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나온 발달장애인 가족과 당사자… “탈시설지원법, 중증발달장애인 고려 안 했다” [조금 느린 세계]

이미지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김현아 회장​./사진=이해림 기자
지난해 발의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장애인 거주시설의 신규 설치를 제한하며, 현재 존재하는 시설의 입소 정원을 줄여나가는 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단계적인 시설 축소를 추진하도록 규정한다. 궁극적으로는 시설 거주의 종식에 이르는 것이 입법 목적이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불가피한 처사라는 주장도, 중증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화된 정책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준석·이개호·김미애·이진숙·김태규 국회의원의 주최로 열린 ‘시설 거주 장애인의 주거권 보장 및 지원 방안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는 각 분야 관계자들이 현행 탈시설 기조의 맹점을 짚었다.

장애인 탈시설을 주장하는 측은 시설이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으며, 탈시설이 장애인이 사회로 나와 살게 할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애인법은 장애인 시설과 지역사회를 격리된 곳으로 보고 있지 않다. 장애인복지법은 제58조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을 “거주 공간을 활용해 일반 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일정 기간 거주·요양·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생활을 지원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시설 장애인 대부분은 다양한 체험 활동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와 수시로 교류하고 있다. 일부 시설들은 장애 정도와 특성을 고려해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탈시설의 배경과 주요 내용이 중증발달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탈시설 찬성측에서 탈시설 근거로 인용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자체에는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없다. 장애인이 자신의 거주지와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특정한 주거형태에서 생활하도록 강요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탈시설을 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협약 제19조를 해석해 만든 일반논평 제5호와 이 문서를 보충하는 탈시설가이드라인이다. 동국대 법과대학 조성혜 명예교수는 “이러한 해석은 열악한 대규모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던 신체장애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권 증진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대·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며 “이 해석을 오늘날의 중증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에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이들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신체장애인의 경우 이동과 각종 지역 사회 서비스에의 접근성 보장이 인권 증진을 위한 핵심 과제로 논의된다. 그러나 중증발달장애인은 의사결정 지원, 행동지원, 지속적 보호와 감독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임무영 변호사는 “장애인 대책을 논할 때 의사 능력이 있는 장애인과 없거나 현저하게 부족한 장애인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며 “상대적으로 소수인 발달장애인과 상대적 다수인 경증·지체장애인을 뭉뚱그려 ‘장애인’이라고만 분류할 경우 중증발달장애인의 시설 의존 필요성이 희석된다”고 말했다. 조성혜 교수는 “중증발달장애인은 현재의 거주 시설에서 나오더라도 24시간 돌봄과 보호가 보장되는 안전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며 “이들에게까지 탈시설을 강제하기보다는 이들이 거주하는 시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의 가족이면서 장애 연구자인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호승희 소장은 “발달장애인의 미래는 탈시설 그 자체라기보다는 의료·복지·돌봄의 통합 서비스를 통해 양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평생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통계를 통해 살펴본 발달장애인의 삶이 그 근거다. 중증발달장애인은 질환 예방을 위해 생활 습관을 스스로 관리하거나 의료기관에서 건강 검진을 받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40~70대에서 비장애인의 비만율이 11.1~19.1%인 반면, 발달장애인의 비만율은 12.7~33.4%에 달한다. 발달장애인은 건강 검진 수검률이 비장애인보다 낮으나, 검사 후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나는 비율은 높다. 비장애인보다 수명도 짧은 편이다. 국립재활원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발달장애인의 사망 시 평균 연령은 57.0세로, 전체 장애인 사망 시 평균 연령인 78.6세에 비해 21.6세 낮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김현아 회장은 “24시간 안전 지원과 건강 관리, 응급의료지원 체계를 갖춘 장애인거주시설이 중증발달장애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며 “탈시설을 강제하기보다 ‘좋은 시설’을 만듦으로써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의 ‘시설 거주권’에 대한 법적 명시 ▲1인 1실을 지원하고, 도전적 행동과 감각을 안정시킬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예산 지원 근거 마련 등을 통해 시설이 장애인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24시간 전문 복지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해야함을 주장했다.

한국카리타스협회 정책위원인 이병훈 신부는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위해 인지치료사 또는 행동치료사와 간호사가 24시간 배정돼야 한다”고도 했다. 현재 시설에서 발달장애인 돌봄에 참여하는 인력에게 교육 기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국립공주대 특수교육학과 백은희 교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행동 중재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회복지사가 많지만, 현재 정부 차원에서 연수 교육이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며 “발달장애인의 곁에는 이들의 행동의 원인을 파악한 다음 폭력적·돌발적 행동 대신 긍정적 행동으로 의사 표현을 하게 돕는 행동 중재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장애인거주시설 아모르뜰에 사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김다예씨도 참석했다. 그는 “아모르뜰에 들어오기 전, ‘입소 체험’을 통해 나와 내 가족이 주체적으로 입소 여부를 결정했다”며 “이곳은 우리가 선택한 집이니 우리의 집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