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 ⑤] 한승민 원장의 '부부치료' 이야기

입력 2020.05.20 13:00 | 수정 2020.05.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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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 잠실하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최근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비지상파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은 뻔뻔한 '불륜남' 이태오와 그의 새 아내 여다경에 분을 표하고, 둘로 인해 고통받은 지선우에게 끝도 없는 연민을 느끼며 슬퍼했다. 이태오, 지선우에게 선명히 그어졌던 부부사이의 '금'은 기어코 다시 붙지 못할 것이었을까?

불륜 등에 의한 부부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전문으로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 이런 문제를 위한 심리상담사는 많지만, 정신과 의사는 국내에 손꼽는다. 기자가 만난 잠실하늘정신건강의학과 한승민 원장 역시 그런 손꼽히는 국내 '부부치료' 전문 의사다.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에서 부부치료를 하다가, 최근 의원으로 옮겨와 환자를 보고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죠. 부부싸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인데, 부부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은 직장에서 업무하기는 물론이고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하기도 어려워요. 결론적으로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어요. 반대로 부부관계가 좋아지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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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 잠실하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부부치료란 정확히 무엇일까?

"결혼생활을 하면서 갈등이나 어려움이 없는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이 갈등을 잘 넘어설수록 부부는 성숙하는데, 두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안 될 때가 있어요. 부부치료는 이 과정을 원활히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환자와 의사가 1대 1로 마주하는 일반 정신과 진료와 달리, 부부 2명이 의사를 마주하는 2대 1 방식으로 치료가 진행돼요"

보통 부부 중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상대를 설득해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결국 주도한 사람, 끌려온 사람 모두 만족감을 느낀다.

"부부치료에 주도적인 사람은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배우자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입장이고, 상대방은 자신들의 갈등이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기 일쑤예요. 하지만 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갈등은 '함께' 만드는 것이며,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걸 점차 깨닫습니다"

부부치료를 받는 부부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30대 젊은 부부부터 결혼생활을 한 지 40년이 넘은 60대 부부도 치료받아요"

부부갈등이 유발하는 대표적인 정신질환이 우울증이다.

"가정은 집밖에서 힘들었던 부분을 치유받는 공간이 돼야 하죠. 부부 갈등으로 집에서 편히 못 쉬는 것도 모자라 집 밖보다 큰 갈등을 느끼면 우울증이 생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해요"

한승민 원장은 실제 치료를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부부가 우울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많은 경우 둘 중 한 명, 때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란다. 다행히 부부치료로 관계가 개선되면 우울증 역시 급격히 나아진다.

병원 사진
잠실하늘정신건강의학과

그렇다면, 부부의 세계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배우자의 외도. 외도는 부부 관계에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힐까?

"배우자의 외도는 피해자에게 천재지변이나 심각한 교통사고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생긴 환자만큼의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극중 이태오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당당히 말해 화제가 됐는데요, 실제로 이런 착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사랑에 빠지는 건 죄가 아니에요. 하지만 배우자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건 엄청난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외도를 잘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특징이 있냐고 물었더니, 반대로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의 특징을 들며 이해시켰다.

"건강한 부부는 대화가 많아요.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고민을 털어놓고, 그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깊은 위로를 얻죠. 여기에 공통된 관심사가 많고,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건강한 애착이 형성된 부부라면, 설사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다 하더라도 외도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외도를 경험한 부부는 관계 회복이 가능할까? 한승민 원장은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고 했다.

"외도를 저지른 당사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배우자에게 다가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려는 태도는 문제를 극복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예요. 그리고 어렵겠지만 진정한 재결합을 원한다면…​ 상처받은 분도 배우자에 대한 용서가 필요해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더불어 외도를 저지른 사람은 상처받은 배우자가 평온해 보인다고 자신이 완전히 용서받았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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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민 잠실하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실제 배우자의 외도 문제를 겪은 부부가 모두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외도를 한 당사자나 상대 배우자 모두 이혼까지는 원치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단지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무척 괴로워하죠. 여기서 부부치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부부치료는 보통 8~20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외도를 경험한 부부는 치료가 긴 편이다. 그 만큼 상처가 깊기 때문. 치료는 6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상처를 입은 배우자가 외도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2단계에서는 외도를 한 배우자가 자신의 외도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배우자에게 입힌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3단계는 피해자가 자신이 받은 고통과 슬픔을 솔직하고 분명히 표현하고, 그로 인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4단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반응해주고 고통에 공감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음을 표현해야 한다. 5단계에서는 치료자의 도움을 받으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자신을 위로해줄 것을 요청한다. 6단계는 가해자가 사려 깊은 태도로 배우자에게 다시 한 번 다가가는 것이다. 피해자가 반복해서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지속적으로 충분히 후회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단, 부부치료가 외도를 저지른 가해자를 정죄하는 시간은 아니다. 한승민 원장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는 진료철학을 고수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부부생활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물었더니, 한 원장은 "고맙다"는 말을 할 것을 강조했다.

"물이나 공기처럼 당연히 있는 것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듯이, 배우자에게도 그럴 수 있어요. 언제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죠. 하루에 한 가지만이라도 구체적이고 진심 어린 말투로 고맙다고 해보세요. '열심히 일해줘서 고마워' '청소 깨끗이 해줘서 고마워' '아이와 잘 놀아줘서 고마워' 등 무엇이든 좋아요. 며칠만 지나면 두 사람 사이 갈등이 줄어 있는 걸 발견할 거예요. 고맙다는 말을 절대로 아끼지 마세요. 배우자야 말로 나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임에 틀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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