭 화를 내며 침대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처절함이 매일 밤 계속 된다. 견디다 못해 때로는 무작정 집을 나와 ‘몽유인(夢遊人)’처럼 길 거리를 배회하기도 하고, 포장마차를 찾아 소주를 마셔보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정신을 더욱 또렷해 진다. 이렇게 잠과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4시가 지나가 5시도 지나, 창문이 훤하게 밝아온다. 그 고통을 도대체 누가 알아줄까. 이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제로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불면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병이라기 보단 열이나 두통 등과 같은 증상이다. 수 없이 많은 원인들 때문에 불면이란 증상이 나타난다. 걱정이나 근심 등 심리적인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때로는 사지운동증, 두통, 그 밖의 통증 등과 같은 신체적 질병이 불면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불면증이 심한 경우엔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 불면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란 8시간 정도 잠을 자게 하며 뇌파와 안구운동, 심전도, 근전도, 호흡, 코골이, 이갈이, 혈중 산소 포화도 등 수면에 영향을 주는 모든 현상을 관찰-측정-판독하는 검사다. 만성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사지운동증, 기면병, 악몽 등 초수면 장애, 이갈이 등의 병을 진단하는데 유용하다. 대형병원 수면장애센터(곳에 따라 정신과, 호흡기내과 등)에서 받을 수 있으며 비용은 50~80만원 선이다. 불면증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잠을 자다 중간에 자주 깨는 것, 세째는 새벽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중 잠이 들지 못하는 유형이 가장 많고, 증상도 가장 심각한데, 이 경우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 이유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간에 자주 깨거나 새벽에 깨는 불면증은 신체적인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코를 심하게 골면서 일시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 수면무호흡증이나, 무릎 아래 다리를 주기적으로 떠는 사지운동증 등은 숙면을 방해해 잠에서 자주 깨는 원인이 된다. 잠이 들지 못하는 유형의 만성 불면증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늪과 같아서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더욱 더 정신이 또렷해지는 게 특징이다. “오늘은 기어코 잠에 들겠다”고 다짐하며 최적의 수면조건을 갖추고 잠자리에 들지만 갑자기 “이러다 또 잠이 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초조감이 음습하면서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제와 같은 고통의 밤이 오늘도 이어지게 된다. 잠을 자겠다는 의지는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최대의 위험 인자다. 따라서 “잠이 안오면 억지로 자지는 않겠다”고 결심하고 침대에 눕지 않는게 불면증 치료의 첫 걸음이다. 사람은 하루 이틀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전날 잠을 못잤더라도 잠을 보충하려 하지 말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잠이 안 오면 침대에 누워있기 보다는 책을 보거나 일을 하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새벽이 가까와 지고 다시 초조해 지는데, 이 때 물러서면 안된다. “그래 이왕 못 잤는데, 오늘도 자지 말자”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갖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견딜 수 없이 잠이 쏟아지고, 그때 침대에 몸을 누이면 잠들기에 성공할 수 있다. 신체질환 때문에 생긴 불면증이 아니라면 불면증 환자는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퇴직자에게 불면증이 잘 나타나는 것은 취침시간, 기상시간, 식사시간 등 생활리듬이 불규칙하고, 이 때문에 뇌 속의 생체시계가 교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규칙적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하고, 전날 잠을 설쳤다고 낮잠을 오래 자는 것은 좋지 않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운동은 육체적 피로를 유발해 수면에 빠져드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밤 늦은 시간 운동을 심하게 하면 인체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교감신경계가 자극돼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잠을 청하기 어렵게 된다. 밤에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나 목욕을 해도 교감신경계가 자극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를 하면 인체를 편안한 휴식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부교감신경계의 세력이 우세해져 잠을 쉽게 청할 수 있다. 술이나 담배, 카페인 음료 역시 교감신경계를 자극하므로 불면증 환자는 조심해야 한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제는 습관성과 내성이 있으므로 전문의 처방을 받아 한달 이내만 복용해야 하며, 매일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편 불면증 환자는 벽 시계를 치워 버려야 한다. 침대에 누워 시계를 자꾸 쳐다보면 뇌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아직도 못 잤다”는 패배감과 불안감에 젖게 돼, 헤어날 수 없는 불면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불면증과 더불어 가장 흔한 수면장애는 수면무호흡증이다. 얼마전까진 코를 심하게 고는 것을 병으로 치지 않았다. 그러나 코를 심하게 골면 수면무호흡증이 유발돼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 등이 더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잠의 질이 떨어져 피로회복이 더디고 집중력·판단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코를 심하게 곤다면 수면다원검사를 받아 볼 필요가 있다.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되면 코에 산소 마스크 같은 것을 끼고 자는 상기도 양압기를 사용하거나, 마우스피스 처럼 생긴 것을 입 속에 넣고 자는 구강내 보조장치를 사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엔 입이나 코에 무엇을 물고 끼고 자는게 무척 거추장 스럽지만, 익숙해 지면 큰 불편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비강이나 인후두부를 수술해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기도 한다. 사지운동증, 기면병, 몽유병 등도 비교적 흔한 수면장애다. 잠을 못자는 불면증과 달리 기면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잠이 쏟아져 심지어 말을 하거나 식사를 하다 잠에 빠지는 병이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웃거나 흥분하면 갑자기 온 몸 근육의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이 나타나 간질 치료를 받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잠들 무렵 환각현상이나 가위눌림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10대에 시작돼 학업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만 조기 발견해 약물치료를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사지운동증은 무릎 아래 근육을 주기적으로 수축시키는 병으로 그 바람에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며 당뇨나 신장질환, 빈혈이 있는 경우에도 비교적 흔하게 나타난다. 술을 오랬동안 좋아했던 경우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병은 약물로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다. 사지운동증과 유사한 병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종아리가 저리거나 가려워서 잠이 들 수 없는 병도 있다. 이 병 역시 약물 치료로 호전될 수 있다. 렘수면 운동장애는 흔하진 않지만 매우 위험한 수면장애다. 렘수면 단계에 들어가 꿈을 꿀 땐 온 몸의 근육이 풀어지기 때문에 정상인들은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나 렘수면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은 근육의 힘이 남아 있어 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따라서 강도를 때려 잡는다고 옆에서 자는 아내를 주먹으로 내려치거나, 악당을 피해 도망간다고 뛰어가다 벽에 얼굴을 부딪혀 부상을 당하는 등의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이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과거엔 렘 수면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이 잠들기 전 두꺼운 가죽 혁대나 쇠사슬로 몸을 침대에 묶었으나, 요즘엔 근육을 이완시키는 약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수면장애는 개인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집중력·판단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교통사고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7000만명 이상이 한 종류 이상의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선 이 때문에 수면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1993년 국립수면장애연구소를 세워 수면장애를 연구하고 있다. 또 10년쯤 전부터 수면의학 전문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90년대 중반부터 수면의학 전공자를 양성하고 있지만 아직 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차원의 수면의학 연구도 전무한 실정이다. 산업안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국가가 수면의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시점이다. 수면은 인생의 1/3~1/4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도언 교수는 정도언 교수를 취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기자의 ‘입 맛’에 맞게 의학지식을 ‘가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지 틀리지 않다면 대충대충 넘어가줘야 기사 쓰기가 수월하지만, 그는 항상 의학적이고, 원칙적이고, 정확하게 말하기 때문에 약간만 내용이 어긋나거나 비약돼도 “노(NO)”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 바람에 애초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전화를 끊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레지던트나 병원 직원들에게도 ‘깐깐’하긴 마찬가지다. 조금도 과오나 편법을 인정치 않는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가장 정확하고 꼼꼼한 진료를 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참 의사’의 길을 배운다”고 말했다. 1951년생인 정 교수는 1976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정신분석학, 스트레스의학 및 수면의학이 전문분야. 국내 프로이드 학파의 ‘거두’인 조두영 서울의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받아 지난 5월까지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 1991년 한국인 의사로는 최초로 미국수면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1992년 서울대병원에 국제 수준의 수면다원검사실을 최초로 개설하는 등 국내 수면의학을 이끌어 오고 있다. 대한수면의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디지털 수면다원기록기의 개발, 만성 난치성 불면증의 단기 입원치료 프로그램 개발 등이 그의 업적이다. 그러나 수면의학이 너무 생물학적 의학만 강조해선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수면장애 환자의 마음속까지 이해하며 진단·치료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대병원 홍보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정 교수는 의학 이외 분야에 대한 시사 및 문화비평적 감각도 뛰어나 영러 일간지와 시사 주간지에 고정 컬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숙면을 위한 침실 꾸미기 침실 안 가구나 침구의 종류, 벽지의 색깔 같은 수면 환경은 숙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못 느끼는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도 잠을 못 이룰 수 있으므로, 잠을 잘 자지 못한다면 침실의 환경부터 점검해야 한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선 우선 방안의 소음부터 줄여야 한다. 시계가 째깍째깍 거리는 소리, 냉장고가 윙윙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바람이 창문을 스치는 소리, 차가 쌩쌩거리며 지나가는 소리, 아파트 복도-계단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 등이 잠을 방해한다. 창에 두꺼운 커튼을 쳐서 소음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아날로그 시계는 소리가 나지 않는 디지털 시계로 바꾸는 게 좋다. 소음 제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잠들기 전 아주 느린 박자의 배경음악을 타이머로 맞춰 놓고 자면 소음에 정신을 뺏기지 않아 쉽게 잠에 들 수 있다. 이를 ‘마스킹(masking) 효과’라고 한다. 새 집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 향수 등 화장품 냄새, 모기향 등 화학물질 냄새 등도 대뇌피질을 자극해 수면을 방해한다. 자주 환기를 시켜 나쁜 냄새를 제거해야 한다. 침실에 국화, 라벤더, 안개꽃, 아이리스 같은 식물을 갖다 놓으면 나쁜 냄새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화에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성분이 있어, 예로부터 ‘국화베개’를 애용해 왔다. 이불은 가급적 자주 햇볕에 말리고, 침대 밑의 먼지도 틈나는 대로 제거해야 한다. 침대 밑에 먼지가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 있는 집이 많은데, 먼지 속의 곰팡이 포자나 집먼지 진드기 등도 숙면을 방해한다. 사람은 하룻밤에 한 컵 정도의 땀을 흘리므로 주말에는 꼭 이불을 햇볕에 말려 보송보송한 상태로 유지해야 숙면할 수 있다. 베개는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아야 한다. 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 얼굴이 아랫쪽으로 5도 정도 기울어지는 높이가 적당하다. 무의식적으로 베게와 머리 사이에 손을 대는 것은 베개가 낮기 때문이며, 똑바로 눕기 힘들고 자꾸 옆으로 누우려 한다면 베개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 밖에 자고 일어나서 목이나 어깨 주변이 결리거나, 자는 동안 베개가 자꾸 밀려나거나, 자는 동안 베개를 자꾸 손으로 바로 놓거나, 코골이가 심한 경우에도 베개가 맞지 않기 때문이므로 이 때는 베개를 바꾸어야 한다. 요나 매트리스는 오래 사용하면 허리가 닿는 부분이 꺼지므로 교체하거나 꺼진 부분에 큰 타월을 깔아 높이를 맞춰야 한다. 운동복이나 평상복을 입고 자는 사람이 많은데 재질이 두껍고 뻣뻣해서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숙면을 위해선 부부가 함께 자는 더블 침대보다 혼자 자는 싱글 침대가 좋다. 잠을 자는 동안 사람은 대개 20~30번 몸을 뒤척이므로 상대방의 숙면에 방해를 줄 수 있다. 벽지나 침대 커버 등은 너무 강렬한 색을 피해야 하며, 안정감이 드는 밝은 색이 좋다. 파스톨 색조는 대체로 무난하다. 커튼과 침대 커버의 색을 통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12 09:19
  • [명의들의 명강의] 통증치료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맹장염 때문에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곳에선 심장이 멎고 뇌혈관이 터져야 ‘대우’ 받는 것일까? 열 시간이 넘도록 응급실 한 귀퉁이에서 이를 악다물고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예리한 칼로 내장을 북북 찢어 발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지 않으니 호들갑 그만 떨라”고 야단쳤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쁜 의사다. 자기 가족이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면 최소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증이란 신체에 가해지는 외부적 자극이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 섬유가 분포돼 있다. 물리적, 화학적, 열(熱) 자극이 전달돼 이 섬유가 흥분하게 되면, 그것이 말초신경-척수-뇌 시상부-뇌 피질로 전달돼 비로소 아프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누구나 통증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통증은 의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 몸의 이상을 알려주는 신호 기능이다. 맹장염 통증이 그토록 극심한 것은 복막염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으니 서둘러 수술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또 맨발로 유리조각을 밟자마자 발을 떼서 물러나는 것도 통증의 경고 때문이다. 만약 당뇨병 때문에 발의 통증을 못 느낀다면 유리조각을 더 깊이 더 많이 밟아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결국 급성 통증은 앞으로 닥칠 더 큰 조직의 손상을 예방하게 해주는 고마운 경고인 셈이다. 더군다나 통증의 원인이 사라지면 고통도 신속하게 사라지므로 임상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통증이다. 두통, 요통, 각종 신경통, 관절통, 어깨통증(오십견) 등이 대표적 만성 통증이며 그 밖에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통증도 있다. 만약 그 옛날, 맹장염에 걸렸을 때와 같은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아마도 지옥이 그럴 것 같다. 두통, 요통, 신경통 같은 만성 통증은 너무 흔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편두통 등이 심하면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흔히 나타나며, 사람의 성격과 인생관까지 변하게 된다. 또 대상포진 후 나타나는 신경통은 산통(産痛) 못지 않게 극심하다. 두통이나 신경통 때문에 개두(開頭) 수술을 받는 환자도 드물지 않고, 통증이 너무 심해 차라리 다리 등 통증 부위를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제3자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생소한 병의 고통은 두통 등과 비할 바가 아니다. 두통이나 신경통 등은 그래도 원인과 치료법이 비교적 뚜렷하다. 아프면 어떻게라도 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증후군’이란 이름이 붙은 이 ‘요상한’ 병들은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는다. 급성통증에 잘 듣는 진통제나 치료법도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어도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게 되고, 심한 경우 사회 생활을 못하거나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두통 요통 등에 관한 정보는 비교적 손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이 장에선 근근막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세가지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근근막통증증후군은 특별한 이유없이 목과 어깨 등 근육이 뻐근하게 아픈 병으로, 통증클리닉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가 된다. 우리 몸은 350여개 근육의 유기적인 동작으로 움직인다. 체중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이 근육은 잘못된 자세, 외부의 충격,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쉽게 수축되며, 이렇게 수축된 상태가 풀리지 않고 굳어지면 근섬유라 부르는 ‘근육결’ 일부가 띠처럼 단단하게 변한다. 단단한 근육결 속에 있는 근육에는 자연히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고, 이곳에 통증 신경을 자극하는 세르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이 처음 생긴 곳을 ‘방아쇠 포인트’ 또는 ‘통증 유발점’이라고 하는데, 그곳을 누르면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심한 압통(壓痛)이 느껴지며, 손으로 만져보면 근육 속에 볼펜 심 같은 게 들어있는 느낌이 든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초기에 적절히 치료하면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된다. 통증유발점을 찾아 그곳의 근육을 풀어주는 스테로이드제 등을 주사하는 게 기본 치료법이다. 이 주사는 몹시 아프지만 효과 만큼은 확실하다. 뭉쳐진 근섬유를 풀어주기 위해 전기나 초음파로 자극하거나, 뜨거운 물수건을 대거나, 마사지를 하는 등 물리치료도 효과가 있다. 반복되는 손상이나 사고, 짧은 팔다리 등 신체의 구조적 문제, 목 또는 허리 디스크, 치아의 부정교합, 나쁜 자세, 만성 피로, 불충분한 수면, 우울증, 급-만성 감염 등도 병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중 하나 이상이 통증의 원인이라고 판단되면 찾아서 교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병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통증 때문에 자세가 더 나빠지고, 그로 인해 비정상적 근육수축의 범위가 늘어나서, 통증유발점이 자꾸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발병 초기엔 통증만 문제가 되지만 병이 악화되면 근육이 약화돼 운동능력이 떨어지며, 관절이 굳어져 운동범위가 축소되고, 우울증과 수면장애도 초래된다. 감각장애, 눈물, 땀, 현기증, 이명 등과 같은 자율신경 이상 증상도 나타난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의 예방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세를 곧게 하고,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오래 있으면 근육이 수축되므로 수시로 자세를 바꿔 줘야 하며, 컴퓨터 작업 등을 할 때는 적절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 스트레칭을 할 때는 근육결이 놓인 방향대로 근육이 완전히 펴질 수 있게 하면 효과가 더 좋다. 어깨 근육 등을 눌렀을 때 몹시 아프고 알갱이처럼 딱딱하게 뭉쳐져 있는 곳이 있다면 손바닥이나 엄지손가락 강하게 눌러주는 것도 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다. 근육이 아프다는 점에서 근근막통증증후군과 유사하지만 훨씬 ‘고약’한 게 섬유근육통이다. 이 병은 병리학(病理學)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온 몸 구석구석이 돌아가면서 아픈 것이 특징이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목, 어깨, 허리 등이 주로 아프지만, 섬유근육통은 목, 어깨, 가슴, 팔, 다리, 엉덩이 등 몸 전체가 아픈 게 차이점이다. 또 불면증, 두통, 어지럼증, 약간의 마비 또는 감각 이상, 불안감, 우울증, 소화장애, 기억-집중력 장애, 피부 가려움증까지 동반된다. 어떤 검사를 해도 정상으로 나타나므로 과거 의사들은 이 병이 실존하는 병인지 상상 속의 병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을 정도다. 1990년에야 병의 실체를 인정하고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이라 이름 붙였지만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이런 병이 있는지 조차 몰라 수 많은 환자가 ‘꾀 병’을 부린다고 오해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인 인구의 약 2%(남성 0.5%, 여성 3.5%)가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으며, 환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대부분 백인이다. 특히 직장여성이나 고소득 여성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발병률은 미국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생활 양식이 서구화되면서 최근 환자가 늘고 있다. 발병 원인은 완벽하게 오리무중이다. 외상, 이혼, 사별 등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의사는 바이러스 감염설을 주장한다.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나 혈중 아미노산의 이상, 갑상선 질환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고, 호흡한 산소의 독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진단법은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류머티스 학회는 다른 질병이 없을 것, 우리 몸의 18개 압통점(누르면 통증이 느껴지는 곳) 중 11곳 이상에서 통증이 유발될 것,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것, 수면장애 증상이 나타날 것 등을 섬유근육통 진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온 몸이 아파도 11곳 미만의 압통점에만 통증이 있다거나, 11곳 이상의 압통점에서 통증이 생겨도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 질병이 있다면 섬유근육통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병은 정말 치료하기 어렵다. 치료법은 기본적으로 근근막통증증후군과 비슷하다. 즉 아픈 부위에 소량의 마취제 또는 스테로이드제를 주사하거나, 근육에 전기침을 꽂아 자극을 주거나, 근육 이완제나 우울증약 등 약물을 복용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근근막통증증후군의 경우 주사요법이나 전기자극요법으로 비교적 쉽게 치료가 되지만, 섬유근육통은 어느 한 곳을 치료하면 다른 곳의 통증이 심해지는 등 치료 효과가 크지 않다. 마치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통증이 얄밉게 옮겨 다닌다. 때문에 의사들은 조바심을 내며 병원을 전전하기 보다는 차라리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권유한다. 때로는 이같은 심리요법이 주사요법 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 때문에 이 병을 치료할 땐 심리상담이 필수적이며, 경우에 따라 정신과 치료도 곁들이게 된다. 이같은 병의 속성 때문에 제기된 게 이른바 ‘선택이론(Choice Theory)’이다. 이는 환자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무의식적으로 아프기를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임상 심리 전문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미국의 윌리엄 글라써 박사가 정립한 이 이론은 인간관계에서의 문제점이 통증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인간에게는 생존, 힘, 사랑과 소속감, 즐거움, 자유 등 5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 중 사랑과 소속감 욕구와 힘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스스로 병을 선택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글라써 박사는 이 병의 치료를 위해 인간관계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 회복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부부간의 관계를 가로막는 7가지 잘못된 습관으로 비판하기, 탓하기, 불평하기, 잔소리하기, 협박하기, 벌주기, 매수하기(또는 상주기)를 꼽고 있으며, 병을 고치려면 이같은 나쁜 습관을 먼저 고치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자. 이는 수술 뒤 또는 외상을 당한 뒤 신체의 한 부위에 발작적인 통증이 계속되며, 점차 몸의 여러 부분으로 통증이 확산되는 병이다. 외국의 경우를 미루어 볼 때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병을 정확히 진단해 내기가 무척 어려워 대부분의 환자가 병명도 모르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병으로 인한 통증은 불에 타는 것 같은 작열통, 피부에 깃털이 스치거나 바람만 닿아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는 이질통이 특징이다. 또 환자는 통증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여 모든 행동이 위축되게 된다. 대개의 경우 피부접촉이 통증을 유발하므로 환자들은 통증이 생기는 피부에 부목(副木)을 대고 다니거나, 장갑을 끼고 다니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그 밖에 피부 감각의 변화, 부종(몸이 붓는 것), 근력약화로 인한 운동장애, 피부의 온도와 색의 변화 등의 증상도 환자의 70% 정도에게 나타난다. 대부분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발생하는데, 복부 수술, 축농증 수술, 코 높히는 수술, 치과 수술 후에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손목 부상 등과 같은 가벼운 외상이 왜 온 몸의 이질통-작열통 등으로 발전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역시 치료가 쉽지 않으며, 완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진통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을 처방해서 치료를 한다. 진통제보다 항우울제 등 정신과 약들이 통증과 통증으로 인한 우울감을 더 효과적으로 덜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증의 강도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신경차단요법도 발병 초기 환자에게 비교적 많이 시행하는데, 이는 마취제로 통증을 일으키는 교감신경을 마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약물-신경차단요법으로 효과가 없는 환자가 많은데, 이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환자의 척수에 전기자극을 주는 기계(척수자극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비교적 효과가 좋지만 척수에 설치하는 게 매우 까다롭고, 장비 가격이 비싸다는 게 단점이다. 근근막증후군이나 섬유근육통 같은 난치성 통증은 물론이고 두통, 요통, 신경통, 안면통, 골반통 등 대부분의 통증은 통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통증의 고통은 매우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크기의 외부적 자극이 주어지더라도 통증을 느끼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죽을 것 처럼 괴로워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을 찌푸리는 선에서 그럭저럭 참아낸다. 통증을 참아낼 수 있는 한계가 다르기 때문인데, 이를 ‘통증의 문턱(threshold)’이라고 한다. 문턱이 높을 수록 통증을 참아내는 힘이 강하며, 낮을 수록 작은 자극에도 많이 고통스러워 한다. 마음가짐은 문턱의 높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통증을 두려워 하고 회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통증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올테면 오라”고 당당히 맞서면 통증의 강도가 훨씬 약해진다. 마치 매를 맞을 때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라고 잔뜩 겁을 내서 맞는 것보다 “때릴테면 때려 봐라”는 마음가짐으로 맞으면 훨씬 덜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섬유근육통 등 난치성 통증의 치료에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섬유근육통 같은 난치성 통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늘상 경험하는 두통 요통 신경통 등에도 꼭 같이 적용된다. 통증클리닉 이용하기 최근 통증 클리닉이 늘어나고 있지만, 보통사람에겐 아직도 생소한 곳이 통증클리닉이다. 두통 요통 신경통 근육통 같은 통증이 생겨도 통증클리닉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환자들은 기계적으로 신경과 신경외과 정형외과로 달려가며, “통증에는 침이 최고”라며 한의원을 찾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통증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통증클리닉을 적절히 이용하면 생각보다 쉽게 병을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클리닉은 두통, 요통, 오십견, 안면 신경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 당뇨병성 신경병증, 좌골신경통, 관절통, 근근막통증증후군, 섬유근육통, 암 통증 등 인체에 나타나는 모든 통증성 질환을 치료한다. 뿐만 아니라 안면신경마비, 안면경련, 다한증, 돌발성 난청 등도 이곳에서 치료한다.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마취제로 마비시키거나, 경우에 따라 신경을 아예 파괴시키거나, 척수강 안에 진통용 아편제제를 투여하는 것 등이 통증클리닉의 기본 치료법이다. 통증클리닉은 일시적으로 통증만 제거할 뿐 병의 원인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신경의 흥분성을 감소시키거나, 들뜬 신경막을 안정시키거나, 뭉쳐진 근육을 이완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통증을 제거하면 병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 디스크 요통처럼 병의 원인 질환이 분명한 경우라도 경우에 따라선 통증클리닉 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통증만 없다면 디스크에 손을 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수술을 위주로 하는 외과계열 병원을 찾아 섣불리 수술하는 것보단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따라서 병의 원인 질환이 분명히 존재하는 경우라도, 통증이 주 증상이라면 통증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보는 게 유리하다. 한편 통증이 있으면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데, 침이 유용한 통증 치료 수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상태서 침 치료를 받는 것은 경우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대의학적으로 완치 가능한 시기를 놓치고 만성 통증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학적 치료를 더 선호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통증이 생겼을 땐 통증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과 삼차 신경통 삼차 신경통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비교적 흔하게 발병하며 통증도 극심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런 병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게 공통점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 삼차신경통은 칼로 찌르거나 전기자극을 하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돌발적으로 안면에 생기는 것이다. 얼굴과 목에는 척수가 아닌 뇌에서 직접 빠져나온 열두쌍의 신경이 지나며, 그 중 제5신경은 다시 세갈래로 나눠져 첫째 이마와 눈 주위(안신경), 둘째 뺨-윗턱-윗입술 부위(상악신경), 셋째 아랫턱-아랫입술 부위(하악신경)를 지난다. 신경이 세갈래로 갈라졌다고 해서 삼차(三叉)신경이라 하는데, 통증은 신경이 지나는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주로 말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이를 닦는 등 안면 근육을 움직일 때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밥을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는 환자도 있다. 삼차신경통은 나이가 들면서 혈관이 탄력을 잃고 늘어져 근처에 있는 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환자도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신경차단치료 등 여타의 통증과 동일한 방법으로 치료하지만 극심한 통증이 낫지 않고 계속되는 경우엔 신경과 혈관을 서로 분리해 주는 뇌 수술을 시행한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수두포진이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대상포진을 앓고 난 뒤에도 통증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병이다. 대상포진은 주로 허리 부분에 붉고 동그란 발진이나 수포가 띠 모양으로 생기는 피부질환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신경까지 침범하므로 극심한 통증이 생기게 된다. 칼로 베이는 듯한, 또는 불에 데인 듯한 극심한 통증이 특징인데, 흔히 산통(産痛)만큼 고통스럽다고 표현한다. 환자는 대부분 50대 중후반 이상이다. 면역력이 좋은 젊은 시절엔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해도 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수 십년 동안 숨죽이고 있던 바이러스가 발호해서 피부와 신경을 손상시키게 된다. 대상포진은 보통 피부과에서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하지만 통증이 심하므로 통증 전문의의 신경차단요법 같은 치료를 함께 받는 게 좋다. 이 병은 가능한 빨리 치료해야 하며, 치료가 늦어지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가능한 수단을 총 동원해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치료의 첫째 원칙이다. ■ 이상철 교수는 이상철 교수는 서울대병원서 가장 바쁜 의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연 평균 6000여명의 통증 환자에게 외래 진료실에서 투약 및 신경차단술을 시행하며, 통증치료 전용의 수술방에선 중증 환자 1500여명에게 다양한 통증 시술을 한다. ▲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조선일보DB진료과의 특성에 따라 3분만에 진료가 가능한 곳도 있지만 통증클리닉은 이 곳 저 곳 아픈 얘기를 다 들어줘야 하고, 무엇보다 아픈 이유를 환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줘야 한다. 또 직접 환자를 만져보고 주사도 놓아야 하므로 환자 당 진료시간이 아무래도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그 바람에 그는 진료가 있는 날이면 꼭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꼬박 병원에서 지낸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이 교수를 찾는 환자는 대부분 난치성 통증 환자로 수 많은 병원을 거쳐 왔기 때문에 한(恨)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들”이라며 “환자들의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어주는 것을 보면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인내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말했다. 1953년생인 이 교수는 1978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서울대병원서 인턴과 마취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1986년부터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마취과는 수술장에서 외과의사와 팀을 이뤄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와 직접 대면(對面)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마취과 의사의 공통된 불만 중 하나다. 1988~1990년 미국 UCLA 의대에서 최신 통증 의학을 배우고 돌아온 이 교수는 그러나 1991년 서울대병원에 ‘통증치료실’을 개설하고 그 때부터 통증 환자를 진료-시술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당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통증의학이 여러 단계 뛰어오르고, 독자적인 진료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여러가지 신 기술을 통증치료에 도입했다.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근이나 신경절에 바늘을 찔러 넣고 특수 파장의 주파수를 쏘아 파괴하는 ‘방사주파 열응고술’을 통증 치료에 도입했으며, 등골을 싸고 있는 바깥막(경막)의 신경을 내시경으로 성형하는 ‘경막외강 내시경 신경성형술’도 도입했다. 난치성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를 위해 피부를 통해 척수에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도 도입했다. 방사선 영상을 보면서 신경 등을 치료하는 중재적 통증 치료 경험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아 매년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통증학회에 초빙돼 강연을 맡고 있다. 중재적 척추통증 치료를 위해 대한척추통증연구회를 창설했으며, 대한통증학회 차기 회장에 내정돼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11 11:17
