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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심장은 하루 10만번 이상 수축해서 전신에 혈액을 공급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그야말로 초강력 펌프와 같다. 심장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가닥의 혈관(관상동맥)으로 부터 공급되는 혈액 속 풍부한 산소와 영양분이 이 ‘수퍼 파워’의 원천. 그러나 흡연, 콜레스테롤, 고혈압, 당뇨 등으로 동맥경화증이 생기면 이 혈관이 좁아지고, 자연히 혈액 공급양이 감소해 심장근육이 일종의 빈혈현상을 일으킨다. 이것이 협심증이다. 심근경색이란 관상동맥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막혀 심장근육이 죽는 병이다. 심근경색의 절반 정도는 협심증이 원인이지만, 나머지 절반정도는 협심증과 관계없이 갑자기 발생한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무서운 이유는 돌연사 위험 때문이다. 협심증은 심근경색증의 원인이 되며, 심근경색이 생기면 35% 정도는 응급실에 오기 전에 급사한다. 또 15% 정도는 응급처치로 막힌 혈관을 뚫고 심장에 피 공급을 재개해도 이미 심장근육이 다 파괴돼 사망한다. 나머지 50% 정도는 6시간, 늦어도 12시간 안에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 그러나 치료가 늦게 이뤄지면 생명을 건지더라도 심부전증 등 합병증 가능성이 커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전체 심장병의 10~20% 정도에 불과했다. 목감기 후유증으로 생기는 류머티스 열(熱)이나 세균감염 등으로 인한 심장판막 질환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위생과 의료수준의 향상에 따라 판막질환이 감소한 틈을 타서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전체 심장병의 90% 정도를 차지할 만큼 폭증했다. 흡연, 육식위주 식생활, 운동부족 등과 같은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과거 진시황이 부럽지 않을 만큼 산해진미를 사철 풍부하게 먹고 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의 다이너마이트는 어쩌면 그렇게 편하고 호사스럽게 사는 댓가인지도 모른다. 이 다이너마이터는 나이도 가리지 않는다. 아침 조깅을 하다, 등산을 하다, 사내 체육대회에서 20대 30대의 팔팔한 청춘이 쓰러지고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창졸지간에 맞이하는 죽음처럼 황당하고 저주스러운 게 또 어디 있을까?
▲ 서울중앙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가 협심증 환자 관상동맥에 그물망을 넣는 수술을 하고 있다. 협심증 환자는 혈관을 넓히는 수술을 받으면 돌연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선일보DB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부터 먼저 알아보자. 동맥경화란 말 그대로 동맥에 콜레스테롤 등 이물질이 달라붙어 혈관 벽이 돌처럼 딱딱해 지는 것을 말한다. 혈관의 매끄러운 내벽에 상처가 생기고, 그곳에 콜레스테롤 등이 달라붙으면 혈관벽에 섬유화된 딱딱한 덩어리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를 죽상반(竹狀斑)이라 한다. 그 모양이 대나무처럼 주름이 가 있기 때문이다. 죽상반이 생기면 혈관의 지름이 좁아지게 돼 혈액의 흐름에 지장을 주는데, 혈관이 얼마나 좁아졌느냐에 따라 증상의 강도가 달라진다. 20세가 지나면 누구에게나 이같은 동맥경화 현상이 진행되지만, 문제는 그것이 병적으로 빨리 진행되는 경우다. 이같은 동맥경화 현상이 관상동맥에 생기면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이, 뇌혈관에 생기면 뇌졸중이 발생한다. 신장혈관이나 다리 혈관에도 많이 생기는 편이다.
동맥경화는 매우 서서히 진행되는 일종의 노화현상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나이보다 훨씬 빨리 진행돼 ‘새파란’ 나이에 죽음을 맞게 한다. 동맥경화를 가속화 시키는 위험인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흡연,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관상동맥질환 가족력, 연령 등이 동맥경화의 위험인자다. 이 중 흡연, 고지혈증, 고혈압을 특별히 ‘3대 위험인자’로 분류한다. 따라서 이같은 위험인자를 적극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어느 정도 동맥경화와 이로 인한 협심증 심근경색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협심증이 있으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다’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다’ ‘가슴이 벌어지는 것 같다’ ‘가슴에 고추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 등의 증상이 생긴다. ‘이러다 내가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들 정도로 통증이 심한 게 특징이어서 누구나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나 당뇨환자인 경우엔 협심증이 심한데도 흉통이 없을 수 있어 더 위험하다.
협심 흉통은 안정을 취할 땐 괜찮다가 계단을 오르는 등 운동을 할 때 통증이 유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안정형 협심증이라 한다. 안정형 협심증으로 인한 흉통은 운동시 통증이 2~3분 지속되며, 휴식을 취하면 통증이 사라지므로 이같은 증상만으로도 쉽게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운동하지 않고 안정을 취할 때도 통증이 생기는데 이를 불안정형 협심증이라 한다. 또 운동이나 안정 여부와 상관없이 낮에는 괜찮으나 아침에만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변이형 협심증이라 한다.
그러나 흉통의 원인이 심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병이 없이 신경성으로 흉통이 생길 수 있으며, 위염, 위궤양, 담낭염, 식도경련, 늑골염 등으로도 유사한 흉통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흉통이 생기면 심전도 검사, 운동부하 검사, 심장초음파 검사, 핵의학 검사, 심혈관 관상동맥 조영술 등을 통해 먼저 무슨 병인지, 병이 어느정도 심각한지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협심증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한다. 아스피린이 흉통 자체를 줄여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피를 묽게 함으로써 혈전의 생성을 억제하고, 따라서 심근경색이 생길 가능성을 줄여준다. 하루 50~200mg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이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뇌경색의 원인도 혈전이므로 덤으로 뇌경색까지 예방 가능하다. 따라서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병이 없는 사람들도 오십세가 넘으면 심장병과 뇌졸중의 예방을 위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 노화방지와 장수를 위해 값비싼 보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백원도 안되는 아스피린이야 말로 세계 최고의 명약이자 보약이다.
협심증 환자는 그 밖에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베타 차단제와 칼슘 차단제 등의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베타 차단제는 심장 박동수를 감소시키고, 심장 근육의 수축력을 저하시켜서 산소가 조금만 공급돼도 심장 근육이 죽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테놀민, 켈론, 인데랄, 셀렉톨 등의 약물이 대표적인 베타 차단제다. 칼슘 차단제는 관상동맥 확장 작용과 심장근육 수축 억제작용을 하는데, 노바스크, 헤르벤, 아달라트, 베라파밀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협심증 환자에게 가장 잘 알려진 니트로글리세린은 일종의 응급약으로 흉통 발작시 혀 밑에 넣거나 피부에 뿌려 사용한다. 대개의 경우 수십초에서 수분내에 통증이 완화되는 기적과 같은 약이다. 협심증 환자 중에는 ‘양약이든 한약이든 약은 되도록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못 견딜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야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협심증 흉통은 자칫하면 생명을 앗아가므로 통증이 조금만 느껴져도 바로 사용해야 한다. 설사 협심증에 의한 통증이 아니라해도 문제될 게 없으므로 니트로글리세린의 사용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같은 발기부전치료제와 함께 복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틀 정도 니트로글리세린 복용을 중단한 뒤엔 비아그라 등을 복용해도 무방하다. 비아그라 발매 초기 사망자들은 모두 니트로글리세린 때문이었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보통 사람의 귀에도 익숙해진 ‘관상동맥 중재술’과 ‘관상동맥 우회로(바이패스) 수술’은 관상동맥의 막힌 정도가 심해 약물치료만으로는 심근경색을 예방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시행한다. 막힌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우면 먼저 관상동맥 중재술을 시행한다. 이는 좁아진 관상동맥 내부를 풍선이나 그물망(스탠트) 등을 이용해 넓혀주는 시술이다. 일반적으로 허벅지 혈관으로 풍선이나 그물망이 달린 가는 철사를 넣고, 그것을 관상동맥까지 밀어 올려 막힌 부위를 넓혀 주는 방법이다. 최근엔 풍선 확장술보다 그물망 시술이 더 많이 쓰인다. 그러나 그물망을 삽입하면 그물망 사이로 조직이 다시 자라나서 관상동맥이 다시 막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단점이다. 최근엔 항암제 등의 약물을 특수 코팅해서 조직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그물망이 개발돼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은 관상동맥 중재술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시행하는 최후의 치료법이다. 보통 허벅지 등에서 혈관을 떼어낸 다음 관상동맥의 막힌 부위를 우회하는 새 혈관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마치 교통정체가 심한 도로를 아예 폐쇄해 버리고, 주변에 신 도로를 건설하는 것과 같다.
심근경색은 좁아져 있는 관상동맥이 혈전에 의해 완전히 막힌 상태. 이 때 나타나는 통증은 기본적으로 협심증과 동일하지만, 안정을 취하거나 니트로글리세린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30분 이상 심한 흉통이 지속되면 즉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와야 한다. 당뇨병 환자나 노인들의 경우엔 심근경색이 일어났는데도 흉통이 없을 수 있는데, 대부분 호흡곤란을 하며 쓰러진다. 이런 경우에도 심근경색증을 의심하고 즉시 병원으로 데려와야 한다.
심근경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환자의 40% 정도는 수분 이내에 사망하며, 나머지도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심장근육이 죽어서 사망한다. 따라서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신속히 막힌 혈관을 뚫고 피를 통하게 해야 한다. 이때 얼마나 빨리 병원에 데려와 얼마나 빨리 막힌 혈관을 뚫어주느냐에 따르 생(生)과 사(死)과 판가름나며, 살아나더라도 후유증의 정도가 달라진다.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6시간 이내에 막힌 혈관을 뚫어줘야 하므로, 병원에서 검사하고 시술 준비하는 시간까지 감안해서 심근경색 발발 3~4시간안에 병원에 데려오는 게 좋다.
미국의 경우 심근경색 환자의 80% 정도, 유럽의 경우 60~80% 정도가 6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환자가 40%에도 못 미친다. 왜 늦게 왔냐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청심환을 먹이고 기다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한의원에 데려가 침을 맞히느라 늦었다고 한다.
심근경색의 경우, 사실상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응급조치란 전무하다. 한의원은 물론이고 전문 시설과 인력이 없는 작은 병원에서도 해 줄 치료가 별로 없다. 무조건 빨리 근처에서 가장 큰 병원에 데려와야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심근경색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혈전 용해제를 대량으로 투여하거나, 풍선이나 그물망으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하게 된다. 혈전 용해제를 투여하면 약 60~70%의 환자는 막힌 혈관이 뚫려서 회생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15~25%의 환자는 다시 혈관이 막힐 수 있고, 또 혈전용해제로 녹일 수 있는 혈전의 양도 제한돼 있으므로, 시설과 전문인력을 갖춘 큰 병원에선 혈전용해제 투여 없이 곧바로 풍선 확장술이나 그물망 시술과 같은 중재술을 시행한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예방을 위해선 우선 담배부터 끊어야 한다. 첫째, 담배 속에 들어 있는 약 4000 가지의 화학물질은 혈관의 보호작용을 하는 혈관 내막을 파괴하고, 혈관벽에 상처를 내게 된다. 둘째, 동맥경화증을 억제하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줄이고, 대신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을 증가시킨다. 셋째, 피의 응고기능을 담당하는 혈소판을 활상화시킴으로써 혈전(피떡) 생성을 촉진시킨다. 넷째, 혈관 수축물질(에피네프린)을 분비시켜 혈관 경련을 초래하는데, 이는 협심증 흉퉁과 심근경색의 원인이 된다. 다섯째, 담배를 피우면 혈압이 상승돼 고혈압 환자의 약물치료 효과가 감소된다. 이 때문에 흡연자의 협심증-심근경색증 발병 빈도는 비흡연자의 3배 이상 높다. 특히 고지혈증과 고혈압이 있는 뚱뚱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면 10배 이상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런 사람은 당장 금연해야 한다.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사람은 즉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mg/dl 이상인 사람은 200mg/dl 이하인 사람보다 동맥경화증이 3배 정도 빠르게 일어난다. 특히 콜레스테롤의 구성 요소 중 저밀도 콜레스테롤(LDL)이 130mg/dl 이상이면 관상동맥 질환 발발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임상연구에 따르면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250mg/dl 이상인 45~65세 남성에게 5년간 콜레스테롤 약을 복용케 한 결과 약을 복용하지 않은 같은 조건의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증 발생률이 31%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약 복용을 미루는 사람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증상이 없으니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당해 본 사람만이 안다는 게 비극이다.
한편 고지혈증 환자는 지방을 총 열량의 20% 이내로 줄여야 하며, 특히 동물성 포화지방산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육류의 기름기, 닭 껍질, 버터, 소시지, 베이컨, 치즈 등엔 포화지방산이 많다. 대신 신선한 채소, 과일, 잡곡, 현미, 콩류 등 섬유소가 풍부한 식사를 하는 게 좋으며, 생선도 많이 먹는 게 좋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생선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직접 떨어뜨리지는 않지만, 심혈관계 합병증을 어느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또 고지혈증 환자는 콜레스테롤이 많은 계란, 메추리알, 생선알, 생선 내장, 오징어, 새우, 장어 등도 삼가하는 게 좋다.
고혈압도 관상동맥질환의 3대 원인 중 하나다. 혈압이 높을 수록 동맥 내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혈관 내피(內皮) 세포의 손상이 많아지고, 침전물 생성이 증가하므로 동맥경화증이 가속화된다. 따라서 혈압이 140/90mmHg 이상인 경우엔 즉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고혈압약은 워낙 종류가 많고, 부작용도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의사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맞는 약을 선택해서, 평생 복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혈압이 높으면 짱아찌, 젓갈류, 자반 고등어, 인스턴트식품, 등을 삼가고 소금이나 간장 된장 사용량도 줄이는 등 식이요법에도 신경써야 한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도 필수적이다.
그 밖에 당뇨병, 비만,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도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의 발병에 관여하므로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관리해야 한다. 특히 당 성분은 혈관 내부의 단백질이나 지단백 등과 결합해 혈관의 탄력성을 감소시키므로 적극적으로 치료-관리해야 한다. 술의 경우, 적당히 마시면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켜 동맥경화와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면 알콜이 심장근육을 직접 공격해서 파괴하는 ‘알콜성 심근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과음은 금물이다.
<박승정 교수는>
박승정 교수는 마치 조폭의 우두머리 같다. 딱 벌어진 체격에 거무튀튀한 얼굴 부터가 그렇다. 조금만 일을 허투로 하면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매섭게 야단치고, 한번 화를 내면 그가 지휘하는 40명 가까운 심장 중재 시술팀 전체가 얼어 붙는다. 그에겐 ‘노(NO)’가 안통한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불도저처럼 몰아부친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팀원들을 다그치는 그를 병원 내에선 ‘왕박(王朴)’이라 부른다. 뒷켠에선 물론 ‘독재자’라 수근거린다.
▲ 박승정 교수그가 독재하는 이유는 분초를 다투는 심근경색 치료를 맡고 있기 때문. 박 교수는 심근경색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이내에 ‘바늘’이 들어가야 한다며,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 30여명의 팀원을 모두 병원 근처에 이사하라고 지시했다. 응급실에 도착해 필요한 검사를 마치고 시술실로 옮겨지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30분. 이 시간 안에 ‘비상출동’ 하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므로 이사 안할래야 안할 재주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1954년 강원도 원주 출생인 박 교수는 경복고와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8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92~93년엔 미국 베일러 의대 연구원으로 지냈다. 91년 협심증 환자에게 국내 최초로 금속 그물망 시술을 시작했으며, 현재 매년 1500여명을 시술하고 있다.
금속 그물망 시술에 관한 한 박 교수는 세계적 대가다. 1996년부터 매년 ‘엔지오플래서티 서미트(Angioplasty Summit)’란 이름의 국제혈관확장술 심포지움을 열고 있으며, 심포지움 기간 서울아산병원 3층에서 시연(試演)되는 그의 중재술 장면은 위성중계를 통해 전 세계 의사들에게 전달된다.
하버드의대 스테판 오스텔리 교수와 얽힌 일화는 아직도 학계내서 회자되고 있다. 1997년 미국 심장학회에 참석한 박 교수가 세가닥 관상동맥 중 왼쪽 주간부(left main)가 좁아진 환자도 금속 그물망 시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청중석에 있던 오스텔리 교수가 “그것은 흉부외과 의사의 영역. 정신나간 일”이라고 코멘트 했다. 오스텔리 교수는 그러나 지난해 9월, 박 교수를 하버드대로 초청해 주간부 시술에 관한 특강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진단 중심이던 심장내과 분야의 흐름이 20여년전부터 치료를 병행하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내 나이가 그 흐름을 받아들이기 가장 좋았다”며 “‘독재’하에서 묵묵히 일하는 팀원들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소박스:그 밖의 심장질환>
선천성 심장병, 심장판막질환, 심장근육질환, 부정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선천성 심장병은 대부분 심장기형 때문에 초래된다. 좌우 심방 사이에 구멍이 난 심방중격결손증, 좌우 심실 사이에 구멍이 난 심실중격결손증, 심장 대동맥과 폐동맥 사이에 구멍이 난 동맥관 개존증 등이 가장 흔하다. 대부분 어린 아이 때 발견돼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지만 때로는 어른이 될 때까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방치하면 동맥 피와 정맥 피가 뒤섞여 피부나 입술이 검붉은 색으로 변하는 청색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는 수술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형이 심각한 경우엔 그러나 조기발견을 해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판막질환은 두 개의 심방과 두 개의 심실 사이에서 개폐작용을 하는 판막이 고장나 제대로 열리고 닫히지 않는 것이다.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후천적으로 발생한다. 목감기 후유증인 류머티스열이나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가 판막이 손상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 밖에 심내막염, 매독, 심근경색증 등이 판막질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판막이 제대로 잘 개폐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호흡이 가쁜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앉거나 누워 있어도 숨이 가쁘고 심한 기침, 가래, 흉통이 나타나게 된다. 약물치료, 내과적 시술, 수술 등으로 대부분 완치 가능하다.
심장 근육질환으로는 심장근육이 과도하게 두꺼워 지는 비후성 심근병증이 대표적이다. 1000명 당 1~2명 꼴로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데, 젊은 사람이 운동 중 급사하는 경우는 1차적으로 이 병을 의심할 수 있다. 증상이 없으면 특별한 치료가 필요없지만 호흡곤란이나 흉통 등이 나타나면 약물치료나 수술을 한다. 최근엔 알코올을 이용해서 두꺼워진 심장근육 일부를 제거하는 시술도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편 감기 등 바이러스 감염으로 심장 근육에 염증이 생기면서 근육이 늘어지는 것이 확장성 심근병증이다. 이 때는 심장의 수축력이 약해져 심한 경우 심부전이나 부정맥으로 사망할 수 있다. 증상이 가벼우면 약물치료를 하지만 심한 경우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
부정맥이란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거나 지나치게 빠르거나 늦게 뛰는 증상이다. 심장이 단 1초도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뛰는 이유는 심장내 자가 발전소(동방결절)에서 전류를 계속 일정하게 흘려 주기 때문이다. 부정맥은 이같은 전기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심장이 빨리 뛰느냐 늦게 뛰느냐 불규칙하게 뛰느냐에 따라 증상이 달라진다. 빈맥이나 서맥이 심한 경우엔 사망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치료를 하지 않거나 약물치료를 하지만, 심한 경우엔 심장을 빨리 뛰게하는 인공심장 박동기나 빈맥을 줄여주는 제세동기를 심장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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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연재합니다.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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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1분에 한번 정도, 심한 운동시 20초에 한번 정도 온 몸을 순환하는 피 속에는 각종 영양소와 산소가 풍부히 들어 있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포도당으로 분해된 뒤 피 속에 녹아 온 몸으로 전달되며, 인체 각 조직은 이 포도당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획득한다. 이 때 필요한 ‘불 쏘시개’가 바로 산소다. 그 밖에 인체를 구성하는 각종 단백질, 지방질, 무기질, 비타민, 콜레스테롤 등도 피를 통해 온 몸으로 운반된다. 따라서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들은 호흡곤란과 영양실조 때문에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된다. 뇌나 심장 세포는 극히 예민해서 수분간만 피 공급이 중단돼도 사망하게 된다. 그 때문일까. 고대로 부터 피는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고, 각종 종교의식을 통해 숭상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은 낙제점 수준이다. 피가 어떻게 생성돼서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원인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빈혈이 있으면 어지럽다’ ‘백혈병은 골수이식을 해야 한다’는 정도가 일반인의 상식 수준이다. 피의 순환에 관련된 질환, 즉 동맥경화 등 순환기 질환에 대해 일반인들이 의사 못지 않은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피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혈액질환보다 순환기 질환이 훨씬 많고 훨씬 더 치명적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혈액질환의 중요성이 대중에게 간과되는 현상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 교양과 상식을 위해서라도 생명, 그 자체인 피와 피에 생기는 병들을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포 성분과 혈장이라 부르는 액체 성분으로 구분된다. 즉 적혈구 등 세포성분이 혈장에 떠 있는 형태가 바로 피다. 피가 붉은 이유는 혈액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적혈구 성분 때문이며, 백혈구와 혈소판은 혈액의 4~5%에 불과하다. 혈액의 나머지 55% 정도는 혈장이며, 혈장의 90%는 물이다.
적혈구는 산소의 운반 기능을 한다. 적혈구 안에 있는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해 온 몸을 돌면서 조직에 산소를 전해준 뒤 다시 심장을 거쳐 폐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산소를 머금은 동맥피는 밝은 선홍색인데 비해 산소를 빼앗긴 정맥피는 검붉은 색을 띈다. 무색의 백혈구 세포는 외부의 침략군으로부터 인체를 지켜내는 방위군이다. 즉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체내로 침투하면 백혈구는 여기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성해서 침입한 세균 등을 무력화시킨다. 혈소판은 혈관의 상처를 치료하는 접착제와 같다. 혈관이 찢어져 피가 새어나오면 그 부위에 달라붙어 혈액응고인자를 분비시킴으로써 지혈작용을 한다.
한편 피의 양은 몸무게에 비례한다. kg당 80ml 정도므로 체중 60kg이라면 혈액양은 약 4.8리터가 된다. 적혈구 백혈구 등 피의 세포 성분은 대부분 골수라는 혈액조직 내에 있는 조혈모세포에서 생성되는데, 골수는 골반뼈에 가장 많고 척추, 갈비뼈 같은 납작뼈에도 있다. 골수이식(조혈모세포이식)을 할 때 골반에 긴 대침 같은 것을 꽂아 골수를 채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조혈모세포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적혈구의 수명은 120일, 백혈구는 30~60일, 혈소판은 8일 정도다.
혈액질환이란 혈액을 구성하는 세포나 기타 구성 물질에 이상이 생긴 경우다. 부상 등으로 출혈이 생기면 다시 그 만큼의 피가 생성되므로 피의 양이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만약 총상이나 심한 부상 등으로 피를 지나치게 많이 흘리면 즉시 사망하므로 그것을 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혈액질환 중에선 혈액세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적혈구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백혈구나 혈소판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백혈구-혈소판에 이상이 생기면 적혈구의 이상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임상적으로는 더 자주 문제가 된다.
적혈구에 나타나는 문제는 대부분 적혈구 숫자가 감소하는 것이다. 빈혈이라 하면 피의 양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피 속에 있는 적혈구 수가 적어지는 게 빈혈이다. 빈혈이 있으면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 말단 부위에 피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특별한 자각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적혈구가 적으면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지지만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심장이 더 빨리 뛰어 혈류량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혈 환자는 달리기나 등산을 할 때 숨이 가쁘면서 구역질이 나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스스로 “난 원래 달리기나 등산을 잘 못한다”고 여기고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흔히 빈혈의 증상으로 숨가쁨, 현기증, 피로감, 피부창백, 뼈나 관절 주변의 통증 등을 드는데, 이같은 증상이 나타날 때는 빈혈이 상당히 심한 경우이다. 만약 빈혈 정도가 몹시 심하다면 심장에 만성적으로 부하가 걸리므로 만성 심부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빈혈은 빈혈을 일으킨 원인에 따라 구분하는데,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는 대부분의 빈혈은 지속적인 실혈(失血)로 인한 철결핍성 빈혈이다. 월경량이 많은 여성, 위-십이지장 궤양 환자, 치질 환자, 일부 암 환자 등은 몸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이 생겨 피가 빠져 나가며, 이 때문에 헤모글로빈의 원료가 되는 철 성분이 부족해져 빈혈이 초래된다. 여성의 20~30%가 빈혈인 이유도 생리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는 더 이상 실혈이 없도록 원인 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궤양이나 치질로 인한 실혈 때문에 빈혈이 생겼다면 위궤양이나 치질을 치료함으로써 빈혈도 낫게할 수 있다. 그러나 출혈의 원인이 과도한 생리 때문인 경우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해야 하며, 철분제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음식을 통해서도 철 성분을 충분히 공급해 줘야 한다. 철이 많은 음식에는 선지, 육류, 생선, 시금치, 콩, 해조류, 우유 등이 있다.
한편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부 등은 출혈이 없어도 철결핍성 빈혈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체중이 급격히 늘면서 혈액량도 따라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혈액량이 증가할 때는 혈액의 원료가 되는 철 성분도 음식 등을 통해 그만큼 많이 공급해 줘야 하는데,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빈혈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기 청소년이나 임신부는 철 성분이 많은 음식을 특히 많이 먹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철분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출혈도 없고, 체중증가도 없는 상태서 빈혈이 나타난다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조혈모세포이식 등을 통해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는 경우도 흔한데, 이같은 빈혈로는 첫째 겸상적혈구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 등과 같은 유전성 빈혈, 둘째 조혈(造血)기능을 담당하는 골수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재생불량성 빈혈, 셋째 적혈구가 제 수명을 살지 못하고 일찍 파괴되는 용혈성 빈혈 또는 골수이형성증 등이 있다.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찌그러져 빈혈이 유발되는 겸상적혈구 빈혈은 사망률이 높은 편이나 조혈모세포 이식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의 생산 장애를 일으키는 지중해성 빈혈은 증상이 가벼운 경우엔 특별한 치료없이 정상 생활이 가능하나, 병이 심한 경우엔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도 겸상적혈구빈혈이나 지중해성 빈혈같은 유전성 빈혈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류머티즘 처럼 자가면역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심한 바이러스 감염이나 항암-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생길 수도 있다. 역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한다.
용혈성 빈혈은 인체의 비정상적 면역반응에 의한 경우가 가장 흔하며, 항생제나 고혈압치료제 등 약물 부작용으로 생기거나, 말라리아 등 감염질환의 부작용으로 생기거나,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의 후유증으로 생기기도 한다. 원인이 다양하므로 원인을 다스리는 치료가 우선돼야 하며, 병이 진행돼 비장에서 적혈구 파괴현상이 심해진 경우엔 비장제거수술을 받기도 한다.
다음은 백혈구의 이상에 관해 살펴보자. 백혈구와 관련해선 백혈구 수치가 증가하는 것과 감소하는 것 두가지 모두 문제가 되는데, 이 중 백혈구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게 백혈병이다. 백혈병을 혈액암이라 부르는 이유는 백혈구가 암세포로 변하기 때문이다. 백혈병 환자는 암 세포로 변한 비정상 백혈구가 증가함에 따라 정상적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의 생산이 줄어들고 그 때문에 결국 사망하게 된다.
백혈병은 사실 성인의 10대 암에도 들지 못할 만큼 발병률이 낮지만, 대중들은 그 어떤 암보다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착각한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영화 ‘라스트 콘스트’에서 천사처럼 맑은 여주인공 클라라를 죽게 만든 병이 백혈병이며, 드라마 ‘가을 동화’서 송혜교가 앓았던 병도 다름아닌 백혈병이다. 최근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약값을 두고 환자-정부-제약사간의 갈등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유독 어린이 환자가 많아 이들을 돕기 위한 백혈병재단이 오래 전에 발족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도 백혈병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백혈병의 원인과 관련해선, 방사선 피폭만이 백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져 있을 뿐 그 밖의 발병원인은 아직껏 분명하지 않다. 벤젠 등 유기용제의 사용, 중금속 노출, 일부 약 부작용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 않다. 유전 가능성은 일부 소아 백혈병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
백혈병은 크게 골수성 백혈병과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나누며, 각각 급성과 만성이 있다. 따라서 백혈병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등 4가지 종류가 있다. 골수성 백혈병은 과립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암세포로 바뀌는 것이며, 림프구성 백혈병은 림프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암 세포로 바뀌는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주로 어린이에게 발병하며, 전체 소아암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소아에게 발생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항암제만으로 70% 이상 완치된다. 그러나 성인에게 나타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항암제 완치율이 20%에 불과하므로, 나머지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야 한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주로 60대 이상에 나타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겐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20대와 30대 빈발하지만, 소아든 성인이든 항암제 완치율이 15~20%에 불과하므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사망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40대와 50대에 빈발하며, 최근 화제의 항암제 글리벡의 개발로 치료효과가 크게 좋아졌다. 과거엔 5년 생존률이 60% 안팎이었으나 글리벡의 사용으로 90%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한편 급성 백혈병은 출혈이나 발열 등의 증상이 순식간에 나타난다. 특정 유형의 급성 백혈병은 증상이 나타난지 하루 이틀만에 온 몸에서 피를 쏟기 때문에 손 쓸 시간조차 없이 사망한다. 그러나 만성 백혈병은 발병해도 증상이 없어 1~2년씩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피 검사를 해도 웬만큼 꼼꼼히 조사하지 않으면 발견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로, 체중감소, 식은 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자주 피 검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급성 백혈병과 만성 백혈병의 발생 비율은 약 8대2 정도다.
백혈병은 치료비가 가장 비싼 암이다. 항앙제 만으로 완치돼도 6000만~7000만원 정도가 들며,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받으면 1억원은 그냥 날아간다. 그런데도 뚜렷한 예방법 조차 없다.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는 황당한 병이 바로 백혈병이다.
백혈병과 반대로 백혈구 숫자가 감소하는 병이 있는데 골수이형성증후군과 재생불량성빈혈 등이 대표적이다. 백혈구 숫자가 감소하면 면역기능이 떨어져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과거엔 재생불량성 빈혈과 골수이형성증후군의 발병 빈도는 10만명에 1명꼴로 비슷했으나 최근엔 골수이형성증후군의 발병빈도가 10만명에 2명꼴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공해, 환경오염, 염색약의 과도한 사용, 장기간의 흡연과 관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번째는 혈소판의 문제다. 혈소판도 수가 증가하거나 감소할 때 문제가 생기는데, 혈소판 수가 감소하는 병 중 대표적인 게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ITP)’이다. 혈소판은 정상적으로 생산되지만 자가면역 작용으로 혈소판이 대부분 비장에서 파괴되는 병으로,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발병 빈도는 백혈병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다.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 있는 사람에게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혈소판 수가 증가하는 병 중 대표적인 것은 ‘특발성 혈소판 증다증(ET)’이다. 혈소판이 증가하면 혈전이 쉽게 생기므로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 순환기 질환을 유발한다.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이 병은 100만명에 1~3명꼴로 발병할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
이상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혈액 내 3가지 세포에 생기는 병을 살펴봤다. 그러나 세포가 아닌 혈액내 다른 성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게 혈우병이다. 이는 혈장내에 존재하는 혈액응고인자가 부족해 피가 멎지 않는 유전병으로, 해당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하므로 남성에게만 나타난다. 여성이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후대로 유전돼 아들의 1/2이 혈우병에 걸린다. 그러나 전체 혈우병 환자의 1/3 정도는 부모로부터 유전인자를 물려 받지 않았는데도 후천적으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사람들이다. 후천적인 유전자 변이의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혈우병 환자는 작은 상처에도 쉽게 멍이 들고, 피가 나면 지혈이 되지 않고, 인체 내부의 출혈로 갑작스런 통증이 생기며, 혈뇨를 보는 등의 특징적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환자는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과격한 운동도 삼가해야 한다. 또 병이 심할 경우 지속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외부에서 공급해 줘야 한다. 유전성이므로 가족 중 환자가 있는 경우엔 임신 전에 반드시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
혈우병과 유사한 병으로 크리스마스병과 폰 빌레브란트병이 있다. 크리스마스병은 결핍되는 혈액응고인자의 타입만 혈우병과 조금 다를 뿐 나머지는 혈우병과 거의 동일하므로, 때로는 혈우병과 크리스마스병을 구분하지 않고 혈우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폰 빌레브란트병도 쉽게 멍들고, 지혈이 잘 안되며, 코피가 자주 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증상이 경미하며, 치료를 하면 쉽게 호전된다는 점이 다르다. 우성 유전질환으로 부모 중 한사람에게만 유전인자가 있어도 발병한다.
