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혈액암 치료제 ‘치료적 위치’… 환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입력 2020.07.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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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호​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부교수​

임상 입장에서 환자를 위한 혁신적인 치료제의 도입은 늘 반갑다. 특히 치료가 시급하지만 의약품 개발이 어려운 희귀∙중증질환자들의 경우, 건강보험제도의 유연한 운영으로 환자들이 혜택받는 경우가 많다. 희귀혈액암인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도 이런 사례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우리나라에서 한 해 약 500명 정도의 환자가 생기는 희귀 혈액암으로, 2명 중 1명에서 재발이 나타날 만큼 빠르고 공격적으로 진행되는 백혈병 유형이다. 이 중 재발·​불응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들은 한 해 약 200~300명 정도로 더욱 희귀하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재발·​불응성을 보인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거의 없었고, 치료해도 생존 기간이 반년이 되지 않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까다롭던 재발·​불응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들의 치료 패러다임을 급격하게 바꾼 치료제가 ‘블린사이토(블리나투모맙)’라는 약이다.

블린사이토는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허가를 받았고, 재발·​불응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들에게 쓸 수 있는 다른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를 면제하는 제도를 통해 2016년에 빠르게 보험급여를 적용 받았다.

이는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제도로, ‘치료적 위치’가 같은 의약품이 없는 희귀∙중증 질환 치료제가 절실한 임상현장에선 환영할 만한 결정이었다.

여기서 ‘치료적 위치’란 허가 받은 질환의 특정 단계(요법)에서 작용 기전이나 임상 성과의 차이, 또는 투여 환자의 상태를 고려한 치료 목적 등을 고려하게 된다.

이후 지난 4년간 블린사이토는 대안을 찾기 어려웠던 진료현장의 ‘니즈’와 환자가 치료에 꼭 필요한 약을 적시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보험제도의 ‘시너지’ 효과를 보여줬다.

블린사이토는 이전 치료에 반응이 없었거나 재발된 환자들의 사망률을 현격히 낮춰 ‘완치’의 희망을 높였다. 또한 기존 화학항암치료제 치료과정 중에서 나타났던 심각한 감염이나 간독성이 없어 환자 입장에서 훨씬 수월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

국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실생활 연구(real-world study)에서도 이전 임상문헌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만족스러운 치료 반응률과 안전성을 나타냈다. 전문의의 입장에서 국내 환자들에서 확인된 데이터를 토대로 신뢰를 갖고 처방할 수 있는 유일한 재발·불응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약제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베스폰사(이노투주맙오조가마이신)’ 재발∙불응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치료제가 국내에서 허가됐다. 그렇다면 블린사이토와 베스폰사의 치료적 위치가 같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불가능’하다. 블린사이토와 베스폰사는 약물이 작용하는 기전부터 완전히 다르고 투여하는 환자와 치료 목적도 다르다.

두 약제의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단계에서 재발∙불응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베스폰사는 국내에 도입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국내 환자에서의 적절한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따라서 두 치료제가 화학항암치료제와의 비교에서 더 나은 효과를 보인 각각의 결과 만을 가지고 두 치료제 간의 치료 대체성을 평가하기 어렵다.

블린사이토의 급여 재평가로 인해 그 동안 블린사이토의 치료 혜택을 받던 환자들의 치료상황에 변화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두 약제의 실제적인 치료적 위치가 다른 만큼, 서로 대체 가능하다는 접근이 아니라 점점 더 세분화∙맞춤화 되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 방법과 목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희귀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과학적 발전이 이뤄지는 만큼, 환자의 편에서 치료 현실을 고려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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