  • [명의들의 명강의] 자궁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어떤 산부인과 의사도 환자에게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자궁 경부암의 원인에 관한 것이다. 환자가 “왜 자궁경부암에 걸렸나요”하고 물으면 의사는 십중팔구 “글쎄요.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이라며 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해서 ‘쓸데없는’ 분란만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당신 남편의 잘못된 성 생활로 못된 바이러스가 옮았기 때문”이라고 말해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자궁경부암은 일종의 성병이다. 성 행위를 통해 전염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휴먼파필로마바이러스)가 원인인 경우가 95% 이상이다. 이 바이러스 감염자의 20~25% 정도가 전암(前癌)단계인 ‘자궁상피 이형증(異形症)’이 되며, 그 중 20~30% 정도가 암으로 발전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악성(또는 고위험)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여성의 4~5% 정도가 자궁 경부암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암으로 발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아서 5~20년 정도다.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경로는 대부분 ‘뻔’하다. 이 바이러스는 성 행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목욕탕이나 수영장에서 옮는 일도 없으며, 위생이 문제가 돼 전염되는 일도 거의 없다. 본인 또는 성행위 상대방의 난잡하고 문란한 성 관계를 통해서만 옮겨진다. 때문에 18세 이전에 성 행위를 시작한 여성, 성 행위 상대가 여러 명인 여성, 남편이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등을 자궁경부암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국립보건원 등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흥접객업소 여성의 50% 정도가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우리나라는 매춘이 세계서 가장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나라 중 하나다. 당연히 직업여성과 관계한 수 많은 남성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으며,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상태서 ‘순결한’ 자신의 애인이나 아내에게 이 바이러스를 옮기게 된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 전체 성인 여성의 20% 정도가 이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가 수년 또는 수십년 지나 자궁경부암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건전한 성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내가 아무리 ‘일부종사(一夫從事)’해도 남편이 밖에서 바이러스를 ‘묻혀’ 들어오면 속수무책이므로, 남편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남편들은 자신의 부정 때문에 애꿎은 아내가 자궁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자궁경부암 예방을 남편의 도덕심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도덕심은 매우 불완전한 안전장치다. 보다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는 것이다. 검진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 행위를 시작하고 1~2년 뒤부터 2년 정도마다 한번씩 받는 게 좋다. 면봉 등으로 자궁 입구 세포를 긁어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세포진 검사’가 기본이며, 이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40세 이상이면 이 두 검사를 동시에 받는 게 좋으며, 만약 두 검사에서 모두 정상으로 나타나면 2~5년간은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만약 검사 결과 고위험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자궁경부이형증 등이 생기는지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1년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세포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형증 단계서 발견하면 100%, 이형증이 발전해 0기암인 상태서 발견해도 100%, 심지어 1기 초에 발견해도 99% 완치된다. 이렇게 되기까진 최하 5년에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걸리므로 세포진 검사만 제대로 받으면 암 전단계서 거의 100% 차단할 수 있다. 한편 이 바이러스는 사람의 힘으로 없앨 수 없으며,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도 하므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서 너무 겁먹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철저한 검진만 받는다면 거의 문제가 없다. 사실 세포진 검사 등 검진법의 개발-보급-확산으로 자궁경부암의 진단은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서울 등 대도시 지역에선 말기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는 환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형증 단계 또는 0기암 단계 등 암 전단계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1981년 여성암의 28%를 차지했던 자궁경부암은 2003년엔 9.1%로 뚝 떨어졌다. 부동(不動)의 1위 여성암에서 이제는 유방암, 위암, 대장암, 갑상선암에까지 추월당해 5위로 주저 앉았다. 성개방 풍조 등에 따라 불건전한 성관계가 과거보다 더 많아졌고, 그 만큼 바이러스 감염과 발암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검진의 보급-확산으로 전암 단계서 모두 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미성년자나 20대 초반의 성 행위가 늘면서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자궁경부암은 대체로 40대 50대에 생겼으나 최근엔 20대나 30대 초반 자궁경부암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미성년 시기 또는 20대 초반 때의 문란하고 비정상적인 성관계 때문이다. 특히 10대 때는 자궁경부의 세포가 매우 예민해 쉽게 상처를 받으며, 바이러스감염-이형증-상피내암(0기)-자궁경부암의 진행 속도도 매우 빠르다. 그러나 미성년자나 처녀가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는 일은 거의 없어, 말기(末期) 상태로 발견되는 비율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따라서 성 행위를 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암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구미 각국에서 성 행위를 한 10대까지 암 검진 권고대상에 포함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자궁경부암의 치료는 1기와 2기 초 까지는 수술이 기본이며, 필요에 따라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시행한다. 그러나 암 세포가 자궁을 벗어난 2기 말 이후엔 수술없이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형증이나 0기암은 물론 1기 초기인 경우에도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자궁 입구만 잘라내는 방법(원추절제술)이 많이 시행되며, 최근엔 복강경 수술도 확산되고 있다. 또 수술 이후의 성기능 장애, 요실금, 다리 부종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수술법들도 속속 개발돼 있다. 살고 죽고가 문제가 됐던 과거엔 수술 부작용 등을 고려치 않고 광범위하게 자궁과 주위 림프절 등을 잘라내는 ‘용감한 의사’가 많았으나, 요즘은 수술 뒤의 삶까지 고려하는 ‘현명한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자궁경부암이 그만큼 만만해 졌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많은 자궁내막암(또는 자궁체부암)은 그러나 인유두종 바이러스와 전혀 무관하게 발병한다. 이는 자궁 입구가 아닌 자궁 본체에 생기는 암으로 육류를 많이 섭취하거나, 키가 크고 뚱뚱하거나, 출산 경험이 없거나, 폐경이 늦거나, 폐경 후 호르몬대체요법을 받는 여성에게 많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자궁암=자궁경부암’으로 생각할 정도로 자궁경부암이 압도적으로 많고 자궁내막암은 여성 생식기 암 중 가장 적지만, 미국에선 난소암이나 자궁경부암보다 훨씬 많다. 자궁내막암은 대개 폐경이 끝난 뒤 발병하며, 40세 이하 환자는 5% 이하다. 자궁출혈이 가장 특징적 증상이며, 특히 폐경 여성이 자궁출혈을 일으킬 경우엔 1/3 정도가 자궁내막암이다. 또 폐경했는데도 질 분비물이 증가할 때도 내막암을 의심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처럼 세포진 검사 등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자궁확대경 검사나 자궁내막 초음파 검사로도 완전히 확진하기 어렵다. 확진하려면 자궁내막 조직을 채취해 세포 검사를 해 봐야 한다. 암으로 진단되면 우선 자궁과 난소, 나팔관 등을 잘라낸 뒤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치료 결과가 좋지만 환자의 나이가 많을 수록 치료 결과가 나쁘다. 일반적으로 1기인 경우 5년 생존율이 80~95%, 3기 이상은 10~60% 정도다. 최근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난소암 역시 성 행위와는 무관하다. 자궁내막암처럼 주로 폐경 이후 발병하며, 배란 횟수가 많을 수록 발병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거나, 출산경험이 없거나, 첫아이 출산이 늦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난소암에 걸리기 쉽다. 그 밖에 지방 섭취가 많거나, 가족 중 난소암이나 유방암 환자가 있는 여성도 난소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전체 난소암의 5% 정도는 유전성으로 밝혀져 있다. 그러나 피임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배란이 억제되므로 난소암 발병률도 낮아지는 것으로 일부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난소암은 전체 여성암의 4% 정도로 매년 1400명 정도가 새로 발병한다. 난소암은 조기에만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불행히도 환자의 4분의 3 정도가 3기 이상 진행된 상태로 발견될 정도로 조기진단이 쉽지 않다. 자궁경부암을 위한 세포진 검사처럼 간편하고 효과적인 진단법이 없기 때문이다. 골반 진찰, 질 초음파, 혈액검사 등이 난소암 검진에 사용되나 그리 정확하지 못하다. 때문에 매년 산부인과 진단을 받는 여성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폐경 이후 아랫배가 묵직하게 불편하다거나, 소화가 안된다거나, 가스가 차면서 포만감이 든다거나, 아랫배에서 딱딱한 물체가 만져지는 등 애매한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난소암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수 밖에 없다. 한편 난소암으로 진단되면 수술로 난소와 나팔관, 자궁 등을 모두 떼어내고 보조적으로 항암제 치료를 한다. 1기는 5년 생존율이 70~95%, 2기는 50~70%지만, 3기 이상인 경우엔 5~20%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발견 당시 3기 이상인 경우가 전체의 3/4 정도여서, 전체 난소암 환자의 5년 생존율도 20~40%에 불과하다. 2002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환자는 3980명 발생해 1009명이 사망해 25%의 사망률을 보였지만, 난소암은 1572명이 발생해 626명이 사망함으로써 자궁경부암보다 훨씬 높은 40%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암은 아니지만 전체 성인 여성의 20% 정도가 갖고 있는 자궁근종(물혹)에 대해 알아보자. 자궁근종이란 자궁안 근육층에서 발생한 양성종양으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기는 밤톨만한 것에서 부터 어른 주먹보다 큰 것 까지 다양한데, 백인은 약 25~30%, 흑인은 약 50% 정도가 자궁근종을 갖고 있다. 사실 자궁근종은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자궁 초음파 검사 등을 받아 자궁 속에 물혹이 있다는 얘길 들으면 이 때부터 여성들의 고민과 갈등은 시작된다. 의사가 아무리 암이 아니고 물혹이라고 설명해도 “혹시 거짓말 하는 게 아닐까?”라고 속으로 끙끙 거리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이는 물혹이 결국 암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또 어떤 이는 출산도 끝났으니 차라리 깨끗하게 자궁을 드러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만큼은 아니라해도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궁근종은 특별한 증상이 없거나, 2차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내버려 두는 것이 원칙이다. 자궁근종이 있더라도 대개 아무런 증상도 없다. 그러나 때때로 월경과다, 월경이 아닌 출혈, 성교시 통증, 빈뇨-급박뇨, 변비, 습관성 유산, 불임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이 때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자궁의 부분 또는 절제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또 물혹의 크기가 6~7Cm 이상일 경우에도 신중하게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밖의 경우에는 ‘찜찜해서’ 또는 ‘예방적으로’ 자궁을 절제할 필요가 없다. 물혹이 암으로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또 자궁을 절제할 경우 여성은 우울증 등 정신과적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이 자라는 등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가능한 자궁을 보존하는 게 낫다. 한편 자궁을 절제하면 생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폐경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 폐경이란 생리가 없는 게 아니라 여성 호르몬 분비가 중단된 상태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는 곳은 자궁이 아니라 난소므로 자궁을 잘라 냈다고 해서 호르몬 분비가 중단되지 않는다. 또 자궁이 없다고 성적인 반응이나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성 생활이 가능하다. 예전보다 느낌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지만, 물혹으로 인한 성교 통증이 없어지므로 성 생활이 더 활발해지는 경우도 있다. ▲ 남궁성은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남궁성은 교수는 남궁성은 교수는 ‘감투’가 많다. 현재 대한암학회 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가톨릭의과학연구원 원장, 대한부인종양·콜포스코피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은 강남성모병원 원장도 맡았다. 말 그대로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빠 세 자녀의 입학식·졸업식 한번 참석치 못했다. 너무 바빠 아직 골프도 못 배웠다. 남궁 교수가 유일하게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일은 환자에 관한 것이다. 병원장쯤 되면 외래 진료를 주 1회 정도로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경우가 많지만, 남궁 교수는 병원장 재임시에도 주3회 외래와 수술을 평소대로 소화해 냈다. “아무리 행정일이 바빠도 그 때문에 환자 곁을 떠나선 안된다”는 신조다. 그는 주말과 휴일에도 매번 병원에 나와 병동을 ‘어슬렁’거리며 환자에게 말을 건넨다. 남궁 교수는 자궁경부암 조기진단법의 개발과 보급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현재 분당차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승조 교수와 함께 ‘자궁경부암 판독 시스템’을 셋업시킴으로써 자궁경부암의 조기발견율을 크게 높혔다. 이는 김승조 교수가 개발한 한국형 자궁경부촬영기를 이용, 각 개원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의 자궁경부를 찍어 강남성모병원 부인암 연구재단에 보내면, 이곳의 전문 판독 교수들이 암 여부를 진단해 주는 시스템으로 국내 산부인과 개원의의 30% 정도가 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또 최근엔 보건복지부 G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포진 검사 자동화 시스템’를 개발해 40~80% 수준이던 자궁경부암 진단율을 90%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남궁 교수가 이끄는 부인암 진료팀은 한해 400~500건의 수술을 실시해 수술건수로 국내 최고며, 지난해에만 27편의 논문을 해외에 발표할 정도로 연구에도 열심이다. 남궁 교수는 “좋은 후배들과 함께 일을 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친은 지난 85년 작고한 부산 남궁산부인과 남궁균 원장이며, 부인 박영주씨도 서초동에서 박영주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있다. 생식기 염증성 질환 대하 또는 냉이라 부르는 증상은 피를 제외한 질 분비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찾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로 자궁경부, 질, 난관 등 생식기의 염증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 점막은 분비물로 적셔져 있지만 정상인 사람은 분비물이 질 밖으로 흘러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팬티에 이상한 분비물이 묻는다면 생식기 어느 부위에선가 염증이 있다는 증거이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질은 ‘락토바실라이’란 세균의 작용에 따라 정상인 사람도 산성을 유지하며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지만 염증이 생기면 악취가 나거나 고름 같은 분비물이 나오며 몹시 가렵게 된다. 질염의 원인은 트리코모나스나 칸디다(진균류)가 대부분. 트리코모나스 질염은 악취가 나며, 노란색의 분비물이 나오며, 성교통과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남성은 감염돼도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일종의 성병이므로 여성이 트리코모나스 질염이 있으면 반드시 배우자와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칸디다성 질염은 하얀 비지와 같은 형태의 분비물이 특징으로 여성의 약 75%가 일생동안 한번 이상 경험하며, 여성의 45%는 1년에 2회 이상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임산부, 당뇨 환자, 항생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여성 등이 잘 걸린다. 성병은 아니며, 대변이나 구강내에 있는 칸디다균이 질 감염을 주로 일으킨다. 항생제로 적절히 치료하면 대부분 쉽게 완치되지만 때로는 재발성 칸디다성 질염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예방을 위해선 외음부를 습하지 않게 유지해야 하며, 너무 몸에 꽉 조이는 속옷이나 바지는 피하는 게 좋다. 또 배변 뒤엔 질 쪽에서 항문 쪽으로 변을 닦아야 하며, 항생제 남용을 피해야 한다. 자궁경부염은 임질에 의한 급성 자궁경부염과 비임균성 만성 자궁경부염으로 나뉜다. 임질성 자궁경부염은 악취가 나며 찐득찐득하고 고름같은 분비물이 많이 나온다.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하며, 매독 검사도 아울러 시행해야 한다. 전염성이 높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성 자궁경부염 역시 두텁고 끈적거리는 대하가 특징이며 하복부 통증이나 성교통을 동반할 수 있다. 냉동치료법, 레이저 및 전기소작법, 원추 절제술 등을 시행하며, 비교적 효과가 좋은 편이다. 질염과 자궁경부염이 외부 생식기 감염이라면 골반염은 내부 생식기 감염이다. 질이나 자궁경부에 침입한 임질 등 성병균이 위쪽으로 올라와 자궁, 난관, 난소, 복막 등에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골반과 하복부의 심한 통증, 근육경직, 고열 등이 급성 골반염의 증상이다. 골반염은 난관을 막아 불임의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급성 골반염은 항생제 치료로 비교적 잘 낫지만, 만성 골반염인 경우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클라미디아균에 감염된 경우엔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20% 정도는 대하, 배뇨통, 빈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성병 중 빈도가 가장 높지만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난관을 막아 불임을 유발하거나 자궁외 임신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의심이 될 때는 즉시 검사를 받고,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10 10:02
  • [명의들의 명강의] 갱년기 장애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2003년 초, 노화 연구 취재를 위해 약 2주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하바드대학인지 위스콘신대학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평생 동물의 노화 과정을 연구했다는 한 초로(初老)의 교수가 “하나님은 피조물(被造物)의 종족 보존이 1차적 관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생식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만 책임을 지시는 것 같다”고 농담삼아 말한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침팬지 등의 노화과정을 관찰한 결과, 생식 능력이 없어지는 순간을 즈음해 세포의 신진대사가 급격히 둔화되며 온 몸의 이곳 저곳이 고장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생식능력이 사라지는 순간과 사망하는 시점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따라서 조물주가 그때까지만 책임을 져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인간의 수명이 급격하게 연장됨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고도 그는 말했던 것 같다. 다소 황당하지만 꽤나 재미있는 ‘포인트’인 것 같아 지금껏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여자는 7의 배수, 남자는 8의 배수로 생식 능력이 시작되고 끝난다고 설명한다. 즉 여자는 2X7=14세에 초경을 시작하고, 7X7=49세에 폐경이 되지만 남자는 2X8=16세에 생식능력을 갖게 돼서 8X8=64세에 생식능력이 끊어진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남자가 여자보다 무려 15년이나 더 생식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200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 남자의 평균 수명은 72.8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0.1세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히려 7.3년 더 오래 산다. 미국서 들은 그 황당한 얘기를 여기에 대입시키면 남자는 64세까지 하나님의 애프터 서비스(AS)를 받고 8.8년만 무보증으로 살면 되지만, 여자는 49세에 보증수리 기간이 만료돼 무려 31.1년이나 골골 그리며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같은 ‘생식기간 AS 가설(假說)’이 남자에게도 적용되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자에게만은 분명한 것 같다. 폐경으로 생식능력이 사라지면 여성에겐 각종 갱년기 증상, 심장병, 뇌졸중, 골다공증, 관절염, 정신질환 등이 그 이전보다 서너배씩 증가한다. 중년의 여성들이 허구한 날 잔병치레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왜 여자만 이토록 힘든 폐경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그것을 조물주에게 물어보고 싶다. 폐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호르몬을 알아야 한다. 여성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두가지가 있다. 에스트로겐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난포자극호르몬(FSH)의 지시를 받아 생성되며, 프로게스테론은 황체호르몬(LH)의 지시를 받아 생성된다. 이 중 10대 중반쯤 부터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제2차 성징(性徵) 발현과 직접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통상 에스트로겐만을 여성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호르몬의 작용으로 여성은 곱상한 외모를 갖게 되고, 피부가 매끄럽고 탱탱하게 되며, 가슴이 볼록하게 튀어 나오며, 골반이 커지게 된다. 성욕(동물은 발정)을 느끼는 이유도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에스트로겐(estrogen)은 그리스어의 ‘성욕(oestros)’과 ‘생기다(gennao)’의 합성어다. 에스트로겐은 또 난소내의 난자를 성숙시켜 임신에 대비하는 역할도 한다. 이에 비해 프로게스테론은 에스트로겐이 성숙시킨 난자를 몸 밖으로 배란시키는 역할을 하며, 난자가 정자를 만나 수정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고 임신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자궁 내막을 두텁게 만드는 작용도 한다. 에스트로겐이 성욕을 느끼게 한다면 프로게스테론은 성욕이나 발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폐경이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이 두가지 호르몬의 분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월경이 6개월 이상 없는 상태를 폐경이라 하는데 대부분 50~55세 무렵에 폐경된다. 이 때 여성의 아랫배를 초음파로 관찰하면 자궁과 두개의 난소가 작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태어날 때 부터 갖고 있던 난포를 거의 다 써버림에 따라 난소는 제 기능을 잃고 조그맣게 쪼그라들고, 할 일이 없어진 자궁도 덩달아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폐경에 앞서 5~10년간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면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균형이 깨어지게 되는데 이 때를 갱년기라 한다.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는 이유는 뇌하수체에서 난포자극호르몬이나 황체호르몬을 내려 보내도 난소가 예전처럼 즉각즉각 반응해서 호르몬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40대 중반쯤 갱년기가 시작된다. 갱년기, 즉 폐경이 되기 5년쯤 전부터 폐경 후 1년 정도는 여성에게 가장 괴로운 시기다. 우선 얼굴과 가슴, 팔 등이 빨개지면서 화끈 달아 오르고 가슴도 두근두근 뛰어 고통을 받게 된다. 체중이 불어나면서 ‘진짜 아줌마’ 체형으로 변하며, 피부가 건조해져 주름살이 지며, 질이 건조해 지고 질 점막이 약화돼 성교시 통증이 생기게 된다. 요로감염도 쉽게 생기고, 유방에 멍울이 만져지며 아프고, 잠자리에서 식은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꾸 불안하고 두려운 느낌이 들어 남편이나 자녀에게 신경질을 많이 부리며, 변덕이 죽 끓듯 해지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자기 감정을 제어하려 해도 도대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우울감이 심화돼 우울증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인생의 사추기(思秋期)에 나타나는 이같은 증상을 ‘갱년기 증후군’이라 한다. 막상 폐경이 되고 나면 이같은 극심한 감정의 변화는 다시 정상을 찾게 되고 안면홍조 같은 신체 증상도 훨씬 완화되지만,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낮아져 골다공증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의 위험도 폐경 전보다 2~3배 높아지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갱년기 증후군과 폐경에 관한 가장 손쉬운 대처법은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시켜 주는 것이다. 갱년기와 폐경 이후 나타나는 모든 증상은 호르몬의 고갈이 직접적인 원인이므로 부족한 호르몬을 외부에서 공급해 주자는 것이다. 이를 호르몬 대체 요법이라 하는데, 보통의 경우엔 인공 에스트로겐과 인공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며, 자궁적출술을 받은 여성에겐 에스트로겐 한가지만 투여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호르몬 대체 요법은 갱년기나 폐경 여성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만병 통치약처럼 여겨졌다. 안면 홍조, 심계항진(가슴 두근거림), 피부 건조, 질 건조 등의 갱년기 증상에 효과가 뛰어나며, 폐경 이후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심장병, 뇌졸중, 대장암, 자궁암 등을 예방한다고 여겨졌다. 한가지 흠이라면 유방암 발병률이 다소 높아진다는 것인데 유방암 발병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그 정도 위험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거의 모든 의사들이 호르몬 대체 요법을 권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02년 7월 발표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이 심장병과 뇌졸중 발병률까지 높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NIH는 1997년부터 약 2만7500여명의 폐경여성을 대상으로 호르몬 대체 요법의 효과를 평가하는 ‘여성건강계획(WHI:Womens Health Initiative)’ 연구를 진행해 왔었는데, 2002년 발표된 WHI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은 여성은 받지 않는 여성에 비해 유방암 26%, 관상동맥질환(심장병) 29%, 뇌졸중 41%, 정맥혈전증 111% 높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반대로 직장-대장암은 37%, 자궁내막암은 17%, 대퇴부 골절은 34% 낮게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예방하는 줄 알았던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병률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세상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2002년 당시 미국에선 갱년기-폐경 여성의 약 20~30%가, 우리나라에선 약 10%가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고 있었다. 한편 산부인과 전문의가 중심인 국제폐경학회는 NIH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공식성명을 통해 “호르몬 대체 요법이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병률을 높힌다는 NIH의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우며, 호르몬 대체 요법은 여전히 실(失)보다 득(得)이 많으므로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호르몬 대체 요법을 과연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마구 헷갈리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호르몬 대체 요법에 대한 학자들간의 공방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호르몬 대체 요법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의사와 자신의 건강상태에 관해 상담한 뒤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시 한번 호르몬 대체 요법의 장단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유방암의 위험은 확실히 높아지며, 심장병이나 뇌졸중 위험도 높아지는 것 같지만 여기엔 이견이 있다. 반대로 각종 갱년기 증상과 골다공증의 예방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고, 대장-직장암과 자궁내막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의사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어떤 병에 더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조심스레 호르몬 대체 요법의 시행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골다공증이나 대장직장암 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있는 유방암, 뇌졸중, 심장병이 훨씬 무서운 병이므로,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 병의 발병률과 자신의 병력(病歷)과 가족력(家族歷)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유방암이나 심혈관 질환 발병률은 서구의 1/4~1/6에 불과하며, 1000명이 5년간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을 경우, 이 때문에 추가로 유방암에 걸리는 환자는 1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안면 홍조 등 갱년기 증상이나 골밀도의 감소는 거의 모든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따라서 호르몬 대체 요법의 효과도 훨씬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간단한 ‘산수’가 아니라 이처럼 복잡한 ‘고등수학’인 것이다. 한편 갱년기나 폐경을 더욱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맞을 필요가 있다. 정신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여성이 폐경을 두려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갱년기 증후군 같은 직접적인 고통 때문이 아니다. 사춘기 이후부터 지속되던 월경이 끊어지고 이제 더 이상 여자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고 한다. 그토록 아프고 귀찮던 월경이 사라졌건만 해방의 기쁨보다는 이제는 아기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여성들은 더 깊이 절망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이같은 심리 내면에는 스스로를 독립된 인격으로 간주하기 보다 남성과 남성 중심의 사회의 종속 변수로 여기는 무의식이 잠재돼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갱년기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음 가짐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폐경을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노화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자세다. 또 지금까지 남편과 자녀만 생각해 왔다면, 이제부턴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쏟고 투자를 하는 ‘터닝 포인트’로 폐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 폐경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고통스런 통과의례가 아니다. 수 십 년간 여성을 옥 죄고 있던 자녀 양육, 남편 뒷바라지,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격체로 탄생했다는, 일종의 ‘독립선언’이 되는 셈이다. 폐경을 당당하게 맞이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당장 운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폐경 이후 가장 문제가 되는 질환이 골다공증인데 걷기, 달리기, 에어로빅, 테니스, 골프 같이 하중을 받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골다공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귀찮고 우울하다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뼈에서 칼슘 등 미네랄이 급격히 빠져나가 골다공증이 심해진다. 또 운동을 하면 피 속의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사라지고 대신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므로 갱년기 우울증 예방에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폐경 이후 심장병-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과 근육운동을 6대4의 비율 정도로 하는 게 좋다. 유산소 운동이 각종 생활습관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짐에 따라 근력운동은 하지 않고 유산소 운동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갱년기에 접어들면 근육이 급속도로 퇴화되므로 반드시 근육운동도 병행해야 한다. 근육은 인체에서 뇌 다음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따라서 근육이 줄어들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한다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영양 섭취도 필요하다. 갱년기에 가장 부족한 영양소는 칼슘이다. 따라서 칼슘과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돕는 비타민D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 칼슘이 많은 음식으로는 우유와 같은 유제품, 멸치 같이 뼈 째 먹는 생선, 시금치나 당근 같은 녹황색 채소 등이 있다. 비타민D는 동물의 간이나 고등어, 꽁치, 삼치 등 등푸른 생선에 많다. 칼슘이나 비타민D가 강화된 영양제를 별도로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칼슘은 하루 1000mg(골다공증 진단을 받은 경우엔 1500mg) 정도 복용하면 적당하다. 짜게 먹으면 콩팥에서 칼슘 배설량이 늘어나므로 가급적 싱겁게 먹는 게 좋다. 한편 암과 노화, 심혈관 질환 등의 예방을 위해 가급적 신선한 과일, 야채, 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육류 섭취는 줄여나가는 게 좋다. 식용유나 버터 사용도 줄이는 게 좋다. 비타민C, 비타민 B, 비타민 E, 비타민 A 등의 영양제도 적절하게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박기현 교수는 박기현 교수는 국내에서 호르몬 대체 요법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다. 갱년기-폐경 여성도 ‘호르몬의 마법’으로 20~30대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입버릇 처럼 말해 왔다. ▲ 박기현 교수지난 2002년, ‘호르몬 대체 요법이 위험하다’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대한 폐경학회 소속 교수들과 함께 팀을 구성해 NIH의 자료를 검토한 뒤, 한국인 실정에 맞는 호르몬 대체 요법 지침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했다. NIH 발표 이후 비록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호르몬 대체 요법은 아주 매력적인 치료법으로 좀 더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호르몬 치료가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NIH의 발표처럼 위험한 약도 아니며, 따라서 의사의 상담을 거쳐 신중하게 이용하면 폐경기 증상과 골다공증 등의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946년생인 박 교수는 1971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서 인턴과 산부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1986년부터 세브란스병원서 근무하고 있으며, 1983~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대학에서 생식 내분비학에 관해 연수했다. 생식 내분비학이란 여성 호르몬의 변화로 생기는 생리불순, 무월경, 폐경, 골다공증 등의 질환을 다루는 분야. 1987년 국내 최초로 ‘젊은 여성의 골다공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생식 내분비 분야에 관한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 박 교수는 또 부인과 질환에 대한 내시경 치료의 도입과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했다. 1989년 국내 최초로 자궁 내시경을 이용한 자궁근종 절제수술에 성공했으며, 1990년엔 역시 국내 최초로 복강경을 이용한 난관 성형술에 성공했다. 1998년엔 자궁 동맥을 막아 자궁근종을 치료하는 자궁동맥색전술과 자궁동맥결찰술에 대한 논문을 국내 학회에 보고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한골다공증학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현재 4년째 대한산부인과학회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대한폐경학회 차기 회장(2004년 10월 취임)에 내정돼 있다. ■ 월경전 증후군(PMS)이란 ‘여성은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린다’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깨끗하고 순결한 이미지의 모델을 등장시킴으로써 마법의 내용까지 미화하는 듯한 광고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험하는 ‘마법’은 대부분 힘들고 짜증나고 때로는 저주스럽다. 공연히 신경이 곤두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가 하면 때로는 남편이나 자녀를 구타하고, 성적으로 문란해 지기도 한다. 멀쩡한 여성이 월경 때만 되면 도벽이 발동해 쇠고랑을 차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월경 전 증후군(PMS)’이란 배란기부터 월경전까지 나타나는 육체적, 정신적 이상증세로 심한 경우 가정 파탄과 자살, 살인 등의 비극을 초래한다. 통계에 의하면 가임여성의 20~45% 정도가 PMS를 호소하며, 5~10%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 PMS의 증세는 매우 다양해서, 현재까지 밝혀진 증상만도 150여가지에 달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자극에 과민하며,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 것이다. 환자의 약 80%가 긴장, 불안, 초조, 우울증 등의 정서장애가 있으며, 약 45%는 식욕과 식성 변화가 나타난다. 또 약 40%는 유방통, 부종, 체중증가를 호소하며, 약 20%는 두통과 우울증 등이 동반한다. 문제는 PMS의 원인이 잘 밝혀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월경 전 여성 호르몬의 감소, 프로락틴 또는 프로스타글란딘 호르몬의 증가, 수분과 전해질 분비 호르몬의 이상 등이 원인이란 주장이 제기됐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한 법인데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치료할 수도 없어 더더욱 답답한 게 PMS다. 따라서 PMS 환자에 대해선 가족들의 이해와 격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남편은 아내의 PMS가 오는 주기와 PMS 유형을 미리 파악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PMS 기간 중엔 논쟁­토론 같은 것을 삼가고, 평소 이상의 관심과 사랑, 지지를 아내에게 표시하는 것이 좋다. “당신은 지금 PMS 중이다”는 식으로 아내를 몰아붙이면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게 좋다. PMS 기간에는 하루 평소보다 150㎉의 열량을 더 많이 소모하므로, 보통보다 조금 많은 식사를 5∼6회에 걸쳐 나눠서 하는 게 좋다. 귀리나 쌀과 같은 곡류, 콩류, 씨앗류, 과일, 야채 등을 비교적 많이 먹는 게 좋으며, 비타민C 1000mg, 비타민B6 100mg, 비타민E 400IU(국제단위:international unit), 칼슘 1000mg, 마그네슘 300mg를 복용해도 도움이 된다. 소금, 설탕, 카페인, 알콜, 흡연, 육류, 유제품 등은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삼가는 게 좋다. 또 수영, 자전거, 조깅, 에어로빅, 요가처럼 전신 긴장을 풀 수 있는 운동을 하루 30분 정도씩 주 3회 이상 꾸준히 하는 것도 PMS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 밝은 빛을 쬐는 게 좋으므로 야외활동을 늘리고, 실내에 있을 땐 커튼을 열어 가급적 실내를 환하게 하는 게 좋다. 한편 PMS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PMS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은 치료가 가능하다. 따라서 증상이 심하다면 병원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종이 심한 경우엔 이뇨제를, 유방의 통증이 심한 경우엔 유선의 팽창을 억제하는 약물을 쓴다. 항우울제나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같은 호르몬을 투여하기도 한다. 과거엔 월경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수술로 난소를 절제하기도 했는데, 최근엔 수술한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약물도 있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9 09:54
  • [명의들의 명강의] 눈 질환

    [명의들의 명강의] 눈 질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효녀 심청이 임당수에 몸을 던져서까지 눈을 띄우려 했던 아버지 심 봉사는 과연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 것 같다. 그래야 뭔가 더 절절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관념 속의 맹인도 대부분 선천성 맹인이지 후천성은 아니다. 그러나 실명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발생하며, 태어날 때부터 맹인은 5%도 안된다. 보통 사람들의 막연한 추측과는 정 반대다. 심청전 몇몇 판본에서도 심 봉사가 안질(眼疾)에 걸려 실명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꽤나 사실적인 셈이다.
