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경계 허문 ‘어울림플라자’, 공공시설의 새로운 기준 [조금 느린 세계]

입력 2026.04.10 13:20
배리어프리 복지문화복합공간​ '서울시 어울림플라자'가 지난달 18일 개관했​다./사진=신소영 기자
배리어프리 복지문화복합공간​ '서울시 어울림플라자'가 지난달 18일 개관했​다./사진=신소영 기자
발달장애인에게 도서관은 낯설고도 어려운 공간이다. ‘정숙’이 기본인 곳에서 갑작스러운 소리나 움직임은 곧바로 시선을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공간이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 없이 어울리는 곳, 서울시 어울림플라자다. 지난달 18일 문을 연 이곳에서는 조용하지 않아도 괜찮고, 다르다는 이유로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지향한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의 출발점이 된 현장을 찾았다.

어울림플라자 시설 전반은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해 이동 동선을 넓게 확보하고, 단차 없이 설계됐다./사진=신소영 기자
어울림플라자 시설 전반은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해 이동 동선을 넓게 확보하고, 단차 없이 설계됐다./사진=신소영 기자
◇넓은 동선·무단차 설계… 배리어프리 구현
어울림플라자는 생활형 복합공간으로 지하 4층~지상 5층 규모다. 도서관·공연장·수영장·체력단련실 등 문화·체육시설은 물론 장애인치과병원과 장애인친화미용실, 숙박 공간까지 한데 모였다. 기존 장애인복지관처럼 대상별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는 공존형 복지·문화 공간으로 기획된 것이 특징이다. 시설 전반에는 배리어프리 설계가 적용됐다.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해 이동 동선을 넓게 확보하고, 건물 전체를 단차 없이 구성했다. 주요 공간마다 휠체어석을 기본으로 마련했으며, 안내 표지판은 앉은 상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사선으로 배치하는 등 세심함을 더했다.

체력단련실 역시 접근성을 높였다. 휠체어 이용자와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를 배치했고, 일부 기구는 앉은 자세에서도 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장애로 일반 헬스장 이용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대안 공간이 된다.

이 같은 설계는 전문가 자문과 이용자 의견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보완한 결과다. 어울림플라자 관계자는 “그동안 시설 이용이 어려웠던 이용자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이용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한 휠체어 이용자는 “공간이 넓고 단차가 없어 이동이 편하다”며 “도서관, 수영장, 문화 프로그램을 한 공간에서 이용할 수 있어 이동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물리적 환경 개선과 함께 ‘사람 중심 지원’도 병행된다. 시설 곳곳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동행 크루’가 상주해 이동과 이용을 돕고, 시각장애인과 노약자를 대상으로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까지 동행하는 픽업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어울림플라자의 어린이 도서관 내부./사진=신소영 기자
어울림플라자의 어린이 도서관 내부./사진=신소영 기자
◇소리 허용하는 도서관… '심리안정실'도
어울림플라자는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이용자를 고려해 기존 시설과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이즈 프렌들리(noise-friendly)’ 도서관이다. 어린이 도서관은 소리를 허용하는 공간으로, 자유롭게 소리를 내고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리를 내는 '사운드북'도 비치해 감각 자극이 필요한 발달장애 아동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공간 역시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을 넘어, 신발을 벗고 눕거나 머무를 수 있는 ‘생활형 공간’에 가깝다.

도서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심리안정실이 있다./사진=신소영 기자
도서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심리안정실이 있다./사진=신소영 기자
도서관 내 인기 공간은 '심리안정실'이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이 나타날 경우 외부 자극과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이곳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관계자는 “이 공간의 존재만으로도 보호자들에게 큰 안심이 된다”며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 이용자들도 편안하게 찾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용 편의를 높이기 위한 장치도 곳곳에 마련됐다. 큰 글자 도서와 점자 도서(460권)를 일반 도서관보다 다양하게 비치했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입체 도서 등 특화 자료도 갖췄다. 키오스크는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해 낮은 화면 모드를 제공하며, 음성 안내 기능도 기본 탑재돼 있다.

수영장에는 수중 경사로와 수중 휠체어를 도입해 휠체어 이용자가 직접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발달장애인의 체온 조절 특성을 고려해 수영 후 쉴 수 있는 온열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주요 공간에는 ‘텔레코일존’을 설치해 보청기와 인공와우 사용자의 청취를 돕는다. 관계자는 “이 같은 장치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기본적인 환경”이라고 말했다.

어울림플라자 내 장애인친화미용실과 장애인치과병원도 배리어프리 설계를 적용했다.​/사진=신소영 기자
어울림플라자 내 장애인친화미용실과 장애인치과병원도 배리어프리 설계를 적용했다.​/사진=신소영 기자
◇의료·미용까지 한 공간에서
장애인 친화 미용실에서는 휠체어 이용자가 별도 이동 없이 한 자리에서 커트·샴푸·드라이를 받을 수 있다. 좌석 회전 구조를 적용해 시술 동선을 최소화했고, 이동이 어려운 이용자를 위한 리프트 장비와 전동 휠체어·스쿠터 충전 설비도 갖췄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이용객이 몰리며 예약이 대부분 찰 정도로 호응이 높다. 미용실 관계자는 “발달장애 아동은 바리깡 소리에 민감한 경우가 많아 보호자와 함께 시술을 진행한다”며 “직원들은 장애인 응대 경험이 풍부한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치과병원 역시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접수부터 진료 종료까지 전 과정에서 직원이 이동을 돕고 안내해 이용 부담을 줄였다. 이용자들은 “가까운 곳에 장애인 친화 치과가 생겨 편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울림플라자에서는 휠체어 이용자도 수영장과 헬스장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다./사진=신소영 기자
어울림플라자에서는 휠체어 이용자도 수영장과 헬스장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다./사진=신소영 기자
◇‘공존 공간’… 인식 변화 이끄는 실험
어울림플라자는 2013년 부지 매입 이후 오랜 논의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조성됐다. 초기에는 장애인 시설에 대한 지역 반대도 있었지만, 설계와 운영을 보완하며 현재 전국 최초의 ‘복합 공존 공간’으로 완성됐다.

어울림플라자 김현성 운영국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상이 출발점”이라며 “특정 집단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시설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시도”라고 말했다. 개관 초기에는 서로를 의식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제는 서로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줄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장애인으로 인한 불편을 제기하기보다 오히려 “이 부분이 장애인에게 불편하지 않을까”를 제안하는 비장애인의 의견이 더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이는 이 공간이 단순한 시설을 넘어 인식 변화를 이끄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 프로그램 운영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비율을 5대 5로 맞추는 ‘배리어프리 운영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김 국장은 “초기부터 구조를 설계하지 않으면 비장애인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며 “의도적으로 균형을 맞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성 훈련과 자립생활 교육 등 맞춤형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어울림플라자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지역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김 국장은 “이곳이 장애인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구성원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에는 장애인의 참여 확대와 일자리 연계, 공간 내 교류 활성화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현재 어울림플라자는 여러 지자체와 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이 모델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더 많은 공공시설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