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⑯] 김형인 원장의 '조현병' 이야기

입력 2020.12.31 17:04

서울희망정신건강의학과 김형인 원장 인터뷰

차분하지만 넉넉한 미소. 그런 마음으로 광명의 정신과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가 있다. 바로 서울희망정신건강의학과 김형인 원장. 김 원장은 국내 몇 안 되는 정신과 '병상'을 운영하는 의원급 병원 원장이다. 지난 1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국내 권역별 1등급 정신과 의료기관 분포현황에서 경기권에서 선정된 14개 기관 중 유일한 '의원'에 꼽히기도 했다. 그만큼 입원치료를 잘하는 우수병원이라는 뜻. 의원급 병원인데 병상까지 운영하며 중증질환을 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정신과 환자들은 이상 증상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꽤 많아요. 이런 환자들이 증상 회복을 위해 자신을 믿고 맡기며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병동까지 운영하게 됐습니다"

광명에 개원한 이유는, 당시 광명에 입원 병실이 있는 정신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명에서 중증 정신과 환자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어요. 이들에게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고자 광명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역 특성상 특정 환자군이 아닌, 청소년부터 치매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질환의 환자를 보는 편이다. 그 만큼 많은 공부를 해야하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진료철학은 '환자에게 해(害)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환자가 당장 요구하는 약을 처방하지 않을 때도 있다. 수면제로 많이 쓰이는 '졸피뎀'이 대표적이다. 불만인 사람도 있지만, 그 약이 아니더라도 도움받을 수 있는 것이 많다면 더 나은 다른 방법을 권유한다.

김형인 원장의 목소리는 마치 '성우'처럼 깊고 편안하다. 비결을 물었더니, 서울대 의대 재학시절 밴드 보컬을 맡아 목소리 단련을 했던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형인 원장 사진
김형인 서울희망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조현병, 환자가 느끼는 1차적 감정은 '공포감'
조현병 환자 관련 사건이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대부분 좋지 않은 사고 때문이다. 김형인 원장에게 조현병이란 대체 어떤 병인지, 치료가 되는 질환인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조현병은 지각·인지기능 등이 황폐화되면서 6개월 이상 사회적 기능이 퇴화했을 때 진단 내려지는 병이다. 크게 ▲편집형 ▲​와해형 ▲​긴장형 3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편집형은 의심, 망상 등에 의해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착각을 하게 되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다. 와해형은 사고과정이나 행동과정상의 흐름이 잘 연결되지 않고 끊기면서 지리멸렬하는 과정을 보인다. 긴장형은 요새 유병률이 많이 낮아졌는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아무 정신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다는 특징이 있다. 길면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이상 증상이 갑자기 발생할까? 김형인 원장은 "뇌의 일부 기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다른 부분이 커버하면서 초기에는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사회에 아슬아슬하게 적응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증상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증상이 심해지기까지의 기간은 다양하다.

조현병이 발병하는 연령대는 비교적 이르다. 여자는 주로 20대에 발병하는데, 남성은 이보다 빠른 청소년기다. 옛날에는 '조기치매'라 불리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어린 나이에 발병할수록 예후는 좋지 않다.

김형인 원장 사진
김형인 서울희망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조현병의 발병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족력이 있는 경우 확실히 발생 위험이 높다. 조현병은 전인구의 1%에서 발생하는데, 가족 중에 조현병 환가 있다면 유병률이 대략 5%로 높아진다. 

조현병은 증상이 심해지면 자신의 병을 인지하지 못한다. 조현병의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다. 하지만 일부 초기에 증상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도 있다. '환각' '망상'을 느끼면서 스스로가 걱정돼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실제 아무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혼자 듣는 등의 환각 증세가 느껴지면 바로 정신과를 찾는 게 좋다. 조현병은 조기에 치료할수록 예후가 좋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됐다. 주변에 조현병이 의심되는 사람이 있을 때도 최대한 빨리 치료받게 돕는 게 좋다.

"논문에는 증상이 나타나고 1~3개월 이내에 치료받았을 때 예후가 가장 좋다고 나와요. 치료까지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완치율이 떨어지죠"

조현병 환자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환자를 설득할 때 그의 말이 '옳다' 그르다'에 대한 논쟁은 벌이지 말자.

"환자 주장에 대한 논쟁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요. 환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꼴밖에 안 되죠. 환자의 주장을 인정해주고 무섭거나 힘들었을 수 있겠다고 공감해주는 게 좋아요. 그리고 특정한 부분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의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해보세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다행히 조현병은 치료가 되는 병이다. 김형인 원장은 "과거에는 치료로 사회복귀하는 사람이 30%에 불과했는데, 이제 50%까지 늘어났다"고 했다. 나머지 30%는 증상을 유지하는 사람들, 20%는 다시 입원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완전히 예전의 사회기능을 회복해서 지내는 사람들이 전체의 20%에 달한다. 다만, 일상복귀가 가능해져도 약은 계속 복용하기를 권장한다. "조현병은 만성퇴행성 경과를 밟는 병예요. 약을 아예 끊게 되면 재발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져요. 약을 끊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김형인 원장 사진
김형인 서울희망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조현병 환자와 주변인을 위한 마지막 조언을 물었다.

"조현병을 비하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과학을 통해 조현병 역시 하나의 질병이고 치료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치료가 되는 병을 잘 치료받아서 자신의 기능을 보존하면 문제가 없어요. 조현병이 발생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치료하시면 돼요. 이제는 불치병이 아니니,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고 주변 가족도 잘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편, 김 원장은 조현병 환자가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공포감이라고 했다. 그들 역시 병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라는 뜻이다. 각종 사회 범죄를 일으킬 때도 병에 시달리다가 이것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범죄를 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조현병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사람은 사랑하고 살아야 정신적으로 행복해
아직 정신과 방문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김형인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을 어떻게든 도와드리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이제는 각종 연구와 실험을 통해 그 방법도 많이 알게 됐어요. 정신과에서 편하게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반적인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식사 ▲​사랑 ▲​수면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태어난 것 같아요.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됐을 때 행복, 다행감, 기분 좋음을 느끼죠. 그런데 사랑을 어떻게 받는지보다 어떻게 주는지가 더 중요해요. 내가 받았을 때보다 베풀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의 양이 더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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