    건강서적임호준2004/07/08 10:10
  • [명의들의 명강의] 성기능장애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력에 집착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제 아무리 아닌 척 하는 딸깍발이 선비도 정력에 좋다면 돌아서서 양잿물을 마시는 게 우리네 정서다. 개고기, 녹용, 뱀, 자라에서부터 사슴피, 웅담, 해구신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바람에 국제 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아무리 세계 모든 남정네의 공통 관심사라지만 좀 지나친 감이 없지않다. 그러나 정력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정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음경의 구조와 발기가 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있을까. 의학적으로 어떤 경우에 정력이 떨어지며, 어떻게 해야 정력이 세지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아는 것이 힘이다’고 했는데 알아야 정력도 세진다. 모르면 수백만원을 들여 정력제를 사 먹어도 ‘그 놈’이 미동도 않는 황당한 경우를 겪게 된다. 먼저 음경의 구조와 발기가 되는 원리 등 ‘기본’부터 공부해 보자. 정력은 한마디로 ‘피’다. 남성의 음경에는 스펀지나 수세미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말랑말랑한 해면체가 3개 있다. 성적인 자극을 받아 중추신경이 ‘발기명령’을 내리면 이 해면체가 부풀어 오르면서, 그곳에 평소의 7배나 되는 피가 쏠리게 된다. 이때 음경 정맥은 확장된 해면체에 눌리므로 해면체로 들어온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흔히 정력이라 말하는, 딱딱하게 팽창한 것의 실체가 바로 피인 것이다. 따라서 피가 얼마나 많이 몰렸는가에 따라 발기의 강직도, 즉 딱딱한 정도가 결정된다. 성 행위가 끝나면 해면체를 가득 채웠던 피가 정맥을 통해 빠져 나가는데, 음경 정맥은 매우 가늘어 혈액이 천천히 빠져 나간다. 사정을 하고도 한참동안 딱딱한 발기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정력은 곧 혈액의 순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평소의 7배나 되는 피가 순식간에 해면체로 몰려올 수 있을 만큼 혈관이 충분히 건강하고 탄력성이 있어야 돌처럼 딱딱한 발기상태가 유지된다. ▲ 음경보형물 삽입수술./ 조선일보DB그렇다면 정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해답은 분명해 진다. 성분 미상의 한약재나 해구신, 웅담, 독사가 더 이상 정력이 아니다.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운동, 그 중에서도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이야 말로 최고의 정력제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장이 강하게 펌프질하면서 혈액 순환이 빨라지고 혈관의 탄력성이 증가하게 된다. 또 온 몸에 ‘엔돌핀’이 돌면서 성욕도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달리기를 하면 ‘천연 비아그라’로 불리는 산화질소(NO·나이트릭 옥사이드)의 분비가 촉진된다. 필수 아미노산의 일종인 알기닌과 산소의 결합으로 생기는 산화질소는 해면체 주위의 근육을 이완시켜 해면체로 피를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정력을 위해 현재 인공 산화질소의 개발에 매달려 있는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달리기만 하면 몸 속에서 산화질소가 저절로 생성돼 가만 있어도 ‘비아그라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다만 마라톤처럼 너무 지나친 달리기는 사람에 따라 오히려 성욕과 성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달리기도 제 체력과 능력에 맞게 하는 게 좋다. 그 밖에 수영, 골프, 체조, 등산 등도 정력 강화에 좋은 운동이다. 특히 발기의 강직도가 세지려면 회음부(음경과 항문사이) 근육을 단련시켜야 하는데, 수영이나 체조 등은 발기가 딱딱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만약 음경 혈관이 탄력성을 잃고 딱딱해 진다면 어떻게 될까? 말할 것도 없이 피가 충분히 해면체 안으로 몰려들지 못해 발기의 강직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발기가 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음경 혈관이 말랑말랑하고 신축성있게 유지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음경 혈관의 탄력을 잃게하는 주범(主犯)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등 4가지다. 특히 당뇨환자의 65%가 10년 이내에 발기부전이 된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당뇨는 발기와 직접적 관계가 있다. 전체 발기부전 환자의 40% 정도가 당뇨환자라는 보고도 있다. 당뇨가 있으면 우선 음경의 혈액공급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며, 성 신경과 음경 해면체 조직도 손상돼 발기부전이 초래된다. 피 속의 당 성분이 가는 모세혈관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흡연은 혈관에 직접 상처를 입힌다. 담배 속의 유해물질은 혈관의 안쪽 면, 즉 혈관 내피(內皮) 세포에 상처를 입히게 되며, 높은 혈압도 혈관벽에 손상을 주게 된다. 이같은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혈관이 딱딱해 지고, 이것이 동맥경화로 진행된다. 콜레스테롤은 이같은 동맥경화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녹슨 파이프 내부에 찌꺼기가 끼듯, 상처가 생긴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 덩어리가 달라붙어 혈관이 자꾸 좁아지고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정력이 떨어졌다면 자신의 생활습관을 한번 되짚어보고, 건강을 원점에서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40대 이후 정력이 떨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정력의 감퇴는 자연적인 노화과정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 몸을 이토록 무관심하고 애정없이 가꿔왔다는 ‘부끄러운 고백’이다. 매일 밤 술 마시고 과식하며, 줄담배를 피워대며, 게으름 부리며 운동 안한 결과가 바로 정력의 감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력의 감퇴는 장래에 닥칠 심각한 질환의 신호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음경의 혈관은 다른 혈관에 비해 무척 가늘고 예민해서 ‘작은 충격’에도 더 빨리 망가진다. 정력과 발기력이 떨어졌다면 몸 속의 더 크고 더 중요한 혈관, 예를 들어 뇌혈관이나 심장혈관도 병이 들기 시작했다는 경고다. 음경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발기력 감퇴에 그치지만, 심장혈관이나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그 끝은 심장마비나 뇌졸중이다. 발기력 감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남성의학자들이 발기력을 전신건강의 척도라고 부르는 이유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강한 ‘남성’이 되고 싶다면 술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에 대해선 참으로 너그러운 편이다. 그 때문인지 “적당히 술을 마시면 수치심이 사라지고, 성적 상상력이 일어나므로 오히려 성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정설(定說)처럼 떠돌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일 수 있다. 문제는 ‘적당한 술’의 기준인데, 술이 해롭다는데도 굳이 해롭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이라면, 99% 적당히 마시지 않고 폭음하는 사람이다. 맥주나 와인 한 두 잔이라면 문제 없지만 상습적으로 과음하면 고환의 크기가 줄어들고, 남성호르몬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이 때문에 성기능이 약해질 뿐 아니라 성적 욕구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밖에 술을 많이 마시면 말초신경 염증으로 성 신경이 손상돼 발기력이 감퇴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성욕이 생기지 않아 부부관계를 거의 끊고 산다는 사람이 많은데, 성욕이 생기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상습적인 과음이다. 성욕과 성기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욕이 없어 성 행위를 않으면 성기능이 떨어지고, 성기능이 떨어지면 그것 때문에 성욕이 더 없어진다. 따라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중 성욕이 예전만 하지 않다면 당장 술부터 줄여야 한다. 성욕과 성기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우리 몸은 교감신경계에서 에피네프린 등 여러가지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해 스트레스에 대항한다. 이때 말초 혈관과 근육 등이 수축하므로 온 몸이 뻣뻣해지고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남성의 음경 혈관과 근육도 예외가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일시적이라면 발기력 감퇴도 일시적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음경 혈관과 근육도 영구적으로 탄력성을 잃게 돼 진짜 발기부전이 된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일. 운동이나 취미, 긍정적 생각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도 성 기능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머있는 말이나 호탕한 웃음은 몸을 이완시켜 스트레스 때문에 ‘쪼그라진’ 음경에 다시 피를 돌게 해 당신의 ‘남성’을 일으켜 세운다. 충분한 수면도 스트레스의 해소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편 우리가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감기약이나 위장약 등 모든 종류의 약들이 성 기능을 감퇴시킬 수 있다. 지난 1997년 세계 임포텐츠학회지는 성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된 316가지 약품의 목록을 발표한 바 있다. 감기약, 소염진통제, 고혈압치료제, 위궤양치료제, 혈관확장제, 이뇨제, 스테로이드 제제, 항암제, 향정신성 약품, 신경안정제 등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거의 모든 약품이 포함돼 있었다. 성기능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의 25% 정도가 이같은 약물 남용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따라서 갑자기 성기능이 떨어진 경우엔 복용하고 있는 약부터 점검해 보는 게 좋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 꼭 필요한 경우엔 물론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약에 의존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미리미리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 생활습관 교정으로 만성병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당연히 불필요한 약의 복용도 삼가야 한다. 드물지만 격렬한 성 행위로 음경 해면체가 손상된 경우에도 발기력이 감퇴되거나 발기부전이 생긴다. 격렬하게 성 행위를 하다보면 해면체를 둘러 싸고 있는 흰색 막 주위 미세한 혈관들이 터지고, 이 때 흘러나온 피의 특정 성분이 굳으면서 해면체 막을 딱딱하게 만들어 발기력을 떨어뜨린다. 이를 ‘페니로니씨병’이라 하는데, 초기 증상은 음경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지며, 심하면 음경이 뒤틀리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걱정을 해 봤겠지만 실제로 격렬한 성행위 때문에 음경이 부러질 수도 있다. 음경에는 뼈가 없으므로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해면체를 둘러싸고 있는 막이 파열되는 것인데, 이를 ‘음경 골절’이라 부른다. 막이 파열된다고 음경 밖으로 피가 나오지는 않지만 음경 안쪽에 피가 차 시커멓게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 때는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발기부전이 생겼다면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곧바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지금의 남성의학은 70대 80대 ‘남성’도 일으켜 세울 정도로 발달했다. 일차적으로 운동과 금연·절주 등의 생활습관 교정을 시도해야 겠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등의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엔 파파베린, 펜톨라민 등의 주사제를 성행위 직전 본인이 음경에 직접 주사해야 했는데, 비아그라 등의 등장으로 훨씬 간편하게 고개숙인 남성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안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음경 해면체 속에 기구(보형물)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보형물은 굴곡형, 팽창형, 자가팽창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팽창형의 경우 펌프와 저장고, 실린더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실린더는 음경 해면체 속에, 펌프는 음낭속에, 저장고는 복부에 각각 수술로 삽입한다. 저장고에 담긴 액체(생리식염수)를 펌프로 실린더로 끌어들이면 실린더에 액체가 들어차 발기가 된다. 고환속에 있는 펌프를 통해 발기와 이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기계적 고장을 일으키면 재수술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수술비는 1000만원 이상이 든다. 60대 70대 ‘할아버지’들이 주로 이런 수술을 받고 ‘활발한’ 성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사정장애는 또 다른 차원의 성기능 장애다. 일반적으로 너무 빨리 사정하는 조루증, 너무 늦게 사정하는 지루증, 사정시 통증을 느끼는 등의 사정통 등이 사정장애에 포함되는데, 조루증이 가장 흔한 형태다. 조루증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몇 분 만에 사정하는 게 조루증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긴 힘들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 관계를 할 때 파트너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유지하는 경우가 절반 이하일 때 조루증이라 규정한다. 이를 굳이 수치화한다면 음경이 질에 삽입된 뒤 2~5분만에 사정하거나, 음경을 질 내로 삽입한 뒤 왕복운동 15회 이내에 사정하는 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조루증은 정신적인 문제, 귀두부위의 과민성, 신경계통의 문제, 내분비 장애 등이 원인이다. 또 발기부전 전단계에서도 조루증이 나타날 수 있다. 성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나 불안감 같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조루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는 상담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통상 고도로 훈련받은 의사나 심리치료사가 시행하는데, 부부가 함께 받아야 효과가 크다. 귀두 부분가 너무 예민해 조루가 되는 경우엔 귀두 부분을 살짝 마취하는 국소 마취제를 이용할 수 있다. 흔히 ‘칙칙이’라 부르는 분무제가 국소 마취제며, 한때 유행했던 ‘SS크림’도 국소마취의 원리다. 이 약을 사용하면 사정시간을 10~30분 정도 연장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 음경의 신경 중 몇가닥을 잘라서 귀두 부분이 덜 예민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 밖에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조루가 발생한 경우엔 약물 치료를 한다. 혈기 팔팔한 10대와 20대엔 섹시한 여배우 사진이나 에로틱한 상상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딱딱한 돌처럼 불큰불큰 치솟는다. 그러나 나이 사십이 돼서도 그런 ‘수퍼 파워’를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정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직접적이지 않은 웬만한 성적 자극에는 반응이 무뎌지며, 중요한 순간에 발기가 잘 안돼 성 관계가 ‘미수’에 그치거나, 사정이 잘 안돼 힘만 쓰고 머쓱해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서너번 반복되다보면 “나도 이제 늙었구나”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고개숙인 남성’을 고착화시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다 보면 한두번 ‘전투’에서 질 수 있다. 또 젊었을 때의 힘만 떠올리고 무모하게 ‘공격’을 하는 경우에도 실패할 수 있다. 이때 “나는 안돼”하고 패배를 인정해선 안된다.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번에 이길 수 있도록 준비와 작전을 짜야 한다. 과음이 문제였다면 당장 술을 끊어야 하고, 당뇨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이 문제였다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당장 몸 만들기에 착수해야 한다. 한두번 졌다고 전투의지까지 상실한다면 영원히 패배하게 된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투지’가 여기서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50대 혹은 60대가 되면 성 생활도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성 생활에서 은퇴란 없다. 적당한 운동과 절제된 생활, 자기 관리를 하면 노후에도 얼마든지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의 성 문제를 너무 희극적으로 묘사하거나 터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솔직하고 본질적인 욕구며, 성 기능을 상실한 사람은 다른 병에 걸린 사람 못지 않게 고통받고 있다. 성 기능 상실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남들 앞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가슴을 태운다 해서 성기능 장애 환자를 ‘소리없는 신음자(silent sufferer)’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지 말고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사실 우리 정서는 50대 60대 점잖은 신사의 비뇨기과 방문을 사시(斜視)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뇨나 고혈압이나 성기능 상실은 모두 그 뿌리가 같다. 노화와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생긴 같은 뿌리의 질병들이다. 따라서 당뇨나 고혈압 환자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백내장 환자가 인공수정체 삽입수술을 받는 것처럼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적절한 처방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남성의학은 ‘쾌락의학’이 아니라, 마음과 육체의 은밀한 병을 고쳐내는 의술이다. <최형기 교수는> 최형기(영동세브란스·비뇨기과) 교수에게선 점잖은 대학교수가 입에 담기 민망한 단어만 쏟아진다. 섹스, 음경, 발기, 임포텐스, 조루, 오르가즘…. 1980년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연수 당시부터 입에 밴 단어들이라 본인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지만, 같이 있는 사람으로선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 영동세브란스 비뇨기과 최형기 교수(왼쪽) 등이 음경해면체 X-ray 필름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일보DB그는 말을 하다보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편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뱀이고 자라고 마구 잡아 먹지 말고 정말 정력이 세지고 건강한 성 생활을 하고 싶으면 성 공부부터 하라고 강조한다. 1944년 출생인 최 교수는 1970년 연세의대를 졸업했고, 1980~1981년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성기능 장애를 연수했다.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등은 병 취급도 못받았고,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던 사회 분위기에서의 ‘과감한 도전’이었다. 귀국한 최 교수는 ‘섹스학’에만 매달렸고, 1983년 발기부전 환자의 음경에 기구(보형물)를 넣는 수술을 시작했다. 1주일 빨리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가 음경보형물 삽입수술을 시작함에 따라 ‘국내 최초’를 빼앗겼지만, 특유의 ‘승부욕’으로 밀어부쳐 이 분야 아시아 최다 수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700여건이 넘는다. 1985년 ‘신촌세브란스병원 성기능장애 클리닉’ 개설, 1995년 국내 최초 남성의학연구소 개소, 1998년 조루증 치료제 ‘SS크림’ 개발 등으로 국내 남성과학 발달에 기여해 왔다. 요즘엔 동료 비뇨기과 의사 들과 함께 인터넷에 ‘성공(性功)과 건강’(www.ssclinic.com)이란 사이트를 개설하고, 온라인을 통한 성 정보의 제공과 상담에 주력하고 있다. 20여년간 성의학에만 매달려온 최 교수가 내리는 ‘정력 처방’은 아주 간단하다. 뛰라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 혈관의 탄력성이 증가하면서 ‘천연 비아그라’인 산화질소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수영, 골프, 체조, 등산 등도 최 교수가 권하는 ‘정력 운동’들이다. 그 밖에 금연과 절주, 적당한 체중유지, 유머있는 생활, 신중한 약물복용도 최 교수는 권장하고 있다. 그 자신은 주3회 테니스와 조깅으로 ‘정력 관리’를 하고 있다.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으로 수년전엔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서 우승하기도 했다. 주량은 맥주 한두잔, 때에 따라 두세잔이며, 바둑을 즐긴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바둑은 정력에 좋지 않으므로, 바둑을 즐기는 사람은 특히 달리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권고다. 비아그라 vs 시알리스 vs 레비트라 화이자사의 비아그라가 독주하던 경구용(알약)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이 2003년 시알리스와 레비트라의 출시로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알리스는 일라이릴리사가 개발-판매하고 있으며, 레비트라는 바이엘사가 개발해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와 공동판매하고 있다. 세 치료제는 모두 PDE-5 억제제다. 음경 해면체에 피가 몰려 발기가 되려면, 해면체를 구성하는 근육(음경 평활근)이 느슨해 져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물질이 cGMP다. 그러나 cGMP는 적당한 시점, 예를 들어 성 행위가 끝난 뒤, 분해돼 없어져야 발기된 음경이 원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 때 cGMP를 분해하는 물질이 바로 PDE-5 효소다. 만약 PDE-5 효소가 cGMP를 분해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해면체에서 피가 빠져나가지 못해 계속 발기상태가 유지된다. 세 치료제는 이같은 원리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PDE-5를 억제하는 성분은 실데나필(비아그라), 타다나필(시알리스), 발데나필(레비트라)로 모두 다르다. 세 치료제는 효과와 부작용도 대체로 비슷하다. 각 사가 자사에 유리한 임상실험 결과를 보고하고 있지만 대체로 전체 발기부전 환자의 70~80%에게 효과가 있으며, 두통, 메스꺼움, 안면 화끈거림 등 부작용도 비슷하거나 차이가 있더라도 아주 근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심장병약(니트로 글리세린 등)과 함께 복용할 경우 사망을 포함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러나 약효의 발현시간(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약효 지속시간은 조금씩 다르다. 약효 발현시간은 레비트라 20분~30분(빠르면 15분)으로 1시간 정도인 비아그라와 시알리스보다 빠르다. 약효 지속시간은 레비트라와 비아그라가 4시간 정도로 비슷하지만 시알리스는 24~36시간으로 두 약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길다. 이 때문에 시알리스는 발매 직후 ‘수퍼 비아그라’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릴리측은 약효가 오래가므로 시간에 ?기지 않고 느긋하게 성 관계를 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화이자나 바이엘측은 약효가 오래 간다는 것은 그만큼 체내에 약 성분이 오래 머물러 있다는 증거로, 그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공격하고 있다. 세 치료제의 우열을 가리긴 무척 힘들며, 시장의 반응도 현재로선 무승부다. 시알리스와 레비트라가 발매되고 처음으로 열린 국제성학회에서 세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분석한 연구 결과가 3건 발표됐다. 공교롭게도 3건의 연구 결과는 모두 달랐다. 한편은 비아그라가, 한편은 레비트라가, 한편은 시알리스가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발표했다.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대중은 묻고 있지만 결론은 “글세요”였던 것이다. 비아그라와 레비트라와 시알리스의 시장 쟁탈전이 어떻게 진행될 지 두고볼 일이다. 여성들의 성기능 장애 여성들의 성기능 장애는 남성의 그것만큼 흔하지만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 행위시 여성의 성적 역할이 수동적이란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불감증 등을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병원 치료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최근엔 여성 성기능 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와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 성기능 장애에는 흔히 불감증이라 부르는 성적각성장애와 오르가즘장애가 대표적이지만 병원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성교통이나 질경련 때문이다. 성교통은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같은 정신적 원인, 처녀막이나 음순의 열상(裂傷)과 같은 외상, 질 표면의 염증이나 궤양이나 피부병, 불충분한 애무, 생식기의 구조적 이상, 자궁내막증, 골반염, 폐경으로 인한 질 건조증 등이 원인이다. 성교통 완화를 위해 윤활제나 마취연고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으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숨어있는 병이 성교통의 원인일 수 있으므로 통증이 심한 경우엔 일단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다. 질경련은 남성 성기의 삽입을 막으려는 무의식 때문에 대부분 비롯되는데 성교통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성교통에 대한 고통스런 기억이 질경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밖에 임신에 대한 두려움, 남자에게 조정당한다는 생각, 성 행위가 폭력이라는 생각 등이 질경련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질 근육을 이완시키는 훈련을 받으면 대부분 증상이 호전된다. 한편 흔히 불감증이라 부르는 성적각성장애는 적절한 성적 자극이 주어져도 흥분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다. 부부 싸움, 정신적 스트레스, 성에 대한 죄의식, 자신의 신체에 대한 나쁜 이미지 등 정신적 원인인 경우가 많으며, 갑상선질환, 말초 또는 중추신경계 질환, 자궁질환, 근육질환, 약물복용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전체 여성의 약 10%에게 나타나는 오르가즘장애는 불충분한 애무, 부적절한 성관계, 성에 대한 죄의식 등이 원인이 된다. 성적각성장애나 오르가즘장애가 정신적인 문제서 비롯되며 지속된다면 정신과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7 09:16
  • 과식 직후 잠자리… 먹는 족족 살집으로 쑥쑥

    원숭이의 식습관을 관찰한 미국 오리건주 보건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말 야식과 체중 증가는 무관하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많은 비만 전문가들이 ▲원숭이 47마리의 관찰 결과를 일반화할 수 없으며 ▲낮과 밤 규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생활패턴이 불규칙한 원숭이와 기본적으로 다르며 ▲원숭이의 수면과 활동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잠자기 전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라는 게 대부분 비만학자들의 견해다. 야식을 먹으면 살이 찌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낮에는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섭취한 칼로리 대부분이 소비되지만 잠을 잘 땐 인체의 에너지 소비가 크게 줄어들어 칼로리가 소모되지 못하고 지방으로 축적된다. 차병원 비만관리클리닉 박지현 교수는 “밤에 먹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먹고 나서 잠을 자므로 살이 찌는 것”이라며 “잠을 잘 땐 에너지 소비가 적은 데다 인체를 이완시키는 부교감신경과 수면 중 분비되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잉여 칼로리가 더 쉽게 지방으로 축적된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비만센터 강재헌 교수는 “밤참으로 먹는 음식은 대부분 피자, 치킨, 족발 같은 고열량의 정크 푸드”라며 “공복감 때문에 밤에는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되므로 더더욱 살이 찌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야식을 한 다음 날 얼굴이 붓는 것은 야식을 통해 섭취한 다량의 염분 때문. 인체는 체내 염분 농도를 낮추기 위해 수분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지 않고 몸속에 저장하므로 얼굴 등이 붓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 밖에 야식을 하고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면 역류성 식도염이나 기능성 위장장애 등 소화기 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강재헌 교수는 설명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다이어트임호준2004/07/06 17:24
  • ‘달밤에 수저질’ 못 참는 당신은… 야식 증후군

    ‘달밤에 수저질’ 못 참는 당신은… 야식 증후군

    메디컬 드라마는 얼마나 사실적(寫實的)일까? 지난 7일 아주대병원서 열린 ‘제1회 의료와 멀티미디어 심포지움’에선 국군수도병원 호흡기내과 최창민 대위가 ‘의료인의 입장에선 본 메디컬 드라마의 옥의 티’를 발표했다. 최씨는 ‘해바라기’ ‘인생이여 고마워요’ ‘장밋빛 인생’ 같은 우리나라 메디컬 드라마를 ‘하우스(미국)’ ‘ER(미국)’ ‘하얀거탑(일본)’ 등과 비교해 설명했다.국내외 메디컬 드라마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옥의 티’는 CT·X선 같은 방사선 사진이나 심전도(EKG)와 관련한 실수. 정상인 방사선 사진을 보면서 폐암이라고 얘기하거나(인생이여 고마워요), 사진을 거꾸로 보면서 얘기하거나(하얀거탑), 심전도가 정상인데도 계속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해바라기) 등의 오류다. 특히 심폐소생술은 일반인도 알아야 하는 ‘기본상식’인데 잘못된 자세와 방법으로 흉부압박을 하는 장면이 많아 문제라고 최씨는 지적했다.일반인은 웃어 넘길지 모르지만 의사에겐 용납될 수 없는 잘못들도 많았다. 수술 집도의사는 감염의 위험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소독한 손으로 수술복을 만져선 안 되는데, 옷을 입혀주는 간호사를 도와 의사가 손으로 수술복을 만지는 장면(해바라기), 호흡을 돕기 위해 기관(목)을 절개하고 관을 부착한 환자인데 엉뚱하게 입에다 인공호흡기구를 대고 펌프질을 하는 장면(인생이여 고마워요), 주변에 산소통이 없는데도 산소주입관을 코에 부착한 장면(해바라기) 등이다.
