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폐고혈압·정맥혈전센터

20여 년 전 이상도 서울아산병원 진료부원장(호흡기내과)이 폐고혈압 진료를 시작한 후, 서울아산병원 내 의료진 사이에서 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관련 진료과인 호흡기내과와 심장내과에서 환자 진료·치료가 산발적으로 이뤄지자 의료진은 한 데 모여 함께 연구하고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통합센터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폐고혈압·정맥혈전센터가 지난 2013년 12월 개소했다.
센터 안에는 심장내과,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혈관외과, 류마티스내과, 소아심장과, 소아심장외과, 진단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가 합류하고 있다. 센터 내에서 독립적으로 외래진료를 보는 의료진은 심장내과의 2명, 호흡기내과의 2명, 혈관외과의 1명, 소아심장과 전문의 1명,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1명, 흉부외과의 1명, 류마티스내과의 1명으로 총 9명이다.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 통합진료를 연다.

우리나라에서는 폐고혈압을 심장내과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로 심장내과 전문의가 전담한다. 하지만 폐고혈압은 원인이 심장이나 호흡기(폐), 류마티스질환,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매우 다양하고,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이든 증상은 비슷하다. 환자가 숨이 차는 증상 때문에 심장내과를 찾아서 검사했는데 심장에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때부터 원인이 나올 때까지 폐고혈압이라는 병과 관련 있는 진료과를 전전해야 한다. 병을 바라보는 의료진 간의 시각이나 의견 교환도 쉽게 이뤄지지 않아서 단편적인 검사 및 진료 결과만 듣는 경우도 흔하다.
서울아산병원의 폐고혈압·정맥혈전센터는 폐고혈압이 의심되는 환자가 기본 검사에서 원인이 쉽게 나오지 않을 경우, 센터 내 진료과 전문의가 한 방에 모여 환자 한 명을 놓고 상태를 함께 확인한다. 원인을 추정하고 문제가 되는 부위에 대해 외과의가 수술이나 시술 가능 여부를 확인하며 내과의가 약물치료 효과와 가능성에 대해 논해 그 자리에서 진료 및 치료 계획을 수립한다. 서울아산병원 폐고혈압·정맥혈전센터 송종민 센터장은 "미국과 유럽의 폐고혈압 원인 규명 및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도 다양한 진료과적 접근이 팀으로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권고한다"고 말했다.

임상 경험 많아 신약 효과 검증하고 심포지엄 주최도
서울아산병원 폐고혈압·정맥혈전센터는 월평균 1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폐고혈압을 진단받는 환자가 연간 2000여 명 정도니, 임상 경험이 많은 편이다. 송종민 센터장은 "풍부한 경험은 환자의 상태와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 계획을 좀더 효과적으로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신약의 효과를 입증하는 데도 쓰인다. 현재 나와 있는 일차성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약은 효과가 크지 않다. 혈압이 정상치로 잘 떨어지지도 않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혈압 조절도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신약 개발이 한창이다. 송종민 센터장은 "새로 개발되는 약의 효과를 다국적으로, 대규모로 연구해야 할 때 우리 센터가 합류해서 우리나라 환자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개발된 약이 우리나라 환자에게도 효과가 충분한지에 대한 검증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센터가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폐고혈압 중에서도 혈전에 의한 폐고혈압(만성 혈전색전성 폐고혈압)이다. 몸에서 생긴 혈전이 폐혈관에 들러붙어서 혈관을 두껍게 만들고, 이로 인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압력이 올라가는 병이다. 송 센터장은 "센터 내 이재원(흉부외과) 교수는 국내에서 혈전에 의한 폐고혈압 수술 경험이 가장 많은 의사일 것"이라며 "이 덕에 우리 센터가 혈전에 의한 폐고혈압 치료도 좀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고, 병에 대한 임상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2015년 10월 31일, 이 병에 대한 심포지엄을 국내 최초로 개최한다. 국내외 저명한 의료진이 모여 혈전에 의한 폐고혈압 원인, 약의 효과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혈관에 풍선을 넣은 뒤 부풀려서 혈관을 넓히는 시술도 소개될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 폐고혈압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게 사실이다. 송종민 센터장은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약을 개발하거나 시술법을 고안하는 단계까지는 아니고, 외국에서 개발된 것을 들여와 적용해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센터의 목표는 폐고혈압에 대한 연구와 치료법 개발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송 센터장은 "센터 결성, 훌륭한 팀워크 보유, 우리만의 진료 가이드라인 확립 등 임상 진료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틀은 갖춰졌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처럼 경험이 계속 쌓이면 치료 및 진료의 질이 높아질 것이니, 이를 통해 외국을 앞서 치료를 주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센터는 병에 대한 유전학적,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하는 국내외 전문가와 협업해 병이 생기는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이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해 효과를 입증하는 등의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심장의 피를 팔·다리 등 온몸으로 보내는 대동맥의 압력이 높아진 상태인 고혈압과 달리, 피를 심장에서 폐로 보내는 폐동맥 안의 압력이 높은 상태. 평균 폐동맥압이 25mmHg 이상인 경우다. 심장에서 폐로 혈액순환이 원활히 되지 않으니, 활동할 때 숨 차는 증상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폐혈관의 압력이 높아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서울아산병원 폐고혈압·정맥혈전센터에 내원하는 폐고혈압 환자 중 심장질환 탓에 폐혈관이 수축하거나 두꺼워지며 좁아져 압력이 높아지는 경우가 70% 정도 된다. 폐를 포함한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탓인 경우는 10% 정도 된다. 혈전 탓에 피가 원활히 통하지 않아 혈압이 올라간 경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 등이 나머지 10% 정도를 차지한다. 심장과 폐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폐혈관의 압력이 높아져 있고, 그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경우도 나머지 10%에 포함된다. 이 경우는 폐고혈압 증상 안에서도 '일차성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불린다. 뚜렷한 치료약이 없는 난치병이며, 인구 100만 명당 2명 정도에게 걸리는 희귀질환이다. 숨이 차거나 막히고, 가슴이 아프고, 어지러우며, 피곤하고, 다리가 아프고, 수시로 기절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