<김동욱 교수는>
▲ 김동욱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교수 가톨릭 의대 조혈모세포 이식 센터는 백혈병 등 혈액암 분야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20개의 무균 병상을 운영하는 이 센터는 규모 면에서 세계 4대 센터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치료 성적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동양에선 유일하게 조혈모세포 이식 2000건(2003년8월)을 돌파했고,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의 40% 정도를 시행한다.
김동욱 교수는 김춘추 교수를 도와 가톨릭의대 조혈모세포 이식센터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린 1등 공신이다. 초대 소장인 김동집 교수가 조혈모세포 이식 센터의 터를 닦았다면 1997년 제2대 소장이 된 김춘추 교수는 이 센터를 세계 4대 센터 중 하나로 키워냈다. 김동욱 교수는 국내-세계 신기록을 잇달아 쏟아냄으로써 김춘추 교수에게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그는 1995년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이식, 1996년 조직적합항원(HLA)이 일치하지 않는 조혈모세포 이식, 1997년 제대혈(탯줄) 조혈모세포 이식에 국내 최초로 성공했다. 또 2002년에는 외과 김동구 교수와 팀을 이뤄 백혈병과 간경화증이 함께 있는 환자에게 세계 최초로 간 이식과 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하기도 했다. 2003년엔 만성 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된 항암제 글리벡의 급성 백혈병 치료지침을 세계 최초로 마련하기도 했다. 약간 수줍은 듯 말하는 김 교수는 “가톨릭의대 조혈모세포 이식센터란 풍부한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1961년 1월1일 생인 김동욱 교수는 1985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했으며,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인턴과 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개원시 1년간의 ‘외도’기간을 제외하고는 1992년부터 쭉 여의도 성모병원서 근무하고 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미국 프레드 허치슨 암센터에서 연수 했다. 2004년 현재 한국과학재단에서 지정한 ‘한국인 백혈병 세포 및 유전자 은행’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에 본부를 둔 전 세계 타인 골수 기증자 관리 기구인 ‘세계비혈연이식기증자협회(World Marrow Doner Association:WMDA)’와 ‘아시아-태평양 만성골수성백혈병 연구위원회’의 아시아 태표도 맡고 있다.
병원과 연구실에 틀어박혀 사는 그는 지난 2003년 4월, 백혈병에 관련된 유전자 이상을 진단해 낼 수 있는 유전자 진단 키트를 개발해 특허출원했다. 이 키트는 과거 20~30%에 불과했던 진단율을 90%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요즘엔 기적의 항암제라는 글리벡에 대해 왜 내성(耐性)이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있으며, 2003년 부터는 보건복지부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백혈병 환자가 고가의 항암제를 복용하기 전 미리 약효를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 칩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모 제약사와 함께 새 백혈병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는데,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ABO혈액과 Rh혈액
혈액형은 1900년 오스트리아인 칼 랜드스타이너가 발견했다. 수술 등으로 출혈이 심할 때 수혈(輸血)을 받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기본이지만, 혈액형이 발견되기 이전의 수혈은 매우 위험한 치료행위였다. 수혈 즉시 원기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열이 나고, 까무러치고, 검은 소변을 보면서 사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혈액형끼리는 응집과 용혈(적혈구의 세포막이 파괴돼 그 안의 헤모글로빈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현상)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랜드스타이너는 양의 적혈구와 개의 혈청을 섞자 순식간에 양의 적혈구가 응집되고 용혈되는 것을 지켜본 뒤 사람의 혈액 속에도 다른 사람의 적혈구를 응집-용혈시키는 성분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과 제자들의 피를 뽑아 서로의 적혈구와 혈청을 섞어보는 연구를 진행해 사람의 혈액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의 혈액을 응집시키는 알파와 베타 두가지 응집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알파 응집소에 응집이 일어나는 혈액을 A형, 베타 응집소에 응집이 일어나는 유형을 B형, 두가지 응집소 모두 응집이 일어나는 유형을 AB형, 두가지 응집소 모두 응집이 일어나지 않는 유형을 O형이라 정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인류는 수혈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됐으며, 그 공로로 랜드스타이너는 193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랜드스타이너는 1940년 붉은털 원숭이(Rhesus)를 이용해서 Rh혈액형도 발견했다. 붉은 털 원숭이의 혈액을 토끼에게 주사한 뒤 토끼의 혈청을 추출해 사람의 혈액과 섞었을 때 응집이 일어나는 혈액을 Rh+, 응집이 일어나지 않는 혈액을 Rh-라고 그는 명명했다. 붉은 털 원숭이로 실험했다해서 이 혈액형을 Rhesus의 첫 두자를 따서 ‘Rh혈액’이라 한다. Rh- 혈액형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0.1~0.3% 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드물어, Rh- 혈액형 환자가 긴급하게 수혈을 받아야 할 경우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백인에겐 Rh- 형이 15~20%로 비교적 흔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편 Rh-형인 여성이 Rh+형인 남성과 결혼해서 Rh+형인 아기를 임신하면 출산 또는 유산 과정에 아기의 피가 엄마 피 속으로 일부 들어가 엄마의 피 속에 Rh 항원에 대한 항체가 남아있게 되는데, 엄마가 또 다시 Rh+형인 아기를 임신할 경우 이 항체가 아기의 적혈구를 용혈시켜 ‘신생아 용혈성 질환’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Rh-형인 여성은 아기를 한 명 밖에 못 갖는다고 알려졌으나, 요즘엔 임신 중반기와 출산직후 ‘Rh면역 글로블린’이란 주사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편 Rh-형인 남성은 아내가 Rh+형이든, Rh-형이든 아기를 갖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호준 기자 사이트 바로가기(imhojun.chosun.com)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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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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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흔히 “벽에 똥칠하기 전에 어서 죽어야지…”라고 말한다.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은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 만큼이나 속이 들여다 보이는 생 거짓말.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댓가가 치매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전문 직업인으로서, 한 가족의 어른으로서 자존감(自尊感)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가족도 못 알아보고, 어린애처럼 생떼를 쓰며, 추악하게 먹을 것에 집착하고, 대소변도 못가리게 되는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용납할 수 있을까.
그것은 완전한 ‘인격의 무덤’이다. 세상사 갖은 환난고초와 맞닥뜨려 이겨낸 백발의 권위와 당당함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자각하지 못하는 자신은 오히려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처럼 사랑했던 자녀들이 자신을 대신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려 하루 하루를 지옥처럼 살아간다. 화목하고 단란했던 가족에 대한 가장 기본적 신뢰와 애정마저 송두리째 빼앗은채 파국으로 몰고가는 치매는 그래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노망들지 않고 죽는 것을 복으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과 고령화 사회의 도래로 치매가 오기 전에 빨리 죽는 것은 더욱 힘들어 졌고, 치매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무게로 인류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국어사전에선 ‘정상적인 정신능력을 잃어버린 상태’ ‘뇌 신경세포의 손상 등으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으로 상실된 상태’라고 치매를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소하고, 심한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수가 있지만 이것은 자연스런 노화의 과정이지 치매가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기억장애가 있으면서 동시에 언어장애, 방향감각 상실, 계산력 저하, 성격 및 감정의 변화 등 4가지 중 1가지 이상이 나타날 때 치매로 진단한다. 한편 우울증이 있을 경우에도 인지기능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지만, 이는 ‘가성(假性)치매’라고 한다. 우울증 증상이 회복되면 치매 증상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수 없이 많지만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뇌 혈관 여러 곳이 막혀 초래되는 혈관성 치매가 전체 치매의 90% 정도를 차지한다. 그 밖의 감염성 질환, 대사성 질환, 내분비 질환, 중독성 질환, 파킨슨씨병, 수두증, 간질 등이 치매의 원인이 된다. 서양의 경우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의 비율이 8대2 정도로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5대5 정도로 비슷하다. 그러나 국내서도 혈관성 치매의 원인이 되는 뇌졸중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예방법의 확대로 차츰 혈관성 치매는 줄고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많아지는 추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혈관성 치매의 증상은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다. 알츠하이머 초기엔 기억력만 깜빡깜빡할 뿐 운동능력이나 성격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또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가 일정하다. 그러나 뇌졸중이 원인이 돼 발병하는 혈관성 치매의 경우, 기억력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동작도 둔해지고 성격이 변하는 게 특징이다. 어떤 경우엔 기억장애보다 운동장애 등이 더 명확하다. 특히 기억력 장애와 함께 승용차 뒷좌석에 앉을 때 수월하게 앉지 못하고 동작이 굼뜨거나 걸음을 걸을 때 종종걸음을 걷는다면 혈관성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성격변화는 얼굴 표정이 없어지고, 말수도 적어지고, 이상하게 게을러 지고, 계획성이 없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고, 화를 잘 내게 된다. 그 밖에 물이나 음식 등을 섭취할 때 사래가 들리는 것(삼킴장애), 발음장애 등도 혈관성 치매일 경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초기 단계를 지나 중기 이후 단계로 들어서면 알츠하이머나 혈관성 치매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중기 단계에 접어들면 금방 일어났던 일이나 사람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전화받기가 어려워지며, 외출했다가 집을 찾지 못하거나, 이유없이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의심하는 행동(예를 들어 자기 물건을 남이 훔쳐갔다고 주장함)을 하게 된다. 병이 말기로 진행되면 초조, 흥분, 편집증적 망상 등의 문제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는 식구를 못 알아보거나, 변을 못가리거나,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음식을 제대로 못 삼키거나, 침대에 누운 채 생활하는 수가 많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일반적으로 초기 단계는 발병 후 1~3년째, 중기 단계는 2~10년째, 말기 단계는 8~12년째에 나타난다. 환자들은 짧게는 발병 후 3년, 길게는 20년까지 생존하며, 평균 8~12년 살 수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뇌졸중의 양상에 따라 생존 기간이 크게 차이가 나므로 일반화 할 수 없다. 치매 환자의 사망 원인으로 배회(徘徊)로 인한 교통사고나 추락 등과 같은 사고사가 흔하다.
그러나 이 보다는 폐렴이나 요로감염과 같은 감염성 질환이 더 중요한 사인이다. 치매가 심해져 자리에 눕게되면 면역성이 떨어져 폐렴 등 감염성 질환에 쉽게 걸린다. (음식물 등)삼킴장애로 인한 영양실조, 가래가 차지만 뱉어내지 못해 생기는 호흡곤란도 사망의 원인이 된다.알츠하이머는 1907년 이 병을 처음으로 기술한 독일의 정신의학자 알로이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딴 병명이다. 진단기준이 뚜렷하지 않았고 노인인구도 적어 당시만 해도 알츠하이머는 희귀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암, 심장질환, 뇌졸중 등과 함께 가장 흔한 사망원인이 됐다. 우리나라서도 65세 이상 노인의 5% 이상이 알츠하이머 환자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건강한 뇌 세포가 서서히 죽어 생기는 병이다. 사람의 뇌는 약 140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매일 5만개 정도씩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뇌 세포의 감소속도가 이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뇌를 부검해 본 과학자들은 죽은 신경세포 주변에 베타 아밀로이드란 단백질이 무수하게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여기서 내뿜는 독성물질이 뇌 세포를 죽인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렇다면 왜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 신경세포에 들러붙게 될까?
의학자들은 아직 그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단지 노화와 가족력(유전적 소인)이 베타 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촉진한다는 사실만을 확인했다. 외국의 통계들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5~10%가, 85세 이상에선 35%~50%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으며, 따라서 노화는 알츠하이머의 가장 중요한 유발요인이다. 또 인간의 1번, 14번, 19번, 21번 염색체가 알츠하이머 발병에 관여하며, 가족 중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는 경우엔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밖에 머리의 외상, 고지혈증, 지나친 음주와 흡연도 알츠하이머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의학자들은 추정한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연구에 따르면 머리에 외상을 입었지만 기절(의식 소실)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았던 사람은 2배, 외상을 입고 24시간 이상 의식이 소실된 심각한 두뇌 손상을 받은 사람은 4배 정도 알츠하이머 가능성이 높았다. 일본 연구팀에 따르면, APO-E4란 유전자가 있고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배 정도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높았다.알츠하이머가 무서운 이유는 예방과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의 예방을 위해 타고난 유전자를 개조할 수도, 늙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코그넥스, 아리셉트, 엑셀론, 레미닐 등의 약들이 FDA 승인을 받아 알츠하이머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지만 획기적인 효과는 없다. 이 약들은 환자 중 일부에게서지만 일정기간 기억능력을 개선시킬 수 있으며, 최소한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줄인다는 얘기지 악화를 막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말하자면 한달동안 100만큼 나빠질 환자를 한달반 또는 두달에 걸쳐 100만큼 나빠지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병원에 온 환자들에겐 어쩔 수 없이 약을 처방하지만 약을 쓰나 안쓰나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이므로, 의사가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치료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최근엔 비타민 E, 셀레질린 등 항산화물질, 항염증제제, 여성의 경우 여성호르몬 등이 알츠하이머의 진행속도를 늦춘다는 보고가 있지만 역시 파국을 막을 만큼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유전자 치료다. 현재 잘못된 베타 아밀로이드를 양산하는 유전자가 밝혀지고 있으며, 그 유전자를 개조해 베타 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차단하려는 연구가 줄기차게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며, 언제 환자 치료에 사용될 지 현재로선 짐작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방도, 치료도 불가능하다면 알츠하이머의 가공할 공포앞에 속수무책으로 떨고만 있어야 할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말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국 켄터키 대학 데이비드 스노우든(David Snowdon) 박사의 ‘수녀(修女) 연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팀은 수십년에 걸쳐 켄터키주에 있는 수녀원 수녀들을 면담했다. 또 뇌 기증을 약속받고 사후엔 그들의 뇌를 부검했다. 어떤 수녀는 치매 없이 사망했고, 어떤 수매는 경증의 치매인 상태로, 또 어떤 수녀는 중증 치매인 상태로 사망했다.
예상대로 생전의 인지기능과 뇌 세포의 파괴 정도는 대부분 비례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깜짝 놀랄만한 사례가 몇건 발견됐다. 생전에 치매 증상이 전혀 없던 수녀가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예상외로 뇌 신경세포가 광범위하게 파괴돼 1~6단계 중 6단계의 알츠하이머 소견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중증 치매 증상을 보이던 수녀의 뇌는 1~2단계 알츠하이머로 진단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연구팀은 뇌 신경세포가 파괴됐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수녀는 생전에 항상 낙관적-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반대의 경우엔 항상 부정적이었고 우울해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것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즉 생물학적 뇌 세포 파괴 정도와 겉으로 드러나는 치매 증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때로는 마음 자세와 생활하는 환경이 치매의 발현(發顯)을 억제하기도 촉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편 지속적인 두뇌 활동도 알츠하이머 발병을 어느 정도 예방할 것으로 의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람의 뇌는 사용하면 할수록 발달하고, 게을러지면 금방 위축된다. 실제로 지적활동과 알츠하이머 발병률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여러 조사결과에 따르면 독서, 바둑, 카드놀이, 글쓰기, 산수, 암산, 악기연주, 그림그리기 등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낮다. 평생 주판을 두드리며 가게를 운영한 사람은 치매에 걸렸어도 계산능력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 등의 사례가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뇌 세포는 모두 죽었지만 계산하는 세포만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세계의 명산 이름을 수백-수천개식 암송했다는 고 서정주 시인의 치매 예방법도 본받을 만 하다.
그 밖에 바둑, 장기, 댄스 등 취미활동을 권장하거나,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뜨개질, 청소 등 집안일을 맡기는 것도 치매 예방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용돈 등 소규모의 돈을 직접 관리하게 하는 것도 좋다. 두부손상, 고지혈증, 음주, 흡연, 우울증 등을 예방하는 것도 알츠하이머 예방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병의 조기 진단도 중요하다. 비록 예방할 순 없다고 해도 아주 초기단계에서 발견하고 약물치료를 통해 병의 악화속도를 최대한 늦추면 치매의 재앙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 알츠하이머를 확진할 수 있는 임상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死後) 대뇌 조직을 병리검사해야만 확진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의사들은 자세한 병력(病歷) 청취와 신경심리 검사만으로도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뇌파 검사, 뇌 MRI 검사, 뇨검사, 흉부X선검사, 심전도 검사 등을 하게 된다. 최근엔 유전자 검사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로 알츠하이머를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혈관성 치매는 발병 원인과 예방-치료법 등이 뇌졸중과 상당부분 겹치므로 여기선 몇가지 중요한 점만 지적해 보자. 한가지 강조할 점은 혈관성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고, 치료를 통해 병의 악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치매는 예방도,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알츠하이머에 국한된 얘기다. 작은 뇌경색이 무수히 반복돼 일어나는 게 혈관성 치매이므로 뇌졸중을 예방하면 혈관성 치매도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의 비율이 절반 정도씩므로, 절반 정도의 치매는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예방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뇌졸중을 유발하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과음, 비만 등의 위험요인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치매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고혈압 등의 치료에 힘쓰고,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가벼운 뇌경색을 경험한 사람과 가족들은 ‘경계태세’를 풀지 말아야 한다. 아스피린 등 항혈전제를 복용하는 등의 치료에도 충실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뇌졸중 또는 혈관성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가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승용차 뒷좌석에 앉는 동작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굼뜨는 사람,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사람, 표정이 멍해지고 말수가 없어지는 사람 등은 뇌졸중이나 혈관성 치매일 가능성이 있다. 이 상태에서 병을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팔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 앞이 깜깜해 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땐 호들갑을 떨고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증상이 없어지면 까맣게 잊고 지내다 ‘큰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치매를 키우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어머니, 내 아버님의 치매는 청천벽력과 같은 재앙일 수 있다. 단란했던 한 가정이 사분오열되고, 지난날 아름다운 기억조차 진저리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재앙을 부른 ‘원흉’으로 간주하고, 다그치고, 구박하고, 한탄스러워 한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퍼부은 화살은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
치매 환자들은 파괴돼 얼마남지 않은 뇌 세포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기억해 내고, 행동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 따라서 자꾸 다그치기 보단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감싸줘야 한다. 대개의 경우 환자의 기억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때로는 답답하고 화가 나서, 환자에게 무엇인가를 자꾸 기억해 보게 하고, 기억 못하면 못한다고 다그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환자에게 스트레스와 좌절감만 안겨줄 뿐이다. 그 결과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때로는 벽에 똥을 바르는 것과 같은 문제 행동이나 공격적 행동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게 된다.
가족들은 앞서 설명한 수녀연구의 결과를 곰곰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의학적으로 치매는 불치의 병이다. 어떤 방법을 써도 이 재앙을 피해나갈 수 없다. 피해갈 수 없다면 차라리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정답이다. 가족들의 따뜻하고 적극적인 이해가 어쩌면 수녀연구 사례에서와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덕렬교수는
1994년 나덕렬 교수가 개설한 ‘기억장애 클리닉’에선 초진 환자에 한해, 환자 한명을 5~6명의 전문의가 약 2시간에 걸쳐 진찰한다. 국내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한 ‘미국식’ 시스템이다. 미국 진찰료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한 진찰료로 이 클리닉이 굴러가는 이유는 나 교수의 고집 때문이다. 그는 치매의 진단은 값비싼 진단장비보다 환자를 관찰하고 문진하고 평가하는 게 더 효과적이며, 의료진이 환자의 가족사항, 생활환경 등을 완전히 이해할 때 최선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1976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나 교수는 혼자서 책을 보며 뇌의 신비에 침잠(沈潛)했고, 그래서 신경과를 택했다. 1993~1994년 캐나다와 미국 연수 직전까지만 해도 뇌 기능 장애로 초래되는 실어증(失語症)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곳에서 치매로 전공을 바꾸었다.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치매가 그의 호승지벽(好勝之癖)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연수를 위해 미국 임상 면허까지 획득한 그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벽안(碧眼)의 치매 환자를 진료했으며, 그곳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그대로 옮겨와 환자를 돌보고 있다.
1994년 귀국한 나 교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의 한국적 진단-치료기준을 마련하는데 노력해 왔다. ‘한국판 보스톤 이름대기 검사’, ‘서울 신경심리 선별총집’, ‘한국판 웨스턴 실어증 검사’ 등 치매 진단용 각종 언어·인지검사 도구가 그의 노력으로 보급됐다. 또 지난 1998년부터 매년 10여편씩 지금껏 51편의 연구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학술활동에도 탁월한 업적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999년엔 그의 연구논문이 ‘아카이브스 옵 뉴롤로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나 교수는 2003년 2월, 성균관대 의대 첫 졸업생이 뽑은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했다. 그 만큼 제자 교육에 쏟는 그의 열정과 노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유능한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수련 과정을 꼼꼼하게 준비하며, 그 소문을 듣고 다른 대학병원의 수많은 전공-전임의조차 그에게 몰려와 배움을 청하고 있다. 매년 삼성서울병원 기억장애 클리닉에는 타 병원서 파견된 전공-전임의가 15~20명씩 수련을 받는다.
치매가 의심되는 10가지 증세
1. 최근 일어났던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치매의 가장 흔한 초기 증세.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하고, 건망증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2. 익숙하던 일을 못한다=요리기구나 세면도구 등 매일 쓰던 것들의 사용법을 모른다.
3.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한다=평소에 쓰던 간단한 말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4. 시간과 장소의 개념이 없어진다=자신이 살던 곳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가는 방법을 모른다.
5. 판단력이 흐려진다=날씨에 따라 입을 옷을 맞춰 입지 못하거나, 돈의 가치를 헷갈려 한다.
6. 사고력이 떨어진다=수의 개념이 없어지고,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
7. 물건을 엉뚱한 데다 갖다 놓는다=다리미를 냉장고에 넣거나, 열쇠를 싱크대에 넣는다.
8. 기분과 행동에 변화가 온다=아무 이유없이 화를 내다가도 웃는다.
9. 인격의 변화가 온다=의심이 많아지고 가족에게 지나치게 의지한다.
10.자발적으로 뭘 하려는 의지가 없어진다=매우 수동적이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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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의 신간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 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연재합니다. 이 책은 신체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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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써도 어렸을 때 ‘알레르기’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기억력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알레르기 질환’이란 말을 분명하게 들은 건 육군사관학교 정치학 교관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 후반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같은 과 교수 한 분이 “미국 유학가서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겼는데, 꽃가루만 날리면 콧물이 줄줄 흐른다”는 얘길 듣고 “참 희한한 병도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만 해도 의학-건강 분야 지식은 그야말로 ‘빵점’이어서 알레르기란 단어가 생소하게 들렸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알레르기란 단어가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알레르기란 말은 그 사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가 됐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알레르기 환자들이다. 알레르기 천식,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피부질환, 음식물 알레르기, 약물 알레르기, 곤충 알레르기 ...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갑자기 ‘알레르기 천지’가 된 것일까?
▲ 김유영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먼저 알레르기란 말의 정의부터 내려 보자. 알레르기란 인체 면역체계가 외부 물질에 대해 일종의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써 염증, 발작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애완동물의 털이나 비듬, 화학물질 등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알레르겐’이라 한다. 알레르겐에 처음 접촉했을 때는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지만, 자꾸 접촉하다 보면 여기에 대항하는 항체가 형성되며, 이 항체와 알레르겐이 만나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서 조직에 염증과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기침이나 콧물을 흘릴 때 의사들은 흔히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는데, 체내 항체와 알레르겐이 만났을 때 분비되는 물질이 히스타민이다. 알레르기 반응의 주범은 바로 이 히스타민인데, 항히스타민제는 히스타민의 알레르기 반응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알레르기 질환의 폭증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은 최근 20여년간 7~8배 정도 알레르기 질환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으며, 우리나라도 3배 정도 알레르기 환자가 늘었다. 김유영 교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아의 알레르기 천식 유병률(有病率)은 1980년 5.6%, 1990년 10.1%, 1997년 14.5%다.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도대체 난데없이 알레르기 질환이 서너배 이상씩 폭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첫째, 위생상태의 개선이다. 인체는 체내로 침투하는 세균과 싸우기 위해 면역체계란 정예군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세균 감염이 줄어 들게 되자, 할 일이 없어진 면역체계가 변화를 일으켜, 병원체도 아닌 알레르겐과 엉뚱하게 맞서 싸운다는 설명이다.
둘째, 주거 환경의 변화다. 태평양 파푸아뉴기니섬 고산지대 원주민은 알레르기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나무로 얼기 설기 지은 집에서 살던 그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식 건축재료를 사용해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년쯤 뒤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을 앓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 친화적인 원주민들의 주거공간에 ‘인공’이 침투하면서 알레르기 질환이 시작됐다는 게 서구 의학자들의 지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알레르기 환자 폭증도 아파트의 보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겨울에도 속 옷만 입고 지낼 정도로 난방을 하게 됐고, 이 때문에 사람만 살기 좋아진 게 아니라 집먼지 진드기 등 알레르겐도 서식하기 좋아진 것이다.
셋째, 새로운 알레르기 유발 물질, 즉 알레르겐의 등장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것 가운데 자연이 거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실만 해도 천장은 석고보드, 벽은 페인트를 칠했다. 책상, 의자, 컴퓨터, 냉장고 등 모든 가구에 프라스틱 소재가 사용됐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도 방부제, 산화방지제, 인공감미료, 식용색소 등 각종 식품 첨가물이 들어 있다. 질병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 많은 약들도 과거에는 없던 것들이다. 수천년, 수만년간 자연에 익숙해 있던 사람의 면역체계는 갑자기 등장한 ‘인공’을 적군으로 알고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넷째, 농약의 대량 살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이 기계화-대량화 되면서 농약을 대량 살포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농작물의 병충해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병충해를 일으키는 곤충이 사라지는 바람에 먹이사슬이 깨어졌고, 이 곤충이 먹고 살던 벌레가 크게 번성하게 돼, 이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 사과, 포도 과수원에 가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농약 사용으로 곤충이 사라지자 곤충의 먹이가 됐던 ‘잎응애’란 작은 벌레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기오염의 악화이다. 공장 굴뚝 연기속의 아황산가스, 자동차 배기가스 속의 이산화질소, 그리고 질소화합물이 햇빛과 만나 생기는 오존 등은 천식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증상도 악화시킨다.
여섯째, 흡연 인구의 증가다. 담배 속의 여러 화학물질은 알레르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흡연자가 천식에 걸릴 확률은 비흡연자보다 5배나 높으며, 특히 임신부가 흡연할 경우 태아가 알레르기 체질이 되기 쉽다. 영유아기의 간접흡연도 알레르기 체질이 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피하는 것이다. 알레르기 질환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므로 맞서 싸우려 들지 말고 ‘줄행랑’ 치는 게 최고라는 것인데, 의사들은 이를 ‘회피요법’이라 한다.
회피 요법의 핵심은 어떤 물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병원에선 ‘알레르기 유발 검사(또는 피부단자검사)’를 한다. 이는 가장 흔하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 수십가지를 주사기나 바늘로 환자의 등이나 팔에 극미량 침투시킨 뒤, 어떤 물질을 침투시킨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지를 관찰하는 방법이다. 검사 결과, 예를 들어 집먼지 진드기와 향수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되면, 환자는 향수 사용을 중지하고, 집먼지 진드기가 서식하는 카펫이나 침구류 등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이 일반적인 게 아니라 환자의 주거 또는 생활 공간에만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라면, 통상적인 병원의 알레르기 유발 검사로는 원인 물질을 찾아낼 수 없다. 이 때는 환자의 집이나 직장 등을 의료진이 방문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수거하고, 이 물질을 시약(試藥)으로 만들어서 재차 알레르기 유발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적’을 아는 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두 번 째 대처방법은 약물요법이다. 약물요법은 예를 들어 콧물, 코막힘, 기침, 호흡곤란 등 알레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對症療法)’과 알레르기 염증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증상의 발작을 예방하는 ‘예방요법’이 있다. 알레르겐을 100% 차단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환자는 약물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부분의 알레르기 환자는 회피요법과 약물요법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조절해 가며 큰 불편없이 살 수 있다.
세번째는 면역요법이다. 이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아주 조금씩 아주 오랜 기간 피하(皮下)에 조금씩 주사함으로써, 환자가 그 물질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면역요법은 초기 치료와 유지 치료의 두 단계로 나뉜다. 초기 치료란 환자가 특정 알레르겐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할 때까지 1주일에 1~2회 정도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는 것이다. 이 때 주사의 양과 주사 맞는 횟수는 차츰 증가하게 된다. 초기 치료 결과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그 다음은 유지 치료로 넘어가게 된다. 환자는 최소 3년 이상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아서 체질이 다시는 바뀌지 않도록 치료효과를 유지 시켜야 한다.
면역요법은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유일한 완치법이며, 치료 성공률도 꽃가루나 집먼지 진드기가 원인일 경우 70~80%로 아주 높다. 그러나 3년 이상 꾸준히 병원을 다녀야 한다는 점과, 증상이 좋아졌다고 중간에 치료를 그만두면 재발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게 단점이다. 면역체계가 미숙한 5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에겐 이 요법을 시행할 수 없으며, 심장병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도 이 요법을 시행하지 않는다.
한편 체질을 바꾸는 면역요법을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건강보조식품 업자 등이 ‘체질이 산성이면 알레르기가 생기므로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광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정 음식이나 물질이 체질을 알칼리로 만들어 알레르기 질환을 완치한다며 환자들을 꼬드기고 있다.
그러나 산성체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얘기는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다. 인간의 체액 산성도는 pH 7.4 정도로 약 알칼리 상태며, 알레르기 환자든 아니든 산성도는 모두 동일하다. 만약 어떤 사람의 체액 산성도가 pH 7.4에서 벗어난다면 쇼크 등이 일어나 생명이 위험해 진다.
재차 강조하지만 알레르기 질환은 체질 산성도와 무관하며,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병이 낫지 않는다. 의사는 병을 완치하려면 3년 이상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건강보조식품 업자 등은 이 약만 먹으면 금방 병이 낫는다고 말한다. “어렵다”는 의사 보다 “쉽다”는 업자 말에 귀가 더 솔깃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환자의 돈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알레르기 질환 중 대표적인 것은 기관지 천식이다. 성인이 된 뒤 시작된 천식은 찬 공기, 운동, 담배, 스트레스, 불안감 등이 원인으로 알레르기와 무관한 경우도 있지만, 소아기에 나타나는 천식은 알레르기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어른은 20명 중 1명, 어린이는 7명 중 1명이 천식을 경험한다. 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 어린이 천식 유병률은 14.5%였으며,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기관지 천식이 있으면 환자에겐 가랑가랑 또는 쌕쌕하는 숨소리, 호흡 곤란, 발작적인 기침 등 세가지 특징적 증상이 나타난다. 이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관지 근육이 갑자기 수축돼 좁아지고, 기관지 점막이 부어 오르면서 염증이 생기고, 점액이 많이 분비돼 가는 기관지(세기관지)가 막히기 때문이다. 때로는 3가지 증상 중 두가지 또는 한가지 증상만 나타나는 비 전형적 천식도 있다.
