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⑪] 강지언 원장의 '제주도민 정신건강' 이야기

입력 2020.09.22 07:30

연강의원 강지언 원장 인터뷰

원장 사진
강지언 연강의원 원장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섬.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해 언제든 '훌쩍' 떠나고픈 곳. 바로 제주도다.

이런 낙원(樂園)에 사는 도민들은 정신도 건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의외로 알코올·도박 등의 '중독'에 빠진 불행한 사람이 많은 곳이 바로 제주도다. 강지언 원장은 이런 낙원 속 '불행'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 정신과 의사다. 강 원장은 의료법인 연강의료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고, 동시에 한국중독정신의학회 회장, 제주특별자치도 의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에 소규모 정신과의원(최대 20~30병상)만 있던 시절, 처음으로 180병상의 규모가 큰 전문 정신과 전문병원 '연강병원' 문을 열었다(2006년). 현재는 병상을 더해 200병상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병원 모습
연강병원/사진=연강의료재단 홈페이지 캡처

강지언 원장은 현재 의원에서 외래 진료를 보고, 그 밖에 병원과 재단의 행정적인 일을 비롯, 제주도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제주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제주금연지원센터, 제주특별자치도 세월호피해상담소,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제주센터를 위탁 운영하면서 제주 공공의료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제주도에 중증 정신과 환자가 생겨도 치료할 곳이 마땅치 않았죠. 어쩔 수 없이 정신요양원으로 가거나 육지부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져야 했는데, 정신요양원은 의학적인 치료를 포기하고 환자가 거주할 수 있게만 관리해주는 곳이에요. 그리고 육지부 정신병원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지 못했죠. 제주도 안에서 환자가 제대로 입원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신병원을 개원했고, 벌써 14년이 됐네요"

강지언 원장은 서울에서 수련을 받고 대학원을 다니며 결혼을 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터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제주도 서귀포 출신이에요. 제주 출신은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귀소본능' 같은 게 있어요(웃음). 물론 고민도 많이 했지만, 처음에는 선배의 제의로 제주에 오게 됐고, 제주도민의 정신 건강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 완전히 자리 잡게 됐죠. 제주도민의 정신과적 문제가 의외로 심각해요"

제주도는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흡연을 비롯한 알코올, 도박 문제가 많은 편이다. 청소년 도박 경험률은 전국 평균의 2~3배 이상이다. 자살 사망률은 전국 2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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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언 연강의원 원장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아주 먼 과거부터 술로 인한 문제가 많았어요.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높았기 때문에 남성에게 비교적 시간이 많았고, 그만큼 술에 빠질 확률이 높았던 거죠. 그래서 그런지 술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관대하기도 해요. 회 같은 술안주도 많잖아요. 또 제주도는 작기 때문에 술을 마셔도 대리운전을 부르면 20~30분 이내로 집에 도착해 이동 부담도 적어요. 직장문화도 서울처럼 출근 9시, 퇴근 6시가 칼같이 정해져 있기보다는 느슨한 편이거든요. 술 마시고 다음 날 조금 늦게 일어나도 이해해주는 문화가 있어요. 여러 사회적·환경적 원인이 작용한 거죠"

제주도에 있는 경마공원 '렛츠런파크' 이용자도 굉장히 많은 편이다. 경마가 끝날 때는 주위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이용자 상당수는 중년 남성이고, 도박 중독이 의심되는 사람들이다. 법적으로는 1인당 10만원까지 금액을 걸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한편, 청소년들은 어머니가 밖에서 일하느라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인터넷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금전적 문제가 악화돼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고, 그제야 가족이 문제를 인식해 정신과를 찾는다.

