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런 감정도 안 느껴져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년 여성 환자가 진료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 없고, 좋아하던 노래를 들어도 멀리서 소음이 들리는 것 같고, 가족과 함께 있어도 혼자 유리벽 안에 갇힌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말투는 단조로웠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슬프다기보다 텅 빈 사람처럼 보였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무쾌감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쾌감증은 단순히 귀찮거나 의욕이 떨어진 상태가 아니다. 기쁨, 흥미, 감동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약해진 상태다. 우울증을 슬픔의 병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많은 환자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슬픔보다 기쁨의 상실이다. 울고 싶을 만큼 슬픈 것도 힘겹지만, 즐거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우울증이 완치되지 않고 만성화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도 바로 이 무쾌감증 때문이다.
무쾌감증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게을러진 것도 아니다. 기쁨을 느끼고 기대하는 뇌의 보상회로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다. 보상회로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걸 하면 즐거울 것 같다, 만족할 것이다”라고 기대하게 하고, 실제로 그 경험을 했을 때 “다시 해보고 싶다”는 신호를 만들어내는 체계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이 회로가 둔해지기 때문에 설렘이 없어지고 기쁨을 느끼지도 못하게 된다.
항우울제 치료는 무쾌감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약물은 기분과 동기를 조절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서 보상회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약만으로는 설렘과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저절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약물치료와 함께 반드시 행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분 상태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무쾌감증이 심하면 “활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좋은 경험을 하면 만족감을 느끼게 될 거야”라는 기대 자체가 사라진다. 기대가 없으니 행동하지 않게 되고, 행동하지 않으니 기쁨을 경험할 기회조차 없어진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내면의 기분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몸을 써야 좋아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회복하기 위해 아주 작게라도 움직여야 한다. “5분만 걸어보자.” “샤워만 해보자.” “커튼만 열어보자.” “화분에 물만 주자.” 사소해 보이는 이런 활동들이 무뎌진 보상회로를 다시 깨운다.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오래 시달리다 보면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둔하게 만든다. 너무 많이 느끼면 아프니까 덜 느끼려고 한다. 문제는 고통만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도 함께 차단된다는 데 있다. 마음을 계속 억누르고 살면 슬픔뿐 아니라 즐거움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무쾌감증의 치료에는 감각을 다시 깨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 한 잔을 마실 때도 잠시 멈춰 차가운 물이 입안을 지나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을 느껴본다. 걸을 때는 발바닥이 땅을 누르는 감촉을 알아차려 본다. 손끝에 닿는 바람, 햇빛이 피부에 머무는 느낌, 커피 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는 향을 의식해본다. 감각이 깨어나야 생기가 돌아온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정신의학자인 조반니 파바 교수는 심리적 웰빙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치료법을 제안했다. 바로 웰빙치료다. 웰빙치료는 고통만 파고들지 않는다. 고통의 그늘 속에서도 “만족스럽고, 괜찮았던” 순간을 찾아낸다. 환자에게 “무엇이 당신을 괴롭혔나요?”라고 묻기보다 “지난 하루 중 그래도 괜찮았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라고 묻는다. 웰빙치료에서는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지난 24시간 동안 가장 편안했거나 괜찮았던 순간을 기록한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고, 누구와 함께 있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우울은 하루 전체를 하나의 어두운 덩어리로 뭉쳐버린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힘들었던 것 같고,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아주 짧게라도 괜찮았던 순간이 숨어 있다. 점심 뒤 햇볕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걷을 때의 평온함,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어깨를 쫙 폈을 때의 개운함, 귤껍질을 벗길 때 코끝을 채우는 상큼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드는 골든 아워의 황홀함, 세탁기에서 막 꺼낸 수건의 따뜻함, 헤드폰을 끼고 좋아하는 곡의 전주가 시작될 때의 설렘.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 한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야 기쁨을 느낄 수 있다”가 아니라 “순간순간 솟는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웰빙치료는 단순히 좋았던 일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느낌이 왜 사라졌는지도 함께 살핀다. 예를 들어 산책하며 잠시 안정감을 느꼈는데 곧바로 “내가 지금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 생각이 기쁨을 중단시킨 것이다. 친구와 대화하며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곧 “내가 이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올라왔다면, 그것이 긍정적 경험을 밀어낸 것이다. “나에게는 인생을 즐길 자격이 없다”, “이 정도에 만족하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잠시 찾아온 기쁨마저 쫓아낸다. 기쁨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밀어내고, 의심하고, 죄책감으로 바꾸는 자동사고를 알아차리고, 그 생각을 조금씩 교정해야 한다.
좋은 순간을 기록하는 일은 그 순간을 한 번 더 사는 일이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 창고가 아니다. 다시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그때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재경험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무엇이 내 마음을 회복시키는지 알게 된다. 몸을 움직였을 때, 비교를 멈췄을 때, 현재에 주의를 기울였을 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을 때 마음의 생기가 조금씩 살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무쾌감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거대한 행복을 찾는 데 있지 않다.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작은 행동을 반복하고, 사라지기 쉬운 기쁨의 순간을 붙잡는 데 있다. 우울이라는 잡초를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자리에 작은 화초를 심어야 한다. 기쁨은 전광판처럼 번쩍이지 않는다. 은은한 등불에 가깝다. 작아서 자주 지나치지만, 그 희미한 빛들이 모여 삶을 다시 밝힌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년 여성 환자가 진료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 없고, 좋아하던 노래를 들어도 멀리서 소음이 들리는 것 같고, 가족과 함께 있어도 혼자 유리벽 안에 갇힌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말투는 단조로웠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슬프다기보다 텅 빈 사람처럼 보였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무쾌감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쾌감증은 단순히 귀찮거나 의욕이 떨어진 상태가 아니다. 기쁨, 흥미, 감동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약해진 상태다. 우울증을 슬픔의 병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많은 환자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슬픔보다 기쁨의 상실이다. 울고 싶을 만큼 슬픈 것도 힘겹지만, 즐거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우울증이 완치되지 않고 만성화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도 바로 이 무쾌감증 때문이다.
