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4.12.14 10:00

고려 때부터 내려온 전통 秘方을 현대적으로 승화하다

‘우황청심원’의 역사를 거슬러가다 보면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 조선시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중풍으로 졸도해 사람과 사물을 식별하지 못하고, 가래가 끓으며, 말이 고르지 못해 중얼거리는 듯하고 입과 눈이 돌아가고 팔·다리·손·발이 자유롭지 못할 때 쓰는 구급처방약’으로 소개돼 있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우황(소의 담석)은 심장의 열을 내리고 경련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고, 사향(사향노루 향주머니)은 경련을 진정시키고 정신이 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 中 우황청심환 - 韓 우황청심원의 차이

우황, 사향 같은 재료는 구하기 쉽지 않아 조선시대에는 궁궐에서만 쓰거나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선물로 주던 귀한 약이었다. 중국에도 우황청심원과 비슷한 ‘우황청심환’이 있었다. 우황과 사향을 기본으로 여러 약재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우리의 우황청심원에 들어가는 약재가 더 많고 약재의 조합비도 조금 다르다. 조선의 우황청심원은 중국에서도 그들의 우황청심환보다 인기가 높았다. 비슷한 재료라도 질에 따라 약효의 차이가 컸는데, 당시 조선 우황의 품질을 최고로 쳤기 때문이다. 현재 우황청심원을 만드는 국내 제약사는 20곳이 넘는다. 그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광동제약의 우황청심원이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71.3%였다. 매출은 매년 20% 이상씩 늘어 지난해 300억원이 넘었다. 사실 광동제약은 우황청심원의 후발 주자였다. 일제시대인 1925년부터 우황청심원을 만들기 시작한 회사가 있는 데 비해 광동제약은 1974년 처음으로 우황청심원을 출시했다. 당시 광동제약의 창업주인 고(故) 최수부 회장은 대대손손 써오던 한약이 양약보다 효과가 적은 것으로 저평가되는 것이 안타까워 한방의 과학화를 통해 한방 의약품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광동제약 우황청심환
광동제약 우황청심환

◇ 질 높이고 현대화하는 데 주력한 광동제약

후발업체인 광동제약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주인 최 회장의 역할이 컸다. 광동제약이 우황청심원 시장에 뛰어든 1970년대 초만 해도 이름만 우황청심원이었지 가짜 우황이나 사향을 넣거나 질 낮은 재료로 만든 제품이 난립했다. 최 회장은 최상급 재료를 구하기 위해 홍콩, 대만 약재시장을 발이 닳도록 들락거렸고, 광고에도 직접출연해 깐깐하게 우황과 사향을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최 회장이 등장한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재료로 양심적으로 만든다’는 인식을 심어 줬다.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비해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우황청심원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서도 약효를 인정받고 있다.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내과 고창남 교수가 20대 남성 10명에게 이 병원에서 만든 우황청심원을 하루 두 번씩 먹게 한 후 뇌혈류초음파를 이용해 중대뇌동맥 혈류, 뇌혈관 반응도, 평균혈압 및 맥박수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황청심원을 먹은 후 뇌혈류가 증가했으며, 하루에 한 알 먹을 때보다 두 알 먹을 때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됐다. 효과는 약을 먹은 지 30분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2시간 후에 가장 높게 나왔으며, 3시간 이후에는 약효가 점차 줄어들었다.

또 20~35세의 성인 남성 6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또다른 실험에서 우황청심원을 먹으면 자율신경계, 특히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몸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되고 부교감신경이 억제됐다가 이 두 신경계가 균형을 이루면서 진정작용이 생기는데, 우황청심원이 두 신경계가 균형을 이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우황청심원 제조가 불가능해질 뻔한 때도 있었다. 1996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희귀동식물 보호 규약에 따라 주재료인 사향을 얻을 수 있는 사향노루의 거래가 금지됐다. 이에 따라 1g에 3만원 정도 하던 사향이 10만원으로 폭등했고 진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광동제약은 사향을 대체할 물질을 연구한 결과, 오래전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사향고양이의 항문에서 채취한 영묘향이 사향과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1년부터는 임상시험을 통해 영묘향과 사향이 효과와 안전성 면에서 비슷하고, 진정작용과 심기능이상 시 억제작용은 영묘향이 오히려 사향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밝혀내 본격적으로 사향을 대체했다. 지금은 사향과 영묘향, 모두 쓴다.


◇ 우황청심원 금박 벗겨내고 드십니까?

우황청심원은 원전 처방 그대로 만든 ‘원방 우황청심원’ 과 원전에서 처방을 변경해 약의 용량을 줄여 만든 ‘변방 우황청심원’이 있다. 보통 원방 우황청심원에는 한 알당 우황이 45mg, 사향이 38mg(사향대체영묘향의 경우 영묘향 114mg)이 든 반면, 변방에는 우황이 14mg로 원방의 3분의 1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원방과 변방 모두 뇌졸중이나 고혈압, 두근거림, 불안 등에 쓴다. 뇌졸중 안정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 둘을 비교한 임상시험에서 운동장애와 안면마비에는 원방이 조금 더 효과가 있었지만, 언어장애나 의식장애에는 두 약이 차이가 없었다. 두통이나 머리 무거움, 어지러움 등 고혈압 증
상에서도 두 약의 차이는 없었다. 환으로 된 우황청심원은 겉이 금으로 덮혀 있는데, 이는 금 도금이 아니라 진짜 금이다. 이 금박이 포장재인 줄 알고 손톱으로 긁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금박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엄연한 약재로 긁어내지 않아도 된다.

광동제약은 1990년에 효소 처리에 의한 우황청심원 제조 방법에 특허를 받았다. 이는 우황청심원을 마시는 형태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고, 광동제약은 이 특허를 바탕으로 이듬해 ‘우황청심원 현탁액’을 출시했다. 환 형태의 기존 우황청심원은 맛이 쓰고 씹기에 꾸덕꾸덕한 질감 때문에 익숙지 않은 젊은 층들은 많이 찾지 않았다. 또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는 한계가 있었다. 우황청심원 현탁액은 마시기 편하고 효과도 빨라 젊은 층도 우황청심원을 찾게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해외에도 진출했다. 1991년부터 미국과 일본에 수출되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베트남에 진출했다. 일본에는 우황청심원과 또 다른 한방약인 경옥고를 연구하는 약사들의 모임인 ‘경옥회’가 구성돼 있다. 이들은 직접 광동제약을 찾아와 우황청심원과 경옥고가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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