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춤'으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합니다_현대무용가 최보결

입력 2015.08.03 10:14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춤에 대해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녀에게 춤을 배우는 사람들은 다들 "춤을 배우러 왔는데 자연스레 힐링이 된다"고 말한다. 춤으로 사람들의 심신을 치유하는 현대무용가 최보결 박사를 만났다.

최보결 박사는 꽤나 실력 있는 현대무용가다. 2007년에는 국내 공연평가 전문잡지인 <공연과 리뷰>에서 주는 'PAF 올해의 안무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현대무용진흥회가 주최하는 '올해의 최고 무용가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제31회 서울무용제에서 '안무대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추는 춤은 무대에서 예쁘고 우아하게 추는 춤과는 사뭇 다르다. 얼핏 보면 막춤으로 보일 정도로 춤형태가 없다. 하지만 명확하게 느낄 수는 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는 모두 자신이 생생하게 느끼는 감정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최보결 박사가 공연하는 모습.

사뿐사뿐 리듬 타며 걷는 것도 춤이다

"사람들이 제 춤을 '힐링 춤', '삶을 치유하는 춤'이라고 불러요. 그냥 저는 춤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에게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다들 고맙다고 마음속에 있던 상처가 많이 치유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차요."

최 박사가 일반인들에게 가르치는 춤은 형식이 없다. 정해진 가이드라인도 없다. 그래서 그녀의 춤 수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막춤을 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 박사는 일반적인 막춤하고는 다르다고 말한다.

"저는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치지 않아요. 느끼는 대로 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마다의 막춤이 나오는 거예요.(웃음)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들진 않아요.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막춤으로 이어지기 전에 자아를 탐색하는 움직임을 알려줍니다. 자신에게 좀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죠. 자신을 발견해야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춤을 출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일단 자신의 춤 워크숍에 온 사람들에게 그녀가 가장 먼저 말하는 건 발바닥을 부드럽게 땅에 딛는 동작이다. "처음에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걷는 동작을 진행해요. 춤은 발바닥에서 시작돼요. 감각이 깨어나면 느낌이 생기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와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파트너와 대화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면 자의식이 생겨요.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 하니까요."

최 박사는 '발바닥을 바닥에 입맞춤하듯 디뎌 보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말하면 자연스레 사람들은 사뿐사뿐 리듬을 타며 걷는다. 그게 춤이 된다. 누워서 진행하기도 하고, 척추를 풀어 주는 동작도 행한다. 결국 긴장으로 굳어 있는 몸을 이완시켜서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해서 내면의 자신과 만나는 것이 목적이다. "모두 처음에는 쑥쓰러워해요. 저는 쑥스러우면 쑥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게 춤이에요. 보기에 그럴듯하고 멋있는 것만이 춤이 아니에요."

최보결 박사가 서울문화재단 춤바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반인과 함께 공연한 사진들

'나'를 찾고 싶은 욕구가 지금 내 춤의 원천

최 박사의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테크닉이 아니다. '나' 자신이다. 내가 추는 춤, 내가 자발적으로 추고 싶은 춤을 추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이런 최 박사의 춤 철학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자유롭게 컸어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결핵으로 몸이 많이 아픈 후로 부모님은 제가 아프지만 말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셨어요. 상대적으로 공부에 대한 압박이 덜했죠.(웃음)

또 시골에서 2년 정도 살았는데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지낸 기억이 아주 좋게 남아 있어요. 고구마 캐고 놀고, 꽃 따먹고 놀던 기억이 제 자유로운 성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줬죠."

최 박사가 무용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시기는 중·고등학교 때였다. 중·고등학교 무용 시간에 늘 시범 학생으로 뽑혔고, 무용하는 게 재미있기 때문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 박사의 집은 무용을 뒷바라지해 줄 형편이 안 됐다. 집안 사정 때문에 포기하려고 했지만 무용을 하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다. '춤에 대한 선천적인 재능이 없어도, 행여 유명세를 얻지 못해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일단 하고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경희대 무용과에 입학했다.

"대학 가서는 오히려 대학을 관두고 싶었어요. 대학 가면 꿈에 그리던 예술가랑 대화하고 이럴 줄 알았는데 환상이었죠.(웃음) 철학, 예술 이런 것보다 기능, 방법만 우선시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춤이 이런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자유로운 춤 이런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열심히 하는데 실력은 안 느는 것 같기도 했고요. '춤이 뭘까', '예술이 뭘까' 이런 걸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 추고 싶은 춤은 뭘까' 이런 걸 생각했죠. 그걸 안 넘으면 춤을 못 출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나'를 찾는 게 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사립학교 무용 선생님으로 10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좀더 춤을 공부해 예술가로 살고 싶은 꿈은 버리지 못했다. "선생님의 삶은 안정적이었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어요. 춤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고, 춤을 추고 싶고, 예술가로 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교직을 10년 채우고 그만두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무용단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춤을 췄어요."

춤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최 박사는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무용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최 박사의 선택은 일반인들이 직접 춤을 추고 공연을 하는 것이다.

최보결 박사

"박사 논문을 쓰면서 삶과 춤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그 전에는 무대에서 제 춤이 어떻게 해야 더 자리 잡고 명성을 떨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비로소 춤의 사회적 가치를 알게 된 거죠. 모든 존재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춤이 삶에 적용되면 조금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2012년부터 제 공연에 일반 사람들을 출연시켰습니다. 일반인들을 만나서 가장 먼저 한 건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거였어요. 거기서 춤을 끄집어내자고 했죠. 그 과정에서 그들도 그들 삶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더라고요."

일반인과 함께 공연을 하던 때에 최 박사는 마침 '표현예술통합치료'라는 것을 공부하게 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학문인데, 움직임의 원리를 철학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최 박사는 바로 2013년에 미국으로 가 표현예술통합치료 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최 박사는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춤을 널리 전파하고 춤이 주는 치유 효과를 열심히 알리고 있다. 제주 4·3사건이나 사도세자의 죽음처럼 역사적으로 민족의 아픔이 있는 사건에 현장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춤 연구소를 만들어서 매주 한 번씩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매주 한 번씩 구치소에 재능기부도 한다. 기업, 학교, 노인복지관에 가서 춤 수업을 한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서울댄스프로젝트의 일환인 '춤바람 커뮤니티'의 전담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정신적인 이상이나 가치가 소외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춤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자생력을 부여해요. '나'를 발견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 스스로 창조적인 춤을 춰서 삶을 치유한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떠한 부작용도 없이 상처를 치유하는 '약' 같은 존재가 바로 춤이죠. 지금 당장 발바닥에 온 감각을 집중해서 한 걸음씩 부드럽게 디뎌 보세요. 그리고 내면의 '나'에게 집중하세요. 그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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