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소울푸드] 山 사나이가 히말라야만큼 사랑한 '닭볶음탕 수제비'

입력 2020.01.17 09:21

[6] 엄홍길 산악인

엄홍길 산악인

압력솥으로 라면을 끓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특별해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발 4000~5000m에서 생기는 일이다. 그 높은 곳을 왜 오르는지, 압력솥까지 꺼내들고 꼭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산악인 엄홍길(60) 대장에게 물어보면 된다.

"8000m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 그 높이에 베이스캠프를 차립니다. 기압이 낮으니까 그냥 솥으론 라면이 안 끓여지거든요."

압력솥까지 꺼내드는 판에 라면만 끓이겠나. 엄 대장이 후배들을 위해 요리사를 자처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메뉴가 닭볶음탕이다.

"돼지고기는 쉽게 상합니다. 소고기는 종교적인 이유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현지 조달 가능한 게 닭이죠."

조달 가능하다고 함부로 취급하진 않는다. 네팔 현지인들에게 히말라야는 신(神)이며, 신 앞에서의 살생은 금기다. 경건과 정성으로, 엄 대장은 국물 자작하고 걸쭉한 자신만의 닭볶음탕을 만들어 후배들을 먹이곤 했다. 걸출한 산 사나이의 지극한 즐거움이랄까.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수제비죠. 닭볶음탕 수제비를 숱하게 먹었습니다. 그 옆엔 현지에서 담은 김치에, 창란·아가미 같은 젓갈이 놓이죠. 베이스캠프에서 한 달은 지냅니다. 입에 맞는 음식을 정말 잘 먹어야 합니다."

엄 대장은 경남 고성이 고향인데 세 살 때 원도봉산 중턱으로 이사했다. 부모님들이 그곳에서 오랫동안 식당을 했다.

"빈대떡, 도토리묵, 백숙과 함께 어릴 적부터 보고 먹었던 게 닭볶음탕입니다. 잊지 못하죠."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죄다 오른 사나이. 엄홍길의 전설 같은 등정엔 늘 닭볶음탕 수제비와 닭볶음탕 수제비의 레시피를 알려준 부모님의 성원이 있었겠다.

쌀은 껍질을 벗겨내(도정) 얻은 알곡을 찌거나 삶아 먹는다. 밀은 가루를 내(제분) 먹는다. 여러 겹의 껍질을 벗겨내기도 어렵고, 힘들게 알곡을 얻어도 쉽게 부서지기 때문이다. 면은 밀의 약점이 탄생시킨 인류의 발명품이다.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만큼 사랑했던 수제비 역시, 밀의 반전이 일궈낸 매혹의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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