강지언 원장은 정신 건강은 육체 건강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주도민의 육체 건강이 좋지 않은 것 역시 정신 건강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된다. 제주도는 걷기 실천율이 국내 꼴찌였다가 최근 가까스로 꼴찌에서 두 번째로 올라왔다. 비만율도 국내 1위였다가 2위로 한 단계 내려간 정도다. "제주도민은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대부분 차를 가지고 다녀요. 자가용 보유율이 전국 1위죠. 그러다 보니 걷는 양이 줄어든 게 주요 원인일 거예요. 소아 비만율도 전국 1~2위를 다투는데, 대부분의 여성이 경제활동을 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갖게 되는 것이 영향을 줬다고 봐요"

"참 이해가 안 되죠. 천혜의 자원, 맑은 공기, 좋은 물…. 제주도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 하러 육지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많은데, 정작 제주도민들은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술과 도박에 의존하는 경향도 있고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강지언 원장은 중독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행복한 사람은 굳이 다른 것에 깊이 빠져들 필요가 없어요.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술을 마시니 기분이 좋아지고, 도박했더니 기쁘고, 이런 잠깐의 기분 좋은 감정이 반복되면서 중독에 빠져드는 거죠. 즉, 평소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때 중독에 빠진다고 보면 돼요"

중독에 빠지기 전 스스로 제어가 가능할까? "평소 자신이 무언가에 쉽게 빠져들고 제어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이때 '딱' 끊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서 중독으로 빠지는 거죠. 이미 중독된 상태에서 스스로 제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요. 자신이 중독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중독임을 알면서도 부정하는 경우도 많아요. '나보다 심한 사람도 있는데 내가 왜 환자냐'라고 주로 말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정작 이미 중독일 가능성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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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언 연강의원 원장

다행히 과거보다 자신의 중독을 조기에 의심하고 스스로 검사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 강지언 원장은 "과거에는 만성 중독 상태에서 가족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 와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젊은 친구들이 자신에게 혹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병원을 방문하는 케이스가 늘었다"고 말했다. 자신 혹은 가족, 지인에게 중독이 의심되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전국 50개)나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전국 15개, ☎1336)에 연락해 상담받는 게 좋다. 강지언 원장은 "간단한 검사를 통해 자신의 객관적인 상태를 알아보고, 심한 정도가 아니면 상담만으로 끝날 수도 있다"며 "국가에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이용료가 무료고, 정신과 기록 남기지 않으며 상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예약이 된 경우 정신과 전문의와 무료 상담도 가능하다.

다만, 중독은 한 번의 치료로 끝나는 '피부 상처' 같은 질환이 아니다.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 강지언 원장은 "중독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다시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며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중독 재활'이 필수"라고 말했다.

중독 예방을 위해 알아둬야 할 것이 있을까? "중독의 형태는 다양해요. 폭식일 수도 있고, 하루 10잔 이상 커피를 마시는 커피 중독일 수도 있고, 과도한 흡연을 하기도 하죠. 이 밖에 쇼핑 중독, 성중독에 빠질 수도 있어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인간은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행복하지 않으면 뇌가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를 추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행위는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어요. 오히려 금단증상, 내성으로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요. 일상이 행복한 삶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이를 위해서는 평소 '잔잔한 행복'을 누리는 게 좋아요. 그럴수록 중독에 빠질 위험이 적어지고, 이미 중독에 빠진 사람은 헤어나오는 데 도움이 돼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고,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성취를 경험하고, 운동하고, 명상하는 것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잔잔한 행복의 예이죠."

마지막으로 제주도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제주도민의 중독 문제를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당연한 것, 으레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선 절대 안 돼요" 강 원장은 또 제주도만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자원을 정신건강을 위해 사용할 방침을 찾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이를 위해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은 신체건강에서 출발합니다. 신체상태가 최상일 때 정신상태도 최상의 상태를 이뤄요. 많이 걷고, 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서 먹고, 잘 자야 합니다. 생활도 규칙적으로 유지하세요. 더불어 좋은 취미생활을 통해 삶의 잔잔한 기쁨을 느끼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그것이 마음 건강, 정신 건강을 함께 유지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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