    다이어트이지혜2004/07/06 17:22
  • [명의들의 명강의] 심장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심장은 하루 10만번 이상 수축해서 전신에 혈액을 공급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그야말로 초강력 펌프와 같다. 심장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가닥의 혈관(관상동맥)으로 부터 공급되는 혈액 속 풍부한 산소와 영양분이 이 ‘수퍼 파워’의 원천. 그러나 흡연, 콜레스테롤, 고혈압, 당뇨 등으로 동맥경화증이 생기면 이 혈관이 좁아지고, 자연히 혈액 공급양이 감소해 심장근육이 일종의 빈혈현상을 일으킨다. 이것이 협심증이다. 심근경색이란 관상동맥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막혀 심장근육이 죽는 병이다. 심근경색의 절반 정도는 협심증이 원인이지만, 나머지 절반정도는 협심증과 관계없이 갑자기 발생한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무서운 이유는 돌연사 위험 때문이다. 협심증은 심근경색증의 원인이 되며, 심근경색이 생기면 35% 정도는 응급실에 오기 전에 급사한다. 또 15% 정도는 응급처치로 막힌 혈관을 뚫고 심장에 피 공급을 재개해도 이미 심장근육이 다 파괴돼 사망한다. 나머지 50% 정도는 6시간, 늦어도 12시간 안에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 그러나 치료가 늦게 이뤄지면 생명을 건지더라도 심부전증 등 합병증 가능성이 커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전체 심장병의 10~20% 정도에 불과했다. 목감기 후유증으로 생기는 류머티스 열(熱)이나 세균감염 등으로 인한 심장판막 질환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위생과 의료수준의 향상에 따라 판막질환이 감소한 틈을 타서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전체 심장병의 90% 정도를 차지할 만큼 폭증했다. 흡연, 육식위주 식생활, 운동부족 등과 같은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과거 진시황이 부럽지 않을 만큼 산해진미를 사철 풍부하게 먹고 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의 다이너마이트는 어쩌면 그렇게 편하고 호사스럽게 사는 댓가인지도 모른다. 이 다이너마이터는 나이도 가리지 않는다. 아침 조깅을 하다, 등산을 하다, 사내 체육대회에서 20대 30대의 팔팔한 청춘이 쓰러지고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창졸지간에 맞이하는 죽음처럼 황당하고 저주스러운 게 또 어디 있을까? ▲ 서울중앙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가 협심증 환자 관상동맥에 그물망을 넣는 수술을 하고 있다. 협심증 환자는 혈관을 넓히는 수술을 받으면 돌연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선일보DB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부터 먼저 알아보자. 동맥경화란 말 그대로 동맥에 콜레스테롤 등 이물질이 달라붙어 혈관 벽이 돌처럼 딱딱해 지는 것을 말한다. 혈관의 매끄러운 내벽에 상처가 생기고, 그곳에 콜레스테롤 등이 달라붙으면 혈관벽에 섬유화된 딱딱한 덩어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를 죽상반(竹狀斑)이라 한다. 그 모양이 대나무처럼 주름이 가 있기 때문이다. 죽상반이 생기면 혈관의 지름이 좁아지게 돼 혈액의 흐름에 지장을 주는데, 혈관이 얼마나 좁아졌느냐에 따라 증상의 강도가 달라진다. 20세가 지나면 누구에게나 이같은 동맥경화 현상이 진행되지만, 문제는 그것이 병적으로 빨리 진행되는 경우다. 이같은 동맥경화 현상이 관상동맥에 생기면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뇌혈관에 생기면 뇌졸중이 발생한다. 신장혈관이나 다리 혈관에도 많이 생기는 편이다. 동맥경화는 매우 서서히 진행되는 일종의 노화현상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나이보다 훨씬 빨리 진행돼 ‘새파란’ 나이에 죽음을 맞게 한다. 동맥경화를 가속화 시키는 위험인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흡연,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관상동맥질환 가족력, 연령 등이 동맥경화의 위험인자다. 이 중 흡연, 고지혈증, 고혈압을 특별히 ‘3대 위험인자’로 분류한다. 따라서 이같은 위험인자를 적극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어느 정도 동맥경화와 이로 인한 협심증 심근경색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협심증이 있으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다’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다’ ‘가슴이 벌어지는 것 같다’ ‘가슴에 고추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 등의 증상이 생긴다. ‘이러다 내가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들 정도로 통증이 심한 게 특징이어서 누구나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나 당뇨환자인 경우엔 협심증이 심한데도 흉통이 없을 수 있어 더 위험하다. 협심 흉통은 안정을 취할 땐 괜찮다가 계단을 오르는 등 운동을 할 때 통증이 유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안정형 협심증이라 한다. 안정형 협심증으로 인한 흉통은 운동시 통증이 2~3분 지속되며, 휴식을 취하면 통증이 사라지므로 이같은 증상만으로도 쉽게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운동하지 않고 안정을 취할 때도 통증이 생기는데 이를 불안정형 협심증이라 한다. 또 운동이나 안정 여부와 상관없이 낮에는 괜찮으나 아침에만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변이형 협심증이라 한다. 그러나 흉통의 원인이 심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병이 없이 신경성으로 흉통이 생길 수 있으며, 위염, 위궤양, 담낭염, 식도경련, 늑골염 등으로도 유사한 흉통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흉통이 생기면 심전도 검사, 운동부하 검사, 심장초음파 검사, 핵의학 검사, 심혈관 관상동맥 조영술 등을 통해 먼저 무슨 병인지, 병이 어느정도 심각한지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협심증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한다. 아스피린이 흉통 자체를 줄여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피를 묽게 함으로써 혈전의 생성을 억제하고, 따라서 심근경색이 생길 가능성을 줄여준다. 하루 50~200mg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이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뇌경색의 원인도 혈전이므로 덤으로 뇌경색까지 예방 가능하다. 따라서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병이 없는 사람들도 오십세가 넘으면 심장병과 뇌졸중의 예방을 위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 노화방지와 장수를 위해 값비싼 보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백원도 안되는 아스피린이야 말로 세계 최고의 명약이자 보약이다. 협심증 환자는 그 밖에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베타 차단제와 칼슘 차단제 등의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베타 차단제는 심장 박동수를 감소시키고, 심장 근육의 수축력을 저하시켜서 산소가 조금만 공급돼도 심장 근육이 죽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테놀민, 켈론, 인데랄, 셀렉톨 등의 약물이 대표적인 베타 차단제다. 칼슘 차단제는 관상동맥 확장 작용과 심장근육 수축 억제작용을 하는데, 노바스크, 헤르벤, 아달라트, 베라파밀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협심증 환자에게 가장 잘 알려진 니트로글리세린은 일종의 응급약으로 흉통 발작시 혀 밑에 넣거나 피부에 뿌려 사용한다. 대개의 경우 수십초에서 수분내에 통증이 완화되는 기적과 같은 약이다. 협심증 환자 중에는 ‘양약이든 한약이든 약은 되도록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못 견딜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야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협심증 흉통은 자칫하면 생명을 앗아가므로 통증이 조금만 느껴져도 바로 사용해야 한다. 설사 협심증에 의한 통증이 아니라해도 문제될 게 없으므로 니트로글리세린의 사용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같은 발기부전치료제와 함께 복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틀 정도 니트로글리세린 복용을 중단한 뒤엔 비아그라 등을 복용해도 무방하다. 비아그라 발매 초기 사망자들은 모두 니트로글리세린 때문이었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보통 사람의 귀에도 익숙해진 ‘관상동맥 중재술’과 ‘관상동맥 우회로(바이패스) 수술’은 관상동맥의 막힌 정도가 심해 약물치료만으로는 심근경색을 예방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시행한다. 막힌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우면 먼저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한다. 이는 좁아진 관상동맥 내부를 풍선이나 그물망(스탠트) 등을 이용해 넓혀주는 시술이다. 일반적으로 허벅지 혈관으로 풍선이나 그물망이 달린 가는 철사를 넣고, 그것을 관상동맥까지 밀어 올려 막힌 부위를 넓혀 주는 방법이다. 최근엔 풍선 확장술보다 그물망 시술이 더 많이 쓰인다. 그러나 그물망을 삽입하면 그물망 사이로 조직이 다시 자라나서 관상동맥이 다시 막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단점이다. 최근엔 항암제 등의 약물을 특수 코팅해서 조직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그물망이 개발돼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은 관상동맥 중재술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시행하는 최후의 치료법이다. 보통 허벅지 등에서 혈관을 떼어낸 다음 관상동맥의 막힌 부위를 우회하는 새 혈관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마치 교통정체가 심한 도로를 아예 폐쇄해 버리고, 주변에 신 도로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 심근경색은 좁아져 있는 관상동맥이 혈전에 의해 완전히 막힌 상태. 이 때 나타나는 통증은 기본적으로 협심증과 동일하지만, 안정을 취하거나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30분 이상 심한 흉통이 지속되면 즉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와야 한다. 당뇨병 환자나 노인들의 경우엔 심근경색이 일어났는데도 흉통이 없을 수 있는데, 대부분 호흡곤란을 하며 쓰러진다. 이런 경우에도 심근경색증을 의심하고 즉시 병원으로 데려와야 한다. 심근경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환자의 40% 정도는 수분 이내에 사망하며, 나머지도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심장근육이 죽어서 사망한다. 따라서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신속히 막힌 혈관을 뚫고 피를 통하게 해야 한다. 이때 얼마나 빨리 병원에 데려와 얼마나 빨리 막힌 혈관을 뚫어주느냐에 따르 생(生)과 사(死)과 판가름나며, 살아나더라도 후유증의 정도가 달라진다.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6시간 이내에 막힌 혈관을 뚫어줘야 하므로, 병원에서 검사하고 시술 준비하는 시간까지 감안해서 심근경색 발발 3~4시간안에 병원에 데려오는 게 좋다. 미국의 경우 심근경색 환자의 80% 정도, 유럽의 경우 60~80% 정도가 6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환자가 40%에도 못 미친다. 왜 늦게 왔냐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청심환을 먹이고 기다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한의원에 데려가 침을 맞히느라 늦었다고 한다. 심근경색의 경우, 사실상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응급조치란 전무하다. 한의원은 물론이고 전문 시설과 인력이 없는 작은 병원에서도 해 줄 치료가 별로 없다. 무조건 빨리 근처에서 가장 큰 병원에 데려와야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심근경색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혈전 용해제를 대량으로 투여하거나, 풍선이나 그물망으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하게 된다. 혈전 용해제를 투여하면 약 60~70%의 환자는 막힌 혈관이 뚫려서 회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15~25%의 환자는 다시 혈관이 막힐 수 있고, 또 혈전용해제로 녹일 수 있는 혈전의 양도 제한돼 있으므로, 시설과 전문인력을 갖춘 큰 병원에선 혈전용해제 투여 없이 곧바로 풍선 확장술이나 그물망 시술과 같은 중재술을 시행한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예방을 위해선 우선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 첫째, 담배 속에 들어 있는 약 4000 가지의 화학물질은 혈관의 보호작용을 하는 혈관 내막을 파괴하고, 혈관벽에 상처를 내게 된다. 둘째, 동맥경화증을 억제하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줄이고, 대신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을 증가시킨다. 셋째, 피의 응고기능을 담당하는 혈소판을 활상화시킴으로써 혈전(피떡) 생성을 촉진시킨다. 넷째, 혈관 수축물질(에피네프린)을 분비시켜 혈관 경련을 초래하는데, 이는 협심증 흉퉁과 심근경색의 원인이 된다. 다섯째, 담배를 피우면 혈압이 상승돼 고혈압 환자의 약물치료 효과가 감소된다. 이 때문에 흡연자의 협심증-심근경색증 발병 빈도는 비흡연자의 3배 이상 높다. 특히 고지혈증과 고혈압이 있는 뚱뚱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면 10배 이상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런 사람은 당장 금연해야 한다.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사람은 즉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mg/dl 이상인 사람은 200mg/dl 이하인 사람보다 동맥경화증이 3배 정도 빠르게 일어난다. 특히 콜레스테롤의 구성 요소 중 저밀도 콜레스테롤(LDL)이 130mg/dl 이상이면 관상동맥 질환 발발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임상연구에 따르면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250mg/dl 이상인 45~65세 남성에게 5년간 콜레스테롤 약을 복용케 한 결과 약을 복용하지 않은 같은 조건의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증 발생률이 31%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약 복용을 미루는 사람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증상이 없으니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게 비극이다. 한편 고지혈증 환자는 지방을 총 열량의 20% 이내로 줄여야 하며, 특히 동물성 포화지방산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육류의 기름기, 닭 껍질, 버터, 소시지, 베이컨, 치즈 등엔 포화지방산이 많다. 대신 신선한 채소, 과일, 잡곡, 현미, 콩류 등 섬유소가 풍부한 식사를 하는 게 좋으며, 생선도 많이 먹는 게 좋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생선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직접 떨어뜨리지는 않지만, 심혈관계 합병증을 어느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또 고지혈증 환자는 콜레스테롤이 많은 계란, 메추리알, 생선알, 생선 내장, 오징어, 새우, 장어 등도 삼가하는 게 좋다. 고혈압도 관상동맥질환의 3대 원인 중 하나다. 혈압이 높을 수록 동맥 내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혈관 내피(內皮) 세포의 손상이 많아지고, 침전물 생성이 증가하므로 동맥경화증이 가속화된다. 따라서 혈압이 140/90mmHg 이상인 경우엔 즉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고혈압약은 워낙 종류가 많고, 부작용도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의사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맞는 약을 선택해서, 평생 복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혈압이 높으면 짱아찌, 젓갈류, 자반 고등어, 인스턴트식품, 등을 삼가고 소금이나 간장 된장 사용량도 줄이는 등 식이요법에도 신경써야 한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도 필수적이다. 그 밖에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도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발병에 관여하므로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관리해야 한다. 특히 당 성분은 혈관 내부의 단백질이나 지단백 등과 결합해 혈관의 탄력성을 감소시키므로 적극적으로 치료-관리해야 한다. 술의 경우, 적당히 마시면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켜 동맥경화와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면 알콜이 심장근육을 직접 공격해서 파괴하는 ‘알콜성 심근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과음은 금물이다. <박승정 교수는> 박승정 교수는 마치 조폭의 우두머리 같다. 딱 벌어진 체격에 거무튀튀한 얼굴 부터가 그렇다. 조금만 일을 허투로 하면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매섭게 야단치고, 한번 화를 내면 그가 지휘하는 40명 가까운 심장 중재 시술팀 전체가 얼어 붙는다. 그에겐 ‘노(NO)’가 안통한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불도저처럼 몰아부친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팀원들을 다그치는 그를 병원 내에선 ‘왕박(王朴)’이라 부른다. 뒷켠에선 물론 ‘독재자’라 수근거린다. ▲ 박승정 교수그가 독재하는 이유는 분초를 다투는 심근경색 치료를 맡고 있기 때문. 박 교수는 심근경색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이내에 ‘바늘’이 들어가야 한다며,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 30여명의 팀원을 모두 병원 근처에 이사하라고 지시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필요한 검사를 마치고 시술실로 옮겨지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30분. 이 시간 안에 ‘비상출동’ 하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므로 이사 안할래야 안할 재주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1954년 강원도 원주 출생인 박 교수는 경복고와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8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92~93년엔 미국 베일러 의대 연구원으로 지냈다. 91년 협심증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금속 그물망 시술을 시작했으며, 현재 매년 1500여명을 시술하고 있다. 금속 그물망 시술에 관한 한 박 교수는 세계적 대가다. 1996년부터 매년 ‘엔지오플래서티 서미트(Angioplasty Summit)’란 이름의 국제혈관확장술 심포지움을 열고 있으며, 심포지움 기간 서울아산병원 3층에서 시연(試演)되는 그의 중재술 장면은 위성중계를 통해 전 세계 의사들에게 전달된다. 하버드의대 스테판 오스텔리 교수와 얽힌 일화는 아직도 학계내서 회자되고 있다. 1997년 미국 심장학회에 참석한 박 교수가 세가닥 관상동맥 중 왼쪽 주간부(left main)가 좁아진 환자도 금속 그물망 시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청중석에 있던 오스텔리 교수가 “그것은 흉부외과 의사의 영역. 정신나간 일”이라고 코멘트 했다. 오스텔리 교수는 그러나 지난해 9월, 박 교수를 하버드대로 초청해 주간부 시술에 관한 특강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진단 중심이던 심장내과 분야의 흐름이 20여년전부터 치료를 병행하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내 나이가 그 흐름을 받아들이기 가장 좋았다”며 “‘독재’하에서 묵묵히 일하는 팀원들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박스:그 밖의 심장질환> 선천성 심장병, 심장판막질환, 심장근육질환, 부정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선천성 심장병은 대부분 심장기형 때문에 초래된다. 좌우 심방 사이에 구멍이 난 심방중격결손증, 좌우 심실 사이에 구멍이 난 심실중격결손증, 심장 대동맥과 폐동맥 사이에 구멍이 난 동맥관 개존증 등이 가장 흔하다. 대부분 어린 아이 때 발견돼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지만 때로는 어른이 될 때까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방치하면 동맥 피와 정맥 피가 뒤섞여 피부나 입술이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청색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는 수술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형이 심각한 경우엔 그러나 조기발견을 해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판막질환은 두 개의 심방과 두 개의 심실 사이에서 개폐작용을 하는 판막이 고장나 제대로 열리고 닫히지 않는 것이다.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후천적으로 발생한다. 목감기 후유증인 류머티스열이나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가 판막이 손상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 밖에 심내막염, 매독, 심근경색증 등이 판막질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판막이 제대로 잘 개폐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호흡이 가쁜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앉거나 누워 있어도 숨이 가쁘고 심한 기침, 가래, 흉통이 나타나게 된다. 약물치료, 내과적 시술, 수술 등으로 대부분 완치 가능하다. 심장 근육질환으로는 심장근육이 과도하게 두꺼워 지는 비후성 심근병증이 대표적이다. 1000명 당 1~2명 꼴로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데, 젊은 사람이 운동 중 급사하는 경우는 1차적으로 이 병을 의심할 수 있다. 증상이 없으면 특별한 치료가 필요없지만 호흡곤란이나 흉통 등이 나타나면 약물치료나 수술을 한다. 최근엔 알코올을 이용해서 두꺼워진 심장근육 일부를 제거하는 시술도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편 감기 등 바이러스 감염으로 심장 근육에 염증이 생기면서 근육이 늘어지는 것이 확장성 심근병증이다. 이 때는 심장의 수축력이 약해져 심한 경우 심부전이나 부정맥으로 사망할 수 있다. 증상이 가벼우면 약물치료를 하지만 심한 경우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부정맥이란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거나 지나치게 빠르거나 늦게 뛰는 증상이다. 심장이 단 1초도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뛰는 이유는 심장내 자가 발전소(동방결절)에서 전류를 계속 일정하게 흘려 주기 때문이다. 부정맥은 이같은 전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심장이 빨리 뛰느냐 늦게 뛰느냐 불규칙하게 뛰느냐에 따라 증상이 달라진다. 빈맥이나 서맥이 심한 경우엔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치료를 하지 않거나 약물치료를 하지만, 심한 경우엔 심장을 빨리 뛰게하는 인공심장 박동기나 빈맥을 줄여주는 제세동기를 심장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6 09:07
  • [명의들의 명강의] 혈액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관련 핫이슈명의들의 명강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연재합니다.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피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1분에 한번 정도, 심한 운동시 20초에 한번 정도 온 몸을 순환하는 피 속에는 각종 영양소와 산소가 풍부히 들어 있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포도당으로 분해된 뒤 피 속에 녹아 온 몸으로 전달되며, 인체 각 조직은 이 포도당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획득한다. 이 때 필요한 ‘불 쏘시개’가 바로 산소다. 그 밖에 인체를 구성하는 각종 단백질, 지방질, 무기질, 비타민, 콜레스테롤 등도 피를 통해 온 몸으로 운반된다. 따라서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들은 호흡곤란과 영양실조 때문에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된다. 뇌나 심장 세포는 극히 예민해서 수분간만 피 공급이 중단돼도 사망하게 된다. 그 때문일까. 고대로 부터 피는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고, 각종 종교의식을 통해 숭상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은 낙제점 수준이다. 피가 어떻게 생성돼서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원인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빈혈이 있으면 어지럽다’ ‘백혈병은 골수이식을 해야 한다’는 정도가 일반인의 상식 수준이다. 피의 순환에 관련된 질환, 즉 동맥경화 등 순환기 질환에 대해 일반인들이 의사 못지 않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피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혈액질환보다 순환기 질환이 훨씬 많고 훨씬 더 치명적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혈액질환의 중요성이 대중에게 간과되는 현상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 교양과 상식을 위해서라도 생명, 그 자체인 피와 피에 생기는 병들을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포 성분과 혈장이라 부르는 액체 성분으로 구분된다. 즉 적혈구 등 세포성분이 혈장에 떠 있는 형태가 바로 피다. 피가 붉은 이유는 혈액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적혈구 성분 때문이며, 백혈구와 혈소판은 혈액의 4~5%에 불과하다. 혈액의 나머지 55% 정도는 혈장이며, 혈장의 90%는 물이다. 적혈구는 산소의 운반 기능을 한다. 적혈구 안에 있는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해 온 몸을 돌면서 조직에 산소를 전해준 뒤 다시 심장을 거쳐 폐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산소를 머금은 동맥피는 밝은 선홍색인데 비해 산소를 빼앗긴 정맥피는 검붉은 색을 띈다. 무색의 백혈구 세포는 외부의 침략군으로부터 인체를 지켜내는 방위군이다. 즉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체내로 침투하면 백혈구는 여기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성해서 침입한 세균 등을 무력화시킨다. 혈소판은 혈관의 상처를 치료하는 접착제와 같다. 혈관이 찢어져 피가 새어나오면 그 부위에 달라붙어 혈액응고인자를 분비시킴으로써 지혈작용을 한다. 한편 피의 양은 몸무게에 비례한다. kg당 80ml 정도므로 체중 60kg이라면 혈액양은 약 4.8리터가 된다. 적혈구 백혈구 등 피의 세포 성분은 대부분 골수라는 혈액조직 내에 있는 조혈모세포에서 생성되는데, 골수는 골반뼈에 가장 많고 척추, 갈비뼈 같은 납작뼈에도 있다. 골수이식(조혈모세포이식)을 할 때 골반에 긴 대침 같은 것을 꽂아 골수를 채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조혈모세포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적혈구의 수명은 120일, 백혈구는 30~60일, 혈소판은 8일 정도다. 혈액질환이란 혈액을 구성하는 세포나 기타 구성 물질에 이상이 생긴 경우다. 부상 등으로 출혈이 생기면 다시 그 만큼의 피가 생성되므로 피의 양이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총상이나 심한 부상 등으로 피를 지나치게 많이 흘리면 즉시 사망하므로 그것을 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혈액질환 중에선 혈액세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적혈구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백혈구나 혈소판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백혈구-혈소판에 이상이 생기면 적혈구의 이상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임상적으로는 더 자주 문제가 된다. 적혈구에 나타나는 문제는 대부분 적혈구 숫자가 감소하는 것이다. 빈혈이라 하면 피의 양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피 속에 있는 적혈구 수가 적어지는 게 빈혈이다. 빈혈이 있으면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 말단 부위에 피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특별한 자각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적혈구가 적으면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지지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심장이 더 빨리 뛰어 혈류량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혈 환자는 달리기나 등산을 할 때 숨이 가쁘면서 구역질이 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스스로 “난 원래 달리기나 등산을 잘 못한다”고 여기고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흔히 빈혈의 증상으로 숨가쁨, 현기증, 피로감, 피부창백, 뼈나 관절 주변의 통증 등을 드는데, 이같은 증상이 나타날 때는 빈혈이 상당히 심한 경우이다. 만약 빈혈 정도가 몹시 심하다면 심장에 만성적으로 부하가 걸리므로 만성 심부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빈혈은 빈혈을 일으킨 원인에 따라 구분하는데,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는 대부분의 빈혈은 지속적인 실혈(失血)로 인한 철결핍성 빈혈이다. 월경량이 많은 여성, 위-십이지장 궤양 환자, 치질 환자, 일부 암 환자 등은 몸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이 생겨 피가 빠져 나가며, 이 때문에 헤모글로빈의 원료가 되는 철 성분이 부족해져 빈혈이 초래된다. 여성의 20~30%가 빈혈인 이유도 생리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는 더 이상 실혈이 없도록 원인 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궤양이나 치질로 인한 실혈 때문에 빈혈이 생겼다면 위궤양이나 치질을 치료함으로써 빈혈도 낫게할 수 있다. 그러나 출혈의 원인이 과도한 생리 때문인 경우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해야 하며, 철분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음식을 통해서도 철 성분을 충분히 공급해 줘야 한다. 철이 많은 음식에는 선지, 육류, 생선, 시금치, 콩, 해조류, 우유 등이 있다. 한편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부 등은 출혈이 없어도 철결핍성 빈혈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체중이 급격히 늘면서 혈액량도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혈액량이 증가할 때는 혈액의 원료가 되는 철 성분도 음식 등을 통해 그만큼 많이 공급해 줘야 하는데,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빈혈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부는 철 성분이 많은 음식을 특히 많이 먹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출혈도 없고, 체중증가도 없는 상태서 빈혈이 나타난다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혈모세포이식 등을 통해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는 경우도 흔한데, 이같은 빈혈로는 첫째 겸상적혈구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 등과 같은 유전성 빈혈, 둘째 조혈(造血)기능을 담당하는 골수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재생불량성 빈혈, 셋째 적혈구가 제 수명을 살지 못하고 일찍 파괴되는 용혈성 빈혈 또는 골수이형성증 등이 있다.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찌그러져 빈혈이 유발되는 겸상적혈구 빈혈은 사망률이 높은 편이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의 생산 장애를 일으키는 지중해성 빈혈은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특별한 치료없이 정상 생활이 가능하나, 병이 심한 경우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도 겸상적혈구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같은 유전성 빈혈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류머티즘 처럼 자가면역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심한 바이러스 감염이나 항암-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생길 수도 있다. 역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한다. 용혈성 빈혈은 인체의 비정상적 면역반응에 의한 경우가 가장 흔하며, 항생제나 고혈압치료제 등 약물 부작용으로 생기거나, 말라리아 등 감염질환의 부작용으로 생기거나,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의 후유증으로 생기기도 한다. 원인이 다양하므로 원인을 다스리는 치료가 우선돼야 하며, 병이 진행돼 비장에서 적혈구 파괴현상이 심해진 경우엔 비장제거수술을 받기도 한다. 다음은 백혈구의 이상에 관해 살펴보자. 백혈구와 관련해선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는 것과 감소하는 것 두가지 모두 문제가 되는데, 이 중 백혈구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게 백혈병이다. 백혈병을 혈액암이라 부르는 이유는 백혈구가 암세포로 변하기 때문이다. 백혈병 환자는 암 세포로 변한 비정상 백혈구가 증가함에 따라 정상적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생산이 줄어들고 그 때문에 결국 사망하게 된다. 백혈병은 사실 성인의 10대 암에도 들지 못할 만큼 발병률이 낮지만, 대중들은 그 어떤 암보다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착각한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영화 ‘라스트 콘스트’에서 천사처럼 맑은 여주인공 클라라를 죽게 만든 병이 백혈병이며, 드라마 ‘가을 동화’서 송혜교가 앓았던 병도 다름아닌 백혈병이다. 최근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약값을 두고 환자-정부-제약사간의 갈등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유독 어린이 환자가 많아 이들을 돕기 위한 백혈병재단이 오래 전에 발족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도 백혈병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백혈병의 원인과 관련해선, 방사선 피폭만이 백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을 뿐 그 밖의 발병원인은 아직껏 분명하지 않다. 벤젠 등 유기용제의 사용, 중금속 노출, 일부 약 부작용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 않다. 유전 가능성은 일부 소아 백혈병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 백혈병은 크게 골수성 백혈병과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나누며, 각각 급성과 만성이 있다. 따라서 백혈병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등 4가지 종류가 있다. 골수성 백혈병은 과립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암세포로 바뀌는 것이며, 림프구성 백혈병은 림프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암 세포로 바뀌는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주로 어린이에게 발병하며, 전체 소아암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소아에게 발생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항암제만으로 70% 이상 완치된다. 그러나 성인에게 나타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항암제 완치율이 20%에 불과하므로, 나머지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야 한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주로 60대 이상에 나타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겐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20대와 30대 빈발하지만, 소아든 성인이든 항암제 완치율이 15~20%에 불과하므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사망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40대와 50대에 빈발하며, 최근 화제의 항암제 글리벡의 개발로 치료효과가 크게 좋아졌다. 과거엔 5년 생존률이 60% 안팎이었으나 글리벡의 사용으로 90%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한편 급성 백혈병은 출혈이나 발열 등의 증상이 순식간에 나타난다. 특정 유형의 급성 백혈병은 증상이 나타난지 하루 이틀만에 온 몸에서 피를 쏟기 때문에 손 쓸 시간조차 없이 사망한다. 그러나 만성 백혈병은 발병해도 증상이 없어 1~2년씩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피 검사를 해도 웬만큼 꼼꼼히 조사하지 않으면 발견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로, 체중감소, 식은 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자주 피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급성 백혈병과 만성 백혈병의 발생 비율은 약 8대2 정도다. 백혈병은 치료비가 가장 비싼 암이다. 항앙제 만으로 완치돼도 6000만~7000만원 정도가 들며,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받으면 1억원은 그냥 날아간다. 그런데도 뚜렷한 예방법 조차 없다.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는 황당한 병이 바로 백혈병이다. 백혈병과 반대로 백혈구 숫자가 감소하는 병이 있는데 골수이형성증후군과 재생불량성빈혈 등이 대표적이다. 백혈구 숫자가 감소하면 면역기능이 떨어져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과거엔 재생불량성 빈혈과 골수이형성증후군의 발병 빈도는 10만명에 1명꼴로 비슷했으나 최근엔 골수이형성증후군의 발병빈도가 10만명에 2명꼴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공해, 환경오염, 염색약의 과도한 사용, 장기간의 흡연과 관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번째는 혈소판의 문제다. 혈소판도 수가 증가하거나 감소할 때 문제가 생기는데, 혈소판 수가 감소하는 병 중 대표적인 게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ITP)’이다. 혈소판은 정상적으로 생산되지만 자가면역 작용으로 혈소판이 대부분 비장에서 파괴되는 병으로,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발병 빈도는 백혈병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 있는 사람에게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혈소판 수가 증가하는 병 중 대표적인 것은 ‘특발성 혈소판 증다증(ET)’이다. 혈소판이 증가하면 혈전이 쉽게 생기므로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 순환기 질환을 유발한다.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이 병은 100만명에 1~3명꼴로 발병할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 이상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액 내 3가지 세포에 생기는 병을 살펴봤다. 그러나 세포가 아닌 혈액내 다른 성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게 혈우병이다. 이는 혈장내에 존재하는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 피가 멎지 않는 유전병으로, 해당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하므로 남성에게만 나타난다. 여성이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후대로 유전돼 아들의 1/2이 혈우병에 걸린다. 그러나 전체 혈우병 환자의 1/3 정도는 부모로부터 유전인자를 물려 받지 않았는데도 후천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사람들이다. 후천적인 유전자 변이의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혈우병 환자는 작은 상처에도 쉽게 멍이 들고, 피가 나면 지혈이 되지 않고, 인체 내부의 출혈로 갑작스런 통증이 생기며, 혈뇨를 보는 등의 특징적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환자는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과격한 운동도 삼가해야 한다. 또 병이 심할 경우 지속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외부에서 공급해 줘야 한다. 유전성이므로 가족 중 환자가 있는 경우엔 임신 전에 반드시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 혈우병과 유사한 병으로 크리스마스병과 폰 빌레브란트병이 있다. 크리스마스병은 결핍되는 혈액응고인자의 타입만 혈우병과 조금 다를 뿐 나머지는 혈우병과 거의 동일하므로, 때로는 혈우병과 크리스마스병을 구분하지 않고 혈우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폰 빌레브란트병도 쉽게 멍들고, 지혈이 잘 안되며, 코피가 자주 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증상이 경미하며, 치료를 하면 쉽게 호전된다는 점이 다르다. 우성 유전질환으로 부모 중 한사람에게만 유전인자가 있어도 발병한다. <김동욱 교수는> ▲ 김동욱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교수 가톨릭 의대 조혈모세포 이식 센터는 백혈병 등 혈액암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20개의 무균 병상을 운영하는 이 센터는 규모 면에서 세계 4대 센터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치료 성적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동양에선 유일하게 조혈모세포 이식 2000건(2003년8월)을 돌파했고,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의 40% 정도를 시행한다. 김동욱 교수는 김춘추 교수를 도와 가톨릭의대 조혈모세포 이식센터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린 1등 공신이다. 초대 소장인 김동집 교수가 조혈모세포 이식 센터의 터를 닦았다면 1997년 제2대 소장이 된 김춘추 교수는 이 센터를 세계 4대 센터 중 하나로 키워냈다. 김동욱 교수는 국내-세계 신기록을 잇달아 쏟아냄으로써 김춘추 교수에게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그는 1995년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이식, 1996년 조직적합항원(HLA)이 일치하지 않는 조혈모세포 이식, 1997년 제대혈(탯줄) 조혈모세포 이식에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또 2002년에는 외과 김동구 교수와 팀을 이뤄 백혈병과 간경화증이 함께 있는 환자에게 세계 최초로 간 이식과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하기도 했다. 2003년엔 만성 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된 항암제 글리벡의 급성 백혈병 치료지침을 세계 최초로 마련하기도 했다. 약간 수줍은 듯 말하는 김 교수는 “가톨릭의대 조혈모세포 이식센터란 풍부한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1961년 1월1일 생인 김동욱 교수는 1985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했으며,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인턴과 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개원시 1년간의 ‘외도’기간을 제외하고는 1992년부터 쭉 여의도 성모병원서 근무하고 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미국 프레드 허치슨 암센터에서 연수 했다. 2004년 현재 한국과학재단에서 지정한 ‘한국인 백혈병 세포 및 유전자 은행’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에 본부를 둔 전 세계 타인 골수 기증자 관리 기구인 ‘세계비혈연이식기증자협회(World Marrow Doner Association:WMDA)’와 ‘아시아-태평양 만성골수성백혈병 연구위원회’의 아시아 태표도 맡고 있다. 병원과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는 그는 지난 2003년 4월, 백혈병에 관련된 유전자 이상을 진단해 낼 수 있는 유전자 진단 키트를 개발해 특허출원했다. 이 키트는 과거 20~30%에 불과했던 진단율을 90%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요즘엔 기적의 항암제라는 글리벡에 대해 왜 내성(耐性)이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있으며, 2003년 부터는 보건복지부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백혈병 환자가 고가의 항암제를 복용하기 전 미리 약효를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 칩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모 제약사와 함께 새 백혈병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는데,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ABO혈액과 Rh혈액 혈액형은 1900년 오스트리아인 칼 랜드스타이너가 발견했다. 수술 등으로 출혈이 심할 때 수혈(輸血)을 받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기본이지만, 혈액형이 발견되기 이전의 수혈은 매우 위험한 치료행위였다. 수혈 즉시 원기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열이 나고, 까무러치고, 검은 소변을 보면서 사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혈액형끼리는 응집과 용혈(적혈구의 세포막이 파괴돼 그 안의 헤모글로빈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현상)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랜드스타이너는 양의 적혈구와 개의 혈청을 섞자 순식간에 양의 적혈구가 응집되고 용혈되는 것을 지켜본 뒤 사람의 혈액 속에도 다른 사람의 적혈구를 응집-용혈시키는 성분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과 제자들의 피를 뽑아 서로의 적혈구와 혈청을 섞어보는 연구를 진행해 사람의 혈액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의 혈액을 응집시키는 알파와 베타 두가지 응집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알파 응집소에 응집이 일어나는 혈액을 A형, 베타 응집소에 응집이 일어나는 유형을 B형, 두가지 응집소 모두 응집이 일어나는 유형을 AB형, 두가지 응집소 모두 응집이 일어나지 않는 유형을 O형이라 정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인류는 수혈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됐으며, 그 공로로 랜드스타이너는 193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랜드스타이너는 1940년 붉은털 원숭이(Rhesus)를 이용해서 Rh혈액형도 발견했다. 붉은 털 원숭이의 혈액을 토끼에게 주사한 뒤 토끼의 혈청을 추출해 사람의 혈액과 섞었을 때 응집이 일어나는 혈액을 Rh+, 응집이 일어나지 않는 혈액을 Rh-라고 그는 명명했다. 붉은 털 원숭이로 실험했다해서 이 혈액형을 Rhesus의 첫 두자를 따서 ‘Rh혈액’이라 한다. Rh- 혈액형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0.1~0.3% 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드물어, Rh- 혈액형 환자가 긴급하게 수혈을 받아야 할 경우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백인에겐 Rh- 형이 15~20%로 비교적 흔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Rh-형인 여성이 Rh+형인 남성과 결혼해서 Rh+형인 아기를 임신하면 출산 또는 유산 과정에 아기의 피가 엄마 피 속으로 일부 들어가 엄마의 피 속에 Rh 항원에 대한 항체가 남아있게 되는데, 엄마가 또 다시 Rh+형인 아기를 임신할 경우 이 항체가 아기의 적혈구를 용혈시켜 ‘신생아 용혈성 질환’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Rh-형인 여성은 아기를 한 명 밖에 못 갖는다고 알려졌으나, 요즘엔 임신 중반기와 출산직후 ‘Rh면역 글로블린’이란 주사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편 Rh-형인 남성은 아내가 Rh+형이든, Rh-형이든 아기를 갖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5 08:13
