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자살 충동… 탈모 탓일까, 탈모치료제 탓일까?

입력 2021.02.18 15:30

대한모발학회 "치료제-우울증 인과관계 명확치 않아"

탈모 치료제
우울증·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논란이 불거진 탈모치료제 ‘프로페시아’

탈모치료제 피나스테리드(제품명 프로페시아)가 우울증·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가 지난 11월에 발표된 데 이어, 최근 제조사에서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탈모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프로페시아는 1998년에 미국에서 첫 출시된 뒤 전세계 52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세계 매출 1위의 탈모치료제다. 국내 복제약(제네릭)만 106개가 있으며, 지난해 기준 탈모치료제 시장은 1000억 규모로 추산될 만큼 크다.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탈모치료제의 여러 의혹과 관련, 대한모발학회 임원진들이 입장을 내놨다. 대한모발학회 최광성 회장(인하대병원 피부과)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이 아닌데, 과도한 걱정으로 환자들이 탈모치료제 대신 검증되지 않은 치료로 돌아설까봐 우려된다”며 “현재로서는 탈모치료제에 의한 우울증 보다, 탈모 자체로 인해 생긴 우울·심리적 위축이 더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피나스테리드 고용량에선 우울증 관련 없어
탈모치료제 피나스테리드 성분이 우울증 등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포스트 피나스테리드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피나스테리드 성분은 탈모를 유발하는 혈중 호르몬(DHT)을 낮춰 탈모 진행을 억제한다. 최광성 회장은 “포스트 피나스테리드 신드롬은 탈모치료제가 뇌 호르몬까지 변화시켜 우울증을 초래한다는 주장이지만, 명확히 밝혀진 건 없다”며 “최근 발표된 논문도 ‘약을 먹으면 우울증이 유발된다’는 약제와의 인과관계를 규명한 것이 아니고 약 복용 중 발생한 증상에 대해서만 단순 비교한 것으로, 논문을 쓴 저자들도 피나스테리드가 원인이라는 증거는 아니며 다만 연관이 있다는 의미라고 언급했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지난 11월 미국의사협회지에 실렸다. 미국 하버드대학 브리검여성병원 연구팀이 세계보건기구가 153개국으로부터 모든 약의 이상반응 사례를 수집한 데이터베이스(VigiBase) 중 피나스테리드의 이상반응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자살과 연관된 것이 356건, 우울증·불안 등 정신적인 문제가 2926건 보고됐다. 이런 이상반응은 피나스테리드 1mg을 복용하는 45세 이하 젊은 남성들만 관련이 있었다.

대한모발학회 원종현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피부과)는 “이 연구는 우울증, 자살과 관련된 이상반응 사례를 모으고 약제와의 연관성을 분석해 보고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우울증 평가 시 대상 환자들의 정신질환 유무나 개인별 성향, 직업이나 가정환경 등 다른 변수들이 고려되지 않고 약 복용 중 발생한 증상에 대해서만 단순 비교했다는 점에서 연구에 인과 관계가 명확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피나스테리드 성분 5mg이 든 고용량 제제는 현재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최광성 회장은 “피나스테리드가 우울증·자살을 유발한다면 약의 농도가 진할수록 부작용 발생도 많아져야 하는데 탈모 치료에 쓰이는 저용량(1㎎)에서는 우울증·자살 관련도가 증가했지만, 전립선비대증 치료에 쓰이는 고용량(5㎎)에선 관련도가 없었다”며 “우울증 등을 유발하는 건 약 보다 탈모 자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탈모는 그 자체로 심리적 위축과 우울감을 불러올 수 있으며, 탈모 치료를 하면 오히려 우울감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최 회장의 설명이다.

◇국내 제품 라벨에 경고 문구 써 있어
제약사는 약물 이상반응에 대해서는 적절한 모니터링과 함께 보건당국에 의무적으로 보고를 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관련 규정에 따라 제품 라벨에 주의사항을 표시를 하도록 한다. 지난 3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피나스테리드 복용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을 제조사인 MSD(미국 머크)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알고 있었음에도 소비자에게 경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 피나스테리드 제품 라벨에는 우울증과 자살 생각을 포함한 기분변형에 대한 내용이 사용상 주의사항으로 기술돼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분변형과 우울증: 피나스테리드 1mg을 투여한 환자에서 우울한 기분, 우울증이 보고되었고, 이보다는 적은 건수로 자살생각을 포함한 기분변형이 보고되었다. 정신학적 증상에 대해 환자를 관찰하고, 만약 환자에게 이러한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 피나스테리드 투여를 중단하고 의료전문가에게 상담하도록 해야 한다’이다.

◇우울한 기분 등 느끼면 복용 중단
국내에서 피나스테리드 복용 후 보고된 이상반응 중 자살 충동에 관련된 것은 2016년까지 총 3건이다. 원종현 홍보이사는 “이는 20년 간 많은 환자에게 처방된 약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심각하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라며 “다만 처방 받은 모든 사람들이 부작용이나 이상반응에 대한 보고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약제는 일정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최광성 회장은 “피나스테리드에 복용 후 우울한 기분 등이 발생하면 의사와 상의하고 복용을 중단하거나 약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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