물론 기관지 천식은 잘못 대처하면 사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병이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천식 발작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더군다나 규칙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사람에겐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들은 첫째 천식 발작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 같은 상황을 회피하도록 애를 써야 하며, 둘째 평소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 알레르기성 천식은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바퀴벌레, 애완동물 털이나 분비물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 밖에 담배 연기, 음식 조리 연기, 페인트 칠 냄새, 살충제, 향수, 찬 공기, 저기압, 대기오염 등이 천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천식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수축된 기관지를 강제로 확장시켜 주는 약, 기관지 염증을 가라 앉히는 약, 알레르기 반응을 줄여 주는 약 등이 있다. 천식약은 발작시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항염증제나 항알레르기제로 꾸준히 치료받으면 영구적으로 폐기능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 심한 천식 환자는 천식 발작에 대비해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흡입제를 반드시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천식은 만성적인 질환으로 재발이 매우 잦다. 평소 증상이 잘 조절되다가도 갑자기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회피요법과 약물요법을 적절히 시행하며, 필요하다면 힘들지만 면역치료도 받아야 한다. 천식은 의사와 환자가 파트너가 돼 함께 증상을 조절해 가는 병이다. 증상이 좋아졌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다간 언제라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천식 못지않게 흔한 알레르기 질환으로 비염이 있다. 비염은 코와 인후두부 점막에 염증이 생겨 재채기, 콧물, 코막힘, 코 가려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때때로 목, 눈, 귀 근처까지 가려울 수도 있다. 주로 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사람에 따라 유아기나 성인이 된 뒤 발병할 수도 있다. 비염 증상이 꽃가루가 날리는 특정 계절에만 나타나느냐, 일년 내내 나타나느냐에 따라 ‘계절성’과 ‘통년성’으로 구분한다.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은 일반적으로 나무, 꽃, 잔디, 잡초 등의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2월말경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해 5월까지 지속된다. 참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개암나무, 너도밤나무, 포플러나무 등 풍매화들이 주로 문제가 된다. 잔디, 목장의 풀, 곡식의 꽃가루는 여름철에 날리고, 쑥과 같은 잡초의 꽃가루는 8월말부터 10월 초까지 주로 날린다. 꽃가루 알레르기 중에선 쑥 꽃가루가 가장 흔한 원인이다. 진달래나 개나리 처럼 벌레가 꽃씨를 옮기는 충매화의 꽃가루는 크고 무거워서 공기중에 잘 날리지 않으므로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흔히 봄철에 하늘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흰 솜털 같은 것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꽃가루는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솜털 같은 것은 꽃가루가 아니라 꽃씨이며, 알레르기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한편 풍매화의 꽃가루는 바람을 타고 수백킬로미터씩 이동하므로 집 주위에 산이나 나무가 없더라도 안심해서는 안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원인이 꽃가루인 경우 꽃가루를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창문을 닫아 꽃가루가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외출시엔 마스크를 쓰는 게 좋다. 그러나 꽃가루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 분무제, 충혈완화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적절히 사용해 증상을 조절하는 수 밖에 없다.
통년성 알레르기 비염은 집먼지 진드기, 애완동물의 털-비듬-분비물, 깃털, 곰팡이, 곤충, 음식 등 천식을 일으키는 물질과 비슷하다. 역시 회피요법, 약물요법, 면역요법 외엔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증상이 완화시키는 약물은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과 동일하다.
음식 등을 먹은 뒤 갑자기 피부가 희고 붉게 부풀어 오르며 몹시 가려운 두드러기는 대표적인 알레르기 피부질환이다. 약물, 식물, 곤충 등이 두드러기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음식이다. 견과류, 그 중에서도 땅콩이 가장 흔하게 두드러기를 일으키며, 몇몇 해산물과 딸기, 계란 등도 두드러기를 일으킨다. 음식물이 알레르기를 일으킨 경우엔 두드러기 같은 피부 증상 뿐 아니라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눈꺼풀, 입술, 성대 주변이 갑자기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혈관부종은 매우 치명적인 알레르기 질환이다. 이것이 기도에 생기면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때로는 아나필락시스 쇼크와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혈관부종이 생긴 경우엔 응급용 에피네프린을 주사하는 등 신속히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은 견과류, 해산물, 딸기 같은 음식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으며, 항생제 등 약물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때로는 곤충에 물려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아토피성 피부염도 넓은 의미에서 알레르기 질환에 포함시킨다. ‘아토피’란 상도(常道)를 벗어난 이상한 질환을 의미한다. 발병 원인이 정확히 밝혀져 있진 않지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해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는 선천적으로 가려움증을 잘 느끼는 피부를 갖고 있으며,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해서 피부가 가렵게 되고, 그 때문에 이차적으로 습진이 생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70% 정도는 가족력(家族歷)이 있으며, 절반 정도는 알레르기 천식이나 비염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알레르기 유발 검사를 해 보면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도 집먼지 진드기 등의 알레르겐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토피성 피부염이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다른 점은 피부염의 발병에 알레르겐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의사들이 땅콩 등 견과류, 생선류, 조개, 달걀, 우유 등을 삼가하라고 권하지만, 특정 음식이 증상을 악화시킨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는 한 음식을 가릴 필요는 없다.
“거지는 아토피 피부염이 없다”며 목욕을 금하는 것도 잘못된 상식이다. 물론 공중 목욕탕에 다녀와서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목욕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공중 목욕탕의 뜨거운 목욕물이나 때밀이 타월 등이 피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온 정도의 따뜻한 물로 1~2일에 한번씩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피부가 건조해 지면 증상이 심해지므로, 샤워 뒤엔 보습제 등을 발라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알레르기 질환과 달리 아토피성 피부염은 회피요법이나 면역요법을 하지 않는다. 항히스타민제 등 약물을 적절히 사용해 피부염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 특히 아토피성 피부염은 피부를 긁어서 문제가 되는 병이므로, 가려워도 절대 긁지 말아야 한다. 난치병일수록 ‘비방( 方)’이 많은데, 특효가 있다고 선전하는 각종 광고에 귀를 막는 것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병은 나이가 들면서 낫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괴롭더라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증상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
김유영 교수는
서울대병원 알레르기 내과 김유영 교수는 그리 싹싹한 편이 아니다. 보기에 따라 그의 말투와 행동이 약간은 권위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환자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그는 수년전 직업성 천식으로 숨진 환자의 이름과 가족까지 기억하고, 아직도 가슴아파 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한 후배 교수는 “밖으로 잘 표현하진 않지만 환자에 대해선 깊은 연민의 정이 있는 분”이라며 “어머니처럼 자상하진 않지만 아버지처럼 방향과 중심을 잘 잡아주는 분”이라고 말했다.
1945년생인 김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영국 사우드햄튼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지냈다. 2년동안 충남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뒤 1980년부터 지금껏 서울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국내 알레르기학의 대명사다. 그의 스승인 강석영 전 서울의대 교수가 알레르기학을 최초로 도입했다면 김 교수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육성·발전시켜 꽃을 피웠다. 1979년 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알레르기 클리닉을 개설했고, 이듬해인 1980년엔 알레르기 내과를 개설했다. 이를 토대로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의 한국적 진단·치료지침 마련에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특히 감귤, 사과, 배 나무에 사는 ‘잎 응애’란 작은 벌레가 천식이나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과 염색체 11번에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인자가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함으로써 국제 학계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999년부터는 ‘세계 기관지 천식 선도기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천식에 대한 국제적 진단·치료지침 제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3년엔 한국천식협회 설립을 주도해, 천식의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모지 상태의 국내 알레르기학 분야서 그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산이 좋아 산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산행(山行)은 단순한 취미 활동, 그 이상이다. 국내의 명산은 말할 것도 없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칼라파타르, 중국 쓰쿠냔산 등 해외의 고봉들을 두루 등정했다. 젊었을 때는 인수봉 등 암벽타기에도 매료돼 한가닥 외줄에 생명을 걸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서울대교구 가톨릭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아나필락시스 쇼크란 특정 물질에 접촉한 뒤 즉시 또는 수분 이내에 기도폐색으로 인한 호흡곤란, 저혈압, 피부 두드러기, 복통 등의 증상이 생기는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이다. 역사적으로 BC 2640년 이집트의 파라오가 말벌에 쏘인 뒤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초엔 디프테리아나 파상풍 치료제에 대한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문제가 됐으며, ‘페니실린 쇼크’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개미나 벌 등 곤충에 물렸거나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직후 가장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때로는 견과류, 딸기, 날계란 등을 먹은 뒤에 나타나며, 운동 도중 생기기도 한다. 대학 입시를 위한 체력장이 행해지던 시절엔 오래 달리기를 하던 학생이 종종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쇼크에 빠져 문제가 됐다. 이를 ‘운동 유발성 아나필락시스’라 한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즉각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하므로 사실상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쇼크가 발생하자마자 병원 응급실로 옮겨 에피네프린을 주사하는 것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 않다. 기도폐색이 생긴 경우 환자는 응급실로 옮기는 도중 사망하기 일쑤다.
따라서 과거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경험했던 사람이나 알레르기로 인한 혈관부종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물질에 아나필락시스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내 그 물질에 접촉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응급용 에피네프린 주사기를 항상 휴대하고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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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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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나이는 화장실에서 들통이 난다. 소변기 앞에서 바지춤을 풀고 끙끙 애를 쓰는 사람은 뒷 모습만으로도 대강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생생한 30대 40대라면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쏟아낸 뒤 금방 지퍼를 올리고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40대 50대 60대는 젊은 사람 서넛이 일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용’을 쓰게 된다. 한참동안 배에 힘을 줘야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놈의 ‘오줌발’이 얼마나 약한지 마치 낙숫물 떨어지듯 찔끔거린다. 그 바람에 바지에 소변이 묻는 일도 다반사다. 겨우 끝마쳤나 싶어 지퍼를 올리려니 뭔가 미진해 다시 끙끙거리게 되고... 나이 먹은 비애는 화장실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전립선 때문이다. 전립선은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밤톨 크기의 조직으로 방광 바로 아래쪽에 있으며 요도를 도넛 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전립선의 양쪽에는 사정관이 요도와 연결돼 있다. 정액의 30~40% 정도를 만들어 내는 이 전립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커진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잔뇨감이 생기는 이유는 요도를 감싸고 있는 전립선이 커져 요도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노화 과정으로 30대부터 전립선이 커지지만 증상은 40대 말쯤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이를 전립선 비대증이라 한다.
전립선 비대증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립선 자가진단표’에서 8점 이상이면 해당되며, 20점이 넘으면 중증이므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선 의사가 항문으로 손을 넣어 전립선을 만져 보는 ‘직장 수지(손가락) 검사’를 하거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진단하게 된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40~79세 남자 1356명을 조사하고 2001년 대한비뇨기과학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26.5%가 소변을 보기 힘든 ‘하부 요로증상’을 느끼고 있었고, 연령별로는 40대 10.2%, 50대 16.2%, 60대 28.7%, 70대 44.7%였다. 그러나 이는 증상의 유무를 체크한 것이다. 학계에선 전립선 비대증이 40대 40%, 50대 50%, 60대 60%, 70대 70%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전립선 비대증은 예방이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호르몬 체계의 불안정으로 전립선 세포의 수와 크기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만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많이 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동양인보다 육식이 많은 서양인과 서양에 사는 동양인에게 전립선 비대증이 더 많다.
과일과 야채엔 전립선 비대증을 초래하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물질(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짜게 먹거나, 쪼그려 앉는 습관 등은 전립선 비대증 자체를 유발하진 않지만, 소변량이 많아져 결과적으로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간주한다.
▲ 천준 교수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적극적인 치료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가 들어 생긴 증상이니 좀 불편해도 참고 견디겠다는 생각이다. 비뇨기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복용하는 것을 더 귀찮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립선 비대증 증상이 있는 사람 중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20~3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를 받으면 훨씬 편하고 산뜻하게 살 수 있는데도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전립선 비대증의 치료는 크게 약물요법, 수술, 기타 최소절개치료법으로 나뉜다.
증상이 가벼울 때 시행하는 약물요법은 비교적 간편하고 안전하며, 60~75%의 환자에게 증상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립선 크기가 비교적 작을 때는 우선적으로 요도확장제를 사용하며, 그보다 좀 더 크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면 전립선 크기를 줄여주는 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약물요법은 약을 복용할 때만 효과가 유지되며, 전립선이 비대되는 현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게 단점이다.
수술의 경우 과거엔 개복(開腹)해서 전립선을 잘라내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엔 요도로 내시경과 수술 도구를 삽입해 전립선의 일부를 절제하는 ‘경요도 절제술’이 전체 수술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전립선 크기가 일정 크기 이상일 경우엔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수술도 완치를 100% 보장하진 못한다. 수술을 받아도 15~20%는 증상이 없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또 증상이 없어졌다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 “수술 받았는데 왜 증상이 그대로냐”고 병원에 와서 따지는 환자를 가끔씩 보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환자는 수술 전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밖에 온열치료, 레이저치료, 침소작술(TUNA), 알콜주사요법 등의 ‘최소절개치료법’들도 최근 비교적 많이 시행되고 있다. 이 방법은 약물 요법보단 효과가 좋고,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장점이지만 장기적인 치료효과가 불투명하다는 게 문제다. 또 치료비도 비싸다. 따라서 환자는 의사로부터 각 치료법의 효과와 장-단점 등을 충분히 설명 들은 뒤 치료법을 선택하는 게 좋다.
한편 전립선은 주위엔 성 신경이 지나가고 혈관도 많이 분포하므로 성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치료를 받은 뒤 성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치료제는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기 때문에 성 기능 저하를 초래한다. 전립선의 일부만 제거하는 수술의 경우, 발기력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성교시 사정액이 방광으로 거꾸로 들어가는 ‘역행사정’이 60~70% 정도 생긴다. 물론 발기가 되므로 성 행위를 할 순 있지만, 정액이 나오지 않아 ‘찜찜한’ 기분이 들게 된다. 그러나 역행사정이 돼도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 따라서 성 생활이 활발한 사람은 전립선 비대증 치료 전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마치 성병에 걸린 것처럼 소변이 자주 마렵고 요도가 따끔거리고 하복부에 불쾌한 통증이 있는 전립선염은 청장년층에서 노년층까지 두루 나타나는 비뇨기 질환이다. 많은 사람이 이를 성병으로 잘못알고 혼자 끙끙대다 ‘몰래’ 병원을 찾는 일이 많지만, 성 행위가 원인인 세균성 전립선염은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5% 정도는 성 행위와 무관한 비세균성 전립선염이다.
비세균성 전립선염은 일반적으로 택시 기사처럼 오랜 시간 소변을 참으며 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많이 발병하며,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과로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도 비교적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 전립선이 압박을 받아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고, 또 요도 내 압력이 높아져 소변이 전립선으로 역류하면서 염증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세균성 전립선염은 일반적으로 성병이라 부르는 요로감염 이후 2차적으로 발생하는 염증이다. 즉 요로감염이 적절히 치료되지 않아, 세균이 전립선까지 거슬러 올라가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급성 세균성 전립선염은 전신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는 매우 위급한 상황으로 5~7일 정도 입원해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성병이 생기면 전립선까지 염증이 퍼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전립선염은 잘 낫지 않고 만성화하는 경우가 비교적 흔하다. 따라서 처음 발병했을 때 철저하게 치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1개월 이상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세균성 전립선염은 물론이고 만성 비세균성 전립선염인 경우도 1개월 정도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다. 전립선은 항생제가 잘 침투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복용하다 중단하면 세균의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전립선과 요도의 압력을 낮추는 약이나 소염제, 진통제를 복용하는 수도 있다.
한편 만성 전립선염이 있는 사람은 더운 물에 좌욕을 하거나, 회음부(성기와 항문사이)를 마사지하면 효과가 있으며, 전립선을 압박하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타기는 삼가는 게 좋다. 하복부의 긴장이나 압력을 증가시키는 그 밖의 요인들, 예를 들어 술, 커피, 맵고 짠 음식, 과도한 스트레스 등도 피하는 게 좋다.
전립선암은 갑상선암과 더불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암이다. 보건복지부가 2004년 발표한 ‘2002년 중앙암 등록사업 결과’에 따르면 전립선암은 95년 기준 7년만에 무려 2.11배 증가했다. 갑상선암이 2.46배 증가해 증가율 1위를 기록했지만 환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점을 감안하면 남성암 중에선 전립선암이 증가율 1위다. 비록 지금은 전체 남성암의 3.0%에 불과해 위암 폐암 간암 대장암 방광암에 이어 6위에 랭크돼 있지만, 조만간 남성 1위암이 될 것이란 게 의학계의 일치된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전립선암은 발생률 1위며, 사망원인은 폐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 다른 이유로 사망한 사람을 부검했더니 우연히 전립선암이 발견될 확률이 40% 정도나 된다. 또 남성이 살아가면서 임상적으로 전립선암 진단을 받을 확률은 9.5%며, 전립선암 때문에 사망할 확률은 2.9%나 된다. 우리도 미국의 추세를 따라간다고 보면 남성으로선 가장 위협적인 암이 바로 전립선암인 셈이다.
전립선암이 이처럼 급증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첫째는 인구의 고령화다. 다른 모든 암도 그렇지만 전립선암은 특히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40대 후반이나 50대에 발병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60대 중반 이후에 대부분 발병한다. 70대 환자가 대다수라 60대 후반이면 ‘젊은 편’에 속할 정도다. 과거 전립선암이 적었던 이유는 발병하기 이전에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이다. 만약 남성의 평균수명이 100세가 되면 80~90%에게 전립선암이 발병할 지도 모른다.
둘째는 진단기술의 발달이다. 전립선암은 가장 손쉽고 정확하게 진단이 가능한 암이다. 특히 혈액검사(혈중 PSA수치)로 찾아낼 수 있는 암은 전립선암이 거의 유일하다. 또 항문을 통한 초음파 검사(경직장 초음파검사)를 하면 전립선암의 생김새까지 정확하게 진단 가능하다. 최근 건강검진이 보편화되면서 예전 같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 많은 전립선암 환자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식생활의 서구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인들이 많이 먹는 호박, 당근, 시금치 등 녹황색 야채와 콩으로 만든 된장과 두부, 그리고 마늘 등은 전립선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육류를 주로 먹는 서양인들의 식습관은 전립선암을 증가시킨다. 실제로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평균수명이 높지만 전립선암 발병률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동양인의 전립선암 발병률은 서양인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 과도한 남성호르몬,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도 전립선암 증가의 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환에서 생성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선암의 성장과 전이에 관여한다. 또 전체 전립선암 환자의 5~10%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립선염이나 전립선 비대증이 전립선암으로 진행되지는 않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전립선암은 병의 진행이 매우 느리고, 치료가 비교적 쉽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 사망한 사람의 40% 정도에게서 ‘우연히’ 전립선암 세포가 발견됐다는 얘기는 그 만큼의 사람들이 암이 채 자라기도 전에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생전에 9.5% 정도가 전립선암 진단을 받지만 전립선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9% 밖에 안된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전립선암에 걸렸지만 제 수명을 다 살거나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 다른 원인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설혹 사인(死因)이 전립선암인 경우라도 생존기간이 다른 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미국의 경우, 전립선암이 남성암 발병률 1위, 사망률 2위인데도 불구하고 ‘자비로운 암(benign cancer)’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립선암도 전립선 비대증과 증상이 유사하다. 소변줄기가 약해지거나 밤에 소변이 마려워 자주 깨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발병 초기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립선 비대증의 경우, 증상이 심하므로 자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립선암은 오히려 증상이 없어 검사를 받지 않는다면 조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과거엔 대부분의 전립선암 환자가 말기 상태에서 발견됐지만 최근엔 전립선암 검사법의 발달로 초기에 발견되는 환자가 많다.
앞서 얘기했듯 전립선암은 혈액검사나 항문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전립선을 만지는 ‘직장수지검사’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혈액검사나 직장수지검사에서 전립선암이 의심되면 특수한 전립선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전립선 조직을 떼어내서 조직검사를 한 뒤 확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50세 이상 남성에겐 1년에 한번 혈액검사와 직장수지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일단 전립선암으로 진단되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적극적’이란 말을 강조한 이유는 “전립선암은 워낙 늦게 진행되기 때문에 치료를 안받아도 된다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전립선암은 대부분 늙어서 발병하는데다, 매우 느리게 진행하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아무 치료도 않는 ‘대기-관찰(待期-觀察)’ 요법이 시행될 수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아무 치료도 않고 지켜만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 전립선암이 발병했다거나, 다른 만성질환이 있어 치료를 받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엔 대기-관찰요법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관찰요법을 시행하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해서 자신도 치료를 안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다.
일반적으로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으면 발병 6~7년만에 사망하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다면 전립선암이 아닌 다른 암이나 다른 질병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 요즘엔 다른 암이나 뇌졸중, 심근경색이 생기지 않는다면 90세, 심지어 100세까지도 너끈하게 살 수 있다. 따라서 전립선암이 70대에 발병했든 80대에 발병했든 적극적으로 치료 받을 필요가 있다.
전립선암 치료법에는 전립선 적출수술, 방사선 치료, 냉동치료, 호르몬치료, 항암치료 등이 있다. 적출수술은 글자 그대로 개복해서 전립선과 암이 퍼진 주위 조직을 잘라내는 방법이다.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으로, 냉동치료는 조직을 얼리는 기계로 암이 생긴 전립선을 파괴하는 치료다. 일반적으로 70세를 기준으로 해서 환자의 나이가 그 보다 젊은 경우엔 적출수술을 하고, 그 이상인 경우엔 방사선 치료나 냉동 치료를 하게 된다.
셋 다 치료효과는 ‘엄청나게’ 좋다. 암 세포가 뼈까지 전이된 4기 환자를 제외하고 1~3기 환자가 적출수술을 받으면 85~90%가 10년 이상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 방사선 치료나 냉동 치료는 그보다 약간 떨어져 70~75% 정도가 10년 이상 생존한다. 대부분의 암이 5년 생존율을 따지지만 전립선암은 생존율이 너무 좋아 10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전립선암에는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설혹 암이 재발해도 다시 방사선-냉동치료를 받으면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설혹 뼈 등 전신으로 암이 퍼져 방사선-냉동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80~90%는 일정기간 암 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을 수 있다.
전립선암 세포의 성장과 전이에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관여하는데, 이 호르몬을 차단하기 위해 고환을 잘라 버리거나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이 호르몬 치료다. 호르몬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는 경우엔 대부분 12~18개월만에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 암이 발병해서 수술이나 방사선-냉동치료를 받고 다시 재발해서 호르몬 치료와 항암치료를 받고 사망할 때까지는 십수년, 길게는 20년 이상 걸리므로 대체로 자연적인 수명과 큰 차이가 없게 된다.
한편 호르몬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는 상황을 ‘호르몬 불응성’이라 하는데, 이 때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수 밖에 없다. 호르몬 치료를 오래하면 대부분 언젠가는 호르몬 불응성이 되므로 호르몬 치료는 최후의 수단으로 가급적 ‘아껴서’ 신중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 전립선암은 매우 자비로운 암으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병에 관해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환자는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걸어가면 된다. 이젠 90세, 100세까지도 사는 세상이 됐으므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치료를 포기해선 안된다.
■천준 교수는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기과 천준 교수의 진료 차트엔 ‘프리(free)’ 또는 ‘무료’라고 붉은 사인펜으로 밑줄 친 글자가 유독 자주 눈에 띈다. 초음파 검사비 등을 받지 말라는 사인이다. 병원내 약제실에 메모를 적어 보내기도 한다. 이 환자에게 무슨무슨 약을 공짜로 내주고, 대신 어느어느 제약사 누구누구에게 약을 ‘공짜’로 달라고 해서 부족분을 채워 넣어라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일이 ‘발각’돼 병원측으로부터 여러차례 주의를 받았고, 제약사 담당자들과 여러차례 언쟁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리’ 사인은 계속 이어진다. “돈이 없다고 암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전립선암 환자는 대부분 60대 후반 이상의 노인인데,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는 특히 가난한 환자가 많다”며 “옷 차림새가 남루하고 몇마디 물어봐서 사정이 여의치 않은 노인에게는 진료비나 약제비를 면제해 준다”고 말했다. “제약사에게 약값을 떠넘기는 건 부정(不正)이 아니냐”고 묻자 “의사가 그 정도 융통성은 부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1959년생인 천준 교수는 1984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병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암치료로 유명한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 엠디엔드슨병원과 버지니아대학 의과학센터에서 전립선암 연수를 했다. 그는 “학창시절, 환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일 깨워 준 고성건 박사(현 성애병원 근무)를 가장 존경하며, 전립선암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길렌 워터(Jay Y. Gillenwater) 박사와 청(Leland WK Chung) 교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아 매우 운이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준 교수는 국내 비뇨기과 전문의 중 학술활동이 가장 활발한 의사 중 한사람이다. 현재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비뇨기과 학회지에 총 10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외국 학술 전문지에 지금껏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비뇨기과학회지의 논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997년 대한의사협회 학술상, 1997-2000-2003년 대한비뇨기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기자들 사이에 천 교수는 ‘마늘 교수’로 통한다. 툭하면 마늘 추출물이 전립선암과 방광암 등 비뇨기계 암의 예방과 치료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동물-임상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 교수는 마늘 추출물을 이용한 전립선암 예방과 치료에 관한 미국 특허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 밖에 치료가 어려운 말기 전립선암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미국에서 첫번째 임상시험을 마쳤으며, 현재 일본에서 두번째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전립선 자가진단표
지난 한달동안 소변을 볼 때 다음과 같은 일곱가지 증상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점수를 매겨 보십시오.
대략 5번 소변을 본다고 가정해서, 다섯번 중 한번도 없을 땐 0점, 다섯번 중 한번일때는 1점, 다섯번 중 한두번일때는 2점, 다섯번 중 두세번일때는 3점, 다섯번 중 서너번일때는 4점, 다섯번 중 너댓번일때는 5점을 더합니다. 단 7번 항목은 없다 0점, 1번 1점, 2번 2점, 3번 3점, 4번 4점, 5번 5점입니다.
총 점수가 1~7점이면 경증이며, 8~19점이면 중등도(中等度) 전립선 비대증으로 치료가 필요하며, 20점 이상이면 중증으로 당장 치료받아야 합니다.
1)평소 소변을 볼 때 다 보았는데도 소변이 남아있는 것 같이 느끼는 경우가 있다.
2)평소 소변을 보고 난 후 2시간 이내에 소변을 보는 경우가 있다.
3)평소 소변을 볼 때 소변줄기가 끊어져서 다시 힘을 줘야 소변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4)평소 소변을 참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5)평소 소변줄기가 약하거나 가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6)평소 소변을 볼 때 소변이 금방 나오지 않아서 아랫배에 힘을 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7)평소 하룻밤에 잠을 자다 소변을 몇번이나 보십니까.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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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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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있어 유방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아기에게 사랑을 먹여주고, 사랑하는 남편에겐 사랑을 갈구하는,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말하면 평균점은 받을 성 싶다. 십육세 봉긋한 앞가슴은 수줍은 연정이고, 이십육세 아찔한 젖가슴은 숨막히는 열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성인 필자가 아무리 애를 써서 유방을 수사(修辭)하려 하여도, 여성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애착하는지는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고 했는데, 유방과 유방에 대한 의미도 그렇게 미묘하게 변하는 것 같다. 유치한 말 장난 대신 차라리 ‘여성의 상징’이란 아주 투박한 표현이 그래서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성의 젖가슴 만큼 따듯하고 부드럽고 섹시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그러나 탐욕스런 암 세포는 그곳에도 어김없이 파고 든다. 미국에선 여성 8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리며, 국내서도 2001년부터 유방암(16.1%)이 위암(15.3%)을 제치고 여성 1위암이 됐다. 한국유방암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40대 여성 10만명 중 68명, 50대 여성 10만명 중 58명이 유방암에 걸리며, 그 중 60%가 유방을 완전 절제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수백명의 여인네들이 여성성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 수록, 미혼이거나 출산경험이 없을 수록, 초산이 늦을 수록, 아기에게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일 수록, 초경 연령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을 수록, 유방암 가족력이 있을 수록 발병 빈도가 높다. 또 육식위주 식생활 등 생활습관의 서구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경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출산경험이 없는 사람이나 폐경이 늦은 사람 등에게 유방암이 빈발하는 이유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임신기간엔 월경을 하지 않으므로, 폐경이 빠르면 월경이 그만큼 빨리 끊어지므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의 총량도 적어진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엔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에스트로겐은 유방 유관 세포의 증식-분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에스트로겐이 도리어 여성성의 상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최근엔 폐경 증상 치료를 위해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는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암 발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 유방암 자가진단 모습./ 조선일보DB유전적 요인도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확한 국내 통계는 없지만, 서구의 경우 전체 유방암 환자의 5~10% 정도는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BRCA란 유전자가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엔 70~80%가 유방암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직계가족 중 2명 이상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엔 반드시 BRCA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그 밖에 육류 위주의 식생활, 비만, 운동부족, 과도한 음주, 흡연 등도 유방암 발병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육류섭취, 운동부족, 비만 등이 관계가 있는 이유는 지방조직은 에스트로겐 수치를 올라가게 하기 때문이다. 빼빼 마른 사람보다 약간 통통한 여성에게 유방암이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엔 잦은 밤샘 근무, 전자파 노출, 커피 등이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해외의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논란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유방암이 증가하는 진짜 이유는 진단기술의 발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방암 발병률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증가했을 뿐인데 진단기술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과거 같으면 놓쳤을 초기 유방암 환자들을 대거 발견하게 됐고, 그 때문에 유방암 발병률이 급증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발견된 환자 중 일부는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거나, 자라더라도 생명에 위협을 주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편이 좋은데, ‘괜히’ 발견되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유방을 절제하는 등의 치료를 받게 되고, 막대한 정신적 충격과 금전적 손실까지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지역 암등록 사업단’이 1993~1997년 암 환자 9만3000여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서울 강남구는 유방암 발병률이 인구 10만명당 26.4명으로 14.0명인 금천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그러나 유방암 사망자 수는 오히려 금천구보다 적었다. 이 정도면 ‘유방암 검진 무용론’이 제기될 만도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 ‘타임’지가 커버 스토리로 다룰 정도로 유방암 환자가 많은 미국에선 심각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사망자는 1990년 584명, 1995년 921명, 2000년 1173명, 2002년 1371명으로, 10년전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다. 유방암 진단-치료기술의 발달로 유방암 사망률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사망자가 급증한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방암이 급증한 이유를 ‘불필요한 유방암 검진의 확산’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 등에 따라 과거보다 실제로 유방암이 급증한 것이다.
따라서 정기적인 유방암 검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첫째는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며, 둘째는 꽃같이 예쁜 유방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어떻게 보면 두번째 이유가 더 중요하다.
사실 유방암은 정기검진 여부와 상관없이 비교적 빨리 발견되기 때문에 완치율(5년 생존율)이 무척 높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대 암 중 유방암의 5년 생존율은 77.5%로, 갑상선암(93.3%)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3기말이나 4기에 발견되면 5년 생존율이 5~20%에 불과하지만, 4기에 발견된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2.1%에 불과하다. 위암이나 간암 등과 달리 유방암은 촉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고, 증상이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기 검진을 받지 않아도 운이 좋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유방을 내어줘야 한다. 한국유방암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유방암 환자의 60%가 유방과 겨드랑이 림프절을 완전 절제했고, 3%는 림프절 절제 없이 유방만 잘라냈다. 유방을 보존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는 35%에 불과했다. 1996년 유방보존수술 비율이 18.7%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60~70%에 육박하는 서구에 비해선 아직도 낮은 편이다. 정기검진의 필요성이 아직도 더 강조돼야 할 이유다.
그렇다면 어떤 검진을 언제부터 받아야 할까. 흔히 맘모그램이라 부르는 유방 X선 촬영이나 유방초음파 등의 검사는 일반적으로 40세 이후 1~3년에 한번 꼴로 받는 게 좋다.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40세 이전엔 촉진만 충실히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유방 조직이 ‘팽팽한’ 20대 30대에 유방촬영을 하면 방사선이 치밀한 유방조직을 투과하지 못해 마치 암처럼 하얗게 보여 ‘치밀(緻密)유방’ 진단이 내려지며, 이 경우엔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하므로 공연히 걱정만 하고 돈만 낭비하게 된다. 동양인의 유방은 30세 초반까지는 대부분 치밀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받지 않는 게 좋다. 꼭 받아야 한다면 유방 초음파 검사가 더 적당하다.
한편 촉진은 생리가 끝나고 2~3일쯤 후에 하는 게 좋다. 촉진할 때는 유방에 손을 대고 살짝 누르면서 손 끝의 감각으로 이상한 조직을 찾아내야 한다. 촉진을 하라면 손아귀에 힘을 주고 유방을 주므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해선 암을 찾아내지 못한다. 유방에 비누칠을 해서 매끄럽게 만든 뒤 부드럽게 어루만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개의 경우 유방암은 크기가 1cm 이상인 경우 손으로 감지할 수 있는데, 초기암의 크기는 약 2cm 정도이므로 촉진만 제대로 해도 웬만한 유방암은 초기에 잡아 낼 수 있다.