  • [명의들의 명강의] 치매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노인들은 흔히 “벽에 똥칠하기 전에 어서 죽어야지…”라고 말한다.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은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 만큼이나 속이 들여다 보이는 생 거짓말.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댓가가 치매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전문 직업인으로서, 한 가족의 어른으로서 자존감(自尊感)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가족도 못 알아보고, 어린애처럼 생떼를 쓰며, 추악하게 먹을 것에 집착하고, 대소변도 못가리게 되는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용납할 수 있을까. 그것은 완전한 ‘인격의 무덤’이다. 세상사 갖은 환난고초와 맞닥뜨려 이겨낸 백발의 권위와 당당함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자각하지 못하는 자신은 오히려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처럼 사랑했던 자녀들이 자신을 대신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하루 하루를 지옥처럼 살아간다. 화목하고 단란했던 가족에 대한 가장 기본적 신뢰와 애정마저 송두리째 빼앗은채 파국으로 몰고가는 치매는 그래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노망들지 않고 죽는 것을 복으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과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치매가 오기 전에 빨리 죽는 것은 더욱 힘들어 졌고, 치매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무게로 인류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국어사전에선 ‘정상적인 정신능력을 잃어버린 상태’ ‘뇌 신경세포의 손상 등으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으로 상실된 상태’라고 치매를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소하고, 심한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수가 있지만 이것은 자연스런 노화의 과정이지 치매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기억장애가 있으면서 동시에 언어장애, 방향감각 상실, 계산력 저하, 성격 및 감정의 변화 등 4가지 중 1가지 이상이 나타날 때 치매로 진단한다. 한편 우울증이 있을 경우에도 인지기능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지만, 이는 ‘가성(假性)치매’라고 한다. 우울증 증상이 회복되면 치매 증상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수 없이 많지만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뇌 혈관 여러 곳이 막혀 초래되는 혈관성 치매가 전체 치매의 90% 정도를 차지한다. 그 밖의 감염성 질환, 대사성 질환, 내분비 질환, 중독성 질환, 파킨슨씨병, 수두증, 간질 등이 치매의 원인이 된다. 서양의 경우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의 비율이 8대2 정도로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5대5 정도로 비슷하다. 그러나 국내서도 혈관성 치매의 원인이 되는 뇌졸중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예방법의 확대로 차츰 혈관성 치매는 줄고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많아지는 추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의 증상은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다. 알츠하이머 초기엔 기억력만 깜빡깜빡할 뿐 운동능력이나 성격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또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가 일정하다. 그러나 뇌졸중이 원인이 돼 발병하는 혈관성 치매의 경우, 기억력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동작도 둔해지고 성격이 변하는 게 특징이다. 어떤 경우엔 기억장애보다 운동장애 등이 더 명확하다. 특히 기억력 장애와 함께 승용차 뒷좌석에 앉을 때 수월하게 앉지 못하고 동작이 굼뜨거나 걸음을 걸을 때 종종걸음을 걷는다면 혈관성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성격변화는 얼굴 표정이 없어지고, 말수도 적어지고, 이상하게 게을러 지고, 계획성이 없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고, 화를 잘 내게 된다. 그 밖에 물이나 음식 등을 섭취할 때 사래가 들리는 것(삼킴장애), 발음장애 등도 혈관성 치매일 경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초기 단계를 지나 중기 이후 단계로 들어서면 알츠하이머나 혈관성 치매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중기 단계에 접어들면 금방 일어났던 일이나 사람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전화받기가 어려워지며, 외출했다가 집을 찾지 못하거나, 이유없이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의심하는 행동(예를 들어 자기 물건을 남이 훔쳐갔다고 주장함)을 하게 된다. 병이 말기로 진행되면 초조, 흥분, 편집증적 망상 등의 문제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는 식구를 못 알아보거나, 변을 못가리거나,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음식을 제대로 못 삼키거나, 침대에 누운 채 생활하는 수가 많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일반적으로 초기 단계는 발병 후 1~3년째, 중기 단계는 2~10년째, 말기 단계는 8~12년째에 나타난다. 환자들은 짧게는 발병 후 3년, 길게는 20년까지 생존하며, 평균 8~12년 살 수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뇌졸중의 양상에 따라 생존 기간이 크게 차이가 나므로 일반화 할 수 없다. 치매 환자의 사망 원인으로 배회(徘徊)로 인한 교통사고나 추락 등과 같은 사고사가 흔하다. 그러나 이 보다는 폐렴이나 요로감염과 같은 감염성 질환이 더 중요한 사인이다. 치매가 심해져 자리에 눕게되면 면역성이 떨어져 폐렴 등 감염성 질환에 쉽게 걸린다. (음식물 등)삼킴장애로 인한 영양실조, 가래가 차지만 뱉어내지 못해 생기는 호흡곤란도 사망의 원인이 된다.알츠하이머는 1907년 이 병을 처음으로 기술한 독일의 정신의학자 알로이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딴 병명이다. 진단기준이 뚜렷하지 않았고 노인인구도 적어 당시만 해도 알츠하이머는 희귀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암, 심장질환, 뇌졸중 등과 함께 가장 흔한 사망원인이 됐다. 우리나라서도 65세 이상 노인의 5% 이상이 알츠하이머 환자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건강한 뇌 세포가 서서히 죽어 생기는 병이다. 사람의 뇌는 약 140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매일 5만개 정도씩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뇌 세포의 감소속도가 이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뇌를 부검해 본 과학자들은 죽은 신경세포 주변에 베타 아밀로이드란 단백질이 무수하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여기서 내뿜는 독성물질이 뇌 세포를 죽인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렇다면 왜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 신경세포에 들러붙게 될까? 의학자들은 아직 그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단지 노화와 가족력(유전적 소인)이 베타 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촉진한다는 사실만을 확인했다. 외국의 통계들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5~10%가, 85세 이상에선 35%~50%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으며, 따라서 노화는 알츠하이머의 가장 중요한 유발요인이다. 또 인간의 1번, 14번, 19번, 21번 염색체가 알츠하이머 발병에 관여하며, 가족 중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는 경우엔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밖에 머리의 외상, 고지혈증, 지나친 음주와 흡연도 알츠하이머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의학자들은 추정한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연구에 따르면 머리에 외상을 입었지만 기절(의식 소실)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았던 사람은 2배, 외상을 입고 24시간 이상 의식이 소실된 심각한 두뇌 손상을 받은 사람은 4배 정도 알츠하이머 가능성이 높았다. 일본 연구팀에 따르면, APO-E4란 유전자가 있고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배 정도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높았다.알츠하이머가 무서운 이유는 예방과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의 예방을 위해 타고난 유전자를 개조할 수도, 늙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코그넥스, 아리셉트, 엑셀론, 레미닐 등의 약들이 FDA 승인을 받아 알츠하이머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지만 획기적인 효과는 없다. 이 약들은 환자 중 일부에게서지만 일정기간 기억능력을 개선시킬 수 있으며, 최소한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줄인다는 얘기지 악화를 막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말하자면 한달동안 100만큼 나빠질 환자를 한달반 또는 두달에 걸쳐 100만큼 나빠지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병원에 온 환자들에겐 어쩔 수 없이 약을 처방하지만 약을 쓰나 안쓰나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이므로, 의사가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치료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최근엔 비타민 E, 셀레질린 등 항산화물질, 항염증제제, 여성의 경우 여성호르몬 등이 알츠하이머의 진행속도를 늦춘다는 보고가 있지만 역시 파국을 막을 만큼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유전자 치료다. 현재 잘못된 베타 아밀로이드를 양산하는 유전자가 밝혀지고 있으며, 그 유전자를 개조해 베타 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차단하려는 연구가 줄기차게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며, 언제 환자 치료에 사용될 지 현재로선 짐작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방도, 치료도 불가능하다면 알츠하이머의 가공할 공포앞에 속수무책으로 떨고만 있어야 할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말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 켄터키 대학 데이비드 스노우든(David Snowdon) 박사의 ‘수녀(修女) 연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팀은 수십년에 걸쳐 켄터키주에 있는 수녀원 수녀들을 면담했다. 또 뇌 기증을 약속받고 사후엔 그들의 뇌를 부검했다. 어떤 수녀는 치매 없이 사망했고, 어떤 수매는 경증의 치매인 상태로, 또 어떤 수녀는 중증 치매인 상태로 사망했다. 예상대로 생전의 인지기능과 뇌 세포의 파괴 정도는 대부분 비례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깜짝 놀랄만한 사례가 몇건 발견됐다. 생전에 치매 증상이 전혀 없던 수녀가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예상외로 뇌 신경세포가 광범위하게 파괴돼 1~6단계 중 6단계의 알츠하이머 소견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중증 치매 증상을 보이던 수녀의 뇌는 1~2단계 알츠하이머로 진단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연구팀은 뇌 신경세포가 파괴됐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수녀는 생전에 항상 낙관적-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반대의 경우엔 항상 부정적이었고 우울해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것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즉 생물학적 뇌 세포 파괴 정도와 겉으로 드러나는 치매 증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때로는 마음 자세와 생활하는 환경이 치매의 발현(發顯)을 억제하기도 촉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편 지속적인 두뇌 활동도 알츠하이머 발병을 어느 정도 예방할 것으로 의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람의 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발달하고, 게을러지면 금방 위축된다. 실제로 지적활동과 알츠하이머 발병률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여러 조사결과에 따르면 독서, 바둑, 카드놀이, 글쓰기, 산수, 암산, 악기연주, 그림그리기 등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낮다. 평생 주판을 두드리며 가게를 운영한 사람은 치매에 걸렸어도 계산능력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 등의 사례가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뇌 세포는 모두 죽었지만 계산하는 세포만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세계의 명산 이름을 수백-수천개식 암송했다는 고 서정주 시인의 치매 예방법도 본받을 만 하다. 그 밖에 바둑, 장기, 댄스 등 취미활동을 권장하거나,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뜨개질, 청소 등 집안일을 맡기는 것도 치매 예방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용돈 등 소규모의 돈을 직접 관리하게 하는 것도 좋다. 두부손상, 고지혈증, 음주, 흡연, 우울증 등을 예방하는 것도 알츠하이머 예방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병의 조기 진단도 중요하다. 비록 예방할 순 없다고 해도 아주 초기단계에서 발견하고 약물치료를 통해 병의 악화속도를 최대한 늦추면 치매의 재앙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 알츠하이머를 확진할 수 있는 임상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死後) 대뇌 조직을 병리검사해야만 확진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의사들은 자세한 병력(病歷) 청취와 신경심리 검사만으로도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뇌파 검사, 뇌 MRI 검사, 뇨검사, 흉부X선검사, 심전도 검사 등을 하게 된다. 최근엔 유전자 검사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로 알츠하이머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혈관성 치매는 발병 원인과 예방-치료법 등이 뇌졸중과 상당부분 겹치므로 여기선 몇가지 중요한 점만 지적해 보자. 한가지 강조할 점은 혈관성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고, 치료를 통해 병의 악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치매는 예방도,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알츠하이머에 국한된 얘기다. 작은 뇌경색이 무수히 반복돼 일어나는 게 혈관성 치매이므로 뇌졸중을 예방하면 혈관성 치매도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의 비율이 절반 정도씩므로, 절반 정도의 치매는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예방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뇌졸중을 유발하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과음, 비만 등의 위험요인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치매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고혈압 등의 치료에 힘쓰고,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가벼운 뇌경색을 경험한 사람과 가족들은 ‘경계태세’를 풀지 말아야 한다. 아스피린 등 항혈전제를 복용하는 등의 치료에도 충실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뇌졸중 또는 혈관성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승용차 뒷좌석에 앉는 동작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굼뜨는 사람,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사람, 표정이 멍해지고 말수가 없어지는 사람 등은 뇌졸중이나 혈관성 치매일 가능성이 있다. 이 상태에서 병을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팔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 앞이 깜깜해 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땐 호들갑을 떨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증상이 없어지면 까맣게 잊고 지내다 ‘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치매를 키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어머니, 내 아버님의 치매는 청천벽력과 같은 재앙일 수 있다. 단란했던 한 가정이 사분오열되고, 지난날 아름다운 기억조차 진저리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재앙을 부른 ‘원흉’으로 간주하고, 다그치고, 구박하고, 한탄스러워 한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퍼부은 화살은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 치매 환자들은 파괴돼 얼마남지 않은 뇌 세포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기억해 내고, 행동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 따라서 자꾸 다그치기 보단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감싸줘야 한다. 대개의 경우 환자의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때로는 답답하고 화가 나서, 환자에게 무엇인가를 자꾸 기억해 보게 하고, 기억 못하면 못한다고 다그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환자에게 스트레스와 좌절감만 안겨줄 뿐이다. 그 결과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때로는 벽에 똥을 바르는 것과 같은 문제 행동이나 공격적 행동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게 된다. 가족들은 앞서 설명한 수녀연구의 결과를 곰곰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의학적으로 치매는 불치의 병이다. 어떤 방법을 써도 이 재앙을 피해나갈 수 없다. 피해갈 수 없다면 차라리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정답이다. 가족들의 따뜻하고 적극적인 이해가 어쩌면 수녀연구 사례에서와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덕렬교수는 1994년 나덕렬 교수가 개설한 ‘기억장애 클리닉’에선 초진 환자에 한해, 환자 한명을 5~6명의 전문의가 약 2시간에 걸쳐 진찰한다. 국내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한 ‘미국식’ 시스템이다. 미국 진찰료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한 진찰료로 이 클리닉이 굴러가는 이유는 나 교수의 고집 때문이다. 그는 치매의 진단은 값비싼 진단장비보다 환자를 관찰하고 문진하고 평가하는 게 더 효과적이며, 의료진이 환자의 가족사항, 생활환경 등을 완전히 이해할 때 최선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1976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나 교수는 혼자서 책을 보며 뇌의 신비에 침잠(沈潛)했고, 그래서 신경과를 택했다. 1993~1994년 캐나다와 미국 연수 직전까지만 해도 뇌 기능 장애로 초래되는 실어증(失語症)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곳에서 치매로 전공을 바꾸었다.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치매가 그의 호승지벽(好勝之癖)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연수를 위해 미국 임상 면허까지 획득한 그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벽안(碧眼)의 치매 환자를 진료했으며, 그곳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그대로 옮겨와 환자를 돌보고 있다. 1994년 귀국한 나 교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의 한국적 진단-치료기준을 마련하는데 노력해 왔다. ‘한국판 보스톤 이름대기 검사’, ‘서울 신경심리 선별총집’, ‘한국판 웨스턴 실어증 검사’ 등 치매 진단용 각종 언어·인지검사 도구가 그의 노력으로 보급됐다. 또 지난 1998년부터 매년 10여편씩 지금껏 51편의 연구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학술활동에도 탁월한 업적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999년엔 그의 연구논문이 ‘아카이브스 옵 뉴롤로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나 교수는 2003년 2월, 성균관대 의대 첫 졸업생이 뽑은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했다. 그 만큼 제자 교육에 쏟는 그의 열정과 노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유능한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수련 과정을 꼼꼼하게 준비하며, 그 소문을 듣고 다른 대학병원의 수많은 전공-전임의조차 그에게 몰려와 배움을 청하고 있다. 매년 삼성서울병원 기억장애 클리닉에는 타 병원서 파견된 전공-전임의가 15~20명씩 수련을 받는다. 치매가 의심되는 10가지 증세 1. 최근 일어났던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치매의 가장 흔한 초기 증세.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하고, 건망증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2. 익숙하던 일을 못한다=요리기구나 세면도구 등 매일 쓰던 것들의 사용법을 모른다. 3.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한다=평소에 쓰던 간단한 말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4. 시간과 장소의 개념이 없어진다=자신이 살던 곳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가는 방법을 모른다. 5. 판단력이 흐려진다=날씨에 따라 입을 옷을 맞춰 입지 못하거나, 돈의 가치를 헷갈려 한다. 6. 사고력이 떨어진다=수의 개념이 없어지고,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 7. 물건을 엉뚱한 데다 갖다 놓는다=다리미를 냉장고에 넣거나, 열쇠를 싱크대에 넣는다. 8. 기분과 행동에 변화가 온다=아무 이유없이 화를 내다가도 웃는다. 9. 인격의 변화가 온다=의심이 많아지고 가족에게 지나치게 의지한다. 10.자발적으로 뭘 하려는 의지가 없어진다=매우 수동적이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4 12:15
  • [명의들의 명강의] 알레르기 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 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연재합니다. 이 책은 신체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아무리 애를 써도 어렸을 때 ‘알레르기’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기억력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알레르기 질환’이란 말을 분명하게 들은 건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교관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 후반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같은 과 교수 한 분이 “미국 유학가서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겼는데, 꽃가루만 날리면 콧물이 줄줄 흐른다”는 얘길 듣고 “참 희한한 병도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만 해도 의학-건강 분야 지식은 그야말로 ‘빵점’이어서 알레르기란 단어가 생소하게 들렸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알레르기란 단어가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알레르기란 말은 그 사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가 됐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알레르기 환자들이다. 알레르기 천식,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피부질환, 음식물 알레르기, 약물 알레르기, 곤충 알레르기 ...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갑자기 ‘알레르기 천지’가 된 것일까? ▲ 김유영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먼저 알레르기란 말의 정의부터 내려 보자. 알레르기란 인체 면역체계가 외부 물질에 대해 일종의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써 염증, 발작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애완동물의 털이나 비듬, 화학물질 등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알레르겐’이라 한다. 알레르겐에 처음 접촉했을 때는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지만, 자꾸 접촉하다 보면 여기에 대항하는 항체가 형성되며, 이 항체와 알레르겐이 만나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조직에 염증과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기침이나 콧물을 흘릴 때 의사들은 흔히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는데, 체내 항체와 알레르겐이 만났을 때 분비되는 물질이 히스타민이다. 알레르기 반응의 주범은 바로 이 히스타민인데, 항히스타민제는 히스타민의 알레르기 반응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알레르기 질환의 폭증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은 최근 20여년간 7~8배 정도 알레르기 질환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으며, 우리나라도 3배 정도 알레르기 환자가 늘었다. 김유영 교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아의 알레르기 천식 유병률(有病率)은 1980년 5.6%, 1990년 10.1%, 1997년 14.5%다.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도대체 난데없이 알레르기 질환이 서너배 이상씩 폭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첫째, 위생상태의 개선이다. 인체는 체내로 침투하는 세균과 싸우기 위해 면역체계란 정예군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세균 감염이 줄어 들게 되자, 할 일이 없어진 면역체계가 변화를 일으켜, 병원체도 아닌 알레르겐과 엉뚱하게 맞서 싸운다는 설명이다. 둘째, 주거 환경의 변화다. 태평양 파푸아뉴기니섬 고산지대 원주민은 알레르기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나무로 얼기 설기 지은 집에서 살던 그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식 건축재료를 사용해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년쯤 뒤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을 앓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 친화적인 원주민들의 주거공간에 ‘인공’이 침투하면서 알레르기 질환이 시작됐다는 게 서구 의학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알레르기 환자 폭증도 아파트의 보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겨울에도 속 옷만 입고 지낼 정도로 난방을 하게 됐고, 이 때문에 사람만 살기 좋아진 게 아니라 집먼지 진드기 등 알레르겐도 서식하기 좋아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알레르기 유발 물질, 즉 알레르겐의 등장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것 가운데 자연이 거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실만 해도 천장은 석고보드, 벽은 페인트를 칠했다. 책상, 의자, 컴퓨터, 냉장고 등 모든 가구에 프라스틱 소재가 사용됐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도 방부제, 산화방지제, 인공감미료, 식용색소 등 각종 식품 첨가물이 들어 있다. 질병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 많은 약들도 과거에는 없던 것들이다. 수천년, 수만년간 자연에 익숙해 있던 사람의 면역체계는 갑자기 등장한 ‘인공’을 적군으로 알고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넷째, 농약의 대량 살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이 기계화-대량화 되면서 농약을 대량 살포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농작물의 병충해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병충해를 일으키는 곤충이 사라지는 바람에 먹이사슬이 깨어졌고, 이 곤충이 먹고 살던 벌레가 크게 번성하게 돼, 이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 사과, 포도 과수원에 가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농약 사용으로 곤충이 사라지자 곤충의 먹이가 됐던 ‘잎응애’란 작은 벌레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기오염의 악화이다. 공장 굴뚝 연기속의 아황산가스, 자동차 배기가스 속의 이산화질소, 그리고 질소화합물이 햇빛과 만나 생기는 오존 등은 천식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증상도 악화시킨다. 여섯째, 흡연 인구의 증가다. 담배 속의 여러 화학물질은 알레르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흡연자가 천식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보다 5배나 높으며, 특히 임신부가 흡연할 경우 태아가 알레르기 체질이 되기 쉽다. 영유아기의 간접흡연도 알레르기 체질이 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피하는 것이다. 알레르기 질환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므로 맞서 싸우려 들지 말고 ‘줄행랑’ 치는 게 최고라는 것인데, 의사들은 이를 ‘회피요법’이라 한다. 회피 요법의 핵심은 어떤 물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병원에선 ‘알레르기 유발 검사(또는 피부단자검사)’를 한다. 이는 가장 흔하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 수십가지를 주사기나 바늘로 환자의 등이나 팔에 극미량 침투시킨 뒤, 어떤 물질을 침투시킨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지를 관찰하는 방법이다. 검사 결과, 예를 들어 집먼지 진드기와 향수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되면, 환자는 향수 사용을 중지하고, 집먼지 진드기가 서식하는 카펫이나 침구류 등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 환자의 주거 또는 생활 공간에만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라면, 통상적인 병원의 알레르기 유발 검사로는 원인 물질을 찾아낼 수 없다. 이 때는 환자의 집이나 직장 등을 의료진이 방문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수거하고, 이 물질을 시약(試藥)으로 만들어서 재차 알레르기 유발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적’을 아는 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두 번 째 대처방법은 약물요법이다. 약물요법은 예를 들어 콧물, 코막힘, 기침, 호흡곤란 등 알레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對症療法)’과 알레르기 염증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증상의 발작을 예방하는 ‘예방요법’이 있다. 알레르겐을 100% 차단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환자는 약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부분의 알레르기 환자는 회피요법과 약물요법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조절해 가며 큰 불편없이 살 수 있다. 세번째는 면역요법이다. 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아주 조금씩 아주 오랜 기간 피하(皮下)에 조금씩 주사함으로써, 환자가 그 물질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면역요법은 초기 치료와 유지 치료의 두 단계로 나뉜다. 초기 치료란 환자가 특정 알레르겐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할 때까지 1주일에 1~2회 정도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는 것이다. 이 때 주사의 양과 주사 맞는 횟수는 차츰 증가하게 된다. 초기 치료 결과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그 다음은 유지 치료로 넘어가게 된다. 환자는 최소 3년 이상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아서 체질이 다시는 바뀌지 않도록 치료효과를 유지 시켜야 한다. 면역요법은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유일한 완치법이며, 치료 성공률도 꽃가루나 집먼지 진드기가 원인일 경우 70~80%로 아주 높다. 그러나 3년 이상 꾸준히 병원을 다녀야 한다는 점과, 증상이 좋아졌다고 중간에 치료를 그만두면 재발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게 단점이다. 면역체계가 미숙한 5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에겐 이 요법을 시행할 수 없으며, 심장병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도 이 요법을 시행하지 않는다. 한편 체질을 바꾸는 면역요법을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건강보조식품 업자 등이 ‘체질이 산성이면 알레르기가 생기므로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광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정 음식이나 물질이 체질을 알칼리로 만들어 알레르기 질환을 완치한다며 환자들을 꼬드기고 있다. 그러나 산성체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얘기는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인간의 체액 산성도는 pH 7.4 정도로 약 알칼리 상태며, 알레르기 환자든 아니든 산성도는 모두 동일하다. 만약 어떤 사람의 체액 산성도가 pH 7.4에서 벗어난다면 쇼크 등이 일어나 생명이 위험해 진다. 재차 강조하지만 알레르기 질환은 체질 산성도와 무관하며,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의사는 병을 완치하려면 3년 이상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건강보조식품 업자 등은 이 약만 먹으면 금방 병이 낫는다고 말한다. “어렵다”는 의사 보다 “쉽다”는 업자 말에 귀가 더 솔깃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환자의 돈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알레르기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은 기관지 천식이다. 성인이 된 뒤 시작된 천식은 찬 공기, 운동, 담배, 스트레스, 불안감 등이 원인으로 알레르기와 무관한 경우도 있지만, 소아기에 나타나는 천식은 알레르기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어른은 20명 중 1명, 어린이는 7명 중 1명이 천식을 경험한다. 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 어린이 천식 유병률은 14.5%였으며,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기관지 천식이 있으면 환자에겐 가랑가랑 또는 쌕쌕하는 숨소리, 호흡 곤란, 발작적인 기침 등 세가지 특징적 증상이 나타난다. 이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관지 근육이 갑자기 수축돼 좁아지고, 기관지 점막이 부어 오르면서 염증이 생기고, 점액이 많이 분비돼 가는 기관지(세기관지)가 막히기 때문이다. 때로는 3가지 증상 중 두가지 또는 한가지 증상만 나타나는 비 전형적 천식도 있다. 물론 기관지 천식은 잘못 대처하면 사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병이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천식 발작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더군다나 규칙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사람에겐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들은 첫째 천식 발작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 같은 상황을 회피하도록 애를 써야 하며, 둘째 평소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 알레르기성 천식은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바퀴벌레, 애완동물 털이나 분비물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 밖에 담배 연기, 음식 조리 연기, 페인트 칠 냄새, 살충제, 향수, 찬 공기, 저기압, 대기오염 등이 천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천식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수축된 기관지를 강제로 확장시켜 주는 약, 기관지 염증을 가라 앉히는 약, 알레르기 반응을 줄여 주는 약 등이 있다. 천식약은 발작시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항염증제나 항알레르기제로 꾸준히 치료받으면 영구적으로 폐기능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 심한 천식 환자는 천식 발작에 대비해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흡입제를 반드시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천식은 만성적인 질환으로 재발이 매우 잦다. 평소 증상이 잘 조절되다가도 갑자기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회피요법과 약물요법을 적절히 시행하며, 필요하다면 힘들지만 면역치료도 받아야 한다. 천식은 의사와 환자가 파트너가 돼 함께 증상을 조절해 가는 병이다. 증상이 좋아졌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다간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천식 못지않게 흔한 알레르기 질환으로 비염이 있다. 비염은 코와 인후두부 점막에 염증이 생겨 재채기, 콧물, 코막힘, 코 가려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때때로 목, 눈, 귀 근처까지 가려울 수도 있다. 주로 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사람에 따라 유아기나 성인이 된 뒤 발병할 수도 있다. 비염 증상이 꽃가루가 날리는 특정 계절에만 나타나느냐, 일년 내내 나타나느냐에 따라 ‘계절성’과 ‘통년성’으로 구분한다.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은 일반적으로 나무, 꽃, 잔디, 잡초 등의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2월말경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해 5월까지 지속된다. 참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개암나무, 너도밤나무, 포플러나무 등 풍매화들이 주로 문제가 된다. 잔디, 목장의 풀, 곡식의 꽃가루는 여름철에 날리고, 쑥과 같은 잡초의 꽃가루는 8월말부터 10월 초까지 주로 날린다. 꽃가루 알레르기 중에선 쑥 꽃가루가 가장 흔한 원인이다. 진달래나 개나리 처럼 벌레가 꽃씨를 옮기는 충매화의 꽃가루는 크고 무거워서 공기중에 잘 날리지 않으므로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흔히 봄철에 하늘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흰 솜털 같은 것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꽃가루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솜털 같은 것은 꽃가루가 아니라 꽃씨이며, 알레르기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한편 풍매화의 꽃가루는 바람을 타고 수백킬로미터씩 이동하므로 집 주위에 산이나 나무가 없더라도 안심해서는 안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원인이 꽃가루인 경우 꽃가루를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창문을 닫아 꽃가루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외출시엔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그러나 꽃가루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 분무제, 충혈완화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적절히 사용해 증상을 조절하는 수 밖에 없다. 통년성 알레르기 비염은 집먼지 진드기, 애완동물의 털-비듬-분비물, 깃털, 곰팡이, 곤충, 음식 등 천식을 일으키는 물질과 비슷하다. 역시 회피요법, 약물요법, 면역요법 외엔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증상이 완화시키는 약물은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과 동일하다. 음식 등을 먹은 뒤 갑자기 피부가 희고 붉게 부풀어 오르며 몹시 가려운 두드러기는 대표적인 알레르기 피부질환이다. 약물, 식물, 곤충 등이 두드러기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음식이다. 견과류, 그 중에서도 땅콩이 가장 흔하게 두드러기를 일으키며, 몇몇 해산물과 딸기, 계란 등도 두드러기를 일으킨다. 음식물이 알레르기를 일으킨 경우엔 두드러기 같은 피부 증상 뿐 아니라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눈꺼풀, 입술, 성대 주변이 갑자기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혈관부종은 매우 치명적인 알레르기 질환이다. 이것이 기도에 생기면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때로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혈관부종이 생긴 경우엔 응급용 에피네프린을 주사하는 등 신속히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은 견과류, 해산물, 딸기 같은 음식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으며, 항생제 등 약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때로는 곤충에 물려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아토피성 피부염도 넓은 의미에서 알레르기 질환에 포함시킨다. ‘아토피’란 상도(常道)를 벗어난 이상한 질환을 의미한다. 발병 원인이 정확히 밝혀져 있진 않지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해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는 선천적으로 가려움증을 잘 느끼는 피부를 갖고 있으며,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해서 피부가 가렵게 되고, 그 때문에 이차적으로 습진이 생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70% 정도는 가족력(家族歷)이 있으며, 절반 정도는 알레르기 천식이나 비염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알레르기 유발 검사를 해 보면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도 집먼지 진드기 등의 알레르겐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토피성 피부염이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다른 점은 피부염의 발병에 알레르겐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의사들이 땅콩 등 견과류, 생선류, 조개, 달걀, 우유 등을 삼가하라고 권하지만, 특정 음식이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는 한 음식을 가릴 필요는 없다. “거지는 아토피 피부염이 없다”며 목욕을 금하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물론 공중 목욕탕에 다녀와서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목욕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공중 목욕탕의 뜨거운 목욕물이나 때밀이 타월 등이 피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온 정도의 따뜻한 물로 1~2일에 한번씩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피부가 건조해 지면 증상이 심해지므로, 샤워 뒤엔 보습제 등을 발라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달리 아토피성 피부염은 회피요법이나 면역요법을 하지 않는다. 항히스타민제 등 약물을 적절히 사용해 피부염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 특히 아토피성 피부염은 피부를 긁어서 문제가 되는 병이므로, 가려워도 절대 긁지 말아야 한다. 난치병일수록 ‘비방( 方)’이 많은데, 특효가 있다고 선전하는 각종 광고에 귀를 막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병은 나이가 들면서 낫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괴롭더라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증상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 김유영 교수는 서울대병원 알레르기 내과 김유영 교수는 그리 싹싹한 편이 아니다. 보기에 따라 그의 말투와 행동이 약간은 권위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환자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그는 수년전 직업성 천식으로 숨진 환자의 이름과 가족까지 기억하고, 아직도 가슴아파 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한 후배 교수는 “밖으로 잘 표현하진 않지만 환자에 대해선 깊은 연민의 정이 있는 분”이라며 “어머니처럼 자상하진 않지만 아버지처럼 방향과 중심을 잘 잡아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1945년생인 김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영국 사우드햄튼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지냈다. 2년동안 충남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뒤 1980년부터 지금껏 서울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국내 알레르기학의 대명사다. 그의 스승인 강석영 전 서울의대 교수가 알레르기학을 최초로 도입했다면 김 교수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육성·발전시켜 꽃을 피웠다. 1979년 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알레르기 클리닉을 개설했고, 이듬해인 1980년엔 알레르기 내과를 개설했다. 이를 토대로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의 한국적 진단·치료지침 마련에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특히 감귤, 사과, 배 나무에 사는 ‘잎 응애’란 작은 벌레가 천식이나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과 염색체 11번에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인자가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함으로써 국제 학계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999년부터는 ‘세계 기관지 천식 선도기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천식에 대한 국제적 진단·치료지침 제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3년엔 한국천식협회 설립을 주도해, 천식의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모지 상태의 국내 알레르기학 분야서 그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산이 좋아 산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산행(山行)은 단순한 취미 활동, 그 이상이다. 국내의 명산은 말할 것도 없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칼라파타르, 중국 쓰쿠냔산 등 해외의 고봉들을 두루 등정했다. 젊었을 때는 인수봉 등 암벽타기에도 매료돼 한가닥 외줄에 생명을 걸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서울대교구 가톨릭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아나필락시스 쇼크란 특정 물질에 접촉한 뒤 즉시 또는 수분 이내에 기도폐색으로 인한 호흡곤란, 저혈압, 피부 두드러기, 복통 등의 증상이 생기는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이다. 역사적으로 BC 2640년 이집트의 파라오가 말벌에 쏘인 뒤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초엔 디프테리아나 파상풍 치료제에 대한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문제가 됐으며, ‘페니실린 쇼크’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개미나 벌 등 곤충에 물렸거나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직후 가장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때로는 견과류, 딸기, 날계란 등을 먹은 뒤에 나타나며, 운동 도중 생기기도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체력장이 행해지던 시절엔 오래 달리기를 하던 학생이 종종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쇼크에 빠져 문제가 됐다. 이를 ‘운동 유발성 아나필락시스’라 한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즉각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하므로 사실상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쇼크가 발생하자마자 병원 응급실로 옮겨 에피네프린을 주사하는 것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 않다. 기도폐색이 생긴 경우 환자는 응급실로 옮기는 도중 사망하기 일쑤다. 따라서 과거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경험했던 사람이나 알레르기로 인한 혈관부종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물질에 아나필락시스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내 그 물질에 접촉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응급용 에피네프린 주사기를 항상 휴대하고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2 10:23
