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 되돌리기 힘들어… 건강한 노인도 보름 누워 지내면 노쇠 환자 된다

입력 2019.02.26 09:09 | 수정 2019.02.26 09:11

[100세 시대, 노쇠는 病이다] [2] 노쇠,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질병·수술로 한동안 걷지 않으면 근육 빨리 빠져 중증 상태로 발전
영양·활동량 부족해도 노쇠 진행… 체중 감소 등 신호 놓치지 말아야

나이가 들면 누구나 노화가 진행돼 허리가 굽고 운동 능력이 감소하는 등 신체 변화와 기능 저하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노화현상이 어떤 요인에 의해 급속하게 진행돼 걷기나 외출하기, 식사 준비 등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가 힘들게 된 상태를 노쇠라 한다. 식사하기나 대소변 보기 등 생명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는 '장애'라 하는데, 심한 노쇠는 장애와 겹쳐서 나타난다.

◇질병·사고, 중증 노쇠 직결 사례 많아

노쇠에 이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질병이나 사고, 수술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해 급격하게 진행되기 쉬운 '2차성 노쇠'이고, 다른 하나는 완만한 기능 저하로 인해 진행되는 '1차성 노쇠'다. '2차성 노쇠'가 '1차성 노쇠'보다 약 2배 더 많다.

건강한 노인이 노쇠 환자 되는 과정 외
노쇠를 초래할 수 있는 요주의 질병은 뇌혈관질환, 암, 만성폐쇄성폐질환, 당뇨병, 무릎관절염, 척추관협착증, 간부전 등이다. 이들 질병은 신체 기능을 떨어뜨리고 면역력을 저해해 노인을 급속도로 쇠약하게 한다. 낙상을 비롯한 사고도 노쇠의 원인이 되는데, 특히 대퇴골(넙적다리뼈)과 골반, 고관절 골절이 빠른 노쇠를 부른다.

이와 같은 질병이나 수술, 사고가 노쇠의 원인이 되는 이유는 상당 기간 동안 누워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2~3주만 누워있으면 다시 걷기가 힘들다. 대퇴골절이나 뇌졸중 등으로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4주 동안 누워 있으면 약 40%는 다시 걷지 못한다는 해외 연구도 있다. 인천은혜병원 가혁 원장(대한노인병학회 이사)은 "노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걷지 못하는 것"이라며 "걷지 않으면 근육이 더욱 빨리 감소해 중증 노쇠 상태에 빠지므로 어떤 경우든 다소 억지로 걷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체 기능 저하,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질병 등 다른 요인이 없는 '1차성 노쇠'는 활동 부족이나 부실한 식사, 우울증이 주요 원인이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지면서 움직이기가 싫어지는데, 귀찮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급속도로 노쇠가 진행된다. 식사도 문제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를 골고루,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또는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와 생선, 콩류 섭취가 부족하면 근육 감소에 가속도가 붙는다. 정신적인 요인도 중요하다. 노인은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등으로 심리적으로 불안, 우울하기 쉽다. 배우자나 친구의 죽음, 동년배 모임에서의 따돌림 등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노쇠 본격 진행되면 회복 쉽지 않아

노쇠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정상으로 되돌리기가 어렵다. 경희대 융합의학과 김미지 교수팀이 노인 1187명을 2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쇠 환자의 3.1%만이 전(前)노쇠 단계로 회복됐다. 노쇠 환자가 곧바로 정상 상태로 좋아진 경우는 1%에 불과했다.

노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육 감소 등 노쇠의 조짐이 나타나는 전노쇠 단계에서 조기 발견해 적절한 조치를 받아야 한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한국노인노쇠코호트 및 중재연구 사업단 단장)는 "노쇠의 5가지 요소인 체중 감소, 극도의 피로감, 활동량 감소, 보행 속도 저하, 손아귀힘(악력) 약화 중 1~2개라도 있으면 전노쇠 단계로 진단한다"며 "이때 조기 대응을 하면 정상으로 회복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원장원 교수는 또 "늙으면 당연히 기력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노쇠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노쇠를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장애가 오고 다른 질병에도 취약해져 사망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의 연구 조사 결과, 노쇠 노인의 5년 후 사망률은 정상 노인에 비해 4~7배 높다.


[1차성 노쇠] 하루 14시간 집안에만… 힘없어 100m도 못 걸어

충북 충주시에 사는 정말숙(가명· 79)씨는 특별한 질병이 아니라 부실한 식사와 운동 부족이 원인이 돼'1차성 노쇠'가 진행됐다. 정씨는 언제부터인가 육류와 생선은 물론 달걀, 콩류 등 단백질 섭취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입맛이 없어 쌀밥 몇 술 뜨면 숟가락을 놓는다. 사교성이 없어 동년배 모임에 나가지 않는 등 바깥 나들이도 거의 하지 않았다. 1년 전부터는 불안, 우울증까지 생겨서 하루 14시간 동안 집 안에서 앉아서 지낸다. 최근에는 어지럼증 때문에 두 번 넘어져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뒤로는 '또 넘어질까봐 무서워서' 외출을 더 줄였다. 수면 시간도 4시간 이하다. 요즘은 기력이 많이 달려 100m를 혼자서 걷기가 힘든 상태다. 정씨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김미지 교수는 "활동과 영양 부족에 심리적인 문제와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노쇠 사례"라고 말했다.


[2차성 노쇠] 5년 전 뇌경색… 노쇠 악화돼 요양병원으로

중견기업 임원을 지낸 최영식(가명·82)씨는 뇌경색이 발단이 된 '2차성 노쇠'의 대표적 사례다. 최씨는 1년째 서울의 한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 지낸다. 최씨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고, 식사는 요양보호사가 떠먹여 준다.

최근엔 연하(삼킴) 장애가 심해져서 이마저 쉽지 않다. 대소변은 기저귀로 받아낸다.

최씨는 건강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5년 전 뇌경색을 겪고나서 인생이 달라졌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왼쪽 팔다리가 불편했지만 초기에는 지팡이도 마다하고 똑바로 걸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최씨의 건강 상태는 지속적으로 나빠져 소파에 누워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입맛이 없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사이 허벅지와 팔뚝 근육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한집에 사는 장남의 부축을 받고도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최씨는 1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최근에는 욕창에 치매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주말마다 요양병원을 찾는 장남 민수(가명·57)씨는 "건강하고 자신감 넘쳤던 분이셨는데, 뇌경색 초기에 노쇠까지 염두에 두고 제대로 관리해드리지 못해서 후회된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 대한노인병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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