유방암의 증상은 아프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혹이 만져지거나, 유두에서 피같은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두나 주변 피부가 함몰되거나, 유두 주위에 습진이 생기거나, 겨드랑이에서 임파선이 만져지는 것 등이다. 그러나 유방에서 매끄러운 혹이 만져지거나, 맑은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방 통증이 있는 경우엔 유방암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유방에서 멍울이 만져지는 것은 대부분 유선의 말단부 조직이 호르몬 변화에 따라 팽창해 단단해지는 것으로 생리기간 중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만약 유방에서 단단하고 굴러다니는 타원형의 덩어리가 만져지면 이것은 양성 종양인 섬유선종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는 주기적으로 관찰하거나 수술로 제거하면 된다. 또 양쪽 유두에서 노랗거나 맑은 분비물이 나오는 것은 대부분 유선확장증이란 병이다. 설혹 유두에서 피가 나오더라도 유방암일 확률보다는 관내유두종이란 양성 종양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유방 통증을 암의 증상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증이 있는 유방암은 전체의 5% 미만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너무 겁을 내지 말고 의사를 찾아 비정상적인 멍울이나 분비물,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 병원에선 유방촬영, 초음파 검사, 유방조직 검사 등을 통해 유방암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유방암의 치료법에는 외과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제 치료, 호르몬 치료 등이 있다. 또 수술에는 유방 전체와 림프절을 함께 잘라내는 ‘완전 절제 수술’과 암이 있는 부위만을 잘라내는 ‘유방 보존 수술’ 두 가지가 있다. 0~2기 환자이면서 유방 전체를 잘라낸 경우엔 추가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보존수술을 받은 경우엔 보조적으로 평균 30회(28~32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는 암이 생긴 부위만을 ‘타깃’으로 하므로 ‘국소치료’라 하는데, 0~2기 암인 경우는 이같은 국소치료만으로 대부분 치료가 끝난다.
그러나 3기 이상이거나 재발한 경우엔 국소치료 뿐 아니라 항암제 치료나 호르몬 치료 같은 ‘전신치료’도 함께 받아야 한다. 항암제 치료는 수술 후 남은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와, 수술 전 암 크기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 호르몬 치료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암세포를 증식시키지 못하게 하는 치료로, ‘타목시펜’ 등과 같은 항호르몬제를 복용한다.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 환자는 우선 유방 전체를 잘라낼 것인지, 일부만 잘라낼 것인지를 의사와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선 물론 유방 전체를 ‘깨끗하게’ 잘라내는 게 좋다. 재발의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병기(病期)를 불문하고 유방을 완전히 잘라냈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요즘은 의사 마음대로 유방을 잘라 냈다간 큰 일 난다. 유방보존수술의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유방보존수술의 완치율이 완전 절제수술 못지 않게 향상된데다, 유방을 잃는데 따른 환자의 정신적 충격도 그 만큼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방암 환자의 70% 이상이 2기 이전에 발견되며, 그들 중 상당수는 유방보존수술만으로도 완치 가능성이 높으므로 섣불리 완전절제수술을 결정해선 안된다. 물론 3기 이상인 경우 어쩔 수 없이 완전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며, 초기 암이라도 암의 크기나 암이 생긴 위치, 유방의 사이즈 등에 따라 유방보존수술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유방보존수술을 결정했다면 불안해 하지 말고 따르는 게 좋다.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탓인지, 우리나라엔 의사가 유방을 남겨 두자는 데도 환자 또는 환자 남편이 도리어 유방을 완전히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첫번째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의사가 충분한 의학적 근거를 갖고 유방보존수술을 권고하는데도 “그까짓 가슴 하나 없어져도 괜찮으니 확실하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잘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둘째는 치료 기간과 비용 때문이다. 유방보존수술을 받고 나면 약 6주간에 걸쳐 30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환자는 매주 월~금요일 병원으로 출퇴근 해야 한다. 당연히 치료 비용도 근치적 절제술보다 몇배나 많이 든다. 넉넉치 못한 환자들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말에 “그렇다면 잘라달라”고 말하게 된다.
꼭 그렇진 않지만 “완전히 잘라달라”는 요구는 환자 당사자보다 남편들이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편들은 대부분 망설이는 아내에게 “가슴 없어도 내가 데리고 살테니 걱정말라”며 토닥거린다. 병들어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을 자신의 잘못인 것 처럼 미안하게 생각하는 아내는 유방을 보존하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고 대부분 남편의 주장에 수동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우리나라 유방보존수술 비율이 서구보다 크게 낮은 이유가 이처럼 낮은 여성의 지위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방을 잃은 여성들은 수술 후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수술 당시에야 “살고 보자”는 생각에서 얼떨결에 완전절제수술을 택하지만, 막상 수술에서 회복되면 뭉툭 잘려나간 자신의 가슴이 그렇게 흉해 보일 수 없다. 가족들 앞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깊이 좌절하게 되며 점점 소극적이고, 대인기피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 결과 부부관계를 중단하거나, 대중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되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환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때로는 남편이나 자녀 등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한다. 특히 남편이 주도적으로 완전절제수술을 주장한 경우엔 남편에 대한 원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아내의 충격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 뿐이다. 완전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고, 손을 올리거나 하면 브래지어가 훌러덩 걷혀 올라가기도 한다. 또 양쪽 가슴의 무게가 맞지 않아 목 부위의 통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 환자들은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는 데 더 깊이 절망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도’ 여자이고 싶은 이유는 남편의 존재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은 수술 후 환자의 히스테리나 우울증 등을 보다 세심하고 자상하게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껴안아줘야 한다. 수술 후의 여러가지 이상 행동은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라는 사실을 남편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양정현 교수는>
삼성서울병원 일반외과 양정현 교수의 약간 네모진 얼굴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에 쌓여 있다. 어떻게 보면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도 찾아볼 수 있다.
▲ 양정현 교수아무리 애를 써도 메스를 든 ‘비정한 외과의사’ 모습을 그에게서 찾기 어렵다. 말투와 목소리도 내과의사처럼 조용하다. 수술실서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레지던트에게 호통을 칠지 잘 상상이 안간다.
그의 수필집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에는 실제로 수술실서 레지던트에게 불호령을 내린 이야기가 실려있다. 수술하기 좋게 겸자(집게)로 수술 부위를 벌리고 있어야 할 레지던트가 수술중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 글의 후반부는 일반인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겸자를 잡고 있는 조수가 졸아도 수술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오죽 피곤했으면 수술 중 졸았겠느냐는 ‘레지던트를 위한 변명’으로 마무리 돼 있다. 그 때 그 수술방, 레지던트에게 불호령을 내린 양 교수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2004년 현재, 삼성서울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양 교수는 1973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인턴·레지던트를 수련하고 일반외과 전문의가 됐다. 국립의료원에 12년간 재직한 뒤 삼성서울병원 창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으며, 미국의 가장 오래된 암 연구소인 로스웰팍연구소(Roswell Park Memorial Institute)와 스웨덴 노벨상 심사기관인 카롤린스카연구소(Karolinska Institute) 부속 덴더드(Danderd) 병원에서 유방암 연수를 받았다.
양 교수는 가능한 유방을 보존하고, 적게 째서 수술하는 ‘미세 침습적 기법’을 유방암 수술에 제일 먼저 도입했으며, 특히 ‘감시 림프절 생검법’의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이는 암 세포가 제일 먼저 옮겨가는 림프절을 검사해 그곳에 암 세포가 전이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림프절을 절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방법이다. “림프절을 아예 다 떼버리는 게 안전한데 왜 그런 모험을 하냐”고 묻자 “환자 입장이 돼 봐라. 그런 얘길 할 수 있는지”라고 양 교수는 되물었다.
양 교수는 글을 참 잘 쓴다. 오래전 김영사에서 발간한 번역서 ‘인턴 X’는 베스트 셀러가 됐으며, ‘옷 갈아입는 의사’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 등의 수필집에서도 글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그의 글은 미문(美文)이 아니다. 그런데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속에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 넉넉한 인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의학적 경륜과 인격이 향기롭게 배어났다’고, 한 동료 의료인은 ‘환자와 웃고 고뇌하며 함께 인술을 펼치는 외과의사로서의 진솔한 고백’이라고 ‘유방과 사랑에 빠진 남자’를 서평(書評)했다.
<소박스:유방의 양성 질환>
유방에 혹이 만져지면 대부분 유방암을 걱정하지만 유방에서 떼어 낸 혹 4개 중 3개는 암이 아닌 양성 종양이다. 그 중 가장 흔한 게 섬유선종, 섬유낭종성 질환, 유방염 3가지다.
섬유선종은 전체 유방 종양의 7~13%를 차지하며, 특히 젊은 여성에게 많다. 20세 이하 여성에게서 발견되는 종양의 60% 정도가 섬유선종이다. 보통 2~3Cm까지 커지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때 경계가 명확하고 고무같은 느낌이 든다. 임신 및 수유기에 커지며 수유를 중단하면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양성 종양이므로 절제하지 말고 내버려 둬도 괜찮다는 주장도 있으나 암을 섬유선종으로 잘못 진단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종양이 있으면 절제해서 조직검사를 받는 게 가장 안전하다.
섬유낭종성 질환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양성 종양으로 유방낭종(물혹), 유관확장증, 섬유증, 유두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여성 호르몬의 주기적인 변화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굳이 병이라 하기도 어려워 요즘엔 ‘섬유낭종성 변화’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에선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지고 통증도 있어 걱정을 하게 되므로 의사는 유방촬영, 유방초음파검사, 세침흡입세포검사 등을 통해 유방암이 아님을 진단해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유방의 유관이나 소엽이 불규칙하게 증식돼 있는 경우엔 나중에 유방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지속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유방염은 산욕기(신체 각 조직이 임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기간)나 수유기에 아기 입 속에 있는 포도상 구균이 일으키는 염증이다. 유방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열이나고 유방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 때 수유를 끊고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농양(염증 때문에 세포가 죽고 고름이 몰려 있는 곳)으로 발전하는데, 농양이 있으면 유방을 절개하고 고름을 빼낸 뒤 재발을 막기 위해 유관의 일부도 잘라내야 한다. 비산욕기에 생기는 유방농양은 대개 당뇨병 환자나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잘 나타나며, 이 경우엔 치료가 힘들고 재발률도 높다. 유방염의 경우도 유방암과의 감별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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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비만 인구의 증가로 무게 중심을 잃고 있다. 급기야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는 192개국 회원국 대표가 모여 비만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구 연합군이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세계인은 지금 다이어트 열풍에 싸여 있다. 각국의 문화와 식습관에 따른 가지각색 다이어트법을 짚어본다.
▲ 전 세계에서 밥·빵 등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는 올리브 오일, 덴마크는 계란, 한국은 청국장, 일본은 산소 흡입다이어트가 유행하고 있다(사진 왼쪽부터).
미국, 햄버거에 빵 없애
● 6개월 만에 체중 5~9㎏ 줄어
‘악마 탄수화물(Evil Carbohydrate)’. 인구의 67%가 과체중으로 집계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다이어트법은 ‘저(低)탄수화물’ 식이요법이다. 단백질을 충분히 먹는 대신 밥·국수·빵 등 탄수화물 섭취를 하루 100g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다. 소모되지 않고 남는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데서 나온 것이다. 최근 미국 ‘내과학연보’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과체중자 132명(이 중 83%가 당뇨병)을 대상으로 저탄수화물식과 저지방식을 비교한 결과, 저탄수화물식 6개월 후 체중이 5~9㎏ 줄었다. 반면 저지방식은 12개월 후 3~9㎏이 줄었다. 저탄수화물 식이가 단기간 체중감량에 효율적이라는 결론이다.
이에 따라 빵을 뺀 샌드위치나 햄버거 상품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포도 당분을 줄인 저탄수화물 와인, 저탄수화물 맥주, 청량음료까지 출시되고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사우스 비치(South Beach)’라고 불리는 저인슐린 다이어트가 가세했다. 핵심은 탄수화물을 먹되 당지수(GI)가 60 이하인 것으로 골라 먹자는 것이다. 당지수는 음식을 섭취 후 인슐린이 분비되는 속도를 뜻하는 것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인슐린 분비가 적게 일어나 비만 예방 효과가 있다. 식사 후 인슐린 농도가 빠르게 높아지면 영양분의 지방 축적이 많아진다.
그외에도 심장·관절 등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 지방산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오메가 다이어트’도 인기다. 이에 닭가슴살과 고등어, 꽁치, 참치 등 등푸른 생선, 호두와 같은 견과류가 잘 팔린다.
독일, 저녁은 아예 굶어
● 오후 5시 이후 물·녹차만 마셔
독일에서 유행하고 있는 다이어트법은 ‘디너 캔슬링’이다. 말 그대로 ‘저녁 굶기’로, “저녁을 적에게나 줘라”라는 것이 모토다. ‘디너 캔슬링’의 원칙은 오후 5시 이후에 음식은 철저히 금하고 물, 녹차 등 음료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허용된 아침·점심 두 끼 식사도 음식 섭취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고지방식을 피한다. 반면 충분한 수분 섭취와 비타민과 무기질이 함유된 음식의 섭취량을 늘려줘야 한다. ‘디너 캔슬링’은 1주일 중 며칠만 해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계란이 이용되고 있다. 덴마크 국립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2주용 다이어트 식단으로, 탄수화물을 거의 먹지 않고 달걀과 야채, 자몽 등을 주로 먹는다. 모든 요리에 소금을 넣지 않고, 커피는 꼭 블랙으로 마시는 것도 특징이다.
그리스는 크레타 섬의 전통적 식습관을 따르는 ‘크레탄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곡물·과일·허브 등에 아주 적은 양의 치즈와 동물성 지방을 곁들여 먹는 방식이다. 크레타섬 주민은 단 5%만 비만이며, 유럽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다. 그들 식사의 40%가 지방이지만 대부분 올리브 오일이다. 올리브유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비만을 덜 초래한다. 그리스인들은 올리브 오일과 각종 야채로 만든 샐러드, 케밥 등을 먹으며, 국수 요리인 파스타도 버터를 쓰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쓴다.
일본, 벨소리 들어 살빼
● 고춧가루 다이어트 한때 유행
지난해 일본에선 ‘고춧가루 다이어트’가 유행하더니, 최근에는 산소흡입법이 등장했다. 산소흡입이 피로회복과 신진대사를 높여 다이어트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특히 여성들 사이에 인기다. 공기 중 산소 농도의 1.5배에 달하는 30% 산소를 정기적으로 들이마신다. 유산소 운동시 개인의 최적 심장 박동 수를 계산, 이를 바탕으로 한 핸드폰 벨소리를 제작, 걷거나 뛰면서 이 벨소리를 듣는 다이어트도 등장했다.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는 ‘근육 긴장 다이어트’도 인기다. 몸에는 느린 근육(지구력 담당)과 빠른 근육(순발력)이 있는데, 둘 중 덜 쓰는 부위에 살이 찐다는 논리다. 이에 배나 등 근육에 계속 힘을 줘 칼로리 소비를 늘리는 방식이다.
힘찬병원 내과 박혜영 과장은 “각 나라의 식습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칼로리의 70%를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특히 흰 쌀밥이나 제분된 밀가루, 정제된 설탕 등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며 “이들은 혈당 수치를 급격히 올려 해로울 뿐더러, 체내 지방으로 재빨리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학전문 기자 doctor@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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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의 일이다. 킨제이 연구소 311호, 나의 연구실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연구소의 정보 파트 부서장인 제니가 보낸 것으로, 뉴욕타임스지에 한국의 동성애자 연예인 홍석천씨의 기사가 상세히 났다며, 참고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는 그가 3년 전 동성애를 커밍아웃 한 이후 겪었던 인생의 암흑기와 한국 동성애 문화의 변천사에 대해 실감나게 적고 있었다.
그럼 미국은 어떠한가. 동성애자 매슈 셰퍼드(Matthew Shepard)군 사건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될 듯하다. 미국의 성문화가 우리보다 전반적으로 개방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추측 하겠지만, 이는 시간의 편차와 견해의 폭이 다를 뿐이다. 사실 미국의 매튜군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비참하고 참담한 결과를 당했다.
98년 10월 7일, 국립공원 ‘옐로스톤’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와이오밍주(州)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다. 그날 밤 캠퍼스 인근의 바(bar)에 있던 21세의 동성애자 매슈는 자신도 게이(Gay)라며 그를 유인한 두 명의 청년에 의해 끌려나갔다. 18시간 후, 그는 교외의 인적이 뜸한 농장의 통나무 울타리에 묶여진 채, 온몸이 피범벅이 된 상태로 발견됐다. 피로 물든 매슈는 린치를 당하여, 두개골이 골절되고, 얼굴과 목이 10여 군데 찢어졌으며, 18시간 가까이 추위에 노출되어 저체온증으로 혼수상태였다.
그는 덴버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두 명의 살인자는 ‘증오 살인’의 죄목으로 사형까지 당할 뻔했지만, 매슈의 부모가 감형 청원을 받아들여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미국에서 터진 이 엄청난 사건은 고작 6년 전이다. 동성애자들이 제법 존재하고 그들의 문화가 일부 수용되던 미국에서 말이다. 매슈의 비극을 놓고, 미국 사회는 성적소수자의 인권문제뿐 아니라 종교, 장애자, 인종 등 수많은 편견에 대해 뜨거운 논쟁과 반성이 있었다.
매슈 사건은 ‘성(性)’과 관련된 대학 강의에서 흔히 인용되는 사례로, 필자도 킨제이 연구소 동료 연구원의 강의를 듣다가 이 사실을 접했다.
여기서 반드시 성적소수자를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지금보다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말해 성적소수자들을 무작정 음지로 내모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차적 불행이 그들에게 너무 지나치다는 사실이다.
(미국 킨제이 연구소=강동우·성의학자·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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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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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의 악마같은 위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세계적으로 뇌졸중 사망자는 매년 45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인구만큼이 매년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뇌간 등 생명과 직결된 부위에 뇌졸중이 발생하면 하루 이틀새 사망하며, 그 밖의 부위라도 뇌졸중 범위가 크면 깨어나지 못하고 시간만 끌다 사망하거나 ‘나무토막’과 같은 식물인간이 된다. 생명을 건지더라도 전신 또는 반신마비, 언어장애, 요실금 등의 후유증으로 삶의 질이 엉망으로 떨어지며, 때로는 이것이 원인이 돼 사망한다. 죽음보다 무섭다는 치매도 절반정도는 뇌졸중이 원인이다. 뇌졸중은 적절한 치료와 눈물겨운 재활노력으로 거의 정상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30~40% 정도는 비극적 결말로 끝맺는다. 최근엔 비교적 젊은 50대, 심지어 40대도 뇌졸중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뇌졸중은 예고없이 들이닥쳐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리지만, 원인이 분명하고 예방과 대처가 가능하므로, 한번 싸워 볼 만한 상대다. 지레 겁 먹을 필요가 없다. 예로부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뇌졸중에 대처하는 첫 걸음은 뇌졸중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먼저 다소 복잡하지만 뇌와 뇌 혈관의 구조부터 알아보자. 뇌는 약 1250g(여자)~1400g(남자)이며 크게 대뇌, 소뇌, 뇌간으로 구성돼 있다.
▲ 연세대재활병원에서 한 뇌졸중 환자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대뇌는 오른쪽과 왼쪽 두개의 반구(半球)로 나뉘어 거의 대칭적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각의 대뇌는 전두엽(이마쪽), 두정엽(정수리쪽), 후두엽(뒷머리쪽), 측두엽(옆머리쪽)으로 나뉜다. 왼쪽 대뇌는 언어 중추가 있어 말하고, 이해하고, 쓰고, 읽는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오른쪽 대뇌는 전체적인 공간을 인식하는 기능과 대인관계 등을 주로 담당한다. 대뇌의 뒷편 아래쪽에 있는 소뇌는 우리 몸의 균형을 잡거나 미세한 운동을 조절하며, 대뇌 바닥쪽에 있는 뇌간은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심장박동, 호흡,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관장한다. 따라서 뇌간에 발생한 뇌졸중이 가장 치명적이다.
뇌가 사고와 감정, 동작, 생명활동 등을 총괄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같은 에너지의 공급 통로가 혈관이다. 뇌혈관은 목 앞쪽으로 올라가는 한 쌍의 ‘경(頸·목)동맥’과 목 뒤쪽으로 올라가는 한 쌍의 ‘척추동맥’이 담당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동맥은 두개골 안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이중 ‘중뇌동맥’은 뇌의 측면에 피를 공급하며, ‘전뇌동맥’은 대뇌 앞쪽에 피를 공급한다. 한 쌍의 척추동맥은 두개골 안에서 합쳐져 ‘기저동맥’이 된다. 기저동맥은 대뇌 뒷쪽(후두엽) 일부와 뇌간, 소뇌 등 뇌 밑바닥에 피를 공급한다.
뇌졸중이란 이같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뇌 세포가 죽은 상태를 말한다. 이때 뇌 혈관이 터져서 초래되는 뇌졸중을 뇌출혈, 뇌혈관이 막혀 초래되는 뇌졸중을 뇌경색이라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선 뇌출혈이 뇌경색보다 훨씬 많았으나, 1993년 조사에선 뇌출혈이 30%선으로 줄었고, 최근 서울아산병원 조사에선 20%선까지 줄었다. 뇌출혈은 거의 대부분 고혈압 때문에 발생하며, 뇌경색은 고혈압, 당뇨, 흡연, 고지혈증, 심장병 등 훨씬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한다. 뇌출혈이 줄어든 이유는 고혈압 치료가 보편화됐기 때문이며, 뇌경색이 늘고 있는 이유는 생활습관병(성인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백인의 경우 뇌경색이 전체 뇌졸중의 90% 정도인데,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선진국형’을 닮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뇌졸중은 ‘운’이 많이 작용하는 병이다. 척추-기저동맥이 막혀 호흡과 심장박동 등을 관할하는 뇌간이 손상받으면 손써볼 도리도 없이 사망하거나, 뇌사에 빠지거나, 식물인간과 유사한 ‘감금증후군’이 되기 쉽다. 감금증후군은 사지가 모두 마비돼 꼼짝도 못하며, 말하지도 못하고, 표정을 짓지도 못하며, 음식물을 삼키지도 못하지만, 의식이 있다는 점에서 ‘식물인간’과 다르다. 또 목 근처 경동맥이 막히면 여기서 갈라지는 중뇌동맥과 전뇌동맥도 순차적으로 막히므로 대부분 사망한다.
그러나 전뇌동맥이 막혀 뇌 앞쪽(전두엽)이나 정수리쪽(두정엽) 세포가 손상받은 경우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언어-운동-시력-감각마비 등의 후유증이 남지만, 운이 좋아 중요한 신경을 살짝 비켜서 뇌졸중이 생기면 아무런 증상이 없을 수도 있다. 뇌가 호두알 크기만큼 죽었는데도 아무런 증상이 없어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런 경우를 ‘무증상 뇌경색’이라 하는데, 국내에선 55세 이상의 절반 정도에게 무증상 뇌경색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뇌졸중이 발병할 조건을 고루 갖춘 사람이라면 보다 덜 치명적이고, 후유증이 적은 곳에 뇌졸중이 생기도록 기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일반적으로 여러 뇌혈관 중 중뇌동맥이 가장 잘 막히는데, 이 경우엔 운동-감각-언어중추가 손상을 받아 반신마비가 오거나, 감각이 없어지거나, 발음이 어눌해 지거나 아예 말을 못하게 된다. 특히 언어중추가 있는 왼쪽 뇌에 손상을 받으면 실어증(失語症)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전두엽이 손상되면 사람의 성격과 인지능력에 변화가 초래되며, 후두엽이 손상되면 시각에 손상을 받으며, 소뇌가 손상되면 손발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된다.
보통 사람의 생각과 달리 뇌졸중은 매우 정직한 병이다. 알츠하이머 등 인간의 노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병도 있지만 뇌졸중의 원인은 대부분 밝혀져 있다. 뇌 속 혈액순환을 방해하거나 뇌혈관을 손상시키는 것은 모두 뇌졸중의 위험인자다. 이 중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흡연, 과도한 음주는 ‘중요한 위험인자’, 고지혈증, 비만, 짜게 먹는 식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은 ‘덜 중요한 위험인자’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뇌졸중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대비하고 예방할 수 있다. 느닷없이 뇌졸중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심은 대로 거두는 병이 바로 뇌졸중이다.
뇌졸중의 위험인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고혈압은 혈관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 혈관벽을 손상시킨다. 일반적으로 혈압이 높으면 뇌경색에 걸릴 확률이 6~12배, 뇌출혈에 걸릴 확률이 18~20배 높다.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뇌졸중 환자의 약 70%에게 고혈압이 있었다. 다행히도 고혈압은 약을 복용하고, 식이요법-운동요법을 병행하면 얼마든지 정상혈압으로 낮출 수 있다. 당장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병원-약국에 갈 시간이 없다고, 고혈압 치료를 소홀히하다간 언제 뇌졸중에 맞닥뜨릴 지 모른다.
당뇨병은 우리 몸의 지질대사에 영향을 미쳐 동맥경화를 촉진하며, 특히 작은 뇌혈관에 손상을 입혀 발생하는 ‘작은 뇌경색’의 원인이 된다. 이를 ‘라쿤’이라 한다. 또 당뇨가 있으면 심장질환을 일으켜 심장벽에 혈전(血栓-피떡)이 생기게 하는데, 이것이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당뇨환자의 뇌졸중 발병률은 정상인의 3~5배, 심지어 13배까지 높다는 보고도 있다. 당뇨병을 오래 앓으면 앓을 수록 뇌졸중 확률도 높아지므로 당뇨의 치료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심장병은 그 자체가 뇌혈관 손상을 초래하진 않지만 심장안에서 생긴 혈전이 뇌혈관으로 이동해서 뇌혈관을 막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위험인자가 된다. 심장병 환자의 뇌졸중 발병률은 정상인의 5배 이상이다.
흡연은 그 자체가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혈액을 쉽게 응고시키므로 뇌졸중 발병률을 높힌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이 없는 비교적 젊은이에게 뇌졸중이 발병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담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술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매일 술을 마시거나, 한꺼번에 폭음하는 경우엔 혈압을 급격하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뇌졸중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과음은 뇌경색보다 뇌출혈을 더 잘 일으키는데, 일반적으로 매일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는 사람의 뇌출혈 확률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의 10배 정도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밖에 콜레스테롤은 특히 경동맥의 동맥경화를 촉진한다. 그러나 서구인의 경우 고지혈증이 뇌졸중의 중요한 위험인자지만, 야채와 곡류를 많이 먹는 동양인에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스트레스도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높히므로 조심해야 한다. 비만이나 운동부족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원인이 돼 간접적으로 뇌졸중의 발병에 관여한다.
따라서 뇌졸중 예방을 위해선 1단계로 금연, 운동, 절주, 염분섭취제한, 채소-야채 중심 식사 등을 생활화함으로써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등 생활습관병에 걸리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만약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이 있는 사람은 ‘화약고를 짊어지고 산다’고 생각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내디뎌야 한다.
본격적인 뇌졸중 발병에 앞서 일어나는 ‘일과성 허혈발작(Transient Ischemic Attack:TIA)’은 그래도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안전장치다. 뇌졸중 환자의 15~20%는 뇌졸중이 발병하기 전 일종의 경고로 ‘맛보기 뇌졸중’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일과성 허혈발작이다. 뇌 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다시 열리기 때문에 뇌졸중 증상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한쪽 팔다리를 갑자기 못쓰거나(운동마비), 얼굴이나 손 등의 감각이 둔해지거나(감각마비), 저리거나 시린 느낌이 있거나(이상감각), 말을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언어장애), 한쪽 눈 또는 두쪽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시각장애), 물체가 두개로 보이거나(복시), 주변 물체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러운 느낌(현훈증) 등이다. 이런 증상은 대개 30분 이내에 사라지지만 때에 따라 그보다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잠깐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별 것 아니겠지”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은 1년 이내에 뇌졸중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일과성 허혈발작이 있었거나, 종합검진 등을 통해 무증상 뇌경색이 발견된 사람은 뇌졸중 환자에 준해서 예방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들은 ‘재수’가 좋았을 뿐이며, 다음번 뇌졸중 발병 때도 ‘재수’가 좋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항혈소판제제를 복용하는 등 뇌졸중 방지에 그야말로 ‘사활(死活)’을 걸어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경고사인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일을 당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한편 뇌졸중, 특히 뇌경색이 일어나 쓰러진 경우엔 분초를 다퉈야 한다. 마치 물 속에서 수분 정도는 숨을 참을 수 있는 것처럼 뇌 세포도 서너시간 동안은 피가 통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뇌졸중이 발병한 부위의 뇌세포는 죽지만, 그 주위 뇌세포는 죽지 않는다) 따라서 신속히 병원에 데려가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혈전용해제’ 등을 주사해야 한다. 우황청심환을 먹이거나 침을 놓는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환자를 죽이는 행위다.
일반적으로 뇌혈관이 막혀 혈액공급이 차단되고 3시간 정도가 지나면 뇌세포가 죽으므로 적어도 발병 3시간 이내에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병원에는 늦어도 발병 2시간 이내에 데려가야 CT·MRI 등의 진단을 거쳐 3시간 이내 치료가 가능하다. 병원에 데려갈 때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제일 큰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다. CT를 갖춘 웬만한 종합병원에서 치료할 수도 있지만, 방사선 전문의가 상주하는 대형병원에 데려가야 보다 정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뇌출혈인 경우 병원에서도 사실상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대개의 경우 출혈된 피가 저절로 흡수될 때까지 지켜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치료법이다. 그러나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병원에 늦게 데려가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만약 뇌출혈 범위가 큰 경우엔 두개골을 여는 등의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 뇌 안쪽으로 피가 터져나오면 뇌압이 올라가고, 그 양이 많다면 뇌간까지 압박하게 되는데, 뇌간이 눌리면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이 때는 두개골 안에 고인 피가 뇌간을 누르지 않도록 피를 빼내거나 때로는 두개골을 열어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한편 뇌 출혈이 뇌 안쪽이 아니라 뇌와 뇌를 둘러싸고 있는 지주막 사이에 발생한 경우도 비교적 흔한데, 이를 ‘지주막하 출혈’이라 한다. 지주막하 출혈은 보통 뇌 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동맥류가 터진 것으로 뇌세포가 죽지 않았으므로 반신마비, 실어증 등과 같은 뇌졸중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심한 두통이 특징이며, 때로는 의식을 잃기도 한다. 이런 환자는 동맥류가 다시 터질 위험이 크므로 즉시 병원에 데려가서 재출혈 예방을 위한 수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활치료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자. 뇌졸중에서 생명을 건지더라도 운동장애, 감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장애, 치매 등의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장애는 사실 극복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해서도 안된다. 비록 한번 파괴된 뇌세포는 다시 재생되지 않으므로 뇌졸중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인체는 매우 신비로와서 뇌 한쪽이 파괴되면 옆에 있는 뇌 세포가 파괴된 세포의 역할을 대신하는 매카니즘이 발동된다. 따라서 포기하지 말고 재활치료에 힘써야 한다.
재활치료엔 팔다리 마비와 운동장애 등을 풀어 주는 물리치료가 중요하며, 이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라도 빨리 시행해야 한다. 물리치료를 하지 않으면 뇌졸중으로 마비된 관절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관절과 근육 등도 쓰지 않기 때문에 뻣뻣하게 굳어지거나 장애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물건잡기, 숟가락 사용하기, 세수하기 등 작업치료를 병행하며,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을 병행하면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
■ 김종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종성 교수는 대학 때 클래식 기타와 동양화 그리기에 푹 빠져 살았다. 본인 표현을 빌면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도 읽었다.
▲ 김종성 교수(가운데 앉은 사람)가 신경과 레지던트들과 함께 뇌졸중 환자의 MRI 사진을 검토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그러나 이같이 고상한 취미를 김 교수는 벌써 십 수년째 잊고 산다. 뇌에 관해 연구하는 게 너무 재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얼마전부터 골프 배우기를 시작해 필드에도 한 두 번 나가 봤는데, 재밌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젠 연구하고 글쓰는 게 취미”라고 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감각 장애에 대한 연구와 치명적인 뇌간 부위에 발생한 뇌졸중이 김 교수의 주된 연구 분야. 최근엔 침 등을 이용한 뇌졸중 재활치료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국내서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을 쓰는 의사 중 하나다. 지금껏 ‘신경과학’ ‘스트로크’ 등 세계적 학술지에 낸 SCI 논문만 110여편 정도 된다. 그는 “어림도 없다”고 말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02년 노벨의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한국인 중 한명으로 김 교수를 지목했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어려운 의학지식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능력은 김 교수가 가진 또 다른 재능이다. 그가 2000년 펴낸 ‘뇌에 관해 풀리지 않는 의문들’(지호출판)은 제목 그대로 보통사람이 뇌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궁금점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썼다.
