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⑥] 이광민 원장의 '암환자 정신건강' 이야기

입력 2020.06.03 14:30

마인드랩공간 정신건강의학과 이광민 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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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국내에는 암 진단 후 5년 넘게 생존하는 환자가 100만명이 넘는다. 암 투병 중인 환자까지 포함하면 170만명 이상. 환자를 비롯한 '암 경험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당장의 암 치료에 허덕이며 정신 건강을 챙기는 데 소홀하다. 이에 최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암 환자 정신건강 관리'가 주목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정신종양학'이라 부른다. 실제 암환자들이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신체 건강 면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계 암 진료 가이드를 선도하는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미국 모든 암 병원에 '정신과'가 아닌 '종양학' 소속 정신과 의사를 배치할 것을 명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대학병원급 암병원에도 대부분 정신과 의사가 있다. 하지만 암치료를 끝낸 100만명 이상의 환자마저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수시로 대학병원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에 이광민 원장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암경험자들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정신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난 2019년 12월 '마인드랩공간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문을 열었다. 암환자 정신건강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1세대' 의원급 병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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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광민 원장은 암환자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대학 때부터 배웠던 '신념'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마음(mind)과 몸(body)은 연계돼 있다는 것.

"몸이 아프면 정신이 편할 수 없어요. 사람은 감기만 걸려도 정신이 몽롱하고 피로, 우울을 느껴요. 반대로 정신이 힘들 때는 면역력이 떨어지죠.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정신'에만 신경 쓰면 중요한 다른 한쪽을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찮게 외국에서 암환자 정신건강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님을 만나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암환자가 흔히 겪는 정신질환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는 단호하게 암환자가 겪는 정서적 어려움을 '병'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암에 걸렸을 때 불안, 우울, 걱정을 하나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것은 병이 아닌,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학문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암환자는 40~50%인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암환자, 암생존자가 가장 흔히 겪는 '정서적 어려움'은 우울, 불안, 불면이다. 불면은 전 치료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편이고, 이 밖에의 증상은 시기별로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병원 내부 사진
마인드랩공간정신건강의학과

"암진단 초기에는 불안, 시간이 지나면 우울을 느끼고, 치료받은 후에는 피로, 인지기능과 기억력 저하를 경험합니다. 항암 치료 도중에는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케모포그(Chemofog)'를 겪기도 해요"

암 치료를 끝낸 사람들도 '암이 재발하면 어떡하나' '주변 사람들이 암 환자라고 차별하면 어떡하나'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암 치료 후 주기적인 검진을 받을 때 환자의 불안감이 오히려 커지는 경우도 많다.

의사들은 암환자가 정신과 진료를 받아, 불면, 불안 등이 조금만 개선돼도 삶의 질이 몰라보게 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암환자 정신건강 치료의 1차 목표는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거예요. 단, 암의 단계에 맞게 정신적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에 의사가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게 중요하죠. 예를 들어, 일부 환자는 담당 의사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자기 증상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을 제대로 묻지 못해 우울, 불안을 겪기도 하거든요. 이렇듯 환자가 처해있는 특수한 상황까지 세밀히 고려하면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 밖에 '외상후 성장'을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 충격적인 암의 경험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경험하면 오히려 인격적 성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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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정신이 건강하면 '회복탄력성'이라는 자기 치유력으로 치료를 더 잘 극복해요. 이 경우 암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까지 성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암 치료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울, 불안, 불면이 있으면 체내 염증 물질이 많아져요. 암을 잘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정서적 안정을 찾는 게 중요한 것이죠. 또 그래야 의사에게 궁금한 정보를 더 많이 물어볼 수 있고, 병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할 수 있어요. 치료받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암인데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암 외에도 심각한 정서적 어려움을 동반하는 병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루푸스'입니다. 루푸스는 면역계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인데 완치가 어려워 평생 관리가 필요한 병이에요.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하는 환자들도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투석 직전 불면, 불안, 초조를 느낍니다. 이런 분들도 정신과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편, 암 환자는 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질환에 한 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는 산정특례가 적용된다. 다만, '해당 질환 및 관련 합병증'이라 명시된 부분이 모호한 탓에 이때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적용돼왔다. 이광민 원장은 이에 대해 "암환자는 암이라는 직접적인 원인에 의해 불안, 우울 등이 생겨 정신과 진료에도 당연히 산정특례가 적용돼야 한다"며 "정부에서 모호한 부분 없이 산정특례 적용이 가능하도록 명확한 기준 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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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광민 원장의 진료 철학은 무엇일까? 우선 병원 이름 '마인드랩 공간'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며 의사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실제 기자가 느낀 병원 분위기는 마치 '재즈바' 같았다. 또 이 원장은 흰 의사 가운을 입지 않는다. 역시 환자의 마음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다. 충분한 상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진료는 100% 예약제로 진행한다. 미예약자는 응급 상황이 아니면 돌려보낸다. 더불어 약물은 '딱 맞을 정도로 가장 적은 용량만' 쓴다.

"정신과 치료에 약물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게 50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전까지는 상담, 대화 중심이었죠. 저도 약에 너무 의존하지 말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중증 환자는 예외일 수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심리적 거부감으로 정신과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마음의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쌓이는 것이 '쓰레기'죠? 음식물 쓰레기, 종이, 플라스틱 등을 구분해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 충격적인 사건들, 원치 않는 관계의 어려움을 겪어요. 이것들이 마음에 쌓이는 쓰레기예요. 마음의 쓰레기를 혼자 버릴 수도 있지만, 양이 너무 많으면 '전문 업체'를 불러야 합니다. 이 역할을 정신과가 하는 거예요. 물론 가족, 친구, 멘토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를 위한 다른 옵션이 없을 때 정신과 진료를 하나의 중요한 옵션으로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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