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로봇 ➀] ‘테슬라’ 타듯… 로봇 입고 자율보행 하는 날 온다

입력 2021.11.10 07:15

웨어러블 로봇, 재활 치료에 적극 활용
비싼 비용과 인력 부족이 숙제

1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은 이 씨(45세)는 최근 웨어러블 로봇을 장착하고 오랜만에 ‘걷는 경험’을 했다. 착용감도 조작법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고 후 처음 몸을 일으켜 두 다리로 걷게 된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웨어러블 로봇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이들은 이 씨뿐만이 아니다. 현재 전국 곳곳 병원에서 환자들의 하지 근육을 단련하고 보행 훈련을 보조하는 데 웨어러블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자들이 로봇을 착용하고 일어나 걷는 것은 물론,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듯 자유롭게 밖을 거니는 날 또한 분명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걷는 모습
입는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이 병원에 속속 도입되면서 하지마비 환자 재활치료에 사용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산업계·전장 이어 병원에서도 ‘입는 로봇’ 활용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은 근력과 운동 능력을 보조·증강시키기 위해 팔, 다리 등 신체 일부나 전신에 착용하는 로봇을 뜻한다. 초기에 산업·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에 대한 연구·개발이 주로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신경·근골격계 질환 환자, 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 재활 치료, 보행 훈련에도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착용 부위에 따라 상지·하지 착용형으로 구분되며, 의료 분야에서는 대부분 다리에 착용하는 하지 착용형 웨어러블 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과거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의 경우 치료 센터에 설치·고정한 뒤 환자가 기기에 탑승하는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재는 크기와 무게가 점차 소형화, 경량화되면서 단어 그대로 ‘입는 로봇’ 또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착용 전 건강상태·신체규격 확인… 심장질환자 제한될 수도
웨어러블 로봇을 입은 환자는 관절 보조를 통해 앉거나 서는 것은 물론, 가벼운 걷기와 계단 이용도 가능하다. 다만, 보행이 어려웠던 환자가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곧바로 걸을 수는 없다. 안전한 웨어러블 로봇 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 적응 훈련을 거쳐야 한다.

착용 전에는 우선 환자의 몸 상태와 신체 규격 등을 토대로 착용 가능 여부부터 확인한다. 오랫동안 기립·보행이 제한된 환자 특성상 이미 근육이 많이 소실되고, 영양·건강상태에 따라서는 다리에 기기가 정확히 부착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장 질환, 기립성 저혈압, 골다공증 환자의 경우 갑작스런 기립·보행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으로 사용이 제한되기도 한다. 또한 장기간 보행을 하지 않았던 만큼, 이용 전 기립·보행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되면 신체 규격을 측정한 뒤 로봇 작동 원리, 착용 후 자세 등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는다. 이어 지팡이를 비롯한 보조 도구를 선택하고, 균형 훈련, 앉기·서기 훈련과 같은 보행 전 훈련을 거친다. 끝으로 어깨, 팔꿈치, 손목 등 통증 여부를 확인한 뒤 물리치료사 지도·감독 하에 개인목표에 따른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대한로봇물리치료학회 정인수 부회장(서울특별시 서남병원 물리치료사)은 “피부가 약한 환자의 경우 기기와 마찰하는 과정에서 무릎, 발목 등 바깥으로 튀어나온 부위에 쉽게 상처가 생길 수 있어 사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별로 트레이닝 기간 천차만별… “의료진 숙련도 중요”
트레이닝 단계에서는 먼저 환자의 근력, 운동 능력 등을 토대로 로봇을 선택한다. 근력이 약한 환자의 경우 고정형 기기에서 훈련한 뒤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며, 두 발로 서는 연습(기립 훈련)부터 실시한다. 기립이 익숙해지면 보행을 위해 왼쪽 오른쪽 체중이동 연습(스텝)을 한 뒤 물리치료사 보조 하에 천천히 발걸음을 뗀다. 물리치료사는 환자 뒤에서 걸음 보폭, 속도와 함께, 로봇 모터가 고관절, 무릎관절, 발목관절 등에 가하는 구동력을 조정한다. 환자의 로봇 사용 능력과 신체능력이 올라갈수록 로봇이 가하는 힘은 줄어든다. 트레이닝 기간은 환자별로 천차만별이다. 보통 기기에 익숙해지는 데 2~4주 정도, 발을 떼는 데는 1~2개월까지 소요되지만, 환자의 신체 상태, 운동신경, 보행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리치료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치료사의 로봇을 다루는 기술과 환자의 기립·보행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능력에 따라 기간이 짧아질 수 있으며, 로봇을 착용하지 못하는 환자가 로봇을 착용하게 될 수도 있다. 정인수 부회장은 “로봇을 도입하면 물리치료사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많아진다”며 “물리치료사가 환자들을 세밀하게 평가하고 조절·관리해야 하는 만큼, 전문적인 로봇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분 만에 수백걸음… 치료 효과 높이고 업무 강도는 낮춰
웨어러블 로봇을 이용한 재활치료는 여러 측면에서 효율이 높은 치료법으로 평가된다. 물리치료사 2~3명이 환자 한 명을 사방에서 보조할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환자가 능동적으로 치료에 참여해 많은 신경학적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기기를 다루는 데 능숙해질수록 업무 강도가 줄어드는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정인수 부회장은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할 경우 30분 동안 수백걸음을 걷게 되는 만큼, 단기간 내에 높은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며 “기존 치료법보다 빠르게 균형능력을 회복하고 같은 시간 기준으로 더 많은 걸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배슬론 대회에 참가 중인 모습
하반신 마비 장애인 김병욱(47) 선수가 지난해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 대회’에 출전해 착용형 로봇을 입고 경기를 하고 있다. 김병욱 선수는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출전한 이주현(20) 선수는 3위에 올랐다./사진=연합뉴스DB