이 책의 제1장 ‘잠은 왜 잘까’편은 중학교 2학년 국정 국어교과서에 재구성돼 실렸다. 2001년에는 ‘뇌졸중 119’(가림출판사)란 책도 출간했다.
1956년생인 김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신경과 수련을 받았다. 2년간의 서울대병원 전임의를 거쳐 1989년 서울아산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992~1993년 미국 헨리포드병원 뇌졸중센터에서 연수했다. 울산의대 최우수 연구 교수상, MSD학술상, 함춘의학상, 분쉬의학상 등을 수상했다.
<1> 뇌졸중 어떻게 진단하나
뇌졸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의사는 가장 먼저 뇌 CT 촬영을 한다. CT를 찍으면 우선 혈관이 막혀 생긴 뇌경색인지, 혈관이 터진 뇌출혈인지 1차적으로 감별할 수 있다. 뇌출혈인 경우엔 CT의 진단능력이 특히 뛰어나며,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뇌출혈 환자라면 ‘정위틀 CT’를 통해 출혈이 생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정위틀 CT란 좌표를 찾는데 쓰이는 금속 틀을 나사로 두개골에 고정시킨 뒤 찍는 CT다.
그러나 뇌경색인 경우엔 CT보다 MRI가 더 유용하다. CT로는 진단이 어려운 소뇌와 뇌간 경색도 정확하게 진단 가능하며, 경색이 일어난지 얼마 안된 경우에도 CT보다 MRI 진단 능력이 뛰어나다.
뇌졸중 진단에 있어 자주 쓰이는 또 다른 검사법은 뇌혈관 조영술로, 이는 조영제(造影 )를 혈관내로 주입한 뒤 X선 촬영을 하는 것이다. 뇌 혈관 협착이나 폐쇄 부위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며, 필요한 혈관만 선택적으로 자세히 검사할 수도 있다. CT 검사 결과 뇌출혈 원인이 고혈압이 아닌 뇌동맥류나 동정맥 기형으로 추정될 경우에도 보다 정확한 출혈 원인을 찾기 위해 뇌혈관 조영술을 시행한다.
그밖에 초음파검사, SPECT(단광자방출 컴퓨터단층촬영),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가 뇌졸중의 진단에 이용된다. 초음파검사는 두개골 내 혈류 상태나 뇌로 피가 들어가는 경동맥 혈류상태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 SPECT와 PET는 비싸고, 다른 검사로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2> 뇌졸중과 성격
사람의 성격도 뇌졸중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고 야망이 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 위험이 높은데, 이같은 사실은 김종성 교수의 실험에서도 그대로 입증됐다. 김 교수는 뇌졸중으로 입원한 환자 224명과 정상인 대조군 100명을 대상으로 뇌졸중 발병과 개인 성격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지난 1998년 유럽학회에 보고한 바 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야망과 경쟁심이 강한 ‘A형 성격’은 그렇지 않은 B형이나 C형 성격에 비해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이 20∼50% 높았다.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아이젠크 박사는 사람의 성격을 A, B, C형으로 분류했다. A형은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야망이 크고, 경쟁심이 강하고, 공격적이며, 맡은 일을 철저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B형은 A형과 정반대로 소극적, 무의욕적인 성격이며 C형은 A형과 B형의 중간 성격이다.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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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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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데 간은 사람의 오장육부 중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장기다.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간에서는 담즙(소화액)을 비롯해서 우리 몸에서 필요한 수천가지의 물질과 효소를 생산해 낸다. 담즙은 십이지장으로 이동해 섭취한 음식을 더 작은 입자로 분해하는 등 소화를 돕고, 이렇게 소화-흡수된 각종 영양소는 피를 타고 돌다 다시 간으로 이동해서 재처리된 뒤 다른 조직에 저장되거나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흡수한 지질과 당질, 단백질이 몸 속에서 대사된다. 각종 비타민과 호르몬이 대사되는 곳도 간이다.
간은 또 체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독물질의 제독(除毒)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장내에서 단백질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다량의 암모니아 가스가 발생하는데, 그대로 두면 뇌 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를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바꾸어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간이다. 또 알콜이나 약물 등의 독성도 간에서 제거돼 인체를 순환하게 된다. 간 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쿠퍼세포’는 우리 몸 속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각종 병균, 이물질 등을 끌어들여 잡아먹는 역할을 한다.
그 밖에 제 역할을 다한 호르몬이나 영양소, 혈액 찌꺼기 등 인체에 불필요한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도 간이 담당한다.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 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이 인체 소화기관 중 가장 큰 이유도, 심장에서 내 보내는 피의 약 25% 정도가 손바닥 만한 간을 통과하는 이유도 그만큼 간이 많을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간은 엄살을 부리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우직스레 일만 한다. 위(胃)와 한번 비교해 보자. 위는 염증이나 궤양이 생겨 약간만 불편해도 ‘아우성’을 친다. 속이 쓰리고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 증상이 즉각 생긴다. 치료를 하고, 하지 않고는 ‘주인’ 맘이지만, “아프니까 어떻게 좀 해달라”고 끊임없이 주인에게 떼를 쓴다.
▲ 이승규 교수
그러나 간은 웬만큼 지방이 껴서 붓고,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어 나가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계속한다. 마치 주인을 위해 이 한 몸 부서져라 일만하는 충직한 하인처럼,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나 아픈데...”라고 기별을 한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간이 아파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몸이 붓고, 황달이 생겨 아프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간 기능은 70% 정도까지 상실돼, 치료가 쉽지 않은 상태이기 십상이다.
좀 심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고깃집에 가면 소금기름에 찍어먹으라고 소 생 간이 나온다. 그 간이 매끄러운 선홍빛이 아니라 색깔이 누르스름하거나, 군데 군데 시커멓게 얼룩져 있다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사람의 간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람의 간은 표면이 매끈하고 암적색 빛이 돌아 보기에도 좋지만, 지방간이 있는 사람의 간은 약간 누르스름한 빛을 띄면서 부어있고, 황달까지 있는 사람은 약간 단단하면서 시커멓게 착색돼 있다. 간경화 환자의 간은 표면이 마치 전복껍질처럼 거칠고 딱딱하며 쪼그라들어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누르스름하고 시커멓게 간이 변해가는 데도 자신의 간을 돌보지 않는다. 간은 침묵하기 때문이다.
사실 간은 인체에서 재생력이 가장 좋은 장기이다. 간암이나 간경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간의 절반 정도를 떼 주는 ‘생체이식’이 가능한 것도 그만큼 재생이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체이식을 하고 두달 정도가 지나면 간은 원래의 크기를 95% 이상 회복한다. 따라서 간은 웬만큼 상처를 입어도 적절히 관리하면 다시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방간은 한두달만 금주해도 말끔히 없어진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재생력이 좋은 간도 70% 이상 망가지면 문제가 생긴다. 간 세포가 30%, 아니 50% 망가졌을 때라도 미리 ‘SOS’ 신호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미련 곰탱이’ 같은 간은 항상 좌초 직전에야 “구해달라”고 절규를 한다.
▲ 간기능 검사를 위한 복부 초음파검사 장면. 간염 바이러스 건강보유자들은 정기적인 간기능검사를 통해 발병여부를 체크하는게 좋다./조선일보DB
따라서 느닷없이 ‘SOS’ 신호가 날아오지 않게 대비하려면 미리미리 간을 아끼고 보호하는 방법 뿐이다. 용왕님 앞에 선 토끼가 “간을 꺼내 놓고 왔다”고 둘러댄 것처럼 수시로 간을 꺼내서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경화나 간암의 90% 이상은 간염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망가진다고 말하지만, 알콜성 간경화는 전체 간경화의 5% 미만이다. 간염 바이러스가 없다면 매일 소주 두 세병씩 몇 십 년을 마셔야 알콜성 간경화가 생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따라서 간경화나 간암은 간염을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간염 중에서도 간에 치명상을 입히는 주범은 B형 간염 바이러스다. 우리나라 성인의 6~8%는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며, 10대 이하도 1% 정도는 감염돼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감염자의 80% 정도는 출생시 모체(母體)로부터 수직 감염되며, 나머지도 대부분 아주 어렸을 때 감염된다. 어른이 돼서 감염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술잔을 돌리면 감염된다는 얘기는 술을 적게 마시라고 지어낸 이야기지, 실제로 술잔으로 감염된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간경화나 간암에 걸리는 사람은 어렸을 때 이미 결정된다는 얘기다. 운명의 장난처럼 어린 시절 자기도 모르게 감염되므로 당사자로선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감염 직후부터 체내에서 계속 증식을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면역체계도 미숙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가 서로 싸우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증상도 없다. 눈과 얼굴이 노랗게 되는 등 간염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30대를 전후해서다. 그제서야 ‘적’인줄 알아차리고 면역세포가 공격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바이러스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간 세포까지 파괴되는데, 이것이 간염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나타나는 발병 양상과 경과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간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게 급성간염이며, 오랜 시간을 두고 국지전을 벌이는 게 만성간염이다. 어떤 경우는 평생 발병하지 않고 평화공존을 유지하는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을 ‘무증상 보유자’ 또는 ‘건강 보유자’라고 한다.
현재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운 좋게’ 무증상 보유자가 되고, 몇 퍼센트 정도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하는지 등에 관한 통계는 없다. 어림짐작으로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면 ‘바이러스 보유자의 70~80% 정도는 바이러스의 증식활동이 멈춰 있거나, 증상이 너무 경미해 본인도 잘 모르고 있거나, 발병을 했다가 저절로 낫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해두자. 뒤집어 이해하면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는 만성간염으로 진행돼 임상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전체 바이러스 보유자 20%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 중 25~30%는 간경화가 되며, 그 중 일부가 간암으로 발전한다.
최근엔 C형 간염도 간경화나 간암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B형과 달리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약해 성 행위 등 일상생활을 통해 감염될 확률이 거의 없거나 아주 낮다. 주요 감염 경로는 혈액과 체액. 감염자로부터 수혈을 받거나, 비 위생적인 바늘로 귀를 뚫거나, 문신을 하거나, 마약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주로 감염된다. 신장투석을 받거나 장기이식을 받는 과정에서 감염될 수도 있다.
얼핏 생각하면 B형보다 감염 확률이 크게 낮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방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예방백신이 보급되면서 크게 줄었지만, 백신이 없는 C형 간염 환자는 계속 증가추세다. 백신이 우리보다 일찍 보급된 이웃 일본에선 B형 보다 C형 간염이 더 많다. 언젠가는 우리도 C형 간염이 B형 간염을 앞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보다 증상이 가볍다. 황달도 나타나지 않고, 피로감, 무력감, 소화불량,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고 만성화 되기 쉬워 결과적으로 훨씬 더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50~70% 정도가 만성화돼, 현재 우리나라 만성 간염 환자의 약 10~15%가 C형 간염 환자다. 만성 C형 간염 환자의 약 30%는 간경화로, 약 10%는 간암으로 발전한다.
한편 A형 간염은 최근 20세 이하 연령층에서 비교적 많이 생기고 있고, 증상도 비교적 심한 편이지만 만성화 되지 않고 대부분 완치되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개발국에 많은 D형 간염과 E형 간염도 우리나라에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했지만 발병하지 않은 사람, 즉 ‘무증상 보유자’들은 얼마든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 웬만한 신체 접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으며, 적당히 과로하거나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한가지가 정상인과 다르다. 그것은 그들의 내일이 어제처럼 그렇게 건강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억누르고 있는 간염 바이러스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으며, 지금껏 평화롭게 공존하던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가 어느 순간 전투를 벌여 간염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엔 ‘건강 보유자’란 표현보다 ‘무증상 보유자’란 표현을 의사들은 더 즐겨 쓴다. 건강한지 안한지는 잘 모르겠고, 단지 증상이 없다는 것만 인정하겠다는 뜻이 여기에 내포돼 있다.
바이러스 보유자는 따라서 의사들이 구태여 무증상 보유자란 단어를 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속에 잠들어 있는 바이러스가 기지개를 켜고 발호(跋扈)하지 않도록, 마치 얼음 위를 걷듯 조심조심 생활해야 한다. 즉, 간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체중이 늘지 않도록 관리하며, 과음을 삼가고,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 또 규칙적으로 간 검사를 받아 바이러스의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이 중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술이다. 앞서 언급했듯 알콜성 간경화는 전체 간경화의 4~5%에 불과하다. 그러나 술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B 또는 C형 간염때문에 간경화가 된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간경화는 바이러스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때로는 알고서도 술을 마시기 때문에 발생한다. 간경화 환자의 음주경력을 조사해 보면 하루 소주 1~3병씩 10~20년씩 마신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가 그렇게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간경화 때문에 간 이식 수술을 받고도 술을 마시다 결국 사망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름만 되면 아는 유명인 이모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따라서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술을 독약처럼 생각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술을 마셔야 할 자리가 생기고, 또 술을 마신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지도 않기 때문에, 대부분 술을 입에 대게 된다. 물론 어쩌다 한번, 꼭 필요해서 술을 마신다면 크게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번 두번 술을 마시다보면 스스로의 방어벽이 허물어지고, 일단 방어벽이 허물어지면 그 다음엔 통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안 그래”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도 처음엔 “나는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내 간 속에 바이러스가 힘을 축적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울러 바이러스 보유자는 간에 항상 청진기를 들이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침묵하는 장기, 간은 웬만해선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이 있으면 보이고, 애정이 있으면 느껴지기 마련이다. 신경을 곤두세우면 간이 이를 악다물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왠지 모르게 피로하고 무기력해지거나, 평소보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때는 즉각 간기능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피곤한 정도를 지나 음식 냄새를 맡는게 비위가 상하고 헛구역질 또는 구토를 하거나, 얼굴에 기미가 끼고 피부색이 거무튀튀해지거나, 몸이 이상하게 자꾸 붓거나, 눈 흰자위나 피부가 약간 누르스름하게 변한다면 좀 더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즉시 진단받고 치료에 나서야 한다.
일단 간염이 발병하고, 그것이 만성으로 진행되면 이때부턴 인내와 끈기의 싸움이다. 이 병은 쉽게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현재 개발된 인터페론이나 라미뷰딘 등의 치료약도 간염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불과하며, 시간이 지나면 면역성을 키운 바이러스가 다시 튀어나와 환자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다”고 믿어야 하며,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물요법, 생활요법, 식이요법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 비록 힘들고, 지루하고, 효과가 더디며, 때로는 병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성급하게 완치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쉽게 낫지 않는 병이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만성 간염도 평생 몸에 지니고 산다고 각오하고, 그렇게 느긋하고 꾸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간염을 이기는 길이다.
물론 처음엔 누구나 의사를 믿고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1년, 2년 치료를 받아도 병이 완치되지 않고,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 현대의학과 현대의학을 맹신하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된다. 이때쯤 “누구누구는 여차저차해서 간염이 완치됐다고 하더라” “서양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더라” “간염에는 무엇 무엇이 특효약이라더라”는 얘기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민간요법이나 자연식품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들이 그같은 경과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특효약’이라고 선전하는 일부 버섯, 성분 미상의 생약,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한약 등은 사망률이 80~90% 정도인 급성·전격성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간염 환자는 귀를 막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간염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간염을 극복하고 복귀한 컴퓨터 바이러스 박사 안철수씨는 “주위에서 이 것 저 것을 권할 때 솔직하게 유혹을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귀를 틀어막고 의사 지시를 따랐고, 그래서 간염을 이길 수 있었다”고 언론을 통해 고백한 바 있다. 그의 경험담을 많은 간염 환자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편 간염이 발병하면 환자는 안정을 취하면서 고단백-고비타민식을 해야 한다. 간염에 걸리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끼니마다 쇠고기를 배불리 먹는 경우가 많은데, 쇠고기나 돼지고기 단백질보다 생선이나 닭고기 가슴살의 단백질이 더 좋다. 또 아무리 단백질 식품이라 해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밖에 콩, 달걀, 우유, 두부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게 좋다. 또 간염에 걸리면 체내 비타민도 부족해지므로 비타민 A, C, E, B1, B12, 엽산 등을 보충해 주는 게 좋다.
식품첨가물이 많이 함유된 인스턴트 식품, 튀긴 음식, 태운 고기, 말린 생선 등은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가급적 삼가야 한다. 쑥, 미나리 등을 녹즙기로 짜서 매일 마시는 것도 좋지 않다. 조리해서 먹는다면 몸에 좋은 쑥과 미나리도 녹즙으로 마시면 섭취량이 지나치게 많아져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당연히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말아야 하며, 담배도 간암 발생률을 높히므로 끊어야 한다.
한편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침대에 누워 꼼짝도 않는 경우가 많은데 피곤하지 않은 범위에서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잠은 충분히 자서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간염 수치가 안정되면 직장에 나가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영업을 하러 돌아다니거나, 야근을 하는 업무는 피해야 한다.
끝으로 지방간에 대해 알아보자. 지방간은 글자 그대로 간에 지방이 껴서 간이 부은 상태다. 의학적으로는 지방의 무게가 간 전체 무게의 5% 이상일 때 지방간으로 진단한다. ‘지방간=술’ 이라고 단정짓는 사람이 많지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당뇨가 있으면 지방간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알콜성 지방간이라 해도 반드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술을 거의 못 먹는 사람에게도 알콜성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아마도 지방간은 직장인에게 가장 많은 병이지 싶다. 기자가 근무하는 신문사의 경우, 직장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이 나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지방간 진단을 받고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 지방간인데 설마 내게만 무슨 문제가 생기겠느냐고 생각하는 묘한 ‘공범의식’ 인것 같다.
사실 지방간은 그리 걱정할 병이 아니다. 무엇보다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증상이 있어도 그리 심하지 않다. 따라서 일단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또 다른 간 질환과 달리 치료가 매우 손쉽다. 알콜이 문제라면 한두달 금주하면 금방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기름이 빠진다. 비만이 원인인 경우도 운동 등으로 감량을 하면 지방간이 없어진다. 설혹 지방간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남아 있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지방간이 있다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분명히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태연하다는 점이다. 지방간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병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위험하진 않지만, 앞으로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강력한 ‘스톱 사인’이다. 따라서 지방간 판정을 받으면 한번 멈춰서서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이켜 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현명한 사람에겐 지방간처럼 고마운 경고도 없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렇게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간의 스톱 사인을 무시하고 내달린다. 모두다 신호위반 하는데 나만 빨간 불에 멈춰 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호위반의 끝은 대개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알콜성 간염이나 지방성 간염이 그같은 사고에 해당한다. 알콜성 간염은 만성적인 음주나 폭음으로 간 세포가 손상돼 염증이 생기고, 염증 때문에 간 조직이 섬유화되는 병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알콜성 간경화증이 된다. 주로 비만인에게 나타나는 지방성 간염은 지방간과 염증이 함께 나타나는 병으로 역시 심해지면 간경화증,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지방간은 매우 간편하게 해소된다. 술이 문제라면 한달 정도만 금주하면 된다. 죽어도 금주를 못하겠다면 주 2~3일 휴간일(休肝日)을 지키고, 한꺼번에 폭음하지 말고, 술을 마시되 천천히 마시고,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등 ‘요령’을 피우기라도 해야 한다. 또 비만이 문제라면 살을 빼면 된다. 살이 찌면 간염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등 만병의 근원이 되므로 더더욱 살을 빼야 한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멈춰서는 사람에게 지방간은 대수롭지 않은 병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지는 화근이 된다.
B형 간염은 어떻게 전염되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매년 2만~5만명의 B형 간염 환자 또는 보균자가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0년 B형 간염을 취업 제한 대상 질병에서 제외했지만 이것이 지켜지는 곳은 공무원과 공기업 뿐이다. 민간 기업에선 여전히 B형 간염 환자에게 취업상 불이익을 주고 있다. 어렵게 취업한 환자 또는 보균자들도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공연히 죄인 된 기분을 느껴야 한다. B형 간염에 관한 잘못된 상식 때문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환자의 혈액, 정액, 타액, 기타 체액에서 발견되지만 대개의 경우 혈액을 통해 전염된다. 정액, 타액, 눈물, 땀, 소변 등에 있는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혈액에 있는 바이러스 양의 1/100~1/1000에 불과해 전염력이 매우 낮다.
우선 B형 간염이 실제로 전염되는 사례를 살펴보면 환자의 코피나 혈액이 묻은 물건이 다른 사람의 피부 질환이나 상처에 닿는 경우, 환자가 양치질 도중 잇몸에서 피가 났는데 다른 사람이 그 칫솔로 이를 닦는 경우, 환자의 피가 묻은 물컵을 다른 사람이 이를 닦고 입을 씻는데 사용하는 경우, 간염 환자가 사용한 면도기로 면도를 하다 피부에 상처가 나는 경우, 성 행위를 할 때 성기 등의 점막에 미세한 상처나 출혈이 생기는 경우 등이다. 이 중 성 행위의 전염력은 에이즈나 C형 간염보다 훨씬 높으며, 콘돔을 사용해도 완전히 예방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주사바늘에 찔리거나, 한방에서 소독안된 침을 놓거나, 바늘로 문신을 하거나, 귀를 뚫는 경우 전염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직장 생활에서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B형 간염 환자와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식사를 함께 한다고 해서 전염되는 법은 없다. 술잔을 돌리면 간염이 전염된다는 얘기는 술을 적게 마시게 하기 위해 의사들이 만들어낸 얘기지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다. 또 간염 환자와 함께 목욕탕 또는 수영장에 같이 가거나, 합숙을 하거나, 수건을 함께 쓴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전염되지는 않는다. 설혹 e항원이 양성이어서 환자의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증식하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B형 간염 바이러스 건강보유자는 물론이고 e항원이 양성인 사람도 정상적인 직장생활이나 군대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직장 내 간염 환자가 있다면 따뜻하게 손을 잡고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승규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이승규 교수를 ‘당대 최고의 칼잡이’라 부른다. ‘칼잡이’는 외과의사를 통칭하는 용어다. 요즘은 외과도 장기별로 전문화돼, 간만 수술하는 사람, 심장만 수술하는 사람, 위만 수술하는 사람 등으로 세분화된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을 간암 또는 위암 수술 분야 최고라 말할 순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외과 분야를 통틀어 비교해도 그와 필적할만한 칼잡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가 간 이식 수술 중 틈을 내 수술실 한편에 마련된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그가 당대 최고임을 나타내는 에피스토 한 토막. 수년전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교수와 김영삼 대통령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교수가 비슷한 시기에 간암에 걸렸다. 그러나 당시 현직 서울대병원 교수였던 두 분이 간암 수술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이 아닌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이승규 교수에게였다. 당시 서울대병원측은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까봐 ‘엄청나게’ 노심초사했다.
그는 토·일요일을 빼면 이틀에 한번꼴로 간 이식 수술을 한다. 이식수술은 보통 오전 9시쯤 시작돼 다음날 새벽에 끝난다. 최고 36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술한 ‘진기록’도 갖고 있다. 이식이 없는 날엔 간암을 수술하고, 시간을 쪼개 회진·외래진료를 한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한다. 몸이 열두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그에게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하루 10시간도 넘게, 그것도 허리를 구부려 온 신경을 집중해 수술한다는 건 엄청난 ‘육체노동’이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이 교수는 수술실에 런닝머신을 갖다 놓았다. 그는 외과의사의 첫째 덕목을 “열몇시간씩 서서 수술할 수 있는 튼튼한 하체와 허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허벅지는 왠만한 처녀 허리 사이즈 굵기다. 다른 외과의사처럼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틈나는 대로 팔굽혀 펴기, 철봉 등을 한다. ‘자기관리가 지독한 사람’이란 게 주위사람들의 평가다.
1949년 1월생인 이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주 전공은 간 이식. 1992년 8월 뇌사자 간 이식을 처음 성공한 그는 2003년 11월 현재까지 800여건의 간 이식을 시행했으며, 수술 성공률은 95% 정도다. 수술 건수나 성공률 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다. 특히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고, 1997년에는 성인의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다. 또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 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고안, 발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제무대서 ‘거물’로 대우 받는 몇몇 안되는 국내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이 교수는 아직도 수술장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새우잠을 잔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하고, 가족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다. 수년전 어머니 장례식날 밤,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장으로 달려간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의학도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레지던트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뤄보겠다는 열정, 그 목표를 위해 빈틈없이 자신을 관리해 가고 있는 그의 노력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를 ‘최고의 자리’에서 지켜 낼 것으로 믿는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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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헌종 교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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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코는 크게 네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는 냄새를 맡는 기능이며, 둘째는 숨을 쉬는 기능이며, 셋째는 들이 마신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이며, 넷째는 공명(共鳴)을 일으켜 발성을 돕는 기능이다. 그러나 콧병 때문에 이 네가지 기능 중 어느 하나 이상 기능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이 치명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동물의 세계에 있어 후각은 천적(天敵)의 냄새를 감지해서 생명을 유지케 하며, 발정을 하고 교미를 해서 종족을 번식시키게 하는 등 생존의 제1수단이지만, 인간에게는 기껏해야 화재시 연기 냄새를 맡아 안전사고를 예방케 하는 역할 정도다.
그 보다는 오히려 맛 있는 음식과 향긋한 와인 냄새를 음미하는 ‘호사스런 수단’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코가 막혀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때로는 두통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는 없다. 코가 완전히 막히는 경우도 드물지만, 완전히 막히더라도 입으로 숨을 쉴 수 있다. 비염이나 부비동염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것도 ‘조금’ 불편한 일일 뿐이다. 때로는 코맹맹이 소리가 귀엽고 매력있게 들리기도 한다.
▲ 임호준 기자의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부분 콧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불편한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만성 코막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전 인구의 10%나 된다는데 실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 봐야지”하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러나 차일피일 병원행을 미루는 댓가로 콧병 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과 고통은 생각보다 크고 심하다.
콧물이나 코막힘 만을 콧병의 증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면 장애, 집중력 장애, 만성 피로 등도 콧병의 주요한 증상들이다. 즉 코가 막히면 코골이나 수면 무호흡증이 생겨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되며, 이 때문에 피로가 풀리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된다. 잠을 잘 때 수십초 이상 숨을 쉬지 않다 어느 순간 숨을 내 쉬는 수면무호흡증은 뇌졸중이나 심장병 발병을 높힌다는 보고도 있다. 또 코 안에 콧물-고름이 가득 차 있거나 코가 막히면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어 공부를 하거나 사무를 보는데 지장을 주게 된다.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는데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가, 아무리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몸이 오히려 무거운 이유가 콧병 때문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콧병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코의 구조부터 간단하게 살펴보자. 얼굴 중앙에 돌출돼 있는 코는 위 1/3은 단단한 뼈로, 아래 2/3는 물렁한 연골로 골격이 구성돼 있다. 콧구멍이 인후두부와 연결되는 통로를 비강(鼻腔)이라 하는데, 비강에는 ‘비갑개’라 부르는 콧살이 있고, 오른쪽 비강과 왼쪽 비강 사이에는 ‘비중격’이란 구조물이 가로막고 있다. 또 비강을 둘러싸고 한쪽에 4개씩 모두 8개의 동굴처럼 생긴 공간이 있는데 이를 ‘부비동(副鼻洞)’ 또는 ‘부비강(副鼻腔)’이라 한다. 각각의 부비동은 비강과 연결돼 있지만 부비동끼리 직접 연결돼 있지는 않다. 한편 코 가장 안쪽 윗 부분에는 약 500만개 정도의 후각세포가 분포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때 코를 킁킁거리는 이유는 후각세포가 있는 코 윗쪽으로 공기를 보내기 위해서다.
이 중 비강은 외부에서 흡입되는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함으로써 호흡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사람의 코는 오묘하게도 양쪽 비갑개 점막이 몇시간마다 교대로 부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 중에선 한쪽 코가 번갈아 막힌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이는 정상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양쪽 콧구멍으로 동시에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한쪽 콧구멍씩 교대로 숨을 쉬고, 반대편 콧구멍으로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비강 점막에 분포하는 신경은 이같은 공기의 흐름을 감지해서 코가 막히지 않고 편안하게 숨을 쉰다고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공기가 많이 통과해도 코가 막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코를 막고 콧구멍보다 훨씬 넓은 입으로 숨을 쉬면 숨쉬기가 훨씬 편할 것 같은데도 답답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공기가 비강 점막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기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박하사탕을 먹을때 코가 뻥 뚤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강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신경이 자극돼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비강 점막은 또 외부에서 흡입된 찬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건조한 공기에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뜨겁고 건조한 아프리카 사막에 있든, 눈보라 몰아치는 알라스카 빙하 위에 있든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온도와 습도가 항상 일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밖에 비강 입구의 콧털은 공기 중 큰 먼지나 오염 물질을 걸러내며, 비강 점막에 붙어 있는 무수히 많은 섬모는 미세한 먼지를 목구멍으로 쓸어 내리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비강과 부비강의 점막에선 하루 1리터 정도의 콧물을 생산하는데, 그 중 약 2/3는 비강에서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데 사용되고, 약 1/3은 섬모의 운동에 의해 목구멍으로 배출된다.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는 비강에 생기는 병 중 대표적인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과 비후성 비염, 부비동염(축농증) 등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비강은 양쪽 비갑개 점막이 교대로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여기에 염증이 있으면 양쪽 비갑개가 항상 팽창해 있게 된다. 그 결과 만성 코막힘, 만성 피로,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이 초래된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비후성 비염은 단번에 완치되는 질병이 아니다. 증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비염이 있는 경우 가끔씩 생리식염수를 이용해서 비강 내로 흡입된 여러가지 알레르기 물질이나 병원체를 씻어내는 것도 좋으며, 조금 뜨거운 증기를 코로 흡입하는 방법도 해 볼 만 하다.
그러나 소금이나 죽염을 너무 짜게 탄 물로 코 안을 세척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비강 점막을 영구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체액 농도와 같게 만들려면 물 1000cc에 소금 9g을 섞으면 된다. 의사 처방에 따라 비강 점막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프레이(국소 스테로이드 제제)와 항히스타민제를 적절히 사용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또 코 점막이 건조해 지면 비강의 기능이 떨어지므로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알콜은 비강 점막의 혈관을 팽창시키며, 담배 연기도 비강 점막을 자극하므로 모두 피해야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의 경우 꽃가루나 애완동물의 털 등이 비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것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이불은 자주 털고 햇볕에 말리고, 침대 밑 등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청소도 잘 해야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비염이 있다고 섣불리 수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후성 비염 환자는 누구나 공기의 흐름을 막고 있는 비후된 콧살을 잘라내면 코가 ‘뻥’ 뚤려 숨쉬기도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코 점막을 잘못 잘라내면 신경이 손상되고 비강의 생리에도 변화가 생겨 공기 통로는 넓어졌지만 여전히 코가 막히는 증상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생활요법이나 약물치료 등 보존적 치료를 먼저 시행하고, 그것이 효과가 없으면 레이저나 저주파 기기 등을 이용해 점막에 열을 가해 비후된 점막이 오그라 들게 하는 시술도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 비강 점막을 잘라내는 수술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을 때, 가장 마지막 순간에 고려해야 하는 방법인 것이다.
한편 비후성 비염은 ‘비중격 만곡증(彎曲症)’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사람의 비중격은 누구나 약간씩은 휘어져 있다. 그러나 휘어진 정도가 심하면 비강의 공기흐름에 지장을 초래해 코막힘 증세를 유발하는데, 이런 상태를 비중격 만곡증이라 한다. 예를 들어 비중격이 왼쪽으로 많이 휘었다면 왼쪽 비강은 비중격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막혀 숨을 쉬기가 어렵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비중격이 왼쪽으로 휘었기 때문에 오른쪽 비강은 그 만큼 넓어질 것 같다.
그러나 넓어진 공간 만큼 비갑개가 자라거나 때로는 그 보다 많이 자라서 비강을 막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한쪽 비강은 비중격 만곡증 때문에, 다른쪽 비강은 비후성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엔 이것도 해결 방법이 간단해 보인다. 휜 비중격을 수술로 곧게 펴고, 비후된 점막을 잘라내면 코가 뻥 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비강 점막의 미묘한 기능이 손상 받으면 아무리 콧구멍을 넓혀 놓아도 코막힘 증상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결론은 마찬가지다. 반드시 보존적인 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은 최후의 순간에 고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살펴 볼 콧병은 부비동에 생기는 염증이다. 흔히 ‘축농증(蓄膿症)’이라 부르는데, 축농증이란 단어는 ‘고름(농)이 쌓여 있는 증상’ 만을 의미하므로, 부비동염이라고 표현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 부비동염이 생기는 이유는 부비동에서 정상적-비정상적으로 생기는 분비물들이 비강으로 잘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부비동과 비강의 공기교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부비동과 비강의 통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부비동-비강 통로의 모양이 해부학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감기나 비염 등으로 통로의 점막이 부은 경우 부비동-비강의 통로가 막혀 부비동염이 초래된다.
