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견인을 데려오세요."
발달장애인이 행정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찾을 때 종종 듣는 말이다.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성년후견제도는 어느새 '후견인을 먼저 세우는 제도'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제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는 성년후견제도 시행 13년을 맞아 제도 개편 방향이 논의됐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현재 후견제도가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본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 의사결정'에서 '지원 의사결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후견제도 13년… 이용은 4%뿐
현행 후견제도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성년후견은 당사자의 행위능력을 가장 폭넓게 제한하는 유형이고, 특정후견은 필요한 사안에 한해 제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년후견이 전체 후견 개시 사건의 82%를 차지한다.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는 "현재 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 존중보다 후견인에 의한 의사결정 대행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며 "후견 개시부터 감독까지 당사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기회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률도 낮다.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영 교수는 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가 약 129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이용자는 4%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사람 상당수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후견인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살펴야 하는 감독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광열 변호사는 "실무관 1명이 800건을 담당하는 법원도 있을 정도"라며 "현재 구조에서는 충실한 감독이 어려운 만큼 감독 체계 개편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 지원도 '후견'부터 요구
전문가들이 더 큰 문제로 꼽은 것은 굳이 후견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후견인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윤 교수는 공공후견 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동사무소에 갔더니 후견인을 데려오라고 해서 후견을 신청했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는 일상생활에서 옆에서 조금 도와주면 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기관에서 책임 문제를 우려해 후견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일상적인 지원 정도라면 굳이 법원의 후견 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보호자가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후견인의 역할도 재산관리 같은 법률행위보다 병원 이용, 주민센터 업무,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일상생활 상담 등 생활 지원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윤 교수는 "현장의 수요는 대리 결정이 아니라 일상적인 의사결정 지원에 가깝다"며 "우리 제도도 현실의 필요를 반영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 행정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찾을 때 종종 듣는 말이다.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성년후견제도는 어느새 '후견인을 먼저 세우는 제도'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제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는 성년후견제도 시행 13년을 맞아 제도 개편 방향이 논의됐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현재 후견제도가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본래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 의사결정'에서 '지원 의사결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후견제도 13년… 이용은 4%뿐
현행 후견제도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성년후견은 당사자의 행위능력을 가장 폭넓게 제한하는 유형이고, 특정후견은 필요한 사안에 한해 제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년후견이 전체 후견 개시 사건의 82%를 차지한다. 사단법인 온율 배광열 변호사는 "현재 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 존중보다 후견인에 의한 의사결정 대행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며 "후견 개시부터 감독까지 당사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기회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률도 낮다.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윤태영 교수는 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가 약 129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이용자는 4%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사람 상당수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후견인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살펴야 하는 감독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광열 변호사는 "실무관 1명이 800건을 담당하는 법원도 있을 정도"라며 "현재 구조에서는 충실한 감독이 어려운 만큼 감독 체계 개편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 지원도 '후견'부터 요구
전문가들이 더 큰 문제로 꼽은 것은 굳이 후견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후견인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윤 교수는 공공후견 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동사무소에 갔더니 후견인을 데려오라고 해서 후견을 신청했다"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는 일상생활에서 옆에서 조금 도와주면 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기관에서 책임 문제를 우려해 후견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일상적인 지원 정도라면 굳이 법원의 후견 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보호자가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후견인의 역할도 재산관리 같은 법률행위보다 병원 이용, 주민센터 업무,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일상생활 상담 등 생활 지원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윤 교수는 "현장의 수요는 대리 결정이 아니라 일상적인 의사결정 지원에 가깝다"며 "우리 제도도 현실의 필요를 반영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는 이미 지원 중심… "후견은 마지막 수단"
전문가들은 미국과 영국은 이미 후견보다 '지원 의사결정'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당사자가 신뢰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지원하고, 이런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만 법원의 후견을 활용한다. 영국 역시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윤태영 교수는 "후견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며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곧바로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지원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도 "후견보다 제한이 적은 대안을 먼저 고려하도록 민법에 명시하고, 후견 심판 과정에서도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며 "절차조력인과 국선대리인 제도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신 결정보다, 곁에서 지원"
김강원 부센터장은 의사결정이 어려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와 경제적 착취, 상속 배제, 강제 입원 등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법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후견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당사자의 의사가 있었음에도 결국 그 사람이 후견인으로 선임된 사례를 소개하며 "후견인을 선임하는 절차에서조차 정작 본인의 의사가 묻히는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가 발달장애인과 함께 장을 보며 물건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왜 필요한지 이야기한 뒤 "살까요?"라고 묻고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김 부센터장은 "바로 이것이 의사결정지원"이라며 "거창한 새 제도를 계속 논하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정을 곁에서 지원하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제도 개선 방향으로는 공공후견 확대와 함께 지원체계를 총괄하는 중앙기관 설치 필요성도 제기됐다. 서울가정법원 김형률 부장판사는 현재 발달장애, 정신질환, 치매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공공후견사업을 통합 관리할 조직이 필요하다며 "후견제도 활성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영국은 이미 후견보다 '지원 의사결정'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당사자가 신뢰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지원하고, 이런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만 법원의 후견을 활용한다. 영국 역시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윤태영 교수는 "후견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며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곧바로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지원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도 "후견보다 제한이 적은 대안을 먼저 고려하도록 민법에 명시하고, 후견 심판 과정에서도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며 "절차조력인과 국선대리인 제도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신 결정보다, 곁에서 지원"
김강원 부센터장은 의사결정이 어려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와 경제적 착취, 상속 배제, 강제 입원 등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법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후견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당사자의 의사가 있었음에도 결국 그 사람이 후견인으로 선임된 사례를 소개하며 "후견인을 선임하는 절차에서조차 정작 본인의 의사가 묻히는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가 발달장애인과 함께 장을 보며 물건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왜 필요한지 이야기한 뒤 "살까요?"라고 묻고 당사자가 직접 선택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김 부센터장은 "바로 이것이 의사결정지원"이라며 "거창한 새 제도를 계속 논하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정을 곁에서 지원하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제도 개선 방향으로는 공공후견 확대와 함께 지원체계를 총괄하는 중앙기관 설치 필요성도 제기됐다. 서울가정법원 김형률 부장판사는 현재 발달장애, 정신질환, 치매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공공후견사업을 통합 관리할 조직이 필요하다며 "후견제도 활성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을 공동 주최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이제는 '후견'이라는 용어와 제도에 머무르기보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에 둔 의사결정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국회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이날 공통으로 강조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발달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사회가 곁에서 지원하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없는 이후의 삶에도 필요한 것은 누군가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으며 함께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