무쾌감증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게을러진 것도 아니다. 기쁨을 느끼고 기대하는 뇌의 보상회로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다. 보상회로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걸 하면 즐거울 것 같다, 만족할 것이다”라고 기대하게 하고, 실제로 그 경험을 했을 때 “다시 해보고 싶다”는 신호를 만들어내는 체계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이 회로가 둔해지기 때문에 설렘이 없어지고 기쁨을 느끼지도 못하게 된다.
항우울제 치료는 무쾌감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약물은 기분과 동기를 조절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서 보상회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약만으로는 설렘과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저절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약물치료와 함께 반드시 행동을 활성화해야 한다.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분 상태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무쾌감증이 심하면 “활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좋은 경험을 하면 만족감을 느끼게 될 거야”라는 기대 자체가 사라진다. 기대가 없으니 행동하지 않게 되고, 행동하지 않으니 기쁨을 경험할 기회조차 없어진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내면의 기분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몸을 써야 좋아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회복하기 위해 아주 작게라도 움직여야 한다. “5분만 걸어보자.” “샤워만 해보자.” “커튼만 열어보자.” “화분에 물만 주자.” 사소해 보이는 이런 활동들이 무뎌진 보상회로를 다시 깨운다.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오래 시달리다 보면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둔하게 만든다. 너무 많이 느끼면 아프니까 덜 느끼려고 한다. 문제는 고통만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도 함께 차단된다는 데 있다. 마음을 계속 억누르고 살면 슬픔뿐 아니라 즐거움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무쾌감증의 치료에는 감각을 다시 깨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 한 잔을 마실 때도 잠시 멈춰 차가운 물이 입안을 지나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을 느껴본다. 걸을 때는 발바닥이 땅을 누르는 감촉을 알아차려 본다. 손끝에 닿는 바람, 햇빛이 피부에 머무는 느낌, 커피 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는 향을 의식해본다. 감각이 깨어나야 생기가 돌아온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정신의학자인 조반니 파바 교수는 심리적 웰빙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치료법을 제안했다. 바로 웰빙치료다. 웰빙치료는 고통만 파고들지 않는다. 고통의 그늘 속에서도 “만족스럽고, 괜찮았던” 순간을 찾아낸다. 환자에게 “무엇이 당신을 괴롭혔나요?”라고 묻기보다 “지난 하루 중 그래도 괜찮았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라고 묻는다. 웰빙치료에서는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지난 24시간 동안 가장 편안했거나 괜찮았던 순간을 기록한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고, 누구와 함께 있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우울은 하루 전체를 하나의 어두운 덩어리로 뭉쳐버린다.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힘들었던 것 같고,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아주 짧게라도 괜찮았던 순간이 숨어 있다. 점심 뒤 햇볕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걷을 때의 평온함,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어깨를 쫙 폈을 때의 개운함, 귤껍질을 벗길 때 코끝을 채우는 상큼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드는 골든 아워의 황홀함, 세탁기에서 막 꺼낸 수건의 따뜻함, 헤드폰을 끼고 좋아하는 곡의 전주가 시작될 때의 설렘.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야 한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야 기쁨을 느낄 수 있다”가 아니라 “순간순간 솟는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웰빙치료는 단순히 좋았던 일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느낌이 왜 사라졌는지도 함께 살핀다. 예를 들어 산책하며 잠시 안정감을 느꼈는데 곧바로 “내가 지금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 생각이 기쁨을 중단시킨 것이다. 친구와 대화하며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곧 “내가 이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올라왔다면, 그것이 긍정적 경험을 밀어낸 것이다. “나에게는 인생을 즐길 자격이 없다”, “이 정도에 만족하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잠시 찾아온 기쁨마저 쫓아낸다. 기쁨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밀어내고, 의심하고, 죄책감으로 바꾸는 자동사고를 알아차리고, 그 생각을 조금씩 교정해야 한다.
좋은 순간을 기록하는 일은 그 순간을 한 번 더 사는 일이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 창고가 아니다. 다시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그때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재경험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무엇이 내 마음을 회복시키는지 알게 된다. 몸을 움직였을 때, 비교를 멈췄을 때, 현재에 주의를 기울였을 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을 때 마음의 생기가 조금씩 살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무쾌감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거대한 행복을 찾는 데 있지 않다.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작은 행동을 반복하고, 사라지기 쉬운 기쁨의 순간을 붙잡는 데 있다. 우울이라는 잡초를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자리에 작은 화초를 심어야 한다. 기쁨은 전광판처럼 번쩍이지 않는다. 은은한 등불에 가깝다. 작아서 자주 지나치지만, 그 희미한 빛들이 모여 삶을 다시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