부비동염이 있으면 코막힘 증상이 심할 뿐 아니라 누런 콧물이 나오고 심한 경우엔 두통이나 치통, 안구통도 생겨서 고생을 하게 된다. 이 때는 일차적으로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항생제나 점액 용해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일정기간 꾸준히 복용하면 많은 경우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즉, 약물치료를 해서 부비동 입구 주변의 팽창된 점막을 가라앉혀주면 부비동 안에 있던 고름이 배출되고, 부비동 안으로 공기도 들어가게 돼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다. 약물 치료를 해서 부비동염이 나았는데 다시 재발했다고 하소연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격하게 얘기하면 예전의 부비동염이 재발한 게 아니라 다시 부비동염에 걸린 경우가 훨씬 많다. 감기에 걸려 나았다가 다시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환자의 생활 습관이나 환경 등이 비슷하므로 나았다가 다시 부비동염에 걸리는 것이다. 부비동염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경우에도 약물 치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해부학적 구조의 이상 때문에 비강-부비동의 통로 주변이 쉽게 막히거나, 병이 너무 오래 지속돼 부비강-비강 통로 주변 점막이 두꺼워 졌거나 물혹이 생긴 경우, 충분한 기간 동안 약물 치료를 했는데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술은 부비동 내의 고름을 배출해 내고, 염증 때문에 손상된 점막을 제거하며, 부비동의 분비물이 비강 쪽으로 잘 배출될 수 있도록 통로를 다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과거에는 입술 안쪽을 째고 입술을 뒤집어 올린 뒤 수술했으나 최근에는 내시경을 이용해서 절개 없이 쉽게 수술할 수 있게 됐다. 수술 후 통증이 적고, 수술 결과도 훨씬 좋다는 게 내시경 수술의 장점이다.
부비동염 수술이든 비중격 만곡증 수술이든 코 수술은 회복이 더디고 회복 과정에서 출혈이나 코막힘 등으로 고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물론 비후성 비염을 레이저로 수술할 경우 아예 입원할 필요조차 없으며, 내시경 부비동염 수술도 당일 퇴원이 가능할 정도로 간편하다. 그러나 모세혈관이 밀집한 점막이 완전히 아물고 새 점막이 자라려면 평균적으로 4주 이상 걸리므로, 이 기간동안에는 2~3일에 한번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수술 후 하루 이틀 정도는 거즈 뭉치로 코를 틀어막고 있어야 하므로 숨쉬기가 매우 힘들며, 수술 후 2~3주 동안에도 계속 코 점막에 큰 코딱지가 많이 생기므로 숨쉬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 여러차례 생리 식염수로 코를 세척해 주면 코 딱지가 제거돼 숨쉬기가 조금 나아지며, 수술 부위 점막이 재생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수술 후 약 3주간은 장시간의 운동이나 사우나도 피해야 한다. 채 아물지 않은 모세혈관은 조금만 힘을 쓰면 ‘펑’하고 터져 코피가 나게 된다. 심지어 변을 보기 위해 힘을 쓰거나 재채기를 하다 모세혈관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 코 수술은 수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수술 후 점막이 재생되는 과정도 수술만큼 중요하다. 잘못 관리하면 수술해도 효과가 없거나 쉽게 재발할 수 있으므로 수술 뒤에도 병원에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진찰과 처치를 받아야 한다.
후각의 상실이나 기능 장애는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는 시점을 전후해서 비로서 임상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후각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냄새를 못 맡으면 와인의 깊고 옅은 미묘한 맛도 즐길 수 없고, 뒷 뜰의 진한 라일락향에도 정취(情趣)를 못느끼게 되며,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는 아로마의 그윽한 향에 몸을 내 맡길 수도 없게 된다. 산과 바다의 진기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냄새를 못 맡아 식욕이 동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까?
후각 기능의 장애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부비동염 같은 콧병 때문에 초래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지만 병을 치료하면 후각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서 또는 머리에 외상을 입고 나서 후각을 상실하는 경우다. 감기 바이러스가 후각 신경을 침범하거나, 외상으로 후각 신경이 손상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의학으로도 후각을 되살리기가 어렵다. 또 약물이나 유해물질 때문에 후각신경을 상실하는 경우도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후각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감기 등 콧병이 심할 경우엔 병이 진행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후각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엔 상한 음식을 모르고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가스가 샌 것을 모르고 불을 붙혀 화재를 일으키거나, 옆 방에서 화재가 났는데 냄새를 못 맡아 대피하지 못하는 등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후각장애가 있는 환자의 가정에서는 가스 경보기를 달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음식물에는 날짜를 적어 놓는 등 안전사고의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코골이의 치료
코골이란 잠을 잘 때 연구개(입 천장 뒷쪽)와 목젖, 편도선 같은 조직들이 이완되면서 이 곳을 통과하는 공기의 흐름이 물리적으로 방해를 받아 생기는 현상이다.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이 코를 골며, 특히 40세 이상 남자는 5명 중 2명이 코를 곤다. 코골이 자체는 심각한 병이 아니지만 남편의 코골이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쳐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으며, 당사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출장을 가는 것을 부담 스럽게 여기는 등 ‘코골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코골이가 심하면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의 발생률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코를 고는 정도가 심하다면 한번쯤 의사를 찾아서 상의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은 가장 먼저 체중을 줄여야 하다. 살이 찌면 숨 쉬는 통로가 좁아져 코를 더 많이 곤다. 술이나 담배도 코골이를 악화시키므로 자제해야 하며, 수면제나 신경 안정제도 피해야 한다. 너무 높은 베개가 원인일 수 있으므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도 안되면 구강보조장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통 입을 벌리고 자면 혀가 뒤로 밀려서 공기 통로를 막기 때문에 코골이가 생기는데, 입을 다물게 하는 구강보조장치와 혀를 앞으로 당겨주는 고강보조장치를 끼고 자면 도움이 된다. 이는 치과에서 처방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잠을 잘 때 목 안으로 공기(양압)를 넣어주는 특수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코골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전체 코골이 환자의 약 30%에 불과하다. 코골이 수술은 레이저로 연구개나 목젖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지지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며, 편도선이 큰 경우엔 편도선을 레이저 또는 수술칼로 잘라내기도 한다. 비후된 연구개나 목젖 등에 바늘을 찌른 뒤 약 70도 정도의 열을 가해 조직을 파괴하는 ‘온열요법’도 시행되고 있다.
이같은 코골이 수술의 효과는 약 70% 정도의 환자에게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30% 정도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코골이 수술을 할 때는 수술을 했을 때 효과가 어느정도 나타날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한 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비싼 돈 들이고 고생까지 해서 코골이 수술을 했지만 효과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때로는 이물감(異物感)이 남아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동헌종 교수는
동헌종 교수의 연구실은 기자가 방문한 수백명의 의대 교수 연구실 중 가장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진찰실도 마찬가지여서, 진료차트나 도구 등이 허트러짐 없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깔끔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
환자를 진료할 때도 이런 성격은 그대로 드러난다고 병원 관계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수술한 환자가 퇴원할 때는 반드시 외래 진료실로 불러 직접 코 딱지를 파 주며, 퇴원 후 주의 사항 등을 알려준다. 통상 레지던트가 맡는 일이지만, 그는 “코 딱지를 봐야 코 점막의 상태와 수술 후 경과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안정된 목소리로 누구에게든 깎뜻하게 예의를 갖춰 충분히 알아들을 때까지 병에 관해 설명을 한다.
1958년 생인 동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인턴과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1992~1994년 미국 펜실베니아 의대병원서 다양한 내시경 수술법 등을 배우고 돌아온 뒤 1994년부터 지금까지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특히 코 내시경 분야에서 새로운 수술법들을 국내에 도입 정착시키는 데 이바지 했다. 부비동염의 재발을 방지하는 새 내시경 수술법과 그 밖의 여러가지 최소침습수술(작게 째는 수술)을 개발하고 발표해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1997년부턴 매년 ‘부비동 내시경 수술 심포지움’을 열어 해마다 400여명의 의사들에게 코 내시경 수술법을 전수하고 있다. 또 신경과나 안과 등 인접 과와의 협진(協進)에도 앞장 서,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코 내시경을 이용해서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했으며, 1995년엔 갑상선 질환으로 안구가 튀어나온 환자에게 코 내시경으로 안구의 압력을 감압(減壓)하는 수술에도 성공했다. 그 밖에도 ‘코 기능 미용 성형 클리닉’을 개설해 코의 기능과 미용을 아울러 향상시키는 수술법들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이같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1998년 유럽 비과학협회 국제 심포지움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미국 이비인후과학회에서 재단학술상을 수상했다. 2003년 부턴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비과학회 학회지인 ‘비과학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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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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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암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2년 한해동안 9만9025건의 암 발생이 등록되었는데, 이 중 11.2%인 1만1097건이 대장암이었다. 위암(20.2%), 폐암(11.9%), 간암(11.3%)에 이어 암 발생 순위 4위를 기록했으며, 전년도인 2001년에 비해 14.5% 증가해 유방암(13.1%)과 함께 가장 급속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1995년을 기준으로 암 발생의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2002년도에 위암은 남자 115%, 여자 123% 증가했으나, 대장암은 남자 184%, 여자 164% 증가해 여러 암 중 가장 증가폭이 컸다.
대장암이 증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거보다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다. 대장암의 발병 원인이 100% 정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육류나 기름진 음식의 과도한 섭취는 대장암이 증가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하다보면 대변이 장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자연히 담즙산 같은 독성물질의 분비가 촉진돼 장 점막 세포가 손상을 입고 변화하게 된다. 이같은 손상과 변화가 수십년 지속되면 깨끗한 대장 점막 세포가 양성 용종을 거쳐 악성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밖에 설탕 같은 정제된 당류의 과도한 섭취, 야채나 과일 등 섬유소의 과소 섭취도 대장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이유로 꼽힌다. 또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람과 술-담배를 많이 하는 사람도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의 생활패턴 자체가 대장암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장암을 대표적인 선진국형 암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국립암센터 박재갑(가운데) 원장이 1일 오후 한국노총 이용득(오른쪽) 위원장과 민주노총 이수호(왼쪽) 위원장에게 노동자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양대 노총의 금연 운동에 사의를 표하고 감사패를 전달했다./연합
따라서 대장암을 예방하려면 식생활 부터 개선해야 한다. 대장의 배변 시간을 연장시키는 육류, 계란, 유제품 등의 섭취를 최대한 줄이고, 섬유소가 많은 곡류와 과일과 채소 등의 섭취를 늘려야 한다. 그래야 변비가 없어지고 대장암 발병률도 낮아진다.
예로부터 입에 단 것은 몸에 쓰다고 했는데, 맛 있는 음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음식이 맛이 있는 이유는 대부분 그 속의 지방 성분 때문이다. 퍽퍽한 살코기보다 기름이 촘촘히 박힌 꽃등심이 맛 있고, 삶아서 기름을 쏙 뺀 닭 백숙보다 싸구려 기름에 튀긴 후라이드 치킨이 더 식욕을 자극한다. 일식집의 알탕이 그토록 맛있는 이유도 알 자체가 ‘콜레스테롤 범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등심도 알탕도 먹지 말고 수도승처럼 채식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채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또 다른 건강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조리법을 달리해서 장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운동 습관도 몸에 익혀야 한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현대인의 운동량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제 자장면을 먹기 위해 외출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TV 채널을 돌리기 위해 몸을 일으켜 TV 앞에 다가갈 필요도 없어졌다. 모든 게 손가락 하나로 가능한 세상이 됐다. 운동량이 떨어지다보니 장의 운동력까지 떨어져 대장암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게을러 지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며, 1주일에 3~4회는 반드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출퇴근 길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걷기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 가짐이다.
그렇다면 고기 대신 야채를 많이 먹고, 매일 아침 뜀박질을 하면 대장암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 “고기도 잘 안 먹고, 술-담배도 안하는데 내가 왜...”라고 따지듯 묻는 환자들이 있다. 그러나 대장암은 건전한 식생활과 운동만으로 예방이 가능한, 그렇게 간단한 병이 아니다. 식 습관과 운동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 그 모든 발암 인자들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다행히도 대장암은 어느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때문에 대장암을 예방하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방법은 정기적인 대장 검진이다. 대장의 정상 점막 세포가 변해서 암이 되기 까지는 약 10~15년 걸리고, 용종이 암으로 발전하는 데도 약 3~7년 정도 걸린다. 재작년에 위 내시경 받았을 땐 괜찮았는데 올해 내시경에선 위암이 발견됐다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대장암은 워낙 오랜 세월에 걸쳐 자라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최소한 3년에 한번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면 용종이 아닌 암인 상태로 발견될 확률은 거의 없다. 한편 용종이 발견되면 외래에서 내시경으로 간단히 떼어내면 된다. 용종을 떼어내도 다시 생길 가능성이 약 30%에 달하지만 다시 용종이 생겨 그것이 암으로 발전하는데는 엄청나게 오랜 세월이 걸리므로 그 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검진에서 용종이 발견되는 비율은 25~30% 정도다. 용종 역시 노화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으므로 당연히 나이가 많을 수록 용종이 있을 확률도 커진다. 그러나 용종이 있다고 모두 암이 되는 것은 아니며 30~50%만 암으로 발전한다. 다시 말해서 대장에서 발견되는 용종의 50~70%는 염증 또는 단순한 점막 비후(肥厚)로 인한 비종양성 용종이며, 나머지 30~50%가 암으로 발전하는 종양성(선종성) 용종이다. 그러나 내시경만으론 종양성인지 비종양성인지 알아내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 용종이 보이면 떼어내서 조직검사를 하는 게 원칙이다. 종양성 용종의 크기가 2㎝ 이상이면 그 속에 암 세포가 들어 있을 확률이 35~50%에 달하지만, 1㎝ 이하일 경우엔 1%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몇년 간격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할까? 일반적으로 40대에 처음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검사상 이상이 없으면 그 다음부턴 5년에 한번씩 대장 또는 직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라고 권고한다.
30대가 아닌 40대에 첫 대장 내시경을 받으라는 이유는 대장암의 성장 기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30대에 검사를 받는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30대 검진을 권고하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가 너무 떨어진다. 용종 자체가 일종의 노화과정이므로 20대나 30대에는 매우 드물게 발생하며, 설혹 30대 중-후반에 용종이 생긴 경우라도 40대 초반까지는 계속 용종인 상태로 남아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40대에 첫 검진을 받는 게 비용-효과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처음 받은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용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 대장 전체를 살펴보는 대장 내시경은 10년에 한 번 꼴로 받으면 된다. 대신 3~5년에 한 번 꼴로 직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 직장과 에스(S)결장에 용종이 생겼는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에스결장은 대장의 맨 끝 부분으로 직장과 연결되는 부위다. 대변은 직장과 에스결장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물기 때문에 암도 이곳에 가장 많이 생긴다. 한편 에스결장이나 직장이 아닌 대장 깊숙한 곳에 용종이 생겨서 암으로 자라고 있을 확률도 있지만 10년에 한 번 꼴로 검사를 받으면 최소한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로 암이 발견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같은 권고지침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는 경우엔 더 일찍, 더 자주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체 대장암의 5~15%가 가족력 또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장암 발생의 유전적 소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 중 한 사람이 대장암 환자인 경우 자식에게 대장암이 발병할 확률은 일반인의 3~4배 정도며, 형제 중 대장암 환자가 있는 경우 본인에게 대장암이 발병할 확률은 일반인의 3~7배나 된다. 이러한 경우엔 적어도 40세 이전에, 또는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최초 발병했던 연령보다 10년 일찍, 예를 들어 아버지가 45세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면 아들은 35세에 대장 내시경을 받아봐야 한다.
만약 직계 가족 내에 3명 이상의 대장암 환자가 있다면, 예를 들어 아버지가 대장암이고 삼촌이나 고모 중 한 사람이 대장암이며, 자신이 대장암이라면 자신의 자녀에게 대장암이 발생할 확률이 50%에 달한다. 이를 ‘가족성 비용종증 대장암’이라 한다. 이런 가계(家系)에서는 20세부터 1~2년 간격으로 대장 내시경을 받는 게 좋다.
‘가족성 비용종증 대장암’보다 한 술 더 뜨는 게 ‘가족성 용종증 대장암’이다. 보통의 용종은 발견당시 갯수가 대개 한두개며, 많아도 10개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성 용종증인 경우 대장 벽에 수백~수천개의 용종이 생기는데, 대개 20세를 전후해서 용종이 생기기 시작하며, 10~20년 뒤 암으로 발전한다. 전체 대장암 환자의 1% 정도가 가족성 용종증에 의한 대장암이다. 따라서 ‘가족성 용종증 대장암’이 있는 가계의 사람들은 12세 쯤부터 에스결장경 검사를 시작해야 하며, 가족성 용종증이 발견됐다면 20세 이전에 대장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 게 안전하다. 대장을 잘라내지 않으면 100% 대장암이 생긴다고 보고돼 있다.
대장암의 증상은 암이 생긴 위치에 따라 다르다. 대장은 미음(ㅁ)자 비슷하게 구부러진 약 1.5m 길이의 장기로, 소장과 항문을 연결하고 있다. 소장에서 대장으로 넘어가는 첫 부분이 맹장이며, 수직 방향으로 항문과 연결된 끝 부분 약 15cm 정도가 직장이다. 흔히 맹장염에 걸려 맹장을 잘라냈다고 하는데, 엄격하게 말하면 맹장이 아니라 맹장에서 아랫쪽으로 길게 늘어진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겨 이것을 잘라낸 것이다. 또 대장암과 직장암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직장도 대장의 일부이므로 직장암은 대장암에 포함된다.
한편 맹장과 직장을 연결하는 부분을 결장(結腸)이라 하는데, 맹장이 있는 배의 오른쪽에서 간 밑에까지의 결장을 상행(上行) 결장, 오른쪽 간 밑에서 왼쪽 비장 밑에까지 수평방향의 결장은 횡행(橫行) 결장, 비장 근처에서 아래쪽으로 연결된 결장을 하행(下行) 결장, 왼쪽 아랫배 쪽에서 직장 입구까지를 에스(S) 결장이라 한다.
대장의 굵기는 부위마다 틀린데 상행 결장, 즉 복부 오른쪽의 대장이 가장 굵으며, 에스결장 쪽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 진다. 따라서 가장 굵은 상행결장에 암이 생긴 경우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빈혈이나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암 때문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암이 10~15cm까지 자라도 모르고 지내다 오른쪽 배에 혹 같은게 만져져 병원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굵기가 가는 하행 결장, 즉 복부 왼쪽에 암이 생긴 경우엔 암이 3cm 정도만 돼도 혈변이나 변비 등의 증상이 심해진다. 직장에 암이 생기면 변이 가늘어 지거나, 변을 보고나서도 개운치 않거나, 변에 피 또는 코 같은 누런 점액이 섞여 나오는 등 치질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대장암도 수술이 기본 치료법이다. 대장암은 크게 결장암과 직장암으로 구분하는데, 결장암의 경우 1기일 경우 수술만으로 완치가 가능하며,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은 2~3기 암은 수술로 대장을 절제한 뒤 보조적으로 항암치료를 하는 게 원칙이다. 4기암이라도 수술이 가능하면 일단 수술한 뒤 항암제 치료를 하게 된다. 직장암의 경우 2~3기암은 항암제 치료와 함께 방사선 치료를 추가로 시행한다.
대장암 수술은 배를 20~25cm 정도 째는 개복수술이 일반적이지만, 요즘엔 배에 1~2cm 크기의 구멍 너댓개를 내서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도 주로 1~2기 환자에게 많이 시행되고 있다. 복강경 수술은 개복 수술에 비해 출혈이 적어 수혈사고의 위험이 없으며, 회복기간이 1주 이상 짧으며, 통증이 적어 마약성분 진통제를 쓰지 않아도 되며, 수술 뒤 폐(肺) 합병증 등 부작용이 적다는 등의 장점 때문에 널리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3기 이상의 환자에게도 복강경 수술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암의 크기가 8cm 이상으로 아주 크거나, 암이 주위 장기를 직접 뚫고 들어갔거나, 암때문에 장이 완전히 막힌 경우엔 복강경으로 수술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
한편 과거엔 직장에 암이 생긴 경우 항문을 절제하고 복부에 인공 항문을 내는 수술이 일반적이었으나 요즘에는 수술기구와 수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항문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암을 제외하면 항문으로 보존하면서 깨끗하게 수술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조기 직장암의 경우에는 개복하지 않고 항문으로 직장경이나 기타 수술기구를 넣어서 수술할 수도 있다. 또 암이 장을 완전히 막은 폐쇄성 대장암 환자의 경우 막힌 곳 위쪽으로 변이 계속 차서 장이 터질 위험이 있으므로, 과거엔 차 있는 변을 빼내는 수술을 한 뒤, 다시 암을 절제하는 등 두번의 수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요즘은 ‘스탠트(금속그물망)’를 장이 막힌 곳에 삽입해 변을 빼내는 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돼 한번의 수술로 암을 절제할 수 있게 됐다.
대장암의 치료 성적은 비교적 좋은 편인데, 완치율은 의미하는 5년 생존율은 암 세포가 주변 림프절과 다른 장기, 그 중에서도 간으로 전이됐는가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전이만 되지 않았다면 암의 크기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 1기암은 5년 생존율이 약 90%, 2기암은 약 60~80% 정도다. 그러나 림프절로 암 세포가 전이된 3기암은 45~55%, 간이나 폐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4기암은 5% 이하다. 3기 암이라도 중요한 혈관 주위 림프절에 암 세포가 전이돼 여러개가 딱딱하게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경우엔 장기생존률이 뚝 떨어진다. 항암제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을 경우 약 1년 반 정도의 생존기간을 기대할 수 있다.
변비 제대로 치료하기
변비는 변비가 생긴 원인과 유형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 무턱대고 장운동 촉진제 같은 변비약을 사서 복용해선 안된다.
변비는 섬유소의 섭취가 부족하거나, 아침식사를 걸러 장의 반사 운동에 문제가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장 운동을 관할하는 자율신경에 문제가 생기거나, 변을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거나, 수분을 적게 섭취하거나, 운동이 부족할 경우 쉽게 생긴다.
변비의 유형은 장 운동이 약해 변을 항문쪽으로 밀어내지 못하는 변비, 변이 항문 근처 직장까지 도달했지만 항문이 열리지 않아 생기는 변비, 장의 경련 때문에 생기는 변비, 암이나 장 유착증 때문에 생기는 변비 등 크게 네가지로 구분 가능하다.
이 중 장 운동력이 약해 생기는 변비는 주로 노인에게 많다. 허약 체질, 갑상선 호르몬 부족, 부교감 신경억제제 복용 때도 장 운동이 약해질 수 있다. 이런 환자에겐 현재 시판되는 변비약이 도움이 된다. 시판되는 변비약은 대부분 장 운동 촉진제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의 변비는 대부분 항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거나 장의 경련 때문에 생기는 변비다. 따라서 변비약을 아무리 복용해도 큰 효과가 없다. 변비약을 오래 복용하면 오히려 장 운동력이 떨어져 2차적인 장 무력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장의 경련으로 인한 변비는 배에 가스가 차면서 토끼똥 같은 것을 누는 게 특징이다. 과민성 대장염에 따른 변비도 일종의 경련성 변비인데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의사의 정확한 진찰과 처방에 따라 약물치료 등을 시행해야 한다.
항문이 열리지 않아 생기는 변비는 직장에 변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직장형 변비라고 한다. 변이 항문 입구까지 도달하면 자연적으로 변의(便意)를 느끼면서 항문을 오므리고 있는 괄약근이 이완돼야 하는데, 직장현 변비는 변의를 느끼면 느낄수록 오히려 괄약근이 수축된다. 배변습관이 잘못 들였거나, 변이 마려운데 오래 참아 괄약근을 지배하는 신경조직에 이상이 생겨서 초래된다. 컴퓨터 장치의 도움을 받아 항문 괄약근을 오므렸다 풀었다 하는 훈련(바이오 피드백 치료)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수단이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궤양성 대장염, 대장암, 크론씨병 같은 특별한 장 질환이 없는데도 설사, 변비,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다.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이 병을 갖고 있는데,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원인 때문에 장의 운동을 조절하는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어진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 어린이의 경우 등교나 시험공부 같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복통이나 설사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충분히 설득해서 심리적 긴장을 해소시켜줘야 한다. 아침 식사 후 규칙적으로 배변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중요하며, 산보나 체조 등 적당한 운동도 증상의 완화에 도움이 된다. 음식은 야채나 과일 등 섬유질이 많은 것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섬유소는 장의 운동과 배변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탄산음료, 담배, 껌, 고지방 식사, 유제품, 빠른 식사 등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삼가해야 한다. 한편 복통이 심한 경우엔 장의 운동을 억제하는 항경련제를 사용하며, 설사가 심한 경우엔 지사제를 쓰기도 한다. 증상이 매우 심한 경우엔 신경안정제, 항불안제, 항우울제 등의 약물로 치료하기도 한다.
▲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임호준기자 著 박재갑 원장은
박재갑 원장은 정말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한번 마음 먹으면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밀어붙여 일을 성사해 내고야 만다. 다소 자기 중심적이고 거칠게 밀어붙여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 바람에 결실을 맺은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2000년 3월 건물도 없는 국립암센터 원장에 취임한 뒤엔 10년 넘게 질질 끌고 있던 암센터 건립을 밀어붙여 1년여만에 현재의 암 센터를 개원시켰다. 금연 캠페인을 벌이던 2002년엔 조선일보와 KBS 등 주요 언론사 사장실로 찾아가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신문과 방송에서 흡연 사진-장면을 내보내지 않겠다는 ‘항복문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1948년생인 박 원장은 1973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198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1985~1987년엔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연수했다. 미국 연수 시절엔 “하루 25시간 연구하는 독한 사람”이란 평을 들었을 정도다. 1995~2000년 서울대 암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2000년 부터 2004년 현재까지 국립암센터 원장을, 2002년 부터 현재까지 아시아대장항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04년 현재 ‘암 연구(Cancer Research)’ ‘국제 암 연구(Int’l Cancer Research)’ ‘국제 종양학회지(Int’l Journal of Oncology)’ 등 다수 국제학술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국내 대장항문 질환의 치료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991년 ‘대장항문학’ 교과서를 공저했으며, 1994년부터 매년 ‘서울 대장항문학 연수강좌’를 개최해 선진국의 최신 치료법을 국내 전문의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또 항문을 잘라내지 않고 직장암을 치료하는 새 직장암 수술법을 개발해서 보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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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또 해외 학술지에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 국내 의학자 중 한사람이다. 1990년쯤부터 유전성 대장암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1993년엔 복구 유전자(잘못된 유전자를 고치는 유전자)가 고장나면 위암, 췌장암, 대장암 등 여러가지 암이 생긴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1997년엔 서울대병원에 가족성 대장암 환자를 위한 별도의 클리닉을 개설하고 가족성 대장암에 관한 연구와 치료를 하고 있다.
2001년 암센터 건립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1997년과 2002년 미국대장외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엔 대한의사협회에 의해 우수 한국인 의과학자 2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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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달포 이상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축축 늘어진다. 올 여름은 장마가 짧고 폭염이 심하다는 게 기상청의 장기 예보. 이렇게 높은 기온은 인체의 항상성(恒常性)을 깨뜨리고 생리현상을 변화시켜 건강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계절에 어떻게 하면 건강을 잃지 않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을까? 여름철 건강과 쾌적한 생활을 위협하는 각종 증상과 대처법을 알아본다.
열(熱)피로 - 과격한 운동 피하라
기온이 높아져 체온이 상승하면 몸의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땀을 흘리게 된다. 땀이 나려면 피부의 혈관이 확장돼야 하므로 혈압이 평소보다 약간 낮아진다.
또 혈관이 확장되면 이 곳에 더 많은 피가 몰려야 하므로 자연히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지게 된다. 이 때문에 뇌로 공급되는 피의 양이 줄어들어 인지기능과 정신활동 능력이 떨어진다.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려 수분과 염분이 빠져 나가면 피로, 현기증, 구역질, 식욕감퇴, 가슴 울렁거림, 두통, 근육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흔히 “더위 먹었다”고 하는 이런 증상을 ‘열 피로’라고 한다. 여름철만 되면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고 정신이 몽롱하고 집중이 되지 않고 피로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원칙적인 얘기지만 열피로의 예방을 위해선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심한 육체활동을 삼가야 하며 무엇보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 탈수를 예방해야 한다. 특히 노인이나 야외활동을 하는 사람은 탈수가 돼도 갈증을 더디게 느끼거나 못느끼는 경우가 많아 열피로가 생기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수시로 물을 마실 필요가 있다.
규칙적인 수면, 규칙적인 식사, 충분한 휴식,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운동 등으로 체력을 기르고 인체 리듬을 잘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땀이 많이 나는 여름철엔 체력 소모가 많으므로 입맛이 없다고 식사를 걸러선 안 된다. 과격한 운동이나 과로, 과음, 스트레스 등으로 인체 리듬이 깨지면 불면증, 소화장애, 감기, 불쾌감 등 각종 증상이 초래된다. 여름철엔 인체 각 시스템이 일종의 비상사태에 돌입한 것과 같아서 과음·과로 등으로 인한 증상은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나타나므로 보통 때보다 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피부관리 - 출근할 때도 자외선 차단제 발라야
햇볕은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 D의 합성을 체내에서 촉진해 골격을 튼튼하게 하고 우울증의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지만 피부에는 백해무익하다. 선탠이나 인공선탠을 하는 경우엔 햇볕 속 자외선이 피부를 쭈글쭈글하고 거칠게 만드는 등 피부 노화를 촉진한다. 멜라닌 색소가 자극돼 검버섯이나 기미, 잡티 등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젊고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조건 햇볕을 피해야 한다. 자외선이 강한 낮 시간엔 가급적 야외 활동을 삼가고, 불가피한 경우엔 모자를 쓰고 긴 소매 옷을 입어 자외선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또 자외선 차단제를 수시로 발라 자외선에 의한 피부 노화를 예방해야 한다.
최근 피부 노화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는 자외선A는 흐린 날에도 지표에 도달하며 야외가 아닌 건물 속에 있어도 창문을 통과해 피부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야외에 나갈 때는 물론이고 학교에 등교하거나 회사에 출근할 때도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 매일 아침 스킨이나 로션을 바르듯 1년 365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고 피부과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한편 피서지 등에서 자외선 B에 노출돼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리는 경우에는 얼음 주머니나 찬 화장수 등으로 피부를 진정시킨 뒤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 줄 수 있는 팩 등을 하면 도움이 된다. 통증과 함께 물집이 심하게 잡힌 경우엔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무좀 - 4주 이상 꾸준히 약 바르길
곰팡이의 일종인 백선균이 원인으로 주로 발에 생기지만 사타구니, 가슴, 털, 손톱, 발톱에 생기는 경우도 많다. 피부 맨 바깥쪽 각질층에 서식하는 백선균은 따뜻하고 습한 곳에서 기하 급수적으로 증식하므로 여름철만 되면 쉽게 발병하거나 악화된다.
해마다 여름만 되면 무좀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지만, 무좀을 치료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4주 이상 꾸준히 약을 바르거나 복용하고 발 또는 다른 무좀 부위를 깨끗하고 건조하게 관리하면 완치시킬 수 있다. “무좀은 치료가 잘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렇게 간단한 원칙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요즘 시판되는 치료제는 대부분 효과가 좋아 2~3일만 바르면 증상이 좋아지거나 없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약 사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좀 입장에서 보면 집중공격이 퍼부을 때 잠깐 몸을 숨긴 것뿐인데 전멸된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증상이 생기면 약을 쓰고 증상이 사라지면 중단하므로 무좀과의 지긋지긋한 전투가 끝이 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좀이 있는 환자는 증상이 있든 없든 최소 4주에서 6주까지 지속적으로 약을 바르거나 복용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무좀이 매우 심하거나 손톱이나 발톱까지 무좀이 번진 경우엔 연고나 물약보다 먹는 약이 더 효과적이다. 먹는 무좀약은 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간이 나쁜 사람도 복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안전하다.