  • [명의들의 명강의] 전립선 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남자 나이는 화장실에서 들통이 난다. 소변기 앞에서 바지춤을 풀고 끙끙 애를 쓰는 사람은 뒷 모습만으로도 대강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생생한 30대 40대라면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쏟아낸 뒤 금방 지퍼를 올리고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40대 50대 60대는 젊은 사람 서넛이 일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용’을 쓰게 된다. 한참동안 배에 힘을 줘야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놈의 ‘오줌발’이 얼마나 약한지 마치 낙숫물 떨어지듯 찔끔거린다. 그 바람에 바지에 소변이 묻는 일도 다반사다. 겨우 끝마쳤나 싶어 지퍼를 올리려니 뭔가 미진해 다시 끙끙거리게 되고... 나이 먹은 비애는 화장실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전립선 때문이다. 전립선은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밤톨 크기의 조직으로 방광 바로 아래쪽에 있으며 요도를 도넛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전립선의 양쪽에는 사정관이 요도와 연결돼 있다. 정액의 30~40% 정도를 만들어 내는 이 전립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커진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잔뇨감이 생기는 이유는 요도를 감싸고 있는 전립선이 커져 요도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노화 과정으로 30대부터 전립선이 커지지만 증상은 40대 말쯤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이를 전립선 비대증이라 한다. 전립선 비대증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립선 자가진단표’에서 8점 이상이면 해당되며, 20점이 넘으면 중증이므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선 의사가 항문으로 손을 넣어 전립선을 만져 보는 ‘직장 수지(손가락) 검사’를 하거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진단하게 된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40~79세 남자 1356명을 조사하고 2001년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26.5%가 소변을 보기 힘든 ‘하부 요로증상’을 느끼고 있었고, 연령별로는 40대 10.2%, 50대 16.2%, 60대 28.7%, 70대 44.7%였다. 그러나 이는 증상의 유무를 체크한 것이다. 학계에선 전립선 비대증이 40대 40%, 50대 50%, 60대 60%, 70대 70%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전립선 비대증은 예방이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호르몬 체계의 불안정으로 전립선 세포의 수와 크기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만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많이 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동양인보다 육식이 많은 서양인과 서양에 사는 동양인에게 전립선 비대증이 더 많다. 과일과 야채엔 전립선 비대증을 초래하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물질(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짜게 먹거나, 쪼그려 앉는 습관 등은 전립선 비대증 자체를 유발하진 않지만, 소변량이 많아져 결과적으로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간주한다. ▲ 천준 교수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적극적인 치료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가 들어 생긴 증상이니 좀 불편해도 참고 견디겠다는 생각이다. 비뇨기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복용하는 것을 더 귀찮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립선 비대증 증상이 있는 사람 중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20~3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를 받으면 훨씬 편하고 산뜻하게 살 수 있는데도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전립선 비대증의 치료는 크게 약물요법, 수술, 기타 최소절개치료법으로 나뉜다. 증상이 가벼울 때 시행하는 약물요법은 비교적 간편하고 안전하며, 60~75%의 환자에게 증상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립선 크기가 비교적 작을 때는 우선적으로 요도확장제를 사용하며, 그보다 좀 더 크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면 전립선 크기를 줄여주는 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약물요법은 약을 복용할 때만 효과가 유지되며, 전립선이 비대되는 현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게 단점이다. 수술의 경우 과거엔 개복(開腹)해서 전립선을 잘라내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엔 요도로 내시경과 수술 도구를 삽입해 전립선의 일부를 절제하는 ‘경요도 절제술’이 전체 수술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전립선 크기가 일정 크기 이상일 경우엔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수술도 완치를 100% 보장하진 못한다. 수술을 받아도 15~20%는 증상이 없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또 증상이 없어졌다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 “수술 받았는데 왜 증상이 그대로냐”고 병원에 와서 따지는 환자를 가끔씩 보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환자는 수술 전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밖에 온열치료, 레이저치료, 침소작술(TUNA), 알콜주사요법 등의 ‘최소절개치료법’들도 최근 비교적 많이 시행되고 있다. 이 방법은 약물 요법보단 효과가 좋고,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장점이지만 장기적인 치료효과가 불투명하다는 게 문제다. 또 치료비도 비싸다. 따라서 환자는 의사로부터 각 치료법의 효과와 장-단점 등을 충분히 설명 들은 뒤 치료법을 선택하는 게 좋다. 한편 전립선은 주위엔 성 신경이 지나가고 혈관도 많이 분포하므로 성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치료를 받은 뒤 성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치료제는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기 때문에 성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전립선의 일부만 제거하는 수술의 경우, 발기력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성교시 사정액이 방광으로 거꾸로 들어가는 ‘역행사정’이 60~70% 정도 생긴다. 물론 발기가 되므로 성 행위를 할 순 있지만, 정액이 나오지 않아 ‘찜찜한’ 기분이 들게 된다. 그러나 역행사정이 돼도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 따라서 성 생활이 활발한 사람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 전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마치 성병에 걸린 것처럼 소변이 자주 마렵고 요도가 따끔거리고 하복부에 불쾌한 통증이 있는 전립선염은 청장년층에서 노년층까지 두루 나타나는 비뇨기 질환이다. 많은 사람이 이를 성병으로 잘못알고 혼자 끙끙대다 ‘몰래’ 병원을 찾는 일이 많지만, 성 행위가 원인인 세균성 전립선염은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5% 정도는 성 행위와 무관한 비세균성 전립선염이다. 비세균성 전립선염은 일반적으로 택시 기사처럼 오랜 시간 소변을 참으며 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많이 발병하며,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과로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도 비교적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전립선이 압박을 받아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고, 또 요도 내 압력이 높아져 소변이 전립선으로 역류하면서 염증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세균성 전립선염은 일반적으로 성병이라 부르는 요로감염 이후 2차적으로 발생하는 염증이다. 즉 요로감염이 적절히 치료되지 않아, 세균이 전립선까지 거슬러 올라가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급성 세균성 전립선염은 전신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는 매우 위급한 상황으로 5~7일 정도 입원해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성병이 생기면 전립선까지 염증이 퍼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전립선염은 잘 낫지 않고 만성화하는 경우가 비교적 흔하다. 따라서 처음 발병했을 때 철저하게 치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1개월 이상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세균성 전립선염은 물론이고 만성 비세균성 전립선염인 경우도 1개월 정도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다. 전립선은 항생제가 잘 침투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복용하다 중단하면 세균의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전립선과 요도의 압력을 낮추는 약이나 소염제, 진통제를 복용하는 수도 있다. 한편 만성 전립선염이 있는 사람은 더운 물에 좌욕을 하거나, 회음부(성기와 항문사이)를 마사지하면 효과가 있으며, 전립선을 압박하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타기는 삼가는 게 좋다. 하복부의 긴장이나 압력을 증가시키는 그 밖의 요인들, 예를 들어 술, 커피, 맵고 짠 음식, 과도한 스트레스 등도 피하는 게 좋다. 전립선암은 갑상선암과 더불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암이다. 보건복지부가 2004년 발표한 ‘2002년 중앙암 등록사업 결과’에 따르면 전립선암은 95년 기준 7년만에 무려 2.11배 증가했다. 갑상선암이 2.46배 증가해 증가율 1위를 기록했지만 환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남성암 중에선 전립선암이 증가율 1위다. 비록 지금은 전체 남성암의 3.0%에 불과해 위암 폐암 간암 대장암 방광암에 이어 6위에 랭크돼 있지만, 조만간 남성 1위암이 될 것이란 게 의학계의 일치된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전립선암은 발생률 1위며, 사망원인은 폐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 다른 이유로 사망한 사람을 부검했더니 우연히 전립선암이 발견될 확률이 40% 정도나 된다. 또 남성이 살아가면서 임상적으로 전립선암 진단을 받을 확률은 9.5%며, 전립선암 때문에 사망할 확률은 2.9%나 된다. 우리도 미국의 추세를 따라간다고 보면 남성으로선 가장 위협적인 암이 바로 전립선암인 셈이다. 전립선암이 이처럼 급증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첫째는 인구의 고령화다. 다른 모든 암도 그렇지만 전립선암은 특히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40대 후반이나 50대에 발병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60대 중반 이후에 대부분 발병한다. 70대 환자가 대다수라 60대 후반이면 ‘젊은 편’에 속할 정도다. 과거 전립선암이 적었던 이유는 발병하기 이전에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이다. 만약 남성의 평균수명이 100세가 되면 80~90%에게 전립선암이 발병할 지도 모른다. 둘째는 진단기술의 발달이다. 전립선암은 가장 손쉽고 정확하게 진단이 가능한 암이다. 특히 혈액검사(혈중 PSA수치)로 찾아낼 수 있는 암은 전립선암이 거의 유일하다. 또 항문을 통한 초음파 검사(경직장 초음파검사)를 하면 전립선암의 생김새까지 정확하게 진단 가능하다. 최근 건강검진이 보편화되면서 예전 같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 많은 전립선암 환자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식생활의 서구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인들이 많이 먹는 호박, 당근, 시금치 등 녹황색 야채와 콩으로 만든 된장과 두부, 그리고 마늘 등은 전립선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육류를 주로 먹는 서양인들의 식습관은 전립선암을 증가시킨다. 실제로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평균수명이 높지만 전립선암 발병률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동양인의 전립선암 발병률은 서양인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 과도한 남성호르몬,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도 전립선암 증가의 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환에서 생성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선암의 성장과 전이에 관여한다. 또 전체 전립선암 환자의 5~10%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립선염이나 전립선 비대증이 전립선암으로 진행되지는 않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전립선암은 병의 진행이 매우 느리고, 치료가 비교적 쉽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 사망한 사람의 40% 정도에게서 ‘우연히’ 전립선암 세포가 발견됐다는 얘기는 그 만큼의 사람들이 암이 채 자라기도 전에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생전에 9.5% 정도가 전립선암 진단을 받지만 전립선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9% 밖에 안된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전립선암에 걸렸지만 제 수명을 다 살거나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설혹 사인(死因)이 전립선암인 경우라도 생존기간이 다른 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미국의 경우, 전립선암이 남성암 발병률 1위, 사망률 2위인데도 불구하고 ‘자비로운 암(benign cancer)’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립선암도 전립선 비대증과 증상이 유사하다. 소변줄기가 약해지거나 밤에 소변이 마려워 자주 깨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발병 초기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립선 비대증의 경우, 증상이 심하므로 자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립선암은 오히려 증상이 없어 검사를 받지 않는다면 조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과거엔 대부분의 전립선암 환자가 말기 상태에서 발견됐지만 최근엔 전립선암 검사법의 발달로 초기에 발견되는 환자가 많다. 앞서 얘기했듯 전립선암은 혈액검사나 항문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전립선을 만지는 ‘직장수지검사’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혈액검사나 직장수지검사에서 전립선암이 의심되면 특수한 전립선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전립선 조직을 떼어내서 조직검사를 한 뒤 확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50세 이상 남성에겐 1년에 한번 혈액검사와 직장수지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일단 전립선암으로 진단되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적극적’이란 말을 강조한 이유는 “전립선암은 워낙 늦게 진행되기 때문에 치료를 안받아도 된다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전립선암은 대부분 늙어서 발병하는데다, 매우 느리게 진행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아무 치료도 않는 ‘대기-관찰(待期-觀察)’ 요법이 시행될 수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아무 치료도 않고 지켜만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 전립선암이 발병했다거나, 다른 만성질환이 있어 치료를 받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엔 대기-관찰요법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관찰요법을 시행하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해서 자신도 치료를 안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다. 일반적으로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으면 발병 6~7년만에 사망하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다면 전립선암이 아닌 다른 암이나 다른 질병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 요즘엔 다른 암이나 뇌졸중, 심근경색이 생기지 않는다면 90세, 심지어 100세까지도 너끈하게 살 수 있다. 따라서 전립선암이 70대에 발병했든 80대에 발병했든 적극적으로 치료 받을 필요가 있다. 전립선암 치료법에는 전립선 적출수술, 방사선 치료, 냉동치료, 호르몬치료, 항암치료 등이 있다. 적출수술은 글자 그대로 개복해서 전립선과 암이 퍼진 주위 조직을 잘라내는 방법이다.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으로, 냉동치료는 조직을 얼리는 기계로 암이 생긴 전립선을 파괴하는 치료다. 일반적으로 70세를 기준으로 해서 환자의 나이가 그 보다 젊은 경우엔 적출수술을 하고, 그 이상인 경우엔 방사선 치료나 냉동 치료를 하게 된다. 셋 다 치료효과는 ‘엄청나게’ 좋다. 암 세포가 뼈까지 전이된 4기 환자를 제외하고 1~3기 환자가 적출수술을 받으면 85~90%가 10년 이상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 방사선 치료나 냉동 치료는 그보다 약간 떨어져 70~75% 정도가 10년 이상 생존한다. 대부분의 암이 5년 생존율을 따지지만 전립선암은 생존율이 너무 좋아 10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전립선암에는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설혹 암이 재발해도 다시 방사선-냉동치료를 받으면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설혹 뼈 등 전신으로 암이 퍼져 방사선-냉동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80~90%는 일정기간 암 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을 수 있다. 전립선암 세포의 성장과 전이에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관여하는데, 이 호르몬을 차단하기 위해 고환을 잘라 버리거나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이 호르몬 치료다. 호르몬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엔 대부분 12~18개월만에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 암이 발병해서 수술이나 방사선-냉동치료를 받고 다시 재발해서 호르몬 치료와 항암치료를 받고 사망할 때까지는 십수년, 길게는 20년 이상 걸리므로 대체로 자연적인 수명과 큰 차이가 없게 된다. 한편 호르몬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는 상황을 ‘호르몬 불응성’이라 하는데, 이 때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수 밖에 없다. 호르몬 치료를 오래하면 대부분 언젠가는 호르몬 불응성이 되므로 호르몬 치료는 최후의 수단으로 가급적 ‘아껴서’ 신중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 전립선암은 매우 자비로운 암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병에 관해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환자는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걸어가면 된다. 이젠 90세, 100세까지도 사는 세상이 됐으므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치료를 포기해선 안된다. ■천준 교수는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기과 천준 교수의 진료 차트엔 ‘프리(free)’ 또는 ‘무료’라고 붉은 사인펜으로 밑줄 친 글자가 유독 자주 눈에 띈다. 초음파 검사비 등을 받지 말라는 사인이다. 병원내 약제실에 메모를 적어 보내기도 한다. 이 환자에게 무슨무슨 약을 공짜로 내주고, 대신 어느어느 제약사 누구누구에게 약을 ‘공짜’로 달라고 해서 부족분을 채워 넣어라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일이 ‘발각’돼 병원측으로부터 여러차례 주의를 받았고, 제약사 담당자들과 여러차례 언쟁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리’ 사인은 계속 이어진다. “돈이 없다고 암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전립선암 환자는 대부분 60대 후반 이상의 노인인데,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는 특히 가난한 환자가 많다”며 “옷 차림새가 남루하고 몇마디 물어봐서 사정이 여의치 않은 노인에게는 진료비나 약제비를 면제해 준다”고 말했다. “제약사에게 약값을 떠넘기는 건 부정(不正)이 아니냐”고 묻자 “의사가 그 정도 융통성은 부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1959년생인 천준 교수는 1984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병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암치료로 유명한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 엠디엔드슨병원과 버지니아대학 의과학센터에서 전립선암 연수를 했다. 그는 “학창시절, 환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일 깨워 준 고성건 박사(현 성애병원 근무)를 가장 존경하며, 전립선암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길렌 워터(Jay Y. Gillenwater) 박사와 청(Leland WK Chung) 교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아 매우 운이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준 교수는 국내 비뇨기과 전문의 중 학술활동이 가장 활발한 의사 중 한사람이다. 현재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비뇨기과 학회지에 총 10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외국 학술 전문지에 지금껏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비뇨기과학회지의 논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997년 대한의사협회 학술상, 1997-2000-2003년 대한비뇨기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기자들 사이에 천 교수는 ‘마늘 교수’로 통한다. 툭하면 마늘 추출물이 전립선암과 방광암 등 비뇨기계 암의 예방과 치료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동물-임상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 교수는 마늘 추출물을 이용한 전립선암 예방과 치료에 관한 미국 특허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 밖에 치료가 어려운 말기 전립선암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미국에서 첫번째 임상시험을 마쳤으며, 현재 일본에서 두번째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전립선 자가진단표 지난 한달동안 소변을 볼 때 다음과 같은 일곱가지 증상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점수를 매겨 보십시오. 대략 5번 소변을 본다고 가정해서, 다섯번 중 한번도 없을 땐 0점, 다섯번 중 한번일때는 1점, 다섯번 중 한두번일때는 2점, 다섯번 중 두세번일때는 3점, 다섯번 중 서너번일때는 4점, 다섯번 중 너댓번일때는 5점을 더합니다. 단 7번 항목은 없다 0점, 1번 1점, 2번 2점, 3번 3점, 4번 4점, 5번 5점입니다. 총 점수가 1~7점이면 경증이며, 8~19점이면 중등도(中等度) 전립선 비대증으로 치료가 필요하며, 20점 이상이면 중증으로 당장 치료받아야 합니다. 1)평소 소변을 볼 때 다 보았는데도 소변이 남아있는 것 같이 느끼는 경우가 있다. 2)평소 소변을 보고 난 후 2시간 이내에 소변을 보는 경우가 있다. 3)평소 소변을 볼 때 소변줄기가 끊어져서 다시 힘을 줘야 소변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4)평소 소변을 참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5)평소 소변줄기가 약하거나 가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6)평소 소변을 볼 때 소변이 금방 나오지 않아서 아랫배에 힘을 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7)평소 하룻밤에 잠을 자다 소변을 몇번이나 보십니까.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책/문화임호준2004/07/01 13:32
  • “이황의 요가를 아십니까?”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요즘 사람들은 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달랐어요. 건강의 뿌리가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백년 전부터 심신의 건강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습니다.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자 퇴계 이황(1501~1570) 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명종 1년(1546)에 47세로 낙향한 퇴계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양생(養生;호흡을 조절해 원기를 축적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고 심신의 건강을 깊이 연구해 실천했습니다. 제가 번역한 그의 저서 ‘활인심방(活人心方)’에는 ‘마음의 건강과 몸의 건강은 하나’라는 퇴계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황의 건강비법 ‘활인심방’을 번역한 정숙(鄭淑·74)씨. 1965년부터 40년 가까이 ‘양생’을 연구해온 그녀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경락진단치료’ ‘양생도인법’ ‘활인지압전서’ ‘생명경영학’ 등의 저술은 그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퇴계 건강 사상의 요체는 치심(治心)입니다. 마음을 바로해서 정신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요결이란 것이지요. 퇴계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불을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더워지고 얼음을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차진다’고 했습니다. 무서워서 살이 떨리는 것이나,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화가 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 등은 모두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현상이란 이야기죠. 따라서 질병을 다스리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을 다스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퇴계는 ‘태식(胎息)호흡’을 권했습니다. 태식호흡이란 태아가 배꼽으로 숨쉬는 것처럼, 하복부를 이용해 느리고 길게 호흡하는 것을 말합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는 우주의 새로운 기운을 함께 받아들이고 숨을 내쉬면서는 몸 속의 낡은 기운을 함께 토해내는 것이지요.” 15년간 이방자 여사의 주치의 역할 “선비였던 아버님으로부터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는 정씨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4년. 일본에서 귀국한 영왕비 이방자 여사가 성모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수술을 받은 여사께서 소변을 보지 못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동안 여러 군데의 ‘경락(經絡)’을 꾹꾹 눌러드렸어요. 그랬더니 곧바로 소변을 보시는 겁니다. 의사도 깜짝 놀라더라고요. 여사께서 좋아하시면서 ‘현대의학에만 의지하면 안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일을 계기로 해서 1988년 여사가 돌아가실 때까지 15년간, 일종의 주치의 역할을 했습니다. 1978년엔 여사를 모시고 유럽 7개국을 함께 순방하기도 했었습니다.” 정씨가 퇴계의 ‘활인심방’에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퇴계 역시 ‘경락’을 중시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경락이란 기(氣)가 흐른다는 체내의 통로. 활인심방에는 현대의 요가와 유사한 ‘도인법(導引法)’이란 체조<상자기사 참조>가, 그림과 함께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퇴계는 활인심방에서 “(태식호흡과 함께) 꾸준히 이 체조를 하면 경락이 질병이 사라지고 선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퇴계 건강법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퇴계는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한겨울에도 딸기며 수박이 나오지 않습니까?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온실서 자라난 이런 먹거리들은 정기(精氣)가 충만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정기가 부족한 음식을 자꾸 먹게 되면 정기(情氣=정력) 역시 떨어지게 되지요.” 83세 남편과 매일 경락 마사지 정씨의 ‘양생’ 덕분일까? 얼핏 보기에도 정씨 부부의 건강은 무척 좋아보였다. 정씨의 남편은 광복회 회장으로 있는 김우전(83)씨. 팔순을 넘긴 나이답지 않게 요즘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23세였던 1944년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 상하이 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선생의 기요비서(機要秘書)를 맡았었다고 한다. ‘기요비서’란 국내 파견 임무를 맡은 일종의 밀사. 정씨는 “1945년 나라가 해방돼 남편이 국내에 파견되진 못했다”고 했다. 정씨는 현재 자녀들을 분가시키고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다. 그는 부부의 건강 비결에 대해 편안한 마음과 태식호흡 그리고 경락체조를 꼽았다. “요즘에도 아침마다 집앞 공원에서 활인심방 체조를 합니다. 잠자기 전엔 남편과 둘이서 서로의 경락을 마사지해 주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생활자세 그리고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주간조선 기자 bomb@chosun.com )
    피트니스주간조선2004/06/30 14:27
  • [명의들의 명강의] 유방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여성에게 있어 유방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아기에게 사랑을 먹여주고, 사랑하는 남편에겐 사랑을 갈구하는,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말하면 평균점은 받을 성 싶다. 십육세 봉긋한 앞가슴은 수줍은 연정이고, 이십육세 아찔한 젖가슴은 숨막히는 열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성인 필자가 아무리 애를 써서 유방을 수사(修辭)하려 하여도, 여성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애착하는지는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고 했는데, 유방과 유방에 대한 의미도 그렇게 미묘하게 변하는 것 같다. 유치한 말 장난 대신 차라리 ‘여성의 상징’이란 아주 투박한 표현이 그래서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성의 젖가슴 만큼 따듯하고 부드럽고 섹시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러나 탐욕스런 암 세포는 그곳에도 어김없이 파고 든다. 미국에선 여성 8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리며, 국내서도 2001년부터 유방암(16.1%)이 위암(15.3%)을 제치고 여성 1위암이 됐다. 한국유방암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40대 여성 10만명 중 68명, 50대 여성 10만명 중 58명이 유방암에 걸리며, 그 중 60%가 유방을 완전 절제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수백명의 여인네들이 여성성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 수록, 미혼이거나 출산경험이 없을 수록, 초산이 늦을 수록, 아기에게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일 수록, 초경 연령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을 수록, 유방암 가족력이 있을 수록 발병 빈도가 높다. 또 육식위주 식생활 등 생활습관의 서구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경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출산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폐경이 늦은 사람 등에게 유방암이 빈발하는 이유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임신기간엔 월경을 하지 않으므로, 폐경이 빠르면 월경이 그만큼 빨리 끊어지므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의 총량도 적어진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엔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에스트로겐은 유방 유관 세포의 증식-분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에스트로겐이 도리어 여성성의 상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최근엔 폐경 증상 치료를 위해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는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 발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 유방암 자가진단 모습./ 조선일보DB유전적 요인도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지만, 서구의 경우 전체 유방암 환자의 5~10% 정도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BRCA란 유전자가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엔 70~80%가 유방암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직계가족 중 2명 이상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엔 반드시 BRCA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그 밖에 육류 위주의 식생활, 비만, 운동부족, 과도한 음주, 흡연 등도 유방암 발병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육류섭취, 운동부족, 비만 등이 관계가 있는 이유는 지방조직은 에스트로겐 수치를 올라가게 하기 때문이다. 빼빼 마른 사람보다 약간 통통한 여성에게 유방암이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엔 잦은 밤샘 근무, 전자파 노출, 커피 등이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논란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유방암이 증가하는 진짜 이유는 진단기술의 발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방암 발병률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증가했을 뿐인데 진단기술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과거 같으면 놓쳤을 초기 유방암 환자들을 대거 발견하게 됐고, 그 때문에 유방암 발병률이 급증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발견된 환자 중 일부는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거나, 자라더라도 생명에 위협을 주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편이 좋은데, ‘괜히’ 발견되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유방을 절제하는 등의 치료를 받게 되고, 막대한 정신적 충격과 금전적 손실까지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지역 암등록 사업단’이 1993~1997년 암 환자 9만3000여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서울 강남구는 유방암 발병률이 인구 10만명당 26.4명으로 14.0명인 금천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그러나 유방암 사망자 수는 오히려 금천구보다 적었다. 이 정도면 ‘유방암 검진 무용론’이 제기될 만도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 ‘타임’지가 커버 스토리로 다룰 정도로 유방암 환자가 많은 미국에선 심각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사망자는 1990년 584명, 1995년 921명, 2000년 1173명, 2002년 1371명으로, 10년전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다. 유방암 진단-치료기술의 발달로 유방암 사망률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사망자가 급증한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방암이 급증한 이유를 ‘불필요한 유방암 검진의 확산’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 등에 따라 과거보다 실제로 유방암이 급증한 것이다. 따라서 정기적인 유방암 검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째는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며, 둘째는 꽃같이 예쁜 유방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두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사실 유방암은 정기검진 여부와 상관없이 비교적 빨리 발견되기 때문에 완치율(5년 생존율)이 무척 높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대 암 중 유방암의 5년 생존율은 77.5%로, 갑상선암(93.3%)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3기말이나 4기에 발견되면 5년 생존율이 5~20%에 불과하지만, 4기에 발견된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2.1%에 불과하다. 위암이나 간암 등과 달리 유방암은 촉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고, 증상이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 검진을 받지 않아도 운이 좋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유방을 내어줘야 한다. 한국유방암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유방암 환자의 60%가 유방과 겨드랑이 림프절을 완전 절제했고, 3%는 림프절 절제 없이 유방만 잘라냈다. 유방을 보존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는 35%에 불과했다. 1996년 유방보존수술 비율이 18.7%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60~70%에 육박하는 서구에 비해선 아직도 낮은 편이다. 정기검진의 필요성이 아직도 더 강조돼야 할 이유다. 그렇다면 어떤 검진을 언제부터 받아야 할까. 흔히 맘모그램이라 부르는 유방 X선 촬영이나 유방초음파 등의 검사는 일반적으로 40세 이후 1~3년에 한번 꼴로 받는 게 좋다.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40세 이전엔 촉진만 충실히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유방 조직이 ‘팽팽한’ 20대 30대에 유방촬영을 하면 방사선이 치밀한 유방조직을 투과하지 못해 마치 암처럼 하얗게 보여 ‘치밀(緻密)유방’ 진단이 내려지며, 이 경우엔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하므로 공연히 걱정만 하고 돈만 낭비하게 된다. 동양인의 유방은 30세 초반까지는 대부분 치밀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받지 않는 게 좋다. 꼭 받아야 한다면 유방 초음파 검사가 더 적당하다. 한편 촉진은 생리가 끝나고 2~3일쯤 후에 하는 게 좋다. 촉진할 때는 유방에 손을 대고 살짝 누르면서 손 끝의 감각으로 이상한 조직을 찾아내야 한다. 촉진을 하라면 손아귀에 힘을 주고 유방을 주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해선 암을 찾아내지 못한다. 유방에 비누칠을 해서 매끄럽게 만든 뒤 부드럽게 어루만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개의 경우 유방암은 크기가 1cm 이상인 경우 손으로 감지할 수 있는데, 초기암의 크기는 약 2cm 정도이므로 촉진만 제대로 해도 웬만한 유방암은 초기에 잡아 낼 수 있다. 유방암의 증상은 아프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혹이 만져지거나, 유두에서 피같은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두나 주변 피부가 함몰되거나, 유두 주위에 습진이 생기거나, 겨드랑이에서 임파선이 만져지는 것 등이다. 그러나 유방에서 매끄러운 혹이 만져지거나, 맑은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방 통증이 있는 경우엔 유방암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유방에서 멍울이 만져지는 것은 대부분 유선의 말단부 조직이 호르몬 변화에 따라 팽창해 단단해지는 것으로 생리기간 중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만약 유방에서 단단하고 굴러다니는 타원형의 덩어리가 만져지면 이것은 양성 종양인 섬유선종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는 주기적으로 관찰하거나 수술로 제거하면 된다. 또 양쪽 유두에서 노랗거나 맑은 분비물이 나오는 것은 대부분 유선확장증이란 병이다. 