◇병원 수십 곳에 보급… “자율주행 車처럼 이용하는 날 올 것”
현재 웨어러블 로봇은 전국 대학병원과 재활전문병원 등 수십여 곳에 보급·사용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웨어러블 로봇과 고정형 로봇 등이 들어선 로봇재활센터를 별도로 운영 중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로봇 재활 치료의 효과가 입증되고 소아용 로봇을 비롯한 로봇의 종류 또한 다양화되면서 치료를 받는 환자와 도입하는 병원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현장 의료진, 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기술 또한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전문가는 기술 발전을 통해 기기 무게와 착용감, 안전성 등과 같은 문제가 해결되고,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카메라 센서 등과 같은 기술이 접목된다면 자동차처럼 자율주행이 가능한 날 또한 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정 부회장은 “지금은 환자가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기술들 위주라면, 향후에는 자동차처럼 로봇이 장애물을 감지해 신호를 주거나 걸음을 멈추는 기술, 나아가 입력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기술까지 개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멀고 먼 상용화의 길… “인력양성·비용 지원 절실”
웨어러블 로봇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기술적인 부분과 비용, 인력 양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술적으로는 기기 무게를 줄이는 것과 배터리 효율성을 높이는 일, 쉽게 말해 작고 가벼운 로봇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다. 다행인 점은 로봇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학회의 여러 지원, 기업들의 기술 연구·개발 등을 토대로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배터리만 해도 불과 4~5년 만에 크기와 무게가 크게 줄었다.

문제는 비용과 인력이다. 아직 개인 상대로는 로봇을 판매하지 않는 데다, 판매한다고 해도 최대 1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쉽게 부담할 수 없다. 환자 몸에 맞게 제품을 주문 제작할 경우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병원에 기기가 보급되고는 있으나, 이 역시 의료수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대부분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에게 폭넓게 활용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관련 인력의 경우 로봇 사용이 가능한 물리치료사가 적다보니, 향후 기기가 보급되고 상용화되더라도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 정인수 부회장은 “해외에서는 기기를 장기간 임대하는 리스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서도 이 같은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장애 등급에 따라 전동휠체어 구매 비용을 지원하듯, 웨어러블 로봇 또한 사용료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기를 다루는 의료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현재는 이 같은 부분이 배제되고 있다”며 “상용화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전문인력 양성에도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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