액취증 - 심한 경우엔 땀샘 제거해야
사람의 겨드랑이에는 우윳빛의 끈적끈적한 땀을 내는 아포크린 땀샘이 매우 발달돼 있다. 몸의 다른 부위에서 나는 땀과 달리 아포크린 땀샘의 땀은 분비된 지 1시간 이내에 체모 근처 기생균에 의해 지방산과 암모니아로 분해돼 지독한 냄새를 일으키는데 특히 겨드랑이에서 나는 심한 악취를 액취증이라 한다.
아포크린 땀샘은 일반적으로 10세 이후 내분비 기능이 왕성해지면서 덩달아 활성화되므로 사춘기 전후에 액취증이 시작되며, 내분비 기능이 시들해지는 노인이 되면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약 7%는 이 땀샘의 활성화로 액취증이 생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액취증이 있을 경우 자녀의 절반 정도에게서 액취증이 나타나며 부모 모두에게 액취증이 있을 경우 자녀의 80% 정도에 액취증이 생긴다. 그러나 전체 액취증의 20% 정도는 가족력과 무관하게 발생한다.
심하지 않은 액취증은 ▲겨드랑이를 자주 씻고 ▲통풍이 잘 되는 옷을 입거나 파우더를 발라 겨드랑이를 건조하게 유지하고 ▲땀을 억제하는 약 또는 살균 작용이 있는 비누나 연고를 사용하고 ▲겨드랑이 털을 제거하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액취증이 심한 경우엔 아포크린 땀샘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예전엔 겨드랑이를 길게 째서 아포크린 땀샘을 모두 제거했지만 최근엔 초음파, 레이저, 고바야시 절연침(전류가 흐르는 침) 등을 이용해 제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10~20% 재발한다.
한편 발 코린내는 발에 기생하는 무좀균 등 여러 가지 미생물에 의해 땀과 각질층이 분해되면서 이소발레릭산이 생성돼 나타난다. 누구에게나 발 냄새가 나지만 땀이 유난히 많이 나는 사람이나 무좀처럼 미생물이 증식하는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은 훨씬 심하다. 따라서 다한증이나 무좀 등 원인 질환이 있는 경우엔 원인부터 제거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발을 자주 깨끗이 씻고 건조하게 유지하는 것은 발 냄새를 없애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 도움말 >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원섭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
성경제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교수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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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성훈 신촌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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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한 식사 패턴, 과음, 과식, 스트레스 등으로 현대인의 위장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도대체 위장병 한번 안 앓아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아예 위장병을 달고 사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어느 병원이나 소화기 내과엔 환자가 미어 터지고, 약국은 소화제와 제산제로 장사를 다 한다. 간이나 심장 등 다른 장기들처럼 힘들어도 좀 무던히 참아주면 좋으련만, 위는 조금만 괴로워도 끙끙 앓으면서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니, ‘밥통’ 하나 건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맵고 짠 음식과 폭탄주를 먹고 마셔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특히 그렇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젯밤 마신 폭탄주 때문인지, 점심 때 먹은 매운 김치찌개 때문인지 속이 따끔따끔하다.
위에 생기는 병은 크게 위염, 위궤양, 위암으로 대별할 수 있다.
위 점막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위염에는 급성 위염과 만성 위염이 있다. 흔히 염증이라면 고름이 생기는 것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몸에 맞지 않은 물질에 대한 인체의 다양한 반응, 예를 들어 충혈, 부종, 발열(發熱), 통증 등을 모두 염증이라 부른다.
급성 위염은 대체로 아스피린 등 약물, 독주(毒酒), 맵고 짠 음식, 스트레스, 커피, 담배 등에 의해 상복부 통증 또는 소화장애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으로, 원인이 분명하다. 누구나 폭음한 다음 날이나 진통소염제 등을 복용한 뒤 속이 쓰리고 아픈 것을 경험했을 텐데 이것이 급성 위염이다. 위스키 같은 독주는 위 점막의 모세혈관을 손상시켜 출혈성 급성 위염을 일으키며, 심지어는 커피를 진하게 마셔도 위 점막 출혈이 유발될 수 있다. 또 관절염, 근육통, 심장병 예방 등을 위해 복용하는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SAID)도 급성 위염을 유발한다. 급성 위염은 위염을 일으킨 원인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음식 등으로 속을 달래주면 길어도 2~3일 내에 낫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맵고 짠 음식이나 독주, 스트레스, 담배 등으로 계속 ‘원인 제공’을 하면 만성 위염으로 진행하게 된다.
만성 위염은 글자 그래도 위 점막의 염증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다. 급성 위염을 일으키는 독주, 흡연, 맵고 짠 음식, 스트레스 등이 만성 위염의 원인이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세균이다. 전체 만성 위염의 70~80%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란 세균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속에는 위산 때문에 세균이 살 수 없다는 게 통념이었으나, 1983년 호주의 마샬과 워렌 박사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란 세균이 위 점막에 기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세균은 각종 독소를 내 뿜어 수년 또는 수십년동안에 걸쳐 지속적으로 위 점막 세포를 파괴한다. 당장은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 감염자 거의 모두에게서 만성 위염이 생기며, 그 중 일부에게서 궤양이, 또 그 중 일부에게서 위암이 생긴다. 1994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만성 위염은 물론이고 위-십이지장궤양과 위암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따라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없애 버리면 이론상 만성 위염과 위궤양, 위암 등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除菌) 치료에 관해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제균치료에 적극적인 의사들은 이 세균으로 인한 증상이 있든 없든 무조건 없애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말한다. 물론 제균(除菌) 치료를 받는다고 100% 위염 증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위 점막의 염증은 없어지거나 약해지므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암을 예방하려면 음식을 싱겁게 먹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며, 술-담배를 줄이는 것보다 제균치료를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그들은 강조한다.
그러나 보다 많은 수의 의사들은 신중한 치료를 권고한다. 소화성 궤양이 있거나 궤양을 앓았던 사람은 물론 제균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단순한 만성 위염이나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있다고 해서 제균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류는 원래부터 이 세균과 공존해 왔으며, 설혹 제균치료를 해도 절반 정도만 위염 증상이 사라지며,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재감염률이 10% 정도로 높으며, 감염자 모두를 치료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등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성인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율은 약 70~80% 정도로, 40~50% 수준인 미국인보다 훨씬 높다. 이 균은 대부분 유아기에 엄마가 음식을 씹어 아기 입에 넣어 주거나, 키스를 하면서 침이 묻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술잔을 돌리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찌개 등을 숟가락으로 떠 먹어도 감염이 될 순 있지만,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한편 만성 위염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만성 위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환자도 많다. 이들의 위 점막을 내시경으로 살펴보면 위 점막이 빨갛게 부풀어 오른 발적(發赤)이 불규칙하게 분포돼 있거나(표재성 위염), 위 점막의 주름이 1cm 이상으로 굵어져서 마치 융단모양으로 보이거나(비후성 비염), 위 점막이 얇아져서 위 벽의 혈관이 비쳐 보이거나(위축성 위염), 위 점막이 오톨도톨해 져 있으면서 회백색으로 변해있다.(화생성 위염) 만성위염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금연-절주-저염식-스트레스관리 등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하며, 약물치료는 경우에 따라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위축성 위염이나 화생성 위염이 있는 경우엔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는 등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성 위염과 비슷한 질환으로 기능성(또는 비궤양성) 소화불량증이 있다. 현대인에게 가장 흔한 위장 장애 중 하나로, 종합병원을 찾는 환자의 절반 이상, 많게는 2/3 정도가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다. 소화불량 증세로 병원에 가면 ‘신경성 위염’이란 얘길 많이 듣는데, 이것이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다. 궤양과 같은 뚜렷한 원인도 없는데 증상이 나타나며, 특히 사회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많기 때문에, 알아듣기 쉽게 ‘신경성’이라고 설명하지만 반드시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다. 또 이런 환자를 내시경 검사해 보면 만성 위염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만성 위염이라고 설명하는 의사들도 있는데, 만성 위염이 있다고 이런 증상이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만성 위염 없이도 이런 증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만성 위염과는 완전히 다른 병이다. 일반적으로 만성 위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스트레스, 흡연, 과음, 자극적 음식 등이 기능성 소화불량증을 유발 또는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있으면 환자들은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헛배가 부르거나,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면서 상복부가 불쾌하거나, 체한 듯이 소화가 되지 않는 등의 상복부 증상을 겪게 된다. 공복시 속쓰림, 가슴의 통증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 1년간 이와 같은 증상이 적어도 12주 이상 진행된 사람 중 혈액검사, 소변검사, 대변검사, 위내시경검사, 초음파검사에서 위, 간, 담낭, 췌장 등에 다른 병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진단한다.
일단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진단되면 적절한 약물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의사들은 제산제나 위장운동촉진제를, 경우에 따라 신경안정제나 항우울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항우울제 등을 처방하는 이유는 이 병 치료를 위해선 “아무 병도 아니다”는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하며, 술과 커피는 가능한 줄여야 한다. 맵고 짠 음식이나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도 삼가야 하며, 과식도 피해야 한다. 의사에게 물어서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사용도 삼가는 게 좋다.
이 병은 쉽게 낫지 않고, 낫는듯 하다가도 자주 재발하는 게 특징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혹시 암이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암으로 발전하는 일은 결코 없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의사가 “암이 아니다”고 하는데도 “의사가 거짓말했거나 오진한 게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이런 사람에겐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며, 그 때문에 보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 자꾸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사서 고생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기능성 소화불량증으로 진단되면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 두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하고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소화성 궤양이란 위나 십이지장의 점막층이 둥그렇게 또는 선 모양으로 근육층에 까지 패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가 헐었다”고 말하면 이를 궤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궤양은 단순히 위 점막이 헐은 게 아니라 제법 깊은 구멍이 나 있는 상태다. 의사들은 대부분 ‘미란성 위염’인 경우 위가 헐었다고 표현하는데, ‘미란’이란 위 점막이 깊게 패이지 않고 살짝 벗겨져서 출혈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란이 심해지면 위 점막이 마치 문어발의 빨판과 같은 모양으로 변하다 궤양으로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가 “위가 헐었다” 또는 “위에 구멍이 났다”고 대충대충 말할 때는 미란성 위염인지 소화성 궤양인지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무슨 병인지 분명이 알아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위-십이지장궤양을 소화성 궤양이라 부르는 이유는 위산 등이 위 점막까지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흔히 “술을 많이 마셨더니 위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는데, 위에 구멍을 내는 것은 술과 같은 외부의 공격 인자가 아니라 위산, 펩신, 담즙산, 췌장효소 등과 같은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것 들이다. 평상시엔 위 점액이나 위 점막에서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 등이 위산 등으로부터 위벽을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위산 등의 공격력이 점액 등의 방어력보다 훨씬 강해질 때, 또는 공격력은 그대로인데 방어력이 약해졌을 때 궤양이 초래된다.
이처럼 공격 대 방어의 균형을 깨뜨려 궤양을 일으키는 요인으로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담배나 커피 등 기호품, 스트레스, 유전적 소인 등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궤양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체 궤양 환자의 80% 정도가 이 세균 감염자다. 이 세균은 위산이 분비되는 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암모니아를 분비함으로써 주변을 알칼리성으로 중화(中和)시키는데, 이 때문에 위 점막의 방어력이 약해져 궤양이 생기게 된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나 흡연, 스트레스 등도 위나 십이지장 점막의 방어력을 떨어뜨려 궤양을 일으키게 된다. 소화성 궤양 중 특히 십이지장 궤양은 유전적 소인이 있으므로 가족 중 환자가 많은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술보다 담배가 궤양 발병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흡연은 소화성 궤양을 유발하며, 지속시키며, 재발케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치료를 해서 궤양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담배를 계속 피우면 대부분 1년 이내에 궤양이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궤양 환자는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음주는 궤양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면 위산 분비가 촉진되고 급성 위염이 생기지만, 그것이 궤양으로 연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알콜중독자라고 해서 정상인보다 궤양이 많지 않다는 게 그 증거다. 따라서 “술을 많이 마셔 위가 ‘빵꾸’ 났다”고 말하기 보단 “담배를 많이 펴서 위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소화성 궤양 환자는 공복(空腹)시 가슴 정중앙 부위나 우상복부가 마치 칼로 베거나 찌르는 것처럼 아프지만,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면 통증이 가라앉는 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새벽에 복통이 심해 잠에서 깨는 경우도 흔하다. 이같은 궤양이 심해지면 위의 근육층까지 완전히 구멍이 뚤리는 천공(穿孔), 위 혈관이 터져서 하혈(下血)이나 토혈(吐血)을 하는 위 출혈, 십이지장 등이 막히는 장폐색(腸閉塞)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또 위궤양이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되면 위암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소화성 궤양 진단을 받으면 당장 담배를 끊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발견됐다면 1주일 정도 항생제를 복용하는 제균치료를 받아야 하며, 의사 처방에 따라 궤양 치료제와 제산제 등도 복용해야 한다. 심장병 예방 등을 위해 아스피린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은 의사와 상의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치료기간 동안이라도 복용을 중단하는 게 좋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하며, 커피나 술도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다. 맵고 짠 음식은 삼가는 게 좋으나, 그렇다고 죽을 먹을 필요는 없다. 딱딱한 음식을 먹어도 위 속에 들어가면 죽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우유와 관련해선, 제산제 역할을 하므로 마시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고, 오히려 위산 분비를 자극하므로 마시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소화성 궤양 중 위궤양은 비교적 나이가 들어서, 십이지장 궤양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한다는 점이 다르다. 십이지장 궤양은 거의 100%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때문이지만, 위 궤양은 약 80% 정도만 이 세균 때문이다. 또 위 궤양은 암으로 변할 수 있지만 십이지장 궤양은 암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복시 통증 등은 십이지장 궤양일 경우 더 심하다.
▲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임호준기자 著다음은 위암에 대해 알아보자.
위암은 일반적으로 위 점막 세포가 끊임없이 자극-손상을 받아 위 점막이 위축되거나(만성 위축성 위염), 위 점막 세포가 소장이나 대장의 점막 세포와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거나(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 위에 생긴 양성 종양 세포가 점점 암 세포를 닮아가는(이형성-異形性) 단계를 거쳐 위암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만성위축성 위염 등을 위암의 ‘전암병변(前癌病變)’이라 한다. ‘병변’이란 병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생체의 변화를 뜻하는 말로, 따라서 전암병변이란 위암이 되기 직전의 단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십이지장 궤양은 전암 병변이 아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십이지장 궤양은 암으로 변하지 않고, 위 궤양도 암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만성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 등의 전암 병변이 있다고 모두 위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만성 위축성 위염 환자의 10% 정도가 위암에 걸리는데, 위축성 위염이 암이 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6~24년 정도다. 이것이 암으로 되는 속도와 가능성은 젊을 수록 크므로 젊은 사람에게서 위축성 위염이 발견되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60세 이상 노인에게서 발견된 위축성 위염은 위암이 될 가능성도 낮은데다, 설혹 위암이 된다고 해도 20년 이상 걸리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상피화생은 위 점막의 분비선이 없어지고, 위 점막에 작은 돌기같은 것이 무수히 생기며, 붉은 점막이 회백색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노인에게서 비교적 많이 관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조직검사를 해 보면 약 20~30%에게 장상피화생이 발견된다. 이들은 1~2년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해서 같은 부위의 조직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위 속의 작은 혹, 즉 위 용종은 양성 종양이다. 때문에 크기가 작은 경우엔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양성이지만 어느 순간 암세포로 변화할 지 모르므로, 가능한 제거해서 용종 세포가 암 세포를 닮아가고 있는지 조직검사를 해 봐야 한다. 특히 크기가 2cm 이상인 경우엔 반드시 제거해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만약 조직검사 결과 암 세포를 닮아가는 과정에 있다면, 즉 이형성으로 밝혀진다면 위암에 준해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정상적인 위가 위축성 위염 등의 단계를 거쳐 위암으로 발전하는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째는 개인의 생활습관이다. 특히 식생활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짜고 매운 음식, 불에 탄 음식,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면 위암에 걸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잦은 회식이나 폭음, 흡연, 심한 스트레스도 위암 발병과 관계가 있다. 둘째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으로, 감염자의 1~2%는 만성 위염을 거쳐 위암으로 발전한다. 셋째는 가족력이다. 전체 위암 환자의 10% 정도는 가족력(家族歷)이 있다. 가족력이 있다는 말은 유난히 위암에 잘 걸리는 집안이 있다는 것으로, 직계 가족 중 2명 이상의 환자가 있을때 가족력이 있다고 말한다. 가족은 식성이 거의 비슷하고, 심지어 헬리코박터균도 공유하는 등 생활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유전성으로, 전체 환자의 1% 정도는 유전성 위암 환자다. 이들은 부모로 부터 위암 유전자를 물려받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습관 등과 무관하게 위암이 발병한다.
따라서 위암 예방을 위해선 먼저 입맛을 바꾸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노력하고, 필요한 경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이같은 노력은 위암 가능성을 다소 줄일 뿐 예방하지는 못한다. 위암은 수 십년 동안 수 많은 발암인자들이 어우러져 발병하므로, 위암에 걸리고 말고는 인간의 노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암이 그렇지만 위암은 특히 ‘2차 예방’이 훨씬 중요하다. 어짜피 암 발병 자체를 예방할 순 없다면 내시경 검사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악화된 상태로 발견되는 것만이라도 예방하게 암을 조기에 발견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2차 예방이다.
위암은 1기에 발견되면 95% 이상, 3기 초에만 발견되도 60% 정도 완치되지만 암세포가 온 몸에 전이된 상태로 발견되면 수술도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정기검진만 철저히 받으면 대부분 조기 위암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망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기검진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TV 드라마 등에선 이런 사람만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위암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확산을 부채질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속쓰림, 소화불량, 구토, 통증 등을 위암의 증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애매모호한 증상을 판단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 노성훈 교수가 위암 환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7%는 증상이 전혀 없었고, 22%는 속 더부룩함 등 애매모호한 증상이 있었고, 51%는 명치 부위의 통증이 있었고, 15% 정도는 체중이 감소했다. 그러나 무증상이나 애매모호한 증상은 물론이고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라도 위-십이지장 궤양으로 인한 통증과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위암으로 의심될 만한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경우엔 십중팔구 늦게 된다. 따라서 30대에 접어들면 정기검진을 시작하는 게 좋다. 위암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므로 과거엔 40대 이후 정기검진을 권고했지만, 요즘은 30대 환자도 10% 정도나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기 위암 발견율은 30~40% 정도. “위암에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직도 위암 환자의 60~70%가 전이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196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정기검진 사업을 시행해 현재 조기 위암 발견율이 60~70%를 웃돌고 있다. 수년전부터 국가가 저소득층에 대해 위암 등 5대 암 무료 검진 사업을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다.
일단 암 진단을 받은 경우엔 당황하지 말고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암 세포가 온 몸에 전이된 경우라도 적절히 치료받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지레 포기하지 말고 의사의 치료방침에 따라야 한다. 수술, 항암제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통해 전이된 위암도 완치할 수 있으며, 설혹 완치가 불가능하더라도 환자의 생존기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 그런데도 지레 포기하고 민간요법 등에 의지하다 ‘희망대로’ 사망하는 환자들이 무수히 많다. 환자들은 제발 고집을 피우지 말고 의사를 믿어야 한다.
노성훈 교수는
노성훈 교수는 외과의사가 ‘체질’이다. 약간 벗겨진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등 외모에서부터 외과가 아닌 다른 의사를 상상하기 힘들다. ‘외과의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술. 지금은 건강을 위해 자제한다지만 과거 그의 주량은 그야말로 ‘두주불사(斗酒不辭)’였다. 기자도 수년전 그의 ‘젊은 제자’와 셋이서 소주병을 열 개 이상 넘어뜨린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가 ‘체질’인 진짜 이유는 수술실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외래 진료, 회진 등을 하면서도 한번에 두세시간씩 걸리는 위암 수술을 매주 14~16건씩 한다. 하루 3~4건의 수술을 소화해 내는 그에게 “체력에 부치지 않냐”고 묻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수술방에만 들어서면 오히려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600건 정도 위암을 수술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수술법은 좀 독특하다. 그는 수술 때 칼 대신 전기소작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기소작기는 출혈 부위를 지져 지혈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보통이지만 노 교수는 자르고 지지는 수술의 전 과정을 전기소작기 만으로 해결한다. 그 바람에 4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시간이 2시간 정도로 단축됐고, 출혈이 적기 때문에 수혈을 받는 환자도 5% 미만에 불과하다. 회복이 빨라 수술 뒤 1주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
한때 노 교수의 스승이었던 일본 국립 암센터 요네무라 부원장은 전기소작기를 사용해 노 교수가 하루에 4명을 연속해 수술하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는 손 놀림”이라고 감탄하며 제자들을 보내 수술법을 배우게 했고, 지금도 많은 일본인 의사가 그에게 배움을 청하고 있다. 위암 수술 선진국인 일본에 기술을 ‘역수출’하는 셈이다.
노 교수는 또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수술 뒤 환자에게 달아야 하는 콧줄과 배액관도 없앴다. 수술 후 분비액과 가스 등을 빼 내기 위해 코에 줄을 넣어 수술 부위까지 연결시키는 콧줄이나 수술 부위에서 생긴 고름을 빼 내기 위해 환자의 배에 심는 배액관 등은 환자에겐 고통을 주고 입원 기간을 연장시키는 주범이었다. 노 교수는 수술 뒤 환자들이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를 묻고, 궁리한 끝에 이같이 ‘독특한’ 수술법을 개발해 냈다.
수 많은 환자를 수술한 그의 임상경험은 논문을 통해 학계의 정설로 굳혀져 간다. 2001년 뉴욕에서 열린 4회 국제위암학회에서 13편의 논문을, 2003년 로마에서 열린 제5회 학회에선 무려 18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괴력’을 보였다. 로마 학회에선 ‘위암 적정 수술법 마련을 위한 8개국 대표 심포지움’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54년생인 노 교수는 경동고등학교와 연세의대를 졸업했으며, 1986년부터 연세의대 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일본 가나자와대학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한암학회 이사, 대한위암학회 학술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연대의대 올해의 교수상(2000년), 세브란스병원 최우수 교수상(2000년), 유한학술상(2002년) 등을 수상했다. 학계 원로인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이 그의 장인이며, 연세의대 신경과 이병인,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가 그의 처남이다.
위는 어떻게 생겼나
먼저 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사람이 먹은 음식은 입-인두-식도-위-소장-대장-항문으로 이어지는 약 7m의 관을 통과하면서 분해되고 흡수되고 배출되는데 이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위다. 위는 먹은 음식을 맷돌처럼 잘게 분쇄하고, 위산으로 녹여 죽처럼 묽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위산은 매끼 식사때마다 1리터 정도씩, 하루 최대 5리터까지 분비된다. 위산의 산도는 1.5~2 pH 정도로 마치 무쇠라도 녹일 만큼 강력해서 음식에 섞여 들어온 각종 세균과 이물질들로부터 인체를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구토한 찌꺼기가 더럽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무균 상태로 깨끗한 것이다.
위는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층 등 네개의 층(層)으로 이뤄져 있는 매우 두꺼운 장기다. 제일 안쪽 점막층에선 위산, 점액, 펩신(소화효소) 등을 분비한다. 위산이 무쇠도 녹일 만큼 강력한데도 위가 녹지 않는 이유는 점액이 위벽을 미끈미끈하게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위염이나 위궤양은 물론 대부분의 위암도 점막층에서 생기므로 내시경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 점막에 병이 있는지를 잘 관찰해야 한다. 위에는 5개 이상의 큰 동맥이 연결돼 있어 풍부한 혈액을 공급받는데, 이 때문에 염증이나 궤양이 생기더라도 신속하게 치료가 되며, 위 수술 뒤에도 신속하게 아문다. 위의 입구와 출구에는 각각 ‘분문부’와 ‘유문부’라는 일종의 밸브가 있어서 위 속의 내용물이 윗쪽 식도나 아랫쪽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만약 분문부가 고장이 나 위산이 식도로 거슬러 올라가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데, 이를 ‘위 식도 역류(逆流)’라 한다.
한편 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지배를 아주 강하게 받는다. 온 몸을 긴장시키는 교감신경이 강하게 작용하면 위가 잔뜩 움추려 들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소화가 힘들어 진다. 잔뜩 긴장했을 때 음식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때로는 정신적 스트레스만으로 위 출혈을 일으킬 정도로 위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반대로 맛 있는 음식을 보거나, 음식 냄새를 맡으면 부교감신경 중 미주신경이 강하게 작용해서 위산이 다량 분비되면서 위의 수축운동이 촉진되고, 십이지장과 연결된 유문부가 열려 소화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미주신경이 너무 강하게 발달하면 위산이 지나치게 분비돼 위벽이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이를 ‘소화성 궤양’이라 한다. 소화액이 음식이 아닌 위 조직까지 소화를 시켜 상처가 생겼다는 의미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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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성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조선일보 의료건강팀 임호준 기자가 최근 낸 단행본 ‘한국최고명의 30명의 진단과 처방,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의 내용을 앞으로 30일간 chosun.com을 통해 연재합니다. 총 30편으로 된 이 책은 신체 부위 30곳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원인과 예방, 치료법을 그 분야 최고 명의 30명에게 취재해서 일반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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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질환만큼 환자를 헷갈리게 하는 병도 아마 없을 것 같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80% 이상이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요통 때문에 고생을 하며, 7~10%가 만성 척추 질환을 갖고 살아가며, 1% 정도는 그 때문에 신체 장애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의사마다 해법이 너무 달라 도무지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물리-약물치료만 받아도 된다는 의사도 있다. 한의사들은 추나요법이나 침 치료가 최고라고 주장한다. 이미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평가도 제각각이어서 어떤 이는 이 의사가, 어떤 이는 저 의사가 좋다고 또는 나쁘다고 말한다. 환자들은 A병원에서 B병원으로, C한의원에서 다시 A병원으로 갈팡질팡, 우왕좌왕 하고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은 것 같기 때문이다.
튼튼한 허리를 위해 먼저 척추의 구조부터 공부해 보자. 인체의 기둥이라는 척추는 25개의 척추뼈로 구성돼 있다. 목을 지탱하는 경추(목뼈) 7개, 갈비뼈와 연결된 흉추(등뼈) 12개, 허리를 지탱하는 요추(허리뼈) 5개 등 24개에다 하나로 합쳐져 있는 천추(골반뼈)와 미추(꼬리뼈) 1개를 합쳐 모두 25개다. 천추와 미추를 자세히 보면 천추는 5개, 미추는 4개의 뼈로 구성돼 있어 척추뼈를 모두 33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 이춘성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천추와 미추를 제외한 24개의 뼈는 아래에 있는 것일 수록 크기가 크고 견고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또 이 24개의 뼈 사이엔 관절이 발달돼 있으며, 뼈끼리 부딪치지 못하게 쿠션 역할을 하는 디스크(추간판)가 끼어져 있다. 척추 뒷편으로는 어린애 손가락 굵기의 신경이 지나간다. 흔히 ‘디스크’라 부르는 추간판 탈출증이 있으면 다리가 심하게 땅기는 이유는 디스크가 터져 나와 다리로 가는 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한편 서로 떨어져 있는 24개의 척추뼈와 척추뼈는 다섯 가닥의 인대(힘줄)가 견고하게 서로 붙들어 매고 있으며, 척추의 앞뒤로 튼튼한 근육이 다시 한번 척추를 지지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요통은 척추뼈, 디스크, 근육, 인대, 신경 중 그 어떤 것에 문제가 생겨도 생길 수 있다. 요통하면 추간판 탈출증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사실은 인대나 근육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요통이 훨씬 많다. 흔히 허리를 삐었다고 말하는 급성 요통은 대부분 인대나 근육의 손상이나 염증이 원인이다. 만성 요통에 시달리는 사람 중에도 잘못된 자세나 운동부족 등으로 허리 근육이 약해진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요통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흔히 겪는 통증이며, 물리 치료나 운동 등을 통해 원 상태로 회복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단순 요통’이라 부른다.
문제는 병적인 요통이다. 병적인 요통은 주로 척추뼈나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경우인데, 경추와 요추가 특히 말썽을 많이 일으킨다. 다섯개의 요추 중에선 가장 아래에 있는 제5번 요추가 가장 많이 탈이 난다. 추간판 탈출증, 디스크 변성증, 척추관 협착증, 척추 분리증, 척추 전방전위증 등이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는 병들이다. 흉추는 갈비뼈와 붙어 있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천추와 미추는 골반 속에서 보호를 받기 때문에 탈이 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추간판 탈출증은 척추 뼈와 척추 뼈 사이에서 쿠션 역할을 하는 말랑말랑한 젤리같은 디스크가 외부적 충격 등의 원인에 따라 터져서 삐어져 나오는 것이다. 디스크가 터지면 그 속에서 흘러나온 수핵이 척추를 지나는 신경을 압박하므로 그 신경의 지배를 받는 다리가 심하게 땅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디스크는 허리보다 다리가 더 많이 아픈 병이다.
디스크 변성증은 디스크 내부의 수분 함량이 떨어지면서 말랑말랑해야 할 디스크가 탄성을 잃고 딱딱해 지는 것인데, 이런 디스크는 충격에 매우 약하므로 추간판 탈출증의 원인이 된다. 변성된 디스크는 척추 사진을 찍어보면 까맣게 보이므로 ‘블랙 디스크(black disk)’라 부르기도 한다. 노화현상의 일환으로 40대에 40%, 50대에 50% 정도 나타난다. 그러나 디스크의 탄성이 충분한 10대에게도 추간판 탈출증이 드물지 않게 생긴다.
척추관 협착증은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져서 신경이 압박 받는 병으로, 중년 이후에 비교적 흔하게 생긴다. 나이가 들면 노화 현상의 일환으로 뼈나 관절이 커져 척추관이 좁아지지만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좁은 사람도 있다. 척추관 협착증의 증상은 추간판 탈출증과 거의 비슷하나, 앉아 있을 땐 괜찮다가 일어서거나 걸을 때 증상이 심해지는 게 차이점이다.
척추분리증이란 척추뼈에 금이 가서 사이가 벌어지는 병이다. 척추뼈 뒷 부분 아치모양으로 생긴 부위에 금이 가서 뼈가 앞쪽과 뒤쪽으로 분리되고, 그 때문에 요통이 발생한다. 팔이나 다리 뼈는 부러져도 쉽게 붙지만 분리증의 경우 금이 간 부위가 군더더기 살로 채워지므로 결코 붙지 않는다. 15명에 한 명꼴로 발생하는 매우 흔한 병이지만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선천적으로 척추뼈가 약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충격을 받아 뼈가 부러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리증은 척추관협착증이나 척추 전방전위증으로 발전하기 쉽다.
척추 전방전위증은 척추뼈의 위 아래가 분리돼 서로 어긋난 상태로 중년 이후에 비교적 많이 발생한다. 분리증이 심해져서 생길 수도 있고, 노화로 인한 퇴행성(退行性) 변화 때문에 전방전위증이 생길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척추가 어긋나서 무너져 내릴 것 같지만 금이 간 척추뼈 주변을 인대가 단단히 붙잡아 주고 관절과 근육이 지지하므로 무너지진 않는다. 그러나 신경의 통로가 꺽여 척추관 협착증이 생기기 쉽고 추간판 탈출증처럼 다리가 땅기는 증상이 나타난다. 증상이 경미하면 허리 운동 등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좀더 심해지면 척추를 나사못 등으로 고정시키는 수술 등을 받아야 한다.
그 밖에 신경이나 척추뼈에 생긴 각종 양성-악성 종양(혹), 류마티스 관절염, 퇴행성 관절염, 만성 골수염, 강직성 척추염, 각종 세균 감염, 척추 결핵 등도 병적인 요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척추 질환으로 인한 병적인 요통의 치료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허리에 칼을 대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수술에 앞서 운동, 물리치료, 약물요법 등 ‘보존요법’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 개개인에 대한 의사의 치료 방침은 제각각이지만, ‘보존 요법 우선의 원칙’을 부정하는 의사는 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수술을 제일 많이 하는 의사를 찾아 물어봐도 “보존요법을 먼저 해야지요”라고 말할 게 틀림없다.