설혹 유두에서 피가 나오더라도 유방암일 확률보다는 관내유두종이란 양성 종양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유방 통증을 암의 증상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증이 있는 유방암은 전체의 5% 미만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너무 겁을 내지 말고 의사를 찾아 비정상적인 멍울이나 분비물,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 병원에선 유방촬영, 초음파 검사, 유방조직 검사 등을 통해 유방암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유방암의 치료법에는 외과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 치료, 호르몬 치료 등이 있다. 또 수술에는 유방 전체와 림프절을 함께 잘라내는 ‘완전 절제 수술’과 암이 있는 부위만을 잘라내는 ‘유방 보존 수술’ 두 가지가 있다. 0~2기 환자이면서 유방 전체를 잘라낸 경우엔 추가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보존수술을 받은 경우엔 보조적으로 평균 30회(28~32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는 암이 생긴 부위만을 ‘타깃’으로 하므로 ‘국소치료’라 하는데, 0~2기 암인 경우는 이같은 국소치료만으로 대부분 치료가 끝난다. 그러나 3기 이상이거나 재발한 경우엔 국소치료 뿐 아니라 항암제 치료나 호르몬 치료 같은 ‘전신치료’도 함께 받아야 한다. 항암제 치료는 수술 후 남은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와, 수술 전 암 크기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호르몬 치료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암세포를 증식시키지 못하게 하는 치료로, ‘타목시펜’ 등과 같은 항호르몬제를 복용한다.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환자는 우선 유방 전체를 잘라낼 것인지, 일부만 잘라낼 것인지를 의사와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선 물론 유방 전체를 ‘깨끗하게’ 잘라내는 게 좋다. 재발의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병기(病期)를 불문하고 유방을 완전히 잘라냈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은 의사 마음대로 유방을 잘라 냈다간 큰 일 난다. 유방보존수술의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유방보존수술의 완치율이 완전 절제수술 못지 않게 향상된데다, 유방을 잃는데 따른 환자의 정신적 충격도 그 만큼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방암 환자의 70% 이상이 2기 이전에 발견되며, 그들 중 상당수는 유방보존수술만으로도 완치 가능성이 높으므로 섣불리 완전절제수술을 결정해선 안된다. 물론 3기 이상인 경우 어쩔 수 없이 완전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며, 초기 암이라도 암의 크기나 암이 생긴 위치, 유방의 사이즈 등에 따라 유방보존수술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유방보존수술을 결정했다면 불안해 하지 말고 따르는 게 좋다.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탓인지, 우리나라엔 의사가 유방을 남겨 두자는 데도 환자 또는 환자 남편이 도리어 유방을 완전히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첫번째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의사가 충분한 의학적 근거를 갖고 유방보존수술을 권고하는데도 “그까짓 가슴 하나 없어져도 괜찮으니 확실하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는 치료 기간과 비용 때문이다. 유방보존수술을 받고 나면 약 6주간에 걸쳐 30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환자는 매주 월~금요일 병원으로 출퇴근 해야 한다. 당연히 치료 비용도 근치적 절제술보다 몇배나 많이 든다. 넉넉치 못한 환자들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말에 “그렇다면 잘라달라”고 말하게 된다. 꼭 그렇진 않지만 “완전히 잘라달라”는 요구는 환자 당사자보다 남편들이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편들은 대부분 망설이는 아내에게 “가슴 없어도 내가 데리고 살테니 걱정말라”며 토닥거린다. 병들어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을 자신의 잘못인 것 처럼 미안하게 생각하는 아내는 유방을 보존하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고 대부분 남편의 주장에 수동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우리나라 유방보존수술 비율이 서구보다 크게 낮은 이유가 이처럼 낮은 여성의 지위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방을 잃은 여성들은 수술 후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수술 당시에야 “살고 보자”는 생각에서 얼떨결에 완전절제수술을 택하지만, 막상 수술에서 회복되면 뭉툭 잘려나간 자신의 가슴이 그렇게 흉해 보일 수 없다. 가족들 앞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깊이 좌절하게 되며 점점 소극적이고, 대인기피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 결과 부부관계를 중단하거나, 대중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되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환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때로는 남편이나 자녀 등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한다. 특히 남편이 주도적으로 완전절제수술을 주장한 경우엔 남편에 대한 원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아내의 충격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 뿐이다. 완전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고, 손을 올리거나 하면 브래지어가 훌러덩 걷혀 올라가기도 한다. 또 양쪽 가슴의 무게가 맞지 않아 목 부위의 통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 환자들은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는 데 더 깊이 절망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도’ 여자이고 싶은 이유는 남편의 존재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은 수술 후 환자의 히스테리나 우울증 등을 보다 세심하고 자상하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껴안아줘야 한다. 수술 후의 여러가지 이상 행동은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라는 사실을 남편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양정현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일반외과 양정현 교수의 약간 네모진 얼굴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에 쌓여 있다. 어떻게 보면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도 찾아볼 수 있다. ▲ 양정현 교수아무리 애를 써도 메스를 든 ‘비정한 외과의사’ 모습을 그에게서 찾기 어렵다. 말투와 목소리도 내과의사처럼 조용하다. 수술실서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레지던트에게 호통을 칠지 잘 상상이 안간다. 그의 수필집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에는 실제로 수술실서 레지던트에게 불호령을 내린 이야기가 실려있다. 수술하기 좋게 겸자(집게)로 수술 부위를 벌리고 있어야 할 레지던트가 수술중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 글의 후반부는 일반인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겸자를 잡고 있는 조수가 졸아도 수술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오죽 피곤했으면 수술 중 졸았겠느냐는 ‘레지던트를 위한 변명’으로 마무리 돼 있다. 그 때 그 수술방, 레지던트에게 불호령을 내린 양 교수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2004년 현재, 삼성서울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양 교수는 1973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인턴·레지던트를 수련하고 일반외과 전문의가 됐다. 국립의료원에 12년간 재직한 뒤 삼성서울병원 창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으며, 미국의 가장 오래된 암 연구소인 로스웰팍연구소(Roswell Park Memorial Institute)와 스웨덴 노벨상 심사기관인 카롤린스카연구소(Karolinska Institute) 부속 덴더드(Danderd) 병원에서 유방암 연수를 받았다. 양 교수는 가능한 유방을 보존하고, 적게 째서 수술하는 ‘미세 침습적 기법’을 유방암 수술에 제일 먼저 도입했으며, 특히 ‘감시 림프절 생검법’의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이는 암 세포가 제일 먼저 옮겨가는 림프절을 검사해 그곳에 암 세포가 전이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림프절을 절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방법이다. “림프절을 아예 다 떼버리는 게 안전한데 왜 그런 모험을 하냐”고 묻자 “환자 입장이 돼 봐라. 그런 얘길 할 수 있는지”라고 양 교수는 되물었다. 양 교수는 글을 참 잘 쓴다. 오래전 김영사에서 발간한 번역서 ‘인턴 X’는 베스트 셀러가 됐으며, ‘옷 갈아입는 의사’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등의 수필집에서도 글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글은 미문(美文)이 아니다. 그런데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속에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 넉넉한 인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의학적 경륜과 인격이 향기롭게 배어났다’고, 한 동료 의료인은 ‘환자와 웃고 고뇌하며 함께 인술을 펼치는 외과의사로서의 진솔한 고백’이라고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를 서평(書評)했다. <소박스:유방의 양성 질환> 유방에 혹이 만져지면 대부분 유방암을 걱정하지만 유방에서 떼어 낸 혹 4개 중 3개는 암이 아닌 양성 종양이다. 그 중 가장 흔한 게 섬유선종, 섬유낭종성 질환, 유방염 3가지다. 섬유선종은 전체 유방 종양의 7~13%를 차지하며, 특히 젊은 여성에게 많다. 20세 이하 여성에게서 발견되는 종양의 60% 정도가 섬유선종이다. 보통 2~3Cm까지 커지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때 경계가 명확하고 고무같은 느낌이 든다. 임신 및 수유기에 커지며 수유를 중단하면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양성 종양이므로 절제하지 말고 내버려 둬도 괜찮다는 주장도 있으나 암을 섬유선종으로 잘못 진단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종양이 있으면 절제해서 조직검사를 받는 게 가장 안전하다. 섬유낭종성 질환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양성 종양으로 유방낭종(물혹), 유관확장증, 섬유증, 유두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여성 호르몬의 주기적인 변화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굳이 병이라 하기도 어려워 요즘엔 ‘섬유낭종성 변화’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선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고 통증도 있어 걱정을 하게 되므로 의사는 유방촬영, 유방초음파검사, 세침흡입세포검사 등을 통해 유방암이 아님을 진단해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유방의 유관이나 소엽이 불규칙하게 증식돼 있는 경우엔 나중에 유방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지속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유방염은 산욕기(신체 각 조직이 임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기간)나 수유기에 아기 입 속에 있는 포도상 구균이 일으키는 염증이다. 유방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열이나고 유방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 때 수유를 끊고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농양(염증 때문에 세포가 죽고 고름이 몰려 있는 곳)으로 발전하는데, 농양이 있으면 유방을 절개하고 고름을 빼낸 뒤 재발을 막기 위해 유관의 일부도 잘라내야 한다. 비산욕기에 생기는 유방농양은 대개 당뇨병 환자나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잘 나타나며, 이 경우엔 치료가 힘들고 재발률도 높다. 유방염의 경우도 유방암과의 감별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책/문화2004/06/30 13:27
  • 산소마시고 달걀먹고… 세계가 몸짱 열풍

    지구가 비만 인구의 증가로 무게 중심을 잃고 있다. 급기야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는 192개국 회원국 대표가 모여 비만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구 연합군이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세계인은 지금 다이어트 열풍에 싸여 있다. 각국의 문화와 식습관에 따른 가지각색 다이어트법을 짚어본다. ▲ 전 세계에서 밥·빵 등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는 올리브 오일, 덴마크는 계란, 한국은 청국장, 일본은 산소 흡입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미국, 햄버거에 빵 없애 ● 6개월 만에 체중 5~9㎏ 줄어 ‘악마 탄수화물(Evil Carbohydrate)’. 인구의 67%가 과체중으로 집계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다이어트법은 ‘저(低)탄수화물’ 식이요법이다. 단백질을 충분히 먹는 대신 밥·국수·빵 등 탄수화물 섭취를 하루 100g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소모되지 않고 남는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데서 나온 것이다. 최근 미국 ‘내과학연보’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과체중자 132명(이 중 83%가 당뇨병)을 대상으로 저탄수화물식과 저지방식을 비교한 결과, 저탄수화물식 6개월 후 체중이 5~9㎏ 줄었다. 반면 저지방식은 12개월 후 3~9㎏이 줄었다. 저탄수화물 식이가 단기간 체중감량에 효율적이라는 결론이다. 이에 따라 빵을 뺀 샌드위치나 햄버거 상품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포도 당분을 줄인 저탄수화물 와인, 저탄수화물 맥주, 청량음료까지 출시되고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사우스 비치(South Beach)’라고 불리는 저인슐린 다이어트가 가세했다. 핵심은 탄수화물을 먹되 당지수(GI)가 60 이하인 것으로 골라 먹자는 것이다. 당지수는 음식을 섭취 후 인슐린이 분비되는 속도를 뜻하는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인슐린 분비가 적게 일어나 비만 예방 효과가 있다. 식사 후 인슐린 농도가 빠르게 높아지면 영양분의 지방 축적이 많아진다. 그외에도 심장·관절 등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 지방산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오메가 다이어트’도 인기다. 이에 닭가슴살과 고등어, 꽁치, 참치 등 등푸른 생선, 호두와 같은 견과류가 잘 팔린다. 독일, 저녁은 아예 굶어 ● 오후 5시 이후 물·녹차만 마셔 독일에서 유행하고 있는 다이어트법은 ‘디너 캔슬링’이다. 말 그대로 ‘저녁 굶기’로, “저녁을 적에게나 줘라”라는 것이 모토다. ‘디너 캔슬링’의 원칙은 오후 5시 이후에 음식은 철저히 금하고 물, 녹차 등 음료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허용된 아침·점심 두 끼 식사도 음식 섭취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고지방식을 피한다. 반면 충분한 수분 섭취와 비타민과 무기질이 함유된 음식의 섭취량을 늘려줘야 한다. ‘디너 캔슬링’은 1주일 중 며칠만 해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계란이 이용되고 있다. 덴마크 국립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2주용 다이어트 식단으로, 탄수화물을 거의 먹지 않고 달걀과 야채, 자몽 등을 주로 먹는다. 모든 요리에 소금을 넣지 않고, 커피는 꼭 블랙으로 마시는 것도 특징이다. 그리스는 크레타 섬의 전통적 식습관을 따르는 ‘크레탄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곡물·과일·허브 등에 아주 적은 양의 치즈와 동물성 지방을 곁들여 먹는 방식이다. 크레타섬 주민은 단 5%만 비만이며, 유럽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다. 그들 식사의 40%가 지방이지만 대부분 올리브 오일이다. 올리브유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비만을 덜 초래한다. 그리스인들은 올리브 오일과 각종 야채로 만든 샐러드, 케밥 등을 먹으며, 국수 요리인 파스타도 버터를 쓰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쓴다. 일본, 벨소리 들어 살빼 ● 고춧가루 다이어트 한때 유행 지난해 일본에선 ‘고춧가루 다이어트’가 유행하더니, 최근에는 산소흡입법이 등장했다. 산소흡입이 피로회복과 신진대사를 높여 다이어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특히 여성들 사이에 인기다. 공기 중 산소 농도의 1.5배에 달하는 30% 산소를 정기적으로 들이마신다. 유산소 운동시 개인의 최적 심장 박동 수를 계산, 이를 바탕으로 한 핸드폰 벨소리를 제작, 걷거나 뛰면서 이 벨소리를 듣는 다이어트도 등장했다.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는 ‘근육 긴장 다이어트’도 인기다. 몸에는 느린 근육(지구력 담당)과 빠른 근육(순발력)이 있는데, 둘 중 덜 쓰는 부위에 살이 찐다는 논리다. 이에 배나 등 근육에 계속 힘을 줘 칼로리 소비를 늘리는 방식이다. 힘찬병원 내과 박혜영 과장은 “각 나라의 식습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칼로리의 70%를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특히 흰 쌀밥이나 제분된 밀가루, 정제된 설탕 등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며 “이들은 혈당 수치를 급격히 올려 해로울 뿐더러, 체내 지방으로 재빨리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학전문 기자 doctor@chosun.com )
    다이어트의학전문2004/06/29 17:51
  • [명의들의 명강의] 뇌졸중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뇌졸중의 악마같은 위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세계적으로 뇌졸중 사망자는 매년 45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인구만큼이 매년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뇌간 등 생명과 직결된 부위에 뇌졸중이 발생하면 하루 이틀새 사망하며, 그 밖의 부위라도 뇌졸중 범위가 크면 깨어나지 못하고 시간만 끌다 사망하거나 ‘나무토막’과 같은 식물인간이 된다. 생명을 건지더라도 전신 또는 반신마비, 언어장애, 요실금 등의 후유증으로 삶의 질이 엉망으로 떨어지며, 때로는 이것이 원인이 돼 사망한다. 죽음보다 무섭다는 치매도 절반정도는 뇌졸중이 원인이다. 뇌졸중은 적절한 치료와 눈물겨운 재활노력으로 거의 정상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30~40% 정도는 비극적 결말로 끝맺는다. 최근엔 비교적 젊은 50대, 심지어 40대도 뇌졸중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뇌졸중은 예고없이 들이닥쳐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리지만, 원인이 분명하고 예방과 대처가 가능하므로, 한번 싸워 볼 만한 상대다.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없다. 예로부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뇌졸중에 대처하는 첫 걸음은 뇌졸중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먼저 다소 복잡하지만 뇌와 뇌 혈관의 구조부터 알아보자. 뇌는 약 1250g(여자)~1400g(남자)이며 크게 대뇌, 소뇌, 뇌간으로 구성돼 있다. ▲ 연세대재활병원에서 한 뇌졸중 환자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대뇌는 오른쪽과 왼쪽 두개의 반구(半球)로 나뉘어 거의 대칭적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각의 대뇌는 전두엽(이마쪽), 두정엽(정수리쪽), 후두엽(뒷머리쪽), 측두엽(옆머리쪽)으로 나뉜다. 왼쪽 대뇌는 언어 중추가 있어 말하고, 이해하고, 쓰고, 읽는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오른쪽 대뇌는 전체적인 공간을 인식하는 기능과 대인관계 등을 주로 담당한다. 대뇌의 뒷편 아래쪽에 있는 소뇌는 우리 몸의 균형을 잡거나 미세한 운동을 조절하며, 대뇌 바닥쪽에 있는 뇌간은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심장박동, 호흡,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관장한다. 따라서 뇌간에 발생한 뇌졸중이 가장 치명적이다. 뇌가 사고와 감정, 동작, 생명활동 등을 총괄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같은 에너지의 공급 통로가 혈관이다. 뇌혈관은 목 앞쪽으로 올라가는 한 쌍의 ‘경(頸·목)동맥’과 목 뒤쪽으로 올라가는 한 쌍의 ‘척추동맥’이 담당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동맥은 두개골 안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이중 ‘중뇌동맥’은 뇌의 측면에 피를 공급하며, ‘전뇌동맥’은 대뇌 앞쪽에 피를 공급한다. 한 쌍의 척추동맥은 두개골 안에서 합쳐져 ‘기저동맥’이 된다. 기저동맥은 대뇌 뒷쪽(후두엽) 일부와 뇌간, 소뇌 등 뇌 밑바닥에 피를 공급한다. 뇌졸중이란 이같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뇌 세포가 죽은 상태를 말한다. 이때 뇌 혈관이 터져서 초래되는 뇌졸중을 뇌출혈, 뇌혈관이 막혀 초래되는 뇌졸중을 뇌경색이라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선 뇌출혈이 뇌경색보다 훨씬 많았으나, 1993년 조사에선 뇌출혈이 30%선으로 줄었고, 최근 서울아산병원 조사에선 20%선까지 줄었다. 뇌출혈은 거의 대부분 고혈압 때문에 발생하며, 뇌경색은 고혈압, 당뇨, 흡연, 고지혈증, 심장병 등 훨씬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한다. 뇌출혈이 줄어든 이유는 고혈압 치료가 보편화됐기 때문이며, 뇌경색이 늘고 있는 이유는 생활습관병(성인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백인의 경우 뇌경색이 전체 뇌졸중의 90% 정도인데,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선진국형’을 닮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뇌졸중은 ‘운’이 많이 작용하는 병이다. 척추-기저동맥이 막혀 호흡과 심장박동 등을 관할하는 뇌간이 손상받으면 손써볼 도리도 없이 사망하거나, 뇌사에 빠지거나, 식물인간과 유사한 ‘감금증후군’이 되기 쉽다. 감금증후군은 사지가 모두 마비돼 꼼짝도 못하며, 말하지도 못하고, 표정을 짓지도 못하며, 음식물을 삼키지도 못하지만, 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식물인간’과 다르다. 또 목 근처 경동맥이 막히면 여기서 갈라지는 중뇌동맥과 전뇌동맥도 순차적으로 막히므로 대부분 사망한다. 그러나 전뇌동맥이 막혀 뇌 앞쪽(전두엽)이나 정수리쪽(두정엽) 세포가 손상받은 경우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언어-운동-시력-감각마비 등의 후유증이 남지만, 운이 좋아 중요한 신경을 살짝 비켜서 뇌졸중이 생기면 아무런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 뇌가 호두알 크기만큼 죽었는데도 아무런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런 경우를 ‘무증상 뇌경색’이라 하는데, 국내에선 55세 이상의 절반 정도에게 무증상 뇌경색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뇌졸중이 발병할 조건을 고루 갖춘 사람이라면 보다 덜 치명적이고, 후유증이 적은 곳에 뇌졸중이 생기도록 기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일반적으로 여러 뇌혈관 중 중뇌동맥이 가장 잘 막히는데, 이 경우엔 운동-감각-언어중추가 손상을 받아 반신마비가 오거나, 감각이 없어지거나, 발음이 어눌해 지거나 아예 말을 못하게 된다. 특히 언어중추가 있는 왼쪽 뇌에 손상을 받으면 실어증(失語症)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전두엽이 손상되면 사람의 성격과 인지능력에 변화가 초래되며, 후두엽이 손상되면 시각에 손상을 받으며, 소뇌가 손상되면 손발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된다. 보통 사람의 생각과 달리 뇌졸중은 매우 정직한 병이다. 알츠하이머 등 인간의 노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병도 있지만 뇌졸중의 원인은 대부분 밝혀져 있다. 뇌 속 혈액순환을 방해하거나 뇌혈관을 손상시키는 것은 모두 뇌졸중의 위험인자다. 이 중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흡연, 과도한 음주는 ‘중요한 위험인자’, 고지혈증, 비만, 짜게 먹는 식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은 ‘덜 중요한 위험인자’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뇌졸중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다. 느닷없이 뇌졸중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심은 대로 거두는 병이 바로 뇌졸중이다. 뇌졸중의 위험인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고혈압은 혈관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 혈관벽을 손상시킨다. 일반적으로 혈압이 높으면 뇌경색에 걸릴 확률이 6~12배, 뇌출혈에 걸릴 확률이 18~20배 높다.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뇌졸중 환자의 약 70%에게 고혈압이 있었다. 다행히도 고혈압은 약을 복용하고, 식이요법-운동요법을 병행하면 얼마든지 정상혈압으로 낮출 수 있다. 당장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병원-약국에 갈 시간이 없다고, 고혈압 치료를 소홀히하다간 언제 뇌졸중에 맞닥뜨릴 지 모른다. 당뇨병은 우리 몸의 지질대사에 영향을 미쳐 동맥경화를 촉진하며, 특히 작은 뇌혈관에 손상을 입혀 발생하는 ‘작은 뇌경색’의 원인이 된다. 이를 ‘라쿤’이라 한다. 또 당뇨가 있으면 심장질환을 일으켜 심장벽에 혈전(血栓-피떡)이 생기게 하는데, 이것이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당뇨환자의 뇌졸중 발병률은 정상인의 3~5배, 심지어 13배까지 높다는 보고도 있다. 당뇨병을 오래 앓으면 앓을 수록 뇌졸중 확률도 높아지므로 당뇨의 치료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심장병은 그 자체가 뇌혈관 손상을 초래하진 않지만 심장안에서 생긴 혈전이 뇌혈관으로 이동해서 뇌혈관을 막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위험인자가 된다. 심장병 환자의 뇌졸중 발병률은 정상인의 5배 이상이다. 흡연은 그 자체가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혈액을 쉽게 응고시키므로 뇌졸중 발병률을 높힌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이 없는 비교적 젊은이에게 뇌졸중이 발병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담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술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매일 술을 마시거나, 한꺼번에 폭음하는 경우엔 혈압을 급격하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뇌졸중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과음은 뇌경색보다 뇌출혈을 더 잘 일으키는데, 일반적으로 매일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는 사람의 뇌출혈 확률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의 10배 정도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밖에 콜레스테롤은 특히 경동맥의 동맥경화를 촉진한다. 그러나 서구인의 경우 고지혈증이 뇌졸중의 중요한 위험인자지만, 야채와 곡류를 많이 먹는 동양인에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스트레스도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높히므로 조심해야 한다. 비만이나 운동부족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원인이 돼 간접적으로 뇌졸중의 발병에 관여한다. 따라서 뇌졸중 예방을 위해선 1단계로 금연, 운동, 절주, 염분섭취제한, 채소-야채 중심 식사 등을 생활화함으로써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 생활습관병에 걸리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만약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은 ‘화약고를 짊어지고 산다’고 생각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내디뎌야 한다. 본격적인 뇌졸중 발병에 앞서 일어나는 ‘일과성 허혈발작(Transient Ischemic Attack:TIA)’은 그래도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안전장치다. 뇌졸중 환자의 15~20%는 뇌졸중이 발병하기 전 일종의 경고로 ‘맛보기 뇌졸중’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일과성 허혈발작이다. 뇌 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다시 열리기 때문에 뇌졸중 증상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한쪽 팔다리를 갑자기 못쓰거나(운동마비), 얼굴이나 손 등의 감각이 둔해지거나(감각마비), 저리거나 시린 느낌이 있거나(이상감각), 말을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언어장애), 한쪽 눈 또는 두쪽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시각장애), 물체가 두개로 보이거나(복시), 주변 물체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러운 느낌(현훈증) 등이다. 이런 증상은 대개 30분 이내에 사라지지만 때에 따라 그보다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잠깐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별 것 아니겠지”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은 1년 이내에 뇌졸중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일과성 허혈발작이 있었거나, 종합검진 등을 통해 무증상 뇌경색이 발견된 사람은 뇌졸중 환자에 준해서 예방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들은 ‘재수’가 좋았을 뿐이며, 다음번 뇌졸중 발병 때도 ‘재수’가 좋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항혈소판제제를 복용하는 등 뇌졸중 방지에 그야말로 ‘사활(死活)’을 걸어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경고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일을 당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한편 뇌졸중, 특히 뇌경색이 일어나 쓰러진 경우엔 분초를 다퉈야 한다. 마치 물 속에서 수분 정도는 숨을 참을 수 있는 것처럼 뇌 세포도 서너시간 동안은 피가 통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뇌졸중이 발병한 부위의 뇌세포는 죽지만, 그 주위 뇌세포는 죽지 않는다) 따라서 신속히 병원에 데려가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혈전용해제’ 등을 주사해야 한다. 우황청심환을 먹이거나 침을 놓는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환자를 죽이는 행위다. 일반적으로 뇌혈관이 막혀 혈액공급이 차단되고 3시간 정도가 지나면 뇌세포가 죽으므로 적어도 발병 3시간 이내에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병원에는 늦어도 발병 2시간 이내에 데려가야 CT·MRI 등의 진단을 거쳐 3시간 이내 치료가 가능하다. 병원에 데려갈 때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제일 큰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다. CT를 갖춘 웬만한 종합병원에서 치료할 수도 있지만, 방사선 전문의가 상주하는 대형병원에 데려가야 보다 정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뇌출혈인 경우 병원에서도 사실상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대개의 경우 출혈된 피가 저절로 흡수될 때까지 지켜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치료법이다. 그러나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병원에 늦게 데려가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만약 뇌출혈 범위가 큰 경우엔 두개골을 여는 등의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 뇌 안쪽으로 피가 터져나오면 뇌압이 올라가고, 그 양이 많다면 뇌간까지 압박하게 되는데, 뇌간이 눌리면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이 때는 두개골 안에 고인 피가 뇌간을 누르지 않도록 피를 빼내거나 때로는 두개골을 열어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한편 뇌 출혈이 뇌 안쪽이 아니라 뇌와 뇌를 둘러싸고 있는 지주막 사이에 발생한 경우도 비교적 흔한데, 이를 ‘지주막하 출혈’이라 한다. 지주막하 출혈은 보통 뇌 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동맥류가 터진 것으로 뇌세포가 죽지 않았으므로 반신마비, 실어증 등과 같은 뇌졸중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심한 두통이 특징이며, 때로는 의식을 잃기도 한다. 이런 환자는 동맥류가 다시 터질 위험이 크므로 즉시 병원에 데려가서 재출혈 예방을 위한 수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활치료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자. 뇌졸중에서 생명을 건지더라도 운동장애, 감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장애, 치매 등의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장애는 사실 극복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해서도 안된다. 비록 한번 파괴된 뇌세포는 다시 재생되지 않으므로 뇌졸중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인체는 매우 신비로와서 뇌 한쪽이 파괴되면 옆에 있는 뇌 세포가 파괴된 세포의 역할을 대신하는 매카니즘이 발동된다. 따라서 포기하지 말고 재활치료에 힘써야 한다. 재활치료엔 팔다리 마비와 운동장애 등을 풀어 주는 물리치료가 중요하며, 이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라도 빨리 시행해야 한다. 물리치료를 하지 않으면 뇌졸중으로 마비된 관절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관절과 근육 등도 쓰지 않기 때문에 뻣뻣하게 굳어지거나 장애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물건잡기, 숟가락 사용하기, 세수하기 등 작업치료를 병행하며,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을 병행하면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 ■ 김종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종성 교수는 대학 때 클래식 기타와 동양화 그리기에 푹 빠져 살았다. 본인 표현을 빌면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도 읽었다. ▲ 김종성 교수(가운데 앉은 사람)가 신경과 레지던트들과 함께 뇌졸중 환자의 MRI 사진을 검토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그러나 이같이 고상한 취미를 김 교수는 벌써 십 수년째 잊고 산다. 뇌에 관해 연구하는 게 너무 재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얼마전부터 골프 배우기를 시작해 필드에도 한 두 번 나가 봤는데, 재밌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젠 연구하고 글쓰는 게 취미”라고 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감각 장애에 대한 연구와 치명적인 뇌간 부위에 발생한 뇌졸중이 김 교수의 주된 연구 분야. 최근엔 침 등을 이용한 뇌졸중 재활치료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국내서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을 쓰는 의사 중 하나다. 지금껏 ‘신경과학’ ‘스트로크’ 등 세계적 학술지에 낸 SCI 논문만 110여편 정도 된다. 그는 “어림도 없다”고 말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02년 노벨의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한국인 중 한명으로 김 교수를 지목했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어려운 의학지식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능력은 김 교수가 가진 또 다른 재능이다. 그가 2000년 펴낸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지호출판)은 제목 그대로 보통사람이 뇌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궁금점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썼다. 이 책의 제1장 ‘잠은 왜 잘까’편은 중학교 2학년 국정 국어교과서에 재구성돼 실렸다. 2001년에는 ‘뇌졸중 119’(가림출판사)란 책도 출간했다. 1956년생인 김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신경과 수련을 받았다. 2년간의 서울대병원 전임의를 거쳐 1989년 서울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992~1993년 미국 헨리포드병원 뇌졸중센터에서 연수했다. 울산의대 최우수 연구 교수상, MSD학술상, 함춘의학상, 분쉬의학상 등을 수상했다. <1> 뇌졸중 어떻게 진단하나 뇌졸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의사는 가장 먼저 뇌 CT 촬영을 한다. CT를 찍으면 우선 혈관이 막혀 생긴 뇌경색인지, 혈관이 터진 뇌출혈인지 1차적으로 감별할 수 있다. 뇌출혈인 경우엔 CT의 진단능력이 특히 뛰어나며,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뇌출혈 환자라면 ‘정위틀 CT’를 통해 출혈이 생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정위틀 CT란 좌표를 찾는데 쓰이는 금속 틀을 나사로 두개골에 고정시킨 뒤 찍는 CT다. 그러나 뇌경색인 경우엔 CT보다 MRI가 더 유용하다. CT로는 진단이 어려운 소뇌와 뇌간 경색도 정확하게 진단 가능하며, 경색이 일어난지 얼마 안된 경우에도 CT보다 MRI 진단 능력이 뛰어나다. 뇌졸중 진단에 있어 자주 쓰이는 또 다른 검사법은 뇌혈관 조영술로, 이는 조영제(造影 )를 혈관내로 주입한 뒤 X선 촬영을 하는 것이다. 뇌 혈관 협착이나 폐쇄 부위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며, 필요한 혈관만 선택적으로 자세히 검사할 수도 있다. CT 검사 결과 뇌출혈 원인이 고혈압이 아닌 뇌동맥류나 동정맥 기형으로 추정될 경우에도 보다 정확한 출혈 원인을 찾기 위해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한다. 그밖에 초음파검사, SPECT(단광자방출 컴퓨터단층촬영),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가 뇌졸중의 진단에 이용된다. 초음파검사는 두개골 내 혈류 상태나 뇌로 피가 들어가는 경동맥 혈류상태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 SPECT와 PET는 비싸고, 다른 검사로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2> 뇌졸중과 성격 사람의 성격도 뇌졸중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고 야망이 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높은데, 이같은 사실은 김종성 교수의 실험에서도 그대로 입증됐다. 김 교수는 뇌졸중으로 입원한 환자 224명과 정상인 대조군 100명을 대상으로 뇌졸중 발병과 개인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지난 1998년 유럽학회에 보고한 바 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야망과 경쟁심이 강한 ‘A형 성격’은 그렇지 않은 B형이나 C형 성격에 비해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이 20∼50% 높았다.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아이젠크 박사는 사람의 성격을 A, B, C형으로 분류했다. A형은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야망이 크고, 경쟁심이 강하고, 공격적이며, 맡은 일을 철저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B형은 A형과 정반대로 소극적, 무의욕적인 성격이며 C형은 A형과 B형의 중간 성격이다.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책/문화2004/06/29 11:14
