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정말 아름다웠을까?

입력 2026.04.13 09:30

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연인의 모습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요즘 MZ세대는 연애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캠퍼스를 둘러보면 여전히 많은 청춘들이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한때 우리 학과의 어느 남학생이 공개 고백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밴드 동아리를 하는 학생이었는데, 공연 마지막에 한 곡을 그녀에게 바치면서 고백을 했단다. ‘용감하네! 청춘이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고백에 사용된 노래 제목을 듣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DAY6의 ‘예뻤어’라는 곡이었다.

세심한 독자라면 이 노래를 몰라도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맞다. 과거형이다. 실제 노래 가사는 헤어진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지금은 우리의 사이가 다 끝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때를 떠올려 보니 그때 너는 참 예뻤다’라고 말하는 가사다. 새로운 사랑을 고백하는 상황과 어울리는 내용의 노래는 아니었던 셈. 그래도 공개 고백은 성공했고, 여전히 알콩달콩 관계를 잘 이어가고 있단다.

첫사랑의 기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굳이 첫사랑까지는 아닐지라도 이젠 끝나버린 예전의 관계를 떠올리면 아련한 마음이 남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땐 참 좋았지.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마 이 공감이 ‘예뻤어’라는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게 했으리라. 그런데 정말 지난 사랑은 아름다웠고, 옛 연인은 정말 예뻤을까?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헤어지기 직전에는 이별을 감수할 만한 정도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별 직후 친구들을 붙잡고 옛 연인의 험담을 하는 것도 필수 코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죽일 만큼 미웠던 그 연인이 아름답던 옛사랑의 아련한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 대부분 이런 신비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낭만을 깨는 듯한 발언일 수 있지만, 대부분 과거의 연인 관계는 이후에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기억은 고정형이 아니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기억을 저장소라는 개념을 빌려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물리적 저장소보다도 못하다. 예전에 즐겨 들었던 노래 CD를 일종의 저장소인 신발 상자에 넣어 침대 아래에 고이 넣어놨다면, 십수 년 뒤에 열어보았을 때 그 CD가 그대로 남아 있겠지만, 기억 속에 넣어놓은 추억들은 그렇게 고이 유지되지 못한다. 일부는 잊히기도 하고, 일부는 실제 사실과 전혀 다르게 기억하기도 한다.

특히 기억의 내용은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에서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일화 기억이란 개인이 직접 경험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연인과 첫 데이트 할 때의 기억, 봄 햇살을 함께 맞으며 손을 잡고 길을 걸었던 기억, 함께 인기 있는 영화를 보러 갔을 때의 기억, 새로운 맛집을 찾아 가다가 길을 잃어 헤매던 기억 등이 해당된다. 이에 반해 의미 기억은 사실, 지식, 개념에 대한 기억이다. 벚꽃은 봄에 피는 꽃이라던가,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탈 수 있다던가 하는 정보들이 저장돼 있다. 두 개의 기억은 별개의 체계라고 알려져 있다. 간혹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외치면서도 막상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들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화 기억은 상실됐어도 의미 기억이 보존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일화 기억에는 생생하고 자세한 정보들이 많이 포함돼 있을 테고, 이를 계속 머릿속에 저장해 놓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일화 기억들이 의미 기억처럼 변화한다. 옛 연인과의 세세한 기억들은 조금씩 흐려지고, 그 대신 ‘나의 청춘을 그 사람과 함께 했었지’ 정도의 사실 정보로 바뀐다.

이 와중에 정서가 끼어든다. 정서와 기억의 관계는 긴밀하다. 간혹 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정서가 개입해서 그렇다.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던 기억, 너무나도 행복했었던 기억 등 강한 정서가 함께 발생한 기억들은 매우 생생하게 기억되고 잊히지도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옛 연인과 헤어질 때의 아픔은 더 생생할 것이고, 그 사람에 대한 기억도 나쁘게만 남아 있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작동한다. 안 좋았던 정서와 연결된 사건들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잊히지 않는 것은 다시는 그런 위험 상황에 처하지 말라는 경고의 역할을 하기에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부정적인 정서가 계속 마음에 가득 차 있으면 어떨까? 아마도 매일 저녁으로 안 좋았던 감정의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면,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정서를 강하게 경험하게 하되, 오래 지속되지는 않도록 조절한다.

간혹 헤어짐에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맞는 말이다. 부정적인 정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 강도가 매우 약해지고, 그 결과 그 정서와 연결되었던 기억들도 그 중요도가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헤어진 옛 연인은 헤어진 직후 ‘죽일 만큼 나쁜 사람’에서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부정적인 정서와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좋았던 정서와 기억들만 남아서 ‘그래도 좋았고 예뻤던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연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의 과거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의 기억들이 미화되는 경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생한다. 필자만 해도, 중·고등학교 시절들을 떠올리면 그때는 지금처럼 중·고등학생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도 학업의 부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불안했던 나의 청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킬 때에 엄청난 미화가 발생했을 터다. 결국 기억은 과거를 단순히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다시 쓰이는 과정이다.

옛 연인은 예뻤다. 이 사실을 굳이 부정하고자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내 기억이 미화되는 것은 더 밝고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과거에 얽매어 머무르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니 그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옛 연인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당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