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속도대로 취업 준비부터 직무 적응까지” 발달장애인 선배의 조언 [조금 느린 세계]

입력 2026.04.0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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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앤컴퍼니​에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진로 코디네이터​들과 박대수 대표. 왼쪽에서 세 번째가 류승철씨, 여섯 번째가 박대수 대표다./사진=꿈앤컴퍼니 제공
고생스러운 취업 준비 끝에 드디어 취직했건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발달장애인에게는 매 순간이 고비다. 일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다가도 문득 영영 능숙해지지 못할까봐 두렵다. 그러나 비장애인 직장 동료에게 이런 고충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 이런 ‘사회 초년생’ 발달장애인을 위해, 자신의 직업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을 시행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있다. 바로 꿈앤컴퍼니에서 ‘발달장애인 진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지적장애 3급 류승철(34·서울)씨다.

◇다양한 직업 경험한 발달장애인, 직접 ‘직업 상담’ 나서
류승철씨는 ▲바리스타 ▲주방 보조 ▲장애 인권 개선 강사 ▲발달장애인 동료 상담가(진로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바리스타 일은 약 3개월, 주방 보조는 약 9년의 경력이 있다. 장애 인권 개선 강사와 발달장애인 동료 상담가 일은 본업을 하면서 틈틈이 병행해왔다. 본업의 경우, 올해부터 발달장애인용 읽기 쉬운 자료 개발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감수원’ 일을 시작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의 마음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며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고 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동료 상담가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꿈앤컴퍼니의 박대수 대표(45·경기)가 있었다. 박대수 대표는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서 11년 8개월의 경력을 쌓은 뒤, 이를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의 진로 설계를 돕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발달장애인과 그 보호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비장애인 강사를 통해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류승철씨를 비롯해 다섯 명의 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 진로 코디네이터’로서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미 일을 시작한 발달장애인에게 동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박대수 대표는 “다양한 직무를 경험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시행착오를 극복한 과정을 다른 발달장애인과 공유하는 것이 이들의 적응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며 “아울러 이러한 역할 자체가 ‘발달장애인 진로 코칭 전문가’라는 하나의 직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대인 관계 어려워도… 비장애인 동료와 ‘적극’ 소통해야
류승철씨는 한 달에 20명가량의 발달장애인을 상담한다. 그들이 일하면서 겪는 고충을 자신의 경험이 비추어보고서 공감하고, 때로는 조언도 제공한다. 취업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이를 돕기도 한다. 면접관의 예상 질문에 대해 답변을 미리 적어보게 한 다음, 가상 면접 연습을 도울 때도 많다.

그는 자신처럼 직업 생활을 하는 발달장애인들이 가장 자주 토로하는 고충으로 ‘대인관계’를 꼽았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발달장애인이 일터에서 한 행위의 의도가 비장애인 동료에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왜곡돼 비치기도 해서다. 류승철씨는 “발달장애인들은 일터에서 자신이 힘든 것, 불편한 것을 잘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내버려두면 비장애인 동료의 오해가 커질 수 있으므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해야 할 일이 생기면 숨기지 말고 그때그때 말하기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직접 말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쪽지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어서 전달하거나 평소 소통을 잘 하고 지내던 직장 동료 그리고 사회복지사·직업재활사의 도움을 받아 말하기를 권했다.

주변에 정서적 지지 체계를 만들 필요성도 강조했다. 류승철씨는 “나 역시도 일에 적응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사회복지사 그리고 직업재활사에게 계속 정서적 지지를 받았다”며 “또 발달장애인은 인정 욕구가 강한데 일터에서 이것이 다 충족되지 않는다면 발달장애인 자조 모임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말했다. 모임에서 각자가 일하며 있었던 일을 말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서로 ‘힘을 내보자’하고 기운을 북돋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대수 대표는 “이 밖에도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개별화 지원 계획 수립 지원을 신청하면 의사표현 방법, 사회 적응, 직업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역량 향상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직장 생활은 직무지도원과 근로지원인, 자립 생활은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강연 사진과 프로필 사진
(왼)강연자로 나선 류승철씨 (오)박대수 대표/사진=꿈앤컴퍼니 제공​
◇“일 적응과 직업 탐색에 두려움 느끼지 않길”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발달장애인이라면, 당장 일이 손에 붙지 않는대서 낙담할 필요 없다. 다년간 직업 생활을 이어온 ‘베테랑 사회인’인 류승철씨 역시 “주방 보조 일을 오래 했지만, 처음 일에 적응하기까지는 2~3년이 걸렸다”며 “배우는 속도가 비장애인보다 느려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선택한 직무가 나에게 잘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업 생활 자체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복지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구청 홈페이지,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 등에서 발달장애인이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채용 공고를 찾을 수 있다. 류승철씨는 “나도 바리스타 일을 3개월가량 하고 그만뒀는데,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내가 더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라며 “다양한 일을 경험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으니 ‘실패’가 아니라 ‘탐험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장애 인식 개선 강사 일을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회 복지 분야에서 직업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올 초부터 발달장애인용 읽기 쉬운 자료 감수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한 뒤에는 사회 복지 분야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사이버대학교 강의도 듣는다. 종종 장애인 인권 강연 의뢰가 들어와 틈틈이 강의 계획서도 만들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취업 교육에 직접 강연자로 나서기도 하는 박대수 대표 역시 “직무를 급하게 선택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달하고 있다”며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먼저 이해한 다음에 교육 지원을 받고, 이어 다양한 직업을 고루 탐색해보면 만족스러운 직업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발달장애인이 직업 생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사회적 지원이 아직은 더 필요하다. 류승철씨는 “장애가 덜 심한 지적장애 2급과 3급은 비교적 취업이 잘 되지만, 1급은 마땅한 채용 공고가 나질 않아 직업 재활 센터를 다니는 것에서 그치는 사례가 많다”며 “장애의 정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생각하니, 채용 공고가 좀 더 다양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대수 대표는 “지금은 성인이 되기 직전인 고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사례가 많은데, 학령기 전반에 걸쳐 전문가를 통한 진로 설계 지원이 의무화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