  • [명의들의 명강의] 간 질환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단언컨데 간은 사람의 오장육부 중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장기다.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간에서는 담즙(소화액)을 비롯해서 우리 몸에서 필요한 수천가지의 물질과 효소를 생산해 낸다. 담즙은 십이지장으로 이동해 섭취한 음식을 더 작은 입자로 분해하는 등 소화를 돕고, 이렇게 소화-흡수된 각종 영양소는 피를 타고 돌다 다시 간으로 이동해서 재처리된 뒤 다른 조직에 저장되거나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흡수한 지질과 당질, 단백질이 몸 속에서 대사된다. 각종 비타민과 호르몬이 대사되는 곳도 간이다. 간은 또 체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독물질의 제독(除毒)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장내에서 단백질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다량의 암모니아 가스가 발생하는데, 그대로 두면 뇌 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를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바꾸어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간이다. 또 알콜이나 약물 등의 독성도 간에서 제거돼 인체를 순환하게 된다. 간 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쿠퍼세포’는 우리 몸 속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각종 병균, 이물질 등을 끌어들여 잡아먹는 역할을 한다. 그 밖에 제 역할을 다한 호르몬이나 영양소, 혈액 찌꺼기 등 인체에 불필요한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도 간이 담당한다.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 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이 인체 소화기관 중 가장 큰 이유도, 심장에서 내 보내는 피의 약 25% 정도가 손바닥 만한 간을 통과하는 이유도 그만큼 간이 많을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간은 엄살을 부리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우직스레 일만 한다. 위(胃)와 한번 비교해 보자. 위는 염증이나 궤양이 생겨 약간만 불편해도 ‘아우성’을 친다. 속이 쓰리고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 증상이 즉각 생긴다. 치료를 하고, 하지 않고는 ‘주인’ 맘이지만, “아프니까 어떻게 좀 해달라”고 끊임없이 주인에게 떼를 쓴다. ▲ 이승규 교수 그러나 간은 웬만큼 지방이 껴서 붓고,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어 나가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계속한다. 마치 주인을 위해 이 한 몸 부서져라 일만하는 충직한 하인처럼,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나 아픈데...”라고 기별을 한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간이 아파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몸이 붓고, 황달이 생겨 아프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간 기능은 70% 정도까지 상실돼, 치료가 쉽지 않은 상태이기 십상이다. 좀 심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고깃집에 가면 소금기름에 찍어먹으라고 소 생 간이 나온다. 그 간이 매끄러운 선홍빛이 아니라 색깔이 누르스름하거나, 군데 군데 시커멓게 얼룩져 있다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사람의 간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람의 간은 표면이 매끈하고 암적색 빛이 돌아 보기에도 좋지만, 지방간이 있는 사람의 간은 약간 누르스름한 빛을 띄면서 부어있고, 황달까지 있는 사람은 약간 단단하면서 시커멓게 착색돼 있다. 간경화 환자의 간은 표면이 마치 전복껍질처럼 거칠고 딱딱하며 쪼그라들어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누르스름하고 시커멓게 간이 변해가는 데도 자신의 간을 돌보지 않는다. 간은 침묵하기 때문이다. 사실 간은 인체에서 재생력이 가장 좋은 장기이다. 간암이나 간경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간의 절반 정도를 떼 주는 ‘생체이식’이 가능한 것도 그만큼 재생이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체이식을 하고 두달 정도가 지나면 간은 원래의 크기를 95% 이상 회복한다. 따라서 간은 웬만큼 상처를 입어도 적절히 관리하면 다시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방간은 한두달만 금주해도 말끔히 없어진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재생력이 좋은 간도 70% 이상 망가지면 문제가 생긴다. 간 세포가 30%, 아니 50% 망가졌을 때라도 미리 ‘SOS’ 신호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미련 곰탱이’ 같은 간은 항상 좌초 직전에야 “구해달라”고 절규를 한다. ▲ 간기능 검사를 위한 복부 초음파검사 장면. 간염 바이러스 건강보유자들은 정기적인 간기능검사를 통해 발병여부를 체크하는게 좋다./조선일보DB 따라서 느닷없이 ‘SOS’ 신호가 날아오지 않게 대비하려면 미리미리 간을 아끼고 보호하는 방법 뿐이다. 용왕님 앞에 선 토끼가 “간을 꺼내 놓고 왔다”고 둘러댄 것처럼 수시로 간을 꺼내서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경화나 간암의 90% 이상은 간염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망가진다고 말하지만, 알콜성 간경화는 전체 간경화의 5% 미만이다. 간염 바이러스가 없다면 매일 소주 두 세병씩 몇 십 년을 마셔야 알콜성 간경화가 생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따라서 간경화나 간암은 간염을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간염 중에서도 간에 치명상을 입히는 주범은 B형 간염 바이러스다. 우리나라 성인의 6~8%는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며, 10대 이하도 1% 정도는 감염돼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감염자의 80% 정도는 출생시 모체(母體)로부터 수직 감염되며, 나머지도 대부분 아주 어렸을 때 감염된다. 어른이 돼서 감염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술잔을 돌리면 감염된다는 얘기는 술을 적게 마시라고 지어낸 이야기지, 실제로 술잔으로 감염된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간경화나 간암에 걸리는 사람은 어렸을 때 이미 결정된다는 얘기다. 운명의 장난처럼 어린 시절 자기도 모르게 감염되므로 당사자로선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감염 직후부터 체내에서 계속 증식을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면역체계도 미숙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가 서로 싸우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증상도 없다. 눈과 얼굴이 노랗게 되는 등 간염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30대를 전후해서다. 그제서야 ‘적’인줄 알아차리고 면역세포가 공격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바이러스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간 세포까지 파괴되는데, 이것이 간염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나타나는 발병 양상과 경과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간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게 급성간염이며, 오랜 시간을 두고 국지전을 벌이는 게 만성간염이다. 어떤 경우는 평생 발병하지 않고 평화공존을 유지하는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을 ‘무증상 보유자’ 또는 ‘건강 보유자’라고 한다. 현재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운 좋게’ 무증상 보유자가 되고, 몇 퍼센트 정도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하는지 등에 관한 통계는 없다. 어림짐작으로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면 ‘바이러스 보유자의 70~80% 정도는 바이러스의 증식활동이 멈춰 있거나, 증상이 너무 경미해 본인도 잘 모르고 있거나, 발병을 했다가 저절로 낫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해두자. 뒤집어 이해하면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는 만성간염으로 진행돼 임상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전체 바이러스 보유자 20%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 중 25~30%는 간경화가 되며, 그 중 일부가 간암으로 발전한다. 최근엔 C형 간염도 간경화나 간암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B형과 달리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약해 성 행위 등 일상생활을 통해 감염될 확률이 거의 없거나 아주 낮다. 주요 감염 경로는 혈액과 체액. 감염자로부터 수혈을 받거나, 비 위생적인 바늘로 귀를 뚫거나, 문신을 하거나, 마약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주로 감염된다. 신장투석을 받거나 장기이식을 받는 과정에서 감염될 수도 있다. 얼핏 생각하면 B형보다 감염 확률이 크게 낮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방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예방백신이 보급되면서 크게 줄었지만, 백신이 없는 C형 간염 환자는 계속 증가추세다. 백신이 우리보다 일찍 보급된 이웃 일본에선 B형 보다 C형 간염이 더 많다. 언젠가는 우리도 C형 간염이 B형 간염을 앞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보다 증상이 가볍다. 황달도 나타나지 않고, 피로감, 무력감, 소화불량,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고 만성화 되기 쉬워 결과적으로 훨씬 더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50~70% 정도가 만성화돼, 현재 우리나라 만성 간염 환자의 약 10~15%가 C형 간염 환자다. 만성 C형 간염 환자의 약 30%는 간경화로, 약 10%는 간암으로 발전한다. 한편 A형 간염은 최근 20세 이하 연령층에서 비교적 많이 생기고 있고, 증상도 비교적 심한 편이지만 만성화 되지 않고 대부분 완치되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개발국에 많은 D형 간염과 E형 간염도 우리나라에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했지만 발병하지 않은 사람, 즉 ‘무증상 보유자’들은 얼마든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 웬만한 신체 접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으며, 적당히 과로하거나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한가지가 정상인과 다르다. 그것은 그들의 내일이 어제처럼 그렇게 건강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억누르고 있는 간염 바이러스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으며, 지금껏 평화롭게 공존하던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가 어느 순간 전투를 벌여 간염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엔 ‘건강 보유자’란 표현보다 ‘무증상 보유자’란 표현을 의사들은 더 즐겨 쓴다. 건강한지 안한지는 잘 모르겠고, 단지 증상이 없다는 것만 인정하겠다는 뜻이 여기에 내포돼 있다. 바이러스 보유자는 따라서 의사들이 구태여 무증상 보유자란 단어를 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속에 잠들어 있는 바이러스가 기지개를 켜고 발호(跋扈)하지 않도록, 마치 얼음 위를 걷듯 조심조심 생활해야 한다. 즉, 간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체중이 늘지 않도록 관리하며, 과음을 삼가고,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 또 규칙적으로 간 검사를 받아 바이러스의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이 중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술이다. 앞서 언급했듯 알콜성 간경화는 전체 간경화의 4~5%에 불과하다. 그러나 술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B 또는 C형 간염때문에 간경화가 된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간경화는 바이러스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때로는 알고서도 술을 마시기 때문에 발생한다. 간경화 환자의 음주경력을 조사해 보면 하루 소주 1~3병씩 10~20년씩 마신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가 그렇게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간경화 때문에 간 이식 수술을 받고도 술을 마시다 결국 사망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름만 되면 아는 유명인 이모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따라서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술을 독약처럼 생각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술을 마셔야 할 자리가 생기고, 또 술을 마신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지도 않기 때문에, 대부분 술을 입에 대게 된다. 물론 어쩌다 한번, 꼭 필요해서 술을 마신다면 크게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번 두번 술을 마시다보면 스스로의 방어벽이 허물어지고, 일단 방어벽이 허물어지면 그 다음엔 통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안 그래”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도 처음엔 “나는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내 간 속에 바이러스가 힘을 축적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울러 바이러스 보유자는 간에 항상 청진기를 들이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침묵하는 장기, 간은 웬만해선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이 있으면 보이고, 애정이 있으면 느껴지기 마련이다. 신경을 곤두세우면 간이 이를 악다물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왠지 모르게 피로하고 무기력해지거나, 평소보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때는 즉각 간기능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피곤한 정도를 지나 음식 냄새를 맡는게 비위가 상하고 헛구역질 또는 구토를 하거나, 얼굴에 기미가 끼고 피부색이 거무튀튀해지거나, 몸이 이상하게 자꾸 붓거나, 눈 흰자위나 피부가 약간 누르스름하게 변한다면 좀 더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즉시 진단받고 치료에 나서야 한다. 일단 간염이 발병하고, 그것이 만성으로 진행되면 이때부턴 인내와 끈기의 싸움이다. 이 병은 쉽게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현재 개발된 인터페론이나 라미뷰딘 등의 치료약도 간염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불과하며, 시간이 지나면 면역성을 키운 바이러스가 다시 튀어나와 환자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다”고 믿어야 하며,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물요법, 생활요법, 식이요법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 비록 힘들고, 지루하고, 효과가 더디며, 때로는 병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성급하게 완치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쉽게 낫지 않는 병이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만성 간염도 평생 몸에 지니고 산다고 각오하고, 그렇게 느긋하고 꾸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간염을 이기는 길이다. 물론 처음엔 누구나 의사를 믿고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1년, 2년 치료를 받아도 병이 완치되지 않고,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 현대의학과 현대의학을 맹신하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된다. 이때쯤 “누구누구는 여차저차해서 간염이 완치됐다고 하더라” “서양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더라” “간염에는 무엇 무엇이 특효약이라더라”는 얘기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민간요법이나 자연식품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들이 그같은 경과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특효약’이라고 선전하는 일부 버섯, 성분 미상의 생약,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한약 등은 사망률이 80~90% 정도인 급성·전격성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간염 환자는 귀를 막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간염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간염을 극복하고 복귀한 컴퓨터 바이러스 박사 안철수씨는 “주위에서 이 것 저 것을 권할 때 솔직하게 유혹을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귀를 틀어막고 의사 지시를 따랐고, 그래서 간염을 이길 수 있었다”고 언론을 통해 고백한 바 있다. 그의 경험담을 많은 간염 환자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편 간염이 발병하면 환자는 안정을 취하면서 고단백-고비타민식을 해야 한다. 간염에 걸리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끼니마다 쇠고기를 배불리 먹는 경우가 많은데, 쇠고기나 돼지고기 단백질보다 생선이나 닭고기 가슴살의 단백질이 더 좋다. 또 아무리 단백질 식품이라 해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밖에 콩, 달걀, 우유, 두부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게 좋다. 또 간염에 걸리면 체내 비타민도 부족해지므로 비타민 A, C, E, B1, B12, 엽산 등을 보충해 주는 게 좋다. 식품첨가물이 많이 함유된 인스턴트 식품, 튀긴 음식, 태운 고기, 말린 생선 등은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가급적 삼가야 한다. 쑥, 미나리 등을 녹즙기로 짜서 매일 마시는 것도 좋지 않다. 조리해서 먹는다면 몸에 좋은 쑥과 미나리도 녹즙으로 마시면 섭취량이 지나치게 많아져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당연히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말아야 하며, 담배도 간암 발생률을 높히므로 끊어야 한다. 한편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침대에 누워 꼼짝도 않는 경우가 많은데 피곤하지 않은 범위에서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잠은 충분히 자서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간염 수치가 안정되면 직장에 나가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영업을 하러 돌아다니거나, 야근을 하는 업무는 피해야 한다. 끝으로 지방간에 대해 알아보자. 지방간은 글자 그대로 간에 지방이 껴서 간이 부은 상태다. 의학적으로는 지방의 무게가 간 전체 무게의 5% 이상일 때 지방간으로 진단한다. ‘지방간=술’ 이라고 단정짓는 사람이 많지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당뇨가 있으면 지방간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알콜성 지방간이라 해도 반드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술을 거의 못 먹는 사람에게도 알콜성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아마도 지방간은 직장인에게 가장 많은 병이지 싶다. 기자가 근무하는 신문사의 경우, 직장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이 나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지방간 진단을 받고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 지방간인데 설마 내게만 무슨 문제가 생기겠느냐고 생각하는 묘한 ‘공범의식’ 인것 같다. 사실 지방간은 그리 걱정할 병이 아니다. 무엇보다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증상이 있어도 그리 심하지 않다. 따라서 일단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또 다른 간 질환과 달리 치료가 매우 손쉽다. 알콜이 문제라면 한두달 금주하면 금방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기름이 빠진다. 비만이 원인인 경우도 운동 등으로 감량을 하면 지방간이 없어진다. 설혹 지방간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남아 있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지방간이 있다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분명히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태연하다는 점이다. 지방간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병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위험하진 않지만, 앞으로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강력한 ‘스톱 사인’이다. 따라서 지방간 판정을 받으면 한번 멈춰서서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이켜 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현명한 사람에겐 지방간처럼 고마운 경고도 없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렇게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간의 스톱 사인을 무시하고 내달린다. 모두다 신호위반 하는데 나만 빨간 불에 멈춰 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호위반의 끝은 대개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알콜성 간염이나 지방성 간염이 그같은 사고에 해당한다. 알콜성 간염은 만성적인 음주나 폭음으로 간 세포가 손상돼 염증이 생기고, 염증 때문에 간 조직이 섬유화되는 병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알콜성 간경화증이 된다. 주로 비만인에게 나타나는 지방성 간염은 지방간과 염증이 함께 나타나는 병으로 역시 심해지면 간경화증,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지방간은 매우 간편하게 해소된다. 술이 문제라면 한달 정도만 금주하면 된다. 죽어도 금주를 못하겠다면 주 2~3일 휴간일(休肝日)을 지키고, 한꺼번에 폭음하지 말고, 술을 마시되 천천히 마시고,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등 ‘요령’을 피우기라도 해야 한다. 또 비만이 문제라면 살을 빼면 된다. 살이 찌면 간염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등 만병의 근원이 되므로 더더욱 살을 빼야 한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멈춰서는 사람에게 지방간은 대수롭지 않은 병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지는 화근이 된다. B형 간염은 어떻게 전염되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2만~5만명의 B형 간염 환자 또는 보균자가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0년 B형 간염을 취업 제한 대상 질병에서 제외했지만 이것이 지켜지는 곳은 공무원과 공기업 뿐이다. 민간 기업에선 여전히 B형 간염 환자에게 취업상 불이익을 주고 있다. 어렵게 취업한 환자 또는 보균자들도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공연히 죄인 된 기분을 느껴야 한다. B형 간염에 관한 잘못된 상식 때문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환자의 혈액, 정액, 타액, 기타 체액에서 발견되지만 대개의 경우 혈액을 통해 전염된다. 정액, 타액, 눈물, 땀, 소변 등에 있는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혈액에 있는 바이러스 양의 1/100~1/1000에 불과해 전염력이 매우 낮다. 우선 B형 간염이 실제로 전염되는 사례를 살펴보면 환자의 코피나 혈액이 묻은 물건이 다른 사람의 피부 질환이나 상처에 닿는 경우, 환자가 양치질 도중 잇몸에서 피가 났는데 다른 사람이 그 칫솔로 이를 닦는 경우, 환자의 피가 묻은 물컵을 다른 사람이 이를 닦고 입을 씻는데 사용하는 경우, 간염 환자가 사용한 면도기로 면도를 하다 피부에 상처가 나는 경우, 성 행위를 할 때 성기 등의 점막에 미세한 상처나 출혈이 생기는 경우 등이다. 이 중 성 행위의 전염력은 에이즈나 C형 간염보다 훨씬 높으며, 콘돔을 사용해도 완전히 예방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주사바늘에 찔리거나, 한방에서 소독안된 침을 놓거나, 바늘로 문신을 하거나, 귀를 뚫는 경우 전염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직장 생활에서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B형 간염 환자와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식사를 함께 한다고 해서 전염되는 법은 없다. 술잔을 돌리면 간염이 전염된다는 얘기는 술을 적게 마시게 하기 위해 의사들이 만들어낸 얘기지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다. 또 간염 환자와 함께 목욕탕 또는 수영장에 같이 가거나, 합숙을 하거나, 수건을 함께 쓴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는다. 설혹 e항원이 양성이어서 환자의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증식하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B형 간염 바이러스 건강보유자는 물론이고 e항원이 양성인 사람도 정상적인 직장생활이나 군대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직장 내 간염 환자가 있다면 따뜻하게 손을 잡고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승규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이승규 교수를 ‘당대 최고의 칼잡이’라 부른다. ‘칼잡이’는 외과의사를 통칭하는 용어다. 요즘은 외과도 장기별로 전문화돼, 간만 수술하는 사람, 심장만 수술하는 사람, 위만 수술하는 사람 등으로 세분화된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을 간암 또는 위암 수술 분야 최고라 말할 순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외과 분야를 통틀어 비교해도 그와 필적할만한 칼잡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가 간 이식 수술 중 틈을 내 수술실 한편에 마련된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그가 당대 최고임을 나타내는 에피스토 한 토막. 수년전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교수와 김영삼 대통령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교수가 비슷한 시기에 간암에 걸렸다. 그러나 당시 현직 서울대병원 교수였던 두 분이 간암 수술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이 아닌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이승규 교수에게였다. 당시 서울대병원측은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까봐 ‘엄청나게’ 노심초사했다. 그는 토·일요일을 빼면 이틀에 한번꼴로 간 이식 수술을 한다. 이식수술은 보통 오전 9시쯤 시작돼 다음날 새벽에 끝난다. 최고 36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술한 ‘진기록’도 갖고 있다. 이식이 없는 날엔 간암을 수술하고, 시간을 쪼개 회진·외래진료를 한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한다. 몸이 열두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그에게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하루 10시간도 넘게, 그것도 허리를 구부려 온 신경을 집중해 수술한다는 건 엄청난 ‘육체노동’이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이 교수는 수술실에 런닝머신을 갖다 놓았다. 그는 외과의사의 첫째 덕목을 “열몇시간씩 서서 수술할 수 있는 튼튼한 하체와 허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허벅지는 왠만한 처녀 허리 사이즈 굵기다. 다른 외과의사처럼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틈나는 대로 팔굽혀 펴기, 철봉 등을 한다. ‘자기관리가 지독한 사람’이란 게 주위사람들의 평가다. 1949년 1월생인 이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주 전공은 간 이식. 1992년 8월 뇌사자 간 이식을 처음 성공한 그는 2003년 11월 현재까지 800여건의 간 이식을 시행했으며, 수술 성공률은 95% 정도다. 수술 건수나 성공률 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다. 특히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고, 1997년에는 성인의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다. 또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 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고안, 발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제무대서 ‘거물’로 대우 받는 몇몇 안되는 국내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이 교수는 아직도 수술장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새우잠을 잔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하고, 가족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다. 수년전 어머니 장례식날 밤,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장으로 달려간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의학도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레지던트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뤄보겠다는 열정, 그 목표를 위해 빈틈없이 자신을 관리해 가고 있는 그의 노력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를 ‘최고의 자리’에서 지켜 낼 것으로 믿는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책/문화2004/06/28 08:37
  • [명의들의 명강의] 콧병

    ▲ 동헌종 교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 사람의 코는 크게 네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는 냄새를 맡는 기능이며, 둘째는 숨을 쉬는 기능이며, 셋째는 들이 마신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이며, 넷째는 공명(共鳴)을 일으켜 발성을 돕는 기능이다. 그러나 콧병 때문에 이 네가지 기능 중 어느 하나 이상 기능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동물의 세계에 있어 후각은 천적(天敵)의 냄새를 감지해서 생명을 유지케 하며, 발정을 하고 교미를 해서 종족을 번식시키게 하는 등 생존의 제1수단이지만, 인간에게는 기껏해야 화재시 연기 냄새를 맡아 안전사고를 예방케 하는 역할 정도다. 그 보다는 오히려 맛 있는 음식과 향긋한 와인 냄새를 음미하는 ‘호사스런 수단’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코가 막혀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때로는 두통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는 없다. 코가 완전히 막히는 경우도 드물지만, 완전히 막히더라도 입으로 숨을 쉴 수 있다. 비염이나 부비동염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것도 ‘조금’ 불편한 일일 뿐이다. 때로는 코맹맹이 소리가 귀엽고 매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부분 콧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불편한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만성 코막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전 인구의 10%나 된다는데 실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 봐야지”하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러나 차일피일 병원행을 미루는 댓가로 콧병 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과 고통은 생각보다 크고 심하다. 콧물이나 코막힘 만을 콧병의 증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면 장애, 집중력 장애, 만성 피로 등도 콧병의 주요한 증상들이다. 즉 코가 막히면 코골이나 수면 무호흡증이 생겨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되며, 이 때문에 피로가 풀리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된다. 잠을 잘 때 수십초 이상 숨을 쉬지 않다 어느 순간 숨을 내 쉬는 수면무호흡증은 뇌졸중이나 심장병 발병을 높힌다는 보고도 있다. 또 코 안에 콧물-고름이 가득 차 있거나 코가 막히면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어 공부를 하거나 사무를 보는데 지장을 주게 된다.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는데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가, 아무리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몸이 오히려 무거운 이유가 콧병 때문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콧병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코의 구조부터 간단하게 살펴보자. 얼굴 중앙에 돌출돼 있는 코는 위 1/3은 단단한 뼈로, 아래 2/3는 물렁한 연골로 골격이 구성돼 있다. 콧구멍이 인후두부와 연결되는 통로를 비강(鼻腔)이라 하는데, 비강에는 ‘비갑개’라 부르는 콧살이 있고, 오른쪽 비강과 왼쪽 비강 사이에는 ‘비중격’이란 구조물이 가로막고 있다. 또 비강을 둘러싸고 한쪽에 4개씩 모두 8개의 동굴처럼 생긴 공간이 있는데 이를 ‘부비동(副鼻洞)’ 또는 ‘부비강(副鼻腔)’이라 한다. 각각의 부비동은 비강과 연결돼 있지만 부비동끼리 직접 연결돼 있지는 않다. 한편 코 가장 안쪽 윗 부분에는 약 500만개 정도의 후각세포가 분포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때 코를 킁킁거리는 이유는 후각세포가 있는 코 윗쪽으로 공기를 보내기 위해서다. 이 중 비강은 외부에서 흡입되는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함으로써 호흡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사람의 코는 오묘하게도 양쪽 비갑개 점막이 몇시간마다 교대로 부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중에선 한쪽 코가 번갈아 막힌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이는 정상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양쪽 콧구멍으로 동시에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한쪽 콧구멍씩 교대로 숨을 쉬고, 반대편 콧구멍으로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비강 점막에 분포하는 신경은 이같은 공기의 흐름을 감지해서 코가 막히지 않고 편안하게 숨을 쉰다고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공기가 많이 통과해도 코가 막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코를 막고 콧구멍보다 훨씬 넓은 입으로 숨을 쉬면 숨쉬기가 훨씬 편할 것 같은데도 답답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공기가 비강 점막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기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박하사탕을 먹을때 코가 뻥 뚤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강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신경이 자극돼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비강 점막은 또 외부에서 흡입된 찬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건조한 공기에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뜨겁고 건조한 아프리카 사막에 있든, 눈보라 몰아치는 알라스카 빙하 위에 있든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온도와 습도가 항상 일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밖에 비강 입구의 콧털은 공기 중 큰 먼지나 오염 물질을 걸러내며, 비강 점막에 붙어 있는 무수히 많은 섬모는 미세한 먼지를 목구멍으로 쓸어 내리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비강과 부비강의 점막에선 하루 1리터 정도의 콧물을 생산하는데, 그 중 약 2/3는 비강에서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데 사용되고, 약 1/3은 섬모의 운동에 의해 목구멍으로 배출된다.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는 비강에 생기는 병 중 대표적인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과 비후성 비염, 부비동염(축농증) 등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비강은 양쪽 비갑개 점막이 교대로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여기에 염증이 있으면 양쪽 비갑개가 항상 팽창해 있게 된다. 그 결과 만성 코막힘,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이 초래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비후성 비염은 단번에 완치되는 질병이 아니다. 증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비염이 있는 경우 가끔씩 생리식염수를 이용해서 비강 내로 흡입된 여러가지 알레르기 물질이나 병원체를 씻어내는 것도 좋으며, 조금 뜨거운 증기를 코로 흡입하는 방법도 해 볼 만 하다. 그러나 소금이나 죽염을 너무 짜게 탄 물로 코 안을 세척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비강 점막을 영구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체액 농도와 같게 만들려면 물 1000cc에 소금 9g을 섞으면 된다. 의사 처방에 따라 비강 점막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프레이(국소 스테로이드 제제)와 항히스타민제를 적절히 사용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또 코 점막이 건조해 지면 비강의 기능이 떨어지므로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알콜은 비강 점막의 혈관을 팽창시키며, 담배 연기도 비강 점막을 자극하므로 모두 피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경우 꽃가루나 애완동물의 털 등이 비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것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이불은 자주 털고 햇볕에 말리고, 침대 밑 등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청소도 잘 해야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비염이 있다고 섣불리 수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후성 비염 환자는 누구나 공기의 흐름을 막고 있는 비후된 콧살을 잘라내면 코가 ‘뻥’ 뚤려 숨쉬기도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코 점막을 잘못 잘라내면 신경이 손상되고 비강의 생리에도 변화가 생겨 공기 통로는 넓어졌지만 여전히 코가 막히는 증상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생활요법이나 약물치료 등 보존적 치료를 먼저 시행하고, 그것이 효과가 없으면 레이저나 저주파 기기 등을 이용해 점막에 열을 가해 비후된 점막이 오그라 들게 하는 시술도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 비강 점막을 잘라내는 수술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을 때, 가장 마지막 순간에 고려해야 하는 방법인 것이다. 한편 비후성 비염은 ‘비중격 만곡증(彎曲症)’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의 비중격은 누구나 약간씩은 휘어져 있다. 그러나 휘어진 정도가 심하면 비강의 공기흐름에 지장을 초래해 코막힘 증세를 유발하는데, 이런 상태를 비중격 만곡증이라 한다. 예를 들어 비중격이 왼쪽으로 많이 휘었다면 왼쪽 비강은 비중격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막혀 숨을 쉬기가 어렵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비중격이 왼쪽으로 휘었기 때문에 오른쪽 비강은 그 만큼 넓어질 것 같다. 그러나 넓어진 공간 만큼 비갑개가 자라거나 때로는 그 보다 많이 자라서 비강을 막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한쪽 비강은 비중격 만곡증 때문에, 다른쪽 비강은 비후성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엔 이것도 해결 방법이 간단해 보인다. 휜 비중격을 수술로 곧게 펴고, 비후된 점막을 잘라내면 코가 뻥 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비강 점막의 미묘한 기능이 손상 받으면 아무리 콧구멍을 넓혀 놓아도 코막힘 증상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결론은 마찬가지다. 반드시 보존적인 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은 최후의 순간에 고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살펴 볼 콧병은 부비동에 생기는 염증이다. 흔히 ‘축농증(蓄膿症)’이라 부르는데, 축농증이란 단어는 ‘고름(농)이 쌓여 있는 증상’ 만을 의미하므로, 부비동염이라고 표현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 부비동염이 생기는 이유는 부비동에서 정상적-비정상적으로 생기는 분비물들이 비강으로 잘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부비동과 비강의 공기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부비동과 비강의 통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부비동-비강 통로의 모양이 해부학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감기나 비염 등으로 통로의 점막이 부은 경우 부비동-비강의 통로가 막혀 부비동염이 초래된다. 부비동염이 있으면 코막힘 증상이 심할 뿐 아니라 누런 콧물이 나오고 심한 경우엔 두통이나 치통, 안구통도 생겨서 고생을 하게 된다. 이 때는 일차적으로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항생제나 점액 용해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일정기간 꾸준히 복용하면 많은 경우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즉, 약물치료를 해서 부비동 입구 주변의 팽창된 점막을 가라앉혀주면 부비동 안에 있던 고름이 배출되고, 부비동 안으로 공기도 들어가게 돼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다. 약물 치료를 해서 부비동염이 나았는데 다시 재발했다고 하소연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격하게 얘기하면 예전의 부비동염이 재발한 게 아니라 다시 부비동염에 걸린 경우가 훨씬 많다. 감기에 걸려 나았다가 다시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환자의 생활 습관이나 환경 등이 비슷하므로 나았다가 다시 부비동염에 걸리는 것이다. 부비동염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경우에도 약물 치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해부학적 구조의 이상 때문에 비강-부비동의 통로 주변이 쉽게 막히거나, 병이 너무 오래 지속돼 부비강-비강 통로 주변 점막이 두꺼워 졌거나 물혹이 생긴 경우, 충분한 기간 동안 약물 치료를 했는데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술은 부비동 내의 고름을 배출해 내고, 염증 때문에 손상된 점막을 제거하며, 부비동의 분비물이 비강 쪽으로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통로를 다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과거에는 입술 안쪽을 째고 입술을 뒤집어 올린 뒤 수술했으나 최근에는 내시경을 이용해서 절개 없이 쉽게 수술할 수 있게 됐다. 수술 후 통증이 적고, 수술 결과도 훨씬 좋다는 게 내시경 수술의 장점이다. 부비동염 수술이든 비중격 만곡증 수술이든 코 수술은 회복이 더디고 회복 과정에서 출혈이나 코막힘 등으로 고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물론 비후성 비염을 레이저로 수술할 경우 아예 입원할 필요조차 없으며, 내시경 부비동염 수술도 당일 퇴원이 가능할 정도로 간편하다. 그러나 모세혈관이 밀집한 점막이 완전히 아물고 새 점막이 자라려면 평균적으로 4주 이상 걸리므로, 이 기간동안에는 2~3일에 한번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 후 하루 이틀 정도는 거즈 뭉치로 코를 틀어막고 있어야 하므로 숨쉬기가 매우 힘들며, 수술 후 2~3주 동안에도 계속 코 점막에 큰 코딱지가 많이 생기므로 숨쉬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 여러차례 생리 식염수로 코를 세척해 주면 코 딱지가 제거돼 숨쉬기가 조금 나아지며, 수술 부위 점막이 재생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수술 후 약 3주간은 장시간의 운동이나 사우나도 피해야 한다. 채 아물지 않은 모세혈관은 조금만 힘을 쓰면 ‘펑’하고 터져 코피가 나게 된다. 심지어 변을 보기 위해 힘을 쓰거나 재채기를 하다 모세혈관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 코 수술은 수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수술 후 점막이 재생되는 과정도 수술만큼 중요하다. 잘못 관리하면 수술해도 효과가 없거나 쉽게 재발할 수 있으므로 수술 뒤에도 병원에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진찰과 처치를 받아야 한다. 후각의 상실이나 기능 장애는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는 시점을 전후해서 비로서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후각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냄새를 못 맡으면 와인의 깊고 옅은 미묘한 맛도 즐길 수 없고, 뒷 뜰의 진한 라일락향에도 정취(情趣)를 못느끼게 되며,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는 아로마의 그윽한 향에 몸을 내 맡길 수도 없게 된다. 산과 바다의 진기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냄새를 못 맡아 식욕이 동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까? 후각 기능의 장애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부비동염 같은 콧병 때문에 초래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지만 병을 치료하면 후각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서 또는 머리에 외상을 입고 나서 후각을 상실하는 경우다. 감기 바이러스가 후각 신경을 침범하거나, 외상으로 후각 신경이 손상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의학으로도 후각을 되살리기가 어렵다. 또 약물이나 유해물질 때문에 후각신경을 상실하는 경우도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후각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감기 등 콧병이 심할 경우엔 병이 진행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후각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엔 상한 음식을 모르고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가스가 샌 것을 모르고 불을 붙혀 화재를 일으키거나, 옆 방에서 화재가 났는데 냄새를 못 맡아 대피하지 못하는 등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후각장애가 있는 환자의 가정에서는 가스 경보기를 달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음식물에는 날짜를 적어 놓는 등 안전사고의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코골이의 치료 코골이란 잠을 잘 때 연구개(입 천장 뒷쪽)와 목젖, 편도선 같은 조직들이 이완되면서 이 곳을 통과하는 공기의 흐름이 물리적으로 방해를 받아 생기는 현상이다.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이 코를 골며, 특히 40세 이상 남자는 5명 중 2명이 코를 곤다. 코골이 자체는 심각한 병이 아니지만 남편의 코골이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쳐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으며, 당사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출장을 가는 것을 부담 스럽게 여기는 등 ‘코골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코골이가 심하면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의 발생률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코를 고는 정도가 심하다면 한번쯤 의사를 찾아서 상의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은 가장 먼저 체중을 줄여야 하다. 살이 찌면 숨 쉬는 통로가 좁아져 코를 더 많이 곤다. 술이나 담배도 코골이를 악화시키므로 자제해야 하며, 수면제나 신경 안정제도 피해야 한다. 너무 높은 베개가 원인일 수 있으므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도 안되면 구강보조장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통 입을 벌리고 자면 혀가 뒤로 밀려서 공기 통로를 막기 때문에 코골이가 생기는데, 입을 다물게 하는 구강보조장치와 혀를 앞으로 당겨주는 고강보조장치를 끼고 자면 도움이 된다. 이는 치과에서 처방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잠을 잘 때 목 안으로 공기(양압)를 넣어주는 특수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코골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전체 코골이 환자의 약 30%에 불과하다. 코골이 수술은 레이저로 연구개나 목젖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지지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며, 편도선이 큰 경우엔 편도선을 레이저 또는 수술칼로 잘라내기도 한다. 비후된 연구개나 목젖 등에 바늘을 찌른 뒤 약 70도 정도의 열을 가해 조직을 파괴하는 ‘온열요법’도 시행되고 있다. 이같은 코골이 수술의 효과는 약 70% 정도의 환자에게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30% 정도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코골이 수술을 할 때는 수술을 했을 때 효과가 어느정도 나타날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한 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비싼 돈 들이고 고생까지 해서 코골이 수술을 했지만 효과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이물감(異物感)이 남아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동헌종 교수는 동헌종 교수의 연구실은 기자가 방문한 수백명의 의대 교수 연구실 중 가장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진찰실도 마찬가지여서, 진료차트나 도구 등이 허트러짐 없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깔끔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환자를 진료할 때도 이런 성격은 그대로 드러난다고 병원 관계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수술한 환자가 퇴원할 때는 반드시 외래 진료실로 불러 직접 코 딱지를 파 주며, 퇴원 후 주의 사항 등을 알려준다. 통상 레지던트가 맡는 일이지만, 그는 “코 딱지를 봐야 코 점막의 상태와 수술 후 경과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안정된 목소리로 누구에게든 깎뜻하게 예의를 갖춰 충분히 알아들을 때까지 병에 관해 설명을 한다. 1958년 생인 동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인턴과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1992~1994년 미국 펜실베니아 의대병원서 다양한 내시경 수술법 등을 배우고 돌아온 뒤 1994년부터 지금까지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특히 코 내시경 분야에서 새로운 수술법들을 국내에 도입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 했다. 부비동염의 재발을 방지하는 새 내시경 수술법과 그 밖의 여러가지 최소침습수술(작게 째는 수술)을 개발하고 발표해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1997년부턴 매년 ‘부비동 내시경 수술 심포지움’을 열어 해마다 400여명의 의사들에게 코 내시경 수술법을 전수하고 있다. 또 신경과나 안과 등 인접 과와의 협진(協進)에도 앞장 서,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코 내시경을 이용해서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했으며, 1995년엔 갑상선 질환으로 안구가 튀어나온 환자에게 코 내시경으로 안구의 압력을 감압(減壓)하는 수술에도 성공했다. 그 밖에도 ‘코 기능 미용 성형 클리닉’을 개설해 코의 기능과 미용을 아울러 향상시키는 수술법들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이같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1998년 유럽 비과학협회 국제 심포지움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미국 이비인후과학회에서 재단학술상을 수상했다. 2003년 부턴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비과학회 학회지인 ‘비과학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건강서적임호준2004/06/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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