▲ 이춘성(왼쪽 두번째)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세미나에서 자신의 치료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뚜렷한 원칙이 있는데도 의사들이 저마다 ‘딴소리’를 하고, 환자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언제까지 보존요법을 시행해야 하는지 그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척추 질환의 증상을 10단계로 구분할 때 어떤 의사는 7단계 증상이 나타나야 수술을 고려하지만, 어떤 의사는 3단계 증상만 나타나도 수술해야 한다고 믿는다. 병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7단계에 이르러서야 수술하는 의사는 척추 질환은 대부분 보존요법만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또 수술에는 항상 부작용 위험이 있으므로 가급적 수술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3단계에 수술하는 의사들은 어차피 완치되지 않아 언젠가는 수술받을 가능성이 크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수술받고 고통없이 사는게 좋지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반문을 한다.
공교롭게도 필자는 이같이 정반대 시각을 대표하는 두 명의 척추 의사와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 자신이 척추 분리증과 전방전위증을 동시에 갖고 있는 척추 환자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다리가 몹시 땅겨 척추 사진을 찍어보니 5번 요추 뒷 날개 부분이 부러져 있고, 5번 요추 전체가 앞으로 미끄러져 있었다. 의사는 “아마 어렸을 때 척추에 금이 가고 그 때문에 점점 척추뼈가 미끄러져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엔 두 의사 모두 ‘원칙대로’ 보존요법을 권했다. 그러나 1~2년쯤 전부터 그 중 한 의사는 척추뼈가 조금씩 계속 미끄러져 가고 있으니 시간을 내서 수술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했다. 또 다른 의사는 척추 사진만 보면 수술을 고려할 필요도 있지만 증상이 크지 않기 때문에 지금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척추사진을 보면 5번 요추와 천추 사이에 분리증과 전방전위증, 디스크 변성증 등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증상이 거의 없으며, 달리기나 걷는데 지장이 없다. 심지어 허리에 무리가 간다는 골프 스윙을 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불편한 점이라면 전철에서 앉지 못하고 서서 가면 가끔씩 다리가 땅긴다는 정도다. 물론 증상이 언제 악화돼서 수술대에 오를지 알 수가 없지만 현재로선 앞으로 10~20년은 너끈히 이 허리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필자의 사례가 척추 질환 때문에 혼동스러워 하는 많은 환자들에게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게도 필자는 대한민국의 모든 척추 명의를 가장 손쉽게 만나서, 몇시간이고 충분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입장이다. 내 몸에 생긴 문제라 척추 취재를 한답시고 정말 숱하게 많은 명의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현재와 같은 머뭇거림이다. 수술을 받는 게 좋은지 아닌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지만 10년 가까이 계속 머뭇거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비수술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대신 허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1주일에 3~4번 5~6Km씩 속보하며, 척추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 결과 “(척추사진에서) 이 정도면 증상이 심해야 하는데 안 아프다니 신기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의사들이 보존요법을 그렇게 강조하는지는 그래서 이해가 간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척추질환 중 보존요법의 효과가 가장 좋고, 따라서 반드시 철저한 보존요법을 해야 하는 병이 바로 추간판 탈출증이다. 추간판 탈출증의 경우, 환자의 75~80%는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도 2~3주, 길어도 한두달 이내에 증상이 호전된다. 따라서 환자는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침대에 누워 2~4일 정도 꼼짝도 않는 ‘침상안정요법’을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하며, 어느 정도 통증이 사라지면 물리치료나 통증클리닉 치료 등을 받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통증이 사라져서 아무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되며, 때로는 튀어나온 디스크가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15~20%의 환자는 보존요법이 효과가 없지만, 그들은 그때 가서 수술 등 다른 치료법을 고려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간판 탈출증 환자들이 ‘보존요법 처방’을 반신반의한다. 당장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누워 있으라”는 의사 말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게 중엔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거나, 한의원에서 침-추나요법 치료를 받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추간판 탈출증이 나으면 그들은 자신이 받은 수술이나 추나요법 때문에 병이 나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수술이나 추나요법 때문에 나았는지, 그것과 상관없이 나을 만큼 기간이 경과돼 저절로 나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교과서대로 시간이 지나 저절로 나았다면 그들은 쓸데없이 수술-추나요법을 받은 셈이 된다.
물론 추간판 탈출증 때문에 대소변을 보는 힘이 약해지거나, 다리(특히 발)가 마비돼 전혀 움직일 수 없다면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학병원에서도 1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다. 또 추간판 탈출증이 척추관 협착증까지 함께 동반돼 있거나, 척추 사진에서 디스크가 척추신경이 지나는 통로의 50% 이상을 침범했거나, 보존요법을 2개월 이상 시행했는데도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경우엔 수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척추관 협착증이나 전방전위증의 경우, 추간판 탈출증처럼 저절로 낫는 법이 없으므로 증상이 심하다면 수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약물-물리치료와 운동요법을 우선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처음 발병한 순간엔 통증이 심하지만 이같은 보존요법을 시행하다 보면 통증이 사라질 수 있고, 통증이 사라지면 구태여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때는 병의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운동을 해서 척추를 지지하는 근육을 단련시켜야 하며, 체중이 많이 나가면 척추에 충격이 커지므로 몸무게도 줄여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큰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다. 필자는 전방전위증이 있지만 달리기도 축구도 골프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척추관 협착증의 경우, 앉아 있을 땐 괜찮지만 조금만 걷거나 서 있으면 다리의 통증이나 저림증이 심해 다시 앉아서 쉬어야 하는 경우, 다리가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경우, 척추사진에서 척추 관절이 심하게 불안정한 경우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전방전위증의 경우 10분 이상 서 있거나 걷기 힘들 때, 하지 마비나 대소변 장애가 동반될 때, 자세를 바꿀 때마다 요통이 심할 때, 방사선 검사 결과 척추가 미끄러져 나온 부분이 전체의 25%를 넘을 때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그러나 ‘보존요법 우선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척추 수술이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999년 1만5962건이던 추간판 탈출증 수술은 2년 만인 2001년 2만7483건으로 72% 증가했다. 또 2001년 현재, 미국에선 인구 10만명당 33명이, 한국에선 65명이 척추를 나사못 등으로 고정하는 척추 고정술을 받고 있다. 세계서 척추 수술이 가장 많은 미국보다도 월등하게 많은 것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갑자기 환자가 폭증하는 법은 없으므로, 척추 수술이 증가한 이유는 척추 의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더 많은 척추 환자를 ‘발굴’해 낸 결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통 때문에 병원을 찾으면 많은 의사들이 CT나 MRI 등 척추 사진에 나타난 추간판 탈출증이나 전방 전위증 등을 보여주며 수술을 설득하고 있다. 내버려 두면 병이 악화돼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장 수술받지 않아도 될 수 없이 많은 환자들까지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하지 않은 상태서, 증상이 심하더라도 충분한 기간 보존요법을 시행하지 않은 상태서 수술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것은 ‘수술파’ 의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한편 수술을 결심했다고 해서 척추 환자의 고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 많은 척추 수술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간판 탈출증의 경우 주사(카이모파파인)로 디스크 내 수핵을 녹여 버리는 시술, 특수 기계(뉴클레오톰)로 수핵을 잘게 잘라 흡입해 내는 시술, 내시경과 레이저를 이용해 작게 째서 수핵을 녹여 버리는 수술, 등을 칼로 째서 튀어나온 디스크를 제거하는 전통적 수술, 칼로 째서 디스크를 제거하고 나사못 등으로 척추뼈를 고정시키는 수술 등 여러가지다. 척추 전방전위증이나 척추관협착증도 내시경과 레이저를 이용하는 최소상처척추수술(MISS:Minimally Invasive Spine Surgery)과 칼을 사용하는 전통적 수술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최소상처척추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 MISS는 국소마취 상태에서 수술이 가능하며, 수술 중 출혈이 적어 수혈도 필요 없으며, 회복이 빨라 입원기간이 짧으며, 수술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낮으며, 피부를 작게 절개하므로 미용효과가 뛰어나다는 점 등이 큰 장점이다. 이에 반해 칼을 사용하는 전통적 수술법은 전신마취를 해야 하며, 수혈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회복이 더뎌 입원기간도 길어지며, 수술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높으며, 수술 흉터도 길게 남아 미용적으로 문제가 된다. 논란의 여지 조차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MISS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의사들은 MISS로 치료가 가능할 정도라면 수술하지 않고 내버려 둬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경증이며, 정말 수술해야 할 정도로 중증이라면 MISS로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가급적 수술않고 치료를 하되,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전통적인 수술법으로 확실하게 끝내는 게 좋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MISS 예찬론자들은 내시경이나 레이저를 사용하면 등을 길게 째는 기존 수술보다 더 정확하고 깨끗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꼭 그렇진 않지만 앞서 언급한 수술파는 대부분 MISS 예찬론자들이며, 비수술파는 MISS 비판론자들이다.
따라서 수술 방법을 결정할 때는 자신의 병과 그 병에 대한 수술법들의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고, 또 여러 의사의 얘기를 종합해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 최소상처수술법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그것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의사도 있는데, 아무래도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현실에선 내시경-레이저 수술같은 최소상처수술이 더 적합한 환자도 있고, 등을 길게 째는 전통적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수술 직전, 의사로 부터 수술법의 장단점에 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자신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수술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 수술을 받으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수술 후 예상되는 합병증 들은 어떤 것들인지, 합병증이 생겼을 경우 2차적으로 어떤 처치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해선 안된다.
이춘성 교수는
이춘성 교수는 한마디로 원칙주의자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굽히지 않으며, 상대방의 비원칙이나 편법도 용납하지 않는다. 원칙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핏대를 세워 공격한다. 마치 벼슬을 꼿꼿이 세운 싸움 닭을 보는 것 같다.
웬만한 척추질환은 운동이나 약물·물리치료 등으로 치료 가능하며, 의술 외적 변수에 따라 수술이 남발돼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그가 싸움 닭을 자처하는 이유도 특히 척추 분야에서 원칙에 벗어난 치료가 너무 많이 시행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척추 수술의 기준을 가장 엄격하게 적용하는, 가장 보수적인 의사들의 대표주자다.
1956년생인 이춘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병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척추외과의 대가로 꼽히는 석세일 교수의 수제자다. 미국 UC 샌디에고에서 척추기형을 전공한 뒤 줄곧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1996년엔 ‘꼬부랑 할머니’의 원인인 ‘요부변성후만증’을 세계 학계에 최초로 보고했으며, 이 병에 대한 수술법도 체계화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청소년의 허리가 좌우로 휘는 ‘특발성 척추측만증’도 그의 주된 연구 분야 중 하나다.
그는 자기 절제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다음날 큰 수술이 있으면 컨디션을 해칠만한 약속이나 모임을 갖지 않는다. 척추 수술은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안전망 없는 외줄을 타는 것처럼 지금도 수술을 앞두면 긴장된다고 했다. 20년 넘게 수 많은 척추 수술을 하면서 단 한건의 의료사고도 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매주 일요일, 예배를 본 뒤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급한 성격대로 다방면의 서적을 ‘속독(速讀)’하는데, 특히 역사에 관해선 ‘무불통지(無不通知)’라 할 만한다. 어쩌다 그와 마주앉아 역사 얘기가 나오게 되면 두세시간은 눌러 앉아 얘기를 들어야 한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이춘기 교수가 그 보다 한살 많은 친형이다. 2000년 이춘기 교수와 함께 ‘상식을 뛰어넘는 병, 허리 디스크 이야기’(한국학술정보)를 펴냈다.
척추측만증
척추가 좌우로 뒤틀리면서 휘는 척추측만증은 최근 학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다. 학교 척추 검진이 확산되면서 전체 학생의 4~5%, 심지어 10%까지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척추측만증이 심해지면 무엇보다 체형이 뒤틀려 보기가 흉해지며, 요통이 생기며, 심한 경우 심폐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학부모들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척추측만증에 대한 실태 조사와 측만증 자체의 위험은 상당히 과장됐다. 척추측만증은 청소년의 약 2% 정도에게 발병하며, 나머지는 잘못된 자세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믿을 수 있는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측만증이 아니라 일시적 자세의 변형이라면 꼿꼿하게 허리를 펴게 하는 등 자세의 교정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설혹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다 하더라도 섣불리 척추를 바르게 하는 보조기 치료를 해선 안된다.
▲ 건강을 다스리는 지혜./ 임호준기자 著
척추의 휘어진 각도가 10~25도인 초기 척추측만증인 경우엔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고 더 나빠지지 않는지 관찰만 하는 게 원칙이다. 측만증의 진행을 억제하는 척추 보조기는 온 몸을 옥죔으로써 신체활동을 제한할 뿐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자신의 신체에 대한 나쁜 인식까지 심어주므로, 휘어진 각도가 25도 이상인 경우만 조심스레 시행해야 한다.
최근 의사, 보조기 상인, 학교가 함께 척추 검진을 한 뒤 학생들에게 보조기 치료를 권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데 환자와 보호자를 쓸데없이 불안케 하고, 불필요한 치료를 조장하는 등 부작용이 훨씬 크다.
척추측만증 검사의 경우, 척추의 휜 각도가 25도 이하인 경우 아무런 치료도 할 필요가 없으며, 또 25도 이상 척추가 휘어서 보조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엔 육안으로도 쉽게 관찰되므로 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검사다.
한편 척추측만증은 40도 정도에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40도 정도 휘어져도 심폐기능이나 운동능력 등의 장애는 없는 경우가 훨씬 많으므로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40도 이상 휘어진 경우엔 수술을 검토해야 한다.
( 임호준 기자 hjl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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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는 시간에 따라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타입을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정보! 자신의 생활주기에 따라 도움이 되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아침형 인간에게 적당한 아침요리, 저녁형 인간에게 알맞은 밤참을 소개한다.
아침형 인간을 위한 건강 음식
사상의학에서 아침형 인간은 태양인과 소양인 등이 해당한다. 물론 정신력이나 업무의 특성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 대체로 환경에 적응이 빠르며 이른 아침부터 활동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대부분 소화력이 좋은데, 짜고 매운 음식보다는 싱겁게 먹는것이 좋다. 푸짐하게 먹기보다는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식품을 조금씩 다양하게 먹도록 한다. 육류는 돼지고기가 좋으며 곡류는 보리, 녹두, 팥, 메밀, 참깨가 좋다. 채소는 오이, 상추, 배추, 양배추, 부추, 우엉 등이 적당하고, 해산물은 새우, 굴, 소라, 낙지, 오징어 등을 선택한다. 과일은 딸기, 파인애플, 참외, 키위, 사과, 포도 등이 좋다.
▲ 검은깨우유
재료
우유 2컵, 볶은콩가루 2큰술, 검은깨 2큰술, 검은콩 1/3컵, 설탕 약간, 키위 1개, 포도 100g, 나무꼬치 4개
만들기
1 검은깨는 팬에 넣어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타지 않게 볶은 후 절구에 넣어 곱게 빻는다.
2 검은콩은 같은 방법으로 볶고, 껍질이 일면 키친 타월로 비벼 벗긴다. 분쇄기에 넣고 곱게 간다.
3 믹서에 ①, ②, 우유, 설탕 약간을 넣고 다시 한번 돌려 담은 후 포도, 키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꼬치에 꿰어 올린다.
▲ 에멘탈치즈 토스트
재료
사각 식빵 8장, 피자치즈 50g, 에멘탈치즈 80g
만들기
1 치즈 두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식빵에 ①을 올리고 샌드위치 토스터에 넣고 토스트한다.(토스터가 없을 때는 오븐 또는 가스레인지 그릴에 넣어 굽는다.)
▲ 새우살 야채죽
재료
새우살 100g, 불린 쌀 1/2컵, 물 3컵 반, 양파 50g, 당근 50g, 시금치잎 30g, 청주 1작은술, 소금 적당량, 참기름 1큰술
만들기
1 새우살은 등쪽의 내장을 이쑤시개로 빼내고 잘게 다져 청주, 소금으로 밑간한다.
2 양파, 당근은 작게 다지고 시금치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찬물에 헹궈 다진다.
3 냄비에 참기름을 넣고 ①, 양파, 당근을 넣어 볶다가 쌀을 넣고 윤기나게 볶는다.
4 물을 붓고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 쌀알이 퍼질 즈음 시금치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 껍질콩 감자크림수프
재료
양파 1/2개, 감자(소) 3개, 껍질콩 50g, 마늘 2쪽, 밀가루 1큰술, 화이트와인 1/4컵, 쇠고기육수 4컵, 월계수잎 2장, 타임홀(타임 말린것) 1/2작은술, 소금·후추 적당량씩, 모낭빵 4개, 올리브유 2큰술, 버터 1큰술
만들기
1 감자는 껍질 벗겨 가늘게 채썰어 씻고 전분기를 빼낸 후 찬물에 30분 정도 담근다.
2 양파는 가늘게 채썰고, 껍질콩은 끝을 잘라내고 4cm 길이로 자른다. ①의 감자는 체에 밭쳐 물기를 빼둔다.
3 팬에 오일, 버터를 두르고 양파, 감자를 넣어 노릇하게 볶는다.
4 밀가루를 넣고 살짝 볶다가 화이트와인을 넣고 끓여 알코올을 증발시킨다.
5 쇠고기육수를 넣고 월계수 잎, 타임홀을 넣어 끓인다. 끓이면서 생긴 거품은 걷는다.
6 중간에 껍질콩을 넣고 5분쯤 끓인 후 소금, 후추로 간하고 월계수잎은 빼낸다
7 개인용 수프 그릇에 담고 모닝빵을 곁들인다.
▲사과 녹즙
재료
사과 1개 반, 셀러리 50g, 비트잎 10장, 생수 1/2컵
만들기
1 사과는 껍질 벗겨 씨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셀러리는 깨끗이 씻어 줄기 끝부분의 섬유질을 벗겨내고 작게 자른다.
3 믹서에 ①, ②, 비트잎을 넣고 생수를 부어 곱게 간다.
▲ 양상추 과일 샐러드
재료
양상추(큰 잎) 4장, 사과 1/2개, 배 1/6개, 키위 1개, 고구마(소) 1개, 건포도 1큰술, 생식가루 적당량, 드레싱(플레인요구르트 3큰술, 레몬즙 1작은술, 꿀 약간)
만들기
1 양상추는 한 겹씩 떼어 찬물에 담가두었다가 물기를 턴다.
2 사과는 껍질을 벗겨 과육만 사방 1.5cm 크기로 썰어 옅은 설탕물에 담근다.
3 배, 키위는 껍질 벗겨 같은 크기로 썬다.
4 고구마는 껍질째 찜통에 무르도록 찐 후 껍질 벗겨 배, 키위와 같은 크기로 썬다.
5 물기 뺀 양상추 잎에 준비한 과일을 드레싱 넣어 잘 섞어 소복이 담는다.
6 생식가루를 적당량 올린다.
저녁형 인간을 위한 건강 음식
저녁형 인간은 사상의학에서 태음인과 소음인 등 음의 기운이 강한 사람이 해당한다. 대부분 아침보다는 저녁에 활기를 띠는 사람으로 자신의 양을 넘게 먹었을 경우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약간 짜고 매운 음식을 따뜻하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이런 저녁형 인간의 경우 아침에는 신체 기능의 회복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아침은 아주 간단하게 먹는 것이 좋다. 저녁형에 적당한 육류는 닭고기, 개고기, 달걀 등이고, 곡류는 좁쌀, 찹쌀, 들깨, 들기름 등이 좋다. 채소류는 시금치, 깻잎, 쑥갓, 쑥, 달래, 미역 등을 고르고, 과일은 귤, 오렌지, 유자, 복숭아 등이 좋다.
▲ 현미 조 주먹밥
재료 현미조밥 2공기, 들깨가루 1작은술, 시금치 50g, 들기름 1큰술, 신김치 50g, 미소장국(물 4컵), 불린 미역 50g, 미소된장 2큰술, 다진 파 2큰술
만들기
1 시금치는 씻어서 끓는 물에 소금을 넣어 살짝 데친 후 물기를 꼭 짜고 잘게 다진다.
2 신김치는 씻어서 물기를 꼭 짠 후 잘게 다진다.
3 밥에 ①, ②, 들깨가루, 들기름, 소금을 넣고 잘 섞어 동그랗게 주먹밥을 만든다.
4 끓는 물에 미소된장을 풀고 물기를 뺀 불린 미역을 넣은 후 다진 파를 넣어 장국을 만들어 곁들인다.
▲ 해초 묵 라면 냉채
재료
비빔면 2개, 모둠해초 60g, 청포묵 100g, 당근 1/3개, 오이 1/3개, 양파 1/4개, 치커리 적당량, 양념장(고추장 2큰술, 간장 1큰술, 설탕 1큰술, 식초 2큰술, 사과즙 2큰술, 양파즙 2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약간)
만들기
1 야채는 모두 4~5cm 길이로 가늘게 채썰어 찬물에 담가두었다가 물기를 뺀다.
2 해초는 찬물에 담가 짠맛을 빼내고 식초, 설탕, 소금을 1작은술씩 넣고 버무린다.
3 묵은 끓는 물에 살짝 데워 말갛게 되면 건져서 가늘게 채썬다.
4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삶은 후 찬물에 헹궈 체에 밭친다.
5 치커리는 찬물에 담가두었다가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6 그릇에 면과 묵을 담고 썰어둔 야채를 적당히 올리고 양념장과 곁들인다.
▲ 햇감자 팬 오믈렛
재료
햇감자(소) 2개, 스팸 50g, 달걀 2개, 실파 1뿌리, 소금 1/3작은술, 올리브유 2큰술, 파마산치즈 50g
만들기
1 햇감자는 껍질 벗겨 가늘게 채썰고 씻어 찬물에 담가뒀다가 체에 건져 물기를 뺀다.
2 스팸도 가늘게 채썰고, 실파는 송송 썬다.
3 볼에 달걀을 풀어 ①, ②, 실파, 파마산치즈를 넣고 잘 섞는다.
4 작은 프라이팬에 오일을 두르고 ③을 부어 뚜껑을 덮은 뒤 약불에서 서서히 익힌다.
5 도톰하므로 골고루 위까지 익도록 뚜껑을 덮어 굽고 다 구워지면 꺼내서 칼로 등분한 후 그릇에 담는다.
▲ 연두부 그라탱
재료
연두부 2팩, 게살 4줄, 에멘탈치즈 50g, 실파 2뿌리, 소금 약간, 파마산치즈 4작은술, 양념(간장 2큰술, 다시마 우린 물 3큰술, 설탕 1큰술, 맛술 1작은술, 다진 파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만들기
1 연두부는 반으로 잘라 오목한 그릇에 담는다.
2 게살은 잘게 찢어두고, 실파는 송송 썬다.
3 ①의 윗면에 ②를 올리고, 치즈를 잘게 잘라 올린다.
4 200℃로 예열한 오븐에 ③을 넣고 10분간 구워 치즈가 녹으면 꺼낸다.
5 윗면에 파마산치즈를 뿌리고 그릇 안에 생긴 두부 물에 양념을 넣는다.
<진행 김미연 기자 사진 이진한 기자 요리&스타일링 최지은(F.i.m Studio2 02-379-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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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줄 모르는 웰빙 열풍으로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채식. 풀만 먹고사는 소가 하루종일 밭을 갈고,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운동선수가 거뜬히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일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건강을 지키는 길, 이제 채식주의가 답이다.
PART1
▲ 왜 채식인가?
베지테리안이란 "건강"의 의미를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건강, 동식물에 대한 사랑, 지구 차원의 평화와 행복으로 확장시키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식생활에 육류를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베지테리안은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 유형이 조금씩 달라 "풀만 먹고" 산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한 순간 그 사람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불쌍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껴야만 한다. 또 무리해서 금욕 생활을 하거나 강박증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 즐거운 먹을거리 선택의 기쁨
영양 부족에 시달리지는 않는지, 경제적 사정이 많이 힘들어서 고기를 먹지 못하는지, 미각 결핍증에 걸리지는 않는지 등 베지테리안을 걱정하는 시선들은 끝이 없지만 원재료의 깊은 맛과 재료들의 절묘함을 살리는 베지테리안의 음식은 훌륭하다. 베지테리안은 단순히 채식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과의 공존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구환경과 사회현실을 한번 더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때문에 야채만 먹고 있는걸요"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 육식 세계를 뒤흔든 채식주의자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진 혁명에는 항상 우리가 아는 위대한 혁명가와 음식이 함께 있다. 간디는 소금 운동을 통해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다수가 모이면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국의 지배에 단식과 비폭력으로 대항한 간디는 인도인이 영국인보다 유약한 탓에 지배당한다고 생각하고 인도의 해방을 위해 고기를 먹자는 친구들의 부추김에 고기를 먹은 적도 있었다. 힌두교도인 부모님을 생각해 그만뒀지만 점점 그의 비육식 생활은 단순히 신앙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삶의 철학이라는 사명을 띠게 됐다. 간디뿐 아니라 미국 독립의 초석을 다진 벤자민 프랭클린 또한 베지테리안이었다. 프랭클린은 16세 때부터 베지테리안 식사를 실천했다. 17세의 프랭클린은 고기, 닭, 생선을 사용하지 않는 요리법을 40종류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역사 속의 많은 베지테리안들은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강한 힘의 원천이라는 인식을 없애고 육식이 빈부의 차이, 지배와 피지배 등 수많은 불평등을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 먹을 것 없는 밥상의 최종 결론
베지테리안들은 가공식품으로 인해 인간의 생활양식이 단절적이고 편리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이미 개인의 식생활은 개인적인 일로 끝나지 않고 생활양식과 사상에 영향을 미쳐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와 깊이 연관된다. 세계는 기아, 기근, 지구 온난화, 환경호르몬, 전쟁 위기 등 점점 베지테리안이 추구하는 이상세계에 역행하는 길을 걷고 있다. 가공 식품을 배제하고 곡식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는 육식을 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PART2
▲ 자연을 먹는 즐거움
채식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내 신체의 건강, 장수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내 한 몸 건강해지는 당연한 이유 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 생명을 존중한다
좀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채식주의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개개인이 잘 사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채식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한 사람이 먹을 고기를 얻기 위해 필요한 사료가 열 사람분의 식량이 될 수 있다. 또 식육 생산에는 동물을 사육할 수 있는 거대한 목장과 공장, 대량의 사료와 화학약품, 기계, 운반과 보존 수단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식물을 자연 그대로 재배하는 데 필요한 흙, 물, 태양, 비료는 모두 자연에서 비롯된다. 지금도 기아로 죽어가는 인구가 수백만 명이 존재하는 지구상에서 채식주의자가 늘어날 때마다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흔히 베지테리안은 동물 애호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동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농업이 근대화되어 감에 따라 가축을 노동력이 아닌 식재료로 보고 식육처리업과 정육점이 생겨나게 됐다. 위기에 놓인 야생 동물만이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고품질을 위해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사육에 소, 돼지, 닭의 생명이 마구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 건강을 지킨다
채식을 하면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극단적으로 한 가지 식품만을 섭취하면 건강에 해롭지만 육류를 섭취하지 않더라도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충분히 장수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채식은 지나친 동물성 지방의 섭취로 인해 발생하는 고혈압, 동맹경화증 외에 아토피성 피부염, 여드름 등 각종 질병을 예방, 치료한다. 또 피를 맑게 해 빈혈에도 좋고 혈당량을 조절해 당뇨병 환자에게는 매우 이롭다. 인삼, 율무, 마늘, 버섯, 된장 등 암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식품의 대부분이 채소류인 것이 채식과 건강의 긍정적 관계를 분명하게 증명해준다.음식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끼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보다 성격이 온순하고 침착하며 집중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정신병과 신경성 환자에게 자연식을 권하는 치료법이 실행된다고 한다. 무엇을 씹음으로써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에게 철저하고 끈기가 있다.
▲ 환경을 생각한다
가축을 사육하는 것은 곡류를 생산해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자원의 낭비와 환경의 오염을 가져온다. 축산 폐수로 인한 수질오염과 목초지를 조성하기 위해 베어낸 삼림의 파괴는 어떤 음식을 먹는가 하는 고민을 벗어나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육류는 상하면 전체를 못 쓰게 되는 반면 채소류는 상한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베지테리안은 인간, 동물, 식물, 대지 이 모든 것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존중하는 관점에서 먹을거리를 선택한다.
PART3
▲ 건강을 위한 새로운 계획 채식
처음 채식을 하려고 시도하면 거의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하면 채식으로도 얼마든지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고 전보다 즐거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생활에서 따라하는 먹을거리 선택
1_눈에 보이는 육류는 무조건 피한다_눈에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재료들을 찾아내기 힘들다면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이라도 먹지 않는다.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금지 식품. 김치를 담글 때 젓갈 대신 양파나 무를 넣어서 만든다.
2_신선한 유기농 채소와 제철 과일을 섭취한다_비타민C, E가 풍부한 녹황색 채소가 특히 건강에 좋다.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먹어도 좋지만 그대로 먹으면 다양한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다.
3_해조류, 버섯류, 견과류를 많이 섭취한다_섬유질을 다량 함유해 항암효과를 주고 해조류의 칼슘은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인 견과류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불포화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4_잡곡밥을 먹는다_입안에서 잘 씹어 소화가 잘되고 잡곡의 영양이 몸에 흡수될 수 있도록 천천히 식사한다.
5_콩으로 단백질을 대신한다_콩은 필수아미노산과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밀고기나 콩고기 등 고기대용 식품을 먹는다.
6_정제된 곡류, 통조림 식품, 인공 음료 등은 피한다_한 번이라도 화학적 가공을 거친 식품은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조미료를 사용할 때도 다시마가루와 버섯가루 등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다.
▲ "베지테리안" 마음가짐 성공포인트
1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다_점차적으로 단계를 높여가는 방법이 몸에 맞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단번에 확실히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수도 있다. 타인이 추천한 방법도 좋지만 자신만의 성공비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2 즐거운 기분으로 한다_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채식은 한 가지 음식만을 먹거나 무조건 굶는, 단지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와는 다르다.
3 동지를 찾는다_혼자 채식을 하는 것이 힘들고 외롭다면 채식 동호회나 모임에 참여한다. 의견과 정보도 교환하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내 자신의 의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4 널리 알린다_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이 알린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5 채식을 이해한다_무조건 육류를 먹지 않고 채소를 먹는다는 개념으로는 성공한 베지테리안이 될 수 없다. 생명과 환경에 대한 채식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적 철학을 함께 이해한다.
6 내가 스스로 한다_식단 계획을 짜는 것부터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까지 내 손으로 직접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하다보면 적극적인 자신의 모습이 마치 전문 영양사처럼 느껴질 것이다.
7 단골 식당을 만든다_식사시간마다 눈치가 보이고 메뉴 선택이 고민이라면 단골 식당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일이 필요한 사항을 얘기하지 않아도 돼 편리하고 식당 주인과 좀더 친해지면 전혀 새로운 메뉴의 채식 음식을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힘들다면 직접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것도 좋다.
PART4
▲ 유형별로 알아본 채식 방법
채식도 나이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그 방법과 효과가 다르다. 남다른 채식주의 요법으로 좀더 쉽고 편안하게 채식에 도전해보자.
성장기 어린이와 임산부_완전 채식은 절대 피한다. 콩이나 두부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우유나 치즈 등 유제품으로 성장기에 필요한 영양을 보충해준다.
노년기_뼈가 부실해지는 노년기에는 칼슘 성분 함량이 높은 해조류와 검은깨로 뼈의 골밀도를 높여주는 식단을 선택한다.
중년 남성_단백질은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지만 술과 담배로 인한 건강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단백 식품을 먹어줘야 한다. 이때 반드시 항산화 작용을 하는 채소를 함께 먹어준다.장이 좋지 않은 사람_장이 약한 사람은 오히려 채소를 무리해 먹다보면 장이 자극돼 건강이 더 나빠질 수 있다.당뇨병과 고혈압 환자_채식은 혈당량을 조절하는 가장 우수한 식품이기 때문에 당뇨와 고혈압 환자들이 식이요법으로 선택해 먹어주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 채식 관련 사이트
한국생명채식연합 www.vege.or.kr
지구사랑vega www.veggie.or.kr
푸른생명 한국채식연합 www.vegetus.or.kr
한국채식연대 www.kvu.or.kr
푸른나라 건강실천회 www.ululul.co.kr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 www.veg.or.kr
한국생명운동본부 www.newlifein.org
<여성조선 정리 전영미, 최은경 참고도서 "베지테리안, 세상을 들다"(쯔루다시즈카 지음·출판사 모색) 도움말 하세현 원장(미소인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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