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보 중독

우리 시대의 중독

건국대병원/하지현 교수

스크랩 또 스크랩… 잠시 눈을 감자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와 애프터를 하기로 했어요. 이제는 곤궁한 싱글생활을 청산하고 싶어요. 인터넷을 뒤져 좋다는 곳을 검색하지만 볼수록 머리만 아파요. 왜 이리 맛있다는 곳은 많은 것인지. 분위기, 가격, 장소 등등 고려할 것이 너무 많아요.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지만, 맨 밑에 악플이 하나 있네요. 이를 어쩌죠? 그러다보니 기획서 마감일에 걸렸어요. 이것도, 벌써 며칠째 자료조사만 하고 있습니다. 한 자료에서 힌트를 얻어 다시 다른 자료를 찾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거지요.

하지만 이제는 써야할 시간, 그동안 모아 놓은 자료의 양에 짓눌릴 것 같네요. ‘언젠간 쓸모가 있을 거야’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한밤의 초조함.

십년 전만해도 정보의 양으로 승부를 했었죠. 인터넷이 일상화된 후 세상은 변했어요. 이제 양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정보는 이과수 폭포같이 쉬지 않고 쏟아지는데, 들고 있는 양동이는 그에 비하면 너무나 작죠. 세상이 변했지만 여전히 정보를 끌어 모으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이라 여기는 당신의 습관이 현재의 문제에요. 지금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은 정보가 충분치 않아서 그런 것이라 여기는 것이죠.

정보만 충분하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할 수 있겠죠. 이렇게 확신이 적을수록 외부의 정보에 의존하는 정도는 심해지게 되지요. 그런데 정보 자체에 중독된 이들은 정보수집에만 열을 올리고, 막상 모아놓은 정보를 통합하지 못하는 ‘구슬만 서말’형이에요. 게다가 그렇게 정보를 모아놓아도 막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한 마디에 쉽게 흔들려요. 그동안 모은 정보가 당신의 피와 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정보가 모여 하나의 틀과 공식이 만들어지면 그때 지식이 돼요. 그리고 지식을 여러 번 활용하다보면 어느새 원래 영역이 아닌 곳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된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정보가 별로 없더라도 그리 불안해하지 않아요.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로 처음 접하는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혜로 푹 삭아 내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되지 않은 정보의 덩어리로 구성된 나는 사상누각일 뿐이에요. 모래성의 허약함은 언제 부서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부르고,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다짐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냉장고 깊숙한 곳의 음식들을 놔두고 매번 새로 장을 보러 가다 보면 냉장고만 꽉 차죠. 먼저 정보유입의 수도꼭지를 살짝 잠급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 노력할 시간에 지금 알고 있는 것부터 천천히 반복해서 되새김질하는 겁니다. 내 머릿속 냉장고 안에 뭐 쓸 만한 것이 있나 찬찬히 살피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하지요. 매번 새로운 지식에만 매달리면 그 지식이 그어놓은 선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어요. 수십 년 같은 일을 해온 장인들의 바보 같지만 여유 있는 뚝심이 항상 새로운 정보에 갈증을 느끼는 당신의 헛헛한 마음에 필요하단 말씀입니다. 정보통이 되고 싶은가요,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 받고 싶은가요?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입력 : 2006.10.20 14:36 34'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중독

수 많은 집착 속에서 현대인은 어느 덧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시대의 중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국대병원 /하지현 교수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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